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 of 1900
배에서 태어나 한 번도 땅을 밟지 않은 피아니스트를 위해 모리코네는 대서양 위에 오케스트라와 재즈 피아노가 함께 지내는 떠다니는 무도회장을 지었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만든 사람들 ⏳🌊
- 작곡가엔니오 모리코네
토르나토레와 오래 함께 일한 작곡가로, 이 영화의 음악으로 골든글로브 음악상을 받았다.
- 감독주세페 토르나토레
바리코의 1인극을 영어 대작 영화로 옮겨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 작곡가아메데오 토마시
재즈 피아니스트로, 영화 속 재즈 큐를 모리코네와 함께 쓰고 직접 연주했다.
- 주연팀 로스
배에서 태어나 평생 배에서 피아노를 친 1900을 연기했다.
- 주연프루잇 테일러 빈스
1900의 친구이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트럼펫 연주자 맥스 투니를 연기했다.
I. 바다 위의 피아니스트
(원작) 이 영화는 알레산드로 바리코가 쓴 1인극 「노베첸토」에서 나왔다. 노베첸토는 이탈리아어로 1900년대, 곧 20세기를 뜻한다. 대서양을 오가는 여객선 버지니아호에서 태어나 한 번도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배우 한 사람이 혼자 들려주는 무대극이었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이 짧은 독백을 두 시간이 넘는 영어 영화로 키웠고, 이탈리아에서는 「바다 위의 피아니스트의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1998년 가을에 개봉했다. (작곡가) 음악은 엔니오 모리코네가 맡았다. 1928년 로마에서 태어난 그는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트럼펫과 작곡을 공부했다. 세르조 레오네의 서부극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실험 음악과 대중가요 편곡, 순수 관현악을 오가며 수백 편의 영화에 곡을 쓴 사람이다. (동반자) 토르나토레와는 「시네마 천국」 때부터 함께 일했다. 이 영화를 맡은 것도 그 오랜 협업의 연장이었다. 이번 작업이 남달랐던 것은 음악이 배경에 머물지 않고 주인공의 몸짓 자체가 된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피아노로 말하고 피아노로 사랑한다. 그래서 모리코네는 장면에 흐르는 관현악 말고도 주인공이 실제로 연주하는 곡을 따로 마련해야 했다. 재즈 피아니스트 아메데오 토마시가 그 재즈 큐들을 함께 쓰고 직접 연주했다. 클래식에 가까운 곡의 피아노는 모리코네와 오래 일한 질다 부타가 맡았다. (계보) 이 시리즈에서 다룬 「피아니스트」도 피아노 한 대로 한 사람의 생을 비추는 영화였다. 그 작품이 쇼팽이라는 실제 음악에 기댔다면, 이 영화는 세상에 없던 피아니스트의 음악을 처음부터 지어내야 했다.
원작 독백의 제목에서 이름을 딴 큐다. 바다와 피아노와 한 사람의 생애를 한 곡에 담아 영화 전체의 정서를 미리 깔아 둔다.
- 넓게 깔린 현악기 위로 피아노가 떠오르는 짜임을 들어 보자. 오케스트라는 바다를, 피아노는 그 위에 떠 있는 한 사람을 맡은 것처럼 들린다.
- 음반 리뷰들은 미국 작곡가 거슈윈처럼 재즈 맛이 나는 피아노가 관현악과 맞서는 듯한 대목을 짚는다. 클래식과 재즈 사이에 놓인 주인공의 자리를 소리로 보여 주는 셈이다.
- 이 주제의 선율 조각은 영화 곳곳에 다시 나와 주인공을 가리키는 신호 노릇을 한다. 반복되는 짧은 선율이 인물을 가리키는 이런 장치를 유도동기(라이트모티프)라고 한다.
- 이 음악은 2000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받았다.
