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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nio Vivaldi

안토니오 비발디 (1678–1741)

숨이 가쁜 사제, 악보 위에서는 누구보다 빨리 내달렸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생이발사의 아들평생의 가슴병2. 사제1703년 서품붉은 사제미사를 못 드리다3. 피에타소녀 오케스트라불안정한 임용글로리아 작곡4. 명성레스트로 아르모니코사계 출판피센델과 우정5. 무대오페라 흥행사안나 지로입성 거부 스캔들6. 말년카를 6세 후원빈에서 객사악보의 재발견비발디1678–1741베네치아의 '붉은 사제', 사계로 유럽을 매혹…
삶의 여정 🧭🗺️
N이탈리아오스트리아베네치아1678–1740만토바1718–1720트리에스테1728페라라1737–1738빈1740–1741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조반니 바티스타 비발디

    이발사에서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아버지로, 아들에게 첫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훗날 오페라 사업의 동반자가 되었다.

  • 스승조반니 레그렌치

    산마르코 대성당의 악장으로, 어린 그가 작곡을 배웠다고 전해지나 확실한 근거는 남아 있지 않다.

  • 영향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그의 '레스트로 아르모니코'에 매료되어 여러 협주곡을 하프시코드와 오르간 독주곡으로 편곡하며 형식을 연구했다.

  • 제자요한 게오르크 피센델

    베네치아로 유학 온 작센 궁정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그의 애제자이자 평생의 벗이 되어 여러 협주곡을 헌정받았다.

  • 우정안나 지로

    만토바에서 만나 노래를 가르친 소프라노로, 그의 오페라마다 주역을 맡았고 늘 곁을 지켰다.

  • 후원카를 6세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트리에스테에서 그를 만나 총애했으며 그가 만년에 빈으로 떠나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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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산마르코의 아들 · 1678–1703 (0–25세)

(출생) 1678년 3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에 산파가 아이 목숨이 위태롭다고 판단해 정식 세례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집에서 급히 세례를 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훗날 어머니 카밀라는 그날의 위기를 두고 아들을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다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가족) 아버지 조반니 바티스타 비발디는 원래 이발사였으나 바이올린 연주자로 전업해 산마르코 대성당 관현악단에서 일했다. 어머니 카밀라 칼리키오와의 사이에서 그는 장남이었고, 아래로 다섯 명의 동생이 더 태어났다. 아버지는 훗날 아들의 오페라 사업에서 회계와 필사를 돕는 동반자가 되었다. (병) 태어날 때부터 그를 평생 따라다닌 것은 '가슴이 좁아지는 병(스트레테차 디 페토)'이었다. 오늘날의 천식이나 협심증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병은 그를 자주 숨차게 했고, 걷기보다 마차를 타야 했으며, 나이가 들어서도 격렬한 활동을 견디지 못했다. (사사) 바이올린은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아버지는 아들을 성당 연주에 데리고 다니며 실전 경험을 쌓게 했다. 일부 전기작가는 어린 시절 산마르코의 악장이었던 조반니 레그렌치에게 작곡을 배웠다고 전하지만, 레그렌치가 그가 열두 살이던 1690년에 세상을 떠난 만큼 확실한 근거는 없다. (사제) 1703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붉은 머리 때문에 훗날 '붉은 사제(일 프레테 로소)'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나 서품 이듬해부터 지병이 심해져 미사를 끝까지 집전하지 못하고 제단을 떠나는 일이 잦아졌고, 결국 정기적인 미사 집전을 그만두었다. 이 일로 훗날까지 그를 향한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12곡의 트리오 소나타 Op.11705 (27세)연주 Voices of Music (원전악기 앙상블)

사제 서품 직후 펴낸 첫 출판작으로, 유행하던 춤곡과 변주 형식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기 시작한 흔적을 담고 있다.

