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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š Janáček

레오시 야나체크 (1854–1928)

"말의 선율은 영혼을 들여다보는 창이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체코 후크발디 출생수도원 합창단크르지슈코프스키2. 교사브르노 오르간 학교즈덴카와 결혼드보르자크와 우정3. 상실아들·딸을 잃다말의 선율 채집예누파4. 인고프라하의 거절1905년 소나타예순하나의 성공5. 사랑카밀라와의 만남카탸 카바노바타라스 불바6. 정점신포니에타글라골 미사1928 오스트라바 별세야나체크1854–1928말의 억양을 음표로 옮겨 예순이 넘어 꽃핀 모…
삶의 여정 🧭🗺️
N체코후크발디1854–1865브르노1865–1928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스승파벨 크르지슈코프스키

    성 토마스 수도원 합창단을 이끌며 소년 야나체크에게 성가와 합창, 체코 민요에 바탕한 작곡의 길을 처음 열어 주었다.

  • 우정안토닌 드보르자크

    야나체크가 체코 음악의 본보기로 존경한 선배로, 초기 「현을 위한 모음곡」에 그 영향이 뚜렷하며 평생 친교를 나누었다.

  • 가족즈덴카 야나체코바

    열여섯에 그와 결혼해 두 자녀를 모두 잃는 슬픔과 남편의 연애를 견디며 끝까지 곁에 남았고, 회고록으로 그 세월을 증언했다.

  • 가족올가 야나체코바

    스물한 살로 세상을 떠난 외동딸로, 아버지는 그녀를 기억하며 「예누파」를 바쳤다.

  • 후원막스 브로트

    그의 오페라를 독일어로 옮겨 빈과 독일 무대에 소개함으로써 모라비아의 노작곡가를 유럽의 작곡가로 만들었다.

  • 영향카밀라 슈퇴슬로바

    1917년에 만난 서른일곱 살 아래의 여인으로, 「카탸 카바노바」와 「친밀한 편지」 등 말년 걸작의 영감이 되었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후크발디의 소년 · 1854–1874 (0–20세)

(뿌리) 1854년 7월, 오스트리아 제국(오늘날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작은 마을 후크발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르지는 마을 학교 교사이자 성당 오르가니스트였고, 어머니의 이름은 아말리에였다. 열 명이 넘게 태어난 자녀 가운데 여럿이 어려서 죽었다. 교사의 박봉으로 대가족을 꾸리느라 집안은 늘 궁핍했다. 산 위의 성터와 너도밤나무 숲에 둘러싸인 이 마을은 그가 평생 되돌아가는 곳이 되었다. (수도원) 1865년, 열한 살 소년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브르노 구시가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회 성 토마스 수도원의 합창단에 들어갔다. 작곡가이자 합창 지휘자인 파벨 크르지슈코프스키가 이끄는 곳이었다. 이듬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집에서 오던 도움은 거의 끊겼다. 소년은 이곳에서 성가와 오르간, 엄격한 규율을 몸에 익혔다. 이 시절의 외로움은 뒷날 그의 회고에 거듭 등장한다. (교사) 1869년 브르노 사범학교에 들어가 아버지와 같은 교사의 길을 택했다. 졸업한 뒤에는 보조 교사로 일하면서, 브르노를 떠난 크르지슈코프스키를 대신해 수도원 합창을 지휘하기도 했다. 1874~75년에는 프라하 오르간 학교에서 공부했는데, 끼니와 하숙비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이 시기의 합창곡과 오르간 곡은 스승의 전통을 성실히 따른 습작이었다. 훗날의 날카로운 개성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II. 브르노의 젊은 교사 · 1874–1888 (20–34세)