II. 석탄 창고의 아이
(액자) 이야기는 트럼펫 연주자 맥스 투니가 악기를 팔러 낡은 악기점에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곡을 불게 해 달라고 하자, 가게 주인은 그 선율을 알아보고 깨진 음반 하나를 꺼낸다. 영화는 그 음반의 주인에 대해 맥스가 들려주는 회고로 짜여 있다. (발견) 1900년 첫날, 석탄을 퍼 나르는 화부 대니 부드먼이 일등실 무도회장 피아노 위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발견한다. 대니는 아이를 기관실에서 몰래 키우며 태어난 해를 따 1900이라고 부른다. 승객 명부에도 없고 어느 나라 서류에도 없는 아이다. 그가 아는 세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배 한 척이다. (첫 음) 어느 밤 무도회장에서 들려온 피아노 소리를 따라가 보니 꼬마 1900이 건반 앞에 앉아 있다. 아무도 가르친 적이 없는데 손이 알아서 움직인다. 음악은 이 대목을 기적처럼 부풀리지 않는다. 아이의 연주는 소박하고 조심스러우며, 그 뒤로 관현악이 부드럽게 받쳐 줄 뿐이다. 영화가 앞으로 들려줄 모든 곡의 씨앗이 이렇게 한 아이의 손끝에서 처음 소리를 낸다. (바다) 모리코네의 주제는 바다를 큰 파도로 그리기보다 넓고 느린 호흡으로 그린다. 현악기가 길게 깔리고 그 위로 피아노가 조용히 떠오른다. 땅을 모르는 아이에게 바다는 위협이 아니라 집이었다는 사실을 음악이 먼저 받아들이는 셈이다.
석탄 창고에서 자란 아이가 처음 건반을 만나는 시절과 함께 들으면 좋은 곡이다. 음반에 실린 이 큐는 관현악과 재즈를 가장 자연스럽게 섞은 곡으로 꼽힌다.
- 화려한 기교보다 단순한 선율에 귀를 기울여 보자. 아무에게도 배우지 않은 아이의 손처럼 소박하게 시작한다.
- 리뷰들은 이 곡이 관현악과 재즈가 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녹아든 드문 큐라고 평한다. 서로 다른 두 세계를 한 몸에 지닌 1900이라는 인물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들린다.
- 음량을 크게 키우지 않고 끝까지 조용한 호흡을 지킨다. 땅을 모르는 아이에게 바다는 무서운 곳이 아니라 집이었다는 감각이 여기서 나온다.
III. 폭풍 속의 무도회장
(만남) 1927년, 젊은 트럼펫 연주자 맥스가 배 악단에 들어온다. 첫 항해에서 폭풍을 만나 뱃멀미에 비틀거리던 맥스는 아무렇지 않게 갑판을 걷는 한 남자를 만난다. 배의 전설이 된 피아니스트 1900이다. (왈츠) 1900은 맥스를 텅 빈 무도회장으로 데려가 바퀴 달린 그랜드피아노의 고정 장치를 풀고 앉는다. 배가 기울 때마다 피아노는 두 사람을 태운 채 반질반질한 마루를 미끄러지고, 천장의 샹들리에가 흔들리고, 의자들이 쏟아진다. 1900은 흔들림에 맞춰 연주하고 맥스는 웃음을 터뜨린다. 폭풍이 춤의 상대가 되는 장면이다. 원판 음반에 실린 토마시의 「매직 왈츠」가 이 장면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장면과 곡의 대응은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 대목에서 음악이 바다의 리듬을 거스르지 않고 그 위에 올라탄다는 점은 분명하다. (악단) 이후 두 사람은 단짝이 된다. 1900의 연주는 악보를 따르지 않는다. 일등실에서는 신사 숙녀의 춤곡을, 삼등 선실에서는 이민자들의 흥겨운 춤곡을 친다.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다가 그 사람의 걸음걸이와 표정을 즉석에서 곡으로 바꿔 내기도 한다. 모리코네와 토마시는 이 다재다능함을 래그타임과 스윙, 왈츠와 민속 춤곡을 넘나드는 짧은 곡들로 그렸다. (시선) 1900에게 피아노는 바깥 세상을 엿보는 창이다. 그는 배에서 내린 적이 없지만 승객들이 들고 온 냄새와 사투리, 몸짓으로 세상을 상상한다. 맥스의 회고 속에서 그의 음악은 늘 누군가를 향해 있다.
이탈리아 원판 음반에만 실린 곡이다. 일등실과 삼등 선실을 오가며 승객마다 다른 음악을 들려주던 1900의 폭넓은 레퍼토리를 떠올리게 한다.
