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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 Morrison

밴 모리슨 (1945–)

벨파스트 뒷골목의 거리 이름을 신비한 땅의 이름처럼 노래한 가수.

한눈에 보기 🔭💭

1. 뿌리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생아버지의 레코드스키플과 쇼밴드2. 뎀마리타임 호텔「글로리아」도어스와 한 무대3. 뉴욕버트 번스「브라운 아이드 걸」《아스트럴 위크스》4. 전원우드스톡·더 밴드《문댄스》《튜펠로 허니》5. 구도「라스트 왈츠」셀틱 소울치프턴스와 민요6. 귀향평화의 노래기사 작위스키플로 회귀모리슨1945–블루스와 재즈, 아일랜드의 영혼을 하나로 엮은…
무대가 된 도시 🧭🗺️
N미국벨파스트1945–1966뉴욕1967–1968보스턴1968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가족조지 모리슨

    조선소 전기 기사이자 레코드 수집가였던 아버지로, 아들에게 블루스와 재즈와 컨트리를 들려준 첫 스승이었다.

  • 프로듀서버트 번스

    뎀의 히트곡을 쓰고 모리슨을 뉴욕으로 불러 「브라운 아이드 걸」을 제작했으나 1967년 세상을 떠났다.

  • 영향짐 모리슨

    1966년 휘스키 어 고고에서 같은 무대에 선 도어스의 가수로, 뎀의 무대를 지켜보며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 가족재닛 플래닛

    모리슨의 첫 아내로, 《튜펠로 허니》 표지에 함께 실리며 우드스톡과 마린 시절을 함께했다.

  • 프로듀서루이스 메렌스타인

    재즈 연주자들을 모아 《아스트럴 위크스》를 제작하고 《문댄스》에도 참여했다.

  • 우정로비 로버트슨

    우드스톡 시절부터 가까웠던 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4% 팬터마임」을 함께 쓰고 명예의 전당 헌액 때 소개를 맡았다.

YouTube에서 8곡 이어 듣기 ↗

I. 하인드퍼드 거리 · 1945–1963

(출생) 1945년 8월, 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조지 아이번 모리슨(George Ivan Morrison)이었고, 동벨파스트 노동자 주택가의 하인드퍼드 거리에서 외아들로 자랐다. 아버지 조지는 할랜드 앤드 울프 조선소의 전기 기사였고, 어머니 바이올렛은 젊어서 노래와 춤을 즐긴 사람이었다. 개신교 노동계급 동네의 좁은 벽돌집이 그의 첫 세계였다. (음반) 아버지는 벨파스트에서 손꼽히는 레코드 수집가였다고 전해진다. 집 안에는 리드 벨리의 블루스, 젤리 롤 모턴의 재즈, 행크 윌리엄스와 지미 로저스의 컨트리가 흘렀다. 모리슨은 훗날 여러 인터뷰에서 이 음반들이 자신의 진짜 학교였다고 말했다. 미국 남부의 흑인 음악이 북아일랜드 조선소 노동자의 거실을 거쳐 한 소년에게 닿은 셈이었다. (스키플) 1950년대 중반 영국을 휩쓴 로니 도니건의 스키플 열풍 속에서 그는 열한 살 무렵 첫 기타를 얻었고, 곧 색소폰과 하모니카도 익혔다. 열다섯 살에 오렌지필드 학교를 떠난 뒤 유리창 닦이 같은 일을 하며 밤에는 동네 밴드에서 연주했다. 창문을 닦던 시절은 훗날 1982년 곡 「클리닝 윈도스(Cleaning Windows)」의 소재가 되었다. (모나크스) 십대 후반에는 댄스홀에서 유행가를 연주하는 쇼밴드 모나크스에 들어가 색소폰을 불었다. 1963년 밴드는 서독(오늘날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와 쾰른을 돌며 미군 기지 클럽 등에서 하룻밤에 몇 시간씩 연주했다. 고된 일정이었지만 관객을 붙잡는 법을 몸으로 배운 시기였다. 벨파스트로 돌아온 그는 남의 히트곡을 그대로 옮기는 쇼밴드가 아니라 리듬 앤드 블루스를 하고 싶어 했다.

