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ivier Messiaen
“나는 믿음을 가지고 태어났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세실 소바주
시인이었던 어머니로, 아들을 품은 동안 쓴 시집을 그에게 바쳤고 그가 열여덟 살 때 세상을 떠났다.
- 영향클로드 드뷔시
열 살 무렵 선물받은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악보가 그를 작곡가의 길로 이끌었다.
- 스승폴 뒤카
파리 음악원의 작곡 스승으로, 새들의 노래에 귀 기울이라고 권했다고 전해진다.
- 가족클레르 델보
첫 아내이자 바이올리니스트로 『미를 위한 시』의 주인공이었으며, 오랜 투병 끝에 1959년 세상을 떠났다.
- 가족이본 로리오
제자이자 두 번째 아내로, 그의 피아노 작품 대부분을 초연하고 유작을 정리했다.
- 제자피에르 불레즈
그의 화성 수업에서 배운 뒤 전후 아방가르드를 이끌었고, 지휘자로서 스승의 작품을 널리 알렸다.
I. 시인의 아들 · 1908–1930 (0–22세)
(어머니) 1908년 12월, 프랑스 아비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피에르 메시앙은 영어 교사이자 셰익스피어 번역가였고, 어머니 세실 소바주는 시인이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가진 동안 연작시 『싹트는 영혼』을 써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에게 바쳤다. 메시앙은 훗날 이 시집이 자기 운명을 미리 말해 주었다고 여겼다. 1912년에는 동생 알랭이 태어났고, 그도 자라서 시인이 되었다. (그르노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아버지는 입대했고, 어머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그르노블의 외가로 옮겼다. 알프스의 산과 호수 사이에서 보낸 이 시절, 소년은 혼자 피아노를 익혔고, 셀로판지로 조명을 꾸민 장난감 무대에서 동생에게 셰익스피어 극을 공연해 보였다. 산의 풍경은 평생 그의 마음속 고향으로 남았다. (펠레아스) 전쟁이 끝난 뒤 가족은 잠시 낭트에 살았다. 열 살 무렵 그곳의 화성 교사 장 드 지봉이 드뷔시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악보를 선물했고, 메시앙은 이 일을 벼락 같은 계시로 기억했다. 1919년 가족이 파리에 자리 잡자 그는 열한 살에 파리 음악원에 들어갔다. (음악원) 음악원에서 그는 마르셀 뒤프레에게 오르간과 즉흥연주를, 모리스 에마뉘엘에게 고대 그리스 리듬과 음악사를, 폴 뒤카에게 작곡을 배웠다. 뒤카는 그에게 새들의 노래를 들으라고 권한 스승으로 전해진다. 1927년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그는 오르간곡 『천상의 향연』을 썼고, 1929년에는 첫 출판작인 피아노 『전주곡집』을 내놓았다. 어머니를 잃은 직후 그가 처음 세상에 내놓은 음악은 크게 외치지 않고 고요하게 머무는 기도였다.
어머니를 잃은 이듬해, 스무 살 학생이 쓴 오르간곡이다. 성체를 묵상하는 이 느린 기도에서 이미 그의 신앙과 시간 감각이 또렷하다.
- 악보에는 ‘매우 느리게, 황홀하게’라는 뜻의 지시가 붙어 있다. 연주자에 따라 6분 남짓에서 9분 넘게까지 차이가 나니, 그 극단적인 느림이 소리를 어떻게 공중에 띄우는지 음반끼리 비교해 들어 볼 만하다.
- 화음은 반음과 온음이 번갈아 늘어선 음계(메시앙의 제2선법)에서 나온다. 장조도 단조도 아닌 묘한 빛깔이 바로 여기서 생긴다.
- 후반부에서 발로 치는 건반(페달)이 높은 음색으로 짧게 끊어 치는(스타카토) 음을 톡톡 떨어뜨린다. 흔히 물방울에 비유되는 대목이다.