(합창) 브르노로 돌아온 그는 사범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1876년부터는 체코인 합창 단체 '베세다 브르넨스카'를 지휘했다. 독일어가 우세하던 도시에서 체코어로 노래하는 일은 그에게 곧 민족을 위한 일이었다. 그는 단원을 늘려 대규모 합창 작품에 도전했다. (우정) 이 무렵 열세 살 위의 드보르자크와 가까워졌다. 그는 드보르자크를 체코 음악의 본보기로 여겼다. 1877년에 쓴 「현을 위한 모음곡」에는 드보르자크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1875)의 영향이 뚜렷하다. 드보르자크도 후배를 따뜻하게 대했고, 두 사람의 친교는 드보르자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유학) 1879~80년에는 라이프치히와 빈의 음악원에서 차례로 공부했다. 라이프치히에서는 낯선 독일식 교육에 지치면서도 습작을 쏟아냈고, 고국의 약혼녀에게 거의 매일 편지를 보냈다. 빈에서는 몇 달 만에 학업을 접고 돌아왔다. (결혼) 1881년 7월, 사범학교 교장 에밀리안 슐츠의 딸 즈덴카와 결혼했다. 신랑은 스물일곱, 신부는 열여섯이었다. 독일어를 쓰는 집안의 딸과 열렬한 체코 민족주의자의 결혼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이듬해 딸 올가가 태어난 직후 두 사람은 한동안 따로 살았다. 1884년에 다시 합쳤고, 1888년 아들 블라디미르가 태어났다. (학교) 결혼하던 해 그는 브르노에 오르간 학교를 세워 교장이 되었고, 이 학교를 1919년까지 이끌었다. 교장직과 사범학교 수업, 합창 지휘를 함께 맡아야 겨우 살림이 돌아갔다. 작곡은 여전히 틈틈이 하는 일이었다.

III. 민요와 말의 선율 · 1888–1903 (34–49세)

(상실) 1890년, 두 살배기 아들 블라디미르가 성홍열로 숨졌다. 부부에게 남은 자식은 올가 하나였다. (민요) 그 무렵 그는 민속학자 프란티셰크 바르토시와 손잡고 모라비아 민요를 채집하고 엮는 일에 깊이 들어갔다. 고향 일대인 라슈스코 지방의 춤을 관현악으로 옮긴 「라슈스코 춤곡」과, 민속 무용을 무대에 올린 「라코시 라코치」(1891)가 이때 나왔다. 그에게 민요는 장식이 아니었다. 교과서의 박자와 화성 규칙에 들어맞지 않는, 살아 있는 말법이었다. (말) 1890년대 후반부터 그는 사람들이 말할 때의 높낮이와 리듬을 오선지에 받아 적기 시작했다. 시장 상인과 아이, 가족이 던지는 짧은 말까지 적어, 평생 모은 것이 수천 개에 이른다. 이 '말의 선율'에서 그의 성악 선율이 나왔다. 짧게 끊은 음형을 고집스럽게 되풀이하는 그의 오스티나토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누파) 1894년, 가브리엘라 프라이소바의 희곡을 바탕으로 오페라 「예누파」를 쓰기 시작했다. 운문으로 다듬은 대본(리브레토) 대신 산문 희곡을 거의 그대로 쓴 것은 당시로서는 드문 선택이었다. 이야기는 미혼모가 된 예누파와, 그 아기를 몰래 얼음 강물에 버리는 의붓어머니 코스텔니치카를 따라간다. 작곡에는 9년이 걸렸다. (올가) 작품이 끝나 갈 무렵 올가가 병에 걸렸다. 올가는 러시아어를 배우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숙부 집에 갔다가 장티푸스를 얻어 돌아왔고, 1903년 2월 스물한 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병상의 딸에게 완성된 곡을 피아노로 들려주었다고 전한다. 「예누파」의 악보는 딸의 추억에 바쳐졌다.

♪오페라 「예누파」 (JW I/4)1894–1903 (40–49세)노래 Asmik Grigorian (소프라노) · 2022 빈 국립오페라

딸 올가가 죽어 가던 시기에 완성되어 그녀의 추억에 바쳐진 오페라다. 말의 선율을 바탕으로 한 성악 쓰기가 처음으로 온전히 꽃핀 작품이다.

