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
노래가 이야기를 멈춰 세우지 않고 이야기를 앞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월트 디즈니의 주문 아래, 프랭크 처칠은 동화 한 편을 노래 여덟 곡으로 엮어 냈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만든 사람들 ⏳🌊
- 작곡가프랭크 처칠
「아기 돼지 삼형제」의 늑대 노래로 이름을 얻은 디즈니의 작곡가로, 이 작품의 노래 여덟 곡을 썼다.
- 작사래리 모리
처칠의 곡에 노랫말을 붙였고, 시퀀스 감독으로 장면 연출에도 참여했다.
- 작곡가리 할린
폴 J. 스미스와 함께 노래 사이를 잇는 배경음악을 맡았고, 훗날 「피노키오」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 감독데이비드 핸드
다섯 명의 시퀀스 감독을 이끈 총괄 감독이었다.
- 제작월트 디즈니
노래가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이끌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모험을 밀어붙였다.
- 주연아드리아나 카셀로티
새소리처럼 가볍고 높은 소프라노로 백설공주의 노래와 대사를 맡았다.
I. 디즈니의 무모한 도전
(모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미국 최초의 장편 셀 애니메이션이었다. 1937년 12월 21일 로스앤젤레스 카세이 서클 극장에서 처음 상영되기 전까지 업계는 이 작품을 디즈니의 바보짓이라 불렀다. 예산은 150만 달러 안팎으로 불어났고, 마무리에는 은행 대출까지 필요했다. 단편 만화로 이름을 얻은 스튜디오가 관객을 한 시간 넘게 붙잡아 둘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고, 그 무게의 상당 부분을 음악이 나눠 졌다. (작곡가) 노래를 맡은 프랭크 처칠은 메인주 럼퍼드 출신으로, 열다섯 살부터 무성영화관에서 피아노를 치고 라디오 반주자로 일하다 1930년 디즈니에 들어왔다. 1933년 단편 「아기 돼지 삼형제」에 붙인 늑대 노래가 대공황기 미국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짧고 입에 붙는 선율을 쓰는 사람으로 스튜디오 안에서 신뢰를 얻었다. 장편을 맡게 된 것도 그 덕분이었다. (분업) 작업은 나뉘어 있었다. 처칠이 곡을 쓰고 래리 모리가 노랫말을 붙였으며, 장면 사이를 잇는 배경음악은 리 할린과 폴 J. 스미스가 맡았다. 감독 데이비드 핸드 아래 다섯 명의 시퀀스 감독이 장면을 나눠 연출했다. (원칙) 월트 디즈니는 스토리 회의에서 인물이 갑자기 노래를 터뜨리는 무대식 관습을 피하고, 노래를 이야기의 흐름 속에 짜 넣으라고 거듭 요구했다. 노래가 끝나면 장면도 한 걸음 나아가 있어야 했다. 훗날 이 시리즈에서 다룬 「메리 포핀스」의 노래들도 같은 스튜디오에서 이 원칙을 물려받았다.
