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t
푸치니의 파리 다락방을 이스트빌리지로 옮겨 와, 록 기타와 가스펠 합창으로 상실과 사랑의 한 해를 헤아리는 음악.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만든 사람들 ⏳🌊
- 작곡가조너선 라슨
음악과 가사, 대본을 모두 썼고 첫 프리뷰를 앞두고 세상을 떠나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사후에 받았다.
- 감독마이클 그라이프
뉴욕 시어터 워크숍 초연과 브로드웨이 공연을 연출했다.
- 주연앤서니 랩
해설자이자 영화감독 지망생 마크를 워크숍 시절부터 무대와 영화에서 연기했다.
- 주연애덤 파스칼
기타리스트 로저를 무대 초연과 2005년 영화에서 연기했다.
- 주연이디나 멘젤
퍼포먼스 아티스트 모린 역으로 토니상 후보에 올랐고 영화판에서도 같은 역을 맡았다.
- 주연윌슨 저메인 헤레디아
엔젤 역으로 1996년 토니상 뮤지컬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I. 집세와 라 보엠
(발단) 1988년 극작가 빌리 애런슨은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현대 뉴욕으로 옮긴 뮤지컬을 구상했다. 이듬해 작곡가 조너선 라슨이 합류했고, 얼마 뒤 라슨이 작품을 넘겨받았다. 애런슨에게는 원안과 추가 가사 크레디트, 그리고 수익의 일부가 약속됐다. 19세기 파리 다락방의 결핵은 1980년대 말 이스트빌리지의 에이즈로 바뀌었고, 가난한 시인과 화가는 영화감독 지망생과 록 기타리스트가 됐다. (작곡가) 라슨은 1960년 뉴욕 근교 화이트플레인스에서 태어났다. 맨해튼의 식당에서 오래 서빙을 하며 곡을 썼고, 브로드웨이 음악에 록의 박동을 들이고 싶어 했다. 미래 사회를 그린 「슈퍼비아」가 끝내 정식 무대에 오르지 못하자, 서른을 앞둔 작곡가의 불안을 담은 독백극 「틱, 틱… 붐!」을 만들었다. 「렌트」는 그가 7년 가까이 붙들고 고쳐 쓴 작품이다. (제목) 영어 rent는 집세라는 뜻이면서 찢겼다는 뜻의 과거분사이기도 하다. 밀린 집세와 찢긴 공동체가 이 한 단어에 함께 들어 있다. (초연) 뉴욕 시어터 워크숍에서 1993년 낭독 공연과 1994년 워크숍 공연을 거쳐 1996년 1월 정식 공연을 준비했다. 첫 프리뷰를 앞둔 1월 25일, 라슨은 대동맥 박리로 서른다섯에 세상을 떠났다. 공연은 예정대로 막을 올렸고, 4월에 브로드웨이 네덜란더 극장으로 옮겨 퓰리처상 희곡 부문과 토니상 4개 부문을 받았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2008년까지 5,123회 이어졌다. (계보) 이 시리즈에서 다룬 「물랑루즈」에도 「라 보엠」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그리고 2년 뒤 오프브로드웨이에 오른 「헤드윅」과 함께, 이 작품은 록이 뮤지컬 무대의 언어로 자리 잡는 흐름 한가운데에 서 있다.