- 타란텔라는 이탈리아 남부의 빠른 춤곡으로, 한 마디를 셋으로 쪼개는 박자(8분의 6박자)가 숨 가쁘게 몰아친다. 고향을 떠나 신대륙으로 가는 이민자들의 몸에 밴 리듬이다.
- 제목의 삼등 선실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같은 배 안에서도 계층에 따라 음악이 달랐다는 사실을 곡 하나로 보여 준다.
- 피아노와 함께 리듬을 끌고 가는 악기들을 들어 보자. 귀족적인 왈츠와 달리 거칠고 흥겨운 소리가 일부러 골라진 것처럼 들린다.
IV. 재즈의 결투
(도전) 1900의 소문은 육지까지 퍼지고, 재즈를 자기가 발명했다고 큰소리치던 젤리 롤 모턴이 직접 배에 올라 피아노 대결을 청한다. 담배 연기 가득한 무도회장에 승객들이 둘러앉고, 두 사람은 차례로 건반 앞에 앉는다. (첫 수) 모턴이 화려한 곡으로 먼저 치고 나가자 1900은 뜻밖에 「고요한 밤」을 아이처럼 단순하게 친다. 경쟁할 마음이 없는 사람의 연주다. 모턴은 이를 조롱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곡 「크레이브」를 느리고 관능적으로 연주해 1900의 눈시울을 붉힌다. 실제 모턴이 남긴 곡이 영화 속 결투에 그대로 쓰였다. (반격) 그러자 1900은 방금 들은 곡을 한 음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되짚은 뒤 자신의 곡 「인듀어링 무브먼트」로 넘어간다. 양손이 건반 위를 미친 듯이 오가고, 음은 손이 셋인 것처럼 겹겹이 쌓인다. 연주가 끝나자 그는 달아오른 피아노 줄에 담배를 대어 불을 붙이고 그 담배를 모턴에게 건넨다. 모턴은 말없이 배를 떠난다. (의미)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화려하지만, 음악이 하는 일은 단순한 승리 선언이 아니다. 1900은 처음에는 싸울 생각조차 없었고, 상대의 음악에 진심으로 감동한 뒤에야 비로소 전력을 다한다. 그가 보여 주는 것은 경쟁심보다 음악을 향한 순수한 몰입에 가깝다. 이 순수함은 이후 그가 내리는 모든 선택을 미리 비춘다.
피아노 대결에서 젤리 롤 모턴이 1900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 곡이다. 영화를 위해 새로 쓴 곡이 아니라 실제 모턴의 곡이다.
- 느리게 끌리는 리듬 위로 왼손이 무게를 싣는다. 쿠바 춤곡 하바네라의 리듬이 섞인 이 맛을 모턴은 재즈의 스페인풍 양념이라고 불렀다.
- 앞서 1900이 일부러 단순하게 친 「고요한 밤」과 나란히 놓고 들어 보자. 대결의 긴장이 화려함보다 정서의 깊이에서 생긴다는 점이 드러난다.
- 음반에서 이 곡을 친 사람은 토마시다. 실제 재즈 피아니스트의 손이 1920년대 재즈의 감촉을 되살렸다.
- 1900은 이 곡을 한 번 듣고 그대로 다시 친다. 음악을 귀로 듣고 통째로 기억하는 그의 재능을 보여 주는 장치다.
모턴의 곡을 되짚은 1900이 이어서 쏟아 내는 자작곡이다. 연주가 끝나면 그는 달아오른 피아노 줄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몰아치는 빠르기를 따라가 보자. 두 손이 아니라 세 손이 치는 것처럼 음이 촘촘하다.
- 음반에는 「세 손을 위한 연습곡」이라는 곡이 따로 있다. 이 영화의 피아노 음악이 사람의 손으로 칠 수 있는 한계를 장난스럽게 넘어서려 한다는 걸 제목이 알려 준다.
- 장면에서 음악은 승리를 뽐내기보다 몰입 그 자체를 보여 준다. 연주가 끝난 뒤의 고요가 연주만큼 길게 남는다.
- 주인공 역의 팀 로스는 화면에서 피아노를 실제로 연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아노 소리는 음반의 연주자들이 냈다.