  • 12곡 중 마지막 곡은 당대 널리 쓰이던 '라 폴리아' 주제를 스무 번 넘게 변주한 곡으로, 두 대의 바이올린이 점점 빠르고 화려하게 서로를 뒤쫓는 대목이 압권이다.
  • 변주가 거듭될수록 활을 짧게 끊어 튕기듯 연주하는 대목과 길게 이어 켜는 대목이 번갈아 나와, 연주자의 활 다루는 솜씨를 겨루는 자리로 유명하다.
  • 두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악보에 화음만 적어두고 연주자가 즉흥으로 채워 넣는 저음 반주)이 대화하듯 주고받는 소박한 편성에서, 후일 협주곡을 이끌 그의 리듬 감각이 이미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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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피에타의 마에스트로 · 1703–1717 (25–39세)

(임용) 1703년, 베네치아의 자선 고아원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의 바이올린 교사로 임용되었다. 이곳은 버려지거나 사생아로 태어난 소녀들을 거두어 기르며 음악을 가르치는 기관으로, 잘 훈련된 소녀들의 합주는 이미 도시의 명물이었다. (피에타) 소녀들은 가림막 뒤에서 연주해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실력은 유럽 여행자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는 이 소녀 관현악단을 위해 협주곡과 종교음악을 쏟아내듯 작곡했고, 제자 중 몇몇은 뛰어난 독주자로 이름을 남겼다. (불안정) 그러나 그의 자리는 안정적이지 않았다. 이사회가 매년 표결로 재임용을 결정했는데, 1709년에는 표결에서 밀려 해고되었다가 1711년에야 복직했다. 1716년에는 협주곡 전체를 책임지는 마에스트로 데 콘체르티로 승진했지만, 명성과 별개로 그의 지위는 늘 이사회의 손에 달려 있었다. (속도) 그는 남들보다 빠르게 곡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필사가가 곡을 베끼는 시간보다 자신이 협주곡을 완성하는 시간이 더 짧다고 자랑하듯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다작은 피에타 소녀들의 끊임없는 연주 수요와 직결되어 있었다. (바흐) 1711년 암스테르담에서 출판된 협주곡집 '조화의 영감'(레스트로 아르모니코)는 알프스 너머까지 그의 이름을 알렸다. 당시 바이마르 궁정에서 오르간 주자로 일하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이 협주곡집에 깊이 매료되어 여러 곡을 하프시코드와 오르간을 위한 독주곡으로 편곡하며 그 리토르넬로 형식을 연구했다.

♪레스트로 아르모니코 Op.31711 (33세)연주 J. Ciechańska 외 (바이올린)

피에타의 소녀들을 위해 다작하던 시기의 성과가 국제적으로 인쇄되어 퍼진 첫 협주곡집으로, 바흐가 편곡하며 연구한 곡이기도 하다.

  • 열 번째, 네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RV580)은 독주 성부 네 개가 계단을 오르듯 차례로 쌓여 들어오는 도입부가 독특하며, 훗날 바흐가 네 대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BWV 1065)으로 고쳐 쓸 만큼 구조가 인상적이다.
  • 여섯 번째 협주곡(RV356)의 1악장은 짧고 단호한 주제로 시작해, 오늘날까지 바이올린 입문자들의 시험곡으로 널리 쓰인다.
  • 합주가 후렴처럼 되풀이되고 그 사이사이 독주가 끼어드는 리토르넬로 형식이 뚜렷하게 들려, 협주곡이라는 장르의 틀이 여기서 다져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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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RV589c.1715 (37세)실황 Le Concert Spirituel · Hervé Niquet 지휘

피에타의 소녀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염두에 두고 쓴 종교음악으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노래하던 그들의 목소리를 오늘날에도 상상하게 한다.