II. 우물가의 소원
(거울) 이야기는 왕비의 방에서 시작한다. 왕비는 마법 거울에게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 묻고, 거울은 아직은 왕비라고 답한다. 이 대목의 음악은 노래가 아니라 관현악이다. 낮고 서늘한 배경음악이 왕비의 허영과 불안을 깔아 두고, 거울의 목소리 뒤에서 무언가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게 한다. (소원) 장면이 바뀌면 누더기 차림의 백설공주가 성 마당에서 계단을 닦다가 우물을 들여다보며 노래한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싶다는 소원을 우물에 털어놓는 노래인데, 우물이 그녀의 노랫말 끝을 메아리로 되돌려 준다. 혼자 부르는 노래가 대화처럼 들리는 이 장치 덕분에, 외로운 소녀가 세상에 말을 거는 장면이 된다. (목소리) 백설공주의 목소리는 열여덟 살 무렵의 아드리아나 카셀로티가 맡았다. 높고 가벼우며 새소리처럼 떨리는 소프라노는 당시 성인 가수의 무거운 발성과 달랐고, 그것이 열네 살 공주라는 설정에 맞았다. (왕자) 그때 담 너머에서 왕자가 나타나 노래를 이어받는다. 해리 스톡웰이 부른 왕자의 노래는 단 하나의 노래, 단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을 정중하게 고백하는 세레나데다. 백설공주는 수줍어 성 안으로 숨고, 발코니에서 그를 내려다본다. 소원의 노래와 응답의 노래가 짝을 이루며 두 사람의 이야기가 문을 연다. (도망) 그러나 거울은 이제 백설공주가 더 아름답다고 말하고, 왕비는 사냥꾼에게 그녀를 숲으로 데려가라 명한다. 사냥꾼이 차마 해치지 못하고 달아나라고 외친 뒤, 공주가 어두운 숲을 헤매는 장면에서 음악은 나뭇가지가 손톱이 되고 통나무가 악어가 되는 공포를 날카로운 관현악으로 몰아친다.
성 마당 우물가에서 공주가 부르는 소원의 노래와, 담 너머 왕자가 답하는 세레나데가 한 트랙으로 이어진다. 두 주인공의 첫 만남이 곧 노래의 주고받음이다.
- 우물이 공주의 노랫말 끝을 되받아 부르는 메아리 대목에 귀 기울여 보자. 혼자 부르는 노래가 부르고 답하는 형식(콜 앤 리스폰스)이 되어, 외로운 소녀가 세상에 말을 거는 장면으로 바뀐다.
- 아드리아나 카셀로티의 목소리는 높고 가늘며 끝을 가볍게 떠는 소리(비브라토)가 새소리처럼 들린다. 당시 성인 가수의 무게 있는 발성과 일부러 다르게 고른 목소리다.
- 왕자의 노래로 넘어가면 음역이 낮아지고 선율이 길고 반듯해진다. 해리 스톡웰의 정중한 바리톤 계열 음색이 소녀의 노래와 짝을 이루며 두 세계가 만나는 순간을 만든다.
- 왕자가 노래하는 동안 공주는 발코니 뒤로 숨는다. 노래는 이어지지만 둘은 함께 부르지 않는다는 점이 이 만남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III. 숲속의 작은 집
(위로) 공포가 지나간 아침, 숲의 동물들이 울고 있는 공주 주위로 모여든다. 그녀는 동물들에게 웃으며 노래하면 근심이 사라진다고 노래하고, 새들이 그 가락을 따라 지저귄다. 앞 장면의 폭풍 같은 관현악과 맞붙여 놓아, 음악만으로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감정의 변화가 또렷해진다. (오두막) 동물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니 작은 오두막이 나온다. 의자도 그릇도 일곱 개씩이고 집 안은 먼지투성이다. 공주는 이 집 아이들이 엄마가 없나 보다고 짐작하고 청소를 시작한다. (휘파람) 여기서 나오는 노래가 일하면서 휘파람을 불자는 노래다. 다람쥐는 꼬리로 먼지를 털고, 사슴은 혀로 접시를 핥고, 새들은 빨래를 나른다. 동물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박자에 맞춰 움직이는데, 디즈니 단편에서 다듬어진 이 정밀한 동기화가 장편에서도 웃음을 만들어 낸다. 노래 가운데 공주가 직접 휘파람을 불지 못해 새가 대신 부는 대목도 있다. (광산) 같은 시각, 산속 광산에서는 일곱 난쟁이가 보석을 캐고 있다. 하루 일이 끝나자 그들은 곡괭이를 메고 줄지어 집으로 향하며 행진곡을 부른다. 짧은 구호 같은 후렴과 휘파람이 걸음과 함께 반복되고, 노래 자체가 걷는 리듬이 된다. (교차) 청소하는 공주와 퇴근하는 난쟁이들, 두 장면의 노래가 나란히 이어지면서 관객은 이들이 곧 만나리라는 것을 안다. 일하는 노래 두 곡이 각자의 성격을 소개하는 동시에 이야기를 한곳으로 모으는 셈이다.