  • 1막이 열리면 실로폰이 같은 음을 콕콕 되풀이한다. 물레방아가 도는 소리, 또는 흘러가는 시간으로 흔히 해석되며, 이 끈질긴 되풀이(오스티나토)가 처음부터 긴장을 깐다.
  • 2막에서 코스텔니치카가 아기를 없애기로 마음먹는 독백을 들어 보자. 짧게 끊어진 동기(모티프)가 숨 가쁘게 되풀이되며 흔들리는 마음을 그린다. 이 역은 명가수들의 연기력을 가늠하는 시험대로 꼽힌다.
  • 같은 2막에서 예누파가 성모에게 드리는 조용한 기도는 앞뒤의 격렬함과 대비되는 쉼표 같은 대목이다. 현악기가 낮게 받쳐 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 3막 마지막에서 예누파는 라차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이때 하프와 금관악기가 밝은 장조로 부풀어 오르는데, 오페라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결말 가운데 하나로 자주 꼽힌다.
  • 음반을 고를 때는 코바르조비츠가 다듬은 프라하판과, 지휘자 매케라스가 되살린 작곡가 자신의 브르노판(1908)을 견주어 들으면 좋다. 관현악의 거친 맛이 확연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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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거절의 세월 · 1903–1916 (49–62세)

(초연) 1904년 1월, 「예누파」는 브르노 국민극장에서 초연되어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지방 극장의 성공이었을 뿐, 프라하 국민극장은 이 작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극장의 음악 감독 카렐 코바르조비츠는 1887년 야나체크가 자신의 오페라를 신랄하게 혹평한 일을 잊지 않았다고 흔히 이야기된다. 같은 해 그는 사범학교에서 은퇴해 연금을 받기 시작했다. (분노) 1905년 10월 1일, 브르노에서 체코어 대학 설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 자리에서 스무 살 목공 프란티셰크 파블리크가 진압 군인의 총검에 찔려 숨졌다. 그는 이 죽음을 피아노 소나타 「1905년 10월 1일, 거리에서」에 담았다. 그러나 초연 직전에 마지막 악장을 불태웠고, 나중에는 남은 두 악장마저 프라하의 블타바강에 던졌다. (좌절) 이어 쓴 오페라 「운명」(1903~05)은 생전에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브로우체크 씨의 여행」은 10년 가까이 붙들고 씨름했다. 피아노 모음곡 「안개 속에서」(1912)의 제목은 그 시절의 막막한 처지와 자주 겹쳐 읽힌다. 그는 학교 일과 민요 연구를 쉬지 않았다. 하지만 작곡가로서는 지방 교사로 늙어 갈 것처럼 보였다. (전환) 돌파구는 주변 사람들의 끈질긴 설득에서 왔다. 성악가 마리에 칼마와 남편 프란티셰크 베셀리 등이 코바르조비츠를 움직였다. 1916년 5월, 「예누파」는 마침내 프라하 국민극장 무대에 올랐다. 코바르조비츠가 관현악을 손본 판이었지만 성공은 압도적이었다. 작곡가는 예순하나였다.

♪피아노 소나타 「1905년 10월 1일, 거리에서」 (JW VIII/19)1905 (51세)

브르노 시위에서 숨진 젊은 노동자를 위한 곡이다. 작곡가가 불태우고 강에 던졌는데도 살아남은 두 악장에 그 시절의 분노와 좌절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1악장의 제목은 '예감'이다. 첫머리의 짧은 동기(모티프)가 모양을 바꿔 가며 끈질기게 돌아오는데, 다가오는 비극을 미리 느끼는 불안처럼 들린다.
  • 1악장 중간에서는 같은 음형이 거세게 몰아치며 높은 음역으로 치솟는다. 왼손의 낮은 울림과 오른손의 날카로운 선율이 부딪치는 것을 따라가 보자.
  • 2악장의 제목은 '죽음'이다. 느린 탄식 같은 동기가 되풀이되다가 아주 세게(포르티시모) 터진 뒤 조용히 사그라진다.
  • 야나체크의 제자였던 피아니스트 루돌프 피르쿠시니의 녹음이 이 곡 해석의 기준으로 자주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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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늦은 봄 · 1916–1923 (62–69세)