  • 합창으로 문을 여는 첫 곡은 밝은 오보에 선율과 현악의 힘찬 리듬이 어우러져 축제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 '주 하느님'을 노래하는 '도미네 데우스'에서는 소프라노 독창과 오보에가 서로를 뒤쫓듯 선율을 주고받아 애틋하게 들린다.
  • 여성과 소녀들만으로 이루어졌던 피에타 합창단을 염두에 두고 쓰인 만큼, 남성 저음이 아니라 높은 음역대가 두드러진다는 점을 떠올리며 들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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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인쇄된 이름 · 1711–1725 (33–47세)

(출판) 암스테르담의 출판업자 에티엔 로제를 통해 그의 협주곡집들이 잇달아 유럽 전역에 퍼졌다. 손으로 베낀 악보가 궁정과 교회를 오가던 시절, 인쇄된 악보는 그의 이름을 이탈리아 밖 낯선 도시의 연주자들에게까지 실어 날랐다. (형식) 그는 빠르고-느리고-빠른 세 악장의 협주곡 형식을 표준으로 굳혔고, 독주 악기가 기교를 뽐내는 대목과 합주가 반복되는 대목을 선명하게 대비시켰다. 이 명료한 구조는 이후 협주곡이라는 장르 자체의 틀이 되었다. (피센델) 1716년 무렵 작센의 궁정 바이올리니스트 요한 게오르크 피센델이 베네치아로 유학을 왔다. 그는 피센델을 제자이자 벗으로 아꼈고, 여러 협주곡을 그를 위해 써 악보 위에 이름을 적어 남겼다. 훗날 전해진 일화에 따르면, 베네치아 관헌이 피센델을 닮은 다른 사람으로 잘못 알고 뒤를 밟았을 때 그를 집에 머물게 하고 직접 사정을 알아봐 주기도 했다. (사계) 1725년, 열두 곡으로 이루어진 협주곡집 '화성과 창의의 시도'(Op.8)를 펴냈다. 그 앞자리를 차지한 네 곡, 봄·여름·가을·겨울이 바로 오늘날 '사계'로 불리는 곡들이다. 각 곡 앞에는 새소리와 뇌우, 추수와 사냥을 묘사한 소네트가 붙어, 무엇을 그린 음악인지 듣는 이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역설) 숨쉬기조차 버거운 지병을 평생 안고 살았던 그가, 정작 악보 위에서는 폭풍과 질주와 활력을 그려냈다는 사실은 그의 음악을 듣는 또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

♪사계 (봄·여름·가을·겨울), Op.81725 (47세)연주 Voices of Music (Freivogel 외, 바이올린)

숨쉬기조차 버거운 병을 평생 안고 산 그가 폭풍과 뇌우, 흥겨운 춤을 그려낸 아이러니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 '봄' 1악장 도입부는 함께 붙인 소네트에 따라 새소리를 묘사한 것으로, 바이올린이 짧고 빠르게 같은 음을 떨듯 반복하는 트릴 주법으로 지저귐을 흉내 낸다.
  • '여름' 3악장은 소네트가 명시한 '뇌우'를 그린 대목으로, 현악 전체가 빠르게 오르내리며 몰아쳐 독주 바이올린의 기교가 가장 시험받는 순간으로 꼽힌다.
  • '가을' 2악장은 술 취해 잠든 농부들의 느린 숨결을, 낮은 현들이 끊길 듯 이어지는 화음으로 그려낸다고 알려져 있다.
  • '겨울' 2악장에서는 현이 손가락으로 뜯듯 연주하는 피치카토 주법으로 창밖의 빗방울 소리를 흉내 내는 동안, 독주 바이올린이 난롯가의 평온한 선율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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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무대의 흥행사 · 1718–1737 (40–59세)