공주와 숲의 동물들이 난쟁이의 오두막을 청소하는 장면. 집안일이 놀이가 되고, 동물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박자가 된다.
- 다람쥐의 꼬리질, 사슴의 접시 핥기 같은 동작이 박자에 딱 맞춰 떨어진다. 화면의 움직임과 음악을 한 박자씩 맞추는 기법(미키 마우싱)이 장편에서도 웃음을 만들어 내는 대목이다.
- 공주가 직접 휘파람을 불지 못하고 새가 대신 휘파람을 부는 대목이 있다. 사람 목소리와 새소리가 번갈아 나오는 이 작은 장치가 노래에 장난기를 더한다.
- 선율이 짧은 구절의 반복으로 되어 있어 한 번 들으면 따라 부를 수 있다. 처칠이 단편 시절부터 갈고닦은, 입에 붙는 짧은 선율 쓰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 1938년 빅터에서 나온 첫 사운드트랙 음반에도 실린 곡으로, 영화 밖에서 먼저 대중에게 퍼진 노래 가운데 하나다.
광산에서 하루 일을 마친 일곱 난쟁이가 줄지어 집으로 돌아가는 행진곡. 관객은 공주보다 먼저 난쟁이들을 노래로 만난다.
- 곡괭이를 메고 걷는 발걸음이 곧 박자다. 일정하게 둘씩 끊어지는 행진의 리듬이 노래 전체를 끌고 가, 노래가 걷기 그 자체처럼 들린다.
- 짧은 구호 같은 후렴과 휘파람이 몇 번이고 되풀이된다. 노동요처럼 단순한 반복이 일곱 명을 한 무리로 묶어 준다.
- 여러 목소리가 겹치지만 저마다 음색이 달라 누가 누구인지 들린다. 목소리 연기자들의 개성이 합창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도록 짠 것이다.
- 앞의 청소 노래와 이어서 들으면 일하는 노래 두 곡이 두 무리를 각각 소개하고 같은 오두막으로 모으는 짜임이 보인다.
IV. 난쟁이들의 밤
(침입) 집에 불이 켜져 있고 집 안이 깨끗하다는 것을 알아챈 난쟁이들은 괴물이 들어왔다고 여기며 살금살금 계단을 오른다. 이 대목의 배경음악은 발끝으로 걷는 듯한 조심스러운 리듬과 갑작스러운 강세로 겁먹은 난쟁이들의 소동을 그린다. 침대에서 깨어난 것이 소녀라는 것이 드러나자 음악도 긴장을 풀어 버린다. (성격) 일곱 난쟁이는 이름이 곧 성격이다. 대장 노릇을 하지만 말이 꼬이는 박사, 늘 투덜대는 심술이, 졸림이, 수줍음이, 재채기, 행복이, 그리고 한마디도 하지 않는 막내 멍청이. 목소리 연기자들은 각자 다른 음색과 말버릇을 맡았고, 노래 장면에서도 그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세수) 공주가 저녁 전에 손을 씻으라고 하자 난쟁이들은 투덜대며 우물가로 간다. 심술이만 버티다 결국 끌려가 씻겨지는데, 이 장면의 세수 노래는 의미 없는 소리를 늘어놓은 박자 노래로, 장난과 체념이 섞인 소동을 그대로 소리로 옮긴다. (잔치) 저녁을 먹은 뒤 난쟁이들은 공주를 위해 작은 연주회를 연다. 요들을 섞어 부르는 엉터리 노래인데, 손수 만든 악기들이 등장하고 멍청이는 다른 난쟁이의 어깨 위에 올라 긴 외투를 걸치고 공주와 춤을 춘다. 우스꽝스럽지만 공주를 식구로 맞아들이는 환영 의식이기도 하다. (꿈) 잔치 끝에 난쟁이들이 이야기를 청하자, 공주는 언젠가 찾아올 왕자를 꿈꾸는 노래를 부른다. 앞선 소동들과 달리 이 노래는 조용하고 느리며, 난쟁이들은 숨을 죽이고 듣는다. 이 장면이 이야기의 고요한 중심이자, 결말을 미리 내다보는 약속이 된다.
