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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ra

이소라 (1995–)

자기 이야기가 아니면 사랑 노래가 잘 불러지지 않는다고 말해 온 가수. 겪은 사랑과 이별이 곧 앨범이 되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대한민국 1969년 출생서울 서대문 성장산업디자인 전공2. 시작낯선 사람들 고찬용김현철과 그대 안의 블루1집 난 행복해3. 방송이소라의 프로포즈라이브 중시2집 청혼4. 실험3집 록으로의 전환6집 눈썹달 명반7집 무제 앨범5. 재발견나는 가수다바람이 분다 역주행김범수 조인트 공연6. 지금슈가와 신청곡7년 만의 신곡최정훈 작곡이소라1995–낮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사랑과 상실을 기록해 …
무대의 여정 🧭🗺️
N대한민국서울1970년대–현재인천1980년대 말–1990년대 초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스승고찬용

    아카펠라 재즈 그룹 낯선 사람들을 이끌며 이소라를 무대로 불러낸 첫 음악적 길잡이다.

  • 스승조규찬

    2집과 3집의 록 곡들을 함께 만든 음악적 동료로 알려져 있다.

  • 프로듀서김현철

    「그대 안의 블루」를 함께 불렀고 1집과 4집을 프로듀스하며 낮고 섬세한 이소라 발라드의 틀을 잡았다.

  • 후원박해선

    KBS PD로서 그에게 진행을 권해 「이소라의 프로포즈」라는 라이브 음악 무대를 열게 했다.

  • 우정김범수

    2011년 「나는 가수다」에서 함께 경연했고, 그해 연말 잠실에서 조인트 콘서트를 열었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서대문의 맏딸 · 1969–1993

(출생) 1969년 12월, 대한민국 경상남도 충무(오늘날 통영)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부산을 출생지로 적은 자료도 있어 기록이 엇갈린다. 자란 곳은 서울 서대문구였다. 부모와 여동생 둘이 있는 집의 맏딸이었고, 명지초등학교와 서울문영여자중학교, 동명여자고등학교를 다녔다. 가족에 대해 따로 공개된 이야기는 많지 않다. (디자인) 대학에서는 음악이 아니라 인천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다녔다. 전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채 노래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그가 기교보다 말하듯 노래하는 감정의 결로 평가받게 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낯선사람들) 무대로 이끈 사람은 고찬용이었다. 그가 이끌던 아카펠라 재즈 보컬 그룹 낯선 사람들에 들어가 여러 목소리가 화음을 쌓는 음악을 익혔고, 1993년 그룹의 음반으로 가요계에 정식으로 나왔다. 고찬용과 조규찬은 이소라의 음악에 큰 영향을 준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블루)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진 것은 그보다 앞선 1992년이었다. 김현철이 쓴 영화 「그대 안의 블루」의 주제가를 그와 함께 듀엣으로 불렀고, 이 노래가 인기를 얻었다. 재즈의 화성과 도시적인 정서를 가요에 들여오던 1990년대 초의 새 흐름 속에서, 낮고 촉촉한 그의 음색은 그룹의 한 목소리를 넘어 솔로 가수로 설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대 안의 블루1992노래 이소라·성시경 · 2026 KBS 더 시즌즈

김현철과 함께 부른 영화 주제가다. 재즈 그룹의 한 목소리였던 이소라가 대중에게 처음 이름을 알린 곡이다.

  • 남녀 두 목소리가 한 구절씩 주고받다가 겹치는 짜임(듀엣)이다. 김현철의 담백한 음색과 이소라의 낮고 촉촉한 음색이 서로를 돋보이게 한다.
  • 재즈에서 빌려 온 조금 복잡하고 색이 짙은 화음(텐션 코드)이 깔려 있다. 1990년대 초 도시적인 가요가 어떤 소리였는지 들을 수 있다.
  • 크게 내지르는 순간이 없다. 숨을 섞은 듯한 낮은 발성으로 끝까지 가는데, 훗날 이소라 발라드의 원형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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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낮은 목소리 · 1994–1996

