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ert Glasper
휴스턴의 교회 반주석에서 익힌 화음으로 재즈 트리오와 힙합 비트 사이의 경계를 지워 간 피아니스트.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킴 이벳 글래스퍼
교회와 클럽에서 노래하던 어머니로, 그에게 음악의 첫 길을 열어 주었고 「트리뷰트」로 추모됐다.
- 영향허비 행콕
글래스퍼는 「메이든 보이지」와 「버터플라이」를 거듭 재해석하며 행콕을 재즈와 대중음악을 잇는 선배로 삼았다.
- 우정빌랄
뉴스쿨에서 만난 가수로, 힙합·네오 소울 세계로 이끈 친구이자 이십 년 넘는 음악적 동반자다.
- 영향제이 딜라
박을 비틀어 찍는 그의 비트는 글래스퍼 리듬 감각의 원천이 됐고, 「제이 딜라루드」로 기려졌다.
- 동료테렌스 블랜처드
젊은 글래스퍼가 사이드맨으로 몸담으며 밴드를 이끄는 법을 가까이서 배운 트럼페터다.
- 동료테라스 마틴
R+R=NOW와 디너 파티를 함께 꾸린 색소포니스트이자 프로듀서다.
I. 휴스턴의 교회 · 1978–1996 (0–18세)
(휴스턴) 1978년 4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킴 이벳 글래스퍼는 교회에서 노래하고 피아노를 쳤고, 저녁이면 시내 클럽에서 재즈와 블루스를 부르던 가수였다. 글래스퍼는 인터뷰에서 어머니를 자신의 첫 음악적 영향으로 자주 꼽아 왔다. (교회) 어머니는 아이를 맡길 데가 마땅치 않으면 클럽에도 교회에도 데리고 다녔다. 글래스퍼는 열두 살 무렵부터 교회 반주를 맡았다고 회고했다. 가스펠 반주는 악보보다 귀로 배우는 일이었다. 설교가 고조되는 순간을 알아채고 화음을 바꿔 받쳐 주는 법, 익숙한 찬송의 화음을 새로 갈아 끼우는 법(리하모니제이션)을 그는 거기서 익혔다. 훗날 그의 연주를 특징짓는 두텁고 미묘하게 비튼 화음이 이 시절의 교회에서 왔다고 그는 여러 차례 말했다. (예술고) 고등학교는 휴스턴의 공립 예술학교인 공연·시각예술고등학교(HSPVA)에 다녔다. 피아니스트 제이슨 모런이 몇 해 앞서 거쳐 간 학교였고, 드러머 켄드릭 스콧, 색소포니스트 월터 스미스 3세 같은 또래가 함께 재즈를 배웠다. 그는 이 시기 교회 음악과 재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R&B와 힙합을 가리지 않고 들었다. 그에게 이 음악들은 서로 다른 장르라기보다 같은 동네에서 들려오는 소리였고, 이 감각이 이후 그의 음악 전체를 떠받치게 된다.
