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vo Pärt
“한 음이 아름답게 연주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스승하이노 엘레르
탈린 음악원에서 그에게 작곡을 가르치며 제자의 개성을 억누르지 않은 에스토니아 근대 작곡의 스승이다.
- 가족노라 패르트
1972년 결혼한 아내로, 그의 작업을 가장 가까이에서 도왔고 아르보 패르트 센터 설립에 앞장섰다.
- 존경벤저민 브리튼
만나지 못한 채 떠나보낸 작곡가로, 패르트는 그 음악의 순수함에 끌려 「칸투스」를 바쳤다.
- 우정알프레트 슈니트케
소련 시절의 동료이자 친구로, 「타불라 라사」 초연에서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맡았다.
- 우정기돈 크레머
「타불라 라사」를 초연하고 「프라트레스」 바이올린 판본을 서방에 알린 바이올리니스트다.
- 후원만프레트 아이허
ECM의 제작자로, 1984년 음반 『타불라 라사』를 시작으로 그의 음악을 세계에 소개했다.
I. 라크베레의 소년 · 1935–1954 (0–19세)
(출생) 1935년 9월, 에스토니아 파이데에서 태어났다. 날짜는 11일이었고, 에스토니아가 독립 공화국이던 짧은 시절이었다. 그는 어머니를 따라 북부의 소도시 라크베레로 옮겨 그곳에서 자랐다. 부모와 형제에 관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격변) 유년은 전쟁과 점령 속에 지나갔다. 1940년 소련이 에스토니아를 병합했고, 이듬해에는 독일군이 들어왔다. 1944년에는 다시 소련 체제가 돌아왔다. 그가 자란 나라는 이후 반세기 가까이 소련의 한 공화국으로 남았다. 그의 음악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정치 지형과 떼어 놓을 수 없었다. (피아노) 집에 있던 낡은 피아노는 가운데 음역의 건반이 제대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전한다. 소년은 소리가 나는 맨 위와 맨 아래 건반으로 즉흥 연주를 하며 놀았다. 이윽고 지역 음악 학교에서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웠고, 십대에 이미 작은 곡들을 써 보았다. (라디오) 라크베레 광장에는 확성기로 라디오 방송을 내보내는 기둥이 있었다. 그가 광장의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즐겨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악보도 음반도 귀하던 시절, 그의 첫 교과서는 그렇게 공중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조심) 훗날 그는 극도로 적은 음으로 곡을 쓰게 된다. 그래서 그가 쓸 수 있는 건반이 제한된 피아노 앞에서 자랐다는 사실이 자주 거론된다. 다만 이것을 그 양식의 원인으로 볼 근거는 없다. 어린 시절의 한 장면으로 남겨 두는 편이 정확하다.
II. 탈린의 모더니스트 · 1954–1968 (19–33세)
(유학) 1954년 탈린 음악학교에 들어갔으나 곧 소련군에 징집됐다. 군악대에서 그는 오보에와 타악기를 연주했다. 제대 뒤 1957년 탈린 음악원에 입학해 하이노 엘레르에게 작곡을 배웠다. 엘레르는 에스토니아 근대 작곡의 기틀을 놓은 교사였고, 제자의 개성을 억누르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방송) 그는 학생 시절부터 1967년 무렵까지 에스토니아 방송국에서 녹음 기사이자 음악 프로듀서로 일했다. 이 일은 생계였지만, 마이크 앞의 소리를 매일 다루며 귀를 벼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연극과 영화 음악도 꾸준히 써서 수입을 보탰다. (음렬) 1960년 관현악곡 「추도곡(Nekrolog)」은 에스토니아에서 처음으로 12음 기법을 쓴 작품으로 꼽힌다. 파시즘의 희생자들에게 바친 곡이었다. 그러나 서방 전위의 기법을 썼다는 이유로 소련 작곡가동맹의 티혼 흐렌니코프에게 공개적으로 비판받았다. 반면 1962년에는 어린이 칸타타 「우리의 정원」 등으로 전 연방 청년 작곡가 콩쿠르 1위에 올랐다. 그는 비판과 인정을 동시에 받는 처지였다. (바흐) 1964년 「B-A-C-H에 의한 콜라주」에서 그는 바흐 이름의 철자를 음으로 옮긴 동기와 바흐풍의 악구를 현대적인 소리와 맞부딪쳤다. 1966년에는 첼로 협주곡 「찬성과 반대」를 썼다. 옛 음악과 새 음악을 충돌시키는 이 시기의 방식은 자신이 어디에 서야 할지 묻는 모습이기도 했다. (크레도) 1968년 「크레도」는 그 물음의 정점이자 파국이었다. 이 곡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라틴어 고백을 내걸었다. 음악으로는 바흐의 C장조 전주곡을 인용했다. 네메 예르비의 지휘로 초연됐지만, 공개적인 신앙 고백이 당국의 눈에 문제가 되었다. 곡은 이후 오랫동안 소련에서 연주되지 못했다.
