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Emperor
자금성의 붉은 담장 안에서 시작된 한 사람의 생애를 일본 작곡가가 쓴 서양 관현악과 중국 악기가 함께 따라간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만든 사람들 ⏳🌊
- 작곡가류이치 사카모토
아마카스 역의 배우로 참여했다가 영화음악의 절반을 맡아 일본인 최초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받았다.
- 감독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서양 극영화로는 처음 자금성 촬영 허가를 받아 이 작품을 연출했고,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 작곡가데이비드 번
토킹 헤즈의 리더로, 메인 타이틀을 비롯한 다섯 곡을 쓰고 음반을 공동 제작했다.
- 작곡가충쑤
중국 작곡가로, 사운드트랙의 「Lunch」를 쓰고 아카데미 작곡상을 함께 받았다.
- 주연존 론
청년기부터 노년까지 성인 푸이를 연기했다.
- 주연조안 첸
황후 완룽을 연기했다.
I. 배우로 불려 간 작곡가
(작품) 「마지막 황제」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의 생애를 그린 영화다. 이탈리아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연출했고, 영국 제작자 제러미 토머스가 제작비를 따로 모았다. 서양 극영화로는 처음으로 자금성 안에서 촬영할 허가를 받았고,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아홉 부문에서 모두 상을 받았다. (배역) 류이치 사카모토는 처음에 작곡가가 아니라 배우로 이 영화에 참여했다. 베르톨루치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 나온 그를 눈여겨보았고, 만주에서 일본 정보 조직을 이끄는 아마카스 마사히코 역을 맡겼다. 그는 YMO에서 전자음악을 하던 음악가였고,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는 신시사이저로 영화음악을 쓴 적이 있었다. (의뢰) 촬영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온 뒤 감독은 그에게 영화음악의 절반을 맡겼다. 나머지는 토킹 헤즈의 데이비드 번과 중국 작곡가 충쑤가 썼다. 사카모토는 신시사이저 위주의 음악을 생각했지만, 베르톨루치는 넓게 펼쳐지는 관현악을 원했다. 감독은 무대는 중국이어도 이 영화는 유럽 영화라는 점을 염두에 두라고 당부했다고 전해진다. (시한) 작곡과 녹음에 주어진 시간은 두 주 남짓이었다. 녹음은 도쿄, 런던, 뉴욕의 여러 스튜디오에서 나뉘어 진행되었다. 그렇게 만든 음악으로 사카모토는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받았다. 이 시리즈의 「시네마 천국」을 쓴 엔니오 모리코네가 베르톨루치의 「1900년」에 음악을 붙였는데, 사카모토는 그 뒤를 이어 「마지막 황제」 이후 「셸터링 스카이」와 「리틀 부다」에서도 이 감독과 함께 작업했다.
영화를 여는 곡은 사카모토가 아니라 데이비드 번이 썼다. 세 작곡가가 나눠 맡은 음악이 이 곡에서부터 시작한다.
- 사운드트랙 음반에서는 이 곡이 번의 몫 맨 앞에 놓인다. 사카모토의 서양 관현악과 비교하며 들으면 두 사람의 음색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 번이 쓴 곡들에서는 타악기와 관악기의 음색에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타악기와 관악기의 음색에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 번은 작곡만 한 것이 아니라 음반의 공동 프로듀서로서 편곡과 믹싱(여러 소리를 하나로 섞는 작업)도 맡았다.
- 이 곡을 포함한 음악으로 번, 사카모토, 충쑤는 아카데미 작곡상과 골든글로브 음악상을 함께 받았다.
II. 노란 휘장 너머의 아이
(액자) 영화는 1950년, 소련에서 중국으로 넘겨진 전범 수용자들이 기차역에 내리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 가운데 한 중년 남자가 푸이다. 영화는 이 수용소의 시간과 그가 떠올리는 과거를 번갈아 보여 주며 앞으로 나아간다. (즉위) 회상은 1908년 베이징에서 시작한다. 세 살배기 아이가 한밤중에 집에서 불려 나와 자금성에 들어가고, 죽어 가는 서태후 앞에서 황제로 지목된다. 즉위식 날 아이는 끝없이 엎드려 절하는 신하들 사이에서 지루해하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휘장 쪽으로 뛰어간다. 휘장 너머에는 수많은 관리가 늘어선 광장이 펼쳐진다. 화면은 장엄하지만, 그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다. (유모) 궁 안에서 아이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유모 아모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중국 동북 지방의 자장가를 불러 주는데, 이 노래는 사운드트랙 음반에는 실리지 않았다. 아이는 이름만 황제일 뿐, 어머니와 떨어져 내관과 유모 품에서 자란다. (음악) 사카모토는 이 대목에서 중국의 궁정 음악을 그대로 흉내 내지 않았다. 그는 의뢰를 받기 전까지 중국 음악에 그리 마음이 가지 않았다고 자서전에서 털어놓았다. 그래서 중국 음악 선집 음반을 한꺼번에 사서 하루 동안 몰아 들었고, 시대와 장면에 맞춰 쓸 악기를 골랐다. 그렇게 해서 서양 관현악의 틀 위에 중국 악기의 음색을 얹는 방식이 정해졌다.
