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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x Beiderbecke

빅스 바이더벡 (1903–1931)

차갑게 빛나는 은종처럼, 그의 코넷은 크게 외치지 않고도 오래 남았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데이븐포트 출생독학으로 익힌 귀리버보트 재즈2. 방황레이크포레스트 퇴학울버린스 합류리버보트 셔플3. 트럼보어프랭키 트럼보어싱잉더블루스인 어 미스트4. 정점화이트맨 악단스위트수 솔로술로 무너진 건강5. 쇠락데이븐포트 요양마지막 녹음28세 죽음6. 신화소설로 그려지다영화로 재현절제의 계보바이더벡1903–1931여백과 절제로 재즈사에 남은 요절한 코넷의 시…
무대의 여정 🧭🗺️
N미국데이븐포트1903–1921레이크포레스트1921–1922시카고1922–1924디트로이트1925–1927뉴욕1927–1931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비스마르크 바이더벡

    사업을 잇길 바라며 아들의 재즈 활동을 못마땅해했다.

  • 가족애거사 힐턴

    교회 오르간과 피아노를 치며 아들에게 첫 음악을 들려준 어머니였다.

  • 우정호기 카마이클

    인디애나 시절부터 평생 이어진 친구이자 자신의 곡을 그에게 맡긴 작곡가였다.

  • 동료프랭키 트럼보어

    색소폰과 코넷으로 가장 깊이 통했던 음악적 동반자였다.

  • 후원폴 화이트맨

    지각과 결근에도 그를 감싸며 급여를 지켜 준 악단장이었다.

  • 영향루이 암스트롱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상대의 소리를 아꼈다고 전해진다.

YouTube에서 5곡 이어 듣기 ↗

I. 아이오와의 소년 · 1903–1921 (0–18세)

(아이오와) 1903년 3월, 미국 아이오와주 데이븐포트에서 태어났다. 미시시피강을 낀 소도시로, 강을 오르내리는 유람선에서 흘러나오는 악단의 소리가 강변까지 퍼지던 곳이었다. 아버지 비스마르크 바이더벡은 석탄과 목재를 취급하는 사업가였고, 어머니 애거사 힐턴은 교회에서 오르간과 피아노를 쳤다. 독일계 이민자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유복하지도 궁핍하지도 않은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피아노) 세 살 무렵 어머니가 치던 곡을 듣고 그대로 따라 쳤다는 이야기가 집안에 전해진다. 정식으로 악보를 배운 적은 거의 없었고, 평생 악보를 더듬더듬 읽는 수준에 머물렀다고 알려져 있다. 그 대신 한 번 들은 가락을 즉시 재현하는 귀가 유난히 밝았다. (리버보트) 데이븐포트를 오가던 유람선에는 뉴올리언스 쪽에서 올라온 악단들이 올랐고, 소년은 강둑에 앉아 그 소리를 즐겨 들었다. 열네 살 무렵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의 음반을 구해 놓고 몇 번이고 돌려 들으며 코넷을 스스로 익혔다. 표준 운지법과 다른 자기만의 손가락 자리를 굳혀 버린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인종분리) 그가 강둑에서 즐겨 듣던 악단은 대부분 흑인 연주자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당시 인종분리 관습 때문에 소년은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설 기회를 갖지 못했다. 백인 중산층 소년이 흑인 음악가들의 연주를 담장 너머로 배우기만 해야 했던 시대의 단면이었다. (불화) 아버지는 아들이 사업을 물려받길 바랐고, 코넷을 붙들고 사는 아들을 탐탁지 않아 했다. 아들이 훗날 보내온 음반들을 뜯지 않은 채 다락에 쌓아 두었다는 이야기가 집안에 전해지는데, 이 일화는 그와 아버지 사이의 거리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자주 인용된다.

II. 레이크 포레스트와 울버린스 · 1921–1924 (18–21세)

(전학) 1921년, 부모는 방황하는 아들을 바로잡으려 시카고 근교의 사립 기숙학교 레이크 포레스트 아카데미에 보냈다. 그러나 학교보다 시카고 시내의 재즈 클럽에 마음을 뺏겼고, 밤마다 몰래 빠져나가 흑인 악단과 백인 악단의 연주를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결국 출석 불량과 음주 문제로 이듬해 퇴학당했다. (울버린스) 1923년, 오하이오와 인디애나 일대를 오가던 학생 악단 성격의 밴드 더 울버린스에 합류했다. 여기서 평생의 친구가 될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호기 카마이클을 만났다. 인디애나대학 근처에서 어울리던 카마이클은 자신이 쓴 곡 「리버보트 셔플」을 밴드에 넘겼다. 그의 코넷 소리는 1924년 2월 울버린스가 녹음한 「피짓 피트」와 「재즈 미 블루스」로 처음 음반에 실렸고, 「리버보트 셔플」은 그해 5월에 녹음됐다. (첫녹음) 녹음실은 인디애나주 리치먼드의 작은 스튜디오였고 장비는 조악했다. 그러나 짧은 솔로 안에서도 군더더기 없이 음을 골라 치는 태도가 이미 뚜렷했다. 동료 연주자들은 그가 같은 프레이즈를 두 번 반복하는 법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재정) 밴드 활동으로 버는 돈은 많지 않았고, 숙식과 이동 경비를 제하면 손에 쥐는 액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트럭과 낡은 승용차로 중서부를 떠도는 생활이었지만, 집으로 돌아가 사업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연주 생활을 이어갔다.

