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id
'해체라는 단어는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 김조한, 2018년 재결합 기자간담회에서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프로듀서장호일
공일오비의 기타리스트로 1집 「Give Me A Chance」를 프로듀싱했고, 그 인연으로 솔리드는 공일오비 무대와 음반에 참여했다.
- 프로듀서김형석
2집의 공동 프로듀서로 「이 밤의 끝을 잡고」를 정재윤과 함께 써서 솔리드의 첫 밀리언셀러를 이끌었다.
- 멤버정재윤
작곡·편곡·프로듀싱을 맡은 팀의 설계자로, 해체 뒤에는 Jae Chong이라는 이름으로 대만과 미국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 멤버김조한
R&B 창법을 한국 가요의 표준 가운데 하나로 만든 메인 보컬로, 활동 중단 뒤 한국에 남아 솔로 가수와 보컬 지도자로 활동했다.
- 영향박정현
솔리드의 성공 뒤 제작사들이 미국 한인 가수를 찾아 나선 흐름의 사례로 꼽히며, 2011년 「나는 가수다」 시즌 1에 김조한과 함께 출연했다.
I. 오렌지카운티의 세 친구 · 1972–1992
(결성) 1992년 말,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서 한국계 미국인 청년 세 사람이 팀을 꾸렸고, 이듬해 대한민국 서울에서 기획사 IM 커뮤니케이션즈를 통해 데뷔했다. 1972년 1월생 정재윤, 같은 해 3월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이준, 1973년 3월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난 김조한이었다. 셋은 로스앤젤레스 한인 교회를 오가며 어울렸다고 전해진다. 이준과 정재윤은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고 전해진다. (역할) 셋의 역할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리더로 소개되는 정재윤은 작곡·편곡·프로듀싱과 기타, 보조 보컬을 맡았다. 김조한은 메인 보컬이었다. 이준은 저음의 래퍼이자 판을 긁어 소리를 내는 DJ(턴테이블 스크래치)였다. 프로듀서·가수·래퍼가 스스로 모여 만든 3인조라는 점이 솔리드의 특징으로 꼽힌다. (현장) 정재윤은 1990년대 초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미 지역 랩 그룹들의 음반을 만들고 있었다. 셋은 브레이크댄스를 즐기던 친구들이기도 했다. 미국 흑인 음악을 교과서가 아니라 동네와 클럽에서 몸으로 배운 셈이었다. (갈림길) 처음 녹음한 곡은 대만에서 활동하던 미국 교포 그룹 L.A. 보이즈의 매니저 귀에 들어갔다. 대만 기획사는 대만인 멤버 한 명을 더해 대만 그룹으로 데뷔시키려 했다. 그러나 한국 기획사가 먼저 연락해 왔고, 세 사람은 부모의 나라를 택했다. 그해 한국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랩과 댄스로 가요계를 뒤흔들고 있었다. R&B는 아직 낯선 이름이었다.
II. 너무 미국적인 첫 음반 · 1993–1994
(데뷔) 1993년 첫 음반 「Give Me A Chance」가 카세트테이프·CD·LP로 나왔다. 프로듀서는 공일오비의 기타리스트 장호일이었다. 음악 감독은 정재윤이 맡았다. 그는 훗날 이 음반을 돌아보며 꽤 어설펐다고 웃었다. (장르) 타이틀곡 「이젠 나를」은 경쾌하게 튀는 리듬을 R&B에 얹은 뉴 잭 스윙에 힙합 소울을 섞은 곡이었다. 제임스 브라운의 음원 조각(샘플)도 넣었다. 삐삐 호출을 소재로 한 곡, 테크노와 힙합을 섞은 곡, 아카펠라 캐럴까지 담겼다. 1990년대 초 미국 흑인 음악의 흐름을 거의 그대로 옮긴 음반이었다. (외면) 반응은 차가웠다. 당시 국내에서는 너무 미국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멤버들은 학생 신분이라 발매 직후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기획사 사정까지 겹쳐 방송 출연은 한두 번에 그쳤다. 인지도가 없다는 이유로 음반이 레코드점에서 빠지기도 했다. 정재윤의 표현대로 결과는 실패였다. 다만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조용히 입소문이 퍼졌다. (공일오비) 이름을 다시 알린 끈은 장호일이었다. 그 인연으로 김조한은 입으로 드럼 소리를 내는 비트박스로, 이준은 랩으로 공일오비 5집 타이틀곡 「단발머리」에 참여했다. 이 노래가 인기를 얻으면서 솔리드라는 이름도 함께 알려졌다. 가요계 안에서 먼저 인정받은 셈이었다. 셋은 다시 기회를 노렸다.