II. 불 꺼진 로프트의 크리스마스이브
(정전) 이야기는 1989년 크리스마스이브, 이스트빌리지의 낡은 로프트에서 시작된다. 영화를 만드는 마크는 카메라로 모든 것을 기록하려 하고, 룸메이트 로저는 기타만 붙잡고 있다. 연인을 잃은 뒤 바깥출입을 끊은 로저는 HIV 양성이다. 전기가 끊긴 이 집에, 옛 친구였다가 지금은 건물주 집안의 사위가 된 베니가 밀린 집세를 내라는 통보를 보낸다. (조율) 공연은 기타를 조율하는 소리로 열린다. 마크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해설자를 맡고, 로저는 같은 짧은 가락을 몇 번 쳐 보다가 멈춘다. 마크는 그 가락이 「라 보엠」의 무제타 왈츠 같다고 놀린다. 오페라 선율을 이렇게 빌려 오는 인용은 작품 전체를 꿰는 실마리가 된다. (분노) 이어지는 타이틀곡에서 로프트의 추위와 거리의 가난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세입자들과 거리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포개고, 대사로 넘길 법한 상황 설명까지 모두 노래가 맡는다. 이야기 거의 전부를 노래로 끌고 가는 성스루 형식이 첫 곡에서 바로 드러난다. (소원) 혼자 남은 로저는 죽기 전에 오래 남을 노래를 단 한 곡이라도 쓰고 싶다고 노래한다. 그때 아래층에 사는 클럽 댄서 미미가 촛불을 붙여 달라며 문을 두드린다. 푸치니의 미미와 로돌포는 꺼진 촛불과 떨어뜨린 열쇠로 만난다. 이곳의 미미가 떨어뜨리는 것은 마약 봉지다. 라슨은 오페라의 장면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면서 소품 하나만 바꿔, 백 년의 거리와 이 시대의 그늘을 한꺼번에 보여 준다.
전기가 끊긴 로프트에서 세입자와 거리의 사람들이 함께 터뜨리는 분노의 타이틀곡이다. 작품 전체의 소리를 정하는 첫 합창이다.
- 무대판은 마크와 로저가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에서 끊김 없이 이 곡으로 넘어간다. 장면을 설명하는 대사까지 노래가 맡는다는 것을 처음부터 보여 준다.
- 일렉트릭 기타가 짧은 구절을 끈질기게 되풀이하는 리프(짧게 반복되는 기타 악구)가 곡을 끌고 간다. 현악기가 가득한 브로드웨이 오케스트라 대신 소규모 록 밴드를 쓴 것 자체가 이 작품의 선언이다.
- 여러 인물이 서로 다른 가사를 동시에 부르는 대목이 있다. 독립된 선율을 겹쳐 쌓는 대위법이 도시의 소음처럼 들린다.
- 2005년 영화판에서는 「시즌스 오브 러브」 다음에 두 번째 곡으로 나오고, 로프트와 거리를 오가는 장면으로 펼쳐진다.
바깥출입을 끊은 로저가 죽기 전에 오래 남을 노래 한 곡을 쓰고 싶다고 털어놓는 독백이다. 마지막 장면을 향한 가장 큰 복선이다.
- 낮고 억눌린 음역에서 시작해 후렴에서 높은 음으로 치솟는 록 발라드다. 갇혀 있던 마음이 터져 나오는 순서를 선율의 높낮이가 그대로 따라간다.
- 이 곡은 로저 역을 처음 맡은 애덤 파스칼의 목소리로 원캐스트 앨범에 녹음됐다. 그는 무대와 2005년 영화에서 모두 이 역을 맡았다.
- 곡에 담긴 소원은 마지막 장면의 「유어 아이즈」에서 응답된다. 두 곡을 이어 들으면 작품 전체가 한 노래를 완성해 가는 이야기로 들린다.
촛불을 빌리러 온 미미와 로저의 첫 만남이다. 푸치니 1막의 만남 장면을 현대 뉴욕으로 옮겨 놓았다.
- 노래 반, 말 반으로 빠르게 주고받는 대화체다. 오페라에서 말하듯 노래하는 부분인 레치타티보를 록 이중창으로 바꾼 것처럼 들린다.
- 꺼진 촛불, 떨어뜨린 물건, 어둠 속에서 더듬어 찾는 손까지 「라 보엠」 1막의 장치를 그대로 따른다. 다만 떨어진 것이 열쇠가 아니라 마약 봉지라는 데서 시대의 그늘이 드러난다.
- 무대 초연에서는 대프니 루빈베가가, 영화판에서는 로사리오 도슨이 미미를 맡아 같은 장면을 서로 다른 온도로 연기했다.
