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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ianist

피아니스트 (2002)

폭격에 끊긴 녹턴에서 시작해 폐허 속 발라드를 지나 다시 무대의 폴로네즈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의 음악은 한 사람이 끝내 놓지 않은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들려준다.

한눈에 보기 🔭💭

1. 출발프·폴 합작 2002 개봉슈필만 회고록칸 황금종려상2. 음악쇼팽 중심 선곡킬라르의 절제올레이니차크 연주3. 도입방송국의 녹턴폭격에 끊긴 연주4. 생존게토의 클라리넷허공의 건반정적과 발소리5. 절정폐허의 발라드녹턴에서 바뀐 곡6. 여운다시 녹턴대폴로네즈세자르 음악상피아니스트2002쇼팽의 피아노곡으로 생존의 시간을 따라가는 영…
이야기의 무대 🧭🗺️
N폴란드바르샤바 폴란드 라디오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만든 사람들 ⏳🌊

  • 작곡가보이치에흐 킬라르

    폴란드 전위 음악 세대 출신으로, 폴란스키와 세 번째로 함께한 작업에서 쇼팽 곁에 절제된 큐를 두었다.

  • 감독로만 폴란스키

    어린 시절 크라쿠프 게토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지닌 감독으로, 이 영화로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 각본로널드 하우드

    슈필만의 회고록을 각색해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다.

  • 주연에이드리언 브로디

    슈필만 역을 위해 몇 달 동안 피아노를 연습했고, 이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 주연토마스 크레치만

    폐허 속에서 슈필만의 발라드를 듣는 독일군 장교 빌름 호젠펠트를 연기했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쇼팽의 영화, 킬라르의 자리

(원작) 「피아니스트」는 폴란드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회고록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폴란스키는 어린 시절 크라쿠프 게토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그가 바르샤바 게토의 이야기를 찍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에는 남다른 무게가 실렸다. 영화는 2002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슈필만을 연기한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작곡가) 음악은 보이치에흐 킬라르가 맡았다. 1932년 르부프에서 태어나 평생 대부분을 카토비체에서 보낸 그는 1960년대에 구레츠키, 펜데레츠키와 함께 폴란드 전위 음악을 이끌던 작곡가였다. 그 뒤에는 실험적 기법을 내려놓고 단순하고 깊은 울림을 찾아갔다. 바이다, 키에실롭스키, 자누시의 영화를 비롯해 폴란드 영화 백여 편에 음악을 썼고, 코폴라의 「드라큘라」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폴란스키와는 「진실」, 「나인스 게이트」에 이은 세 번째 작업이었다. (절제) 정작 이 영화에서 킬라르의 음악은 아주 적다. 영화의 중심에는 쇼팽이 있고, 킬라르는 그 곁에 짧은 큐 몇 개를 두는 데 그쳤다. 사운드트랙 음반 12곡 가운데 그의 이름이 붙은 곡은 하나뿐이다. 주인공이 피아니스트인 만큼, 그가 연주하거나 머릿속으로 듣는 음악이 곧 영화의 음악이 되어야 했다. (연주) 쇼팽은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야누시 올레이니차크가 연주했다. 브로디는 화면 속 연주가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몇 달 동안 피아노를 연습했고, 손을 가까이 잡은 장면에는 올레이니차크의 손이 나온다. 이 음악은 2003년 세자르상 음악상을 받았다. (계보) 이 시리즈에서 다룬 「레이」, 「워크 더 라인」, 「라비앙 로즈」도 실존 음악가의 삶을 그린 영화였다. 그 영화들의 음악이 무대 위의 영광과 몰락을 따라갔다면, 이 영화의 음악은 무대를 빼앗긴 한 사람이 살아남는 시간을 따라간다.

