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ár
이 영화의 음악은 화려한 선율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소리를 서서히 잃어가는 과정 그 자체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만든 사람들 ⏳🌊
- 작곡가힐두르 구드나도티르
메트로놈과 드론 같은 낮은 지속음을 소재로 인물의 내면 붕괴를 그린 오리지널 스코어를 썼다.
- 감독토드 필드
각본도 직접 써서 리디아 타르라는 가상의 지휘자를 만들었다.
- 주연케이트 블란쳇
촬영 전 피아노와 독일어, 지휘를 직접 익혀 리디아 타르를 연기했다.
- 주연소피 카우어
실제 클래식 무대에서 활동하던 첼리스트로, 이 영화가 연기 데뷔작이다.
- 주연니나 호스
타르의 오랜 동반자이자 오케스트라의 악장 역할을 연기했다.
I. 지휘자의 오선지
(계기) 토드 필드 감독은 세계적 지휘자 리디아 타르라는 인물을 구상하며, 그녀의 권위와 균열을 대사가 아니라 음악 자체로 보여주려 했다. 그래서 화려한 관현악 편곡 대신 인물의 귀에 들리는 소리를 지어낼 사람을 찾았다. (작곡가) 아이슬란드 출신 첼리스트이자 작곡가 힐두르 구드나도티르가 그 자리에 섰다. 그는 드라마 「체르노빌」과 영화 「조커」에서 낮은 현의 울림과 전자음으로 불안을 그려낸 이력이 있다. (원칙) 구드나도티르는 이 영화를 위해 별도의 극적인 주제곡을 쓰지 않았다. 대신 메트로놈의 째깍임, 방 안의 소음, 왜곡된 잔향을 재료 삼아 인물이 서서히 자신의 소리를 잃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실기) 케이트 블란쳇은 촬영 전 몇 달 동안 피아노와 독일어, 지휘를 익혔다. 화면 속 손짓 하나, 박자 하나가 실제 연습의 결과였다. (장치) 영화의 중심에는 실존하는 말러 교향곡 5번이 놓인다. 타르가 이끄는 악단은 가상의 베를린 필하모닉이라는 설정이지만, 실제 연주는 드레스덴 필하모닉이 협력해 이뤄졌다.
타르가 완성하려는 말러 전곡 녹음의 첫 악장으로, 제목부터 이 영화 전체의 정서를 예고한다.
- 트럼펫 독주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장송 행렬을 알리는 신호처럼 들려, 영화 전체에 드리운 죽음과 몰락의 그림자를 미리 던진다.
- 느린 행진 리듬이 반복되며 무거운 발걸음을 그리듯 진행되는데, 이는 타르가 짊어진 커리어의 무게와 겹쳐 들린다.
- 말러 자신의 교향곡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자주 연주되는 악장이라,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이 장중한 분위기를 금방 느낄 수 있다.
II. 마스터클래스의 질문
(인터뷰) 극 초반, 그녀는 청중 앞에서 실제 언론인과 말러 교향곡 5번을 이야기한다. 특히 4악장 아다지에토를 언급하며, 이 느린 악장이 한때는 사랑의 고백으로, 또 한때는 장례의 음악으로 쓰였다는 역사를 짚는다. (교실) 이어지는 줄리아드 강의 장면에서 그녀는 한 학생과 바흐를 두고 충돌한다. 학생은 바흐가 남긴 삶의 태도 때문에 그의 음악을 배우기를 거부하고, 그녀는 예술과 예술가를 분리해야 한다고 맞선다. (권위) 이 장면은 대사로 이뤄지지만 그 아래 흐르는 침묵과 건반 소리 몇 마디가 그녀의 권위를 세운다. 그녀는 학생 앞에서 직접 피아노를 눌러 보이며, 음악은 논쟁이 아니라 소리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임을 드러낸다. (암시) 이 초반부에서 이미 음악은 배경이 아니라 그녀가 세상과 싸우는 무기다. 뒤에 벌어질 균열은 바로 이 권위의 언어가 무너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줄리아드 강의 장면에서 타르가 직접 건반을 눌러 보이는 곡으로, 예술과 예술가를 분리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의 한복판에 놓인다.
- 화성이 차분히 쌓여 올라가는 프렐류드(전주곡) 부분은,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정교하게 쌓아 올리는 느낌을 준다.
- 학생과 교수 사이의 대사가 팽팽한 가운데, 이 짧은 건반 소리 하나가 말보다 더 강한 설득력을 갖는 순간으로 자주 언급된다.
- 바흐의 이 곡집은 오랫동안 건반 음악의 기초로 여겨져 왔기에, 이 장면은 전통 자체를 두고 벌이는 논쟁으로도 읽힌다.
인터뷰 장면에서 직접 언급되는 악장으로, 극 전체의 정서적 배음이 된다.
- 관악기 없이 현악과 하프만으로 연주되는 이례적인 편성이라, 마치 속삭이듯 조용한 편지 같은 인상을 준다.