II. 뉴욕의 두 세계 · 1997–2002 (19–24세)
(뉴스쿨) 1997년 무렵 뉴욕으로 옮겨 뉴스쿨의 재즈 앤드 컨템퍼러리 뮤직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필라델피아 출신의 가수 빌랄을 만났다. 글래스퍼는 입학 초기에 곧바로 그와 가까워졌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의 교류는 이후 이십 년 넘게 무대와 녹음으로 이어진다. (힙합) 빌랄을 통해 그는 뉴욕의 힙합과 네오 소울 인맥 속으로 들어갔다. 모스 데프(오늘날의 야신 베이), 탈립 콸리, 커먼 같은 래퍼들과 건반 연주자로 작업했고, 디트로이트의 프로듀서 제이 딜라와도 교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딜라의 비트는 박을 일부러 조금씩 어긋나게 찍어 사람이 몸을 흔들 듯 출렁이는 느낌을 냈다. 글래스퍼는 그 비트에서 재즈 드러머의 손끝과 같은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사이드맨) 한편으로 그는 재즈 밴드의 반주자(사이드맨)로도 바쁘게 일했다. 트럼페터 테렌스 블랜처드, 베이시스트 크리스천 맥브라이드, 기타리스트 러셀 멀론, 색소포니스트 케니 개럿 등의 무대에 섰다. 특히 블랜처드의 밴드에서 자작곡을 다루는 법과 밴드를 이끄는 법을 가까이서 보았다. 한 주에는 재즈 클럽에서, 다음 주에는 힙합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생활이었다. 그는 이 시기 두 세계를 오가며 생계를 꾸렸고, 어느 쪽에서도 다른 쪽의 언어를 버리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III. 트리오와 상실 · 2003–2007 (25–29세)
(데뷔) 2004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레이블 프레시 사운드 뉴 탤런트에서 첫 앨범 「무드(Mood)」를 냈다. 2005년에는 블루노트와 계약하고 「캔버스(Canvas)」를 발표했다. 베이스의 비센테 아처, 드럼의 데이미언 리드와 꾸린 피아노 트리오였다. 평론가들은 정통 트리오의 어법 위에 힙합의 리듬 감각을 얹은 연주에 주목했다. (어머니) 그 사이인 2004년, 어머니 킴 글래스퍼가 세상을 떠났다. 그를 교회와 클럽으로 데리고 다니며 음악의 첫 길을 열어 준 사람이었다. 2006년 2월에는 제이 딜라가 서른두 살로 세상을 떠났다. 불과 두 해 사이에 그는 음악적으로 가장 가까웠던 두 사람을 잃었다. (추모) 2007년의 두 번째 블루노트 앨범 「인 마이 엘리먼트(In My Element)」에는 이 상실이 담겼다. 「트리뷰트(Tribute)」에는 어머니 장례식의 음성이 들어갔고, 「제이 딜라루드(J Dillalude)」에서는 딜라의 비트 여러 개를 트리오가 손으로 이어 연주했다. 허비 행콕의 「메이든 보이지(Maiden Voyage)」와 라디오헤드의 「에브리싱 인 잇츠 라이트 플레이스」를 겹쳐 놓은 곡도 실렸다. 슬픔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그를 길러 낸 음악들을 한 지붕 아래 모은 앨범이었다.
블루노트 데뷔작으로, 교회 반주에서 익힌 화음과 뉴욕에서 몸에 밴 힙합 리듬이 어쿠스틱 트리오 안에서 처음 하나로 정리된 앨범이다.
- 비센테 아처의 베이스와 데이미언 리드의 드럼이 일정한 박을 고르게 이어 가기보다, 박을 잘게 쪼개거나 살짝 늦춰 힙합 비트처럼 출렁이게 만드는 대목에 귀를 기울여 보자.
- 글래스퍼는 짧은 음형을 되풀이하면서 그 밑의 화음을 조금씩 바꿔 다는(리하모니제이션) 방식을 즐겨 쓴다. 같은 선율이 화음에 따라 밝아졌다 어두워지는 변화가 이 앨범의 중심이다.
- 긴 솔로로 절정을 쌓는 대신 반복과 미세한 변형으로 분위기를 서서히 끌어올린다. 즉흥연주가 독주라기보다 세 사람이 함께 짜는 무늬처럼 들린다.
- 「챈트(Chant)」와 「아이 리멤버(I Remember)」에는 빌랄이 목소리로 참여했다. 노래라기보다 피아노 화음에 덧댄 또 하나의 색으로 들어 보면 좋다.
어머니와 제이 딜라를 잃은 뒤에 나온 앨범으로, 추모와 자기 음악의 뿌리 찾기가 한데 겹쳐 있다.
- 「제이 딜라루드(J Dillalude)」는 딜라의 비트 여러 개를 이어 붙인 메들리다. 샘플을 반복 재생하는 기계 대신 드럼과 베이스가 같은 짧은 패턴을 손으로 되풀이해, 사람이 연주하는 루프가 어떤 느낌인지 들려준다.
- 허비 행콕의 「메이든 보이지」는 정해진 코드 진행 대신 몇 개의 음계 위에서 길게 머무는 곡(모달 재즈)이다. 그 넉넉한 화음 위에 라디오헤드의 선율이 겹쳐 떠오르는 순간을 찾아보자.
- 「트리뷰트(Tribute)」에서는 장례식의 음성이 흐르는 동안 피아노가 말의 억양을 따라가듯 화음을 받쳐 준다. 교회에서 설교를 반주하던 경험이 그대로 옮겨 온 듯 들린다.
