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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han Gwedo

무한궤도 (1988–1989)

1988년 겨울, 신시사이저 넉 대가 울린 팡파르 하나로 한국 대중음악의 두 갈래 물길을 연 대학생 밴드.

한눈에 보기 🔭💭

1. 결성대한민국 서울 결성명문대 동창 밴드건반 두 대 편성2. 고배강변가요제 탈락이상은 「담다디」멜로디언 작곡3. 대상1988 대학가요제「그대에게」 전주신시사이저 넉 대4. 음반정석원 합류1989 유일한 정규작「그대에게」 미수록5. 해체프로와 학업 사이멤버 교체1989년 말 해체6. 두 갈래015B 결성신해철 솔로·넥스트응답하라 1988무한궤도1988–1989대학가요제 대상곡 「그대에게」를 남기고 신해철…
무대의 여정 🧭🗺️
N대한민국서울1988–1989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멤버신해철

    리더이자 보컬·기타로 「그대에게」와 타이틀곡을 쓰고 1집을 프로듀싱했으며, 해체 뒤 솔로와 넥스트로 이어 갔다.

  • 영향이상은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받은 모습이 신해철이 대학가요제용으로 경쾌한 곡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 경쟁주병선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고인돌」로 겨룬 출전자로, 무한궤도는 그를 제치고 대상을 받았다.

  • 멤버정석원

    강변가요제 팀 실험실에서 영입된 건반 연주자로, 해체 뒤 015B를 결성해 이끌었다.

  • 멤버조형곤

    유학 간 양두현을 대신한 베이시스트로, 「소망은 그 어디에」를 쓰고 015B 결성에 참여했다.

YouTube에서 3곡 이어 듣기 ↗

I. 동창들의 밴드 · 1988

(결성) 1988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기획사 없이 대학생들이 모여 결성했다. 중심은 서강대 철학과에 다니던 신해철이었고, 그는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과 함께 지하 무대에서 연주하며 밴드를 꾸렸다. 이름 무한궤도는 끝없이 도는 길이라는 뜻이었다. (구성) 초기 멤버는 리더이자 보컬·기타의 신해철, 베이스 양두현, 신시사이저의 김재홍과 조현문, 드럼의 조현찬이었다. 서울대·연세대·서강대 학생들이었고 전공도 철학, 인류학, 치의예과, 토목공학으로 제각각이었다. 그 뒤 양두현이 유학을 떠나자 연세대 토목공학과의 조형곤이 베이스를 맡았다. (건반) 이 밴드가 남다른 점은 건반의 비중이었다. 기타 중심의 하드록이 대학 밴드의 흔한 모습이던 때에, 신시사이저 연주자 둘을 둔 편성은 처음부터 두꺼운 전자음의 층을 겨냥하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은 디지털 신시사이저와 드럼머신이 값이 내려 아마추어 손에도 들어오기 시작한 때였고, 무한궤도는 그 변화를 가장 빨리 받아들인 대학 밴드 가운데 하나였다. (아버지) 신해철 개인에게 음악은 집안의 허락을 받은 길이 아니었다. 부친이 음악을 반대해 그가 몰래 곡을 쓰고 출전을 준비했다고 전해진다. 다른 멤버들에게 밴드는 학업과 함께하는 대학 시절의 일이었다. 출발부터 있던 이 온도 차이는 훗날 밴드의 운명을 가르게 된다.