III.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만남) 같은 밤, 떠돌이 철학 교수 톰 콜린스가 거리에서 강도를 당한다. 그를 돌봐 주는 사람은 드래그 퍼포머이자 플라스틱 양동이를 두드리는 거리의 타악기 연주자 엔젤이다. 두 사람 모두 HIV 양성이다. 엔젤은 그날 번 돈 이야기를 경쾌한 댄스 리듬에 실어 털어놓고, 그 쾌활함이 무리 전체의 온도를 바꿔 놓는다. (모임) 엔젤과 콜린스는 에이즈 환자들의 서포트 모임에 나간다. 라슨이 HIV 양성인 친구를 따라 실제로 다니던 모임 프렌즈 인 디드가 바탕이다. 참석자들이 같은 물음을 차례로 겹쳐 부르는 「윌 아이?」는 돌림노래처럼 쌓여 간다. 존엄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한 사람의 독백에 그치지 않고, 그 방에 앉은 모두의 물음이 된다. (꿈) 콜린스는 지하철 안에서 뉴멕시코의 산타페에 식당을 차리자고 노래한다. 가벼운 쇼 튠의 몸짓을 한 이 곡은 뉴욕의 추위와 가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그린다. 이어 엔젤과 콜린스는 서로를 덮어 주고 지켜 주겠다는 사랑의 이중창을 부른다. 작품에서 가장 다정한 순간이다. (엇갈림) 로저와 미미는 엇갈린다. 미미는 오늘 밤 함께 나가 놀자며 거친 록으로 유혹하고, 로저는 그녀를 밀어내는 노래로 답한다. 장르가 다른 두 노래가 맞부딪치면서, 서로에게 끌리면서도 뒤로 물러서는 두 사람의 마음이 드러난다. (탱고) 마크의 옛 연인 모린은 퍼포먼스 아티스트이고, 지금은 변호사 조앤과 사귄다. 모린에게 휘둘리는 처지인 마크와 조앤이 처음 마주친 자리에서 부르는 「탱고: 모린」은 탱고 리듬을 빌려, 두 사람이 서로 리드를 빼앗듯 주고받게 만든다.
엔젤과 콜린스가 서로의 외투이자 지붕이 되어 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랑의 이중창이다. 2막에서 전혀 다른 뜻으로 돌아온다.
- 1960년대 디트로이트 소울 음반사 모타운의 노래들처럼 통통 튀는 리듬과 주고받는 화법을 쓴다. 가진 것 없는 두 사람의 약속이 그래서 더 가볍고 다정하게 들린다.
- 2막 장례식에서는 같은 선율이 리프라이즈(앞의 노래를 다시 부르는 것)로 돌아온다. 느려진 템포와 가스펠풍 합창이 약속의 노래를 애도의 노래로 바꿔 놓는다.
- 그 리프라이즈는 무대와 영화 모두에서 콜린스 역 제시 L. 마틴이 이끌었다.
- 엔젤 역 윌슨 저메인 헤레디아는 1996년 토니상 뮤지컬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영화판에서도 같은 역을 맡았다.