II. 뎀 · 1964–1966

(마리타임) 1964년 봄, 벨파스트의 마리타임 호텔에 리듬 앤드 블루스 클럽이 문을 열었고 그 무대를 맡은 밴드가 뎀(Them)이었다. 기타의 빌리 해리슨, 베이스의 앨런 헨더슨, 드럼의 로니 밀링스, 키보드의 에릭 릭슨이 함께했고 모리슨이 노래와 하모니카를 맡았다. 거칠고 즉흥적인 공연은 곧 도시의 화제가 되었다. (데카) 런던의 데카 레코드가 그들과 계약했다. 1964년 말 「베이비, 플리즈 돈 고(Baby, Please Don't Go)」가 영국 차트 10위에 올랐고, 그 뒷면에는 모리슨이 열여덟 살 무렵 쓴 「글로리아」가 실렸다. 런던 녹음에서는 프로듀서들이 멤버 대신 세션 연주자를 자주 썼는데, 젊은 지미 페이지가 이 시기 뎀의 녹음에 기타로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훗날 레드 제플린을 이끈 바로 그 기타리스트다. (번스) 1965년에는 미국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버트 번스가 쓴 「히어 컴스 더 나이트(Here Comes the Night)」가 영국 2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멤버는 끊임없이 바뀌었고, 모리슨은 당시 매니지먼트 아래에서 밴드가 번 돈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훗날 주장했다. 무대 밖의 그는 말수가 적고 기자들 앞을 불편해하는 청년이었다. (휘스키) 1966년 여름 뎀은 미국을 돌며 로스앤젤레스의 클럽 휘스키 어 고고에 장기 출연했다. 그때 하우스 밴드로 같은 무대에 선 것이 도어스였다. 짐 모리슨은 같은 성을 가진 북아일랜드 가수의 무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고 하며, 마지막 밤에는 두 밴드가 함께 「글로리아」를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미국 투어가 끝난 뒤 뎀은 사실상 흩어졌고, 모리슨은 홀로 벨파스트로 돌아갔다.

♪글로리아 (Gloria)1964실황 Van Morrison · Later with Jools Holland

마리타임 호텔 무대에서 끝없이 늘여 부르던 곡으로, 싱글 뒷면이었지만 뎀의 이름을 가장 오래 남긴 노래가 되었다. 도어스와 패티 스미스로 이어지는 계보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 처음부터 끝까지 세 개의 화음만 되풀이하는 기타 리프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 단순한 반복이 곡의 힘이며, 1960년대 미국 차고 밴드들이 너도나도 따라 친 교본이 되었다.
  • 모리슨의 보컬은 노래와 말 사이를 오간다. 절에서는 낮게 이야기를 늘어놓듯 하다가 점점 달아올라, 후렴에서 한 여자의 이름 철자를 한 자씩 외치는 대목으로 폭발한다.
  • 녹음은 2분 반 남짓이지만, 마리타임 무대에서는 즉흥을 섞어 훨씬 길게 늘였다고 전해진다. 짧은 스튜디오 판에서도 끝부분의 몰아치는 반복에서 그 라이브의 흔적이 느껴진다.
  • 도어스의 라이브 판과 패티 스미스의 1975년 판을 이어 들으면, 같은 뼈대가 세대마다 어떻게 다른 옷을 입는지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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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 1967–1968

(뉴욕) 1967년 초 버트 번스가 그를 뉴욕으로 불렀다. 번스는 막 차린 뱅 레코드의 솔로 가수로 모리슨을 원했고, 그해 3월 맨해튼의 A&R 스튜디오에서 노련한 세션 연주자들과 녹음이 이루어졌다. 그중 「브라운 아이드 걸」이 미국 차트 10위에 올라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미국 전역에 알렸다. (계약) 그러나 모리슨은 번스가 자신의 동의 없이 앨범 《블로잉 유어 마인드!》를 내놓았다며 불만을 품었다. 서둘러 서명한 계약 탓에 작곡 저작권과 로열티 상당 부분이 묶여 있었다. 1967년 12월 번스가 서른여덟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남은 계약을 둘러싼 문제는 더 복잡하게 얽혔다. (보스턴) 1968년 그는 뉴욕을 떠나 매사추세츠의 보스턴과 케임브리지로 옮겼다. 곁에는 아내 재닛 플래닛(Janet Planet)이 있었다. 작은 클럽에서 콘트라베이스와 플루트만 곁들인 어쿠스틱 트리오로 연주하며, 짧은 히트곡 대신 길게 흐르는 노래들을 다듬었다. 돈도 일거리도 넉넉하지 않은 시기였다. (아스트럴) 워너 브러더스가 뱅과의 계약을 정리하면서 길이 열렸다. 그해 9월과 10월, 프로듀서 루이스 메렌스타인은 재즈 베이시스트 리처드 데이비스, 모던 재즈 쿼텟의 드러머 코니 케이 등을 불러 단 세 차례의 세션으로 《아스트럴 위크스》를 녹음했다. 벨파스트의 유년 거리와 첫사랑, 죽음과 재생이 꿈처럼 뒤섞인 노래들이었다. 처음에는 거의 팔리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록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앨범의 하나로 평가받게 되었다.