IV. 두 개의 예약 · 2008–2011 (30–33세)
(익스페리먼트) 트리오와 별도로, 그는 전기 악기 중심의 밴드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를 꾸렸다. 색소폰과 보코더의 케이시 벤저민, 베이스의 데릭 호지, 드럼의 크리스 데이브가 멤버였다. 휴스턴 출신의 크리스 데이브는 힙합 비트의 비뚤어진 박을 사람 손으로 되살리는 데 능했다. 어쿠스틱 피아노 대신 펜더 로즈 같은 전기 건반이 중심에 섰고, 솔로보다 밴드 전체의 출렁임(그루브)이 앞에 놓였다. (이중성) 2009년의 「더블 북트(Double-Booked)」는 제목 그대로 두 밴드를 한 앨범에 담았다. 앞의 절반은 어쿠스틱 트리오로 텔로니어스 몽크의 「싱크 오브 원(Think of One)」 같은 곡을 연주했고, 뒤의 절반은 익스페리먼트가 허비 행콕의 「버터플라이(Butterfly)」 등을 새로 해석했다. 같은 날 저녁 두 공연을 잡아 버린 연주자의 처지처럼, 그는 재즈 클럽과 힙합 무대 가운데 어느 한쪽만 고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앨범의 형식으로 드러냈다. (전환) 이 앨범을 기점으로 그의 무게중심은 익스페리먼트 쪽으로 옮겨 갔다. 그는 재즈가 동시대의 청중과 멀어지고 박물관의 유물처럼 다뤄지는 데 대한 불만을 인터뷰에서 자주 드러냈다. 그 답으로 그가 택한 길은 자신이 자란 세대의 음악, 곧 R&B와 힙합의 언어로 재즈를 다시 쓰는 일이었다.
앞쪽은 어쿠스틱 트리오, 뒤쪽은 익스페리먼트로 나눈 구성 자체가 두 세계를 오가던 그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 앞뒤 절반을 이어 들으면 어쿠스틱 피아노의 울림이 펜더 로즈 전기 건반의 둥글고 물기 있는 소리로 바뀌는 대비가 뚜렷하다. 같은 연주자가 악기에 따라 어떻게 다른 말투를 쓰는지 비교해 보자.
- 트리오 쪽의 몽크 곡 「싱크 오브 원」은 몽크 특유의 뚝뚝 끊기는 선율을 글래스퍼식의 부드러운 화음으로 감싸 낸다.
- 익스페리먼트 쪽에서는 크리스 데이브의 드럼이 박을 일부러 비뚤게 늦추고 당기며 딜라의 비트 같은 출렁임(그루브)을 만든다. 솔로보다 이 리듬의 결이 주인공이다.
- 케이시 벤저민의 보코더는 사람의 목소리를 전자음처럼 바꿔 선율을 노래한다. 색소폰과 목소리 사이 어딘가에 있는 독특한 음색이 익스페리먼트 사운드의 표지가 됐다.
V. 블랙 라디오 · 2012–2016 (34–38세)
(블랙라디오) 2012년 익스페리먼트의 「블랙 라디오(Black Radio)」가 나왔다. 에리카 바두, 라라 해서웨이, 빌랄, 야신 베이, 미셸 엔데게오첼로, 레디시 등 R&B와 힙합의 목소리들이 곡마다 객원으로 나섰다. 존 콜트레인의 연주로 널리 알려진 「아프로 블루(Afro Blue)」와 너바나의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이 한 앨범에 나란히 실렸다. 앨범은 그래미 최우수 R&B 앨범상을 받았고, 재즈 레이블의 피아니스트가 R&B 부문을 차지한 일은 화제가 됐다. (확장) 이듬해의 「블랙 라디오 2」에는 노라 존스가 「렛 잇 라이드(Let It Ride)」로 참여했다. 라라 해서웨이와 배우 맬컴자말 워너가 함께한 스티비 원더 곡 「지저스 칠드런(Jesus Children)」은 그래미 최우수 트래디셔널 R&B 퍼포먼스상을 받았다. 2015년에는 켄드릭 라마의 「투 핌프 어 버터플라이」 녹음에 건반으로 참여했다. (마일스) 같은 해 그는 원년 멤버 비센테 아처, 데이미언 리드와 다시 모여 녹음한 「커버드(Covered)」를 냈다. 이어 돈 치들이 감독하고 주연한 마일스 데이비스 전기 영화 「마일스 어헤드」의 음악을 맡았고, 2016년에는 마일스의 미발표 녹음을 재료로 여러 가수와 만든 「에브리싱스 뷰티풀(Everything's Beautiful)」을 냈다. 그는 동시대 음악을 끌어안으며 재즈를 바꿔 온 마일스를, 자신이 하려는 일의 선례로 꼽았다.
