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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örgy Ligeti

죄르지 리게티 (1923–2006)

"나는 감옥에 갇혀 있다. 한쪽 벽은 아방가르드, 다른 쪽 벽은 과거다. 나는 빠져나가고 싶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루마니아 터르너베니 출생헝가리계 유대인물리학자의 꿈2. 상실강제 노역 탈출아버지·동생 희생바르토크의 그늘3. 서랍검열과 공연 금지무지카 리체르카타1956년 망명4. 구름쾰른 전자음악아트모스페르레퀴엠5. 전환룩스 에테르나·큐브릭르 그랑 마카브르브람스 오마주6. 혼돈피아노 연습곡낸캐로·아프리카2006년 빈 별세리게티1923–2006전쟁과 독재를 지나 소리의 구름과 복잡한 리듬…
삶의 여정 🧭🗺️
N루마니아헝가리독일오스트리아디치쇠센트마르톤(터르너베니)1923–1929클루지(콜로즈바르)1929–1945부다페스트1945–1956빈1956–2006쾰른1957–1959함부르크1973–1989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일로나 쇼모지

    안과 의사였던 어머니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와 가족 가운데 리게티와 함께 전쟁을 넘긴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 영향벨라 바르토크

    젊은 리게티가 가장 존경한 작곡가로, 끝내 만나지 못했지만 민요 채보와 현악 4중주 1번에 그의 그림자가 짙다.

  • 스승베레시 산도르

    부다페스트 음악원에서 리게티에게 작곡을 가르친 스승으로, 그 역시 훗날 공산 체제의 헝가리를 떠났다.

  • 우정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쾰른에 갓 도착한 망명객 리게티를 자기 집에 머물게 한 동료로, 두 사람은 1950–60년대 전위음악의 중심에서 서로를 자극했다.

  • 영향콘론 낸캐로

    자동 피아노를 위한 복잡한 리듬의 습작으로 말년의 리게티를 사로잡아 피아노 연습곡의 길을 열어 준 미국 작곡가다.

  • 제자진은숙

    1980년대 함부르크에서 리게티에게 배운 한국 작곡가로, 스승의 정신을 이어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트란실바니아의 소년 · 1923–1943 (0–20세)

(출생) 1923년 5월,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의 소도시 디치쇠센트마르톤(오늘날 터르너베니)에서 태어났다. 불과 몇 해 전 헝가리에서 루마니아로 넘어간 땅이었고, 집안은 헝가리어를 쓰는 유대인이었다. 아버지 산도르는 은행에서 일하며 경제학 저술을 낸 사람이었고, 어머니 일로나 쇼모지는 안과 의사였다. 19세기의 이름난 바이올리니스트 레오폴트 아우어가 아버지 쪽 친척이었다고 전한다. (소수자) 여섯 살 때 가족은 트란실바니아의 중심 도시 클루지(헝가리어로 콜로즈바르)로 옮겼다. 집에서는 헝가리어를, 학교와 거리에서는 루마니아어를 썼다. 루마니아인 사이에서는 헝가리인이었고 헝가리인 사이에서는 유대인이었다. 어느 무리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다는 감각은 훗날 어떤 유파에도 들지 않으려 한 그의 태도와 겹친다. (공상) 소년은 과학과 공상에 빠져 지냈다. 지도와 언어까지 갖춘 상상의 나라를 만들어 놀았고, 장래 희망은 물리학자였다. 정식 피아노 레슨은 열네 살에야 시작했는데, 네 살 아래 동생 가보르가 먼저 바이올린을 배운 뒤였다. 늦게 시작한 만큼 그는 곧 연주보다 작곡에 끌렸고, 열다섯 무렵부터 습작을 썼다. (우회) 1940년 북트란실바니아가 다시 헝가리에 넘어가면서 반유대 법률이 그의 앞을 막았다. 유대인 입학 정원 제한 때문에 부다페스트의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할 수 없었던 그는 대신 1941년부터 클루지 음악원에서 페렌츠 파르카시에게 작곡을 배웠다. 차별이 막은 길 옆으로 음악이라는 길이 열린 셈이었다. 이 시절 그가 가장 우러러본 작곡가는 같은 헝가리어권의 벨라 바르토크였다.