IV. 보헤미안 만세
(시위) 크리스마스이브 밤, 모린은 노숙인 천막촌이 있는 공터를 밀어내려는 베니에게 항의하는 공연을 연다. 공연은 소동으로 끝나고, 무리는 라이프 카페로 몰려간다. 10번가와 애비뉴 B 모퉁이에 실제로 있던 식당으로, 2011년에 문을 닫았다. (목록) 카페에서 베니가 이들의 생활을 비웃자 마크가 맞받으면서 1막 피날레 「라 비 보엠」이 시작된다. 마크는 장례 미사라도 드리듯 엄숙하게 보헤미아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늉을 한다. 곧 일행 전체가 자기들이 아끼는 예술가와 사상가, 음식과 버릇의 이름을 쉴 새 없이 늘어놓는다. 푸치니 오페라 2막의 카페 모뮈스 장면을 옮겨 온 대목이다. 가진 것은 없어도 서로를 지켜 온 공동체의 자부심이, 숨 돌릴 틈 없이 쏟아지는 목록의 속도로 표현된다. (고백) 축제는 한가운데서 멈춘다. 로저와 미미는 서로 HIV 양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진작 말했어야 했다는 조용한 이중창 「아이 슈드 텔 유」를 부른다. 트랙 목록에서 「라 비 보엠」이 A와 B로 나뉜 까닭이 이것이다. 떠들썩한 합창 사이에 두 사람만의 고백을 끼워 넣어, 공동체의 기쁨과 한 사람의 두려움을 한 장면에 나란히 둔다. (분기) 1막은 들뜬 합창으로 끝나지만, 이 작품에서 무리가 다 함께 웃으며 노래하는 장면은 여기서부터 드물어진다. 2막의 노래들은 점점 둘씩 짝을 지어 갈라지고, 넓게 퍼지던 합창은 다른 쓰임새로 돌아온다.
라이프 카페에서 무리가 자기들의 가난하고 자유로운 삶을 큰 소리로 축하하는 1막 피날레다. 그 한가운데에 로저와 미미의 고백이 끼어든다.
- 처음에는 장례 미사 같은 엄숙한 시늉으로 시작했다가 곧 빠르고 들뜬 합창으로 뒤집힌다. 비웃음을 받은 보헤미아가 자기 장례식을 축제로 바꿔 버리는 셈이다.
- 예술가와 사상가, 음식과 버릇의 이름을 끝없이 늘어놓는 열거형 노래(리스트 송)다. 이름이 쌓이는 속도 자체가 공동체의 자부심을 표현한다.
- 트랙이 A와 B로 나뉜 것은 그 사이에 로저와 미미의 조용한 이중창 「아이 슈드 텔 유」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떠들썩함과 고요함이 번갈아 오는 구성을 귀로 따라가 볼 만하다.
- 푸치니 「라 보엠」 2막의 카페 모뮈스 장면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무대가 된 라이프 카페는 실제로 있던 식당이다.
V. 한 해를 재는 법
(헤아림) 2막은 줄거리에서 한 걸음 물러난 곡으로 시작한다. 배우들이 무대 앞에 한 줄로 서서, 한 해라는 시간을 무엇으로 재야 하느냐고 묻는 「시즌스 오브 러브」다. 숫자로 시작한 물음은 결국 사랑으로 재라는 대답에 닿는다. 2막은 새해부터 이듬해 크리스마스이브까지 한 해를 건너뛰듯 지나가고, 이 노래는 그 한 해를 미리 내다보는 서문 구실을 한다. (파열) 시간이 흐르면서 짝들이 흔들린다. 모린과 조앤은 「테이크 미 오어 리브 미」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든지 떠나든지 하라며 정면으로 맞선다. 로저와 미미도 질투와 약물 때문에 갈라선다. 「위드아웃 유」는 단순한 선율을 되풀이하면서, 서로 없이도 세상은 굴러간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시간을 노래한다. (상실) 그 사이 엔젤의 병이 깊어진다. 엔젤이 떠나는 순간은 「컨택트」라는 몽환적인 곡으로 추상화되어 그려진다. 이어지는 장례식에서 콜린스는 1막에서 엔젤과 함께 부르던 사랑의 이중창을 리프라이즈로 다시 부른다. 경쾌하던 선율이 느려지고 합창이 뒤를 받치면서, 같은 노래가 약속에서 애도로 뜻을 바꾼다. (균열) 장례식이 끝나자 남은 친구들은 서로를 탓하며 흩어진다. 로저는 기타를 팔고 산타페로 떠나기로 한다. 미미와 로저가 서로 등을 돌리는 「굿바이 러브」에서 1막의 공동체는 거의 무너진다. 2005년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영화판에서는 감정이 지나치게 몰린다는 판단으로 이 곡의 뒷부분이 잘렸다. 사운드트랙에는 이 곡이 실려 있다.
