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es Ives
낮에는 보험을 팔고, 밤과 주말에는 아무도 연주해 주지 않을 음악을 썼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조지 아이브스
남북전쟁 군악대장 출신의 아버지로, 두 조를 겹치고 4분음을 궁리하는 실험으로 아들의 귀를 열어 주었다.
- 스승호레이쇼 파커
예일에서 독일식 작곡법을 엄격히 가르쳤으나 아이브스의 실험에는 냉담했던 스승이다.
- 가족하모니 트위첼 아이브스
간호사 출신의 아내로, 아무도 들어 주지 않던 시절 그의 음악을 끝까지 믿어 준 사람이다.
- 우정줄리언 마이릭
보험 대리점 아이브스 앤드 마이릭을 함께 키운 평생의 동업자로, 아이브스가 작곡할 시간을 지켜 주었다.
- 우정헨리 카웰
1920년대 말 아이브스의 음악을 출판하고 알린 젊은 작곡가로, 아이브스는 그의 활동에 조용히 돈을 댔다.
- 영향아르놀트 쇤베르크
만난 적은 없지만 아이브스를 미국의 위대한 작곡가라 적은 메모를 남겨, 그가 사후에 평가받는 데 힘을 보탰다.
I. 댄버리의 소년 · 1874–1893 (0–19세)
(출생) 1874년 10월, 미국 코네티컷주 댄버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지 아이브스는 남북전쟁 때 북군 최연소 군악대장으로 복무한 뒤 고향에 돌아와 마을 악대와 합창단, 교회 음악을 이끈 음악가였다. 어머니 메리 엘리자베스 파멀리에 대해서는 남은 기록이 많지 않다. 두 살 아래 동생 모스는 훗날 변호사가 되었다. (실험) 아버지는 평범한 악대장이 아니었다. 두 악대를 서로 다른 곡을 연주하며 광장의 양쪽에서 엇갈려 행진하게 하고 그 소리가 겹치는 효과를 들어 보았으며, 피아노 사이의 음을 내려고 4분음 장치를 궁리했다. 아들에게는 노래를 한 조(調)로 부르게 하고 반주는 다른 조로 쳐 주며 "귀를 넓히라"고 가르쳤다. 서로 다른 음악이 동시에 울리는 아이브스 음악의 뿌리가 이 마당에 있었다. (오르간) 아이브스는 아버지에게 피아노·오르간·화성·대위법을 배웠다. 열세 살에 쓴 행진곡을 아버지의 악대가 연주했고, 열네 살 무렵에는 댄버리의 교회에서 보수를 받는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열일곱 살 무렵에는 애국가 '아메리카'를 주제로 한 오르간 변주곡을 썼는데, 변주 사이에 두 조가 동시에 울리는 짧은 간주를 끼워 넣었다. 그는 훗날 이 간주가 연주회에서는 빠지곤 했다고 회고했다. (야구) 그는 음악만 하는 소년이 아니었다. 학교 야구팀의 투수로 이름을 날렸고, 평생 운동과 몸을 쓰는 일을 남자다운 미덕으로 여겼다. 점잖고 부드럽기만 한 음악을 그가 경멸한 데에는 이 시절의 기질이 배어 있었다.
교회 오르가니스트였던 십대의 아이브스가 아버지에게 배운 실험을 처음으로 작품에 담은 곡이다. 경건한 애국가를 장난스럽게 비트는 솜씨가 벌써 드러난다.
- 주제는 영국 국가와 같은 선율인 '아메리카'다. 익숙한 가락이 변주마다 어떻게 옷을 갈아입는지 따라가 보면 좋다.
- 변주 사이의 짧은 간주에서는 두 개의 조가 동시에 울린다(다조성). 잠깐 음이 어긋나는 듯한 그 순간이 아이브스 실험의 출발점이다.
- 발로 연주하는 건반(페달)이 빠른 음계를 내달리는 변주는 악명 높은 대목이다. 아이브스는 이걸 치는 게 야구만큼 재미있었다는 투로 회고했다.
- 춤곡 폴로네즈 리듬의 변주와 거창하게 부풀린 마지막 변주에는 젠체하는 분위기를 놀리는 듯한 유머가 들린다.