외면받은 데뷔 음반의 타이틀곡이다. 이 곡이 실린 1집은 2집이 성공한 뒤에야 재발매됐다. 미국에서 몸으로 익힌 흑인 음악을 거의 그대로 옮겨 온 솔리드의 출발점이다.
- 경쾌하게 튀는 드럼 리듬을 R&B에 얹은 장르(뉴 잭 스윙)와 힙합 소울이 뼈대를 이룬다. 1990년대 초 미국 R&B 차트의 소리와 같은 계열이다.
- 제임스 브라운의 음원 조각(샘플)을 따다 쓰고, 랩 목소리를 일부러 일그러뜨렸다. 샘플링이 국내에 막 알려지던 무렵의 시도다.
- 이준의 묵직한 랩과 김조한의 매끄러운 노래가 번갈아 나온다. 리듬과 선율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정재윤의 설계를 들을 수 있다.
- 평론가 한동윤은 2019년 LP 재발매 리뷰에서 이 음반이 25년이 지나도 얄팍하게 들리지 않는다고 평했다.
III. 이 밤의 끝을 잡고 · 1995
(전환) 2집을 준비하며 셋은 방식을 바꿨다.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머물며 작업했고, 당시 가장 주목받던 작곡가 김형석을 공동 프로듀서로 맞았다. R&B 편곡의 뼈대는 지키되 멜로디와 노랫말에는 한국 청중이 익숙한 정서를 들였다. 녹음은 일주일 내내 밤을 새우며 진행됐다고 전해진다. 1995년 3월 「The Magic of 8 Ball」이 나왔다. 8번 당구공을 단 지팡이는 이준의 트레이드마크로 알려져 있다. (역행) 타이틀곡 「이 밤의 끝을 잡고」는 5분에 이르는 R&B 발라드였다. 작사는 김혜선, 작곡은 김형석과 정재윤이 맡았다. 빠른 댄스곡이 여름 가요계를 휩쓸던 때에 느린 노래로 맞섰지만 곡은 차트 정상에 올랐고, 음악 프로그램 1위를 네 차례 차지했다. (백만) 음반은 100만 장 넘게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계는 자료마다 엇갈린다. 이 성공 덕분에 1집이 재발매됐다. 후속곡인 힙합곡 「나만의 친구」도 10위권에 들었다. 이 곡의 무대에서 춤을 춘 백댄서 가운데에는 훗날 NRG로 데뷔하는 천명훈이 있었다. (흐름) 가요톱10 같은 순위 프로그램과 카세트·CD가 수백만 장씩 팔리던 시대였다. 이 음반은 R&B를 한국 가요의 주류 장르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제작사들은 미국에 사는 한인 가수를 찾아 나섰고, 1998년 데뷔한 박정현이 그 흐름의 사례로 자주 꼽힌다. 같은 시기 R.ef가 솔리드를 라이벌로 꼽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작업 근거지를 옮기고 김형석과 손잡은 2집의 타이틀곡이다. 댄스곡 일색이던 여름에 5분짜리 발라드로 정상에 올라 솔리드를 스타로 만들었다.
- 작곡은 김형석과 정재윤, 편곡은 정재윤이 맡았다. 한국 발라드의 선율에 R&B 화성과 리듬을 입힌 결합이 이 곡의 핵심이다.