바흐의 전주곡과 12음의 혼돈을 맞세우고 신앙 고백을 내건 이 곡은 그의 전위 시대를 끝내고 긴 침묵을 불러온 작품이다.
- 도입에서 합창이 'Credo'를 외친 뒤, 피아노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C장조 전주곡을 펼쳐 놓는다. 친숙한 화음을 한 음씩 펼쳐 흐르게 하는 분산화음(아르페지오)이 그대로 들린다.
- '눈에는 눈'(oculum pro oculo)이라는 마태복음 구절이 나오면 음악은 열두 음을 고르게 쓰는 12음 기법으로 무너져 내린다. 연주자들이 일정 부분 자유롭게 연주하는 대목에서 소음에 가까운 덩어리로 부풀어 오른다.
- 혼돈이 정점에 이른 뒤 바흐의 C장조가 다시 돌아온다. 이 귀환은 '악에 맞서지 말라'는 뒤 구절에 대한 음악적 대답처럼 들린다.
- 곡 전체가 C장조로 시작해 C장조로 끝난다. 그 사이의 충돌이 얼마나 격렬하게 처리되는지가 지휘자마다 다르니, 혼돈 대목의 음량과 속도를 비교해 들으면 좋다.
III. 침묵 · 1968–1976 (33–41세)
(막다름) 「크레도」 이후 그는 자신이 써 온 음악 언어가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고 느꼈다. 12음 기법도 콜라주도 더 할 말을 주지 않았다. 이후 약 8년 동안 그가 내놓은 큰 작품은 1971년 교향곡 3번 정도였다. (필사) 그는 그레고리오 성가, 노트르담 악파, 마쇼, 오케겜, 조스캥 같은 중세·르네상스 음악을 들여다보며 베껴 썼다. 한 줄의 선율이 어떻게 숨 쉬고 움직이는지를 손으로 따라가는 연습이었다. 교향곡 3번에는 이 탐구가 중세풍의 선율과 울림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답을 찾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정교) 이 무렵 그는 러시아 정교회에 입교했다. 루터교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 자란 그에게 정교의 기도와 침묵의 전통은 새로운 중심이 되었다. 이후 그의 음악에서 신앙은 주제라기보다 작곡하는 태도 자체가 되었다. (노라) 1972년 노라와 결혼했다. 노라 패르트는 이후 남편의 작업을 가까이에서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훗날 패르트 센터를 세우는 일에도 앞장섰다. (생계) 침묵기의 생활을 지탱한 것은 영화 음악이었다. 그는 에스토니아의 극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위해 많은 음악을 썼다. 공식 무대에 자기 이름의 신작이 드물던 시기에도 작곡가로서의 손은 쉬지 않았다. (알리나) 1976년 2분 남짓한 피아노곡 「알리나를 위하여」가 나왔다. 이 곡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 그가 '틴티나불리'라 부른 기법이다. 3화음을 이루는 음들이 종처럼 울리는 방식이었다. 그는 훗날 이 무렵을 돌아보며 한 음이 아름답게 연주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8년의 침묵이 이 몇 개의 음으로 응축되었다.