II. 방송국의 녹턴

(시작) 영화는 1939년 바르샤바를 담은 흑백 기록 화면으로 열린다. 그 위로 피아노 한 대가 조용히 노래하고, 화면은 폴란드 라디오 방송국 스튜디오로 옮겨 간다. 슈필만이 쇼팽의 「녹턴 C샤프 단조」를 생방송으로 연주하고 있다. (중단)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멀리서 포성이 들려온다. 유리창 너머의 엔지니어는 불안한 얼굴이지만 슈필만은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그러다 폭탄이 건물을 때리고, 음악은 굉음 속에 끊긴다. 영화가 첫 장면에서 보여 주는 것은 한 곡이 끝까지 연주되지 못하는 순간이다. (선곡) 이 녹턴은 쇼팽이 스무 살 무렵 쓰고 생전에 출판하지 않은 곡이다. 화려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듯 흘러간다. 실제 슈필만이 1939년 9월 23일 방송국의 마지막 생방송에서 연주한 곡목에도 이 녹턴이 들어 있었다. 영화는 그 사실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일상) 폭격 뒤에도 한동안은 일상이 이어진다. 슈필만의 가족은 영국과 프랑스가 참전했다는 라디오 소식에 기뻐하며 저녁을 먹는다. 그러나 독일군이 도시에 들어오고 유대인에게 완장을 채우는 법령이 하나씩 내려지면서, 그 일상은 조금씩 좁아진다. 피아노는 집 안에 남아 있지만, 그것을 칠 수 있는 자리와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복선) 끊긴 녹턴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지 않은 문장처럼 남는다. 관객은 이 곡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들릴지 모른 채 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녹턴 C샤프 단조 (Nocturne in C-sharp minor, 1830)1830연주 Bruce Liu (피아노)

영화를 여는 곡이자 폭격에 끊기는 곡이며, 전쟁이 끝난 뒤 같은 스튜디오에서 다시 연주되는 곡이다.

  • 왼손은 화음을 한 음씩 펼쳐 흐르게 하는 분산화음(아르페지오)을 고르게 깔고, 오른손은 그 위에서 사람 목소리처럼 노래한다. 첫 장면에서는 이 고요한 흐름이 포성과 나란히 놓인다.
  • 가운데 부분에 쇼팽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선율이 잠깐 비친다. 스무 살 청년이 고향을 떠나기 전에 쓴 곡이라는 사실과 함께 들으면, 이 곡이 이별을 품은 음악처럼 들린다.
  • 쇼팽이 생전에 출판하지 않아 사후에 세상에 나온 곡이다. 화려한 기교보다 템포를 조금씩 늦추고 당기는 숨결로 표현하는 곡이라, 연주자마다 해석이 크게 갈린다.
  • 실제 슈필만이 1939년 마지막 방송에서 이 곡을 쳤고, 1945년 방송 재개 때도 이 곡을 골랐다고 전한다. 영화는 이 곡을 처음과 끝에 두어 같은 선율이 전혀 다른 뜻을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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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게토로 가는 길

(이주) 화면에 1940년 10월 31일이라는 날짜가 뜬다. 바르샤바의 유대인은 도시 안에 따로 정해진 구역, 곧 게토로 옮겨 가야 한다. 슈필만의 가족도 가재도구를 꾸려 줄지어 걸어간다. 이 대목에 킬라르의 큐 「게토로의 이주, 1940년 10월 31일」이 흐른다. (클라리넷) 이 곡은 2분이 채 안 된다. 클라리넷 한 대가 선율을 이끌고 현악기가 그 뒤를 받친다. 동유럽 유대인 공동체의 민속 음악인 클레즈머의 말투가 배어 있어서, 장면 속 사람들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를 소리로 알려 준다. 그러나 잔치의 음악이 아니라 떠나는 사람들의 음악으로 들린다. (게토) 담장 안의 삶은 굶주림과 모욕으로 채워진다. 슈필만은 게토 안 카페에서 피아노를 치며 가족을 먹여 살리지만, 손님들은 그의 연주보다 동전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인다. 거리에서는 아이가 담 밑을 빠져나오다 매를 맞고, 노인이 쓰러진다. 여기서 피아노는 예술이라기보다 생계의 도구다. (이별) 1942년 여름, 게토 사람들은 움슐라크플라츠라 불리는 광장으로 끌려가 화물 열차에 실린다. 슈필만의 가족도 그 광장에 모인다. 그 자리에서 슈필만 혼자만 열차에 오르지 못하고 떨어져 나온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음악을 거의 쓰지 않는다. 기차의 쇳소리, 군중의 웅성거림, 그리고 홀로 남은 사람의 발소리가 그 자리를 채운다. (침묵) 킬라르가 이 영화에 음악을 적게 쓴 이유가 여기서 분명해진다. 감정을 이끌어 줄 선율이 없기 때문에, 관객은 장면을 있는 그대로 마주해야 한다.