- 선율이 앞으로 나아간다기보다 같은 자리에 머물며 천천히 빛깔만 바뀌는 듯 들린다. 시간이 멈춘 느낌을 따라가 보자.
II. 트리니테의 오르간 · 1931–1939 (23–31세)
(트리니테) 1931년, 스물두 살의 메시앙은 파리 트리니테 성당의 수석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그는 이 자리를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년 넘게 지켰다. 주일 미사마다 즉흥연주를 했는데, 낯선 화음에 당황한 신자들의 항의가 성당에 들어오기도 했다. 오르가니스트의 급여는 넉넉하지 않아서, 그는 에콜 노르말 음악학교와 스콜라 칸토룸에서도 가르치며 생계를 꾸렸다. (미) 1932년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클레르 델보와 결혼했다. 그는 아내를 ‘미(Mi)’라는 애칭으로 불렀고, 결혼 선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주제와 변주』를 썼다. 1936년의 가곡집 『미를 위한 시』에는 결혼을 성사(聖事)로 보는 신앙과 아내를 향한 사랑이 함께 담겼다. 1937년에는 아들이 태어났고, 이듬해의 가곡집 『땅과 하늘의 노래』에는 아기를 노래한 곡이 들어 있다. (신앙) 메시앙에게 가톨릭 신앙은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이 아니라 처음부터 서 있던 자리였다. 『승천』(1932–33)과 『주의 탄생』(1935) 같은 오르간 연작은 성경 구절과 신학 해설을 악보에 붙인 묵상이었다. 이 무렵 그는 조바꿈이 한정된 선법, 인도 고대 리듬인 탈라, 앞뒤를 뒤집어도 같은 비가역 리듬을 정리하며 박을 고르게 세지 않는 자기만의 음악 언어를 다듬었다. (동인) 1936년에는 앙드레 졸리베, 다니엘레쥐르, 이브 보드리에와 함께 ‘젊은 프랑스’라는 모임을 꾸렸다. 이들은 가볍고 기계적인 음악에 맞서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음악을 내세웠다.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서는 전자 악기 옹드 마르트노 여섯 대를 위한 『아름다운 물의 축제』를 썼다. 이 악기는 이후 그의 대작들에 거듭 등장하게 된다.
트리니테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며 신혼을 보내던 시절의 대표작이다. 성탄의 신비를 아홉 개의 묵상으로 풀었고, 서문에서 자신의 리듬과 선법을 처음으로 체계 있게 설명했다.
- 마지막 곡 「우리 가운데 계신 하느님」은 페달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뚝뚝 떨어지는(하행) 주제로 시작한다. 하느님이 사람들 가운데로 내려오는 모습으로 널리 해석된다.
- 같은 곡의 후반은 손가락을 쉬지 않고 몰아치는 빠른 곡(토카타)으로 치달아, 오르간의 모든 음전을 연 듯한 큰 화음으로 끝난다. 성당 오르간의 웅장함을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대목이다.
- 「천사들」에서는 높은 음역의 빠르고 반짝이는 음형이 기쁨에 들뜬 천사들을 그린다.
- 「목동들」처럼 박이 고르지 않은 곡에서는 짧은 음 하나가 덧붙거나 빠져 걸음이 자꾸 엇나가는 듯한 리듬을 느껴 보자. 메시앙이 인도 리듬에서 가져온 방식이다.