♪브라운 아이드 걸 (Brown Eyed Girl)1967실황 Van Morrison · 1973 It's Too Late to Stop Now

버트 번스와 손잡은 뉴욕 시절의 첫 히트로, 그의 이름을 미국에 처음 알렸다. 계약 문제로 괴로웠던 시기에 태어났지만 곡 자체는 한없이 밝다.

  • 도입부의 맑은 기타 선율은 뉴욕의 노련한 세션 연주자들이 엮은 소리다. 두 대의 기타가 주고받는 가볍고 반짝이는 음색이 곡 전체의 표정을 정한다.
  • 베이스와 드럼은 통통 튀는 경쾌한 리듬을 만든다. 남미 섬나라 음악(칼립소)처럼 들리는 가벼운 흔들림이 있어 발걸음이 저절로 따라간다.
  • 곡 중간, 악기들이 빠지고 베이스와 드럼, 뜻 없는 소리로 부르는 코러스만 남는 짧은 대목(브레이크)을 찾아보자. 그 뒤 기타가 다시 들어오며 마지막 후렴이 훨씬 환하게 터진다.
  • 화자는 지난날의 연인에게 말을 걸듯 젊은 날의 추억을 되짚는다. 밝은 곡조 아래 깔린 아련한 그리움이 이 노래를 오래 살아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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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아스트럴 위크스》 (Astral Weeks)1968실황 「Cyprus Avenue」 Van Morrison · 1973

보스턴의 궁핍한 시절에 다듬은 노래들을 재즈 연주자들과 단 세 번의 세션으로 녹음한 앨범이다. 벨파스트의 유년이 꿈의 언어로 다시 태어났다.

  • 리처드 데이비스의 콘트라베이스가 사실상 주인공이다. 박자를 받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래와 대화하듯 선율을 그려 나가니, 처음부터 베이스만 따라 들어 보자.
  • 연주자들은 곡을 미리 받지 못한 채 모리슨이 기타로 한두 번 들려준 뒤 곧바로 녹음했다고 데이비스와 메렌스타인이 회고했다. 그래서 각 악기가 서로 반응하며 흘러가는 즉흥의 숨결이 살아 있다.
  • 현악기와 관악기는 기본 녹음이 끝난 뒤 편곡자 래리 팰런이 덧입힌 것(오버더빙)이다. 맨 처음 연주의 자유로움 위에 얇은 막처럼 얹힌 소리를 구분해 들어 보자.
  • 유튜브 영상으로 고른 「사이프러스 애비뉴(Cyprus Avenue)」는 벨파스트의 실제 거리 이름에서 왔다. 쳄발로(하프시코드)와 바이올린이 반짝이는 가운데, 끝부분에서 같은 말을 더듬듯 되풀이하며 감정이 넘쳐흐르는 보컬이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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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우드스톡과 마린 · 1969–1974