세 살배기가 영문도 모른 채 황제가 되는 1908년의 즉위 장면에 붙은 사카모토의 큐다.
- 궁정의 위엄을 나타내는 음악이지만, 화면 한가운데 있는 것은 어린아이다. 장엄함과 어색함이 함께 들리는지 들어 보자.
- 사카모토는 중국 궁정 음악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서양 관현악의 틀에 중국 악기의 색을 섞는 방식을 이 곡에서 처음 꺼내 놓는다.
- 음반에서 1번 트랙에 놓인 곡이다. 이야기가 흘러가는 순서대로 곡을 배열한 사카모토 몫의 첫 곡이기도 하다.
- 2분이 안 되는 짧은 큐(장면 하나에 맞춰 쓴 음악 조각)다. 길게 이어지는 주제곡이 아니라 장면에 꼭 맞게 잘라 쓴 음악이라는 점에서 영화음악 작업 방식을 엿볼 수 있다.
III. 담장 안의 소년
(이별) 아이가 조금 자라자 궁정은 그가 이제 젖을 뗄 나이라며 아모를 내보낸다. 소년은 가마를 타고 멀어지는 유모를 쫓아 궁의 긴 길을 달려가지만 따라잡지 못한다. 황제라 해도 곁에 둘 사람 하나 스스로 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이 장면에서 처음 깨닫는다. (퇴위) 그사이 바깥세상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신해혁명으로 공화국이 들어섰고, 소년은 자금성 담장 안에서만 황제로 남는다. 담장 밖으로 나가려 하면 문이 닫힌다. 그는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의례와 놀이 속에서 자란다. (가정교사) 스코틀랜드인 가정교사 레지널드 존스턴이 들어오면서 소년은 자전거와 안경, 서양의 책을 알게 된다. 피터 오툴이 연기한 존스턴은 담장 밖 세상으로 열린 작은 창 역할을 한다. 푸이는 황후 완룽과 둘째 부인 원슈를 맞아들이고 궁을 바꿔 보려 하지만, 1924년 군벌의 군대가 들이닥치면서 자금성에서 쫓겨난다. (선율) 이 장의 음악은 소년의 마음에 맞춰 움직인다. 유모를 찾아 헤매는 장면의 큐는 장엄한 궁정 음악이 아니다. 한 아이가 느끼는 상실감을 담은 작은 노래처럼 들린다. 혼례를 다룬 큐는 축하하는 음악이라기보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신랑의 어색함을 함께 비춘다. 사카모토는 장면마다 그 시대 궁정의 분위기보다 인물이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를 먼저 따라간다.
유모가 궁 밖으로 보내지고 소년 황제가 그녀를 쫓아 달려가는 대목의 큐다. 황제가 처음으로 혼자가 되는 순간이다.
- 제목 자체가 아이가 던지는 질문이다. 음악이 장면 바깥에서 설명하기보다 소년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함께 묻는 것처럼 들린다.
- 사카모토는 도쿄에 유학 중이던 이호(얼후, 활로 켜는 중국의 두 줄 현악기) 연주자 장젠화와 비파 연주자 양바오위안을 불러, 연주를 들으며 장면마다 곡을 붙였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 영화 속에서 아모가 부르는 동북 지방 자장가는 음반에 없다. 그 노래가 사라진 자리를 이 큐가 이어받는다고 생각하며 들어 볼 수 있다.