(솔로) 1995년 9월, 동아기획에서 첫 솔로 앨범 「이소라 Vol. 1」을 냈다. 스물다섯 살이었다. 프로듀서는 「그대 안의 블루」를 함께 부른 김현철이었다. 김현철은 힘껏 질러 내는 대신 낮고 섬세한 음역에 머무르도록 그를 이끌었고, 이 방향이 이후 이소라 발라드의 기본 문법이 되었다. (행복) 타이틀곡은 「난 행복해」였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더 사랑받은 곡은 같은 앨범의 「처음 느낌 그대로」였다. 다섯 곡의 가사를 직접 썼고, 앨범은 90만 장 안팎이 팔린 것으로 전해진다. CD와 카세트테이프가 함께 팔리고 밀리언셀러가 드물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 시장에서 화려한 댄스곡이 아니라 조용한 발라드가 거둔 성과였다. (프로듀싱) 1996년 12월에 낸 2집 「영화에서처럼」부터는 직접 프로듀서를 맡았다. 대부분의 가사를 직접 썼다. 곡을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작곡가와 편곡자에게 원하는 분위기를 구체적으로 주문하며 음반 전체의 색을 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방식은 이후 거의 모든 앨범에서 이어진다. (청혼) 2집에서는 「기억해 줘」와 함께 「청혼」이 오래 사랑받았다. 한편으로는 조규찬과 함께 거친 얼터너티브 록인 「화」를 실었고, 기타 한 대에 기댄 재즈 보컬 곡 「사랑」도 넣었다. 발라드 가수라는 틀 안에 머물지 않겠다는 태도가 이미 이때 드러났다. 앨범은 60만 장 안팎이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 행복해1995무대 이소라 · 1995 KBS 가요톱10

김현철이 프로듀스한 솔로 1집의 타이틀곡이다. 낮은 음역에 머무르라는 그의 주문이 그대로 소리가 되었다.

  • 음역을 일부러 낮게 잡았다. 고음으로 터뜨리기보다 말하듯 속삭이는 전달이 곡의 중심이다.
  • 제목과 달리 노래 전체에 쓸쓸한 기운이 흐른다. 괜찮다고 말하는 화법 뒤에 감춘 상실로 읽는 사람이 많다.
  • CD와 카세트가 함께 팔리던 시절, 화려한 댄스곡들 사이에서 조용한 발라드로 큰 판매를 거둔 앨범의 문을 연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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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1996노래 이소라 · 2026 KBS 더 시즌즈

직접 프로듀싱한 2집 「영화에서처럼」의 대표곡이다. 같은 해 가을 시작한 「이소라의 프로포즈」와 함께 그의 이름표처럼 남았다.

  • 사랑하는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을 건네는 일인칭 화법이다. 들뜬 고백보다 다짐에 가까운 차분한 정서로 들린다.
  • 반주가 소박하게 물러나 있어 목소리의 결, 곧 숨과 떨림이 앞으로 나온다.
  • 같은 앨범의 거친 록 곡 「화」와 나란히 놓고 들으면, 한 앨범 안에서 극과 극을 오가던 2집의 폭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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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프로포즈 · 1996–2000

(심야) 1996년 10월, KBS 2TV에서 「이소라의 프로포즈」가 시작됐다. 박해선 PD가 진행을 권했다고 하며, 2집의 「청혼」이 프로그램 이름과 이어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늦은 밤 가수들이 라이브로 노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무대였다. 순위 경쟁과 댄스 그룹이 주도하던 1990년대 후반 방송 환경에서, 실력 있는 가수들이 제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리가 되었다. 프로그램은 2002년 3월까지 이어졌다. (라이브) 진행자로서 그는 녹음된 노래에 입만 맞추는 무대를 반기지 않고 라이브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직접 노래하는 사람이 대접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그가 고른 출연진과 그 자신의 무대에 똑같이 담겨 있었다. (분노) 1998년 5월에 낸 3집 「슬픔과 분노에 관한」은 그런 고집이 가장 날카롭게 드러난 앨범이다. 외환위기의 그늘이 짙던 해였다. 앨범 후반부는 거의 록 음반이었다. 부활의 김태원이 「Curse」를, 시나위의 신대철이 「Praise」를, 조규만이 「피해의식」을 썼다. 타이틀곡은 「믿음」이었지만 대중적으로는 앞선 두 앨범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그가 록에 얼마나 진지했는지를 보여 준 앨범으로 남았다. (꽃) 2000년 12월에는 김현철과 다시 손잡고 신나라뮤직에서 4집 「꽃」을 냈다. 「제발」, 「Amen」 같은 곡이 실렸고, 27만 장 넘게 팔리며 차트 4위에 올라 대중적 인기를 되찾았다. 이듬해에는 라이브 앨범도 냈다.