(명성) 프라하의 성공은 곧 국경을 넘었다. 1918년 빈 궁정 오페라가 「예누파」를 올렸다. 작가 막스 브로트가 독일어 번역을 맡았고, 빈의 유니버설 에디션과 출판 계약이 이어졌다. 같은 해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하자 그는 크게 기뻐했다. 그해 고골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관현악 랩소디 「타라스 불바」를 완성했는데, 평생 품어 온 슬라브 형제애에 대한 믿음이 담긴 곡이다. (균열) 성공은 가정에 그늘을 드리웠다. 프라하 공연에서 코스텔니치카를 노래한 가브리엘라 호르바토바와 그가 가까워지자, 즈덴카는 자살을 기도할 만큼 깊이 절망했다. 부부는 이혼하지 않았다. 한 지붕 아래 살되 사실상 각자의 삶을 살기로 했다. (카밀라) 1917년 여름, 온천 휴양지 루하초비체에서 카밀라 슈퇴슬로바를 만났다. 그보다 서른일곱 살 아래로, 골동품상의 아내이자 두 아들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그의 음악을 잘 알지 못했고, 관계는 대부분 그의 일방적인 열정이었다. 그래도 그는 11년 동안 700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고, 이 열정이 말년 작품을 밀고 나간 힘이 되었다. (카탸) 오스트롭스키의 희곡 「뇌우」를 바탕으로 오페라 「카탸 카바노바」(1921 초연)를 썼다. 숨 막히는 시집살이 속에서 사랑을 꿈꾸다 볼가강에 몸을 던지는 카탸에게 그는 카밀라의 모습을 겹쳤다. 연가곡 「사라진 남자의 일기」도 이 무렵 나왔다. 1919년 오르간 학교가 국립 음악원으로 바뀌면서 그는 교장직에서 물러났다. 1921년에는 고향 후크발디에 작은 집을 샀다.

♪관현악 랩소디 「타라스 불바」 (JW VI/15)1915–1918 (61–64세)실황 hr-Sinfonieorchester · Andrés Orozco-Estrada 지휘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하던 해에 완성되었다. 고골이 그린 카자크 영웅의 비극에 작곡가 자신의 슬라브 형제애를 실은 곡이다.

  • 1악장 '안드리의 죽음'은 적국의 여인을 사랑한 아들의 이야기다. 오르간과 잉글리시 호른이 부르는 서정적인 선율이 사랑을, 뒤이은 격렬한 관현악이 전투를 그린다.
  • 2악장 '오스타프의 죽음'에서는 처형 순간 작은 클라리넷이 높은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른다. 고문 끝에 죽어 가는 아들의 외침으로 널리 해석된다.
  • 3악장 '타라스의 예언과 죽음'의 마지막에서는 오르간과 종, 금관이 한데 모여 장엄한 결말을 만든다. 화형대에서 민족의 앞날을 예언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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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카탸 카바노바」 (JW I/8)1919–1921 (65–67세)실황 LSO · Simon Rattle 지휘 · Amanda Majeski

카밀라를 향한 열정이 처음으로 오페라가 된 작품이다. 그는 숨 막히는 집안에서 사랑을 꿈꾸는 카탸에게 그녀의 모습을 겹쳤다.

  • 서곡 첫머리에서 팀파니가 낮게 두드리는 음형은 다가오는 비극, 곧 운명으로 흔히 해석된다. 곧이어 들리는 썰매 방울 소리는 남편 티혼이 떠나는 장면을 미리 알린다.
  • 1막에서 카탸가 시누이 바르바라에게 어린 시절과 꿈을 털어놓는 대목에서는 비올라 다모레의 은은한 음색이 그녀의 내면을 감싼다.
  • 3막 첫 장면에서는 오케스트라가 폭풍을 그리고, 그 소리 속에서 카탸가 사람들 앞에서 죄를 고백한다. 금관과 팀파니가 번개처럼 끼어드는 소리를 들어 보자.
  • 마지막 볼가강 장면에서는 무대 뒤 합창이 가사 없이 '아-' 하고 노래한다. 강물과 바람 소리처럼 들리는 이 소리가 카탸의 죽음을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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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마지막 불꽃 · 1923–1928 (69–74세)