♪리버보트 셔플 (Riverboat Shuffle)1924 (21세)무대 Pokey LaFarge · 2014 Radio Heartland

호기 카마이클과의 우정이 낳은 첫 결실로, 학생 악단 시절의 풋풋함이 담긴 1924년 5월 녹음이다.

  • 코넷 솔로가 짧지만 같은 프레이즈를 반복하지 않고 매번 다른 방식으로 마무리하는 점이 이미 뚜렷하다.
  • 조악한 녹음 장비 탓에 음질은 거칠지만, 리듬 섹션과 관악기들이 한 덩어리로 몰아치는 초기 재즈 특유의 흥이 살아 있다.
  • 같은 화음 진행을 짧게 반복하는 12마디 블루스 형식 위에서 각 악기가 돌아가며 짧은 즉흥을 주고받는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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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트럼보어, 노래하는 코넷 · 1925–1927 (22–24세)

(만남) 1925년 무렵 색소폰 주자 프랭키 트럼보어와 만나며 음악적으로 가장 깊이 통하는 동료를 얻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프레이즈를 예민하게 듣고 받아치는 방식으로 죽이 잘 맞았고, 곧 진 골드케트 악단에 나란히 들어가 디트로이트를 근거지로 활동했다. (경쟁) 당시 재즈계에는 이미 루이 암스트롱이라는 뚜렷한 기준이 있었다. 힘 있고 뜨거운 암스트롱의 연주와 달리, 그의 코넷은 음량을 낮추고 여백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 암스트롱은 훗날 그의 소리를 두고 종처럼 맑게 울렸다고 회고했다고 전해지며,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상대를 아꼈다고 알려져 있다. (싱잉더블루스) 1927년, 트럼보어와 함께 녹음한 「싱잉 더 블루스」는 두 사람의 이름을 나란히 남긴 대표작이 됐다. 정해진 멜로디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처음부터 자신의 가락을 지어 부르듯 연주하는 방식은 당시로선 파격이었고, 이후 여러 관악기 주자가 이 솔로를 그대로 따라 익혔다. (작곡) 같은 해 발표한 피아노 독주곡 「인 어 미스트」는 그가 코넷 주자를 넘어 작곡가이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드뷔시와 라벨의 음반을 즐겨 듣던 취향이 화성 안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싱잉 더 블루스 (Singin' the Blues)1927 (24세)실황 Keith Nichols New Paul Whiteman Orchestra · 2014 Whitley Bay

트럼보어와의 호흡이 절정에 오른 순간으로, 이후 여러 연주자가 그의 솔로를 그대로 외워 연주했다.

  • 트럼보어의 색소폰 솔로가 먼저 서정적인 분위기를 깔고, 이어지는 코넷 솔로가 그 위에 새로운 가락을 얹으며 대화하듯 이어간다.
  • 코넷 솔로는 도입부터 여백을 넉넉히 두고 시작해, 짧은 숨을 고르듯 쉬었다 이어가는 프레이징이 특징이다.
  • 원곡 멜로디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처음부터 새로 지어 부르듯 연주한 이 솔로는 훗날 많은 관악기 주자들이 음표 하나까지 그대로 옮겨 연습한 것으로 유명하다.
  • 리듬 섹션은 뒤로 살짝 물러나 두 관악기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도록 절제된 반주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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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어 미스트 (In a Mist)1927 (24세)연주 Bryan Wright (피아노)

코넷이 아닌 피아노로 직접 남긴 유일한 독주 녹음으로, 드뷔시풍 화성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 도입부 화음이 또렷한 으뜸음 없이 흐릿하게 번지며 시작해, 안개 낀 풍경 같은 인상주의 화성의 색채를 낸다.
  • 재즈의 즉흥적인 리듬감과 클래식 피아노 독주곡의 정제된 구조가 한 곡 안에서 나란히 섞여 있다.
  • 스튜디오에서 한 번에 녹음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수정 없이 그 순간의 연주를 그대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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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화이트맨의 무대 · 1927–1929 (24–26세)