IV. 톈진의 비
(조계) 자금성에서 나온 푸이는 톈진의 일본 조계에 자리를 잡는다. 그곳에서 그는 양복을 입고 재즈를 듣고 파티를 연다. 영화 속에는 이 시절의 서양 대중가요가 여럿 흐르는데, 이런 곡들은 대부분 사운드트랙 음반에 실리지 않았다. 황제였던 사람이 이제 서양식 사교계의 손님처럼 살아가는 시기다. (유혹) 이 무렵 일본은 푸이에게 다시 황제 자리를 주겠다고 손을 내민다. 그는 잃어버린 왕좌를 되찾을 길로 그 손을 잡는다. 화려한 생활 뒤에서 그의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날 준비를 한다. (이혼) 둘째 부인 원슈는 이혼을 요구하고 그의 곁을 떠난다. 그녀가 비 오는 거리로 걸어 나가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자주 회자되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황제의 여자가 스스로 황제를 떠나는 일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장면은 짧지만, 한 시대가 끝났음을 이보다 분명하게 보여 주는 장면은 드물다. (질주) 이 장면에 붙은 사카모토의 큐 「비(이혼하고 싶어요)」는 2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영화가 나온 뒤 이 곡은 따로 떨어져 나와 사카모토의 대표곡이 되었다. 현악이 같은 음형을 쉬지 않고 되풀이하며 몰아치고, 그 위로 넓은 선율이 솟아오른다. 떠나는 사람의 결심과 남겨진 사람의 무력함이 한 곡 안에 함께 담긴다. 사카모토는 훗날 피아노 삼중주 편성으로 이 곡을 다시 녹음했고, 연주회에서도 자주 연주했다.
둘째 부인 원슈가 이혼을 요구하고 비 내리는 거리로 걸어 나가는 장면의 음악이다. 영화 밖에서도 사카모토의 대표곡이 되었다.
- 현악이 짧은 음형을 쉬지 않고 되풀이하는 오스티나토(같은 음형을 고집스럽게 반복하는 기법)가 빗줄기처럼, 또 떠나는 사람의 발걸음처럼 들린다.
- 되풀이되는 바탕 위로 넓은 선율이 솟아오른다. 한 사람에게는 해방이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상실인 장면을 한 곡이 함께 품는다.
- 영화에서는 2분도 안 되는 길이지만, 사카모토는 훗날 피아노 삼중주(피아노·바이올린·첼로) 편성으로 다시 편곡해 앨범 「1996」에 실었고 연주회에서도 자주 연주했다.
- 원래 신시사이저 음악을 구상했던 사카모토가 감독의 요구로 관현악을 택한 결과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곡이다.
V. 꼭두각시의 왕좌
(만주국) 1934년 일본은 만주에 세운 괴뢰국 만주국의 황제 자리에 푸이를 앉힌다. 그는 다시 용포를 입지만, 실제 권력은 관동군에게 있다. 그가 내리는 명령은 일본인 관리의 손을 거쳐야 하고, 그가 하는 연설의 원고는 남이 써 준다. (아마카스) 이 장에서 사카모토는 직접 화면에 나온다. 그가 연기한 아마카스는 영화사 대표라는 신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정보 공작을 이끄는 인물이다. 작곡가가 자기가 음악을 붙일 영화 속에서 냉정한 가해자 쪽의 배역을 맡은 셈이다. 연회 장면에서 악단이 연주하는 곡도 그가 쓴 것인데, 이 곡은 정식으로 작곡을 의뢰받기 전에 쓴 것이었다. (몰락) 황후 완룽은 아편에 빠지고, 그녀가 낳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목숨을 잃는다. 푸이는 이 일을 막을 힘도, 진실을 따져 물을 힘도 없다. 황제라는 이름이 가장 높이 걸려 있던 이 시기에 그는 가장 무력하다. (침묵) 아이의 죽음을 다룬 큐는 1분도 되지 않는다. 사카모토는 이 비극에 긴 음악을 붙이지 않았다. 음악은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고, 그 짧음이 오히려 더 무겁게 남는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자 아마카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푸이는 도망치려다 소련군에 붙잡힌다. 만주국의 화려한 의장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만주국 시절 황후 완룽이 낳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목숨을 잃는 대목의 큐다. 1분이 채 되지 않는다.
- 음반에 실린 사카모토의 곡 가운데 가장 짧은 곡이다. 비극을 길게 설명하지 않고 금방 끊어지는 음악이 오히려 더 무겁게 남는다.
- 푸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음악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데서 함께 드러나는 것처럼 들린다.
- 사운드트랙 앨범 제목에 붙은 괄호 속 부제는 장면을 그대로 적은 것이다. 이 큐가 어느 장면을 위해 쓰였는지 숨기지 않는다.
