Alicia Keys
클래식 피아노로 다져진 손가락과 뉴욕 거리에서 배운 목소리로,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를 노래했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테리 아우젤로
배우 겸 법률비서로 혼자 그를 키운 어머니.
- 가족크레이그 쿡
항공 승무원이었던 아버지로 어린 시절 관계가 소원했다.
- 후원클라이브 데이비스
애리스타와 J 레코드를 이끌며 데뷔 앨범을 지원한 레이블 수장.
- 동료제프 로빈슨
무명 시절부터 함께한 매니저.
- 우정어셔
「마이 부」를 함께 부른 알앤비 동료 가수.
- 동료스위즈 비츠 (케이심 딘)
프로듀서이자 배우자로, 여러 앨범을 함께 만들었다.
I. 헬스키친의 소녀 · 1981–1988
(출생) 1981년 1월, 미국 뉴욕 맨해튼의 헬스키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앨리샤 아우젤로 쿡이다. (어머니) 어머니 테리 오거스텔로는 배우이자 법률비서로 일하며 혼자 그를 길렀다. (아버지) 아버지 크레이그 쿡은 항공 승무원이었고, 어린 시절 부녀 관계는 오랫동안 소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동네) 당시 헬스키친은 우범지대로 불릴 만큼 거칠었지만 동시에 연극과 음악을 하는 이들이 모여 사는 예술가의 거리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거리 대신 무대를 보고 자라길 바라며 그를 오디션과 레슨에 데리고 다녔다. (피아노) 일곱 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클래식 레퍼토리를 익히며 손가락은 쇼팽과 베토벤의 악보 위에서 단련됐고, 그 훈련은 훗날 그의 노래에 스며드는 화성 감각의 뿌리가 됐다.
II. 클래식과 거리의 사이 · 1988–1999
(학교) 헬스키친에 있는 프로페셔널 퍼포밍 아츠 스쿨에 다니며 클래식 피아노와 성악을 정식으로 배웠다. 재즈와 소울, 당시 유행하던 힙합과 리듬 앤드 블루스도 동시에 흡수했다. (재능)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었고 16세에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미 그 무렵부터 스스로 곡을 쓰고 작은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콜럼비아) 컬럼비아 레코드와 10대 중반에 계약했지만 방향을 정하지 못한 회사와 뜻이 맞지 않아 앨범은 끝내 나오지 못했다. 이후 애리스타 레코드로 옮겼으나 그곳도 오래가지 못했다. (멘토) 이 시기 매니저 제프 로빈슨을 만나 평생 함께할 협력자를 얻었고, 애리스타의 수장이던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J 레코드를 새로 세우며 그를 데려갔다. 데이비스는 클래식 훈련과 거리의 소리가 뒤섞인 그의 음악에서 가능성을 봤다. (대학) 짧게 컬럼비아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한 학기 만에 음악에 전념하기 위해 그만뒀다. 부모는 안정된 길을 바랐지만 그는 무대를 선택했다.
III. 송스 인 어 마이너 · 1999–2002
(작업)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지원 아래 뉴욕 퀸스의 지하 스튜디오 등에 틀어박혀 직접 작곡하고 편곡하고 프로듀싱까지 맡은 데뷔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제목) 앨범 제목 「송스 인 어 마이너」는 그가 즐겨 쓰던 단조 화성에서 따왔다. 클래식 피아노와 힙합 비트, 소울의 창법을 한 그릇에 담으려 했다. (폴린) 대표곡 「폴린」은 짧은 시간에 급히 써낸 곡이라고 전해진다. 스티비 원더의 영향이 느껴지는 이 곡은 2001년 발매와 동시에 라디오를 장악했다. (성공) 앨범은 빌보드 200 1위에 올랐고 전 세계에서 1200만 장 넘게 팔렸다. 2002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포함해 다섯 개 부문을 휩쓸며 21세의 나이에 정상급 아티스트로 떠올랐다. (정체성) 무명 시절부터 밴대너와 단화, 헐렁한 옷차림을 고수하며 화려한 팝스타 이미지 대신 동네 소녀 같은 모습을 지켰다. 스스로 뉴욕 거리에서 자란 진짜 자신의 모습이라 여겼다.
데뷔 앨범의 대표곡으로, 사랑과 이별을 오가는 감정을 짧은 시간에 급히 써냈다고 전해진다.
- 피아노와 목소리만으로 시작해 담백하게 감정을 드러낸다.
- 후렴에서 한 음절을 여러 음으로 굽이치게 늘이는 창법(멜리스마)으로 감정을 고조시킨다.
- 가스펠 성가대 같은 백보컬이 후반부에 쌓이며 곡에 무게를 더한다.
- 스티비 원더풍의 코드 진행이 클래식과 소울을 잇는다.