(발탁) 1927년 말, 당대 가장 큰 규모와 명성을 지닌 폴 화이트맨 악단에 발탁됐다. 화이트맨은 그를 각별히 아꼈고, 지각과 결근이 잦아도 자리를 지켜 주며 급여를 계속 지급했다. 개런티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넉넉해졌고, 처음으로 경제적 여유를 누렸다. (스위트수) 1928년 녹음한 「스위트 수, 저스트 유」에는 화이트맨 악단 시절을 대표하는 솔로가 담겼다. 대편성 오케스트라 한가운데서도 그의 코넷은 묻히지 않고 또렷하게 떠올랐고, 동료 단원들은 그가 리허설 때와 실황 연주 때 전혀 다른 즉흥을 들려주는 데 놀라곤 했다. (술) 그러나 금주법 시대의 밀주는 이미 그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잦은 순회공연과 밤샘 녹음, 불면이 겹치며 술이 늘었고, 1928년 말에는 무대 위에서 쓰러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화이트맨은 그를 해고하는 대신 급여를 유지한 채 요양을 권했다.

♪스위트 수, 저스트 유 (Sweet Sue, Just You)1928 (25세)실황 Transatlantic Guitar Trio (Joscho Stephan 외)

화이트맨이라는 최대 규모 악단 안에서도 묻히지 않았던 그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녹음이다.

  •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두꺼운 합주 사이를 뚫고 나오는 코넷 솔로가 짧지만 또렷하게 각인된다.
  • 리허설 때와 다른 즉흥을 실황에서 들려주었다는 동료들의 증언대로, 정해진 편곡 안에서도 매번 다른 프레이즈를 골랐다.
  • 32마디 대중가요 형식(에이에이비에이) 위에서 솔로가 짧게 등장했다가 다시 오케스트라 합주로 돌아가는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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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무너지는 몸 · 1929–1931 (26–28세)

(귀향) 1929년,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데이븐포트 부모 집으로 돌아가 요양했다. 화이트맨 악단의 자리는 대역 연주자 앤디 시크리스트가 채웠고, 그는 재기를 다짐하며 뉴욕으로 돌아왔지만 예전 같은 꾸준한 자리를 얻지 못했다. (마지막녹음) 1930년 9월, 임시로 꾸린 악단과 함께 「아일 비 어 프렌드 위드 플레저」 등을 녹음했다. 한때의 탄력을 잃은 연주였지만, 짧은 프레이즈 안에서도 여백을 지키려는 습관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고독) 뉴욕 퀸스의 셋방에서 홀로 지내며 술과 씨름했다. 결혼도 자녀도 없었고, 가까이 지내던 이들은 카마이클을 비롯한 몇몇 동료 음악가뿐이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끝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채였다고 전해진다. (죽음) 1931년 8월 6일, 폐렴 합병증으로 뉴욕 퀸스의 셋방에서 세상을 떠났다. 스물여덟 살이었다. 부고는 짧았고, 재즈계 밖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아일 비 어 프렌드 위드 플레저 (I'll Be a Friend with Pleasure)1930 (27세)실황 The Chicago Stompers · 2017 Zurich

건강이 무너진 뒤 남긴 마지막 녹음 가운데 하나로, 예전의 탄력은 옅어졌지만 여백을 지키는 습관만은 남아 있다.

  • 예전보다 소리에 힘이 붙지 않은 것이 느껴지지만, 음을 아껴 쓰는 태도만은 여전하다.
  • 임시로 모인 악단인 만큼 리듬 섹션과의 호흡은 예전 트럼보어 시절만큼 촘촘하지 않다.
  • 짧은 코넷 솔로 뒤로 곡이 서둘러 마무리되는 느낌이 있어, 당시 그의 건강 상태를 짐작하게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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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신화가 되다 · 1931–1938 (28–35세)

(공백) 죽음 직후에는 그의 이름이 한동안 잊히다시피 했다. 그러나 함께 연주했던 동료들 사이에서 그의 녹음을 서로 나눠 듣고 필사하는 문화가 이어졌고, 조금씩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다. (소설) 1938년 도러시 베이커가 발표한 소설 「영 맨 위드 어 혼」은 그의 삶을 느슨하게 본뜬 이야기로 알려졌고, 이후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다만 소설 속 인물과 실제 삶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평가) 오늘날 그는 뜨겁게 내지르는 쪽이 아니라 여백과 절제로 말하는 코넷 연주의 계보를 연 인물로 평가받는다. 짧은 생애에 남긴 녹음은 많지 않지만, 이후 세대 트럼펫·코넷 주자들이 거듭 되짚어 듣는 참고점이 됐다.