재즈 피아니스트가 R&B와 힙합의 목소리들을 불러 모아 만든 이 앨범이 그래미 R&B 부문을 차지하면서, 그의 오랜 이중생활은 하나의 장르적 해답이 됐다.
- 인트로에 이어지는 「아프로 블루」는 콜트레인이 1960년대에 즐겨 연주한 곡이다. 콜트레인의 격렬한 연주와 달리, 에리카 바두가 낮고 느긋한 목소리로 박자 뒤에 살짝 기대어 부르는 화법을 비교해 들어 보자.
- 곡마다 객원 가수가 바뀌지만, 밴드는 긴 솔로 대신 반복되는 건반 화음과 드럼 패턴으로 노래를 받친다. 재즈 밴드가 R&B 반주의 미덕인 절제를 택한 앨범이다.
- 앨범에는 짜 맞춘 듯한 정교함보다 함께 연주하며 맞춰 가는 느슨한 호흡이 살아 있다. 짜 맞춘 듯한 정교함보다 함께 연주하며 맞춰 가는 느슨한 호흡이 살아 있다.
- 마지막의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에서는 케이시 벤저민의 보코더가 너바나의 거친 록 선율을 몽환적인 발라드로 바꿔 놓는다. 원곡을 떠올리며 들으면 편곡의 대담함이 더 잘 보인다.
블랙 라디오의 성공 이후 원년 트리오로 돌아가 동시대 팝과 R&B를 피아노 트리오의 언어로 다시 쓴 앨범이다.
- 로스앤젤레스의 캐피톨 스튜디오에서 실황으로 녹음했다. 스튜디오의 깨끗한 음질과 라이브의 현장감이 함께 담겨 있고, 곡 사이의 짧은 말과 박수도 그대로 남았다.
- 라디오헤드의 「레코너」, 조니 미첼의 「배런그릴」 같은 노래가 재즈 스탠더드 「스텔라 바이 스타라이트」와 나란히 놓인다. 글래스퍼에게는 팝송과 스탠더드가 모두 즉흥연주의 재료라는 점이 드러난다.
- 오랜만에 다시 만난 아처와 리드가 캔버스 시절보다 한층 여유 있게 박을 주고받는다(인터플레이). 드럼이 피아노의 짧은 음형에 곧바로 응답하는 순간들을 찾아보자.
- 켄드릭 라마의 「아임 다잉 오브 서스트」에서는 아이들이 경찰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흑인들의 이름을 차례로 부른다. 피아노는 그 목소리를 덮지 않고 조용히 받쳐, 앨범에서 가장 무거운 순간을 만든다.
VI. 오늘의 블랙 라디오 · 2017–2026 (39–48세)
(에미) 2017년, 에이바 두버네이 감독의 다큐멘터리 「13번째」에 실린 「레터 투 더 프리(Letter to the Free)」로 커먼, 카림 리긴스와 함께 에미상을 받았다. 미국의 수감 제도와 인종 문제를 다룬 영화였다. 그는 흑인 음악가로서 사회 문제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여러 인터뷰에서 밝혀 왔다. (협업) 2018년에는 테라스 마틴, 크리스천 스콧 아툰데 아주아, 데릭 호지, 테일러 맥퍼린, 저스틴 타이슨과 R+R=NOW를 결성해 「콜라지컬리 스피킹」을 냈다. 2020년에는 테라스 마틴, 카마시 워싱턴, 프로듀서 나인스 원더와 디너 파티를 꾸렸다. 매년 10월 뉴욕 블루노트 클럽에서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그의 장기 공연(레지던시)은 그의 이름을 따 롭토버(Robtober)라 불린다. (블랙라디오3) 2022년의 「블랙 라디오 III」는 팬데믹과 2020년의 인종차별 항의 시위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는 이 시기의 분노와 피로, 그리고 버티는 힘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큐팁, 에스페란자 스폴딩, H.E.R., 그레고리 포터, 라라 해서웨이 등이 참여했고, 앨범은 다시 그래미 최우수 R&B 앨범상을 받았다. 2024년에는 익스페리먼트 시절부터 곁을 지켜 온 케이시 벤저민이 세상을 떠났다. 2020년대 중반에도 그는 피아노 트리오와 R&B, 힙합 사이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팬데믹과 인종차별 항의 시위의 시간을 통과하며 만든 앨범으로, 블랙 라디오 시리즈가 사회를 향한 목소리로 한층 더 나아갔다.