II. 강변의 고배 · 1988

(가요제) 1980년대에 기획사도 연줄도 없는 젊은이가 방송에 닿는 가장 확실한 길은 가요제였다. MBC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는 TV로 생중계되었고, 입상하면 곧바로 음반 계약과 방송 출연으로 이어졌다. 컬러TV가 집집마다 보급된 뒤라 가요제 결선 무대는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연례 행사였다. (아기천사) 1988년 8월, 신해철은 먼저 강변가요제에 나갔다. 무한궤도가 아니라, 고교 시절 밴드 동료들이 만든 아기천사의 객원 가수 자격이었다. 록 발라드를 불렀지만 결선 직전의 본선 3차에서 떨어졌다. 이때 부른 노래 가운데 하나인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는 훗날 그의 솔로 데뷔 음반에 실려 다시 빛을 본다. (담다디) 그해 강변가요제 대상은 이상은의 「담다디」였다. 경쾌하고 흥겨운 곡이 심사위원과 관객을 함께 사로잡는 장면을 신해철은 객석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그는 이 실패를 거울삼아, 차분한 록 발라드 대신 처음부터 귀를 붙잡는 곡으로 대학가요제에 나가기로 했다고 알려져 있다. (멜로디언) 그렇게 쓴 곡이 「그대에게」다. 집안의 반대 때문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문방구에서 산 멜로디언을 불며 가락을 만들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작사·작곡·편곡 모두 신해철이었다. 멤버들 사이에서 출전을 두고 의견이 오갔지만 결국 대학가요제에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III. 마지막 순서 · 1988

(잠실) 1988년 12월 24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MBC 대학가요제 결선이 열렸다. 서울올림픽을 치른 지 석 달 남짓 지난 때로, 올림픽 시설에서 열린 가요제는 그해의 들뜬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무한궤도는 열여섯 팀 가운데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올랐다. (디스켓) 무대 직전에 사고가 날 뻔했다. 신시사이저에 연주 정보를 불러오는 디스켓이 읽히지 않았고, 신해철이 성호를 긋고 다시 꽂자 비로소 읽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당시 신시사이저는 소리 설정을 플로피 디스크에 담아 옮겼는데, 이 원판 하나에 곡의 전주가 걸려 있었던 셈이다. (팡파르) 신시사이저 넉 대가 겹쳐 울리는 웅장한 전주가 시작되자 객석의 공기가 바뀌었다. 포크와 발라드가 주를 이루던 다른 출전곡들 사이에서, 프로그레시브 록의 장엄함과 응원가 같은 빠른 템포를 섞고 끝에서 발라드로 내려앉는 구성은 이질적일 만큼 새로웠다. 심사위원이던 조용필이 전주만 듣고 대상감이라고 느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대상) 결과는 대상이었다. 주병선의 「고인돌」 등 쟁쟁한 곡들을 제쳤고, 시상 무렵에는 관객들이 무한궤도의 참가 번호를 외쳤다고 한다. 실황은 그해 대학가요제 음반 A면 첫 곡으로 실렸다. 이 무대가 무한궤도의 공식 데뷔가 되었다.

♪그대에게1988무대 무한궤도 · 1988 MBC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탈락을 거울삼아 처음부터 귀를 붙잡도록 설계한 곡으로,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으며 밴드의 데뷔곡이 되었다.

  • 전주는 신시사이저 넉 대를 겹쳐 쌓은 팡파르다. 프로그레시브 록(긴 구성과 장엄한 건반을 즐겨 쓰는 록의 갈래)식 웅장함이 몇 초 만에 무대를 압도하며, 지금도 이 전주가 곡의 상징으로 꼽힌다.
  • 몸통은 응원가처럼 빠르고 힘찬 박자로 달린다. 드럼이 한 박 한 박 강하게 밀어붙여 관객이 저절로 손뼉을 치게 되는 지점이 많다.
  • 끝에서 템포가 갑자기 느려지며 발라드로 내려앉는다. 질주하던 곡이 고백처럼 마무리되는 이 반전이 곡을 축제 음악 이상의 것으로 만든다.
  • 대학가요제 실황판은 이후 신해철 솔로 2집에 실린 판보다 조(곡의 기준 음높이)가 한 단계 높다. 스무 살 목소리의 팽팽한 고음을 들을 수 있는 판이다.
  • 1980년대 후반 디지털 신시사이저의 밝고 단단한 음색이 그대로 담겨 있어, 그 시대의 전자음이 어떤 질감이었는지 들려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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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여섯 사람의 음반 · 1989