♪게토로의 이주, 1940년 10월 31일 (Moving to the Ghetto Oct. 31, 1940)2002영화 장면 — 피아니스트 (2002)

유대인 가족들이 짐을 지고 게토로 들어가는 날의 음악으로, 음반에 실린 킬라르의 유일한 창작곡이다.

  • 클라리넷이 선율을 이끈다. 동유럽 유대인의 민속 음악인 클레즈머에서 사랑받던 악기로, 이 악기를 고른 것만으로도 행렬 속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 음 사이를 미끄러지듯 잇고 가볍게 꺾는 클라리넷의 말투가 노래하는 것보다 흐느끼는 것에 가깝게 들린다.
  • 현악기는 앞으로 나서지 않고 바닥을 낮게 받쳐 준다. 감정을 부풀리지 않으려는 킬라르의 절제가 2분이 안 되는 길이에서도 드러난다.
  • 음반에서는 클라리넷 연주자 한나 볼체드스카가 이 곡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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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소리 없는 건반

(은신) 게토를 빠져나온 슈필만은 담장 너머 비유대인 구역의 아파트에 숨는다. 옛 동료들이 몰래 마련해 준 방이다. 그는 이웃이 눈치채지 않도록 기침 소리조차 삼키며 지내야 한다. 이 장(章)부터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상 소리다. 문 두드리는 소리,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 벽 너머에서 들리는 이웃의 말소리가 모두 위협이 된다. (피아노) 두 번째 은신처에는 피아노가 한 대 있다. 오랜만에 건반을 마주한 슈필만은 뚜껑을 열고 손을 들어 올리지만, 건반을 누르지 않는다. 손가락은 건반 바로 위 허공에서 움직인다. 그 순간 사운드트랙에는 쇼팽의 작품 22가 흐른다. 이 음악은 그의 머릿속에서만 울리고, 관객만이 함께 듣는다. (내면) 이 장면은 이 영화가 음악을 다루는 방식을 가장 잘 보여 준다. 화면 안에서 실제로 울리는 소리와 인물의 머릿속에서만 울리는 소리의 경계가 사라진다. 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에게 음악은 기억 속에서 지켜야 하는 것이 된다. 굳어 있던 슈필만의 얼굴이 연주하는 동안 잠시 풀린다. (봉기) 1943년 봄 게토에서 봉기가 일어나고, 슈필만은 창문 너머로 그것을 지켜본다. 이듬해에는 바르샤바 전체가 봉기에 나서고, 도시는 불탄다. 숨어 있던 건물마저 포격을 받자 그는 폐허 속을 헤매게 된다. (고립) 굶주림과 병에 시달리던 그는 마침내 무너진 도시 한가운데 빈집 다락에 몸을 숨긴다. 바깥에는 아무도 없고, 음악도 거의 없다. 귀에 들리는 것은 바람 소리와 무너진 벽돌이 떨어지는 소리뿐이다. 이 긴 정적은 다음 장에서 울릴 피아노 소리를 위한 준비가 된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1악장 (Moonlight Sonata, Movement 1, Op. 27 No. 2)1801실황 Igor Levit (피아노) · 2019 Opus Klassik

폐허가 된 바르샤바에 저녁이 내릴 때, 은신 막바지의 슈필만 귀에 들려오는 음악이다. 쇼팽이 아닌 베토벤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 세 음씩 묶인 셋잇단음표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걸음으로 이어진다. 이 끊이지 않는 셈여림 없는 흐름이 폐허의 정적과 겹치면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준다.
  • 영화에서 슈필만이 직접 치지 않는 몇 안 되는 피아노곡이다. 화면 밖 누군가의 연주가 들려오는 방식이어서, 숨어 있는 사람이 바깥의 기척을 귀로 더듬는 상황이 소리로 전해진다.
  • 독일어권 음악의 상징인 베토벤이 폐허가 된 폴란드 도시에서 울린다. 한 평론가는 앞선 두 시간의 잔혹함과 견주어 이 음악이 기묘하게 처연하게 들린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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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폐허의 발라드