VI. 수용소에서 정원으로
(개조) 다시 1950년의 수용소로 돌아온다. 소장 진위안은 푸이에게 자기 과거를 스스로 돌아보고 글로 쓰라고 한다. 푸이는 오랫동안 자신도 피해자였다고 버틴다. 그러다 만주국 시절의 기록 영상을 보게 되고, 자기 이름 아래에서 벌어진 일을 마주한다. 1959년 그는 자신의 협력을 인정하고 특사로 풀려난다. (정원사) 풀려난 푸이는 베이징의 식물원에서 정원사로 일한다. 1967년 문화대혁명의 행진 속에서 그는 자신을 가르쳤던 소장이 홍위병에게 끌려가며 모욕당하는 모습을 본다. 그를 변하게 만든 사람이 이번에는 새 시대의 손에 짓밟힌다. 이 장면에는 사운드트랙에도 실린 홍위병 아코디언 악단과 무용단의 음악이 그대로 흐른다. 작곡된 영화음악이 아니라 그 시대의 소리가 화면을 채운다. (귀환) 영화의 마지막에 늙은 푸이는 표를 사서 자금성에 들어간다. 그가 처음 즉위했던 곳은 이제 관람객을 받는 박물관이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직접 보는 편이 좋다. 다만 이 대목에서 음악이 하는 일은 말할 수 있다. 사카모토의 주제가 처음으로 끝까지 크게 펼쳐지면서, 앞에서 흩어져 있던 기억들이 한자리로 모인다. (여운) 그 주제는 엔딩 크레디트까지 이어진다. 세 살에 휘장을 지나 광장으로 뛰어나갔던 아이와 표를 사서 같은 곳에 들어온 노인이 이 음악 안에서 겹쳐진다. 한 사람이 걸어온 시간 전체를 돌아보는 듯한 음악으로 영화는 끝난다.
늙은 푸이가 다시 자금성을 찾는 마지막 대목부터 엔딩 크레디트까지 이어지는 사카모토의 주제곡이다.
- 음반에는 이 주제의 변주(같은 선율을 모양을 바꿔 다시 들려주는 것) 두 곡이 따로 실려 있다. 영화 곳곳에 흩어져 있던 선율이 여기서 처음 온전히 펼쳐진다.
- 현악과 관악이 겹겹이 쌓이는 관현악 편성은, 무대는 중국이어도 유럽 영화로 만들라는 베르톨루치의 요구에 사카모토가 내놓은 답처럼 들린다.
- 이 음악으로 사카모토는 일본인 최초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받았다. 사운드트랙은 그래미 시각매체 음악상도 받았다.
- 결말 장면에서 이 음악은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돌아보는 시선으로 장면을 감싼다.
덜 알려진 이야기
사카모토가 이 영화를 위해 처음 쓴 곡은 정식으로 작곡을 의뢰받기 전에 나왔다. 그는 배우로만 출연할 생각이었는데, 아마카스가 영화사 대표라는 위장 신분을 내세우는 연회 장면을 찍기 이틀 전에 화면 속 악단이 연주할 곡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영화음악을 다룬 회고 기사들은 이 곡을 그 뒤에 이어진 큰 작업의 예행연습쯤으로 소개한다. 작품이 완성된 뒤에는 오스카 수상이 너무 큰 이야기가 되어 이런 출발점은 잘 거론되지 않는다. 사카모토는 자서전 「음악은 자유롭게 한다」에서 의뢰를 받기 전까지 중국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20권쯤 되는 중국 음악 선집 음반을 사서 하루 만에 들었고, 도쿄에 유학 중이던 이호 연주자 장젠화와 비파 연주자 양바오위안을 불러 연주를 들으며 장면마다 곡을 붙였다. 이 이야기는 주로 일본어 자료에만 남아 있어서, 서양의 영화음악 문헌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작업 기간도 이야기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진다. 사카모토는 2017년 뉴욕 쿼드 시네마 상영회에서, 처음에는 일주일을 받았지만 두 주를 달라고 했고 그 사이 64개의 큐를 써서 그중 절반쯤이 영화에 쓰였다고 말했다. 이 내용은 그날 대담을 들은 관객이 남긴 기록으로 전해진다. 그 두 주는 순탄하지 않았다. 일본 잡지의 추도 기사에 따르면 베르톨루치는 거의 매일 새로 편집한 영상을 보냈고, 사카모토는 영상이 바뀔 때마다 음악을 다시 고쳐 써야 했다. 그는 이 시기를 지옥 같은 강행군이었다고 돌아보았다. 다큐멘터리 「코다」에서는 젊었기에 해낼 수 있었던 일이고 지금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용어 노트 📚🔎
큐(cue)
(말뜻) 영어 cue는 연극에서 배우에게 대사를 시작할 때를 알려 주는 신호를 뜻했다. 영화음악에서는 신호에 맞춰 들어오고 나가는 음악 한 토막을 가리키게 되었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영화의 특정 장면에 맞춰, 몇 분 몇 초에 시작해 몇 분 몇 초에 끝나도록 쓴 음악 한 조각이다. 1분이 안 되는 것도 있고 몇 분씩 이어지는 것도 있다. 학교 연극에서 주인공이 무대에 등장할 때 방송부가 정해진 순간에 음악을 틀었다가 퇴장할 때 끄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그 한 번 틀어 준 음악이 하나의 큐다. (다른 데서는) 당구에서 공을 치는 막대도 큐라고 부르지만 음악의 큐와는 다른 말이다.