공주를 맞은 첫날 밤, 난쟁이들이 손수 만든 악기로 여는 작은 잔치. 우스꽝스러운 요들이 낯선 손님을 식구로 맞는 환영식이 된다.
- 목을 뒤집어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를 빠르게 오가는 알프스 지방의 창법(요들)이 노래 사이사이에 끼어든다. 숲속 오두막이라는 무대에 산골 민요의 색을 입히는 선택이다.
- 난쟁이마다 다른 악기와 다른 소리를 맡아, 소리가 바뀔 때마다 화면 속 인물이 바뀐다. 음악이 일곱 인물의 소개 카드처럼 쓰인다.
- 가사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놀이로 이어지는데, 그 엉뚱함 덕분에 노래는 이야기를 진행시키기보다 분위기를 데우는 역할을 한다.
- 곡이 끝나면 곧바로 조용한 꿈의 노래로 넘어간다. 소동과 고요를 바로 붙여 놓은 배치가 다음 곡을 더 깊게 들리게 한다.
잔치 끝에 난쟁이들이 이야기를 청하자 공주가 꿈꾸듯 부르는 노래. 영화의 고요한 중심이자 결말을 향한 약속이다.
- 하나-둘-셋으로 도는 세 박자의 춤곡(왈츠) 리듬이 흔들리는 요람처럼 노래를 받쳐 준다. 춤을 추는 노래가 아니라 꿈을 꾸는 노래로 들리는 이유다.
- 앞 곡들의 짧은 반복 선율과 달리, 이 노래는 길게 숨을 이어 가는 선율로 되어 있다. 처칠이 이 곡에서만큼은 가곡에 가까운 호흡을 썼다.
- 1961년 마일스 데이비스가 같은 제목의 음반에서 이 곡을 연주한 뒤 재즈 연주자들이 즐겨 다루는 곡(재즈 스탠더드)이 되었다. 오스카 피터슨, 빌 에번스 등 많은 연주가 남아 있다.
- 미국영화연구소(AFI)가 꼽은 미국 영화 노래 100곡에서 19위에 올랐다.
- 이 선율은 마지막 장면에서 합창과 관현악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 자리에서 선율을 잘 기억해 두면 결말에서 그 무게가 달리 들린다.
V. 마녀의 사과
(변신) 거울을 통해 공주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비는 성의 지하실로 내려가 마법의 약을 마시고 늙은 마녀로 변한다. 이 장면에는 노래가 없다. 대신 관현악이 소용돌이치며 몸이 바뀌는 과정을 따라가고, 루실 라 번이 연기한 왕비의 차가운 목소리는 쉰 듯 갈라진 노파의 목소리로 바뀐다. (사과) 마녀는 한 입 베어 물면 영원한 잠에 빠지는 사과를 만든다. 사과를 담그는 장면의 음악은 낮은 음역의 악기와 불안하게 엇갈리는 화음으로 채워져, 앞서 들은 맑은 노래들과 정반대의 세계를 만든다. (작별) 아침이 되자 난쟁이들은 광산으로 떠나며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공주와 툴툴대던 심술이 사이에 작은 화해가 오가는 장면에는 따뜻한 배경음악이 흐르는데, 사운드트랙에서는 이 대목이 심술이도 실은 그녀를 아낀다는 뜻의 제목을 달고 있다. (유혹) 공주가 난쟁이들을 위해 파이를 굽는 동안 마녀가 창가에 나타난다. 파이를 굽는 장면의 다정한 음악과, 마녀가 사과를 건네는 장면의 음산한 음악이 바로 맞붙는다. 새들은 마녀를 쪼아 대며 막으려 하고, 숲의 동물들은 광산으로 달려가 난쟁이들을 부른다. (추격) 난쟁이들이 말을 달려 돌아오는 장면부터 음악은 질주한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번개가 치는 산길에서 관현악은 쉬지 않고 긴장을 끌어올리며, 노래로 채워진 영화가 이 대목만큼은 순수한 관현악의 힘으로 절정을 넘긴다.