V. 창 너머의 소녀
(녹음) 한 음반 회사가 1900의 연주를 녹음하겠다며 배에 장비를 들여온다. 그는 마지못해 건반 앞에 앉는데, 그 순간 둥근 선창 너머로 한 소녀가 지나간다. 1900의 손이 멈칫하더니 처음 듣는 선율이 흘러나온다. 그가 소녀를 바라보는 동안 연주는 그대로 사랑 고백이 된다. 음반에 「플레잉 러브」로 실린 바로 그 곡이다. (거절) 녹음이 끝나자 1900은 원판을 돌려 달라고 한다. 자기 음악이 자기 없이 세상을 떠도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그는 이 유일한 음반을 소녀에게 주려고 하지만, 뉴욕에 닿은 배에서 인파에 밀려 끝내 건네지 못하고 그녀는 육지로 사라진다. 그는 음반을 부숴 버린다. (계단) 얼마 뒤 1900은 처음으로 배에서 내리겠다고 선언한다. 소녀를 찾아가고, 바다를 다른 쪽에서 보고 싶다는 것이다. 동료들이 배웅하는 가운데 그는 트랩을 반쯤 내려가다 멈춰 선다. 눈앞에는 끝을 알 수 없는 도시가 펼쳐져 있다. 그는 모자를 바다에 던지고 다시 배로 돌아온다. (위기) 이 무렵의 큐 「더 크라이시스」는 서로 붙어 있는 두 건반을 함께 눌러 일부러 부딪히는 소리를 낸다. 아름다운 주제들 사이에 끼어든 이 거친 울림은 1900 안에서 무언가 어긋나기 시작했음을 알린다. 사랑의 선율과 불안의 소리가 같은 피아노에서 나온다는 점이 이 대목의 핵심이다.
녹음하던 날 선창 너머로 소녀를 본 1900이 즉흥으로 연주한 사랑의 선율이다. 이 영화를 대표하는 곡이며, 음반에는 두 가지 판본이 실려 있다.
- 처음 몇 음은 망설이듯 띄엄띄엄 나오다가 차츰 이어진다. 즉흥으로 떠오른 생각이 선율로 자리 잡는 과정을 음악이 그대로 따라간다.
- 음반 판본에서는 이 선율이 여러 악기로 옮겨 다니다 트럼펫 독주로 끝난다. 트럼펫은 맥스의 악기다. 1900의 사랑 노래가 결국 친구의 숨결로 남는다는 이야기를 악기 선택이 먼저 들려준다.
- 후반부에 맥스가 텅 빈 배에서 이 곡의 음반을 다시 트는 대목과 함께 들어 보자. 같은 선율이 고백에서 그리움으로 뜻을 바꾼다.
- 이 곡은 지금도 피아노 독주곡으로 널리 연주되고, 모리코네의 대표작을 모은 공연에서도 자주 오른다.
VI. 남겨진 음반
(세월) 시간이 흐르고 맥스는 배를 떠난다. 전쟁이 지나가고 버지니아호는 병원선으로 쓰이다 낡아 폐선이 된다. 배는 바다에서 폭파될 예정이다. 맥스는 1900이 아직 그 안에 있다고 믿고 그를 찾아 나선다. (재회) 텅 빈 배 안에서 맥스는 악기점 주인에게 빌린 음반과 축음기로 「플레잉 러브」를 선체 곳곳에 튼다. 오랜 친구를 부르는 신호다. 녹이 슨 선체와 텅 빈 무도회장 사이로 퍼지는 이 선율은 처음 녹음되던 날보다 훨씬 쓸쓸하게 들린다. 같은 곡이 이제는 사랑 고백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을 부르는 노래가 된 것이다. (선택) 1900은 맥스에게 자기가 왜 그날 트랩에서 돌아섰는지 이야기한다. 건반은 여든여덟 개뿐이라 끝이 있지만, 그 끝이 있기에 무한한 음악을 만들 수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육지의 건반 앞에서는 연주할 수 없었다는 고백이다. 그가 마지막에 무엇을 고르는지는 직접 확인하기를 권한다. 이 대목에서 모리코네는 음악을 최대한 아낀다. 말이 끝나고 나서야 관현악이 조용히 돌아오고, 그 침묵 덕분에 남은 음 하나하나가 무겁게 울린다. (여운) 영화는 다시 악기점으로 돌아온다. 깨진 음반을 이어 붙여 다시 듣게 만든 것도, 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것도 맥스다. 1900은 자기 음악이 자기 없이 남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 음악은 친구의 기억과 한 장의 음반으로 남는다. 영어판 음반은 로저 워터스가 부른 노래로 끝나는데, 이 노래는 이야기의 여운을 대중가요의 언어로 다시 들려준다.