- 1964년 작곡가 윌리엄 슈먼이 관현악으로 편곡한 판도 널리 연주된다. 오르간 원곡과 비교해 들으면 재미있다.
II. 예일과 아버지의 죽음 · 1893–1898 (19–24세)
(예일) 1893년 뉴헤이븐의 홉킨스 그래머 스쿨에 들어가 예일 대학 입학을 준비했고, 이듬해 가을 예일에 입학했다. 재학 내내 뉴헤이븐 센터 처치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며 용돈과 학비를 보탰다.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친구가 많았고, 클럽 행사용 노래와 행진곡을 써서 인기를 얻었다. (상실) 입학한 지 두 달 만인 1894년 11월,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마흔아홉 살이었다. 아이브스는 이 상실을 끝내 메우지 못했고, 평생 아버지를 음악적·도덕적 이상으로 떠받들었다. 그의 후기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악대 행진곡과 마을 찬송가는 상당 부분 아버지가 이끌던 음악에 대한 기억이었다. (파커) 예일의 스승은 독일 뮌헨에서 라인베르거에게 배운 작곡가 호레이쇼 파커였다. 아이브스는 그에게서 대위법과 관현악법, 소나타 형식을 엄격하게 익혔다. 그러나 두 조를 겹치는 아버지식 실험에 대해 파커는 냉담했고, 아이브스는 수업용 곡과 자기만의 실험 작품을 나눠 쓰기 시작했다. 파커가 "조를 혼자 다 쓸 셈이냐"고 핀잔을 주었다는 일화가 아이브스의 회고에 전한다. (교향곡) 졸업 무렵 완성한 교향곡 제1번은 스승이 가르친 유럽 전통을 성실히 따른 곡이다. 느린 악장에서 잉글리시 호른이 부르는 선율은 1893년 뉴욕에서 초연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을 떠올리게 하고, 곳곳에 차이콥스키와 브람스의 그림자도 비친다. 그는 1898년 예일을 졸업했다.
파커에게 배운 유럽 교향곡의 틀 안에 아버지의 악대와 마을 노래를 채워 넣은 곡이다. 50년 가까이 묵었다가 1951년 번스타인이 초연했다.
- 곡은 다섯 악장이다. 첫머리의 진지한 현악 합주는 브람스풍으로 들리지만, 곧 미국 찬송가와 민요 조각이 섞여 들어온다.
- 마지막 악장에서는 애국가 '컬럼비아, 바다의 보석', 춤곡 '칠면조는 짚더미에', 군대 기상나팔이 차례로 튀어나온다. 호른이 스티븐 포스터의 노래를 느긋하게 부르는 대목도 놓치지 말 것.
- 맨 끝에서 오케스트라가 거의 모든 음을 한꺼번에 내지르는 짧은 불협화음(어울리지 않는 음들의 화음)은 '야유 한 방'처럼 들린다. 지휘자마다 이 화음의 길이와 세기를 다르게 처리한다.
- 번스타인의 녹음들은 이 곡의 대표적인 비교 기준이다. 그가 마지막 화음을 얼마나 길게 끄는지 들어 보면 좋다.
III. 보험 회사의 사무원 · 1898–1907 (24–33세)
(취직) 졸업 후 뉴욕으로 가서 뮤추얼 생명보험 회사의 말단 사무원이 되었다. 음악으로 생계를 꾸리려면 대중의 취향에 맞춰야 한다고 그는 판단했다. 가족을 자기 불협화음 때문에 굶게 할 수는 없었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예일 동창들과 함께 '가난뱅이 아파트(Poverty Flat)'라 부른 셋집에 살며, 주말에는 뉴저지와 뉴욕의 교회에서 오르간을 쳤다. (사임) 1902년 봄, 오르가니스트로 있던 뉴욕 센트럴 장로교회에서 칸타타 '천상의 나라'가 초연되었다. 평은 정중했지만 미지근했다. 그해 그는 교회 자리를 내려놓았고, 직업 음악가의 길을 사실상 접었다. 이후의 작곡은 퇴근 후의 밤과 주말에 이루어졌다. 연주될 기약이 없어지자 그의 실험은 오히려 거침이 없어졌다. (동료) 회사에서는 레이먼드 대리점에서 일하던 줄리언 마이릭을 만났다. 아이브스보다 몇 살 아래인 그는 실무와 사람 관리에 능했고, 둘은 평생의 동업자가 된다. 1906년 말 아이브스는 과로로 건강이 무너져 마이릭과 함께 버지니아의 휴양지로 쉬러 갔다. (사색) 같은 해에 그는 '두 개의 사색'이라 묶은 짧은 관현악곡 두 편, '대답 없는 질문'과 '어둠 속의 센트럴 파크'를 썼다. 앞의 곡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뒤의 곡은 밤 공원에 멀리서 섞여 들리는 소음을 그렸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한 무대에서 겹치는 방식이 여기서 뚜렷해졌다. (재회) 이 무렵 예일 친구 데이비드 트위첼의 누나 하모니와 다시 가까워졌다. 1907년 두 사람은 약혼했다.