- 김조한은 한 음절을 여러 음으로 굴려 부르는 창법(멜리스마)과 가성을 오간다. 당시 가요 발라드에서는 드물던 미국식 R&B 보컬이다.
- 곡 사이사이 이준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말하듯 깔리는 내레이션이 흐른다. 노래와 대사가 맞물리는 구성은 지금까지도 이 곡의 상징처럼 회자된다.
- 음악 프로그램 1위를 네 번 차지했다. 발라드도 R&B로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곡으로 꼽힌다.
2집의 후속곡으로 10위권에 올랐다. 발라드로 알려진 그룹이 원래 힙합 크루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곡이다.
- 2집 크레딧에 장르가 힙합으로 적혀 있다. 작곡·편곡은 정재윤, 작사는 이정은이 맡았다. 같은 음반의 발라드 타이틀곡과 정반대 결의 곡이다.
- 통통 튀는 드럼 패턴 위로 이준의 랩과 김조한의 노래가 짧게 주고받으며 흐름을 이어 간다.
- 무대에서 백댄서로 춤을 추던 천명훈은 뒤에 NRG로 데뷔했다. 1990년대 가요계의 인맥을 보여 주는 장면으로 자주 언급된다.
IV. 처음이자 마지막 · 1996
(자립) 1996년 4월 3집 「Light, Camera, Action!」이 나왔다. 이번에는 정재윤이 홀로 프로듀서를 맡아 대부분의 곡을 쓰고 편곡했다. 김조한과 이준도 곡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 작곡가의 손을 빌린 2집과 달리 세 사람이 직접 만든 음반이었다. (정상) 타이틀곡 「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야」는 일렉트릭 기타를 앞세운 R&B였다. 이 곡은 KBS 가요톱10과 MBC 등 여러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올랐다. 3집은 두 번째 밀리언셀러가 됐고, 판매량은 약 150만 장으로 알려져 있다. (역주행) 기획사가 정한 후속곡은 「해피엔딩」이었다. 그런데 4번 트랙 「천생연분」에 대한 반응이 더 뜨거웠다. 후속곡 계획에 없던 노래가 차트를 거슬러 올라 타이틀곡보다 큰 사랑을 받았다. 이 곡은 지금도 솔리드를 대표하는 노래로 남아, 20여 년 뒤 재결합의 계기가 된다. (무대) 그해 7월 첫 단독 콘서트 「Deliverance」를 부산과 서울에서 열었다. 공연 실황은 라이브 앨범으로 나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꼽추」 삽입곡 「Someday」의 한국어판도 불렀다. 1집 때 레코드점에서 밀려났던 그룹이 3년 만에 가장 많이 팔리는 이름이 되어 있었다.
세 사람이 외부 작곡가 없이 직접 만든 3집의 타이틀곡이다. 가요톱10 연속 1위로 2집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 R&B 바탕에 일렉트릭 기타를 앞세웠다. 전작 발라드의 피아노·현악 중심 소리와 결이 다르다.
- 정재윤이 작곡부터 편곡까지 맡아, 가요의 귀에 맞춘 선율과 미국식 리듬 처리를 한 곡 안에 묶었다.
- 김조한의 목소리는 후렴으로 갈수록 높이 뻗는다. 여러 겹으로 쌓은 화음(코러스 더빙)이 그 뒤를 받친다.
- KBS 가요톱10과 MBC 인기가요 베스트50 등 음악 프로그램에서 네 차례 1위에 올랐다.
후속곡 계획에 없던 4번 트랙이 차트를 거슬러 올라 타이틀곡보다 큰 사랑을 받았다. 20여 년 뒤 결혼식 축가로 다시 불리며 재결합의 실마리가 됐다.
- 밝고 경쾌한 템포의 곡이다. 한눈에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의 설렘을 장난스러운 화법으로 그린다.
- 이준의 낮은 랩과 김조한의 높은 노래가 대화처럼 교차한다. 세 멤버의 역할 분담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곡으로 꼽힌다.