II. 홀로 남은 아들 · 1944–1949 (21–26세)

(노역) 1944년 1월, 리게티는 유대인 남성에게 부과된 헝가리군 강제 노역 부대에 끌려갔다. 총 대신 삽을 들고 짐과 탄약을 나르는 일이었다. 그해 가을 동부 전선이 무너지던 혼란 속에서 그는 대열을 빠져나와 걸어서 콜로즈바르로 돌아왔다. 살아남은 데에는 운이 크게 작용했다고 그는 담담히 회고했다. (상실) 그 사이 가족은 흩어졌다. 아버지는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아직 10대였던 동생 가보르는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에서 숨졌다. 어머니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왔다. 리게티는 이 일을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나치를 겪고 곧이어 공산 독재를 겪으면서 어떤 이념이든 절대 진리를 내세우는 것을 깊이 불신하게 되었다고 여러 번 밝혔다. (부다페스트) 1945년 가을 그는 부다페스트의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에 들어가 셰레시 대신 베레시 산도르와 파르카시 등에게 배웠다. 꼭 만나 배우고 싶었던 바르토크는 바로 그해 9월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전후의 부다페스트는 가난했고 그도 다르지 않았지만, 음악원 시절은 그가 처음으로 마음 놓고 음악에 몰두한 시간이었다. (민요) 1949년 졸업한 뒤 그는 부쿠레슈티의 민속 연구소에서 한동안 루마니아 민요를 녹음하고 악보로 옮겼다. 바르토크가 마을을 돌며 걸었던 길을 따라간 일이었다. 시골 악사들의 엇갈리는 리듬과 거친 음정은 그의 귀에 오래 남았고, 수십 년 뒤 그의 작품에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III. 서랍 속의 악보 · 1950–1956 (27–33세)

(교단) 1950년 리게티는 모교로 돌아와 화성법과 대위법을 가르쳤다. 성실한 교사였고 교재도 직접 썼다. 그러나 1948년 공산당이 권력을 잡은 뒤 헝가리 음악계에는 소련식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강요되었다. 민중이 알아듣는 밝은 음악이 요구되었고, 날카로운 불협화음이나 실험은 '형식주의'로 낙인찍혔다. (검열) 그는 민요를 편곡한 합창곡으로 생계와 체면을 지켰다. 하지만 민요를 바탕으로 쓴 관현악곡 「루마니아 협주곡」(1951)조차 리허설 뒤 공연이 금지되었다. 서방의 새 음악은 거의 들을 수 없었고, 쇤베르크나 베베른의 악보도 구하기 어려웠다. 그는 밤마다 잡음 섞인 라디오로 쾰른 방송국이 내보내는 전자음악을 몰래 들었다. (서랍) 그래서 그는 발표할 수 없는 곡을 '서랍을 위해' 썼다. 피아노곡집 「무지카 리체르카타」(1951–53)는 첫 곡에서 단 두 음으로 시작해 곡마다 음을 하나씩 늘려 가는, 스스로에게 건 실험이었다. 이어 쓴 현악 4중주 1번 「밤의 변형」(1953–54)에는 바르토크의 4중주에 대한 존경이 짙게 배어 있다. 둘 다 그가 헝가리를 떠난 뒤에야 제대로 세상에 나왔다. (탈출) 1956년 10월 헝가리 혁명이 일어났다가 11월 소련군에 진압되었다. 그해 12월 리게티는 베라와 함께 밤에 국경을 걸어 넘어 오스트리아 빈에 닿았다. 가진 것은 거의 없었고, 쓴 악보 대부분은 부다페스트에 두고 왔다. 서른셋,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무지카 리체르카타 (피아노를 위한 11곡, 1951–53)1951–1953 (28–30세)연주 Pierre-Laurent Aimard (피아노) · 제7곡

발표할 수 없는 음악을 서랍 속에 쓰던 부다페스트 시절, 리게티가 스스로 정한 규칙 하나로 백지에서 다시 출발하려 한 피아노곡집이다.