(우드스톡) 1969년 부부는 뉴욕주 우드스톡으로 옮겼다. 그곳에는 밥 딜런과 더 밴드가 살고 있었고, 모리슨은 로비 로버트슨, 리처드 마누엘과 가까워졌다. 1971년 더 밴드의 앨범 《카후츠》에서 그는 로버트슨과 함께 쓴 「4% 팬터마임」을 마누엘과 한 소절씩 주고받으며 불렀다. (문댄스) 1970년의 《문댄스》는 그가 처음으로 제작을 직접 이끈 앨범이었다. 《아스트럴 위크스》의 몽환 대신 관악기와 단단한 리듬 섹션이 이끄는 소울과 재즈의 활기가 들어섰다. 시골의 안정된 생활과 새 가정의 온기가 노래에 배어 있다는 것이 평론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해 딸이 태어났다. (마린) 1971년 무렵 가족은 캘리포니아 마린 카운티의 페어팩스로 이주했다. 그해 《튜펠로 허니》의 표지에는 말고삐를 쥔 그와 말 위의 재닛이 담겼고, 앨범은 전원의 행복을 노래했다. 1972년 《세인트 도미닉스 프리뷰》에서는 벨파스트와 미국을 잇는 긴 노래들로 다시 품을 넓혔다. (오케스트라) 1973년 그는 현악과 관악을 갖춘 11인조 칼레도니아 소울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투어를 돌았고, 그 기록은 1974년 라이브 앨범 《이츠 투 레이트 투 스톱 나우》로 남았다. 그사이 1973년 재닛과의 결혼은 끝났다. 이후 아일랜드를 여행하고 만든 《비든 플리스》(1974)는 아일랜드의 풍경과 전설을 향한 조용한 귀향의 앨범이었고, 발매 당시보다 훗날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앨범 《문댄스》 (Moondance)1970실황 「Into the Mystic」 Van Morrison · 1974

우드스톡의 안정된 생활 속에서 그가 처음으로 제작을 이끈 앨범이다. 몽환에서 벗어나 관악과 리듬이 살아 있는 단단한 노래들로 돌아섰다.

  • 타이틀곡에서는 한 박에 한 음씩 걷듯 움직이는 베이스(워킹 베이스)와 재즈 특유의 출렁이는 리듬(스윙)을 들어 보자. 중반의 플루트와 색소폰 솔로가 밤의 재즈 클럽 분위기를 만든다.
  • 유튜브 영상으로 고른 「인투 더 미스틱(Into the Mystic)」은 두 대의 어쿠스틱 기타가 잔잔히 물결치듯 시작한다. 후반부에 관악기가 밀물처럼 차오르는 대목이 곡의 절정이다.
  • 《아스트럴 위크스》의 긴 즉흥과 달리 곡마다 절과 후렴이 분명하고 길이도 짧다. 두 앨범을 이어 들으면 같은 사람이 2년 사이에 얼마나 다른 문을 열었는지 느낄 수 있다.
  • 「캐러밴」에는 라디오를 켜고 소리를 키우는 장면이 그려진다. 관악기가 화려하게 끼어드는 이 곡은 훗날 라이브 무대의 단골 절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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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펠로 허니 (Tupelo Honey)1971실황 Van Morrison · 솔로 Pee Wee Ellis (색소폰)

캘리포니아 마린의 전원생활 한가운데서 만든 같은 이름 앨범의 타이틀곡이다. 가정의 행복을 가장 온전히 담은 노래로 꼽힌다.

  • 7분 가까운 느린 발라드로, 컨트리의 소박함과 소울의 뜨거움이 섞여 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쌓아 올리는 구성 자체를 즐겨 보자.
  • 피아노와 플루트가 노래 사이사이를 부드럽게 메운다. 기타는 화려한 솔로 대신 뒤에서 은은하게 받치는 역할을 한다.
  • 보컬은 사랑하는 사람을 꿀에 빗대며 다정하게 말을 건다. 후반으로 갈수록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점점 높아지는데, 이 고조가 곡의 클라이맥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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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침묵과 구도 · 1975–1989