같은 앨범에서 여성의 자존을 노래한 곡으로, 클래식한 발라드 형식에 힙합 리듬을 얹었다.
- 잔잔한 피아노 인트로 뒤로 낮은 음역에서 반복되는 베이스 리프가 곡의 뼈대를 잡는다.
- 후렴에서 목소리를 낮게 눌렀다 후반부에 풀어내며 대비를 만든다.
- 현악 편곡이 은은하게 깔려 발라드의 품격을 더한다.
IV. 정점 · 2003–2009
(다이어리) 2003년 두 번째 앨범 「더 다이어리 오브 앨리샤 키스」를 냈다. 작사·작곡 파트너 케리 브라더스와 함께 만든 이 앨범에서 대표곡 「이프 아이 에인트 갓 유」가 나왔다. (듀엣) 2004년에는 어셔와 함께 부른 「마이 부」가 크게 히트했다. 두 사람은 이미 각자 알앤비 신을 대표하는 스타였고, 이 곡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파트너십을 확인시켰다. (에즈아이엠) 2007년 앨범 「애즈 아이 앰」에서는 프로듀서 진영을 넓히며 록적인 질감을 더했다. 이 앨범에서 나온 「노 원」은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됐다. (제이지) 2009년 제이지와 함께 부른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는 뉴욕을 상징하는 송가가 됐다. 헬스키친에서 나고 자란 그의 목소리가 뉴욕을 대표하는 후렴을 맡은 것은 자연스러운 만남이었다. (위상) 이 시기 그는 단순한 가수를 넘어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자리 잡았다.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쓰고 제작하며 업계 안에서 존경받는 음악가가 됐다.
두 번째 앨범의 대표곡으로 물질보다 사람을 택하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 곡 전체를 이끄는 피아노 코드 진행이 단순하지만 힘 있게 반복된다.
- 후렴으로 넘어가는 순간 목소리가 낮은 음역에서 높은 음역으로 도약하며 감정을 터뜨린다.
- 브리지에서 정해진 선율 없이 즉흥으로 부르는 대목(애드리브)이 길게 이어지며 라이브에서 회자된다.
- 절제된 드럼과 현악만으로 편곡해 목소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애즈 아이 앰」의 대표곡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노래했다.
- 인트로의 반복되는 신시사이저 리프가 곧바로 귀에 붙는 훅 역할을 한다.
- 둘째·넷째 박을 세게 치는 드럼(백비트) 위에 목소리가 안정적으로 얹힌다.
- 후렴마다 코러스가 겹겹이 쌓이며 곡의 규모가 점점 커진다.
- 2008년 그래미 무대의 라이브가 곡의 정서를 압축해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다.
제이지와 함께 부른 이 곡에서 후렴을 맡아 뉴욕을 상징하는 목소리가 됐다.
- 곡은 1970년대 소울 그룹의 노래를 가져와 다듬은 소리 조각(샘플)으로 시작한다.
- 제이지의 랩 벌스와 앨리샤 키스의 후렴이 교차하며 곡을 밀고 당긴다.
- 후렴에서 목소리를 폭넓게 벌려 웅장한 스타디움 사운드를 만든다.
- 뉴욕 양키스 경기장 등에서 수없이 재생되며 도시의 비공식 응원가가 됐다.
V. 사랑과 가정 · 2009–2012
(만남) 프로듀서 케이심 딘, 활동명 스위즈 비츠를 작업 과정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음악적으로 먼저 통했고 이후 연인이 됐다. (결혼) 2010년 그와 결혼했다고 본인이 공개적으로 밝혔다. 같은 해 첫아들이 태어났고 2014년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고 언론에 널리 보도됐다. (걸온파이어) 2012년 앨범 「걸 온 파이어」를 냈다. 타이틀곡은 어머니가 된 이후 얻은 단단함과 자신감을 담았다는 평을 받았다. (균형) 가정을 꾸리며 음악 활동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기 시작했다. 앨범 사이 공백이 길어졌지만 그는 이를 회복과 성장의 시간으로 받아들였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말했다.
어머니가 된 뒤 낸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단단해진 자신감을 노래했다.
- 도입부의 절제된 피아노와 타악기가 점점 쌓이며 곡을 고조시키는 짜임새를 쓴다.
- 후렴에서 목소리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강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 브리지 이후 갑자기 사운드가 걷히며 목소리만 남는 대목이 극적인 전환을 만든다.