영어판 음반의 마지막 곡이다. 모리코네가 곡을 쓰고 핑크 플로이드 출신의 로저 워터스가 노랫말을 붙여 직접 불렀다.
- 노랫말은 길을 잃고 남겨진 이들이 부르는 소리를 1인칭의 조용한 화법으로 그린다.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기보다 그 뒤에 남은 감정을 따라가는 노래다.
- 에디 밴 헤일런이 기타로 참여했다. 록 기타가 모리코네의 관현악 선율 위에 얹히는 드문 조합이다.
- 영화의 주제 선율이 대중가요의 형식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들어 보자. 영화음악이 노래로 바뀔 때 어떤 것은 남고 어떤 것은 달라지는지 견주어 볼 수 있다.
덜 알려진 이야기
(원작) 영화의 출발점인 「노베첸토」는 1994년 배우 에우제니오 알레그리가 혼자 무대에 서고 가브리엘레 바치스가 연출한 1인극이었다. 바리코는 이 글이 무대극과 소리 내어 읽는 이야기 사이에 놓인 글이라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지금도 연극으로 먼저 기억된다. 영화에만 익숙한 관객은 이 이야기가 원래 배우 한 명의 목소리로만 전해졌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두 판본) 영화에도 음반에도 두 개의 판본이 있다. 미국 배급사 파인 라인은 개봉 전에 30분 넘게 덜어 내기를 요구했고, 그래서 미국판은 이탈리아판보다 훨씬 짧다. 음반도 마찬가지여서 이탈리아 원판에는 29곡, 미국판에는 21곡이 실렸다. 「삼등 선실의 타란텔라」와 「인듀어링 무브먼트」, 「매직 왈츠」처럼 원판에만 있는 곡들은 영어권 청자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공동 작곡) 이 영화의 음악은 흔히 모리코네의 작품으로만 불린다. 하지만 음반 표기를 보면 주인공의 광기 어린 즉흥 연주 같은 재즈 큐의 상당수는 아메데오 토마시와 함께 쓴 것이고, 「매직 왈츠」는 토마시의 이름으로만 올라 있다. 영화 속 1900의 재즈 연주는 실제 재즈 연주자의 손에서 나온 셈이다. (실존 인물) 영화 속 젤리 롤 모턴의 허세에는 실제 근거가 있다. 모턴은 1938년 언론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자신이 1902년에 재즈를 창시했다고 주장했고, 같은 해 미국 의회도서관 녹음에서 자신의 음악 인생을 길게 회고했다. 재즈사 학자들은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지만, 그가 초기 재즈를 처음으로 악보에 체계적으로 옮긴 사람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영화가 그를 오만한 도전자로 그리면서도 그의 곡 「크레이브」에 1900의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것은 이 두 얼굴을 함께 담으려는 선택으로 읽힌다.
용어 노트 📚🔎
유도동기(라이트모티프)
(말뜻) 독일어 라이트모티프(Leitmotiv)는 이끄는(leit) 동기(Motiv)라는 뜻이다. 여기서 동기는 음악을 이루는 가장 작은 선율 조각을 말한다. 우리말 유도동기(誘導動機)도 이끌어 주는 동기라는 뜻을 그대로 옮겼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특정 인물이나 장소, 감정이 나올 때마다 같은 짧은 선율을 다시 들려줘서 관객이 소리만 듣고도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기법이다. 이 영화에서는 사랑의 선율이 처음에는 피아노 고백으로, 나중에는 텅 빈 배에 울리는 음반 속 그리움으로 다시 나온다. 게임에서 보스가 나타날 때마다 같은 음악이 깔려서, 화면을 보기 전에 소리만 듣고도 긴장하게 되는 것과 같다.