♪슬픔과 분노에 관한1998

외환위기의 해에 낸 3집이다. 발라드 가수라는 기대를 깨고 록 기타를 정면으로 끌어들였다.

  • 앨범 제목 그대로 슬픔의 곡들과 분노의 곡들이 나뉘어 이어진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들어야 흐름이 보인다.
  • 부활 김태원이 쓴 「Curse」는 전기 기타를 바탕에 둔 서정적인 록 발라드다. 시나위 신대철이 쓴 「Praise」와 함께 한국 록 기타리스트들이 참여한 곡이다.
  • 조규만이 쓴 「피해의식」에서는 일정하게 밀고 가는 드럼 위로, 목을 긁듯 거칠게 내는 소리(그로울링)가 나온다. 1집의 속삭임과는 정반대의 이소라다.
  • 일그러뜨린 기타 소리(디스토션)가 무겁게 깔린 「나의 일」과 「너의 일」은 조규찬과 함께 만든 곡이다.

IV. 눈썹달 · 2001–2009

(일기) 2002년 10월에 낸 5집은 일기를 쓰듯 짜인 앨범이었다.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가 타이틀곡 「안녕」을 썼다. 평가는 갈렸지만 이 앨범을 가장 아끼는 팬도 적지 않다. 이 무렵 음반 시장은 MP3와 무료 음원 사이트에 밀려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눈썹달) 2004년 12월, 세이렌에서 6집 「눈썹달」이 나왔다. 판매량은 6만여 장으로 예전에 크게 못 미쳤고 방송 활동도 거의 없었다. 대신 평론가들의 평가가 높았다. 러브홀릭의 강현민이 쓰고 편곡한 「Tears」는 록을 감정의 분출구로 썼고, 「Fortune Teller」, 「세이렌」, 「듄」 같은 실험적인 곡도 실렸다. 이 앨범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을 받았고, 훗날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도 이름을 올렸다. (바람) 타이틀곡은 「이제 그만」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이 앨범의 얼굴이 된 곡은 「바람이 분다」였다. 가사는 이소라가 썼다. 2026년 그는 방송에서 이 노래에 실제 이별의 기억이 담겨 있다고 직접 밝혔다. (무제) 2008년 12월에 낸 7집에는 앨범 제목도 곡 제목도 없었다. 트랙 번호만 붙였다. 듣는 사람마다 자기만의 노래로 이름 붙여 주기를 바랐다고 한다. 어쿠스틱 기타 중심의 성긴 소리로 짜였고, 머리를 민 모습으로 나온 뮤직비디오도 화제가 됐다. 이 앨범은 제7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팝 음반상을, 수록곡 「Track 8」은 최우수 팝 노래상을 받았다.

♪바람이 분다2004노래 이소라 · JTBC 비긴어게인 코리아

6집 「눈썹달」에 실린 곡으로, 실제 이별의 기억이 담겼다고 그가 직접 밝혔다. 7년 뒤 「나는 가수다」 첫 무대에서 다시 불려 대표곡이 되었다.