(침묵) 1974년 이후 그는 3년 가까이 새 앨범을 내지 않았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음악 산업의 쳇바퀴에 지쳐 있었고 자신이 왜 노래하는지 다시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1976년 11월에는 더 밴드의 고별 공연 「라스트 왈츠」 무대에 올라 「캐러밴」을 불렀고, 1977년 닥터 존과 함께 만든 《어 피리어드 오브 트랜지션》으로 돌아왔다. (구도) 1979년 《인투 더 뮤직》 이후 1980년대의 앨범들, 곧 《커먼 원》, 《뷰티풀 비전》, 《노 구루, 노 메서드, 노 티처》는 점점 영적인 질문으로 향했다. 그는 윌리엄 블레이크와 예이츠의 시, 기독교 신비주의, 신지학 서적을 탐독했고 노래는 명상처럼 길어졌다. 그는 이것을 특정 종교라기보다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느낀 황홀을 되찾으려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무렵 그는 미국을 떠나 영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일랜드) 그는 자신의 음악을 셀틱 소울이라 부르며 아일랜드의 전통과 미국 소울을 한 뿌리로 보았다. 1988년 아일랜드 전통 음악 그룹 치프턴스와 함께 만든 《아이리시 하트비트》에서는 옛 민요를 불렀고, 이듬해 《에이벌론 선셋》의 「해브 아이 톨드 유 레이틀리」로 오랜만에 대중적 성공을 거뒀다. 오르간 연주자 조지 페임이 밴드를 이끌면서 그의 무대는 재즈 클럽 같은 여유를 얻었다. (후대) 이 무렵 다음 세대 음악가들이 그를 뿌리로 꼽기 시작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초기 E 스트리트 밴드의 길고 관악이 풍성한 곡들에 모리슨의 영향이 컸다고 밝혀 왔고, 패티 스미스는 1975년 데뷔작 《호시스》를 「글로리아」로 열었다.

♪캐러밴 (Caravan) — 「라스트 왈츠」 실황1976실황 Van Morrison · 1976 「라스트 왈츠」

우드스톡 시절의 이웃 더 밴드가 고별 무대에 그를 불렀다. 긴 침묵기 한가운데서 그가 보여 준 가장 뜨거운 순간이다.

  • 관악 편곡은 뉴올리언스의 거장 앨런 투생이 맡았다. 원곡보다 훨씬 두텁고 화려하게 몰아치는 관악기 소리에 주목하자.
  • 레번 헬름의 드럼과 릭 댄코의 베이스, 곧 더 밴드의 리듬 섹션이 곡을 받친다. 점점 빨라지고 거세지는 그루브가 무대 위의 열기를 그대로 전한다.
  • 끝부분, 라디오 소리를 키워 달라는 외침을 반복하며 관객과 밴드를 끌어올리는 대목이 압권이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에서는 그가 다리를 높이 차올리며 무대를 떠나는 장면이 함께 남았다.
  • 《문댄스》의 원곡과 이어 들으면, 스튜디오의 단정한 곡이 라이브에서 어떻게 불꽃으로 바뀌는지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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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브 아이 톨드 유 레이틀리 (Have I Told You Lately)1989공식 MV — Van Morrison

1980년대 내내 이어진 영적 탐색 끝에 앨범 《에이벌론 선셋》에서 나온 노래로, 오랜만에 큰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 느린 템포 위에 피아노와 현악기가 부드럽게 깔린다. 절과 후렴이 단순하게 반복되는 구성이라 처음 듣는 사람도 쉽게 따라갈 수 있다.
  • 보컬은 높이 지르지 않고 낮고 따뜻하게 속삭인다. 연인에게 건네는 고백으로 들리지만, 같은 시기 그의 신앙적 관심을 생각하면 신을 향한 기도로도 들린다는 해석이 있다.
  • 1993년 로드 스튜어트의 커버가 큰 히트를 하며 결혼식 단골곡이 되었다. 두 판을 비교하면 원곡의 담담함이 더 또렷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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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다시 벨파스트로 · 1990–2026

(헌액) 1993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시상식에 나오지 않은 그를 대신해 로비 로버트슨이 소개를 맡았다. 같은 해 《투 롱 인 엑자일》에서는 블루스의 거장 존 리 후커와 「글로리아」를 다시 불렀다. 1995년 11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벨파스트 방문 행사에서 공연했고, 그해 발표한 「데이즈 라이크 디스」는 북아일랜드 평화 과정을 상징하는 노래처럼 받아들여졌다. (뿌리) 이후 그는 블루스, 재즈, 컨트리, 스키플로 자신의 뿌리를 차례로 되짚었다. 2000년에는 어린 시절의 영웅 로니 도니건과 함께 스키플 음반을 냈고, 2006년 《페이 더 데블》에서는 아버지의 음반으로 처음 들었던 컨트리를 불렀다. 2008년에는 할리우드 볼에서 《아스트럴 위크스》 전곡을 40년 만에 무대에서 재현했다. (작위) 2015년 음악과 북아일랜드 관광에 기여한 공로로 기사 작위 수여가 발표되었고 이듬해 서임되었다. 그해 8월 일흔 번째 생일에는 유년의 동네 길인 사이프러스 애비뉴에서 고향 사람들을 앞에 두고 공연했다. 동벨파스트에는 그의 노래에 나오는 장소를 따라 걷는 산책로도 생겼다. (현재) 일흔을 넘어서도 그는 거의 해마다 새 앨범을 냈다. 2023년 《무빙 온 스키플》로 열한 살 소년을 기타 앞에 앉힌 음악으로 돌아갔고, 2025년에는 《리멤버링 나우》를 발표했다. 반세기 넘게 그는 같은 물음, 곧 노래가 어떻게 평범한 동네 길을 신비의 장소로 바꾸는가를 붙들고 있다.