VI. 자연스러움과 사회적 발언 · 2013–2016
(선언) 2016년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로 공식 석상에 서기 시작했다. 잡지 기고문을 통해 외모를 꾸미라는 업계의 압박에서 벗어나겠다고 밝혔고, 이는 대중문화 안에서 화제가 됐다. (자선) 2003년 활동가 리 블레이크와 함께 에이즈 퇴치 단체 킵 어 차일드 얼라이브를 세웠다. 아프리카와 인도의 에이즈 환자, 특히 아이들을 돕는 데 수익 일부를 오랫동안 꾸준히 내놓았다. (발언) 인종차별과 총기 폭력 같은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냈고, 공연이나 시상식 무대를 이용해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 잦았다. (인커먼) 2016년 앨범 「히어」와 곡 「인 커먼」은 화장기 없는 얼굴 선언과 같은 시기에 나왔다. 꾸밈을 걷어낸 목소리와 있는 그대로의 삶을 노래에 담으려 한 시기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 선언과 같은 시기에 나온 곡으로, 꾸미지 않은 목소리를 담으려 했다.
- 아프로비트에 가까운 리듬 섹션이 이전 발라드 중심 사운드와 다른 결을 보여준다.
- 낮게 읊조리듯 부르는 벌스와 활짝 열어 부르는 후렴이 대비를 이룬다.
- 신스 베이스라인이 곡 전체의 그루브를 이끈다.
VII. 오늘의 앨리샤 · 2017–2026
(코치) 미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더 보이스」에 코치로 여러 시즌 출연하며 다음 세대 가수를 발굴했다. (뮤지컬) 2024년 브로드웨이에서 자신의 성장기를 소재로 한 뮤지컬 「헬스키친」을 무대에 올렸다. 자신이 만든 곡들을 극의 뼈대로 삼아 10대 시절 헬스키친에서 보낸 나날을 무대에 재현했다. (현재) 여전히 새 앨범과 공연을 이어가며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던 소녀가 도시의 목소리로 불리기까지, 그의 음악은 늘 자신이 나고 자란 거리에서 출발했다.
덜 알려진 이야기
스테이지 네임 앨리샤 키스는 데뷔를 앞두고 새로 지은 이름이다. 본명 앨리샤 아우젤로 쿡에서 성만 따로 떼어 '키스'로 바꿨는데, 피아노 건반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설명과 함께 삶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고 싶다는 뜻도 담았다고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다. 데뷔 전 컬럼비아 레코드와 맺은 첫 계약은 앨범 한 장 나오지 못한 채 끝났다. 회사는 그를 10대 알앤비 가수로만 포장하려 했고, 클래식 훈련을 받은 그의 음악적 야심과는 맞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 무산된 경험이 이후 그가 자기 앨범의 작곡·편곡·프로듀싱을 직접 맡겠다고 고집하게 된 계기가 됐다. 클래식 피아노 훈련은 지금도 그의 공연에 흔적을 남긴다. 콘서트나 방송 인터뷰 중 즉흥으로 쇼팽이나 베토벤의 곡을 몇 소절 연주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는데, 이는 대중음악 스타이기 이전에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훈련받은 이력에서 비롯된 습관이다.
용어 노트 📚🔎
멜리스마
(말뜻) 그리스어로 노래·선율이라는 뜻의 멜로스에서 온 말이다. (팝에서) 한 음절의 가사에 여러 음을 배치해 목소리를 길게 굽이치게 늘이는 창법이다. 소울과 가스펠 가수들이 즐겨 쓰며, 학교 합창 시간에 한 글자를 길게 늘여 여러 음으로 꾸며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네오소울
(팝에서) 1990년대 후반 등장한 장르로, 전통적인 소울 음악에 힙합의 리듬과 재즈의 화성을 섞은 스타일이다. 익숙한 옛날 요리에 새로운 향신료를 더해 색다른 맛을 낸 것과 비슷하다.
후크
(말뜻) 영어 훅은 갈고리라는 뜻이다. 낚싯바늘처럼 귀를 확 붙잡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팝에서) 노래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중독성 있는 짧은 구절이나 멜로디를 가리킨다. 친구가 부르는 노래의 한 소절만 들어도 바로 따라 흥얼거리게 되는 그 부분이 대개 후크다.
샘플링
(팝에서) 기존에 나온 곡의 일부를 잘라 새 곡에 그대로 또는 변형해 넣는 제작 기법이다. 요리에서 남의 레시피 중 한 재료만 가져와 새 요리에 쓰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통계나 조사에서는 표본을 뽑는다는 뜻으로도 쓴다.
백비트
(말뜻) 영어로 뒤(back)의 박자(beat)라는 뜻이다. (팝에서) 4박자 곡에서 둘째와 넷째 박을 특히 세게 쳐서 강조하는 드럼 주법이다. 박수를 칠 때 무의식적으로 손뼉을 치게 되는 그 지점이 대개 백비트다.
애드리브
(말뜻) 라틴어 ad libitum에서 온 말로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라는 뜻이다. (팝에서) 정해진 악보나 가사 없이 그 자리에서 즉흥으로 부르거나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학예회에서 대본을 깜빡했을 때 순간적으로 지어내는 말과 비슷하지만, 애드리브는 계획된 즉흥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