  • 3분 40초 남짓한 짧은 곡 안에서 감정이 서서히 차오른다.
  • 같은 사랑을 지나왔어도 두 사람의 기억은 다르게 남는다는 쓸쓸한 깨달음이 주제다. 상대를 탓하지 않고 홀로 되뇌는 화법이다.
  • 목소리가 끝까지 크게 터지지 않고 떨림을 남긴 채 머문다. 절제가 감정을 더 키운다는 이소라 창법의 표본으로 자주 꼽힌다.
  • 2011년 「나는 가수다」 첫 회 무대가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방송 뒤 음원 차트에 다시 오르며 7년 전 수록곡이 대표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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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 9 (Track 9)2008무대 이소라 · 비긴어게인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곡 제목 없이 번호만 붙인 7집의 아홉 번째 곡이다. 마이 앤트 메리의 정순용이 곡을 쓰고 이소라가 가사를 붙였다.

  • 어쿠스틱 기타로 열고 모던 록의 질감을 얹었지만, 뼈대는 익숙한 팝 발라드의 짜임이다.
  • 사랑 노래가 아니라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자기 자신에게 묻고 답하는 독백으로 읽힌다. 이소라의 곡 가운데서도 결이 다른 노래로 꼽힌다.
  • 제목을 비워 둔 앨범의 뜻에 따라 팬들은 이 곡을 번호로 부른다. 그렇게 부르는 일 자체가 이 노래를 기억하는 방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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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경연의 무대 · 2010–2014

(커버) 2010년 10월, 오래 아껴 온 외국 팝을 다시 부른 앨범 「My One And Only Love」를 냈다. 정규 번호를 붙이지 않은 앨범으로, 재즈 그룹에서 시작한 그의 뿌리를 다시 보여 주었다. (나가수) 2011년 3월, MBC 「우리들의 일밤 -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에 처음부터 참여했다. 김건모, 백지영, 김범수, 박정현, 윤도현, 정엽과 함께였다. 경력이 긴 가수들이 청중평가단 앞에서 순위를 다툰다는 형식은 그 자체로 논쟁을 불렀다. 첫 무대에서 그는 7년 전 앨범의 수록곡이던 「바람이 분다」를 불렀다. 방송 직후 이 노래는 음원 차트로 옮겨 가 뒤늦게 대표곡이 되었다. 음반보다 음원과 방송 클립이 노래를 퍼뜨리는 시대였다. (동료) 경연은 청중평가단 투표로 탈락자를 가리는 구조였고, 그 역시 몇 달 뒤 경연을 떠났다. 함께 경쟁하던 김범수와는 그해 12월 22일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조인트 콘서트를 열었다. 같은 무대에 섰던 박정현과 함께, 1990년대 말부터 라이브로 이름을 쌓아 온 보컬리스트들이 다시 주목받은 해였다. (재회) 2011년 4월부터 이듬해까지는 KBS joy에서 「이소라의 두 번째 프로포즈」가 방송되어 진행석에 돌아왔다. 2011년에 나온다던 8집은 몇 차례 미뤄졌고, 수록곡의 악보를 먼저 공개하는 특이한 방식으로 기다림을 달랬다. (록) 2014년 4월에 나온 8집 「8」은 처음부터 끝까지 얼터너티브 록이었다. 「난 별」을 앞세운 이 앨범에 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그래도 차트 2위에 오르며 그가 3집 이후 줄곧 놓지 않던 록의 길을 다시 확인시켰다.