III. 시간의 끝 · 1939–1941 (31–33세)
(징집)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메시앙은 의무병으로 징집되어 베르됭 근처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클라리넷 연주자 앙리 아코카, 첼리스트 에티엔 파스키에와 함께 새벽 보초를 서며 새들이 깨어나는 소리를 들었다. 아코카를 위해 쓴 클라리넷 독주곡은 훗날 「새들의 심연」이 되었다. (포로) 1940년 6월 그는 독일군에 붙잡혔고, 괴를리츠의 포로수용소 스탈라크 VIII-A로 보내졌다. 수용소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장 르 불레르까지 만나자, 그는 우연히 한곳에 모인 클라리넷·바이올린·첼로·피아노를 위해 곡을 쓰기 시작했다. 법률가 출신의 독일인 경비병 카를알베르트 브륄은 오선지와 연필을 구해 주고 조용히 작곡할 공간을 내주었다. (초연) 1941년 1월 15일, 추운 막사에서 포로와 간수들을 청중으로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가 초연되었다. 메시앙은 건반이 제대로 눌리지 않는 낡은 피아노를 맡았다. 그는 이날을 두고 자기 음악이 그토록 주의 깊게 이해받은 적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묵시록) 곡은 요한묵시록 10장에서 출발했다. 무지개를 두른 천사가 더 이상 시간이 없으리라고 선언하는 장면이다. 메시앙은 이 곡이 포로 생활을 그린 음악이 아니라 시간을 넘어선 영원에 대한 묵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굶주림과 추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감금 속에서 영원을 노래한 이 곡에는 그 시절의 절박함이 짙게 배어 있다. 그는 1941년 봄 석방되어 파리로 돌아왔다.
괴를리츠 포로수용소에서 우연히 모인 네 연주자를 위해 쓰고 그 막사에서 초연한 곡이다. 갇힌 시간 속에서 시간 너머의 영원을 노래했다.
- 1악장 「수정의 전례」에서 클라리넷은 지빠귀, 바이올린은 나이팅게일을 흉내 낸다. 그 아래에서 피아노는 29개의 화음과 17개의 음길이를 서로 어긋나게 되풀이해, 끝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시간을 만든다.
- 3악장 「새들의 심연」은 클라리넷 혼자 연주한다. 거의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에서 아주 큰 소리로 한 음을 길게 부풀리는(크레셴도) 대목은 클라리넷 연주자의 숨과 조절력을 보여 주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 5악장은 첼로가 ‘한없이 느리게, 황홀하게’ 노래하는 기도다. 피아노의 고요한 화음 위에서 첼로의 긴 선율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지 귀 기울여 보자.
- 6악장 「일곱 나팔을 위한 분노의 춤」은 네 악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선율을 한 목소리(유니즌)로 연주한다. 박이 고르지 않아 연주자들 사이에서 맞추기 어려운 악장으로 악명 높다.
- 마지막 8악장에서 바이올린은 아주 느리게 점점 높은 음으로 올라가 사라지듯 끝난다. 메시앙은 이것을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인간으로 설명했다.
IV. 사랑과 죽음 · 1941–1949 (33–41세)
(교실) 1941년 그는 파리 음악원 화성학 교수가 되었다. 그의 교실은 곧 정해진 교과를 넘어선 토론장이 되었다. 그는 모차르트의 리듬 강세, 드뷔시의 화음,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의 리듬, 알반 베르크의 『서정 모음곡』을 분석했다. 1944년에는 자신의 기법을 정리한 『나의 음악 언어의 기법』을 펴냈다. 이 무렵 젊은 피에르 불레즈가 그의 화성 수업에 들어왔다. (이본) 1943년, 열아홉 살의 피아니스트 이본 로리오가 그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녀의 압도적인 기교와 기억력은 메시앙의 피아노 음악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자신과 로리오가 함께 칠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아멘의 환영』(1943)을 썼고, 이어 두 시간에 이르는 피아노 연작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시선』(1944)을 썼다. (그늘) 집안에는 그늘이 드리웠다. 클레르 델보는 1940년대 후반부터 건강이 나빠졌고, 수술을 받은 뒤 서서히 기억을 잃어 갔다. 메시앙은 병든 아내와 어린 아들을 돌보며 가르치고 작곡했다. 그 사이 로리오에게 마음이 기울었지만,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리스탄) 이 갈등은 사랑과 죽음을 노래한 세 작품, 이른바 ‘트리스탄 삼부작’으로 흘러들었다. 페루 민요를 끌어들인 가곡집 『하라위』(1945), 보스턴 교향악단의 쿠세비츠키가 의뢰한 『투랑갈릴라 교향곡』(1946–48), 합창곡 『다섯 개의 르샹』(1948)이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처럼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이 공통 주제였다. 『투랑갈릴라』는 1949년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로 보스턴에서 초연되었고, 피아노 독주는 로리오가 맡았다.