덜 알려진 이야기

동료 코넷·트럼펫 주자들은 그의 운지법이 표준과 달랐다고 입을 모았다. 애초에 정식 교습 없이 귀로만 배운 탓에 밸브를 누르는 손가락 자리가 관습적인 방식과 어긋나 있었는데, 이 어긋난 손자리가 오히려 남들과 다른 음색과 프레이징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후대 연구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악보를 빠르게 읽어 내는 데는 끝내 서툴렀다. 대형 편성인 화이트맨 악단에 들어간 뒤에도 복잡한 편곡 악보를 그 자리에서 다 읽어 내지 못해, 리허설 중에 옆자리 단원이 파트를 짚어 주거나 스스로 귀로 들으며 자기 파트를 외워 버리는 방식으로 넘어가곤 했다고 전해진다. 당대 최고 악단의 스타 솔로이스트가 정작 악보에는 서툴렀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세상을 떠난 뒤 가족은 사생활과 관련한 기록을 거의 공개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초기에 떠돌던 이야기들 중에는 과장되거나 근거가 불분명한 것이 적지 않았다. 수십 년이 지난 뒤 리처드 서드홀터와 필립 에번스 같은 연구자들이 동시대인들의 증언과 기록을 다시 모아 대조하면서야 비로소 신화와 사실을 가려내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재즈 연주자로는 드물게 스트라빈스키와 드뷔시, 라벨의 음반을 즐겨 모았다. 공연 전에 이런 클래식 음반을 틀어 놓고 들었다는 동료들의 회고가 남아 있으며, 「인 어 미스트」를 비롯해 그가 남긴 몇 안 되는 작곡에는 그 취향이 뚜렷하게 배어 있다.

용어 노트 📚🔎

코넷

(말뜻) 코넷은 프랑스어 코르네(cornet)에서 왔고, 이는 뿔이라는 뜻의 코른(corne)에 작게라는 뜻이 붙은 말이다. 작은 뿔피리라는 뜻이 이름에 담겨 있는 셈이다. (재즈에서) 트럼펫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관이 더 짧고 둥글게 감겨 있어 소리가 조금 더 부드럽고 둥글게 난다. 학교 관악부에서 트럼펫과 코넷을 나란히 놓고 보면 코넷 쪽이 몸통이 짧고 통통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즉흥연주

(말뜻) 즉흥(卽興)의 즉(卽)은 곧, 흥(興)은 흥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흥에 따라 연주한다는 뜻이 이름에 이미 담겨 있다. (재즈에서) 정해진 악보 없이 그 순간 떠오르는 가락을 만들어 연주하는 것을 가리킨다. 정해진 노래를 부르는 대신 친구들과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가사와 가락을 지어내는 것과 비슷하다.

프레이징

(재즈에서) 음을 어디서 끊고 어디서 이어 붙이는지, 문장을 말할 때 숨을 쉬는 자리와 비슷한 것을 가리킨다. 같은 문장도 어디서 쉬어 읽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듯, 같은 멜로디도 프레이징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린다.

인상주의 화성

(말뜻) 인상(印象)은 도장을 찍듯 마음에 새겨진 느낌이라는 뜻이다. 인상주의는 19세기 말 프랑스 화가들이 사물의 뚜렷한 윤곽 대신 빛과 순간의 느낌을 그리려 한 데서 이름이 왔고, 드뷔시 같은 작곡가들이 이 태도를 음악에 옮겨 놓았다. (재즈에서) 정해진 으뜸음으로 딱 떨어지지 않고 여러 화음이 뿌옇게 겹치며 흐릿한 색채를 내는 화성을 가리킨다. 물감을 또렷한 선 없이 번지듯 칠해 안개 낀 풍경을 표현하는 미술 기법과 비슷한 효과를 화음으로 낸다고 보면 된다.

금주법

(재즈에서) 1920년대 미국에서 술의 제조와 판매를 법으로 금지했던 시기를 가리킨다. 이 때문에 술은 몰래 파는 술집을 통해 은밀히 퍼졌고, 그런 술집들이 재즈 밴드를 고용하면서 금주법 시대와 재즈의 전성기가 묘하게 겹쳤다. 학교에서 특정 물건을 금지하면 오히려 몰래 돌려보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사회 전체에서 벌어진 셈이다.

리버보트 재즈

(재즈에서) 미시시피강을 오가는 유람선 위에서 연주되던 초기 재즈를 가리킨다. 뉴올리언스의 악단들이 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며 이 음악을 실어 날랐고, 강변 도시의 소년들은 배가 정박할 때마다 강둑에 몰려나와 귀동냥으로 재즈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