  • 1곡은 거의 '라' 한 음만으로 이루어지고 맨 끝에 '레'가 한 번 나온다. 곡이 하나씩 넘어갈 때마다 쓰는 음이 하나씩 늘어나, 마지막 11곡에서야 열두 음이 모두 등장한다.
  • 2곡(메스토, 리지도 에 체리모니알레: 슬프게, 딱딱하게, 의식처럼)은 세 음만으로 같은 음을 망치처럼 되풀이한다.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에 쓰여 널리 알려졌다.
  • 9곡에는 '벨라 바르토크를 기리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피아노 낮은 음역에서 크게 울리는 화음이 종소리처럼 들린다.
  • 마지막 11곡은 17세기 작곡가 프레스코발디에게 바친 느린 푸가(한 주제를 여러 성부가 차례로 이어받는 곡)다. 열두 음으로 된 주제가 성부를 옮겨 다니는 모습을 따라가 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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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 4중주 1번 「밤의 변형」 (1953–54)1953–1954 (30–31세)실황 Chamber Music Society of Lincoln Center · 2017

바르토크를 직접 만나지 못한 제자가 바르토크의 현악 4중주를 향해 쓴 편지 같은 곡으로, 헝가리를 떠난 뒤인 1958년 빈에서야 초연되었다.

  • 쉬지 않고 이어지는 한 악장 안에서, 반음씩 붙어 움직이는 짧은 동기 하나가 빠르게, 느리게, 거칠게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다. 제목의 '변형'이 바로 이것이다.
  • 네 악기가 활 대신 손가락으로 줄을 뜯는 피치카토(현을 뜯어 내는 소리)로 몰아치는 대목은 바르토크의 4중주 3·4번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이 많다.
  • 중간에 우아한 척하다가 비틀거리는 왈츠 풍의 부분이 있다. 진지함과 익살을 한 곡에 섞는 리게티 특유의 태도가 이미 보인다.
  • 끝부분에서 줄을 살짝 짚어 내는 높고 투명한 소리(하모닉스)로 잦아드는 마무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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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소리의 구름 · 1957–1965 (34–42세)

(쾰른) 1957년 초 리게티는 헤르베르트 아이메르트의 초청으로 독일 쾰른의 서독일방송(WDR) 전자음악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처음 몇 주는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집에 머물렀다. 라디오로만 듣던 세계 한가운데에서 그는 테이프를 자르고 이어 붙이며 「글리산디」와 「아르티쿨라치온」을 만들었다. 생계는 방송국 일과 강연으로 이었다. (분석) 그는 다름슈타트 여름 강좌의 단골 강사가 되었고, 1958년 피에르 불레즈의 「구조 Ia」를 해부한 글로 주목받았다. 모든 요소를 숫자로 통제하는 당시 최첨단 기법도 귀에는 결국 뭉친 소리 덩어리로 들린다는 지적이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 덩어리를 작곡하면 되지 않는가. 비판이 곧 그의 출발점이었다. (구름) 그 답이 관현악곡 「아파리시옹」(1960 초연)과 「아트모스페르」(1961)였다. 수십 개의 악기가 이웃한 음들을 한꺼번에 울리는 음군(클러스터)과, 성부들이 촘촘히 얽혀 낱낱의 선율이 사라지는 미세 다성(마이크로폴리포니)으로 그는 선율도 박자도 없는 소리의 구름을 만들었다. 도나우에싱엔에서 한스 로스바우트가 지휘한 「아트모스페르」 초연은 열띤 반응 속에 앙코르로 다시 연주되었다. (유머) 그는 진지하기만 하지 않았다. 뜻 없는 소리로 웃고 울고 속삭이는 성악곡 「아방튀르」(1962), 메트로놈 100대를 한꺼번에 태엽 감아 두는 「교향시」(1962)는 당시 전위음악의 엄숙함을 비튼 장난이기도 했다. 1961년부터 스톡홀름 왕립음악원에 객원교수로 다니며 생활도 안정되었고, 1965년 빈에서 아들 루카스가 태어났다. 그는 훗날 작곡가이자 타악기 연주자가 되었다. 같은 해 스톡홀름에서 초연된 「레퀴엠」은 전쟁에서 죽은 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공포와 애도의 음악이었다.

