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 King Cole
벨벳처럼 부드러운 목소리 뒤에서, 그는 평생 건반 앞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에드워드 콜
침례교 부제였고, 설교단의 말투와 리듬이 아들의 음악에 흔적을 남겼다.
- 가족펄리나 콜
교회 오르간 연주자로 네 살 난 아들에게 직접 피아노를 가르쳤다.
- 영향얼 하인스
시카고 그랜드 테라스 카페의 전속 피아니스트로, 소년 시절 우상이었다.
- 우정아트 테이텀
로스앤젤레스 애프터아워스 세션에서 교류하며 서로의 연주를 아꼈다고 전해진다.
- 동료오스카 무어
트리오의 기타리스트로 십여 년간 호흡을 맞췄다.
- 후원넬슨 리들
현악 편곡으로 트리오 시절과는 다른 원숙한 발라드 사운드를 함께 빚었다.
I. 몽고메리에서 시카고로 · 1919–1936 (0–17세)
(몽고메리) 1919년 3월,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네이선 애덤스 콜스였고, 훗날 성에서 's'를 떼고 냇 콜로, 다시 냇 킹 콜로 불리게 된다. (아버지) 아버지 에드워드 제임스 콜스는 침례교 부제였고, 훗날 시카고에서 목사가 됐다. 설교단에서 내려오는 말투와 리듬은 아들의 귀에 오래 남았다 — 뒷날 「스트레이튼 업 앤드 플라이 라이트」의 바탕이 된 원숭이와 말똥가리 이야기도 아버지의 설교에서 왔다고 전해진다. (어머니) 어머니 펄리나 애덤스 콜스는 교회 오르간 연주자였다. 네 살 난 아들에게 직접 피아노를 가르쳤고, 찬송가와 클래식 교본으로 기초를 다져 줬다. 형 에디(베이스), 동생 아이크(피아노)와 프레디(피아노·노래)도 모두 음악가가 됐다 — 콜 집안은 사실상 작은 음악 학교였다. (시카고) 1923년 무렵 가족은 대이동의 물결을 따라 시카고 사우스사이드 브론즈빌로 옮겨 갔다. 흑인 중산층과 노동자가 뒤섞여 살던 이 동네에는 교회와 클럽, 극장이 촘촘했고, 소년은 교회 성가대와 길거리의 블루스 사이에서 자랐다. (하인스) 그랜드 테라스 카페에서 전속으로 연주하던 피아니스트 얼 하인스는 소년의 우상이었다. 나이를 속이고 클럽 문 앞을 서성이며 연주를 엿들었다고 회고했다 — 하인스 특유의 오른손 선율과 왼손의 느슨한 터치는 뒷날 콜의 가볍고 경쾌한 피아노에 뚜렷이 남았다.
II. 로스앤젤레스의 트리오 · 1937–1943 (18–24세)
(탈출) 1937년, 순회 레뷰 「셔플 얼롱」의 재공연에 피아니스트로 참여해 로스앤젤레스까지 왔으나 공연이 돌연 막을 내리며 길에 남겨졌다. 돌아갈 차비도 마땅치 않던 그는 서부에 눌러앉기로 했다 — 궁핍이 떠밀어 낸 결정이 훗날 경력의 출발점이 됐다. (결혼) 같은 레뷰의 무용수였던 내딘 로빈슨과 1937년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1948년까지 이어졌다. (트리오) LA의 클럽을 전전하며 기타리스트 오스카 무어, 베이시스트 웨슬리 프린스와 트리오를 꾸렸다. 드럼 없이 피아노·기타·베이스만으로 가는 편성은 애초엔 예산 때문이었지만, 세 악기가 실내악처럼 속삭이고 주고받는 소리는 곧 독자적인 매력이 됐다. (노래) 그는 원래 피아니스트로 데뷔했을 뿐 가수가 될 생각이 없었다. 한 클럽에서 술 취한 손님이 「스위트 로레인」을 불러 달라며 고집을 부렸고, 마지못해 노래한 것이 손님들의 환호를 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사실 여부를 떠나, 트리오는 이 무렵부터 노래를 레퍼토리에 넣기 시작했다. (생활) 변변한 레이블도 없이 작은 클럽과 라디오 방송을 오가던 시절이었다. 돈은 늘 빠듯했고, 무어와 프린스와 함께 차로 이동하며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생활이 몇 해 이어졌다.