- 2018년 재결합 음반에 이 곡의 리믹스 두 버전이 실렸다. 같은 해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2」에서 이 곡으로 100불을 받았다.
- 축가로 널리 쓰이면서 1990년대 가요가 세대를 건너 살아남은 사례가 됐다.
V. 끼리끼리, 그리고 멈춤 · 1997
(변신) 1997년 4월 24일 4집 「Solidate」가 나왔다. 타이틀곡 「끼리끼리」는 저음이 묵직하게 울리는 마이애미 스타일의 힙합 댄스곡이었다. 발라드를 기다리던 대중에게는 낯선 변신이었다. 오히려 발라드 후속곡 「끝이 아니기를」이 고른 사랑을 받았다. (피로) 4년 동안 세 사람은 거의 쉬지 못했다. 정재윤은 그 시절 스케줄이 너무 잦아 휴식이 필요했다고 돌아봤다. 처음부터 각자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고도 했다. 이후 정재윤은 프로듀서로, 이준은 미국에서 사업가로 각자의 길을 갔다고 전해진다. 이준은 대학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멈춤) 1997년 7월 솔리드는 정점에서 활동을 멈췄다. 언론은 해체로 보도했다. 김조한의 기억은 달랐다. 그는 잠시 쉬자는 생각이었고 해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잠깐의 휴식이 21년이 됐다. 솔리드는 네 장의 정규 음반으로 약 400만 장의 판매고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대) 가요계의 공기도 바뀌고 있었다. 1996년 H.O.T.가 데뷔하며 기획사가 멤버를 선발하고 훈련시키는 아이돌 시대가 열렸다. 그해 말에는 외환위기가 닥쳤다. 스스로 곡을 쓰고 만든 교포 3인조의 퇴장은, 1990년대 중반 가요계에 잠시 열렸던 문이 닫히는 장면이기도 했다.
마지막 정규 음반의 타이틀곡이다. 발라드 그룹이라는 틀을 벗으려 한 시도였지만 대중에게는 낯설었다.
- 저음을 길고 무겁게 울리는 마이애미 힙합 계열의 댄스곡이다. 몸을 움직이는 저음(베이스)이 곡을 이끈다.
- 이준의 랩이 전면에 나서, 김조한의 보컬이 중심이던 이전 타이틀곡들과 무게 중심이 다르다.
- 발라드를 기대한 청중에게는 낯선 변신이었다. 오히려 발라드 후속곡 「끝이 아니기를」이 고른 사랑을 받은 대목이 당시 대중의 취향을 보여 준다.
VI. 21년 뒤의 빛 · 1998–2019
(갈래) 셋은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김조한은 한국에 남아 솔로 가수가 됐고, 여러 K팝 가수의 보컬을 지도했다. 2011년에는 MBC 「나는 가수다」 시즌 1에 출연했다. 같은 시즌 출연진에는 박정현, 김범수, 이소라, 윤도현 밴드 같은 이 시리즈의 가수들이 있었다. (대만) 정재윤은 활동 중단 뒤 미국과 대만을 오가며 Jae Chong이라는 이름으로 프로듀서 일을 했다. 코코 리, 스탠리 황, 장혜매(아메이) 등의 음반에 참여했다. 2003년에는 대만 최초의 힙합 기획사로 불리는 MACHI 엔터테인먼트 설립에 함께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는 처음 대만 금곡장(골든 멜로디 어워드) 최우수 프로듀서 후보에 올랐다. 국내에서도 김건모, 신승훈 등의 음반 작업에 이름을 올렸고, 2011년 그룹 AZIATIX를 결성했다. 이준은 서던캘리포니아대(USC)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일궜다. (재회) 재결합은 2009년에도 논의됐지만 일정이 맞지 않았다. 계기는 뜻밖의 자리에서 왔다. 지인의 결혼식에서 셋이 축가로 「천생연분」을 부른 것이다. 2018년 3월 22일 21년 만의 음반 「Into the Light」가 공개됐다. 멤버들은 각자의 집 작업실에서 파일을 주고받으며 곡을 쓰고 편곡했다. 소리는 R&B와 힙합에서 EDM과 퓨처 팝 쪽으로 옮겨 갔다. 추억을 되파는 대신 새 음악에 도전한 것이다. (지금) 5월 서울 블루스퀘어 공연은 5분 만에 매진돼 사흘로 늘었다. 셋은 1년가량 함께 활동한 뒤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2019년에는 1집이 26년 만에 LP로 재발매됐다.