VI. 다시, 노래 · 2015–2026

(그녀풍의) 9집 「그녀풍의」를 준비하며 김동률이 작사·작곡·편곡한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를 먼저 공개했다. 하지만 정규 9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2018년에는 로이킴이 참여한 싱글 「October Lover」를 냈다. (신청곡) 2019년 1월 22일에는 싱글 「신청곡」을 냈다. 방탄소년단의 슈가가 피처링했고, 에픽하이의 타블로가 곡을 만들었다. 1990년대의 발라드 가수와 세계 무대의 아이돌 래퍼가 한 곡에 담긴 이 만남은 세대를 잇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졌다. 빌보드 집계로 미국에서도 판매가 잡혔다. 스트리밍과 글로벌 팬덤의 시대에, 한 번도 유행을 좇지 않았던 목소리가 새 청자를 만난 셈이다. (칩거) 2017년에는 JTBC 「비긴어게인」에 출연해 해외 거리에서 노래했다. 2020년에는 「비긴어게인 코리아」와 「히든싱어 6」에 나왔고, 그 뒤로는 드라마 OST 몇 곡을 빼면 오랫동안 무대에 서지 않았다. 2026년 7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촬영 무렵 목에 이상을 느낀 뒤 긴 시간 집에 머물렀고 건강을 되찾으려 다시 밖으로 나왔다고 직접 말했다. (복귀) 2026년 7월 7일, 7년 만의 신곡 「너의 얼굴 다 잊을게」를 마레힘 엔터테인먼트에서 냈다. 그가 직접 부탁해 잔나비의 최정훈이 김도형과 함께 곡을 썼고, 가사는 이소라가 썼다. 혼자 품었다가 혼자 접은 마음이 가사의 바탕이 되었다고 그는 밝혔다. 그해 7월에는 성시경의 유튜브 채널에도 나왔다. 자기 이야기가 아니면 사랑 노래가 되지 않는다는 오래된 원칙은 쉰을 훌쩍 넘긴 지금도 그대로다.

♪신청곡2019노래 이소라·이하이 · 비긴어게인 코리아 4회

방탄소년단 슈가가 피처링하고 에픽하이 타블로의 곡에 실린 싱글이다. 1990년대 발라드의 목소리가 글로벌 팬덤 시대의 청자와 만났다.

  • 남이 들려주는 노래에 기대어 마음을 달래는 듯한 정서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사람의 조용한 화법으로 들린다.
  • 슈가의 랩은 박자를 몰아붙이지 않고 말을 낮게 얹는 속삭이는 흐름(플로우)이다. 이소라의 낮은 음색과 높이를 맞춰 대화처럼 이어진다.
  • 피아노와 성긴 비트 위로 두 목소리가 번갈아 나온다. 발라드와 힙합의 경계에 놓인 소리다.
  • 발매 뒤 빌보드 집계에서 미국 판매가 잡혔다. 한 번도 아이돌 시장에 서지 않았던 가수의 이름이 해외 차트에 오른 드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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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그는 거의 모든 앨범의 가사를 쓰고 2집부터 직접 프로듀서를 맡았다. 그런데 곡은 거의 쓰지 않는다. 김현철, 조규찬, 이승환, 강현민, 정순용, 김민규, 김동률, 최정훈까지, 그는 원하는 분위기를 말로 주문하고 작곡가가 그것을 소리로 옮긴다.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이 미덕처럼 쓰이는 시대에 자작곡이 드물다는 점은 자주 지나쳐진다. 하지만 앨범마다 소리가 달라지면서도 하나의 목소리로 묶이는 비결이 바로 이 방식에 있다. 「바람이 분다」는 6집의 타이틀곡이 아니었다. 타이틀은 「이제 그만」이었고, 앨범은 방송 활동 없이 조용히 나왔다. 이 노래가 대표곡이 된 것은 7년 뒤 「나는 가수다」의 첫 회에서였다. 평론가들이 꼽은 명반의 한 곡이 경연 예능을 거쳐서야 대중의 노래가 된 이 늦은 흥행은, 2000년대 음반 시장이 무너지던 시기 좋은 음악이 얼마나 묻히기 쉬웠는지를 보여 준다. 7집의 타이틀 곡 「Track 8」은 이한철이 썼다. 미국 싱어송라이터 엘리엇 스미스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은 곡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을 지우고 번호만 남긴 앨범 안에서, 가장 앞에 세운 노래가 한 음악가의 죽음을 바라본 곡이었다는 사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8집이 몇 해 미뤄지던 동안 그는 음원이 아니라 수록곡의 악보를 먼저 공개했다. 소리를 듣기 전에 악보로 노래를 만나게 한 이 방식은 스트리밍이 빠르게 자리 잡던 2010년대 초에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앨범이 록으로 방향을 틀면서 받은 엇갈린 반응에 가려 지금은 잘 기억되지 않는다.