(통조림) 빈집 부엌에서 찾아낸 오이 통조림 하나가 슈필만에게 남은 전부다. 그는 뚜껑을 열 도구를 찾아 헤매다 깡통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고개를 들자 독일군 장교 한 사람이 서 있다. 장교는 그에게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묻는다. 슈필만은 피아니스트였다고 답한다. (연주) 장교는 그를 옆방의 피아노 앞으로 데려간다. 몇 년 동안 건반을 제대로 누르지 못한 손이 처음에는 머뭇거린다. 이윽고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가 울려 퍼진다. 창으로 들어온 달빛 속에서 장교는 말없이 그 연주를 듣는다. (선곡) 이 대목에서 영화는 회고록과 다른 길을 갔다. 실제 슈필만이 장교 앞에서 친 곡은 첫 장면의 그 녹턴이었다. 영화는 이를 발라드로 바꾸었다. 발라드는 느린 서주로 시작해 점점 커지다가 마지막에는 거센 폭풍처럼 몰아치는 곡이다. 오랜 침묵 끝에 터져 나오는 소리로서, 이 곡은 그동안 삼켜 왔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쏟아 내는 것처럼 들린다. (인간) 한 평론가는 이 선택을 두고, 지난날을 돌아보는 녹턴보다 인간다움을 붙들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의 음악이 이 자리에 맞았다고 썼다. 애국심을 내세우는 곡이 아니라, 한 개인이 버텨 온 힘을 보여 주는 곡이라는 해석이다. (정적) 연주가 끝난 뒤의 침묵도 이 장면의 일부다. 장교가 무엇을 결정할지, 영화는 한동안 아무 음악 없이 두 사람의 얼굴만 비춘다. 음악은 이 순간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장교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증명할 뿐이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영화관에서 확인할 몫으로 남겨 둔다.

♪발라드 1번 G단조 (Ballade No. 1 in G minor, Op. 23)1835연주 조성진 (피아노)

빈집에서 독일군 장교를 마주친 슈필만이 몇 년 만에 건반을 누르는 장면의 곡이다. 실제 회고록에서는 녹턴이었던 곡을 영화가 바꾸었다.

  • 처음에는 양손이 같은 선율을 함께 치는 느린 서주가 나온다. 무언가를 물어보듯 끝나는 이 서주는,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은 사람이 첫 음을 고르는 머뭇거림과 겹친다.
  • 곧이어 나오는 첫 주제는 춤곡의 박자를 품고 있지만 단조여서 쓸쓸하다. 이 주제가 곡이 진행되며 모습을 바꾸고 다시 돌아오는 방식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해서 발라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 마지막 부분인 코다는 빠르고 거칠게 몰아친다. 몇 년 동안 소리를 삼켜 온 사람이 처음으로 마음껏 소리를 내는 장면에 맞춘 선택으로 들린다.
  • 영화에서는 원곡 9분 남짓을 장면에 맞게 줄여서 쓴다. 음반에는 올레이니차크가 연주한 전곡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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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다시 울리는 피아노

(귀환) 전쟁이 끝나고 슈필만은 다시 폴란드 라디오 방송국의 스튜디오에 앉는다. 첫 장면과 같은 자리, 같은 피아노 앞이다. 그가 치는 곡은 폭격에 끊겼던 그 「녹턴 C샤프 단조」다. 실제 슈필만도 1945년 방송국이 다시 문을 열 때 이 곡으로 첫 방송을 했다고 전한다. (대칭) 영화는 이렇게 처음과 끝을 같은 음악으로 잇는다. 그러나 같은 선율이라도 처음과 같은 뜻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첫 장면의 녹턴이 곧 깨질 평화였다면, 마지막의 녹턴은 모든 것을 잃은 뒤에도 남은 것을 확인하는 소리다. 유리창 너머 스튜디오의 풍경은 비슷하지만, 그 사이에 가족과 도시와 수많은 사람이 사라졌다. (여운) 귀환에 앞서 영화는 한 번 더 그 장교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이 대목에서 음악은 거의 물러나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직접 보는 편이 좋다. 다만 음악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짧은 정적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무겁게 남는 순간 가운데 하나라는 것만은 적어 둔다. (무대) 마지막 장면에서 슈필만은 큰 연주회장의 무대에 오른다. 연미복을 입은 그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폴로네즈」를 연주한다. 은신처에서 허공의 건반으로만 칠 수 있었던 그 음악이, 이제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소리로 홀을 채운다. (끝)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는 동안에도 폴로네즈는 계속된다. 영화는 슬픔이나 승리의 선언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끝까지 마치는 모습으로 끝난다. 첫 장면에서 끝까지 연주되지 못했던 음악에 대한 답장이 그 자리에 놓인다.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폴로네즈 (Andante spianato & Grande Polonaise brillante, Op. 22)1830–1835연주 야누시 올레이니차크 (피아노) · 바르샤바 필하모닉, 타데우시 스트루갈라 지휘

은신처에서 손가락을 허공에 띄운 채 머릿속으로만 쳤던 작품 22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 위에서 울린다.