(영입) 대상 이후 음반 제작이 시작되자 신해철은 건반을 하나 더 보강했다. 1988년 강변가요제에 실험실이라는 팀으로 나왔던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의 정석원을 눈여겨보았다가 합류를 권한 것이다. 무한궤도는 6인조가 되었다. (녹음) 1989년 3월부터 5월까지 서울스튜디오에서 녹음했고, 같은 해 6월 지구레코드를 통해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냈다. 열 곡, 44분 남짓이었다. 리드 보컬과 리드 기타, 프로듀싱은 신해철이 맡았고 편곡은 밴드 전체의 이름으로 올렸다. LP와 카세트테이프가 함께 팔리던 시절의 음반이었다. (분담) 크레딧을 보면 이 음반은 한 사람의 독주가 아니었다. 「여름이야기」에는 김재홍, 「비를 맞은 천사처럼」에는 조현찬, 「끝을 향하여」에는 조현문의 이름이 신해철과 나란히 올랐다. 「소망은 그 어디에」는 조형곤, 「어둠이 찾아오면」은 정석원, 연주곡 「움직임」은 조현문의 곡이었다. 각자의 전공만큼이나 다른 감각이 한 장에 모였다. (질문) 신해철의 곡들은 스물한 살의 나이에 삶의 끝과 의미를 묻는 쪽으로 기울었다. 철학과 학생의 관심사가 사랑 노래의 틀 안으로 들어온 셈이고, 시적이고 사색적인 노랫말은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타이틀곡은 라디오를 타고 크게 알려졌다. 「끝을 향하여」에는 부활의 김태원이 리드 기타 세션으로 참여했다. (부재) 정작 「그대에게」는 음반에 없었다. 대학가요제 실황 음원의 권리를 MBC가 가지고 있었고 소속사도 재녹음에 반대해 싣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밴드를 세상에 알린 곡이 밴드의 유일한 음반에서 빠진 것이다.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1989무대 N.EX.T(신해철) · KBS 더뮤지션 메들리

신해철이 쓴 1집 타이틀곡으로, 스물한 살의 철학도가 삶의 끝을 떠올리며 지금의 의미를 묻는 노래다.

  • 화자는 연인에게 말을 거는 듯하지만, 노래가 실제로 붙잡는 것은 삶이 끝나는 순간에 무엇이 남는가라는 물음이다. 사랑 노래의 틀 안에 사색을 담은 화법이 이 곡의 개성이다.
  • 건반이 넓게 깔린 위로 보컬이 차분하게 시작해 후렴에서 감정을 열어 올린다. 두 대, 이후 세 대로 늘어난 건반 편성의 두꺼운 소리가 배경을 이룬다.
  • 1980년대 말 록 발라드의 전형적인 짜임(조용한 절에서 시작해 힘 있는 후렴으로 터지는 구성)을 따르면서도, 노랫말의 무게 덕분에 동시대 발라드와 결이 다르게 들린다.
  • 신해철은 2006년 넥스트 5.5집 「ReGame?」에서 이 곡을 다시 녹음했다. 원곡과 비교하면 한 사람이 같은 질문을 스무 해 가까이 품고 있었음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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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야기1989노래 무한궤도 · 1989 1집 음원

건반의 김재홍이 신해철과 함께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곡으로, 이 음반이 리더 한 사람의 작품만은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 제목처럼 계절의 정서를 담은 곡으로, 무거운 질문이 많은 음반 안에서 비교적 가볍고 밝은 결을 맡는다.
  • 작곡에 참여한 김재홍이 건반 연주자라서인지, 선율이 건반 위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짜인 것처럼 들린다.
  • 이 곡은 무한궤도 1집 수록곡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기억되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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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은 그 어디에1989

베이시스트 조형곤의 곡으로, 훗날 015B를 이끌 멤버의 작곡 감각을 처음 엿볼 수 있는 기록이다.