제자 이본 로리오의 기교를 염두에 두고 쓴 두 시간짜리 피아노 연작이다. 로리오가 1945년 초연했고, 두 사람의 음악적 동반은 여기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첫 곡 「아버지의 시선」에서 낮고 느린 화음으로 제시되는 ‘하느님의 주제’는 여러 곡에 모습을 바꾸어 다시 나타난다. 이 주제가 어디서 돌아오는지 찾아가며 들으면 두 시간짜리 연작의 지도가 잡힌다.
- 10번 「기쁨의 성령의 시선」은 거칠고 열광적인 춤이다. 양손이 건반 끝에서 끝까지 튀어 다니는 대목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이 연작의 최고 난도 구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15번 「아기 예수의 입맞춤」은 자장가처럼 부드럽게 흔들리는 곡이다. 같은 연작 안에서 격렬한 곡들과 얼마나 다른 빛깔인지 대비해서 들어 보자.
- 6번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생겨났다」는 한 주제를 여러 성부가 차례로 쫓아가는 푸가 형식으로 짜여 있어, 혼돈 속에서 세계가 만들어지는 거대한 과정처럼 들린다.
아내의 병과 로리오를 향한 감정 사이에서 쓴 ‘트리스탄 삼부작’의 중심이다. 사랑의 기쁨과 죽음을 열 개의 악장으로 펼쳤다.
- 제목은 산스크리트어로, 메시앙은 ‘투랑가’를 흐르는 시간과 움직임으로, ‘릴라’를 신의 놀이이자 사랑으로 설명했다. 사랑의 노래이자 시간의 놀이라는 두 겹의 뜻을 품고 들으면 좋다.
- 전자 악기 옹드 마르트노가 오케스트라 위로 떠오르며 길게 떨리는 고음을 낸다. 사람 목소리와 사이렌 사이 어딘가처럼 들리는 이 음색이 사랑의 주제를 노래하는 순간에 귀를 기울여 보자.
- 트롬본과 튜바가 무겁게 내리누르는 ‘조각상 주제’와 클라리넷 두 대가 부드럽게 부르는 ‘꽃 주제’가 곡 전체에 되풀이된다. 두 주제의 대비가 이 곡의 뼈대다.
- 5악장 「별들의 피의 기쁨」은 오케스트라 전체가 미친 듯이 추는 춤이다. 이어지는 6악장 「사랑의 잠의 정원」에서는 현악기와 옹드가 사랑의 주제를 아주 느리게 펼치고, 그 위에서 피아노가 새소리를 흩뿌린다.
- 피아노 독주는 거의 협주곡처럼 크고 어렵다. 초연 피아니스트였던 로리오의 녹음과 후대 피아니스트들의 녹음을 비교해 보는 것도 애호가들의 즐거움이다.