8년 가까운 침묵 끝에 나온 2분 남짓한 피아노곡으로, 틴티나불리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자리다.
- 맨 처음 가장 낮은 음역에서 B음이 옥타브로 한 번 울린다. 이 음은 페달로 끝까지 이어진다. 곡 전체가 이 한 번의 울림 위에 떠 있으니 그 잔향이 사라져 가는 것을 끝까지 따라가 보자.
- 악보 첫머리 지시어는 '고요하게, 고양되어, 자기 안에 귀 기울이며'라는 뜻의 독일어다. 빠르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적어 둔 셈이다.
- 오른손은 한 음씩 움직이는 선율이다. 왼손은 B단조 3화음(시·레·파#)의 음만 골라 짚는다. 두 손이 각각 무엇을 하는지 나눠 들으면 틴티나불리의 원리가 귀로 보인다.
- 음 길이가 엄격히 정해져 있지 않아 연주자마다 호흡이 크게 다르다. 1999년 ECM 음반 『알리나』에는 알렉산더 말터가 이 곡을 여러 차례 길게 이어 연주한 판본이 실려 있다.
IV. 종소리의 해 · 1976–1980 (41–45세)
(분출) 새 방법을 얻자 작품이 쏟아졌다. 1977년 한 해에만 「프라트레스」, 「벤저민 브리튼을 추모하는 칸투스」, 「타불라 라사」, 「숨마」가 나왔다. 이듬해에는 「거울 속의 거울」이 이어졌다. 오랜 침묵 끝에 그는 거의 같은 원리로 전혀 다른 표정의 곡들을 써 냈다. (원리) 틴티나불리의 원리는 단순했다. 한 성부는 계단처럼 한 음씩 움직이는 선율을 맡는다. 다른 성부는 기준이 되는 3화음의 음만 골라 그 선율 곁에 놓는다. 그는 이 두 성부가 하나라는 뜻에서 '1+1=1'이라고 쓰기도 했다. 선율이 개인의 걸음이라면 화음의 음은 그 걸음을 붙드는 종소리였다. (브리튼) 1976년 12월 4일 벤저민 브리튼이 세상을 떠났다. 패르트는 그 무렵 막 브리튼의 음악을 알게 되어 그 드문 순수함에 끌리던 참이었다고 말했다. 만나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도 함께 밝혔다. 그 마음으로 쓴 「칸투스」는 같은 하강 음계를 여러 성부가 서로 다른 속도로 뒤따르는 카논이다. 곡에는 종소리가 함께한다. (초연) 1977년 탈린에서 「타불라 라사」가 초연됐다. 기돈 크레머와 타티야나 그린덴코가 독주 바이올린을 맡았다. 프리페어드 피아노는 친구 알프레트 슈니트케가 맡았다. 텅 빈 석판이라는 제목처럼, 이 곡은 그가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압박) 그러나 종교적 색채와 서방의 관심은 소련 당국과의 긴장을 키웠다. 작품 활동의 운신 폭은 좁아졌다. 1980년 1월 그는 출국 허가를 얻어 가족과 함께 에스토니아를 떠났다. 다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형제들'이라는 뜻의 이 곡은 1977년 고음악 앙상블을 위해 쓴 뒤 수많은 편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틴티나불리가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 준다.
- 낮은 곳에서 A와 E 두 음이 곡 내내 끊이지 않고 울린다. 이렇게 한 음을 오래 계속 울려 바탕을 까는 것을 지속음(드론)이라 한다. 그 위로 같은 선율 묶음이 높이를 바꿔 가며 되풀이된다.
- 각 묶음 사이에는 짧은 타악적 리듬이나 끊어 치는 화음이 끼어든다. 종소리처럼 마디를 나누는 이 쉼표 같은 순간들이 곡의 숨이다.