래그타임
(말뜻) 영어 래그(rag)는 누더기, 해진 천 조각이라는 뜻이다. 박자가 찢긴 듯 어긋난다(ragged time)는 데서 이름이 왔다는 설명이 널리 쓰인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미국에서 유행한 피아노 음악이다. 왼손은 쿵짝쿵짝 규칙적으로 걷고, 오른손은 일부러 박자를 살짝 앞당기거나 늦추며 엇박으로 튄다. 스콧 조플린이 대표 작곡가이고, 이 영화에도 그의 「피처린 래그」가 쓰였다. 줄넘기를 할 때 줄은 일정하게 도는데 발은 일부러 반 박자씩 엇갈려 뛰며 장난을 치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즉흥연주(임프로비제이션)
(말뜻) 즉흥(卽興)은 그 자리(卽)에서 떠오르는 흥(興)이라는 뜻이다. 영어 임프로비제이션의 라틴어 뿌리 improvisus는 미리 내다보지 않은이라는 뜻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악보 없이 그 자리에서 음악을 지어 가며 연주하는 것이다. 재즈의 핵심 기술이고, 이 영화의 주인공은 거의 모든 곡을 이렇게 연주한다. 소녀를 보며 친 사랑의 선율도 즉흥으로 태어났다는 설정이다. 친구들과 끝말잇기를 할 때 다음 단어를 미리 정해 둘 수 없고 앞사람의 말을 듣고 바로 이어 가야 하는 것처럼, 즉흥연주자도 방금 울린 소리를 듣고 다음 소리를 고른다. (다른 데서는) 연극이나 코미디에서는 대본 없이 즉석에서 연기하는 것을 가리켜 흔히 애드리브라고도 부른다.
불협화음
(말뜻) 불협화(不協和)는 서로 어울리지(協和) 않는다(不)는 뜻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함께 울렸을 때 귀에 거칠거나 불안하게 들리는 음들의 조합이다. 모리코네는 「더 크라이시스」에서 바로 붙어 있는 건반 두 개를 함께 눌러 일부러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아름다운 선율 사이에 끼어든 이 소리는 주인공의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된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에 몸이 움츠러드는 것처럼, 불협화음은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어 장면의 긴장을 끌어올린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의견 충돌이나 갈등을 빗대어 불협화음이 생겼다고 말한다.
화면 안 음악(소스 음악)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등장인물도 함께 들을 수 있는, 이야기 세계 안에서 실제로 울리는 음악이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나 인물이 직접 치는 피아노가 여기에 속한다. 반대로 관객에게만 들리는 배경 관현악은 화면 밖 음악이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1900의 연주가 대부분 화면 안 음악이라서 음악이 곧 인물의 대사 노릇을 한다. 학교 연극에서 배우가 무대 위에서 직접 리코더를 불면 화면 안 음악이고, 무대 옆에서 장면에 맞춰 틀어 주는 배경음악은 화면 밖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타란텔라
(말뜻) 이탈리아 남부 도시 타란토에서 이름이 왔다. 그 지방의 독거미 타란툴라에 물리면 쉬지 않고 춤을 춰서 독을 빼야 한다는 옛 전설과도 이어져 전해진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한 마디를 셋씩 나눠 세는 빠른 박자(8분의 6박자)로 몰아치는 이탈리아 남부의 춤곡이다. 이 영화에서는 삼등 선실의 이민자들이 고향에서 가져온 리듬으로 쓰여, 어떤 승객들이 배에 탔는지를 소리로 알려 준다. 운동회 때 빠른 음악이 나오면 저절로 발이 동동 구르는 것처럼, 타란텔라는 가만히 앉아 듣기 어려울 만큼 몸을 들썩이게 하는 음악이다.
분산화음(아르페지오)
(말뜻) 이탈리아어 아르페조(arpeggio)는 하프(arpa)를 타듯 연주한다는 뜻이다. 하프는 줄을 한 줄씩 차례로 뜯어 화음을 흘려보내는 악기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여러 음을 한꺼번에 누르지 않고 한 음씩 차례로 펼쳐서 흐르듯 연주하는 방법이다. 이 영화의 피아노 음악에서는 물결처럼 오르내리는 이런 펼침이 바다의 출렁임과 겹쳐 들린다. 도미솔을 한 번에 쾅 누르면 화음이고, 도, 미, 솔을 계단 오르듯 하나씩 짚으면 분산화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