V. 새들의 노래 · 1949–1961 (41–53세)
(실험) 1949년 독일 다름슈타트 여름 강좌에서 그는 음높이·길이·세기·음색을 하나의 체계로 묶은 짧은 피아노곡 『음가와 강도의 모드』를 썼다. 이 곡은 불레즈와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에게 총렬음악의 길을 열어 주었다. 슈토크하우젠은 1952년 파리에서 그의 수업을 들었다. 건축가로 일하던 이아니스 크세나키스에게는 화성 공부를 다시 시키는 대신 수학과 건축을 음악에 쓰라고 권했다. (전환) 그러나 메시앙 자신은 그 길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체계와 실험이 넘치던 1950년대 초, 그는 막다른 곳에 섰다고 느꼈고 새들에게서 답을 찾았다. 조류학자 자크 들라맹 같은 이들과 함께 프랑스 곳곳의 숲과 늪, 바닷가를 다니며 새소리를 수첩에 받아 적었다. 그는 자신을 ‘조류학자이자 리듬 연구가’라고 불렀다. (카탈로그) 관현악곡 『새들의 깨어남』(1953)과 『이국의 새들』(1956)에 이어 피아노 연작 『새의 카탈로그』(1956–58)가 나왔다. 열세 곡마다 한 종의 새와 그 새가 사는 절벽, 늪, 바다의 풍경이 담겼고, 초연은 로리오가 맡았다. 그는 이 무렵 새소리야말로 인간이 만든 어떤 체계보다 자유로운 리듬이라고 여겼다. (이별) 그사이 클레르의 병은 깊어져, 그녀는 1950년대 초부터 요양 시설에서 지냈다. 메시앙은 자주 그녀를 찾아갔다. 클레르는 1959년 4월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듬해 새소리와 시간의 색채를 엮은 관현악곡 『크로노크로미』를 발표했고, 1961년 7월 이본 로리오와 조용히 결혼했다. 오랜 간병의 시간이 끝나고, 음악과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생긴 것이다.
실험의 막다른 길에서 새들에게 답을 구한 시기의 결실이다. 숲과 늪을 다니며 받아 적은 새소리를 풍경과 함께 피아노 열세 곡에 담았다.
- 악보마다 새가 사는 장소와 시간, 풍경이 글로 적혀 있다. 첫 곡 「알프스의 붉은부리까마귀」는 새소리보다 먼저 거대한 절벽을 그리는 무거운 화음으로 시작한다. 새와 배경을 나누어 들어 보자.
- 둘째 곡 「꾀꼬리」의 프랑스어 이름 ‘로리오(loriot)’는 초연자 이본 로리오의 성과 소리가 닮았다. 맑고 피리 같은 꾀꼬리 소리가 여름 숲 위로 울린다.
- 「개개비」는 30분이 넘는 가장 긴 곡으로, 늪의 하루가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간다. 낮의 소란과 밤의 고요가 어떻게 바뀌는지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들으면 좋다.
- 실제 새소리는 사람이 치기에 너무 빠르고 높아서, 메시앙은 속도를 늦추고 음을 낮추어 옮겼다. 그래서 새소리가 똑같이 들리기보다 새소리를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들린다.
VI. 색채와 협곡 · 1962–1978 (54–70세)
(일본) 1962년 그는 로리오와 함께 일본을 여행했고, 그 인상을 『일곱 개의 하이카이』에 담았다. 궁중음악 가가쿠의 울림과 일본의 새, 신사와 정원의 풍경이 짧은 곡들로 그려졌다. 이 시기부터 부부는 함께 세계를 다니며 새소리를 채집했고, 로리오는 메시앙 작품의 첫 연주자이자 기록자 역할을 했다. (색채) 메시앙은 소리에서 색을 보았다. 화음마다 고유한 색이 떠오르는 공감각을 지녔다고 말했고, 악보에 색 이름을 적어 두기도 했다. 『천상의 도시의 색채』(1963)는 그 감각을 정면에 내세운 곡이었다. 이어 오라토리오 규모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변모』(1965–69)를 썼다. (추모) 1964년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는 두 차례 세계대전의 전사자를 기리는 곡을 의뢰했다. 관악기와 금속 타악기로만 된 『그리고 나는 죽은 이들의 부활을 기다리노라』는 1965년 생트샤펠에서 먼저 연주되었고, 이어 샤르트르 대성당에서 드골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주되었다.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그에게 이 의뢰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1966년에는 음악원의 작곡 교수가 되었다. (협곡) 1972년 미국의 후원자 앨리스 털리가 의뢰한 곡을 위해 유타주의 브라이스 캐니언을 찾았다. 붉은 바위와 그곳의 새들은 『협곡에서 별들로』(1971–74)가 되었고, 1978년 유타주는 한 봉우리에 ‘메시앙 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에라스뮈스상(1971)과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1975) 같은 큰 상을 받으며 젊은 날의 빠듯한 살림에서도 벗어났다. 1978년 그는 음악원에서 물러났다.