  • 어린이 합창이 들어간다. 음반 감사의 글에 남성교회 어린이 성가대가 올라 있어, 교회 성가대의 맑은 목소리가 록 밴드의 소리와 겹친다.
  • 어른 보컬과 아이들의 목소리가 맞물리면서 바람과 기도에 가까운 정서가 생긴다. 노래의 화법이 개인의 고백보다 함께 비는 쪽으로 넓어지는 순간이다.
  • 015B가 훗날 보여 준 담백한 선율 감각의 출발점을 여기서 찾는 이들도 있다. 다만 그런 연결은 듣는 이의 해석에 가깝다.
♪끝을 향하여1989

신해철과 조현문이 함께 만든 세 부분짜리 대곡으로, 부활의 김태원이 리드 기타 세션으로 참여했다.

  • 세 부분으로 나뉜 프로그레시브 록 구성이다. 한 곡 안에서 분위기와 박자가 몇 번씩 바뀌어, 3~4분짜리 가요의 틀을 넘어서려는 야심이 드러난다.
  • 부활의 김태원이 리드 기타를 맡았다. 당시 이미 이름난 록 기타리스트의 연주가 대학생 밴드의 음반에 들어간 것 자체가 이 음반이 받던 기대를 보여 준다.
  • 건반 연주자 조현문이 작곡에 참여한 만큼, 신시사이저가 반주를 넘어 곡의 뼈대를 끌고 가는 대목이 많다.
  • 훗날 넥스트에서 신해철이 펼친 긴 구성의 록 음악을 떠올리면, 그 씨앗이 이미 이 곡에 있었던 것처럼 들린다.
♪거리에 서면1989

신해철과 정석원이 함께 이름을 올린 곡으로, 막 합류한 정석원과 리더의 첫 협업이자 이후 두 사람이 이어 간 작업의 출발점이다.

  • 도시의 거리를 배경으로 한 사람의 정서를 따라가는 곡으로, 1980년대 말 서울 젊은이의 고독을 그린 노래로 읽힌다.
  • 정석원의 건반은 화려한 연주보다 분위기를 만드는 쪽에 가깝다. 이 절제된 감각은 훗날 015B의 도시적인 사운드로 이어진다.
  • 신해철과 정석원은 무한궤도 이후에도 서로의 음반에 참여했다. 이 곡은 그 관계가 처음 기록된 자리다.

V. 갈림길 · 1989

(온도) 음반이 나온 뒤 밴드 안의 온도 차이가 드러났다. 신해철은 음악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를 원했다. 다른 멤버들은 무한궤도를 대학 시절에 해 볼 수 있는 값진 경험으로 여겼다. 의대·법조·공학으로 이어지는 진로가 눈앞에 있던 이들에게 전업 음악인의 길은 선뜻 고를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 (탈퇴) 결국 조현문, 김재홍, 조현찬, 조형곤이 학업을 이유로 밴드를 떠났다. 누가 옳고 그르다기보다, 같은 무대에 섰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인생을 고른 것이었다. 1989년은 대학가에 학생운동의 열기가 여전하던 해였고, 대학생 밴드의 앞날은 어느 쪽으로든 열려 있었다. (재편) 빈자리는 새 얼굴로 채워졌다. 드럼에 이동규, 기타에 장호일, 베이스에 김재성이 합류했고, 정석원이 건반을 지켰다. 장호일의 본명은 정기원으로, 정석원의 형이다. 이 라인업으로 몇 달간 무대에 섰지만 처음의 동력을 되살리기는 어려웠다. (해체) 무한궤도는 1989년 말, 대학가요제 대상으로부터 꼭 1년 남짓 지난 무렵 해체 공연을 끝으로 활동을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정규 음반 한 장과 대상곡 하나가 남았다.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여기 모였던 사람들이 이듬해부터 한국 대중음악의 두 줄기를 새로 만들어 낸다.