(숲) 일흔을 앞두고 창작은 오히려 빨라졌다. 숲속 동물과 사람의 삶이 맞물려 도는 오페라 「영리한 새끼 암여우」(1924 초연)가 나왔고,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출발한 현악 4중주 제1번 「크로이처 소나타」(1923), 젊은 날을 돌아본 관악 6중주 「청춘」(1924)이 뒤를 이었다. 카렐 차페크 원작의 오페라 「마크로풀로스 사건」(1926)에서는 300년 넘게 살아온 여인이 끝내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그렸다. (축제) 1926년에는 체코 체육 단체 소콜의 대회를 위해 「신포니에타」를 썼다. 카밀라와 함께 피세크에서 군악대의 야외 연주를 들은 일이 계기였다. 맨 앞을 여는 팡파르는 이 기억에서 나왔다. 같은 해 영국 평론가 로자 뉴마치의 초청으로 런던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그의 작품 연주회가 열렸다. (신앙) 1926년 여름에는 「글라골 미사」를 썼다. 라틴어 대신 고대 교회 슬라브어로 된 미사 통상문에 곡을 붙인 작품이다. 한 비평가가 이를 '신앙 깊은 노인'의 작품이라고 쓰자, 그는 '노인도 아니고 신자도 아니다'라는 답을 보냈다고 전한다. 그는 숲을 성당으로, 전나무를 촛불로 삼은 미사라고 이 곡을 설명했다. (편지) 1928년 1~2월, 단 몇 주 만에 현악 4중주 제2번 「친밀한 편지」를 썼다. 카밀라에게 이 곡이 두 사람의 이야기라고 쓴 편지가 남아 있다. 도스토옙스키 원작의 오페라 「죽음의 집으로부터」도 이해에 완성했다. (죽음) 1928년 8월, 후크발디에 머물 때 카밀라의 어린 아들 오토가 숲에서 길을 잃었다. 그는 아이를 찾으러 나섰다가 감기에 걸렸고, 병은 폐렴으로 번졌다. 8월 12일 오스트라바의 요양원에서 일흔넷으로 세상을 떠났다. 브르노의 장례식에서는 「영리한 새끼 암여우」의 마지막 장면이 연주되었다.

♪신포니에타 (JW VI/18)1926 (72세)연주 Hallé Orchestra · Mark Elder 지휘

카밀라와 함께 들은 군악대 연주의 기억에서 출발해 소콜 대회를 위해 쓴 곡이다. 독립한 나라와 고향 도시 브르노를 향한 찬가가 되었다.

  • 1악장 팡파르에서는 오케스트라와 별도로 트럼펫 아홉 대, 베이스 트럼펫 두 대, 테너 튜바 두 대가 팀파니와 함께 울린다. 무대 위에 늘어선 금관 대열 자체가 볼거리다.
  • 작곡가는 처음에 2~5악장에 '성', '여왕의 수도원', '거리', '시청'이라는 브르노의 장소 이름을 붙였다. 악장마다 도시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들어도 좋다.
  • 마지막 악장 끝에서는 첫 팡파르가 전 오케스트라 위로 다시 돌아온다. 처음과 끝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 짧은 음형을 겹겹이 되풀이(오스티나토)해 쌓아 올리는 그의 방식이 특히 잘 들리는 곡이다. 목관악기가 같은 음형을 계속 돌리는 동안 다른 악기가 무엇을 하는지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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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골 미사 (JW III/9)1926–1927 (72–73세)연주 체코 필하모닉 · Charles Mackerras 지휘

'노인도 아니고 신자도 아니다'라고 말한 작곡가가 숲을 성당 삼아 쓴 미사다. 교회의 예배보다 자연과 슬라브 민족을 향한 찬가에 가깝다.

  • 첫 곡과 마지막 곡을 여는 '인트라다'는 금관과 팀파니가 울리는 팡파르로, 예배라기보다 축제의 문을 여는 소리처럼 들린다.
  • '믿나이다(크레도)' 중간에는 오르간과 관현악이 길게 이어 연주하는 대목이 있다. 합창이 멈춘 사이 악기들이 거세게 맞부딪친다.
  • 테너 독창은 매우 높은 음역을 힘차게 내질러야 해서, 테너들 사이에서 어렵기로 이름난 파트다.
  • 끝에서 두 번째 곡인 '오르간 독주'는 손과 발 건반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곡으로, 오르가니스트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연주회에서 따로 떼어 연주되기도 한다.
  • 학자 폴 윙필드가 복원한 원래 판본과 전통 판본을 견주어 들으면, 원래 판본의 박자와 음색이 훨씬 거칠고 대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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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 4중주 제2번 「친밀한 편지」 (JW VII/13)1928 (74세)실황 Alexi Kenney 외 · ChamberFest Cleveland 2016

죽기 반년 전 몇 주 만에 쓴 곡이다. 카밀라에게 보낸 700여 통의 편지가 그대로 음악이 된 듯한, 그의 마지막 고백이다.