두 차례 세계대전의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 국가가 의뢰한 곡이다. 포로수용소에서 돌아온 작곡가가 전쟁의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을 노래했다.
- 현악기가 하나도 없고 목관·금관 악기와 종·공(징)·탐탐 같은 금속 타악기로만 편성되었다. 메시앙은 성당과 야외, 높은 산에서 울려 퍼질 음악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 셋째 악장에는 아마존의 새 우이라푸루의 노래가 들어 있다. 목관 악기가 그 새소리를 맡는데, 무거운 금관 사이로 들리는 가벼운 새소리의 대비에 귀 기울여 보자.
- 마지막 악장에서는 거대한 공과 탐탐이 아주 작은 소리에서 압도적인 큰 소리로 점점 부풀어 오른다(크레셴도). 실연에서는 몸으로 느껴질 만큼 큰 울림이라, 녹음으로 들을 때도 볼륨을 넉넉히 두는 편이 좋다.
- 악장마다 성경 구절이 제목으로 붙어 있다. 제목을 먼저 읽고 들으면 각 악장이 무엇을 묵상하는지 따라가기 쉽다.
VII. 아시시의 성인 · 1975–1992 (67–84세)
(오페라) 오래도록 오페라는 쓰지 않겠다고 말해 온 그였지만, 파리 오페라 총감독 롤프 리버만의 거듭된 권유 끝에, 엘리제궁 만찬 자리에서 퐁피두 대통령이 직접 부탁한 일이 계기가 되어 마음을 돌렸다. 1975년 그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 착수했다. 대본도 직접 썼다. 작업은 8년이 걸렸고, 그는 지치고 건강이 나빠져 이 곡이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성인) 그가 고른 인물은 새들에게 설교했다고 전해지는 성인이었다. 가난 속의 기쁨, 나병 환자를 끌어안는 사랑, 고통을 받아들이는 믿음은 메시앙이 평생 음악으로 말하려던 것과 맞닿아 있었다. 그는 프란치스코를 그리스도를 가장 닮은 사람이라고 보았다. 1983년 11월, 세이지 오자와의 지휘로 파리 오페라에서 초연되었다. (만년) 마지막이 되리라던 예상과 달리 그는 계속 썼다. 오르간 연작 『성체의 책』(1984)이 나왔고, 뉴욕 필하모닉의 창단 150주년을 위해 대규모 관현악곡 『저 너머의 빛』(1987–91)을 썼다. 여름이면 알프스 자락 프티셰 호숫가의 집에서 작곡했다. 어린 시절 그르노블에서 바라보던 산들이 가까운 곳이었다. (죽음) 1992년 4월 27일, 그는 파리 근교 클리시의 병원에서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 너머의 빛』은 그해 11월에야 초연되어 그는 듣지 못했다. 미완으로 남은 『네 명을 위한 협주곡』은 로리오와 동료 음악가들이 마무리했다. 그는 프티셰가 속한 생테오프레 마을 묘지에 묻혔고, 2010년 세상을 떠난 로리오도 그 곁에 묻혔다.
8년에 걸쳐 대본까지 직접 쓴 단 하나의 오페라다. 신앙과 새소리, 색채와 리듬, 평생의 음악 언어가 모두 이 네 시간짜리 무대에 모였다.
- 3장 「나병 환자에게 입맞춤」에서 프란치스코가 나병 환자를 끌어안는 순간 음악이 갑자기 환하게 열린다. 혐오가 사랑으로 바뀌는 순간을 오케스트라의 빛깔 변화로 들어 보자.