오스티나토
(말뜻) 이탈리아어 ostinato는 고집스럽다는 뜻이다. 같은 음형을 고집스럽게 계속 되풀이한다는 성격이 이름에 그대로 들어 있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짧은 음의 무늬를 곡이 이어지는 동안 쉬지 않고 반복하는 기법이다. 반복되는 바탕 위에서 다른 악기가 선율을 노래한다. 영화에서는 긴장감, 달리는 느낌, 시간이 흘러가는 느낌을 만들 때 자주 쓴다. 줄넘기를 할 때 일정하게 반복되는 줄 소리 위에서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비슷하다. 「비」에서는 현악기가 이 반복을 맡아 빗줄기 같은 바탕을 깐다.
변주(바리에이션)
(말뜻) 변주(變奏)는 바꾸어(變) 연주한다(奏)는 뜻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이미 나온 선율을 알아볼 수 있게 남겨 두면서 빠르기, 화음, 악기, 분위기를 바꿔 다시 들려주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같은 주제가 장면마다 다른 옷을 입고 나오면서 인물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려 준다. 생일 축하 노래를 어떤 날은 신나게, 어떤 날은 피아노로 조용히, 어떤 날은 장난스럽게 바꿔 부르는 것과 같다. 「마지막 황제」 음반에는 주제곡 외에 변주가 두 곡 따로 실려 있다.
관현악(오케스트레이션)
(말뜻) 관현악(管絃樂)은 관(管, 관악기)과 현(絃, 현악기)이 함께 내는 음악이라는 뜻이다. 실제로는 타악기까지 포함한 큰 악단의 음악을 가리킨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오케스트레이션은 선율과 화음을 어떤 악기에 맡길지 정하는 일이다. 같은 선율이라도 바이올린에 맡기느냐 트럼펫에 맡기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학급 합창에서 같은 노래를 남학생 파트에 줄지 여학생 파트에 줄지, 다 같이 부를지 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카모토는 이 영화에서 서양 관현악에 중국 악기의 음색을 섞었다.
신시사이저
(말뜻) 영어 synthesize는 합성한다는 뜻이다. 신시사이저는 전기 신호를 합성해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악기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건반을 누르면 전자 회로나 컴퓨터가 소리를 만들어 낸다. 실제 악기 소리를 흉내 낼 수도 있고, 세상에 없는 새로운 소리를 만들 수도 있다. 사카모토는 원래 이 악기로 음악을 만드는 전자음악가였지만, 이 영화에서는 감독의 요구에 따라 관현악을 택했다. 게임 배경음악의 전자음이나 휴대전화 벨소리를 떠올리면 신시사이저 소리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소스 음악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화면 속 세계 안에서 실제로 울리는 음악이다. 라디오, 축음기, 무대 위 악단, 노래하는 인물에게서 나오는 소리처럼 등장인물도 함께 듣는 음악을 말한다. 반대로 인물은 듣지 못하고 관객만 듣는 배경음악은 스코어라고 부른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는 소스 음악이고, 주인공이 슬플 때 깔리는 피아노 음악은 스코어다. 이 영화의 홍위병 아코디언 악단 연주나 연회장 악단의 음악이 소스 음악이다. (다른 데서는) 프로그래밍에서 소스는 프로그램을 이루는 원래 코드인 소스 코드를 가리킨다.
이호(얼후)
(말뜻) 이호(二胡)는 두(二) 줄짜리 호금(胡琴, 북방 민족에게서 온 현악기)이라는 뜻이다. 중국어로는 얼후라고 읽는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줄 두 개 사이에 활을 끼워 넣고 켜는 중국의 현악기다. 사람의 목소리처럼 떨리고 흐느끼는 소리를 낸다. 영화에서 중국이라는 무대를 곧바로 떠올리게 하는 음색으로 자주 쓰인다. 사카모토는 도쿄에 유학 중이던 이호 연주자를 불러 연주를 들어 가며 곡을 붙였다. 바이올린과 비슷해 보이지만 지판이 없어서, 줄을 손가락으로 눌러 음높이를 정하는 감각이 훨씬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