트리오가 노래를 레퍼토리에 넣기 시작한 계기로 전해지는 곡으로, 드럼 없는 트리오 편성의 원형을 보여 준다.
- 드럼 없이 피아노·기타·베이스만으로 가는 편성이 실내악처럼 속삭이듯 주고받는 소리를 들려준다(피아노 트리오).
- 콜의 오른손은 하인스에게서 물려받은 가볍고 통통 튀는 터치로 멜로디를 노래하듯 연주한다.
- 오스카 무어의 기타 솔로는 한 줄씩 또박또박 짚어 나가는 방식(싱글 노트 솔로)으로 피아노의 대화 상대처럼 끼어든다.
- 콜의 보컬은 힘을 빼고 음을 살짝 흘리듯 부르는 창법으로, 뒷날 그를 상징하게 될 나른한 발성이 이미 또렷하다.
III. 캐피톨과 전국적 인기 · 1943–1948 (24–29세)
(계약) 1943년, 신생 레이블 캐피톨 레코드와 계약했다. 설립자 조니 머서가 트리오의 가능성을 알아봤고, 콜은 이 작은 회사에 전속된 첫 흑인 스타 중 한 명이 됐다. (히트) 같은 해 녹음한 「스트레이튼 업 앤드 플라이 라이트」가 폭발적으로 팔렸다. 그러나 콜은 곡의 저작권 지분 절반을 단돈 50달러에 넘긴 뒤였다 — 가난한 무명 시절 급전이 아쉬워 내린 결정이었고,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치는 걸 지켜보며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전해진다. (라디오) 「루트 66」(1946)과 「더 크리스마스 송」(1946) 같은 곡이 잇따라 라디오를 탔다. 트리오의 가볍고 스윙하는 소리에 콜의 느긋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얹히자, 백인 청취자들도 그를 '보이지 않는 라디오 속 목소리'로 먼저 만나는 일이 흔해졌다 — 피부색을 짐작하지 못한 팬레터가 적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명성) 트리오는 피아노·기타·베이스만으로 빅밴드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드럼 없는 콤보 편성이 상업적으로도 성립한다는 걸 증명했다. 이 편성은 뒷날 오스카 피터슨을 비롯한 수많은 피아노 트리오의 본보기가 됐다. (캐피톨타워) 콜의 음반이 회사의 주력 상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훗날 할리우드에 세워진 원통형 캐피톨 레코드 타워를 두고 '냇이 지은 집'이라는 농담 섞인 별명이 돌았다 — 그만큼 그의 판매량이 회사의 기반을 떠받쳤다는 뜻이었다.
아버지의 설교에서 따온 이야기를 가사로 바꾼 노래로, 헐값에 판 저작권 탓에 성공의 기쁨에 아쉬움이 섞였다.
- 32마디 AABA 형식(리듬 체인지 계열) 위에서 박자의 뒷부분을 살짝 끌어 밀고 당기는 느낌(스윙)이 경쾌하게 굴러간다.
- 콜의 피아노는 짧은 프레이즈를 되풀이하며 노래와 대화하듯 받아친다.
- 베이스와 기타가 쉼 없이 박자를 다져 주는 덕에, 드럼 없이도 몸이 들썩이는 그루브가 살아난다.
- 가사를 말하듯 던지는 콜의 창법에는 설교단의 리듬감이 배어 있다는 평이 따른다.
보비 트룹이 쓴 여행 노래를 트리오 특유의 신나는 스윙으로 풀어내 라디오 히트로 만들었다.
- 12마디 블루스 형식 안에서 각 구절이 지명을 하나씩 짚어 가듯 경쾌하게 전개된다.
- 오스카 무어의 기타가 중간에 짧고 발랄한 솔로를 끼워 넣어 곡에 활기를 더한다.
- 콜의 피아노 반주는 오른손으로 가벼운 장식음을 섞어 여행길의 들뜬 기분을 그린다.