- 1980년 바이올린과 피아노 판본은 바이올린이 현을 넘나들며 빠르게 화음을 흩뿌리는 분산화음(아르페지오)으로 시작한다. 고요한 원판과 정반대의 화려함이라 두 판본을 나란히 들어 볼 만하다.
- 1984년 ECM 음반 『타불라 라사』에는 기돈 크레머와 키스 재럿의 바이올린·피아노 판본과 첼로 앙상블 판본이 함께 실려 있다. 같은 곡이 편성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 비교하기 좋다.
막 알게 된 브리튼의 음악에 끌리던 순간 그의 부고를 들은 패르트가, 만나지 못한 작곡가에게 바친 6분 남짓한 애가다.
- 곡은 소리가 아니라 쉼표, 곧 침묵으로 시작한다. 이어 종이 홀로 울린다. 이 종소리가 곡 전체의 시간을 재는 박자처럼 이어진다.
- 현악기들이 모두 A단조 음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하강) 같은 선율을 연주한다. 다만 성부마다 속도를 절반씩 달리한다. 빠른 성부와 느린 성부가 겹쳐 점점 두꺼운 울림의 폭포가 되는 과정을 들어 보자.
- 음량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서히 커진다. 가장 크게 부풀었을 때 모든 성부가 낮은 A음에 닿으며 멈춘다.
- 현이 그친 뒤 종의 잔향만 남아 사라진다. 이 마지막 몇 초를 끊지 않고 끝까지 듣는 것이 이 곡을 듣는 방법이다.
크레머와 그린덴코, 그리고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맡은 슈니트케가 함께 초연한 이중 협주곡이다. '빈 석판'이라는 제목은 다시 시작하는 작곡가의 선언처럼 읽힌다.
- 1악장 '루두스(놀이)'는 두 바이올린이 A음을 강하게 울린 뒤 긴 침묵이 이어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침묵이 짧아지고 소리가 늘어나며 음악이 점점 빠르고 거세지는 구조를 따라가 보자.
- 피아노 현 사이에 나사나 금속을 끼운 프리페어드 피아노가 종이나 작은 징처럼 울린다. 현악의 흐름 위에 툭툭 떨어지는 이 소리가 곡의 색을 정한다.
- 2악장 '실렌티움(침묵)'은 여러 성부가 같은 선율을 서로 다른 속도로 펼치는 느린 음악이다. 독주 바이올린이 그 위를 떠돈다.
- 곡의 끝에서 낮은 현이 하나씩 빠져나가며 소리가 침묵 속으로 사라진다. 어디까지가 음악이고 어디부터가 침묵인지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다.
V. 베를린의 수도자 · 1980–2000 (45–65세)
(빈) 첫 정착지는 빈이었다. 그는 오스트리아 국적을 얻었고, 빈의 출판사 우니베르잘 에디치온이 그의 악보를 맡았다. 이듬해 독일 학술교류처(DAAD)의 지원으로 서베를린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약 30년을 살았다. (음반) 전환점은 음반이었다. ECM의 제작자 만프레트 아이허는 운전 중 라디오에서 「타불라 라사」를 듣고 그를 찾았다고 전한다. 1984년 그 곡과 「프라트레스」 등을 담은 음반 『타불라 라사』는 ECM 뉴 시리즈의 첫 앨범이 되었다. 이 음반으로 그의 이름은 클래식 바깥의 청중에게까지 알려졌다. (말씀) 서방에서 그는 점점 더 성경과 전례의 텍스트에 기대어 썼다. 「요한 수난곡(Passio)」(1982), 「테 데움」(1984–85), 「스타바트 마테르」(1985), 「미제레레」(1989)가 그렇게 나왔다. 그는 단어의 음절 수와 강세에서 음의 길이를 끌어냈다. 「테 데움」은 낮은 지속음 위에서 세 합창단이 말씀을 주고받는다. 그 바탕에는 미리 녹음한 바람 하프의 울림이 깔린다. (구분) 비평가들은 그를 스티브 라이시, 필립 글래스와 함께 미니멀리즘으로 묶곤 했다. 비슷한 시기 동유럽의 종교적 작곡가들과 함께 '성스러운 미니멀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라이시와 글래스의 음악이 반복되는 박동으로 앞으로 나아간다면, 패르트의 음악은 멈춤과 여백으로 숨을 쉰다. 그 자신도 이런 꼬리표에 거리를 두었다. (독립) 1991년 에스토니아가 독립을 되찾았다. 그는 다시 고국을 오가기 시작했다. 1990년 「베를린 미사」, 1997년 쾰른 대성당 750주년을 위한 「참회의 카논」에서 그의 정교적 기도는 더 길고 깊어졌다.