♪데이즈 라이크 디스 (Days Like This)1995실황 Van Morrison · Cyprus Avenue 공연

클린턴 대통령의 벨파스트 방문과 같은 해에 나와, 북아일랜드 평화 과정을 상징하는 노래처럼 받아들여졌다.

  • 3분 남짓의 짧고 경쾌한 곡이다. 길고 명상적인 1980년대 노래들과 달리 군더더기 없이 곧장 핵심으로 들어간다.
  • 화자는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날의 소박한 기쁨을 담담하게 노래한다. 들뜨지 않고 조용히 감사하는 어조가 오랜 분쟁 끝의 희망과 겹쳐 들린다.
  • 관악기와 코러스가 후렴을 환하게 감싼다. 평화를 기리는 행사에서 이 곡이 자주 울려 퍼진 이유를 그 밝은 울림에서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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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뱅 레코드와의 계약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모리슨은 남은 의무 곡 수를 채워야 했다. 그는 한자리에서 기타 한 대로 1~2분짜리 노래 서른 곡 남짓을 녹음했는데, 제목부터 터무니없는 짧은 곡들이라 애초에 발매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계약에 대한 그의 불만이 고스란히 담긴 이 녹음은 오랫동안 농담 같은 해프닝으로 여겨져 수십 년 동안 해적판으로만 떠돌았다. 워너 브러더스가 그를 데려오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당시 워너의 임원 조 스미스는 계약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뉴욕의 한 창고에서 현금을 건넸다고 훗날 회고했다. 걸작 《아스트럴 위크스》가 이런 거래 끝에 겨우 녹음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앨범의 명성에 가려 잘 언급되지 않는다. 「브라운 아이드 걸」의 원래 제목은 「브라운 스킨드 걸」이었다고 모리슨 스스로 인터뷰에서 밝혔다. 녹음 과정에서 제목이 바뀌었고, 그는 나중에 테이프를 보고서야 바뀐 것을 알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피부색을 담았던 원래 제목은 곡이 지닌 다른 결을 짐작하게 하지만, 경쾌한 팝 히트로서의 이미지에 묻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스트럴 위크스》의 대표곡 「매덤 조지」와 「비사이드 유」는 사실 1967년 뱅 시절에 이미 한 번 녹음되었다. 당시 판본은 짧고 팝에 가까운 편곡이었다. 두 판을 나란히 들으면, 같은 노래가 1년 사이에 재즈 연주자들을 만나 얼마나 다른 생명을 얻었는지 생생하게 드러난다. 뱅 시절의 녹음이 오랫동안 정식으로 조명받지 못했기에 이 비교는 주로 열성 팬과 평론가들 사이에서만 회자되었다.

용어 노트 📚🔎

스키플

(록에서) 1950년대 영국에서 크게 유행한 소박한 음악으로, 통기타에 빨래판을 긁어 박자를 내고 차 상자에 줄을 매어 베이스처럼 튕기며 연주했다. 비싼 악기 없이도 누구나 밴드를 할 수 있어서 수많은 영국 소년들이 이 음악으로 처음 음악을 시작했다. 교실에서 책상을 두드리고 필통을 흔들어 친구 노래에 반주를 넣어 본 적이 있다면, 그게 바로 스키플의 정신이다.

리듬 앤드 블루스

(말뜻) 리듬(박자)과 블루스(미국 흑인의 슬픈 노래)를 합친 이름이다. 1940년대 말 미국 음반 업계가 흑인 대중음악을 부르던 낡은 이름 대신 새로 붙인 말이다. (록에서) 블루스에 강한 박자와 춤추기 좋은 흥을 더한 미국 흑인 음악으로, 로큰롤의 뿌리가 되었다. 1960년대 영국 젊은이들은 이 음악을 따라 하며 자신들만의 록을 만들었다. 체육 시간에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줄넘기 박자가 저절로 빨라지듯, 몸이 먼저 반응하게 만드는 음악이다. (다른 데서는) 요즘 R&B라고 하면 1990년대 이후의 부드러운 흑인 팝 음악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아, 1950~60년대의 리듬 앤드 블루스와는 소리가 꽤 다르다.