직업 음악가의 길을 접고 홀로 실험하던 시기에 쓴 '두 개의 사색' 가운데 하나다. 존재에 대한 물음을 세 겹의 소리로 무대 위에 세웠다.
- 현악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여리게(ppp) 느린 화음을 이어 간다. 아이브스는 이를 '드루이드의 침묵', 곧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고요라고 설명했다.
- 트럼펫이 같은 물음을 일곱 번 던진다. 아이브스는 이를 '존재에 대한 영원한 물음'이라 불렀다. 조성이 정해지지 않은(무조) 그 짧은 가락을 기억해 두자.
- 플루트 네 대의 '대답'은 회를 거듭할수록 빨라지고 시끄러워지며 다툰다. 그러다 끝내 대답을 포기하고 트럼펫을 비웃듯 흩어진다.
- 마지막 물음 뒤에 플루트는 침묵하고 현악기의 고요만 남는다. 현악기를 무대 밖에 두라는 지시가 있어서, 공연장에서는 거리감이 더 뚜렷하다.
- 번스타인이 1973년 하버드 강연의 제목을 이 곡에서 따왔을 만큼, 20세기 음악의 물음을 상징하는 곡이 되었다.
IV. 하모니 · 1907–1914 (33–40세)
(동업) 1907년 1월 다니던 대리점이 문을 닫자 아이브스는 마이릭과 함께 아이브스 앤드 컴퍼니를 세웠고, 1909년 이름을 아이브스 앤드 마이릭으로 바꿨다. 아이브스는 상품을 설계하고 판매원을 가르치는 이론가, 마이릭은 조직을 꾸리는 경영자였다. 회사는 빠르게 자라 훗날 미국에서 손꼽히는 보험 대리점이 되었다. (결혼) 1908년 6월, 하모니 트위첼과 결혼했다. 하모니는 간호사로 일한 여성이었고, 아버지 조지프 트위첼 목사는 마크 트웨인의 오랜 벗이었다. 주례는 장인이 섰다. 신혼여행 중 매사추세츠 스톡브리지의 후서토닉 강가를 함께 걸었던 일요일 아침은 몇 해 뒤 '뉴잉글랜드의 세 장소'의 마지막 곡이 되었다. 아이브스는 다른 이들과 달리 하모니만은 자기 음악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상실) 1909년 봄, 하모니는 유산 끝에 큰 수술을 받았고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부부는 이 일을 오래 마음에 품었다. 1912년 코네티컷 웨스트레딩에 땅을 사 이듬해 여름 집을 지었고, 이곳은 평생의 쉼터가 되었다. (말러) 아이브스의 회고에 따르면 1910년 무렵 뉴욕 필하모닉을 이끌던 말러가 악보 사보소에서 그의 교향곡 제3번을 보고 연주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말러는 1911년 세상을 떠났고, 이 이야기는 아이브스의 기록 밖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정점) 결혼 후 몇 해는 그의 작곡이 가장 무르익은 시기였다. 교향곡 제4번에 손을 댔고, '뉴잉글랜드의 세 장소'와 '휴일 교향곡'의 여러 곡을 썼다. 남북전쟁 흑인 연대의 기념비, 레딩의 독립전쟁 야영지, 신혼의 강가처럼 그의 곡은 구체적인 장소와 기억에서 출발했다.
결혼 뒤 가장 무르익은 시기의 곡으로, 세 곡 모두 구체적인 장소와 기억에서 출발한다. 마지막 곡은 하모니와의 신혼여행 산책이다.