마녀가 오두막 창가에서 공주에게 사과를 건네는 장면의 배경음악. 앞서 흐른 파이 굽는 장면의 다정한 음악이 이 곡에 와서 서서히 뒤집힌다.
- 노래가 없는 배경음악(언더스코어)이다. 마녀의 쉰 목소리와 공주의 맑은 목소리가 오가는 사이, 관현악이 그 아래에서 불안을 쌓아 올린다.
- 새들이 마녀를 쪼고 동물들이 달려가는 대목에서 음악이 다급해진다. 화면 밖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음악이 미리 알려 주는 셈이다.
- 앞 트랙 「파이 굽기(Makin' Pies)」와 이어서 들으면, 같은 부엌 장면 안에서 음악의 온도가 따뜻함에서 서늘함으로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낮은 음역의 악기와 서로 부딪치는 화음(불협화음)이 사과를 건네는 순간을 감싸, 아름다운 붉은 사과가 위험하게 들리게 만든다.
VI. 유리관 앞의 합창
(침묵) 폭풍이 지나간 뒤 이야기는 갑자기 조용해진다. 난쟁이들은 숲속에 공주를 눕힌 채 촛불을 켜고 고개를 숙인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대사를 거의 덜어 내고, 우는 소리와 빗소리, 촛불의 고요 같은 소리의 결만으로 슬픔을 전한다. 그동안 그토록 시끄럽던 난쟁이들이 말이 없다는 사실이 그 어떤 음악보다 크게 들린다. (합창) 그 침묵 위로 사운드트랙에서 백설공주를 위한 성가로 불리는 합창이 얹힌다. 노랫말보다 목소리의 울림이 앞서는 이 합창은 교회음악처럼 느리고 엄숙하며, 동화의 숲을 잠시 예배당으로 바꾸어 놓는다. (계절) 공주는 유리와 금으로 만든 관에 눕혀지고, 난쟁이들은 계절이 바뀌도록 그 곁을 지킨다. 음악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서두르지 않고 보여 주며, 왕자가 그녀를 찾아 헤맨다는 소식이 이 고요 속에 실려 온다. (약속) 마지막 장면에서 음악은 4장에서 공주가 부른 꿈의 노래를 다시 꺼내 든다. 혼자 부르던 노래가 이번에는 합창과 관현악으로 크게 펼쳐지고, 처음 들을 때는 소망이었던 선율이 이제 다른 무게로 울린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직접 보는 편이 좋다. 다만 영화 전체에 걸쳐 노래가 쌓아 온 약속이 이 자리에서 거두어진다는 것만은 말해 둘 수 있다. (여운) 영화는 1938년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올랐고, 처칠의 노래들은 극장 밖에서 더 오래 살아남았다. 공주의 꿈의 노래는 훗날 재즈 연주자들의 손에서 새 생명을 얻었고, 난쟁이들의 행진곡은 오늘날까지 일터의 노래처럼 불린다.
슬픔에 잠긴 난쟁이들 위로 흐르는 합창과 영화의 마지막 음악. 침묵 뒤에 오는 목소리들이 영화가 쌓아 온 약속을 거둔다.