- 5장 「음악가 천사」에서 천사가 연주하는 천상의 음악은 옹드 마르트노 세 대가 맡는다. 그 소리를 듣고 프란치스코가 정신을 잃는데, 전자 악기의 떨리는 음색이 이 세상 소리가 아닌 듯 들린다.
- 6장 「새들에게 하는 설교」는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메시앙이 여러 나라에서 모은 새소리가 오케스트라 곳곳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다.
- 마지막 장 「죽음과 새로운 생명」은 대규모 합창이 오래 지속되는 장대한 다장조(C장조) 화음으로 끝난다. 평생 복잡한 화음을 쓴 작곡가가 가장 단순한 화음으로 마무리한 결말이다.
덜 알려진 이야기
(전설) 메시앙은 수용소 초연을 회상하며 청중이 5천 명이었고 첼로는 줄이 세 개뿐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음반 해설과 공연 프로그램에 그대로 실렸다. 그러나 클라리넷 연주자 리베카 리신이 살아남은 연주자들과 관계자들을 인터뷰해 2003년 펴낸 책은, 첼로에 줄이 네 개 다 있었고 청중도 수백 명 수준이었음을 보여 주었다. 작곡가 자신의 말이었기에 오래 의심받지 않은 사례다. (경비병) 같은 연구는 독일인 경비병 카를알베르트 브륄의 역할도 드러냈다. 그는 오선지를 구해 주고 작곡할 공간을 마련했을 뿐 아니라, 메시앙이 석방되는 데에도 힘을 보탰다고 전해진다. ‘적군 수용소에서 탄생한 걸작’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이처럼 도움을 준 독일인은 오랫동안 각주에만 머물렀다. (일기) 메시앙은 오랫동안 세속의 고민과 무관한 신비주의자로 그려졌다. 이 인상을 바꾼 것은 로리오가 공개를 허락한 그의 일기와 편지였다. 피터 힐과 나이절 시몬이 이를 바탕으로 2005년 펴낸 전기는 아내의 투병과 로리오를 향한 감정 사이에서 그가 겪은 괴로움, 생계를 위해 여러 학교를 오가던 빠듯한 살림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다. 사랑과 죽음을 노래한 ‘트리스탄 삼부작’이 왜 그 시기에 나왔는지도 이 자료로 더 분명해졌다.
용어 노트 📚🔎
조바꿈이 한정된 선법
(말뜻) 선법(旋法)은 선율(旋)을 만드는 법(法), 곧 어떤 음들을 골라 쓰는지에 대한 규칙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메시앙이 직접 정리한 특별한 음계들이다. 보통 도레미 음계는 시작음을 옮기면 열두 가지 서로 다른 음계가 되지만, 이 선법들은 몇 번만 옮겨도 처음과 똑같은 음들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장조도 단조도 아닌,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신비한 빛깔이 난다. 체스판의 무늬를 떠올리면 쉽다. 체스판은 한 칸만 옮겨도 무늬가 바뀌지만 두 칸 옮기면 처음과 같은 무늬가 된다 — 이 선법도 조금만 옮기면 같은 모양으로 돌아온다.
비가역 리듬
(말뜻) 가역(可逆)은 거꾸로(逆) 될 수 있다(可)는 뜻이고, 비가역(非可逆)은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메시앙이 쓴 프랑스어 이름은 ‘거꾸로 돌릴 수 없는 리듬’이다. (음악에서) 앞에서 읽든 뒤에서 읽든 똑같은 리듬, 곧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인 리듬이다. 거꾸로 돌려도 똑같으니 ‘거꾸로 만든 새 리듬’을 얻을 수 없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메시앙은 이것을 처음과 끝이 같은 영원의 상징으로 여겼다. ‘기러기’나 ‘토마토’처럼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같은 낱말을 떠올리면 된다 — 리듬으로 만든 회문인 셈이다.