- 1곡 '보스턴 코먼의 세인트고든스'는 남북전쟁의 흑인 연대를 기린 기념비를 그린다. 무겁게 끌리는 발걸음 같은 리듬 속에 옛 노래 조각들이 안개처럼 떠오른다.
- 2곡 '퍼트넘 캠프'에서는 소풍 온 아이가 꿈속에서 독립전쟁 병사들을 본다. 두 악대가 서로 다른 빠르기로 동시에 행진하며 부딪치는 대목이 아버지의 실험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 3곡 '스톡브리지의 후서토닉 강'에서는 현악기들이 서로 다른 리듬으로 겹쳐 강물 위의 물안개를 만든다. 그 위로 찬송가 가락이 천천히 떠오른다.
- 3곡 끝에서 소리가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다가 갑자기 끊기고 여린 현악만 남는다. 이 낙차를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지휘자 비교의 핵심이다.
V. 콩코드 · 1914–1918 (40–44세)
(입양) 아이브스 부부는 웨스트레딩 집에서 도시의 가난한 가정이 여름을 보내도록 도왔다. 그렇게 찾아온 오즈번 집안의 갓난아기가 병을 앓자 하모니가 간호했고, 1915년 부부는 이 아이를 맡아 이듬해 정식으로 입양했다. 이디스 오즈번 아이브스였다. 아이브스는 딸을 각별히 아꼈다. (루시타니아) 1915년 5월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독일 잠수함에 격침되었다. 그날 저녁 아이브스는 뉴욕 하노버 스퀘어의 고가철도 승강장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찬송가를 따라 부르는 것을 들었다. 이 경험은 '관현악 모음곡 제2번'의 마지막 곡이 되었다. 그에게 음악은 늘 이런 공동의 순간에 닿아 있었다. (콩코드) 1916년 무렵부터 피아노 소나타 제2번 '콩코드'를 다듬었다. 19세기 매사추세츠 콩코드의 사상가들, 곧 에머슨·호손·올컷 가족·소로를 네 악장에 그린 곡이다. 그는 이 소나타 전체에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의 첫 네 음 동기를 심어, 운명의 두드림을 인간 정신의 물음으로 바꾸어 놓았다. 소나타에 붙인 산문 '소나타 앞의 에세이'에서는 초월주의(인간 안에 신성이 있다고 믿은 사상)를 옹호하는 한편, 드뷔시가 생계를 위해 땀 흘려 일해 보았다면 음악의 내용이 더 깊어졌으리라고 꼬집었다. (전쟁) 1917년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그는 전쟁을 지지하며 '플랑드르 들판에서' 같은 노래를 썼고, 기독교청년회(YMCA) 봉사단으로 프랑스에 가려고도 했다. (붕괴) 1918년 10월, 심한 심장 발작이 그를 덮쳤다. 당뇨도 함께 진단되었다. 몇 달을 요양한 끝에 회복했지만, 이전처럼 밤마다 작곡하는 생활은 다시 오지 않았다.
심장 발작 직전까지 다듬던 그의 사상적 정점이다. 베토벤의 운명 동기를 초월주의 사상가들의 초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 네 악장 내내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의 첫 네 음(짧-짧-짧-길) 동기가 숨어 있다. 악장마다 그 동기가 어떤 얼굴로 나오는지 찾아 들으면 곡 전체가 하나로 엮인다.
- 2악장 '호손'에는 약 37센티미터 길이의 나무판으로 건반 여러 개를 한꺼번에 누르라는 지시가 있다. 이렇게 나는 음 덩어리(톤 클러스터)가 환상적인 소란을 만든다.
- 3악장 '올컷 가족'은 가장 단순하고 따뜻한 악장이다. 집 안의 낡은 피아노로 치는 듯한 찬송가풍 선율 위에서 베토벤 동기가 부드러운 장조로 노래한다.
- 1악장 '에머슨'에는 비올라를, 4악장 '소로'에는 플루트를 마음대로 넣을 수 있다. 소로 악장 끝의 플루트는 월든 호숫가의 피리 소리처럼 들린다.
- 악명 높게 어렵고 판본도 여럿이다. 커크패트릭의 역사적 녹음과 이후 거장들의 녹음은 템포와 선택한 판본이 크게 달라 비교하는 재미가 크다.