- 큐팁과 에스페란자 스폴딩이 함께한 「와이 위 스피크(Why We Speak)」에서는 랩의 말하는 리듬과 스폴딩의 노래가 번갈아 흐른다. 시리즈에 이름이 오른 두 음악가가 한 곡에서 만나는 순간이다.
- H.E.R.와 미셸 엔데게오첼로가 참여한 「베터 댄 아이 이매진드」는 느린 템포 위에서 두 목소리가 서로를 감싸듯 주고받는 노래다. 건반은 화음을 길게 깔아 공간을 남겨 둔다.
- 티어스 포 피어스의 「에브리바디 원츠 투 룰 더 월드」 재해석에서는 1980년대 팝 선율이 라라 해서웨이의 깊은 목소리와 느릿한 그루브로 다시 태어난다.
- 곡마다 객원이 다르지만, 앨범 전체에는 분노보다 버티는 힘에 가까운 정서가 흐른다. 시대의 소리를 받아 적으려 했다는 그의 말을 떠올리며 들어 볼 만하다.
덜 알려진 이야기
그의 첫 앨범은 흔히 블루노트의 「캔버스」로 기억되지만, 실제 데뷔작은 2004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레이블 프레시 사운드 뉴 탤런트에서 나온 「무드」다. 이 레이블은 뉴욕의 젊은 재즈 연주자들에게 첫 녹음 기회를 주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블루노트 이후의 성공이 워낙 커서, 작은 유럽 레이블에서 시작된 출발점은 디스코그래피의 각주로만 남는 일이 많다.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로는 드물게 에미상 수상자다. 2017년 다큐멘터리 「13번째」의 엔딩 곡 「레터 투 더 프리」로 커먼, 카림 리긴스와 함께 상을 받았다. 영화와 래퍼 커먼의 이름이 앞에 서는 바람에, 곡의 작곡과 연주에 글래스퍼가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재즈 팬들 사이에서도 덜 알려져 있다. 켄드릭 라마의 「투 핌프 어 버터플라이」는 힙합사의 중요한 앨범으로 꼽히는데, 글래스퍼는 이 앨범의 녹음에 건반 연주자로 참여했다. 테라스 마틴, 카마시 워싱턴 등 로스앤젤레스의 재즈 연주자들과 함께였다. 래퍼의 앨범에서 반주자의 이름은 크레딧 목록 깊숙이 묻히기 쉬워서, 이 앨범의 재즈적 색채에 그의 손이 닿아 있다는 점은 대개 지나쳐진다.
용어 노트 📚🔎
피아노 트리오
(말뜻) 트리오(trio)는 셋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tre 에서 온 말로, 세 사람이 함께하는 연주 편성을 가리킨다. (재즈에서) 재즈에서는 보통 피아노, 베이스, 드럼 세 악기로 이루어진 밴드를 말한다. 피아노가 선율과 화음을, 베이스가 아래에서 화음의 뿌리와 박을, 드럼이 리듬의 결을 맡는다. 셋이 서로의 연주를 듣고 즉석에서 반응하는 것이 핵심이다. 세 사람이 하는 배구 연습을 떠올리면 쉽다. 누가 공을 받든, 나머지 둘이 그 공을 보고 바로 다음 동작을 정해야 공이 이어진다.