용어 노트 📚🔎

아카펠라

(말뜻) 이탈리아어 a cappella는 예배당(cappella) 식으로라는 뜻이다. 옛 교회에서 악기 없이 목소리만으로 부르던 합창에서 나온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악기 반주 없이 여러 사람이 목소리만으로 화음과 리듬까지 만들어 부르는 노래를 가리킨다. 한 사람은 멜로디를, 다른 사람은 베이스 소리를, 또 다른 사람은 입으로 드럼 소리를 내는 식이다. 반 친구들이 음악 시간에 피아노 없이 파트를 나눠 합창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이소라가 처음 몸담은 낯선 사람들이 이런 재즈 아카펠라 그룹이었다.

프로듀서

(한국 대중음악에서) 앨범 한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다. 어떤 곡을 넣을지, 누구에게 작곡과 편곡을 맡길지, 노래를 어떤 느낌으로 부를지를 정한다. 영화의 감독과 비슷하다. 학교 연극에서 배우는 아니지만 대본과 배역, 무대 분위기를 모두 정하는 연출 담당을 생각하면 쉽다. 이소라는 2집부터 자기 앨범의 프로듀서를 직접 맡았다. (다른 데서는) 방송에서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끄는 PD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쓴다.

타이틀곡

(한국 대중음악에서) 앨범에 실린 여러 곡 가운데 방송과 홍보에 앞세우는 대표곡이다. 가수는 보통 이 곡으로 음악 방송에 나가고 뮤직비디오를 찍는다. 반 대표를 뽑아 대회에 내보내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대표로 뽑힌 곡보다 다른 수록곡이 더 사랑받기도 한다. 이소라 6집의 타이틀곡은 「이제 그만」이었지만, 나중에 더 유명해진 곡은 「바람이 분다」였다.

얼터너티브 록

(말뜻) alternative는 대안이라는 뜻이다. 주류 상업 록과 다른 길을 찾는 록이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1990년대에 널리 퍼진 록의 한 갈래다. 일그러뜨린 기타 소리, 조용하다가 갑자기 터지는 구성, 꾸밈없는 거친 노래가 특징이다. 잘 다듬은 합창 대회 노래와, 친구끼리 연습실에서 하고 싶은 대로 크게 지르는 밴드 연주의 차이를 떠올리면 된다. 이소라는 2집의 「화」, 3집, 8집 전체에서 이런 소리를 택했다.

피처링

(말뜻) 영어 featuring은 무엇을 특별히 내세운다는 뜻의 feature에서 왔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한 가수의 곡에 다른 가수나 래퍼가 손님으로 참여해 일부를 부르는 것이다. 곡의 주인은 원래 가수이고, 참여한 사람은 제목 옆에 Feat.로 표시된다. 반 발표에서 다른 반 친구를 초대해 한 부분만 맡기는 것과 비슷하다. 「신청곡」은 이소라의 곡이고, 방탄소년단 슈가가 피처링으로 랩을 했다.

OST

(말뜻) Original Soundtrack의 줄임말이다. 영화 필름 가장자리에 소리를 새기던 띠(사운드트랙)에서 나온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영화나 드라마에 쓰려고 만든 노래와 배경음악, 또는 그것을 모은 앨범을 가리킨다. 장면과 함께 반복해서 들리기 때문에 작품이 인기를 얻으면 노래도 함께 유명해진다. 좋아하는 게임의 배경음악만 들어도 그 장면이 떠오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소라는 영화 「그대 안의 블루」의 주제가로 이름을 알렸다.

라이브와 립싱크

(말뜻) 립싱크는 영어 lip sync, 곧 입술(lip)을 소리에 맞춘다(synchronize)는 말에서 왔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라이브는 무대에서 그 자리에서 실제로 노래하는 것이다. 립싱크는 미리 녹음한 노래를 틀어 놓고 입 모양만 맞추는 것이다. 춤이 격한 무대나 방송 사정 때문에 쓰이기도 하지만, 노래 실력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은 라이브다. 학예회에서 직접 부르는 것과 녹음을 틀고 입만 벙긋하는 것의 차이와 같다. 이소라는 라이브를 중요하게 여기는 진행자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