VI. 집 안 정리 · 1919–1932 (45–58세)
(자비출판) 회복한 아이브스는 새 곡보다 이미 쓴 곡을 세상에 내놓는 일에 힘을 쏟았다. 1920년 '콩코드 소나타'와 '소나타 앞의 에세이'를, 1922년 가곡집 '114곡의 노래'를 자비로 찍어 음악가와 평론가들에게 무료로 보냈다. 조롱 섞인 반응도 많았다. 가곡집 후기에 그는 이 책을 돈이나 명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집 안을 정리했을 뿐"이라고 썼다. (신념) 그는 정치에도 열정적이었다. 정당 정치를 불신했고, 국민이 법안을 직접 발의하고 결정하는 헌법 수정안을 구상해 알리려 했다. 다수의 양식(良識)을 믿는 그의 민주주의관은 서민의 찬송가와 행진곡을 교향곡에 끌어들인 태도와 같은 뿌리였다. (4분음) 1923~24년에는 두 대의 피아노를 4분음 차이로 조율해 연주하는 '4분음 피아노 소품 세 곡'을 썼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궁리하던 실험을 아들이 마무리한 셈이었다. (침묵) 그러나 작곡은 점점 멈추었다. 하모니는 1927년 무렵 남편이 눈물을 글썽이며 내려와 더는 작곡을 못 하겠다, 아무것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거대한 '우주 교향곡'은 끝내 미완으로 남았다. (동지) 이 무렵 젊은 작곡가 헨리 카웰이 그의 음악을 알아보고 자신의 악보 잡지 '뉴 뮤직'에 실었다. 지휘자 니콜라스 슬로님스키는 1931년 '뉴잉글랜드의 세 장소'를 뉴욕과 파리에서 연주했다. 아이브스는 이 연주들과 다른 실험 작곡가들의 출판에 조용히 돈을 댔다. 1930년 그는 사업에서 은퇴했고, 1932년에는 자신의 음악과 삶을 구술한 기록 '메모'를 남겼다.
1927년 앞의 두 악장만 처음 연주되었고, 아이브스는 생전에 전곡을 듣지 못했다. 침묵에 들어선 작곡가가 남긴 가장 거대한 질문이다.
- 1악장에서는 합창이 찬송가 '파수꾼아, 밤에 대해 말해 다오'를 부른다. 삶은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물음으로 곡이 시작된다.
- 2악장 '코미디'는 여러 행진곡과 노래가 서로 다른 빠르기로 한꺼번에 울리는 대혼란이다. 지휘자가 한 명으로는 모자라 보조 지휘자를 두는 경우가 많다.
- 3악장은 뜻밖에도 단정한 푸가(같은 가락이 성부를 옮겨 다니며 쫓는 곡)다. 앞 악장의 소란 뒤에 오는 이 정돈된 신앙의 소리가 대비를 이룬다.
- 4악장에서는 타악기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따로 박을 짚는다. 가사 없는 합창이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의 가락을 머금다가 멀어지며 곡이 사라진다.
- 1965년 스토코프스키가 보조 지휘자 둘과 함께 전곡을 초연했다. 이후 연주자들이 이 복잡한 층을 얼마나 투명하게 들려주는지가 명연의 기준이 되었다.
VII. 늦은 인정 · 1933–1954 (59–80세)
(은둔) 은퇴 후 아이브스는 뉴욕 74번가의 집과 웨스트레딩을 오가며 조용히 지냈다. 당뇨와 심장병으로 손이 떨렸고, 신문과 연주회를 멀리했다. 자기 곡이 연주되는 자리에도 좀처럼 나가지 않았다. (초연) 1939년 1월, 피아니스트 존 커크패트릭이 뉴욕 타운홀에서 '콩코드 소나타'를 연주했다. 이 곡을 몇 해 동안 익힌 끝이었다. 평론가 로런스 길먼은 미국인이 쓴 가장 위대한 음악이라고 썼다. 20년 가까이 서랍 속에 있던 음악이 비로소 청중을 만난 순간이었다. (쇤베르크) 같은 무렵 미국에 망명해 있던 쇤베르크는 이 나라에 위대한 작곡가가 살고 있다는 메모를 남겼다. 그는 남의 무관심에 경멸로 답하고 칭찬도 비난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며, 이름은 아이브스라는 내용이었다. 이 메모는 1951년 쇤베르크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유품에서 나왔다. (퓰리처) 1946년 작곡가 루 해리슨이 교향곡 제3번을 초연했고, 이 곡은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40여 년 전에 쓴 곡이었다. 아이브스는 상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며 상금의 상당 부분을 남에게 나눠 주었다. 1951년에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뉴욕 필하모닉과 교향곡 제2번을 초연했다. 아이브스는 공연장에 가지 않고 라디오로 들었다고 전해진다. (죽음) 1954년 5월 19일, 뉴욕에서 수술을 받은 뒤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일흔아홉 살이었다. 고향 댄버리의 묘지에 묻혔다. 딸 이디스는 2년 뒤, 하모니는 1969년에 그 뒤를 따랐다. 교향곡 제4번은 그가 죽은 지 11년 뒤에야 전곡이 초연되었다.