리하모니제이션
(말뜻) 영어 reharmonization 은 다시(re) 화음을 붙인다(harmonization)는 뜻이다. (재즈에서) 이미 알려진 선율은 그대로 두고, 그 밑에 깔리는 화음을 새로 바꿔 다는 일이다. 같은 멜로디라도 화음이 바뀌면 밝게도, 쓸쓸하게도, 낯설게도 들린다. 같은 볶음밥에 간장 대신 굴소스나 카레 가루를 넣으면 밥과 재료는 같은데 맛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글래스퍼는 교회에서 찬송가를 반주하며 이 기술을 익혔다고 말했다.
그루브
(말뜻) groove 는 원래 레코드판에 파인 홈을 뜻한다. 바늘이 홈을 따라 미끄러지듯, 음악이 몸을 자연스럽게 실어 나르는 느낌을 가리키게 됐다. (재즈에서) 리듬 악기들이 함께 만들어 내는, 저절로 몸이 흔들리게 하는 출렁임이다. 박자가 정확하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드럼과 베이스가 박을 아주 조금씩 앞당기거나 늦추며 맞물릴 때 생긴다. 줄넘기를 여럿이 함께할 때를 떠올려 보자. 줄 돌리는 두 사람의 박자가 딱 맞으면 뛰어드는 사람도 저절로 리듬을 타게 되는데, 그 몸에 붙는 느낌이 그루브다. (다른 데서는) 일상 영어에서 in the groove 는 일이 손에 익어 술술 풀리는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보코더
(말뜻) 목소리(voice)와 부호기(coder)를 합친 말로, 원래 목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꿔 보내기 위해 만든 통신 장치였다. (재즈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신시사이저 소리와 섞어, 말하는 듯하면서도 기계가 노래하는 듯한 음색을 만드는 장치다. 익스페리먼트의 케이시 벤저민은 보코더로 노래하며 밴드의 독특한 소리를 만들었다. 스마트폰 앱의 로봇 목소리 필터로 말해 본 적이 있다면, 그것과 원리가 비슷하다. 다만 보코더는 건반으로 음높이를 정해 주어 그 목소리를 노래로 바꾼다.
네오 소울
(말뜻) 네오(neo)는 새롭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왔다. 새로운 소울 음악이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흑인 대중음악의 흐름으로, 1960~70년대 소울 음악의 따뜻한 감성에 재즈의 화음과 힙합의 리듬을 섞었다. 에리카 바두, 빌랄 같은 가수들이 대표적이며, 글래스퍼의 음악은 이 흐름과 깊이 맞닿아 있다. 할머니가 즐겨 듣던 옛 노래를 요즘 친구들이 좋아하는 비트에 얹어 다시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옛 맛은 살아 있지만 그릇은 지금 것이다.
사이드맨
(재즈에서) 자기 이름을 건 밴드의 리더가 아니라, 다른 리더의 밴드에 들어가 함께 연주하는 반주 연주자를 말한다. 젊은 재즈 음악가들은 대개 유명한 리더의 사이드맨으로 일하며 경험과 인맥을 쌓은 뒤 자기 밴드를 꾸린다. 글래스퍼도 테렌스 블랜처드, 크리스천 맥브라이드 등의 밴드에서 사이드맨으로 일했다. 학교 연극에서 주인공이 아닌 역할을 맡아 무대 경험을 쌓다가, 나중에 직접 연출을 맡게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레지던시
(말뜻) 영어 residency 는 거주, 머무름이라는 뜻이다. 한곳에 머물며 일한다는 의미에서 왔다. (재즈에서) 한 연주자가 같은 클럽에서 며칠, 몇 주, 길게는 한 달씩 이어서 공연하는 것을 말한다. 매일 밤 다른 동료를 불러 다른 곡을 연주할 수 있어서, 관객은 같은 연주자의 여러 얼굴을 볼 수 있다. 글래스퍼가 해마다 10월 뉴욕 블루노트에서 여는 롭토버가 그 예다. 학교 축제 기간 동안 같은 교실에서 매일 다른 주제로 부스를 여는 반을 떠올리면 된다. (다른 데서는) 의학에서는 레지던트, 곧 전공의 수련 과정을 뜻하고, 미술계에서는 작가가 한 기관에 머물며 작업하는 프로그램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