줄거리에서 잠시 물러나 한 해를 무엇으로 잴 것인지 묻는 2막의 서곡 같은 노래다. 작품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다.
- 피아노가 같은 화음 진행을 되풀이하는 반주 위로 출연자 전원이 한 줄로 서서 부른다. 줄거리에서 벗어나 관객에게 직접 묻는 듯한 화법이다.
- 곡 중간에 한 사람이 높은 음역에서 가스펠풍 장식을 즉흥처럼 덧붙인다. 무대판 원캐스트 녹음에서는 앙상블 배우 그웬 스튜어트가 이 솔로를 불렀다.
- 2005년 영화판은 이 곡을 맨 앞으로 옮겨, 빈 극장 무대에 선 여덟 주인공의 노래로 영화를 연다. 솔로는 조앤 역 트레이시 톰스와 콜린스 역 제시 L. 마틴이 맡았다.
- 1996년 캐스트 앨범 끝에는 스티비 원더가 노래와 하모니카로 참여해 새로 편곡한 버전이 실렸다. 이후 졸업식과 추모 자리에서 따로 떼어 자주 불리는 노래가 됐다.
모린과 조앤이 서로 다른 기질을 숨기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는 이중창이다. 2막에서 짝들이 흔들리기 시작했음을 알린다.
- 앞부분은 모린의 자유분방한 노래, 뒷부분은 조앤의 꼼꼼하고 단호한 반박으로 나뉜다. 그러다 마지막에 두 목소리가 같은 말을 함께 외친다. 다투면서도 닮아 있는 두 사람이 음악의 구조에서 보인다.
- 가슴에서 울리는 힘 있는 소리를 높은 음까지 끌어올리는 벨팅 창법끼리의 맞대결이다. 뮤지컬 이중창 가운데 손꼽히는 성량 대결로 자주 거론된다.
- 모린 역 이디나 멘젤은 이 작품으로 토니상 후보에 올랐고, 이 무대가 그의 출발점이었다. 조앤 역은 무대에서 프레디 워커가, 영화에서 트레이시 톰스가 맡았다.
VI. 다시 크리스마스이브
(소유) 산타페의 로저와 뉴욕의 마크는 멀리 떨어진 채 이중창 「왓 유 온」을 부른다. 마크는 영상을 팔아 주던 방송 일을 그만두고 자기 영화를 끝내기로 마음먹는다. 로저는 낯선 땅에서 마침내 써야 할 노래를 깨닫는다. 서로 다른 곳에 있던 두 목소리가 같은 결론에 닿으면서 하나로 합쳐진다. (귀환) 한 해가 지나 다시 크리스마스이브가 되고, 흩어졌던 친구들은 로프트로 돌아온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직접 보는 편이 낫다. 다만 그 자리에서 음악이 하는 일은 말해 둘 수 있다. (완성) 로저가 1막부터 몇 마디 치다 말기를 되풀이하던 가락, 마크가 무제타 왈츠 같다고 놀리던 그 선율이 마침내 한 곡으로 완성된다. 로저가 부르는 「유어 아이즈」는 한 사람만을 향한, 작품에서 가장 단순하고 조용한 노래다. 오래 남을 노래 한 곡을 쓰고 싶다던 1막의 소원과 작품 전체의 설계가 이 자리에서 만난다. (오늘) 피날레는 두 막에 흩어져 있던 선율들을 겹쳐 쌓는다. 서포트 모임에서 처음 나왔던,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살자는 짧은 다짐이 무리 전체의 합창이 되어 돌아온다. 한 사람의 두려움에서 시작된 말이 공동체의 노래로 끝나는 셈이다. (여운) 라슨은 이 공연을 끝내 보지 못했다. 그래서 오래 남을 노래 하나를 남기고 싶다는 로저의 노래가 관객에게는 작곡가 자신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가 남긴 곡들은 이후 무대와 영화, 학교 공연에서 수없이 다시 불렸다.