- 이 악장은 본래 아내에게 보내는 사랑의 고백으로 알려져 있는데, 훗날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로버트 케네디의 장례식에서 지휘하며 애도의 곡으로도 자리 잡았다. 이 지휘자는 이 시리즈의 다른 회차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에서 이미 다룬 인물이다.
-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쓰이며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졌고, 아름다움과 상실이 나란히 있는 느낌으로 해석이 갈린다.
- 느린 템포이지만 완전한 정지(아다지오)는 아니라는 뜻에서 이름 붙었다. 이탈리아어로 아다지오(느리게)에 조금이라는 뜻의 어미가 붙어 조금 느리게라는 의미를 갖는다.
III. 다섯 번째 교향곡
(계획) 타르는 말러의 교향곡을 모두 실황으로 녹음해 온 마지막 한 곡, 5번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 완성은 그녀의 경력에서 정점으로 여겨진다. (협주곡) 동시에 그녀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나란히 준비한다. 새로 합류한 첼리스트 올가의 연주가 그녀의 마음을 흔들면서, 음악에 대한 판단과 개인적인 끌림이 뒤섞이기 시작한다. (리허설) 연습실 장면들은 실제 지휘 동작과 오케스트라의 정밀한 합주로 채워진다. 대사보다 박자를 맞추는 손, 악보를 넘기는 소리, 악단원들의 눈빛이 관계의 긴장을 보여준다. (질서) 이 시기의 그녀는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자리 배치, 연주 속도, 심지어 후임 지휘자의 거취까지 그녀의 결정을 거친다. (균열의 씨앗) 그러나 화면 가장자리에는 이미 이전의 제자를 둘러싼 메시지와 소문이 스며들고 있다. 아직은 배경음처럼 작게,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
새로 합류한 첼리스트 올가의 연주로, 타르의 판단과 개인적 끌림이 뒤섞이는 계기가 된다.
- 첫 소절부터 첼로가 낮고 무거운 화음을 힘차게 던지며 시작해, 곡 전체에 비장한 분위기를 깐다.
- 독주자가 오케스트라 반주 없이 홀로 연주하는 대목(카덴차)이 짧게 등장하는데, 이 대목에서 연주자 개인의 해석이 가장 잘 드러난다.
- 실제로 이 배역을 연기한 첼리스트는 클래식 무대에서 활동하던 연주자로, 화면 속 손동작과 소리가 그대로 실연에서 나온다.
- 엘가의 이 곡은 20세기 첼로 협주곡 가운데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 중 하나로, 여러 유명 첼리스트의 녹음이 서로 다른 해석을 들려준다.
IV. 째깍이는 소리
(소식) 한때 그녀의 제자였던 인물의 죽음이 전해지면서, 그녀를 둘러싼 소문은 더 이상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법적 절차와 증언 요청이 그녀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다. (소리) 이 지점부터 구드나도티르의 원곡이 분명하게 떠오른다. 대사 없는 장면에 길게 지속되는 저음, 즉 드론과 왜곡된 금속성 울림이 깔리며, 그녀가 듣는 세상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음을 알린다. (환청) 그녀는 밤마다 집 안에서 알 수 없는 소리에 잠을 설친다.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인 째깍임이 반복되지만, 그 리듬은 조금씩 어긋나며 정상적인 박자 감각을 무너뜨린다. (대비) 이 왜곡된 소리는 앞서 말러와 엘가가 보여준 정교한 질서와 정반대에 놓인다. 그녀가 평생 지켜온 화음과 박자의 세계가, 이제는 그녀 자신을 배신하는 소음으로 되돌아온다. (고립) 동료와 후원자들이 하나둘 거리를 두면서, 그녀는 자신이 세운 무대에서 조금씩 밀려난다. 그럼에도 그녀는 다가오는 실황 녹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V. 무대 위의 균열
(공연일) 마침내 실황 녹음의 밤이 온다. 오케스트라와 청중, 카메라가 모두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 (붕괴) 그러나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녀가 통제해 온 모든 질서를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이 자리에서 밝히지 않는다. (음악의 자리) 그 장면에서 음악은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커지는 동안 그녀 개인의 세계는 소리 없이 무너지는 방식으로, 두 층위가 어긋난 채 나란히 흐른다. (파장) 이 사건은 곧바로 영상으로 퍼지고, 그녀의 경력과 평판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앞서 쌓아온 권위의 언어, 즉 통제된 박자와 정교한 해석은 이제 그녀를 지켜주지 못한다. (추락) 이후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그녀는 이전과 전혀 다른 자리에 서게 된다. 그 자리가 어디인지는 다음 장에서 조용히 드러난다.