베를린에 정착한 뒤 전례 텍스트로 깊이 들어간 시기의 대작이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옛 라틴어 찬가를 낮은 지속음 위에서 천천히 펼친다.
- 도입에서 미리 녹음한 바람 하프(바람이 현을 스쳐 울리는 악기)의 울림이 거의 들릴 듯 말 듯 깔린다. 음량을 넉넉히 올리고 첫 순간부터 들어 보자.
- 여성 합창, 남성 합창, 혼성 합창의 세 무리가 번갈아 노래한다.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두 성가대가 주고받던 방식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 곡 내내 D음을 중심으로 한 낮은 지속음(드론)이 이어진다. 그 위에서 화음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는 변화가 곡의 큰 흐름이다.
- 말씀의 음절과 강세가 음의 길이를 정한다. 텍스트를 옆에 두고 단어가 어떻게 늘어나고 줄어드는지 따라가면 훨씬 또렷하게 들린다.
VI. 숲으로의 귀향 · 2000–2026 (65–91세)
(애도) 2002년 「라멘타테」는 런던 테이트 모던에 걸린 아니시 카푸어의 거대한 조형물 「마르시아스」를 보고 쓴 곡이다. 2004년 「다 파쳄 도미네」는 마드리드 열차 테러의 희생자를 위해 쓰였다. 이 곡은 이후 스페인에서 해마다 희생자를 추모하며 연주되어 왔다. 음악은 점점 더 세상의 상처에 응답하는 기도가 되었다. (증언) 그는 침묵의 작곡가였지만 침묵하는 시민은 아니었다. 2006년 피살된 러시아 기자 안나 폴릿콥스카야에게 2006–07년 시즌 자신의 모든 공연을 바쳤다. 2008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이 위촉한 교향곡 4번은 당시 러시아에서 수감 중이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에게 헌정했다. 소련 시절 「크레도」로 겪은 일을 아는 사람의 선택이었다. (귀향) 2010년 무렵 그는 탈린 근교 바닷가 숲 마을 라울라스마로 돌아와 정착했다. 같은 해 가족은 그의 악보와 자료를 보존할 아르보 패르트 센터를 세웠다. 2018년 소나무 숲 속에 센터의 새 건물이 문을 열었다. (탄식) 2010년 「아담의 탄식」은 아토스산의 수도자 성 실루안의 글을 노래한다. 낙원을 잃은 아담의 울음을 인류 전체의 슬픔으로 그린 곡이다. 이스탄불에서 초연됐고, 2014년 그래미상 합창 부문을 받았다. 틴티나불리의 맑은 울림에 이전보다 거친 불협화음이 섞인 이 곡은 노년의 음악이 결코 평온하기만 한 것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현재) 그는 공연 통계 사이트 바흐트랙의 집계에서 여러 해 동안 가장 많이 연주된 생존 작곡가로 꼽혔다. 2025년 아흔 살 생일에는 에스토니아와 세계 곳곳에서 기념 연주가 열렸다. 라크베레 광장의 확성기 아래서 음악을 듣던 소년의 몇 개의 음은 오늘도 세계 곳곳의 성당과 연주장에서 울리고 있다.