  • 1악장 첫머리에서 비올라가 줄받침(브리지) 가까이를 긁듯이 켜는 주법(술 폰티첼로)으로 쉬익 하는 소리를 낸다. 신비로운 이 음색은 카밀라를 나타낸다고 널리 해석된다.
  • 작곡가는 처음에 비올라 자리에 옛 악기 비올라 다모레를 쓰려 했다. 그래서 이 곡에서는 비올라가 사실상 주인공이니, 비올라 소리를 따라가며 들어 보자.
  • 2악장은 느린 흐름과 갑작스러운 빠른 대목이 번갈아 나온다. 들뜬 그리움과 불안이 엇갈리는 편지처럼 들린다.
  • 마지막 4악장은 춤추는 듯한 리듬으로 시작해, 네 악기가 떨리는 꾸밈음(트릴)을 주고받으며 격정적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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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그가 열한 살에 들어간 브르노 성 토마스 수도원에는 수도사 그레고어 멘델이 있었다. 완두콩 교배 실험으로 유전 법칙을 밝힌 바로 그 멘델로, 1868년에는 이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야나체크는 소년 시절부터 그를 알았고, 1884년 1월 멘델의 장례 미사에서 오르간을 연주했다. 멘델의 업적이 세상에 다시 알려진 것은 1900년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수도원장과 옛 합창단원의 인연을 눈여겨본 사람이 없었다. 아내 즈덴카는 1930년대에 회고록 「나의 삶」을 구술로 남겼다. 남편의 연애와 집안의 불화를 아내의 자리에서 증언한 기록이다. 관계자들이 민감하게 여긴 탓에 이 기록은 반세기 넘게 묻혀 있다가 1998년에야 출간되었다. 그 뒤 야나체크 전기들은 카밀라를 향한 열정만큼이나 즈덴카가 견딘 세월도 함께 다루게 되었다. 20세기 대부분 동안 세계가 들은 「예누파」는 코바르조비츠가 관현악을 매끈하게 다듬은 프라하판이었다. 작곡가 자신이 원한 거칠고 투박한 음색은 지휘자 찰스 매케라스와 학자 존 티렐이 브르노판(1908)을 복원해 1982년에 녹음하면서 비로소 널리 알려졌다. 「글라골 미사」도 사정이 비슷하다. 초연 전에 연주자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대목이 단순하게 다듬어졌다. 1990년대에 영국 학자 폴 윙필드가 남은 악보 자료를 바탕으로 더 대담한 원래 모습을 재구성했고, 지금은 두 판본이 모두 연주된다.

용어 노트 📚🔎

말의 선율

(말뜻) 체코어 '나페브키 므루비(nápěvky mluvy)'를 옮긴 말로, 말에 붙어 있는 가락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사람이 말할 때 저절로 생기는 음의 높낮이와 리듬을 악보에 받아 적은 것이다. 야나체크는 평생 수천 개를 모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오페라의 노래 선율을 만들었다. 친구가 놀라서 '진짜?' 하고 물을 때 끝이 쭉 올라가고, 실망해서 '진짜…' 할 때는 끝이 내려가는 것을 떠올려 보자. 같은 말도 가락에 따라 마음이 다르게 전해지는데, 그는 바로 그 가락을 음표로 옮겼다.

오스티나토

(말뜻) 이탈리아어 ostinato 는 '고집스러운, 끈질긴'이라는 뜻이다. 짧은 음형을 고집스럽게 되풀이하는 이 기법의 성격이 이름에 그대로 들어 있다. (음악에서) 짧은 선율이나 리듬 조각을 곡의 한 부분 내내 같은 모양으로 계속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 위에서 다른 악기들이 바뀌어도 이 음형은 꿋꿋이 반복되며 긴장이나 흐름을 만든다. 줄넘기를 할 때 친구들이 '꼬마야 꼬마야' 노래를 계속 같은 박자로 부르고, 그 위에서 뛰는 사람이 여러 동작을 바꿔 가는 모습과 비슷하다.