21년 만에 낸 음반의 더블 타이틀곡 가운데 하나다. 세 사람은 각자의 작업실에서 파일을 주고받으며 이 곡을 완성했다.
- R&B·힙합 대신 전자음 중심의 EDM과 퓨처 팝 문법을 택했다. 추억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선택이 소리에서 드러난다.
- 작곡·편곡·프로듀싱을 모두 멤버들이 직접 했다. 정재윤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삶을 향해 달리자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 40대가 된 김조한의 보컬은 1990년대보다 힘을 덜어 낸 대신 결이 깊어졌다.
- 배철수는 이 음반을 두고 추억을 팔러 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음악에 도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덜 알려진 이야기
솔리드는 대만 그룹으로 데뷔할 뻔했다. 처음 녹음한 곡을 대만에서 활동하던 교포 그룹 L.A. 보이즈의 매니저가 들었고, 대만 기획사는 대만인 멤버를 한 명 더해 대만 그룹으로 내보내려 했다. 한국 기획사의 연락이 조금 먼저 닿아 진로가 갈렸다. 국내 기사는 주로 한국 데뷔 이후만 다뤄 이 대목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해체 뒤 정재윤이 대만에서 프로듀서로 자리 잡은 것을 보면, 이 갈림길은 끝내 다른 모양으로 이어진 셈이다. 1집이 실패한 뒤 솔리드를 다시 알린 곡은 다른 팀의 노래였다. 공일오비 5집 타이틀곡 「단발머리」에서 김조한은 비트박스를, 이준은 랩을 맡았다. 객원 참여였기 때문에 솔리드의 경력으로는 잘 꼽히지 않는다. 하지만 장호일이 이어 준 이 인연은 무명의 교포 그룹이 업계 안에서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됐다. 2집을 함께 만든 김형석의 회고에 따르면, 임창정의 「그때 또 다시」는 원래 솔리드를 위해 쓴 곡이었다. 솔리드의 R&B 발라드와 1990년대 중후반 발라드 사이에 같은 작곡가의 손길이 오갔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1집은 오랫동안 2집의 그늘에 가린 음반으로 여겨졌다. 2019년 26년 만에 LP로 재발매되면서 다시 조명받았다. 1993년 국내에서 드물던 테크노와 힙합 하우스의 결합, 삐삐를 소재로 한 곡 같은 시도가 시대를 앞서갔다는 재평가가 나왔다.
용어 노트 📚🔎
알앤비 (R&B)
(말뜻) 리듬 앤드 블루스(Rhythm and Blues)의 줄임말이다. 1940년대 미국 음반 업계가 흑인 대중음악을 묶어 부르던 이름에서 나왔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부드럽게 굴리는 창법, 풍부한 화음, 몸이 저절로 흔들리는 느린 리듬이 특징인 장르를 말한다. 솔리드 이전에도 비슷한 시도는 있었지만, 미국 본토의 소리를 그대로 들여와 주류 장르로 만든 것은 솔리드라는 평가가 많다. 같은 노래도 박자를 살짝 밀고 당기며 부르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원곡보다 느긋하게, 음을 이리저리 굴려 부를 때의 그 느낌이 R&B에 가깝다.