VI. 두 갈래의 궤도 · 1990–2026

(015B) 정석원, 조형곤, 장호일 등이 015B를 결성해 1990년 1집을 냈고, 조현찬도 이후 음반에 참여했다. 0은 없을 무(無), 1은 한, 5B는 궤도(Orbit)를 뜻한다는 해석이 퍼졌을 만큼, 이름부터 무한궤도의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015B는 고정 보컬 없이 객원 가수를 세우는 방식을 택했고, 1집의 「텅 빈 거리에서」에서는 윤종신이 노래했다. 신해철도 015B의 첫 두 음반에서 객원으로 노래했다. 갈라선 뒤에도 서로의 음반에 손을 보탠 것이다. (솔로) 신해철은 1990년 솔로로 데뷔했다. 강변가요제에서 불렀던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가 이 음반에 실려 사랑받았고, 1991년 솔로 2집 「Myself」에는 「그대에게」를 새로 편곡해 실었다. 대중이 가장 많이 들어 온 「그대에게」가 이 판이다. 1992년에는 이동규 등과 넥스트를 결성해 록 밴드의 길로 돌아갔고, 2006년 넥스트의 5.5집 「ReGame?」에서 「그대에게」와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다시 녹음했다. (작별) 2014년 10월 27일 신해철이 수술 후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고, 2020년 7월 25일에는 베이시스트 조형곤이 52세로 별세했다. 다른 멤버 상당수는 음악을 떠나 법조계, 치의학, 금융계에서 각자의 길을 걸었다. (응원가) 「그대에게」는 밴드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대학 축제와 프로야구 응원석의 단골 곡이 되었고,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오프닝 곡으로 쓰이며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세대에게도 1988년의 소리로 각인되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MBC 가요대제전의 마지막 곡으로 울렸다. 대학가요제라는 무대가 사라진 뒤에도 그 무대의 가장 유명한 전주는 여전히 축제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덜 알려진 이야기

(부재) 무한궤도를 대표하는 「그대에게」는 정작 무한궤도의 유일한 정규 음반에 없다. 대학가요제 실황 음원의 배포 권한은 MBC에 있었고, 소속사도 다시 녹음하는 데 반대해 1집에 싣지 못했다. 그래서 대중이 가장 많이 들어 온 「그대에게」는 무한궤도의 녹음이 아니라 1991년 신해철 솔로 2집 「Myself」의 편곡판이다. 1988년 실황판은 그보다 조가 한 단계 높다. 대표곡을 떠올릴 때 어떤 판인지 따지는 일이 드물어 이 차이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디스켓) 대학가요제 결선 직전 신시사이저 디스켓이 읽히지 않아 무대가 무산될 뻔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당시 신시사이저는 음색과 설정을 플로피 디스크에 담아 불러왔기 때문에, 디스크 하나가 말을 듣지 않으면 그 유명한 전주도 없었다. 1980년대 후반 디지털 악기가 무대에 들어오던 과도기의 아슬아슬함이 담긴 장면이다. (암호) 015B라는 이름에는 공(0)은 없을 무(無), 일(1)은 한, 5B는 궤도(Orbit)라는 무한궤도 암호설이 따라다닌다. 015B 측은 시기마다 설명을 달리했고, 조형곤의 PC통신 아이디가 01orbit였던 점에서 그가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하나의 정답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두 팀의 뿌리를 잘 보여 준다.

용어 노트 📚🔎

대학가요제

(한국 대중음악에서) MBC가 1977년부터 열어 온 대학생 대상 가요 경연이다. 대학생이 직접 만든 노래로 겨뤄 TV로 생중계되었고, 입상하면 곧바로 음반을 내고 방송에 나갈 길이 열렸다. 기획사와 연습생 제도가 자리 잡기 전, 실력 있는 아마추어가 프로가 되는 가장 큰 문이었다. 학교 장기자랑에서 1등을 하면 다음 날 전교에 이름이 알려지는 것처럼, 대상 한 번으로 전국에 이름이 퍼졌다.