(전환) 1718년, 만토바를 다스리던 헤센다름슈타트 후작 필리포의 궁정악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본격적으로 오페라에 뛰어들었다.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쉰 편 안팎의 오페라를 쓰고, 상당수는 직접 극장을 빌려 무대에 올리는 흥행사 노릇까지 했다. (만남) 만토바에서 젊은 가수 안나 지로를 만났다. 그는 그녀를 베네치아로 데려와 노래를 가르쳤고, 1720년대 중반부터 그녀는 그의 오페라마다 주역을 맡는 프리마돈나가 되었다. (동행) 안나와 그녀의 언니 파올리나가 늘 그를 따라다니며 여행길을 함께했다. 파올리나는 지병에 시달리는 그를 간병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전해진다. 사제 신분으로 독신이었던 그가 젊은 여성과 늘 동행하는 모습은 자연스레 뒷말을 낳았다. (항변) 그는 후원자였던 페라라의 벤티볼리오 후작에게 보낸 편지에서 안나와의 관계는 순수한 우정이며 자신의 건강 때문에 그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거듭 해명했다. 자신의 결백을 굽히지 않고 방어하는 태도에서 자존심 강하고 물러설 줄 모르는 성격이 드러난다. (재정) 오페라 사업은 큰돈을 벌어들일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위험도 컸다. 극장 임대료와 가수 섭외비, 경쟁 극장과의 다툼으로 그는 여러 차례 손해를 감수해야 했고, 화려한 명성과 달리 그의 살림은 늘 사업의 성패에 좌우되었다.

♪오를란도 푸리오소 RV7281727 (49세)실황 Philippe Jaroussky (카운터테너) · Matheus 반주

만토바에서 만난 안나 지로를 프리마돈나로 세워 성공시킨 오페라로, 흥행사로서의 그의 감각을 잘 보여준다.

  • 마법사 알치나가 처음 등장하는 아리아는 빠르고 장식적인 음의 움직임으로 기교를 과시하는 콜로라투라 창법으로 쓰여, 그녀의 위험한 매혹을 드러낸다.
  • 오를란도가 실연으로 광기에 빠지는 장면에서는 갑작스러운 조성 변화가 잇따라, 인물의 정신적 혼란을 음악으로 옮겨놓았다고 해석된다.
  • 안나 지로의 목소리와 기량을 염두에 두고 쓰인 배역인 만큼, 그녀에게 맞춰졌을 화려한 대목들을 짐작하며 들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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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문 앞에서 거절당하다 · 1737–1740 (59–62세)

(추방) 1737년, 페라라의 교황 특사 루포 추기경은 그의 도시 입성을 금지했다. 명분은 그가 사제이면서 미사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과 안나 지로와 함께 다닌다는 것이었다. 계약해둔 오페라 공연은 그가 현장에 갈 수 없게 되며 무산되었고, 이는 그에게 상당한 금전적 손실을 안겼다. (분노) 그는 벤티볼리오 후작에게 보낸 편지에서 억울함과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자신의 신앙과 평판을 걸고 안나와의 관계에 아무런 부정함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추기경의 결정은 뒤집히지 않았다. (황제) 앞서 1728년, 그는 트리에스테를 방문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6세를 알현했다. 황제는 그와 나눈 대화를 대단히 흡족해해, 몇 주 사이에 자신의 대신들과 나눈 것보다 많은 이야기를 그와 나누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그보다 한 해 전에는 협주곡집 '라 체트라'(Op.9)를 황제에게 헌정해 펴냈다. (쇠퇴) 그러나 베네치아의 청중은 점차 새로운 취향의 오페라로 옮겨갔고, 한때 도시를 대표했던 그의 음악은 낡은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페라라 사건은 그런 흐름 속에서 그의 입지를 한층 더 흔들었다. (결심) 1740년, 그는 황제의 총애를 마지막 희망으로 삼아 빈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피에타에 남아 있던 자신의 협주곡 악보들을 헐값에 팔아넘겼고, 그 길로 베네치아를 다시 밟지 못했다.

♪라 체트라 Op.91727 (49세)

황제 카를 6세에게 바친 협주곡집으로, 궁정의 취향에 맞춘 절제된 우아함이 앞선 '사계'류와 대비된다.

  • 황제에게 바친 곡답게 여러 선율이 독립적으로 얽히며 진행되는 대위법적 짜임새가 이전 협주곡들보다 한층 정교해졌다.
  • 몇몇 곡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두세 음을 한꺼번에 켜는 화음주법이 두드러져, 연주자의 왼손 기교를 가장 잘 보여주는 협주곡집으로 꼽힌다.
  • '사계'처럼 자연을 묘사하기보다 궁정에 어울리는 절제된 우아함을 앞세운 점에서, 후원자의 취향에 맞춰 스스로를 조율한 흔적을 들을 수 있다.