뉴 잭 스윙
(말뜻) 뉴 잭(new jack)은 미국 속어로 새로 등장한 젊은이를 뜻하고, 스윙은 몸을 흔들게 하는 리듬감을 뜻한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R&B 노래에 힙합의 딱딱 끊어지는 드럼 비트를 섞어 만든 장르다. 통통 튀는 박자가 특징이다. 솔리드 1집 타이틀곡 「이젠 나를」이 이 계열이고, 1990년대 초 한국 댄스 가요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줄넘기를 할 때 한 번 뛰고 살짝 한 번 더 튀는 이단 박자를 떠올리면 된다. 뉴 잭 스윙의 드럼은 그렇게 한 박 안에서 깡충 튄다. (다른 데서는) 스윙은 재즈에서는 1930~40년대 빅밴드 음악을, 골프나 야구에서는 채나 방망이를 휘두르는 동작을 뜻한다.
프로듀서
(말뜻) 영어 produce(만들어 내다)에서 나온 말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음반 한 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소리를 낼지 책임지는 사람이다. 곡을 고르거나 쓰고, 편곡과 녹음 방향을 정하고, 가수의 노래를 지도한다. 솔리드에서는 멤버 정재윤이 이 일을 맡았는데, 1990년대 가요계에서 그룹 멤버가 직접 프로듀서를 맡는 일은 드물었다. 학교 연극으로 치면 대본을 고르고 배역을 정하고 무대 연출까지 챙기는 연출 담당 선생님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영화·방송에서는 제작비와 일정, 인력을 총괄하는 제작자를 가리킨다.
아카펠라
(말뜻) 이탈리아어 a cappella는 예배당(cappella) 방식으로라는 뜻이다. 악기 없이 목소리로만 부르던 옛 교회 합창에서 나온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반주 없이 여러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화음과 리듬까지 만들어 부르는 노래다. 솔리드 1집에는 아카펠라 캐럴이, 2집에는 아카펠라 곡 「꿈」이 첫 곡으로 실렸다. 교회 성가대 출신이라는 멤버들의 배경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음악 시간에 반주기 없이 반 친구들이 소프라노·알토로 나눠 화음을 맞춰 본 경험이 있다면, 그게 바로 아카펠라다.
비트박스
(말뜻) 비트(beat, 박자)와 박스(box, 리듬 머신을 부르던 속어)를 합친 말이다. 사람 입이 드럼 머신 노릇을 한다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입술·혀·목으로 북, 심벌, 베이스 소리를 흉내 내 리듬을 만드는 기술이다. 힙합 문화에서 시작됐다. 김조한은 공일오비의 「단발머리」에서 비트박스를 맡았고, 2018년 재결합 공연에는 비트박서 KRNFX가 게스트로 섰다. 쉬는 시간에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던 친구가 있다면, 그 소리를 손 대신 입으로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밀리언셀러
(말뜻) 영어 million(100만)과 seller(팔리는 것)를 합친 말로, 100만 개가 팔린 상품을 뜻한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음반이 100만 장 넘게 팔린 경우를 말한다. 카세트테이프와 CD를 직접 사서 듣던 1990년대에는 인기 가수의 상징 같은 기록이었다. 솔리드는 2집과 3집으로 두 번 연속 이 기록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음악을 주로 스트리밍으로 들어서, 반 친구 대부분이 같은 앨범을 돈 주고 샀던 시절을 떠올리기 어렵다. 그만큼 100만 장은 엄청난 숫자였다. (다른 데서는) 출판에서는 100만 부 넘게 팔린 책을 가리킨다.
역주행
(말뜻) 거스를 역(逆)에 달릴 주(走)·갈 행(行)을 써서, 거꾸로 달린다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발표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거나 홍보 대상이 아니던 곡이 시간이 지나 순위를 거슬러 올라오는 현상이다. 솔리드 3집의 「천생연분」은 후속곡 계획에 없던 수록곡인데 반응이 좋아 「해피엔딩」 대신 활동곡이 됐고, 타이틀곡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았다. 반에서 처음엔 조용하던 친구가 체육대회 날 갑자기 인기 스타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교통에서는 차가 정해진 방향과 반대로 달리는 위험한 행위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