고향 숲으로 돌아온 무렵 성 실루안의 글로 쓴 이 곡은 노년의 패르트가 낙원을 잃은 인간의 슬픔을 얼마나 거칠게 끌어안을 수 있는지 보여 준다.
- 가사는 아토스산의 수도자 성 실루안이 남긴 글로, 교회 슬라브어로 노래한다. 아담이 낙원을 떠나 우는 장면이 인류 전체의 울음으로 넓어지는 흐름을 텍스트와 함께 따라가 보자.
- 합창과 현악이 번갈아 나오며 대화하듯 이어진다. 현악만 남는 간주는 말이 멈춘 뒤의 한숨처럼 들린다.
- 초기 틴티나불리의 맑은 화음에 비해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이 훨씬 많다. 특히 큰 소리로 터지는 외침 대목에서 그 차이가 분명하다.
- 2014년 그래미상을 받은 음반은 톤뉘 칼유스테가 지휘한 에스토니아 필하모닉 실내합창단의 연주다. 패르트 합창 음악의 기준처럼 여겨지는 녹음이다.
덜 알려진 이야기
(영화) 패르트는 1960~70년대에 에스토니아의 극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위해 수십 편의 음악을 썼다. 공식 신작이 거의 없던 침묵기에 생계를 받친 것이 이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명성이 서방의 종교 음악으로 굳어지면서 이 작업은 오래 주목받지 못했다. 아르보 패르트 센터가 자료를 정리하면서 비로소 그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알리나) 틴티나불리의 출발점이 된 「알리나를 위하여」는 친구의 딸 알리나에게 헌정된 곡이다. (소프로니) 그는 영국 에식스의 정교회 수도원을 찾아 그곳의 수도사제 소프로니를 여러 차례 만났다. 소프로니는 아토스산의 성 실루안의 제자이자 그의 글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었다. 1991년 「실루안의 노래」와 2010년 「아담의 탄식」이 모두 실루안의 글에서 나온 것은 이 만남과 이어진다. 패르트가 개인의 신앙을 좀처럼 말하지 않아 이 연결은 작품 해설에서 자주 빠진다. (악보) 그의 악보는 생각보다 열려 있다. 「알리나를 위하여」는 음 길이를 연주자에게 맡긴다. 1999년 ECM 음반 『알리나』에서는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말터가 작곡가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 짧은 곡을 여러 번 길게 이어 연주했다. 엄격한 규칙의 작곡가라는 인상과 달리, 그는 연주자의 호흡에 많은 것을 맡겼다.
용어 노트 📚🔎
12음 기법
(말뜻) '음렬(音列)'이라고도 부르는데, 음(音)을 줄 세운(列) 것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아르놀트 쇤베르크가 1920년대에 정리한 작곡법이다. 한 옥타브 안의 열두 개 음을 모두 한 번씩 쓰는 순서를 먼저 정한다. 그다음 그 순서를 뒤집거나 거꾸로 읽어 가며 곡 전체를 짠다. 어느 한 음이 중심이 되지 않기 때문에 '도'로 돌아와 끝나는 듯한 편안함이 없고, 낯설고 긴장된 소리가 난다. 반 친구 열두 명이 발표 순서를 정해 두고, 모두 한 번씩 발표하기 전에는 누구도 두 번 나설 수 없는 규칙과 비슷하다. 그러면 특정한 '반장'이 따로 없는 교실이 된다.
틴티나불리
(말뜻) 라틴어 tintinnabulum은 '작은 종'이라는 뜻이다. 종이 울린 뒤 그 음들이 공기 중에 겹쳐 남는 모습에서 패르트가 이름을 따왔다. (음악에서) 패르트가 1976년 무렵 만든 작곡 방식이다. 두 성부가 짝을 이룬다. 한 성부는 계단을 오르내리듯 한 음씩 움직이며 선율을 부른다. 다른 성부는 미리 정한 3화음(예: 라·도·미)의 세 음 가운데 하나만 골라 그 선율 곁에 놓는다. 한 친구는 개울가를 자유롭게 걷는다. 옆 친구는 정해진 세 개의 징검돌만 밟으며 늘 친구와 가장 가까운 돌을 골라 따라간다. 이렇게 함께 걷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패르트는 이 두 성부가 결국 하나라는 뜻에서 '1+1=1'이라고 적었다.