쇼밴드

(록에서) 1950~60년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댄스홀에서 인기를 끈 밴드로, 라디오에 나오는 유행가를 원곡과 똑같이 연주해 사람들이 춤추게 했다. 관악기까지 갖춘 큰 편성이 많았고, 하룻밤에 몇 시간씩 연주했다. 노래방에서 원곡 가수처럼 똑같이 부르려고 애쓰는 것과 비슷한데, 젊은 모리슨은 남의 노래를 똑같이 따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음악을 하고 싶어 했다.

리프

(록에서) 곡 안에서 짧게 되풀이되는 기타나 피아노의 음 묶음이다. 한 번 들으면 귀에 박혀서, 노래 제목보다 리프로 곡을 먼저 떠올리기도 한다. 운동장에서 응원할 때 짝짝 짝짝짝 하는 박수 패턴을 계속 반복하는 것처럼, 짧은 모양을 되풀이해 곡 전체를 끌고 간다. (다른 데서는) 영어에서 riff는 어떤 주제를 이리저리 바꿔 가며 재치 있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는 뜻으로도 쓴다.

세션 연주자

(록에서) 밴드의 정식 멤버가 아니라, 녹음할 때만 불려 와 돈을 받고 연주하는 전문 연주자다. 악보를 빨리 읽고 어떤 곡이든 금방 소화해서, 1960년대에는 밴드 멤버 대신 녹음에 몰래 투입되는 일도 흔했다. 학교 연극 때 우리 반에 피아노 칠 사람이 없어서 옆 반의 피아노 잘 치는 친구가 반주만 도와주러 오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세션은 회의나 학회의 한 회차를 뜻하기도 하고, 컴퓨터에서는 접속해 있는 동안을 가리키기도 한다.

오버더빙

(말뜻) 위에(over) 소리를 입힌다(dubbing)는 뜻의 영어로, 이미 녹음한 소리 위에 새 소리를 겹쳐 녹음한다는 말이다. (록에서) 먼저 노래와 기본 반주를 녹음해 두고, 나중에 현악기나 관악기, 코러스 같은 소리를 따로 녹음해 겹치는 방법이다. 《아스트럴 위크스》의 현악기도 이렇게 나중에 덧입혀졌다. 휴대폰으로 찍은 영상에 나중에 배경 음악과 자막을 따로 넣는 것처럼, 처음 녹음 위에 소리를 차곡차곡 쌓는다. (다른 데서는) 더빙은 외국 영화에 우리말 목소리를 새로 입히는 일을 가리킬 때 더 흔히 쓴다.

워킹 베이스

(말뜻) 걷는(walking) 베이스라는 뜻으로, 베이스가 한 걸음씩 걸어가듯 움직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록에서) 재즈에서 많이 쓰는 베이스 연주법으로, 한 박자에 한 음씩 고르게 짚으며 음계를 오르내린다. 곡에 앞으로 나아가는 흐름과 여유로운 흔들림을 준다. 계단을 한 칸씩 일정한 속도로 오르내리는 발걸음을 떠올리면 된다. 「문댄스」에서 이 걸음걸이를 또렷이 들을 수 있다.

셀틱 소울

(말뜻) 셀틱은 아일랜드·스코틀랜드 등에 살던 켈트족의 것이라는 뜻이고, 소울은 영혼이라는 말이자 미국 흑인 교회 음악에서 나온 뜨거운 대중음악의 이름이다. (록에서) 밴 모리슨이 자기 음악을 설명하려고 즐겨 쓴 말로, 아일랜드 전통 음악의 서정과 미국 소울의 뜨거운 감정을 하나로 엮는다는 뜻이다. 그는 두 음악이 모두 고향을 그리워하고 영혼을 울린다는 점에서 같은 뿌리라고 보았다. 서로 다른 나라의 요리 재료를 섞어 새로운 맛을 내는 퓨전 요리처럼, 두 전통이 만나 그만의 소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