뉴욕의 마크와 산타페의 로저가 멀리 떨어진 채 각자의 답을 찾아가는 이중창이다. 두 목소리가 하나로 모이며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진다.
- 빠르게 몰아치는 하드 록 리듬 위에서 두 사람이 한 줄씩 번갈아 부른다. 무대 위 한 공간에 서로 다른 두 장소가 겹쳐 있는 셈이다.
- 가진 것과 팔아 버린 것, 기록하는 일과 살아가는 일 사이의 거리를 묻는 노래다. 마크가 남의 고통을 찍어 팔던 일을 그만두는 결심이 이 곡에서 이루어진다.
- 마크 역 앤서니 랩과 로저 역 애덤 파스칼은 무대 초연과 2005년 영화에서 모두 같은 역을 맡았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맞물리는 방식은 그 오랜 호흡에서 나온 것처럼 들린다.
덜 알려진 이야기
라슨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인 1996년 1월 21일과 23일, 가슴 통증과 어지럼증으로 두 차례 응급실을 찾았다. 캐브리니 메디컬 센터와 세인트빈센트 메디컬 센터는 모두 위장 질환으로 진단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그해 뉴욕주 보건국은 넉 달 동안 조사한 끝에 두 병원 모두 오진했다고 결론짓고 각각 1만 달러와 6천 달러의 벌금을 물렸다. 보건국 스스로도 드문 처분이라고 밝혔다. 작품의 성공담에 가려 이 일은 대개 각주로만 남았다. 서포트 모임 장면에 나오는 참석자 이름 가운데 몇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라슨의 실제 친구들 이름이다. 대본은 이후 공연하는 극단들이 그 이름을 자기 공동체에서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름으로 바꾸도록 권한다. 그래서 이 장면은 공연마다 조금씩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무대마다 그곳의 추모가 된다. 미 의회도서관은 라슨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의 자료를 확보하기로 했다. 유족이 고용한 아키비스트가 먼저 정리를 마친 뒤, 약 5,000점의 자료가 2004년 도서관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렌트」와 「슈퍼비아」, 「틱, 틱… 붐!」 자료가 특히 많다. 2007년 메릴랜드 대학의 한 학위논문은 이 초고와 메모를 바탕으로 작품이 7년 동안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추적했다. 완성작만 보아서는 알기 어려운 이런 과정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만 주로 읽혀 왔다. 공연 크레디트에는 지금도 빌리 애런슨의 이름이 원안과 추가 가사로 올라 있다. 작품이 한 사람의 천재가 쓴 유작으로만 기억되는 데 가려져 있지만,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다른 작가의 착상에서 출발했다.
용어 노트 📚🔎
성스루(sung-through)
(말뜻) 영어 sung-through는 처음부터 끝까지(through) 노래로 부른다(sung)는 뜻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대사로 넘기는 장면을 거의 두지 않고 이야기의 대부분을 노래로 이어 가는 뮤지컬 형식이다. 「렌트」는 짧은 대사와 음성 메시지 장면을 빼면 거의 모든 장면이 노래로 진행된다. 친구와 하루 동안 모든 대화를 노래로만 주고받는 놀이를 한다고 해 보자. 인사도 노래로, 숙제 이야기도 노래로 해야 한다. 성스루 뮤지컬은 그 놀이를 두 시간 넘게 해내는 공연이다.
리프라이즈(reprise)
(말뜻) 프랑스어 reprise는 다시(re) 잡는다,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앞에서 나온 노래를 극의 뒷부분에서 다시 부르는 것을 말한다. 대개 빠르기나 가사, 부르는 사람을 바꿔서 그사이 달라진 상황을 드러낸다. 「렌트」에서는 엔젤과 콜린스의 경쾌한 사랑 노래가 2막 장례식에서 느린 애도의 노래로 돌아온다. 운동회에서 이기고 있을 때 신나게 부르던 응원가를, 지고 난 뒤 천천히 다시 부르면 같은 노래인데도 전혀 다르게 들린다. 리프라이즈가 바로 그 효과를 노린다. (다른 데서는) 펜싱에서는 첫 공격이 막힌 뒤 곧바로 다시 찌르는 동작을 이 말로 부른다.