♪아트모스페르 (관현악을 위한, 1961)1961 (38세)지휘 Simon Rattle · Berliner Philharmoniker

불레즈의 기법을 비판하며 찾아낸 '소리 덩어리를 작곡한다'는 답이 처음으로 완성된 형태로 울린 곡이자, 망명 작곡가 리게티를 하룻밤에 유명하게 만든 곡이다.

  • 첫 소리부터 수십 개의 현악기와 관악기가 이웃한 음들을 한꺼번에 아주 여리게 울린다(클러스터). 선율도 박자도 없이 소리의 색만 서서히 바뀌는 것을 들으면 된다.
  • 현악기는 수십 명이 저마다 다른 악보를 연주하도록 잘게 나뉘어 있다. 낱낱의 움직임은 들리지 않고 전체가 일렁이는 천처럼 들리는 것이 미세 다성(마이크로폴리포니)이다.
  • 곡 중반, 피콜로들이 가장 높은 음역에서 날카롭게 울리다가 순식간에 콘트라베이스의 가장 낮은 음역으로 떨어지는 대목은 이 곡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꼽힌다.
  • 끝에서는 연주자들이 피아노 현을 솔로 쓸어 내는 희미한 소리가 남는다. 소리가 사라진 뒤의 정적까지 곡의 일부로 들어 보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쓰인 바로 그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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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멈춘 시간 · 1966–1982 (43–59세)

(빛) 1966년의 무반주 합창곡 「룩스 에테르나」(영원한 빛)는 16명의 성부가 같은 선율을 조금씩 엇갈려 따라 부르는 카논으로, 시간이 멈춘 듯한 빛의 음악이 되었다. 이듬해의 관현악곡 「론타노」(멀리)도 같은 길에 있었다. 1967년 그는 오스트리아 국적을 얻었다. 헝가리를 떠난 지 10년 만에 생긴 서류상의 고향이었다. (영화) 1968년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아트모스페르」, 「레퀴엠」, 「룩스 에테르나」, 「아방튀르」가 쓰였다. 리게티는 이를 미리 알지 못했지만, 이 영화로 그의 음악은 현대음악 애호가 바깥의 수많은 사람에게 닿았다. 큐브릭은 훗날 「샤이닝」과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도 그의 음악을 썼다. (함부르크) 1972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 머문 뒤, 1973년부터 1989년까지 함부르크 음악대학 작곡과 교수로 일했다. 이때부터 그는 빈과 함부르크를 오가며 살았다. 학생들에게 그는 어떤 기법도 정답으로 강요하지 않았고, 대신 무엇이든 의심하라고 가르쳤다. (죽음) 유일한 오페라 「르 그랑 마카브르」(1974–77)는 벨기에 극작가 겔데로드의 희곡을 바탕으로, 세상의 종말을 예고한 죽음의 사자가 술에 취해 일을 그르치는 이야기다. 수용소와 전쟁을 지나온 사람이 죽음을 웃음거리로 만든 작품이었다. 1978년 스톡홀름 초연은 큰 화제가 되었다. (전환) 그 뒤 그는 몇 해 동안 거의 곡을 내지 못했다. 전위음악의 규칙도, 옛 조성으로의 복귀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1982년 바이올린, 호른, 피아노를 위한 「호른 트리오」가 그 침묵을 깼다. 부제는 '브람스에게 바치는 경의'였고, 첫머리에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고별」의 동기가 비틀린 채 숨어 있다. 마지막 악장은 반음씩 가라앉는 탄식의 노래(라멘토)로 끝난다.