-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탄력 있게 밀고 가는 중간 템포의 스윙이 두드러진다.
IV. 행콕파크의 집 · 1948–1956 (29–37세)
(재혼) 1948년 내딘과 이혼하고, 가수 마리아 호킨스 엘링턴과 재혼했다. 마리아는 음악적 안목이 깊어 레퍼토리 선택에도 적잖이 관여했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 사이에서 딸 나탈리가 태어났고, 나탈리는 훗날 직접 가수가 돼 아버지의 「언포게터블」을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불렀다. (행콕파크) 같은 해 로스앤젤레스의 백인 중산층 거주지 행콕파크에 집을 샀다. 이웃들은 흑인 가족의 입주를 막으려 들었고, 마당에서 십자가가 불탄 일도 있었다. 콜은 이사를 포기하지 않았고, 이 일을 계기로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활동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독립) 트리오를 넘어 현악 오케스트라를 동반한 솔로 가수로 중심을 옮겼다. 「네이처 보이」(1948)는 무명의 떠돌이 작곡가 에덴 아베즈가 가져온 곡을, 틀에서 벗어난 선율에도 불구하고 콜이 과감히 녹음해 전국적 히트로 만든 사례였다. (발라드) 넬슨 리들을 비롯한 편곡자들과 함께 「모나리자」(1950), 「언포게터블」(1951) 같은 서정적 발라드를 잇따라 내놓았다. 트리오 시절의 가볍고 스윙하는 터치 대신, 현을 넓게 깐 배경 위에서 낮고 그윽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쪽으로 음악의 중심이 옮겨 갔다. (부) 음반 판매와 저작권 수입이 쌓이며 경제적으로는 풍족해졌다. 그러나 피부색 때문에 호텔 투숙과 식당 출입을 거절당하는 일은 여전했고,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벽이 있다는 걸 그는 거듭 확인해야 했다.
멜 토메와 밥 웰스가 쓴 곡을 처음엔 소편성으로, 훗날 현악 오케스트라와 함께 다시 녹음해 크리스마스의 표준이 됐다.
- 현을 넓게 깐 오케스트라 반주(스트링 오케스트레이션) 위에서 목소리가 또렷이 떠오르도록 공간을 비워 둔 편곡이 돋보인다.
- 콜은 한 음 한 음을 따뜻하게 매만지듯 부르며, 서두르지 않는 호흡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화법을 쓴다.
- 1961년 재녹음본은 스테레오로 다시 담겨, 오늘날 가장 널리 쓰이는 버전으로 남았다.
- 반세기 넘게 매년 라디오에서 되풀이 재생되며 사실상 크리스마스 노래의 표준(standard)으로 자리 잡았다.
할리우드 간판 아래를 떠돌던 무명 작곡가 에덴 아베즈의 곡을, 낯선 선율에도 콜이 과감히 받아들여 히트로 만들었다.
- 장조와 단조 어느 쪽에도 딱 떨어지지 않는 음계 하나 위에서 멜로디가 흘러가는 느낌(모달 멜로디)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 도입부의 오보에와 현악이 안개처럼 깔리며 당시 대중가요에서는 드문 분위기를 자아낸다.
- 콜은 멜로디를 과장 없이, 거의 속삭이듯 들려주며 가사 속 떠돌이 이야기를 담담히 전한다.
- 전형적인 32마디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구조를 택했는데도 대중적으로 성공해,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영화 삽입곡으로 쓰인 느린 발라드로, 섬세한 현악 편곡과 함께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 느린 4박자 발라드 위에서 현악이 그림을 그리듯 선율을 감싼다.
- 콜의 목소리는 낮은 음역에서 가사를 또박또박 짚어 가며,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묘사하는 화법을 택한다.
- 후렴마다 현악 편곡이 조금씩 두꺼워지며 감정의 농도를 서서히 끌어올린다.
- 과장된 비브라토 없이 음을 곧게 뻗는 창법이 발라드 전체에 절제된 품격을 더한다.
어빙 고든이 쓴 곡으로, 1991년 딸 나탈리 콜이 아버지의 원곡 목소리와 자신의 목소리를 겹쳐 다시 불러 세대를 이었다.