탈라
(말뜻) 탈라(tāla)는 산스크리트어로 손뼉, 손바닥을 뜻하는 말에서 나왔다. 손뼉으로 박을 세던 데서 리듬 단위의 이름이 되었다. (음악에서) 인도 전통 음악에서 정해진 길이로 되풀이되는 리듬의 틀이다. 메시앙은 13세기 인도 학자가 정리한 120가지 탈라 목록을 프랑스의 음악 백과사전에서 읽고 큰 영향을 받았다. 서양 음악처럼 한 마디를 고르게 나누지 않고, 짧고 긴 음을 불규칙하게 이어 붙인다. 줄넘기에서 ‘하나 둘 셋’을 고르게 넘지 않고 ‘짧게, 짧게, 길게’처럼 정해진 무늬로 넘는 놀이와 비슷하다.
옹드 마르트노
(말뜻) 옹드(ondes)는 프랑스어로 물결, 전파라는 뜻이고, 마르트노는 1928년 이 악기를 만든 모리스 마르트노의 이름이다. ‘마르트노의 전파’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전기 신호로 소리를 만드는 초기 전자 악기다. 건반으로 연주할 수도 있고, 손가락에 낀 반지에 연결된 줄을 미끄러뜨려 음과 음 사이를 끊김 없이 미끄러지듯 오갈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 목소리처럼 떨리며 이어지는 신비한 소리가 난다. 메시앙은 『투랑갈릴라 교향곡』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서 이 악기에 중요한 역할을 맡겼다. 공포 영화나 SF 영화에서 들리는 ‘우우웅’ 하고 미끄러지는 소리를 떠올리면 비슷하다.
총렬음악
(말뜻) 총렬(總列)은 모든 것(總)을 줄 세운다(列)는 뜻이다. 음높이만이 아니라 음악의 모든 요소를 정해진 순서에 따라 배열한다는 말이다. (음악에서)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은 음높이의 순서만 미리 정했지만, 총렬음악은 음의 길이, 세기, 음색까지 모두 미리 정한 목록에 따라 배열한다. 메시앙의 『음가와 강도의 모드』가 이 생각을 처음 보여 주었고, 불레즈와 슈토크하우젠이 이를 발전시켰다. 게임에서 캐릭터의 키, 속도, 힘, 색깔을 직접 고르지 않고 미리 정한 표에 따라 하나씩 자동으로 정해지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공감각
(말뜻) 공감각(共感覺)은 여러 감각이 함께(共) 일어난다는 뜻이다. 영어 이름 시네스테지아(synesthesia)도 그리스어로 ‘함께 느낀다’는 뜻이다. (음악에서) 소리를 들으면 색이 보이는 것처럼, 한 감각의 자극에 다른 감각이 저절로 따라오는 현상이다. 메시앙은 화음을 들으면 색이 떠오른다고 말했고, 작품에 ‘파랑-주황’처럼 색 이름을 적어 두기도 했다. 그에게 작곡은 소리로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드는 일과 비슷했다. 레몬 이야기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이거나, 어떤 노래를 들으면 특정한 색이 떠오르는 경험을 해 본 적 있다면 그와 조금 닮은 느낌이다.
즉흥연주
(말뜻) 즉흥(卽興)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卽) 흥(興)이 일어나는 대로 한다는 뜻이다. (음악에서) 미리 써 둔 악보 없이 그 자리에서 음악을 지어 연주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성당 오르가니스트들은 미사의 흐름에 맞춰 즉흥연주를 하는 전통이 있었고, 메시앙은 60년 넘게 트리니테 성당에서 매주 즉흥연주를 했다. 그 가운데 많은 착상이 나중에 작품으로 옮겨졌다. 말하기 대회에서 준비한 원고를 읽는 대신 즉석에서 주제를 받아 바로 이야기하는 ‘즉석 발표’와 같다. (다른 데서는) 연극에서는 대본 없이 배우들이 즉석에서 장면을 만드는 즉흥극을 뜻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