VI. 빈의 마지막 숨 · 1740–1741 (62–63세)

(도착) 1740년 빈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가 기댈 것으로 믿었던 황제 카를 6세가 그해 10월 세상을 떠났고, 뒤이어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터지며 궁정은 상중에 극장 문을 닫았다. 새로운 후원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빈곤) 베네치아의 인맥과 수입원에서 멀리 떨어진 채, 그는 낯선 도시에서 궁핍에 시달렸다. 이미 악보 대부분을 팔아넘긴 뒤였기에 기댈 곳이 많지 않았다. (죽음) 1741년 7월 28일, 그는 빈에서 눈을 감았다. 사인은 '내부의 염증' 정도로만 기록되었는데, 평생 그를 괴롭힌 가슴 질환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례는 소박하게 치러졌고, 그는 시립 병원 부속 묘지에 가난한 이들과 함께 묻혔다. (전설) 그의 장례식에서 소년 합창단원 한 명이 노래를 불렀는데, 그중에 어린 요제프 하이든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하이든이 성 슈테판 대성당의 소년 성가대원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날 그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재발견) 죽은 뒤 그의 이름은 거의 두 세기 동안 잊혔다. 그러다 1920~30년대, 토리노의 한 도서관에서 그의 방대한 육필 악보 뭉치가 발견되면서 재조명이 시작되었다. 오늘날 '사계'는 그를 몰랐던 사람조차 흥얼거릴 만큼 널리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덜 알려진 이야기

널리 알려진 「사계」의 화려함 뒤에는 정작 그의 말년을 지배한 돈 문제가 있다. 학자들이 주목하는 대목은 그가 남긴 편지들의 상당수가 예술론이 아니라 공연 수익과 손실, 극장 임대료 정산을 둘러싼 실무적 하소연이라는 점이다. 흥행사로서의 그는 성공한 작곡가라기보다 늘 다음 공연의 자금을 걱정하는 사업가에 가까웠는데, 이런 면모는 낭만화된 「일 프레테 로소」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오랫동안 부각되지 않았다. 또 하나 덜 알려진 사실은, 그가 피에타의 소녀 연주자들 중 일부를 위해 악보에 구체적으로 누구를 위한 곡인지 이름을 적어두었다는 점이다. 안나 마리아처럼 실력이 뛰어나 유럽 여행자들의 기록에까지 이름이 남은 연주자가 있었지만, 가림막 뒤에서 연주하는 관행 때문에 이들의 존재는 청중에게 얼굴 없는 신비로만 남았고, 후대에는 비발디 개인의 신화에 가려 이 소녀들의 기여가 각주 정도로만 다뤄졌다. 토리노에서 발견된 방대한 육필 악보 뭉치에도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다. 애초에 두 컬렉션으로 나뉘어 팔려나갔던 이 악보들은 각각 다른 소장자를 거치며 존재 자체가 잊혔고, 1920년대와 30년대에 두 뭉치가 별도로 발견된 뒤에야 학자들이 이것이 원래 하나였음을 확인했다. 이 발견이 조금만 늦었어도 그의 협주곡 상당수는 영영 사라졌을 것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명성은 상당 부분 우연한 보존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용어 노트 📚🔎

리토르넬로 형식

(말뜻) 리토르넬로는 이탈리아어로 '돌아오다'라는 뜻의 리토르나레(ritornare)에서 온 말이다. 말 그대로 자꾸 되돌아온다는 뜻이 이름에 담겨 있다. (음악에서)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연주하는 부분이 후렴처럼 여러 번 되풀이되고, 그 사이사이에 독주자 혼자 화려하게 연주하는 부분이 번갈아 등장하는 구조를 말한다. 학예회에서 다 같이 부르는 후렴구가 반복되고 그 사이사이 한 명씩 나와 독창을 하는 순서를 떠올리면 된다. 비발디는 이 구조를 다듬어 이후 협주곡의 표준으로 만들었다.