  • 작품 22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의 안단테 스피아나토는 잔잔하게 펼쳐지는 피아노 독주이고, 뒤의 대폴로네즈는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화려한 춤곡이다. 영화는 이 곡 하나로 소리 없는 은신과 무대로의 귀환을 잇는다.
  • 스피아나토는 이탈리아어로 평평하게 고른다는 뜻이다. 물결처럼 고르게 흐르는 반주 위에서 선율이 노래한다.
  • 폴로네즈는 폴란드 귀족들의 행진 같은 춤곡이다. 둘째 박을 힘주어 짚는 리듬이 위엄 있게 걷는 걸음처럼 들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품위를 되찾은 한 사람의 모습과 겹친다.
  • 음반에서는 올레이니차크가 타데우시 스트루갈라가 지휘하는 바르샤바 필하모닉과 협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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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르카 A단조 작품 17-4 (Mazurka in A minor, Op. 17 No. 4)1833연주 브와디스와프 슈필만 (피아노) · 1948년 녹음

음반의 마지막 곡은 1948년에 녹음한 실제 슈필만의 연주다. 영화 속 인물의 실제 손끝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트랙이다.

  • 마주르카는 폴란드 시골에서 생겨난 3박자 춤곡이다. 둘째나 셋째 박에 힘이 실리는 독특한 걸음이 있다.
  • 이 곡은 어느 조성인지 알 수 없게 떠도는 화음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끝을 맺지 못한 채 사라지는 마무리가 쓸쓸한 여운을 남긴다.
  • 전쟁에서 살아남고 3년 뒤에 녹음한 연주다. 오래된 녹음의 잡음 너머로, 영화가 그려 낸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피아노를 쳤는지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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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연주 장면의 곡은 사실과 다르다. 슈필만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가 호젠펠트 대위 앞에서 친 곡은 「녹턴 C샤프 단조」였다. 같은 곡을 1939년 방송국의 마지막 생방송에서 쳤고, 1945년 방송이 다시 시작될 때도 이 곡을 골랐다. 실제 삶에서는 한 곡이 처음과 한가운데와 끝을 모두 이어 준 셈이다. 영화는 가운데 자리만 발라드로 바꾸었다. 회고록이 처음 나온 것은 1946년 폴란드에서였고, 제목은 「한 도시의 죽음」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곧 서점에서 사라졌다. 나치에 협력한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리투아니아인, 유대인의 모습까지 숨기지 않고 적었기 때문에, 전후 공산 정권이 내세우던 역사와 맞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이 책이 다시 빛을 본 것은 반세기 뒤였다. 1998년 독일어판이 나왔고, 이어 영어판이 나오면서 세계에 알려졌다. 영화는 이 재출간이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재출간판에는 호젠펠트의 일기 일부가 함께 실렸다. 그는 점령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며 느낀 분노와 이해할 수 없다는 심정을 일기에 적었다. 영화가 그를 짧게 비추고 지나가는 데 비해, 이 일기는 한 독일군 장교의 내면을 훨씬 자세히 보여 준다. 사운드트랙 음반의 마지막 곡인 마주르카 A단조는 올레이니차크가 아니라 슈필만 본인이 1948년에 녹음한 연주다. 음반 해설에 따로 설명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영화가 그려 낸 인물의 실제 소리가 담긴 트랙이다. 또 올레이니차크가 연주한 쇼팽 가운데 영화를 위해 새로 녹음한 것은 세 곡뿐이다. 나머지는 1991년과 1994년에 녹음해 둔 연주를 가져다 썼다.