♪룩스 에테르나 (16성부 무반주 혼성 합창, 1966)1966 (43세)실황 Choeur de Radio France

레퀴엠 다음 해, 죽은 이에게 '영원한 빛'을 비는 짧은 기도문을 붙들고 리게티는 시간이 멈춘 듯한 음악을 만들었다.

  • 여성 성부들이 한 음에서 시작해 한 사람씩 조금씩 엇갈리며 같은 선율을 따라 부르는 카논(돌림노래)이 쌓인다. 엇갈림이 너무 촘촘해서 돌림노래라기보다 빛이 번지는 것처럼 들린다.
  • 반주 없이 사람 목소리만으로 이 음정을 지키는 것은 합창단에게 악명 높은 과제다. 음정이 조금씩 밀리는지 버티는지가 명연주를 가르는 지점이다.
  • 중간에 남성 성부가 높은 가성으로 들어오고, 뒤이어 아주 낮은 음역에서 남성 목소리가 깊게 울리는 대목이 대조를 이룬다.
  • 마지막 음이 사라진 뒤에도 정적이 곡의 일부처럼 이어진다. 큐브릭이 「2001」의 달 장면에 쓴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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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호른, 피아노를 위한 트리오 「브람스에게 바치는 경의」 (1982)1982 (59세)실황 1악장 Chamber Music Society of Lincoln Center

「르 그랑 마카브르」 이후 몇 해의 침묵을 깨고 나온 곡으로, 옛 거장에게 기대면서도 옛 방식으로 돌아가지는 않으려 한 리게티의 해답이다.

  • 1악장 첫머리 바이올린 소리에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고별」의 세 음 동기가 일그러진 채 숨어 있다. 브람스가 같은 편성으로 쓴 「호른 트리오」를 떠올리며 비교해 들어도 좋다.
  • 호른은 밸브를 쓰지 않을 때 나는 자연배음(관이 저절로 내는 음들)을 일부러 써서, 피아노의 평균율과 미묘하게 어긋나는 음정을 낸다. 이 '살짝 안 맞는' 소리가 의도다.
  • 2악장(비바치시모 몰토 리트미코: 매우 빠르고 리드미컬하게)은 3+3+2처럼 고르지 않게 묶인 박이 몰아치는, 발칸 민속춤을 닮은 리듬으로 연주자들에게 어려운 대목이다.
  • 마지막 4악장 '라멘토'(탄식)는 반음씩 가라앉는 선율이 거듭 쌓이며 점점 무거워지다가, 끝내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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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질서와 혼돈 · 1983–2006 (60–83세)

(발견) 1980년 무렵 리게티는 미국 작곡가 콘론 낸캐로가 자동 피아노를 위해 쓴 습작들을 듣고 '웨베른과 아이브스 이후 가장 큰 발견'이라며 흥분했다. 사람의 손으로는 칠 수 없는 겹겹의 리듬이었다. 비슷한 시기 그는 민족음악학자 심하 아롬의 녹음으로 중앙아프리카의 합주를 접했다. 여러 악사가 짧은 음형을 끈질기게 반복(오스티나토)하는데, 그것이 맞물려 누구도 연주하지 않은 선율이 떠오르는 음악이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 프랙털과 혼돈 이론에도 깊이 빠졌다. (연습곡) 이 모든 관심이 「피아노 연습곡」으로 모였다. 1985년 첫 권 여섯 곡을 불레즈의 예순 살 생일에 바쳤고, 2001년까지 열여덟 곡을 썼다. 서로 다른 리듬이 동시에 흐르는 폴리리듬과 극한의 기교는 쇼팽, 슈만, 리스트, 드뷔시로 이어지는 연습곡의 계보를 새로 썼다. 첫 권의 「바르샤바의 가을」은 1981년 계엄령 이후의 폴란드 친구들에게 바친 곡이다. 첫 권은 1986년 그라베마이어상을 받았다.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1985–88)과 바이올린 협주곡(1990–92)도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한 대씩을 일부러 다르게 조율(스코르다투라)하고 관악기 주자에게 오카리나를 불게 해, 평균율에서 벗어난 낯선 음정을 끌어들였다. 함부르크 시절 제자 가운데에는 한국 작곡가 진은숙도 있었다. (마지막) 1990년대 후반부터 건강이 나빠져 그는 휠체어에 의지했고, 2003년 무렵 작곡을 그쳤다. 울프상, 교토상, 폴라 음악상이 이어졌지만 그는 늘 다음 작품을 더 궁금해했다. 2006년 6월 12일 빈에서 세상을 떠났고, 빈 중앙묘지에 묻혔다.