- 느린 템포의 32마디 발라드 형식 위에서 현악이 호흡을 길게 늘이며 목소리를 받친다.
- 콜은 단어 끝을 살짝 붙잡아 끌듯이 부르며, 말을 건네는 듯한 다정한 화법을 보여 준다.
- 편곡은 후렴에서 현의 음량을 한 겹씩 쌓아 올려 절정에서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도 벅차게 만든다.
- 1991년 재녹음에서는 원곡의 콜의 목소리와 나탈리의 목소리가 듀엣처럼 겹쳐, 세월을 넘나드는 효과를 낸다.
V. 버밍엄의 무대 · 1956–1960 (37–41세)
(공격) 1956년 4월, 앨라배마주 버밍엄 공연 도중 무대로 뛰어든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폭행당했다. 공연은 중단됐고, 콜은 다치고 놀란 채 무대를 내려와야 했다. 태어난 고향이기도 한 주에서 벌어진 폭력이었다. (태도) 그는 공공연히 급진적 발언을 하는 편은 아니었고, 이 신중함 때문에 일부 흑인 운동 진영으로부터 온건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NAACP를 후원하면서도 버밍엄 사건 뒤 남부의 인종 분리 객석 앞에서 공연을 이어 간 것이 비판의 빌미가 됐고, 분리 공연장 보이콧에 동참한 것은 그 뒤의 일이다. (TV쇼) 1956년, 미국 지상파 최초로 흑인이 진행하는 정규 버라이어티쇼 「냇 킹 콜 쇼」가 NBC에서 시작됐다. 엘라 피츠제럴드, 해리 벨라폰테 같은 동료 음악가들이 출연료 없이 출연해 힘을 보탰다고 전해진다. (종영) 그러나 남부 시장을 의식한 전국 광고주들이 선뜻 나서지 않았고, 1957년 쇼는 낮은 수익성을 이유로 막을 내렸다. 콜은 훗날 'NBC와 광고업계가 남부에 겁을 먹었다'는 취지로 씁쓸하게 돌아봤다고 전해진다. (음악) 이 시기 녹음한 발라드들에는 전과 다른 그늘이 비친다는 평이 뒤따른다. 화려한 성공과 달리 무대 뒤에서 거듭 맞닥뜨린 벽이, 노래의 절제된 슬픔에 배어들었다는 해석이다.
VI. 마지막 노래들 · 1960–1965 (41–46세)
(습관) 그는 하루 서너 갑의 멘톨 담배를 피웠다. 담배가 목소리를 더 깊고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고 믿었다고 전해지며, 녹음실에서도 손에서 담배를 놓지 않는 모습이 동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투병) 1964년 말 건강 이상을 느껴 검진을 받았고, 폐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받으면서도 공연과 녹음을 쉬지 않았다. (마지막) 1965년 2월 15일,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의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마흔다섯이었다. (유산) 트리오의 경쾌한 스윙에서 오케스트라를 동반한 그윽한 발라드까지, 그의 음악은 흑인 가수가 미국 주류 대중음악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사례로 남았다. 딸 나탈리는 1991년 아버지의 옛 녹음에 자신의 목소리를 겹쳐 「언포게터블… 위드 러브」를 냈고, 이는 세대를 넘어 다시 그의 노래를 불러냈다.