VI. 다른 무대
(장소) 영화의 마지막은 이전까지의 화려한 콘서트홀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서 끝난다. 정확한 지명은 밝히지 않지만, 동남아시아의 어느 도시라는 것만 짚어둔다. (관객) 그 자리를 채운 관객은 이전 장들의 정장 차림 청중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이 낙차 자체가 이 영화가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음악) 그녀는 여전히 지휘봉을 든 사람으로 화면에 남는다. 다만 이번에 다스리는 소리는 말러도 엘가도 아닌, 훨씬 대중적이고 가벼운 성격의 곡이다. (해석) 이 마지막 장면을 두고 관객과 평론가들의 해석은 엇갈린다. 몰락으로 읽는 사람도, 소리 자체로 돌아간 홀가분함으로 읽는 사람도 있다. (여운) 확실한 것은 하나, 영화 내내 그녀를 규정해 온 음악이라는 언어가 마지막까지 그녀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무대의 크기와 격은 달라졌어도, 그녀는 여전히 소리를 만드는 사람으로 남는다.
덜 알려진 이야기
영화가 실존 인물의 전기처럼 사실적으로 그려진 데다, 존재하지 않는 지휘자 리디아 타르를 다룬 위키백과 항목과 팬들이 만든 사이트·계정까지 돌면서, 한동안 이 인물이 실존하는지 찾아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독일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은 이 가상의 지휘자 이름으로 실제 음반 형식의 홍보물을 내놓기도 했다. 허구의 인물이 실제 클래식 음반 산업의 관행을 그대로 빌려 온 드문 사례로 남았다. 영화 속 오케스트라 장면 다수는 드레스덴 필하모닉의 협연으로 완성됐다. 화면 속에서는 베를린 필하모닉으로 그려지지만, 실제 연주와 촬영은 독일의 다른 도시에서 이뤄졌다. 영화는 통상 마지막에 오르는 스태프 크레딧을 첫 장면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이 순서 자체가 이야기의 전개와 겹쳐 보인다는 평이 개봉 이후 여러 비평에서 나왔다. 실제 지휘자 마린 알솝은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몇 안 되는 여성 지휘자 중 하나로 살아온 경험이 이 영화의 소재로 쓰인 데 대해 개인적인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용어 노트 📚🔎
드론(지속저음)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하나의 낮은 음이나 화음이 곡 전체에 걸쳐 거의 변하지 않고 길게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멜로디처럼 움직이지 않고 배경처럼 깔려, 불안하거나 무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데 자주 쓰인다. 교실에서 선풍기나 환풍기 소리가 계속 웅웅거릴 때, 그 소리에 점점 신경이 쓰이는 느낌과 비슷하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낮은 소리가 인물의 불안을 대신 말해 준다.
아다지에토
(말뜻) 이탈리아어 아다지오(느리게)에 조금이라는 뜻의 어미가 붙어, 완전히 느린 것이 아니라 조금 느리다는 뜻을 갖는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교향곡이나 협주곡의 한 악장에 붙는 빠르기 지시어로, 아다지오보다는 살짝 빠르지만 여전히 느리고 서정적인 성격을 갖는다. 체육 시간에 전력 질주가 아니라 천천히 걷는 산책 정도의 속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협주곡(콘체르토)
(말뜻) 협주곡이라는 한자어는 함께 연주하는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식 이름 콘체르토의 어원에는 겨루다라는 뜻도 있어서,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주고받으며 겨루는 이 음악의 성격이 이름에 이미 담겨 있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한 명의 독주자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되, 독주자가 두드러지게 앞에 나서는 곡 형식을 말한다. 반 대항전에서 한 명의 대표 선수가 나머지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면서도 개인기를 뽐내는 장면을 떠올리면 비슷하다.
언더스코어(비디제틱 음악)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영화 속 인물은 듣지 못하고 관객만 듣는 배경 음악을 가리킨다. 반대로 인물이 실제로 듣는 음악, 이를테면 콘서트홀에서 연주되는 곡은 극 중 음악(디제틱 음악)이라고 부른다. 체육대회에서 선수들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관중석 스피커로만 흘러나오는 응원가를 떠올리면 된다. 이 영화는 두 종류의 음악을 오가며,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부터가 인물의 심리인지를 흐릿하게 만든다.
카덴차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가 잠시 멈추고 독주자 혼자 자유롭게 연주하는 대목을 가리킨다. 이 부분에서는 정해진 반주 없이 연주자의 기량과 해석이 가장 두드러진다. 합창 대회에서 반주가 잠깐 멎고 한 사람이 무반주로 소절을 뽐내는 순간과 비슷하다.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마다 이 대목을 전혀 다르게 들려준다.
트라우어마르쉬(장송행진곡)
(말뜻) 독일어로 트라우어는 애도를, 마르쉬는 행진곡을 뜻해, 두 단어를 합치면 애도를 위한 행진곡이라는 의미가 된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느리고 무거운 걸음걸이 리듬으로 죽음이나 상실을 표현하는 곡을 가리킨다. 장례식에서 관을 옮길 때 나오는 느린 북소리 리듬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