그레고리오 성가
(말뜻) 6세기 말의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이름이 붙어 있다. 하지만 그가 직접 이 노래들을 지었다는 것은 후대에 생긴 전설이다. (음악에서) 중세 가톨릭 교회의 라틴어 기도문을 반주 없이 한 줄의 선율로 부르는 노래다. 화음도 없고 박자도 엄격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말의 흐름과 숨에 따라 선율이 오르내린다. 반 전체가 같은 음높이로 시를 함께 낭송하되, 문장의 쉼표와 강조에 맞춰 조금씩 높낮이를 주는 것과 비슷하다. 패르트는 침묵의 시기에 이 노래들을 베껴 쓰며 선율이 어떻게 숨 쉬는지를 배웠다.
카논
(말뜻) 그리스어 kanōn은 '자', '규칙'이라는 뜻이다. 한 선율을 정해진 규칙에 따라 뒤따라 부르게 한다는 데서 이 이름이 붙었다. (음악에서) 한 성부가 부른 선율을 다른 성부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대로 따라 하는 형식이다. 돌림노래에서 첫 모둠이 한 줄을 부르면 둘째 모둠이 같은 가락으로 뒤따라 들어오는 것이 바로 카논이다. 패르트의 「칸투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따라 부르는 쪽이 같은 선율을 두 배, 네 배 느리게 부르는 카논이다. 그래서 빠른 노래와 느린 노래가 한꺼번에 겹쳐 들린다. (다른 데서는) 영어 canon은 종교에서 공인된 경전 목록을, 소설·만화 팬들 사이에서는 원작의 '공식 설정'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3화음
(음악에서) 음계에서 한 음씩 건너뛰며 세 개의 음을 쌓은 화음이다. 도·미·솔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서양 음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울림으로, 밝은 장3화음과 어두운 단3화음이 있다. 실로폰에서 도·미·솔을 동시에 치면 맑게 어울리는 소리가 나는데, 그것이 3화음이다. 패르트의 틴티나불리에서는 이 세 음이 곡 전체를 붙잡는 종소리 역할을 한다.
프리페어드 피아노
(말뜻) 영어 prepared는 '준비된'이라는 뜻이다. 연주 전에 피아노를 미리 손봐 '준비해' 둔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음악에서) 피아노 줄 사이에 나사, 볼트, 고무, 종이 같은 물건을 끼워 음색을 바꾼 피아노다. 미국 작곡가 존 케이지가 널리 알렸다. 건반을 누르면 보통 피아노 소리 대신 작은 종, 징, 북 같은 소리가 난다. 기타 줄 밑에 종이를 끼워 치면 '틱틱' 하는 다른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타불라 라사」에서 이 피아노는 현악기 위로 종소리처럼 떨어진다.
지속음(드론)
(말뜻) 영어 drone은 원래 수벌을 뜻한다. 벌이 붕붕 하고 낮게 끊임없이 내는 소리에서 음악 용어가 나왔다. (음악에서) 한 음이나 두 음을 곡 내내, 또는 오랫동안 끊지 않고 울려 바탕을 까는 것이다. 그 위에서 다른 선율이 움직인다. 백파이프가 낮게 계속 울리는 소리가 대표적이다. 합창 연습 때 한 사람이 '음—' 하고 같은 음을 계속 내 주면 다른 사람들이 그 위에서 노래하며 음을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 패르트의 「프라트레스」와 「테 데움」은 이런 지속음 위에 세워져 있다. (다른 데서는) 오늘날 '드론'은 원격으로 조종하는 무인 비행기를 가리키는 말로 더 흔히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