덜 알려진 이야기
(출생연도) 오랫동안 여러 자료가 콜의 출생연도를 1917년으로 적었고, 1994년 기념우표에도 1917년이 새겨졌다. 그러나 미망인 마리아는 이에 이의를 제기했고, 오늘날에는 1919년생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별명) '킹'이라는 별명은 애초 거창한 계획에서 나온 게 아니라 로스앤젤레스의 한 클럽 주인이 벌인 즉흥적인 홍보 수법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영어 동요 「올드 킹 콜」(명랑한 늙은 임금 콜)에 빗대, 무대 위 그에게 종이 왕관을 씌운 게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붙은 별명이 트리오 이름으로 굳어져 평생을 따라다녔다. (행콕파크) 행콕파크 이웃들이 대표를 보내 '여기엔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걸 원치 않는다'고 에둘러 말하자, 콜은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제가 제일 먼저 항의하겠습니다'라고 받아쳤다고 전해진다. 짧은 응수 한마디가 당시 그가 처한 상황을 압축해 보여 준다. (외국어 녹음) 해외 시장을 넓히려고 자신의 히트곡 여러 곡을 스페인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가사로 바꿔 직접 다시 불렀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언어로 발음을 하나하나 익혀 녹음한 이 버전들은 미국 밖에서도 그를 널리 알리는 데 한몫했지만,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용어 노트 📚🔎
피아노 트리오
트리오는 '셋'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온 말로, 세 사람이 연주하는 편성을 가리킨다. 재즈에서 피아노 트리오라 하면 흔히 피아노·베이스·드럼 세 악기를 말하지만, 냇 킹 콜의 트리오는 드럼 대신 기타를 넣어 피아노·기타·베이스로 짰다. 세 악기가 마치 돌아가며 말을 주고받는 대화처럼 소리를 채우고 비우는 걸 들어 보면 이해하기 쉽다 — 짝을 지어 번갈아 손뼉 치기 놀이를 하듯, 한쪽이 쉬면 다른 쪽이 그 자리를 메운다. 다른 데서는 트리오라는 말이 음악 밖에서도 세 사람으로 이뤄진 모둠을 가리킬 때 두루 쓰인다.
워킹 베이스
영어 단어 그대로 '걷는다(walking)'는 뜻이어서, 베이스가 한 걸음씩 땅을 디디며 걸어가듯 음을 짚어 나간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재즈에서 베이스 연주자가 코드가 바뀔 때마다 그 화음에 어울리는 음을 하나씩, 보통 한 박자에 한 음씩 짚어 가며 끊이지 않고 이어가는 주법을 가리킨다. 마치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듯 규칙적으로 음을 밟아 나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 줄넘기할 때 일정한 박자로 발을 구르는 것과 비슷하다.
AABA 형식
재즈에서 32마디로 이뤄진 대중가요에서 흔히 쓰인 틀로, 같은 멜로디(A)가 두 번 나온 뒤 다른 멜로디(B, 흔히 '브리지'라 부른다)가 한 번 끼어들고, 다시 처음 멜로디(A)로 돌아와 마무리하는 구조다. 돌림노래처럼 반복되다가 중간에 잠깐 다른 길로 샜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야기 구조라고 생각하면 쉽다.
모달 멜로디
'모드'는 라틴어로 '방식, 척도'를 뜻하는 모두스(modus)에서 왔다. 음악에서는 음을 배열하는 저마다 다른 방식, 곧 음계의 한 종류를 가리키게 됐다. 재즈에서는 정해진 코드 진행을 쉴 새 없이 따라가는 대신, 음계 하나 위에서 선율이 자유롭게 머무는 성격을 가리킨다. 「네이처 보이」처럼 장조도 단조도 아닌 낯선 음계를 쓰면, 듣는 이는 익숙한 길을 벗어나 낯선 풍경을 걷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놀이터에서 정해진 길 대신 자유롭게 뛰노는 느낌에 빗댈 수 있다.
스트링 오케스트레이션
재즈에서 노래나 솔로 악기 뒤에 바이올린·비올라·첼로 같은 현악기 여러 대를 배치해 폭넓고 부드러운 배경음을 까는 편곡 방식을 가리킨다. 합창 시간에 반 전체가 화음을 낮게 깔아 주면 한 사람의 독창이 더 또렷하고 풍성하게 들리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스윙
재즈에서 박자를 기계처럼 딱딱 나누지 않고, 뒷박을 살짝 끌어 밀고 당기는 듯한 리듬감을 가리킨다. 악보로는 똑같이 적혀 있어도 연주자가 그 안에서 미묘하게 밀당을 하면 몸이 절로 들썩이는 느낌이 생긴다 — 그네를 탈 때 정점에서 살짝 머무르다 내려오는 느낌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스윙이 '분위기를 타다, 흐름에 몸을 맡기다'는 비유적 의미로도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