젊은 시절에 쓴 소박한 곡이 40여 년 뒤에야 초연되어 퓰리처상을 받았다. 늦게 찾아온 인정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 부제의 '캠프 집회'는 시골 사람들이 야외에 모여 며칠씩 예배하던 부흥회를 가리킨다. 세 악장 모두 그런 집회의 찬송가를 바탕으로 한다.
- 1악장 '옛 친구들의 모임'에서는 찬송가 가락이 여러 악기 사이를 오가며 대화하듯 겹친다. 교회 오르가니스트 시절 아이브스가 쓴 오르간 곡이 바탕이다.
- 2악장 '어린이날'은 경쾌하다. 집회에 따라온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처럼 들린다.
- 3악장 '성찬식'은 찬송가 '있는 모습 그대로(Just As I Am)'의 곡조 '우드워스'를 바탕으로 한다. 끝부분에서 멀리서 울리는 듯한 종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 보면 좋다. 아이브스는 이런 소리를 '그림자 성부'라 불렀다.
- 작은 편성의 실내 관현악이라 다른 교향곡보다 소리가 맑다. 아이브스를 처음 듣는 사람에게 가장 다가가기 쉬운 곡으로 꼽힌다.
덜 알려진 이야기
(연대) 아이브스는 자기 작품의 상당수가 1900년대 초에 쓰였다고 밝혔고, 그래서 오랫동안 쇤베르크·스트라빈스키보다 앞선 불협화음의 선구자로 소개되었다. 그런데 1987년 음악학자 메이너드 솔로몬이 그가 날짜를 앞당기고 나중에 불협화음을 덧붙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후 게일 셔우드 매기가 악보 종이의 종류와 필체 변화를 분석해, 많은 곡의 실제 작곡 연대가 아이브스의 주장보다 몇 해씩 늦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다만 학계는 대체로 이를 의도적인 기만보다는 평생 곡을 고쳐 쓰고 처음 구상한 시점을 기준으로 기억한 습관으로 본다. 대중적 전기에는 여전히 옛 연대가 그대로 실리는 경우가 많다. (보험) 미국 보험업계에서 아이브스는 작곡가가 아니라 혁신가로 기억된다. 1918년 무렵 그는 '보험 가입액 산정법(The Amount to Carry)'이라는 판매원 교육용 글을 썼다. 한 가정의 수입과 필요를 따져 보험 액수를 정하는 방법을 담은 이 글은 오늘날 재산 설계의 초기 형태로 평가받는다. 그는 판매원 학교를 열어 직접 강의했고, 동료들 대부분은 그가 작곡을 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후원) 그는 자기 음악뿐 아니라 동시대 실험 작곡가들의 출판과 연주에도 익명으로 돈을 댔다. 카웰의 '뉴 뮤직'이 오래 버틴 데에는 그의 돈이 컸다. 퓰리처 상금을 나눠 준 일처럼, 이런 후원은 그가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려 해서 당시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용어 노트 📚🔎
다조성(多調性)
(말뜻) 여러(多) 개의 조(調)가 함께 있는 성질이라는 뜻이다. 조가 두 개뿐이면 복조성이라고도 한다. (음악에서) 보통 음악은 '다장조'처럼 하나의 중심음과 음계 위에서 움직이는데, 이것을 조라고 한다. 다조성은 서로 다른 조의 선율이나 화음을 동시에 울리는 방법이다. 아이브스의 아버지는 노래는 한 조로 부르게 하고 반주는 다른 조로 쳤다. 친구와 같은 노래를 부르는데 한 사람은 '도'에서, 다른 사람은 '레'에서 시작해 끝까지 그대로 부른다고 생각해 보자. 어긋나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함께 가는 그 소리가 다조성이다.