♪피아노 연습곡 제1권 (1985)1985 (62세)연주 Stewart Goodyear (피아노)

낸캐로의 자동 피아노, 아프리카 합주, 프랙털에 빠졌던 리게티가 그 모든 것을 열 손가락 안에 담아 쇼팽·드뷔시의 연습곡 계보에 새 장을 덧붙인 곡집이다.

  • 1번 「무질서」는 오른손은 흰건반만, 왼손은 검은건반만 친다. 두 손이 처음엔 함께 가다가 강세가 점점 어긋나며 질서가 무너지는 과정을 들어 보자.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난곡이다.
  • 3번 「막힌 건반」은 한 손이 몇몇 건반을 소리 없이 눌러 막아 두고, 다른 손이 그 건반까지 함께 빠르게 치게 한다. 그래서 소리가 군데군데 빠진 기계처럼 덜컹거린다.
  • 5번 「무지개」는 재즈 피아노를 닮은 부드러운 화음이 흘러, 이 곡집에서 가장 서정적인 곡으로 꼽힌다.
  • 6번 「바르샤바의 가을」은 반음씩 내려가는 탄식의 음형(라멘토)이 여러 빠르기로 동시에 흘러내린다. 1981년 계엄 이후의 폴란드 친구들에게 바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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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협주곡 (1990–92)1990–1992 (67–69세)연주 Patricia Kopatchinskaja (바이올린) · Rattle 지휘

민요를 채보하던 젊은 날의 기억과 평균율 너머의 음정에 대한 말년의 호기심이 한 곡 안에서 만난 작품이다.

  • 1악장 첫머리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줄을 살짝 짚어 내는 높고 투명한 소리(하모닉스)로 반짝이듯 시작하는 부분에 집중해 보자.
  •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한 대씩을 일부러 다르게 조율(스코르다투라)해 두어, 평균율 피아노에서는 나지 않는 조금 어긋난 음정이 섞여 든다.
  • 2악장은 헝가리 민요를 닮은 소박한 선율로 시작하는데, 관악기 주자들이 부는 오카리나(흙으로 빚은 작은 피리)가 끼어들어 낯설고 뭉클한 색을 더한다.
  • 마지막 악장 카덴차(독주자 혼자 연주하는 대목)는 작곡가가 연주자에게 맡겨 두어, 연주자마다 무엇을 썼는지 비교하는 것이 이 곡 감상의 큰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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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리게티는 어린 시절 '킬비리아'라는 상상의 나라를 만들었다. 지도와 역사, 법률, 고유한 언어까지 갖춘 나라였다. 그는 노년의 인터뷰와 글에서 이 이야기를 여러 번 했는데, 뜻 없는 음절로 노래하는 「아방튀르」나 엉뚱한 나라 '브뤼헐란트'를 무대로 한 「르 그랑 마카브르」를 떠올리면 소년의 공상이 꽤 멀리까지 이어진 셈이다. 진지한 전위 작곡가라는 이미지에 가려 잘 거론되지 않는 대목이다. 그는 어릴 때 꾼 꿈 하나를 자기 음악의 기원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방 안이 촘촘한 거미줄 같은 그물로 가득 차 있고, 그 안에 걸린 물건들이 조금씩 움직이며 그물 전체가 서서히 모양을 바꾸는 꿈이었다. 그는 「아트모스페르」 같은 곡의, 움직이는 듯 멈춰 있는 소리의 그물이 이 꿈의 감각과 닿아 있다고 직접 썼다. 「루마니아 협주곡」(1951)은 민요를 바탕으로 한 비교적 친근한 곡인데도 리허설 뒤 공연이 금지되었다. 리게티의 회고로는, 당국이 문제 삼은 것은 곡의 조성에 맞지 않는 음 하나였다. 그만큼 검열은 사소한 것까지 파고들었다. 이 곡은 20년 가까이 지나서야 제대로 초연되었고, 그래서 오랫동안 리게티의 작품 목록에서 잊혀 있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그의 음악이 쓰인 일도 그는 미리 알지 못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서야 알았고, 특히 「아방튀르」가 전자적으로 변형되어 쓰인 데에 항의했다. 이 문제는 영화사와 법정 밖에서 합의로 정리되었다고 전한다. 이후 큐브릭은 「샤이닝」과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는 정식으로 허락을 얻어 그의 음악을 썼다. 세상에 그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사건이 정작 본인에게는 불쾌한 놀라움으로 시작된 셈이다.