용어 노트 📚🔎

야상곡(녹턴)

(말뜻) 야상곡(夜想曲)은 밤(夜)에 떠올리는 생각(想)을 담은 곡(曲)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녹턴(nocturne)도 라틴어로 밤을 뜻하는 nox에서 왔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왼손이 잔잔한 반주를 깔고 오른손이 노래하듯 선율을 부르는 조용한 피아노곡이다. 영화에서는 평화로운 일상이나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순간에 자주 쓰인다. 불 끄고 누워 이어폰으로 듣는 잔잔한 노래를 떠올리면 된다. 이 영화에서는 그 고요함이 폭격과 맞부딪히며 깨진다.

발라드(기악 발라드)

(말뜻) 발라드는 춤을 뜻하는 라틴어 ballare에서 나온 말로, 원래는 이야기를 담아 부르는 노래였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쇼팽은 이 이름을 가사 없는 피아노곡에 처음 붙였다. 말은 없지만 처음과 갈등과 절정과 끝이 있는 한 편의 이야기처럼 흘러간다. 친구가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줄 때 처음엔 조용조용하다가 마지막에 와락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발라드 1번도 느리게 시작해 끝에서 폭풍처럼 몰아친다. (다른 데서는) 대중가요에서 발라드는 느리고 감성적인 사랑 노래를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쓰인다.

폴로네즈

(말뜻) 프랑스어로 폴란드풍이라는 뜻이다. 폴란드의 춤곡에 프랑스 이름이 붙은 것은, 이 춤이 유럽 궁정에 퍼질 때 프랑스어가 귀족들의 공용어였기 때문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3박자이면서 걷는 듯 당당한 느낌을 주는 폴란드 귀족들의 행진 춤곡이다. 쇼팽은 이 춤곡으로 고향 폴란드의 자존심을 표현했다. 졸업식이나 체육대회 입장식에서 줄 맞춰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는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품위를 되찾는 순간을 맡는다.

클레즈머

(말뜻) 히브리어에서 악기를 뜻하는 klei와 노래를 뜻하는 zemer가 합쳐진 말로, 노래하는 악기라는 뜻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동유럽 유대인 공동체에서 결혼식과 잔치 때 연주하던 민속 음악이다.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이 사람이 웃거나 우는 소리처럼 음을 꺾고 미끄러뜨리는 것이 특징이다. 영화에서 클레즈머의 말투가 들리면 관객은 화면 속 사람들이 유대인 공동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챈다. 학교 축제 때 우리 반 응원가만 들어도 우리 반이 등장한다는 걸 아는 것과 비슷하다.

화면 안의 음악(디제시스 음악)

(말뜻) 디제시스(diegesis)는 그리스어로 이야기하기라는 뜻이다. 영화 이론에서는 등장인물이 살고 있는 이야기 속 세계를 가리킨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등장인물도 들을 수 있는 음악, 곧 화면 속에서 누군가 연주하거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관객에게만 들리는 배경음악과 구별된다. 게임에서 캐릭터가 들어간 가게에서 나오는 음악은 화면 안의 음악이고, 전투 장면에 깔리는 비장한 음악은 배경음악이다. 「피아니스트」는 거의 모든 음악이 화면 안의 음악이다. 다만 은신처에서 허공의 건반을 치는 장면은 인물의 머릿속에서만 울리는 소리라 그 경계를 흐린다.

분산화음(아르페지오)

(말뜻) 아르페지오는 하프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arpa에서 왔다. 하프를 뜯듯 화음을 한 음씩 차례로 소리 낸다는 뜻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도·미·솔을 한꺼번에 누르지 않고 도, 미, 솔 하고 하나씩 펼쳐서 치는 방법이다. 소리가 물결처럼 흐르는 느낌을 준다. 기타로 코드를 잡고 줄을 한 줄씩 뜯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녹턴의 왼손 반주나 월광 소나타 1악장의 셋잇단음표가 모두 이 방식이다.

코다

(말뜻) 이탈리아어로 꼬리라는 뜻이다. 곡의 본문이 끝난 뒤 덧붙는 꼬리 부분이라는 의미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곡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부분으로, 앞에 나온 내용을 정리하거나 가장 강렬한 절정을 터뜨리는 자리다. 쇼팽의 발라드 1번은 코다가 특히 빠르고 어려워서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목으로 꼽힌다. 달리기 시합에서 결승선 앞 마지막 직선 구간에 온 힘을 쏟아 전력 질주하는 것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