벨팅(belting)
(말뜻) 영어 belt out은 노래를 크고 힘차게 내지른다는 뜻의 일상 표현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말할 때처럼 가슴이 울리는 소리를 높은 음까지 그대로 끌어올려 힘 있게 부르는 창법이다. 성악의 맑고 둥근 머리 소리와 달리, 말하는 목소리가 그대로 노래가 된 듯한 힘과 직접성이 있어 뮤지컬과 록에서 널리 쓰인다. 운동장 반대편 끝에 있는 친구를 부를 때 배에 힘을 주고 내지르는 목소리를 떠올리면 된다. 그 소리를 음정에 맞춰 길게 끌고 가는 것이 벨팅이다. (다른 데서는) 벨트는 보통 허리띠를 뜻한다.
리프(riff)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록이나 재즈에서 기타나 베이스가 짧은 구절을 되풀이해 곡의 뼈대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노래 제목보다 리프를 먼저 기억하기도 한다. 「렌트」의 타이틀곡은 일렉트릭 기타 리프가 곡 전체를 밀고 간다. 게임을 켜면 같은 배경음악 구간이 계속 반복되는데, 몇 번만 들어도 그 몇 마디가 귀에 박힌다. 리프도 이렇게 반복으로 곡의 얼굴이 된다.
인용(음악적 인용)
(말뜻) 인용(引用)은 남의 것을 끌어다(引) 쓴다(用)는 뜻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다른 작곡가의 작품이나 널리 알려진 노래의 선율을 일부러 가져와 새 곡 안에 넣는 기법이다. 듣는 사람이 원곡을 알아차리면 두 작품의 의미가 겹친다. 「렌트」에서는 로저가 자꾸 치다 마는 가락이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의 무제타 왈츠를 떠올리게 하고, 이 선율이 작품 전체를 하나로 꿴다. 글짓기에서 유명한 문장을 따옴표로 가져와 내 글의 뜻을 깊게 하는 것과 같다.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영화 대사를 흉내 내면 다 같이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과도 비슷하다.
돌림노래(캐논)
(말뜻) 캐논(canon)은 그리스어 kanōn에서 왔고, 자나 규칙을 뜻한다. 앞사람의 선율을 정해진 규칙대로 뒤따라 부른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한 사람이 선율을 시작하면 다음 사람이 조금 늦게 같은 선율로 들어오고, 그렇게 목소리가 겹겹이 쌓여 가는 형식이다. 「렌트」의 「윌 아이?」에서는 서포트 모임 참석자들이 같은 물음을 차례로 이어 부르면서, 한 사람의 두려움이 여러 사람의 공통된 물음으로 커진다. 음악 시간에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를 모둠별로 한 소절씩 늦게 시작해 불러 본 적이 있다면 이미 캐논을 해 본 것이다. (다른 데서는) 캐논은 종교에서 정경, 곧 공식으로 인정된 경전을 뜻하고, 팬들 사이에서는 원작이 공식으로 정한 설정을 가리키기도 한다.
대위법
(말뜻) 대위법(對位法)은 음과 음을 마주(對) 세워 놓는(位) 방법이라는 뜻이다. 라틴어로 점 대 점, 곧 음표 대 음표를 뜻하는 punctus contra punctum을 옮긴 말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각자 독립된 선율 둘 이상을 동시에 울리면서도 서로 어울리게 짜는 작곡 기법이다. 뮤지컬에서는 여러 인물이 서로 다른 가사와 가락을 동시에 불러 생각이 엇갈리는 장면을 한꺼번에 들려줄 때 자주 쓴다. 합창대회에서 소프라노는 주선율을, 알토는 전혀 다른 가락을 부르는데 합쳐 들으면 한 곡이 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