- 성가는 교회의 찬송처럼 여러 목소리가 같은 박자로 천천히 움직이는 합창(코랄)이다. 동화의 숲이 잠시 예배당처럼 느껴진다.
- 합창 직전 장면은 대사도 음악도 거의 없다. 그 정적 다음에 목소리가 들어오기 때문에 합창의 첫 소리가 유난히 크고 깊게 들린다.
- 마지막 음악에서 4장의 꿈의 노래 선율이 다시 등장한다. 앞서 나온 노래를 다시 불러 의미를 되새기는 기법(리프라이즈)으로, 처음엔 소망이던 선율이 이제는 다른 무게를 지닌다.
- 혼자 부르던 선율이 합창과 관현악으로 크게 펼쳐지며 영화가 닫힌다. 한 사람의 꿈이 모두의 노래가 되는 셈이다.
덜 알려진 이야기
백설공주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은 길었다. 카셀로티는 1934년 9월에 처음 오디션을 봤고, 1935년 9월에야 배역이 정해졌으며, 첫 녹음은 1936년 1월에 했다. 오디션을 본 사람 가운데에는 훗날 스타가 된 디애나 더빈도 있었는데, 월트 디즈니가 그녀의 목소리를 열네 살 공주에게는 너무 성숙하게 들린다고 여겼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당연하게 느껴지는 그 가볍고 높은 목소리는 오랜 고민 끝에 고른 결과였다. 그 목소리는 영화 밖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었다. 디즈니는 백설공주의 목소리가 다른 데 쓰여 이미지가 흐려지는 것을 꺼렸고, 카셀로티가 라디오 출연을 제안받았을 때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카셀로티 본인이 훗날 회고했다. 그래서 그녀가 다른 영화에 남긴 소리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양철 나무꾼의 노래 중간에 끼어드는 줄리엣의 대사 한 줄 정도가 전부다. 이름 없이 지나가는 짧은 대목이라 알아채는 관객이 드물다. 처칠은 영화에 실리지 못한 노래도 썼다. 난쟁이들이 수프를 먹으며 부르는 노래와, 공주에게 줄 침대를 만들며 부르는 노래였다. 수프 장면은 워드 킴볼이 애니메이션 작업을 거의 끝냈지만 이야기의 속도를 늦춘다는 이유로 잘렸다. 이 두 곡은 오랫동안 스튜디오 기록 속에만 남아 있다가 1993년 사운드트랙 재발매에서 처음 복원되었고, 지금 나오는 음반 끝에 두 곡이 붙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38년 1월 빅터가 낸 음반은 영화 노래를 상업 음반으로 낸 첫 사례로 꼽힌다. 다만 지금의 사운드트랙 앨범과 달리 78회전 음반 세 장에 나뉘어 실렸고, 오늘날처럼 영화 음악을 따로 모아 듣는다는 생각 자체가 아직 낯설던 때였다. 그래서 이 음반은 첫 사운드트랙이라는 상징성에 비해 정작 그 모습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용어 노트 📚🔎
배경음악(언더스코어)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인물이 직접 노래하지 않을 때 장면 아래에 깔리는 관현악을 말한다. 인물은 듣지 못하지만 관객은 들으며, 장면이 무섭게 느껴질지 따뜻하게 느껴질지를 정한다. 「백설공주」에서는 처칠이 노래를 쓰고 리 할린과 폴 J. 스미스가 이 배경음악을 맡았다. 게임을 할 때 보스가 나타나면 음악이 갑자기 빨라지고 무거워지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 화면 속 캐릭터는 그 음악을 모르지만 플레이어는 긴장하게 된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배경음악은 카페나 가게에서 틀어 놓는 음악처럼, 따로 귀 기울이지 않아도 흐르는 음악을 두루 가리킨다.