용어 노트 📚🔎

미세 다성(마이크로폴리포니)

(말뜻) 마이크로폴리포니는 '아주 작은'을 뜻하는 micro와 '여러 소리'를 뜻하는 polyphony를 합친 말로, 리게티가 자기 기법을 설명하려고 쓴 이름이다. 우리말 다성(多聲)은 여러(多) 목소리(聲)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수십 개의 성부가 저마다 조금씩 다른 선율을 아주 촘촘하게 움직이게 해서, 낱낱의 선율은 들리지 않고 전체가 하나의 천처럼 들리게 하는 방법이다. 귀에 남는 것은 서서히 색이 바뀌는 소리의 구름이다. 운동장에서 수백 명이 각자 떠드는 소리를 멀리서 들으면 한 사람의 말은 안 들리고 '웅성웅성' 하는 하나의 소리만 들리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점은, 리게티는 그 웅성임의 한 올 한 올을 악보에 정확히 적어 두었다는 것이다.

음군(톤 클러스터)

(말뜻) 클러스터(cluster)는 영어로 '송이, 무리'라는 뜻이다. 포도송이처럼 다닥다닥 붙은 음들의 덩어리라는 뜻에서 이렇게 부른다. 음군(音群)도 음(音)의 무리(群)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바로 이웃한 음들, 예컨대 도·도#·레·레#를 한꺼번에 울리는 소리다. 보통의 화음처럼 깔끔하게 어울리지 않고, 뿌옇고 두꺼운 소리 덩어리가 된다. 피아노 건반을 손바닥이나 팔뚝으로 꾹 누르면 나는 소리를 떠올리면 된다. 리게티는 이것을 오케스트라 전체로 크게 넓혀 「아트모스페르」의 첫 소리를 만들었다. (다른 데서는) 컴퓨터에서는 여러 대의 컴퓨터를 묶어 한 대처럼 쓰는 것을, 감염병 보도에서는 한 장소에서 일어난 집단 감염을 클러스터라고 부른다.

카논

(말뜻) 그리스어 kanōn은 '자, 규칙'이라는 뜻이다. 뒤따르는 성부가 앞 성부를 정해진 규칙대로 그대로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음악에서) 한 성부가 부른 선율을 다른 성부가 조금 늦게 똑같이 따라 부르는 음악이다. 교실에서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를 한 줄씩 늦게 부르는 돌림노래가 바로 카논이다. 「룩스 에테르나」에서 리게티는 이 엇갈림을 아주 짧고 촘촘하게 만들어서, 돌림노래라기보다 소리가 빛처럼 번지는 것처럼 들리게 했다. (다른 데서는) 종교에서는 공식으로 인정된 경전 목록을, 소설·만화 팬들 사이에서는 원작의 '공식 설정'을 캐논이라고 부른다.