동기(모티프)

(말뜻) 영어 motif 는 '움직이다'라는 뜻의 라틴어 movere 에서 왔다. 곡을 움직이게 하는 작은 씨앗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음악에서) 몇 개의 음으로 된 아주 짧은 음형으로, 뚜렷한 특징이 있어 곡 전체에서 모양을 바꿔 가며 되풀이된다. 작곡가는 이 씨앗을 늘이거나 뒤집거나 쪼개 큰 곡을 키워 낸다. 게임에서 아이템을 얻을 때마다 나오는 짧은 효과음을 떠올려 보자. 몇 음 안 되지만 들으면 바로 알아차리는데, 동기도 그만큼 짧고 또렷하다. (다른 데서는) 미술이나 문학에서는 작품에 되풀이해 나타나는 소재나 무늬를 가리키고, 일상에서 '동기'는 어떤 일을 하게 된 까닭을 뜻한다.

리브레토(대본)

(말뜻) 이탈리아어 libretto 는 '작은 책'이라는 뜻이다. 옛 오페라 극장에서 관객이 손에 들고 가사를 따라 읽던 얇은 책자에서 이름이 붙었다. (음악에서) 오페라에서 가수들이 노래하는 가사와 대사, 이야기 전체를 적은 대본이다. 예전에는 노래 부르기 좋게 운율을 맞춘 시로 쓰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야나체크는 「예누파」에서 산문 희곡을 거의 그대로 썼다. 학예회 연극을 준비할 때 받는 대본을 떠올리면 된다. 다만 오페라의 대본은 말로 하지 않고 모두 노래로 부른다.

팡파르

(음악에서) 트럼펫 같은 금관악기가 힘차고 밝게 울리는 짧은 신호 음악이다. 옛날에는 왕의 입장이나 사냥,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데 쓰였다. 「신포니에타」는 별도로 늘어선 금관악기들의 팡파르로 시작한다. 운동회나 시상식에서 상을 받으러 나갈 때 '빰빠라밤!' 하고 울리는 소리가 바로 팡파르다. (다른 데서는) '팡파르를 울리다'라는 말은 무언가를 화려하게 시작하거나 알린다는 뜻으로 신문 기사 같은 데서 흔히 쓴다.

미사

(말뜻) 가톨릭 예배 끝에 사제가 하는 라틴어 '이테, 미사 에스트(Ite, missa est)', 곧 '가십시오, 파견되었습니다'라는 말에서 이름이 나왔다. (음악에서) 가톨릭 미사에서 날마다 바뀌지 않는 다섯 기도문, 곧 '자비송(키리에)', '대영광송(글로리아)', '신경(크레도)', '거룩하시도다(상투스)', '하느님의 어린양(아뉴스 데이)'에 곡을 붙인 작품이다. 보통 라틴어로 쓰지만 야나체크는 고대 교회 슬라브어를 썼다. 졸업식처럼 순서가 정해진 행사를 떠올려 보자. 순서는 늘 같아도, 학교마다 다른 노래와 연주로 그 순서를 채운다. 미사곡도 같은 기도문에 작곡가마다 전혀 다른 음악을 붙인다. (다른 데서는) 음악 작품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의 예배 자체를 가리킬 때 가장 흔히 쓴다.

현악 4중주

(말뜻) 4중주(四重奏)는 넷(四)이 겹쳐(重) 연주한다(奏)는 뜻이다. (음악에서) 바이올린 둘, 비올라 하나, 첼로 하나, 이렇게 현악기 네 대가 함께 하는 연주 또는 그런 곡이다. 지휘자 없이 넷이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맞춰야 해서 '네 사람의 대화'라고도 불린다. 모둠 활동에서 네 명이 각자 다른 역할을 맡되 혼자 튀지 않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아 하나의 발표를 완성하는 것과 비슷하다.

비올라 다모레

(말뜻) 이탈리아어 viola d'amore 는 '사랑의 비올라'라는 뜻이다. 부드럽고 달콤한 음색에서 붙은 이름으로 여겨진다. (음악에서) 17~18세기에 쓰이던 현악기로, 활로 켜는 줄 아래에 따로 줄이 한 벌 더 매어 있다. 아래쪽 줄은 직접 켜지 않아도 위의 줄 소리에 맞춰 저절로 함께 울려(공명), 은은한 메아리 같은 소리를 낸다. 과학 시간에 소리굽쇠 두 개를 나란히 두고 하나를 치면, 건드리지 않은 다른 하나도 따라 우는 실험과 같은 원리다. 야나체크는 「카탸 카바노바」에서 이 악기를 썼고, 「친밀한 편지」에서도 쓰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