인용
(말뜻) 끌어다(引) 쓴다(用)는 뜻이다. (음악에서) 이미 있는 다른 곡의 선율을 자기 곡 안에 그대로, 혹은 조금 바꾸어 넣는 것이다. 아이브스는 찬송가·행진곡·민요·애국가, 심지어 베토벤 교향곡까지 수많은 선율을 인용했다. 여러 인용을 한꺼번에 겹쳐 기억 속 풍경을 만든 것이 그의 특징이다. 친구들 사진을 오려 붙여 생일 카드를 만들면 사진 하나하나는 남의 것이어도 카드 전체는 새로운 작품이 된다. 아이브스의 인용이 꼭 그렇다. (다른 데서는) 글쓰기에서는 남의 말이나 글을 따옴표로 묶어 옮겨 오는 것을 가리킨다.
톤 클러스터
(말뜻) 영어 tone cluster 는 '음(tone)의 송이·덩어리(cluster)'라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음괴(音塊), 곧 음 덩어리라고도 한다. (음악에서) 나란히 붙은 여러 음을 한꺼번에 누르거나 울려서 만드는 덩어리 소리다. 피아노에서는 손바닥이나 팔뚝, 아이브스의 '콩코드 소나타'에서처럼 나무판으로 건반을 누른다. 피아노 건반 위에 팔을 툭 얹었을 때 나는 '와앙' 하는 소리를 떠올리면 된다. 작곡가는 그 소리를 일부러 계획해서 쓴다는 점이 다르다. (다른 데서는) 클러스터는 컴퓨터 분야에서 여러 대의 컴퓨터를 묶어 하나처럼 쓰는 구조를 가리키기도 한다.
4분음
(말뜻) 온음을 넷(4)으로 나눈(分) 음이라는 뜻이다. 반음의 절반이다. (음악에서) 피아노에서 바로 옆 건반 사이의 거리가 반음이다. 4분음은 그 반음을 다시 반으로 나눈 아주 작은 음 간격이라 보통 피아노로는 낼 수 없다. 아이브스는 두 대의 피아노 중 한 대를 4분음만큼 높게 조율해 이 소리를 만들었다. 리코더 구멍을 반만 막으면 정해진 두 음 사이의 어정쩡한 음이 나는데, 그 사이의 음이 바로 이런 미세한 간격이다.
변주곡
(말뜻) 변주(變奏)는 바꾸어(變) 연주한다(奏)는 뜻이다. (음악에서) 먼저 하나의 주제 선율을 들려주고, 그 주제를 리듬·화음·빠르기·분위기를 바꿔 가며 여러 번 다시 들려주는 곡이다. 주제의 뼈대는 남아 있어서 듣는 사람이 알아볼 수 있다. 같은 라면이라도 치즈를 넣고, 매운 양념을 넣고, 볶음면으로 만들면 맛은 달라도 라면이라는 건 알 수 있다. 변주곡은 주제를 그렇게 요리한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같은 이야기의 변주'처럼 기본 틀은 같고 모양만 바뀐 것을 비유할 때 쓴다.
불협화음
(말뜻) 서로 어울리지(協和) 않는(不) 음, 곧 함께 울릴 때 부딪치는 화음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동시에 울리는 음들이 긴장되거나 거칠게 들리는 화음을 말한다. 반대로 편안하게 녹아드는 화음은 협화음이다. 전통 음악에서는 불협화음이 나오면 곧 협화음으로 풀어 주었다. 아이브스와 20세기 작곡가들은 불협화음을 풀지 않고 그 자체로 쓰기도 했다. 체육관에서 여러 반이 각자 다른 응원가를 부를 때 나는 소리가 불협화음과 비슷하다. 시끄럽지만 그 안에 생생한 힘이 있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사람이나 집단 사이의 의견 충돌을 빗대어 '불협화음이 났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