통주저음

(말뜻) 한자로는 通奏低音, 통할 통(通)·연주할 주(奏)·낮을 저(低)·소리 음(音)을 쓴다. 곡이 처음부터 끝까지 통하도록 계속 연주되는 낮은 음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악보에는 저음 선율과 화음을 나타내는 숫자만 적혀 있고, 하프시코드나 오르간 연주자가 그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화음을 채워 반주를 만들어내는 저음 파트를 가리킨다. 마치 코드만 적힌 악보를 보고 반주자가 즉석에서 화음을 붙여 연주하는 것과 비슷하다. 바로크 시대 실내악과 협주곡을 밑에서 떠받치는 뼈대 같은 역할을 했다.

콜로라투라

(말뜻) 이탈리아어로 '색을 칠하다'라는 뜻의 콜로라레(colorare)에서 온 말이다. 목소리에 화려한 색을 입힌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음악에서) 노래에서 아주 빠르고 장식적인 음의 움직임으로 가수의 기교를 한껏 뽐내는 창법을 말한다. 달리기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가 전력 질주로 관중을 사로잡듯, 콜로라투라는 가수가 가장 화려한 기교로 청중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대목이다. 오페라에서 강렬한 인물을 표현할 때 자주 쓰였다.

대위법

(말뜻) 영어 카운터포인트의 뿌리인 라틴어 푼크투스 콘트라 푼크툼(punctus contra punctum)은 '점 대 점'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점은 음표를 가리킨다. 하나의 선율에 다른 선율을 점 맞대듯 짝지어 쌓아 올린다는 뜻이 이름에 이미 들어 있다. (음악에서) 여러 개의 독립된 선율이 동시에 진행되면서도 서로 잘 어울리도록 짜여 있는 작곡 방식이다. 두 사람이 각자 다른 리듬으로 손뼉을 치는데도 박자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이렇게 여러 선율을 얽어 짜서 복잡하고 정교한 짜임새를 만든다.

피치카토

(말뜻) 이탈리아어로 '꼬집다, 뜯다'라는 뜻의 피치카레(pizzicare)에서 온 말이다. 손가락으로 줄을 꼬집듯 뜯는다는 뜻이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음악에서)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를 연주할 때 활을 쓰지 않고 손가락으로 줄을 튕겨서 짧고 통통 튀는 소리를 내는 주법이다. 고무줄을 손가락으로 튕길 때 나는 짧고 탄력 있는 소리를 떠올리면 비슷하다. '사계' 중 겨울에서는 빗방울이나 언 발로 종종걸음 치는 소리를 그릴 때 이 주법이 쓰였다.

트릴

(말뜻) 이탈리아어 트릴라레(trillare)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흉내 낸 말이라는 설이 있다. 실제로 트릴은 새소리를 표현할 때 가장 자주 쓰인다. (음악에서) 가까이 붙어 있는 두 음을 아주 빠르게 번갈아 연주해서 떨리는 듯한 소리를 내는 기법이다. 목소리로 「아아아아」를 아주 빠르게 떨면서 내는 소리를 상상하면 된다. '사계' 중 봄에서는 이 주법으로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흉내 냈다.

소네트

(말뜻) 이탈리아어 소네토(sonetto)는 '작은 소리'라는 뜻에서 왔다. 원래는 악기 반주에 맞춰 부르던 짧은 노래를 가리키다가, 나중에 14행으로 짜인 정해진 시 형식을 뜻하게 되었다. (음악에서) '사계'에서는 각 협주곡 앞에 붙어 그 곡이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미리 알려 주는 짧은 시를 가리킨다. 영화를 보기 전에 예고편을 먼저 보는 것처럼, 소네트를 먼저 읽으면 이 곡이 봄날의 새소리를 그린 것인지 여름 뇌우를 그린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다른 데서는) 소네트는 음악보다는 문학에서 더 널리 쓰이는 말로, 셰익스피어 같은 시인들이 즐겨 쓴 14행짜리 정형시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