미키 마우싱
(말뜻)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 단편 만화에서 자주 쓰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화면 속 움직임과 음악을 한 박자 한 박자 딱 맞추는 기법이다. 인물이 계단을 내려가면 음도 한 칸씩 내려가고, 누군가 넘어지면 바로 그 순간 큰 소리가 난다. 「휘파람 불며 일해요」에서 동물들이 청소하는 몸짓이 박자에 맞아떨어지는 것이 좋은 예다. 체육 시간에 음악에 맞춰 줄넘기를 할 때 한 박자에 한 번씩 줄이 땅에 닿는 것처럼, 동작과 소리가 정확히 겹치는 것이다.
사운드트랙 앨범
(말뜻) 사운드트랙(soundtrack)은 원래 필름 가장자리에 소리를 기록해 둔 띠(track)를 뜻했다. 영화의 소리가 그 띠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영화에 쓰인 노래와 음악을 따로 모아 낸 음반이다. 1938년 빅터가 「백설공주」의 노래를 78회전 음반 세 장으로 낸 것이 상업 음반의 첫 사례로 꼽힌다. 좋아하는 게임의 배경음악을 따로 모아 들을 수 있게 만든 OST 재생목록을 떠올리면 된다. (다른 데서는) 사운드트랙은 비유적으로 어떤 시절이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 예컨대 내 학창 시절의 사운드트랙처럼 쓰이기도 한다.
리프라이즈
(말뜻) 프랑스어 reprise 는 다시 잡다, 다시 시작하다라는 뜻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앞에서 나온 노래나 선율을 뒤에서 다시 들려주는 것을 말한다. 같은 선율이라도 상황이 바뀐 뒤에 다시 들으면 뜻이 달라진다. 「백설공주」에서는 공주가 꿈꾸며 부른 노래가 마지막 장면에서 합창과 관현악으로 돌아온다. 운동회 개막식에서 부른 응원가를 마지막 날 이긴 뒤에 다시 부르면, 같은 노래인데도 전혀 다른 기분이 드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펜싱에서는 첫 공격이 막힌 뒤 곧바로 다시 찌르는 동작을 리프라이즈라고 부른다.
왈츠
(말뜻) 독일어 walzen 은 빙빙 돌다, 굴리다라는 뜻이다. 짝을 지어 빙글빙글 도는 춤에서 이름이 나왔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하나-둘-셋, 하나-둘-셋으로 세 박자씩 도는 춤곡이다. 첫 박에 힘이 실리고 나머지 두 박은 가볍게 따라온다. 「언젠가 왕자님이 오실 거예요」가 이 세 박자 위에 놓여 있어서 흔들리는 요람이나 꿈속처럼 들린다. 그네를 탈 때 앞으로 크게 밀고 나서 두 번 가볍게 흔들리는 느낌을 떠올려 보면 된다.
재즈 스탠더드
(말뜻) 스탠더드(standard)는 표준, 기본이라는 뜻이다. 많은 연주자가 기본으로 알고 있는 곡이라는 의미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재즈 연주자들이 너도나도 즐겨 연주해서 공통 레퍼토리가 된 곡을 말한다. 원래는 영화나 뮤지컬의 노래였던 곡이 많은데, 연주자들은 선율과 화음만 가져와 저마다 다르게 바꾸어 연주한다. 「언젠가 왕자님이 오실 거예요」는 1961년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 이후 대표적인 재즈 스탠더드가 되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누구나 알지만 친구마다 다른 박자와 장난을 섞어 부르는 것처럼, 같은 곡이 연주자마다 다른 모습이 된다.
요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목소리를 일부러 뒤집어 낮은 가슴소리와 높은 머리소리를 빠르게 오가며 부르는 창법이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산골에서 멀리 있는 사람을 부르던 소리에서 생겨났다고 알려져 있다. 「엉터리 노래」에서 난쟁이들이 이 창법을 섞어 부르면서 숲속 오두막에 산골 민요의 색이 입혀진다. 친구를 멀리서 부를 때 목소리가 저절로 꺾이며 높아지는 순간을 일부러 박자에 맞춰 반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