강변가요제

(말뜻) 경기도 청평의 강가에서 처음 열려 강변(江邊), 곧 강가의 가요제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MBC가 1979년부터 열던 또 하나의 가요 경연으로, 대학가요제와 달리 대학생이 아니어도 나갈 수 있었다. 1988년 이상은이 「담다디」로 대상을 받은 무대이고, 같은 해 신해철은 여기서 떨어진 뒤 전략을 바꿔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한 대회에서 떨어진 운동선수가 상대 팀 경기 영상을 보고 작전을 새로 짜서 다음 대회에서 이기는 것과 닮았다.

신시사이저

(말뜻) 영어 synthesize(합성하다)에서 온 말로, 소리를 전자적으로 합성해 만드는 악기라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건반처럼 생겼지만, 피아노 소리만이 아니라 현악기, 관악기, 우주선 같은 효과음까지 전기 신호로 만들어 내는 악기다. 1980년대 후반에 값이 내려 대학생 밴드도 쓸 수 있게 되었고,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는 이 악기 넉 대로 전주를 쌓았다. 그림판에서 색을 섞어 세상에 없는 새 색을 만들듯, 신시사이저는 소리를 섞어 새 소리를 만든다. (다른 데서는) 화학이나 생물학에서는 여러 물질을 합성하는 장치나 과정을 가리킬 때도 이 말을 쓴다.

프로그레시브 록

(말뜻)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는 앞으로 나아가는, 진보적인이라는 뜻이다. 록의 틀을 넓혀 나가겠다는 뜻이 이름에 담겨 있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1970년대 영국에서 꽃핀 록의 한 갈래로, 곡이 길고 여러 부분으로 나뉘며, 클래식처럼 장엄한 건반과 자주 바뀌는 박자를 즐겨 쓴다.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전주와 「끝을 향하여」의 세 부분 구성에 이 영향이 뚜렷하다. 여러 장으로 된 연극에서 장마다 무대 배경이 바뀌듯, 한 곡 안에서 장면이 여러 번 바뀐다.

세션

(말뜻) 영어 session은 모여서 무언가를 하는 한 차례의 시간이라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밴드의 정식 멤버가 아닌 연주자가 녹음이나 공연에 잠시 참여해 연주하는 일, 또는 그 연주자를 말한다. 무한궤도 1집의 「끝을 향하여」에서 부활의 김태원이 리드 기타 세션을 맡았다. 학교 축구부 경기에 다른 반 친구가 그날만 골키퍼로 뛰어 주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컴퓨터에서는 로그인부터 로그아웃까지 한 번의 접속 기간을, 회의에서는 한 차례의 모임을 세션이라고 부른다.

객원 가수

(말뜻) 객원(客員)은 손님(客)으로 참여하는 구성원(員)이라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팀의 정식 멤버가 아니면서 특정 무대나 곡에서 노래를 맡는 가수다. 신해철은 1988년 강변가요제에 아기천사의 객원 가수로 나갔고, 015B는 아예 고정 보컬 없이 곡마다 객원 가수를 세우는 방식으로 활동했다. 그 덕분에 윤종신과 신해철이 015B 음반에서 노래했다. 학급 연극에서 주인공 역만 다른 반 친구에게 부탁하는 것과 비슷하다.

리메이크

(말뜻) 영어 remake는 다시(re) 만든다(make)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이미 발표된 곡을 새로 편곡하고 녹음해 다시 내는 일이다. 원곡자가 스스로 할 수도 있고 다른 가수가 할 수도 있다. 신해철은 「그대에게」를 솔로 2집과 넥스트 음반에서 여러 차례 리메이크했다. 예전에 그린 그림을 다시 보며 같은 장면을 새 물감으로 다시 그리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영화에서는 옛 영화를 새 배우와 새 기술로 다시 찍는 것을 리메이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