전자음악

(음악에서) 악기나 목소리 대신 전기 장치로 소리를 만들거나, 녹음한 소리를 기계로 바꾸고 이어 붙여 만드는 음악이다. 1950년대 쾰른의 서독일방송 스튜디오는 그 중심지였다. 작곡가들은 소리를 만드는 기계(발진기)로 순수한 음을 만들고, 녹음테이프를 자르고 붙이거나 빠르게 혹은 거꾸로 돌려 새로운 소리를 얻었다. 휴대폰으로 녹음한 목소리를 빨리 재생하면 다람쥐 목소리처럼 높아지는데, 그 시절 작곡가들은 이런 변화를 일일이 손으로 테이프를 만져 가며 만들었다. 리게티는 쾰른에서 이 작업을 직접 해 본 경험을 나중에 오케스트라 음악에 옮겨 왔다.

폴리리듬

(말뜻) 그리스어에서 온 poly는 '여럿'이라는 뜻으로, 폴리리듬은 '여러 리듬'이라는 말이다. (음악에서) 서로 다른 리듬이나 박자를 동시에 겹쳐 연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손으로는 책상을 '하나 둘, 하나 둘' 두드리고 다른 손으로는 같은 시간 동안 '하나 둘 셋'으로 두드려 보면 생각보다 어렵다. 그게 가장 간단한 폴리리듬이다. 리게티는 아프리카 합주와 낸캐로의 자동 피아노 음악에서 이 원리를 배워, 피아노 연습곡에서 두 손이 서로 다른 빠르기와 강세로 동시에 달리게 했다.

오스티나토

(말뜻) 이탈리아어로 '고집스러운, 끈질긴'이라는 뜻이다. 같은 음형을 고집스럽게 되풀이한다는 뜻에서 왔다. (음악에서) 짧은 선율이나 리듬 하나를 곡의 한 부분 내내 끈질기게 반복하는 것이다. 줄넘기할 때 '꼬마야 꼬마야' 노래 위에서 줄이 계속 같은 박자로 바닥을 치는 것처럼, 그 위로 다른 것들이 변해도 밑바닥의 반복은 그대로 간다. 리게티가 들은 중앙아프리카 합주에서는 여러 사람의 오스티나토가 맞물려, 아무도 따로 연주하지 않은 새 선율이 귀에 떠오른다.

스코르다투라

(말뜻) 이탈리아어 scordare는 '조율을 흐트러뜨리다, 어긋나게 하다'라는 뜻이다. 일부러 조율을 어긋나게 한다는 뜻이 이름에 담겨 있다. (음악에서)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의 줄을 평소와 다른 음높이로 맞추어 연주하는 방법이다. 기타 치는 사람이 노래에 맞추려고 맨 아래 줄을 한 음 낮게 내려 조율하는 것과 비슷하다. 바로크 시대에도 쓰였지만, 리게티는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한 대씩을 이렇게 바꾸어 두어, 피아노 건반에는 없는 '살짝 어긋난' 음정을 음악에 섞어 넣었다.

라멘토

(말뜻) 이탈리아어로 '탄식, 슬피 울음'이라는 뜻이다. 영어 lament(애가)와 뿌리가 같다. (음악에서) 슬픔을 표현하는 노래나 악장을 가리키며, 흔히 반음씩 한 계단씩 내려가는 선율을 쓴다. 한숨을 쉴 때 목소리가 저절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떠올리면 왜 내려가는 선율이 슬프게 들리는지 알 수 있다. 17세기 오페라에서부터 쓰인 오래된 방식인데, 리게티는 「호른 트리오」의 마지막 악장과 피아노 연습곡 「바르샤바의 가을」에서 이 내려가는 선율을 겹겹이 쌓아 무너져 내리는 듯한 슬픔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