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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

1976–

악기를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더블린의 네 소년이 세계에서 가장 큰 밴드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시작된 이야기.

한눈에 보기 🔭💭

1. 뿌리아일랜드 더블린 결성마운트 템플 학교종파를 넘은 우정2. 신앙과 첫 목소리샬롬 펠로우십스티브 릴리화이트선데이 블러디 선데이3. 정점더 조슈아 트리언포게터블 파이어타임 표지4. 전환베를린 녹음어청 베이비One 탄생5. 귀환팝마트 실험올 댓 유 캔트다시 기본으로6. 현재아버지의 죽음자선 활동네 멤버 그대로U21976–더블린의 네 소년이 반세기 가까이 한 몸처럼 …
무대가 된 도시 🧭🗺️
N아일랜드더블린1960–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보노 (폴 휴슨)

    보컬이자 가사를 쓰며 밴드의 목소리 역할을 해 왔다.

  • 멤버디 에지 (데이비드 에번스)

    독특한 기타 음색으로 밴드의 사운드를 설계해 왔다.

  • 멤버애덤 클레이턴

    베이스를 맡으며 초기부터 가장 록스타다운 태도를 보였다.

  • 멤버래리 멀렌 주니어

    밴드 결성을 위한 게시판 광고를 낸 드러머다.

  • 매니저폴 맥기네스

    결성 초기부터 수십 년간 밴드를 이끈 매니저다.

  • 프로듀서브라이언 이노

    여러 앨범에서 밴드의 사운드 방향을 함께 설계한 프로듀서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더블린의 소년들 · 1960–1978

(더블린) 1970년대 아일랜드 더블린은 가난하고 폐쇄적인 도시였다. 실업과 경기 침체가 오래 이어졌고, 국경 너머 북아일랜드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유혈 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더블린 북쪽 변두리의 마운트 템플 종합학교는 가톨릭과 개신교 학생을 함께 받는 드문 학교였고, 훗날 U2가 될 소년들은 모두 이곳에서 만났다. (본조) 리드보컬을 맡게 되는 폴 휴슨(무대명 보노)은 1960년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톨릭, 어머니 아이리스는 개신교였다 — 당시 더블린에서는 드문 결합이었다. 보노가 열네 살이던 1974년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 상실은 이후 보노의 가사 전반에 되풀이해 드리우는 그림자가 되었다. (에지) 기타를 맡을 데이비드 에번스(무대명 디 에지)는 1961년 웨일스계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더블린으로 이주했다. 내성적이고 손재주가 좋은 성격으로, 학교 밴드 활동보다는 직접 기타를 손보고 소리를 실험하는 데 몰두하는 아이였다. (래리) 드러머 래리 멀렌 주니어는 1961년생으로, 아버지의 권유로 어린 시절부터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76년 그는 마운트 템플 학교 게시판에 함께 밴드를 할 사람을 구한다는 쪽지를 붙였다 — 이 짧은 광고가 훗날 세계적인 밴드의 출발점이 되었다. (오디션) 광고에 응한 이들 중에는 에지와 그의 형 딕 에번스, 베이스를 전혀 다룰 줄 몰랐던 애덤 클레이턴, 그리고 보노가 있었다. 클레이턴은 록스타처럼 굴 줄 아는 유일한 멤버였지만 악기 실력은 가장 부족했다고 스스로 훗날 인정했다. 밴드는 처음 피드백이라는 이름을 쓰다 더 하이프로 바꿨고, 1978년 딕 에번스가 탈퇴해 따로 밴드를 꾸리면서 남은 넷이 유투(U2)라는 이름으로 정착했다.

II. 신앙과 첫 목소리 · 1978–1983

(매니저) 1978년, 밴드의 공연을 본 폴 맥기네스가 매니저를 자청했다. 그는 이후 수십 년간 U2의 유일한 매니저로 남아 밴드와 깊은 신뢰 관계를 쌓았고, 1980년 데뷔 앨범 《보이》(Boy)로 영국 음반사 아일랜드 레코즈와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신앙) 보노, 에지, 래리 세 사람은 이 무렵 샬롬 펠로우십이라는 기독교 공동체에 깊이 관여했다. 공동체 일부는 록 음악을 세속적이라 여겼고, 세 사람은 한때 밴드를 그만둘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애덤 클레이턴과 매니저 맥기네스의 설득, 그리고 신앙과 음악이 양립할 수 있다는 스스로의 결론이 밴드를 지켜냈다. (프로듀서) 데뷔작 《보이》와 후속작 《옥토버》(October)는 프로듀서 스티브 릴리화이트와 함께 작업했다. 에지는 이 시기부터 소리를 메아리처럼 겹쳐 울리는 딜레이 효과를 자신의 기타 사운드의 중심으로 삼기 시작했다. (분쟁) 1983년 앨범 《워》(War)에서 밴드는 처음으로 뚜렷한 정치적 목소리를 냈다. 국경 너머에서 계속되던 북아일랜드 분쟁, 특히 1972년 영국군이 비무장 시위대에 발포해 다수가 숨진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곡을 실었다. 이 앨범으로 U2는 영국과 미국 양쪽에서 처음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 (Sunday Bloody Sunday)1983실황 U2 · 1983 Red Rocks Amphitheatre

북아일랜드 분쟁의 비극을 정면으로 다루며 밴드가 처음으로 뚜렷한 정치적 목소리를 낸 곡이다.

  • 도입부 래리 멀렌 주니어의 행진하는 듯한 군대풍 스네어 드럼 리듬이 곡 전체의 뼈대를 이룬다
  • 에지의 기타는 코드를 많이 쓰지 않고 두세 음을 반복하는 절제된 리프로 긴장감을 쌓는다
  • 후렴에서 보노의 목소리는 분노보다 슬픔에 가까운 톤으로 절규하듯 올라간다
  • 배경에 깔린 바이올린 선율이 애가(哀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 라이브에서는 곡을 시작하기 전 이것은 저항가가 아니라는 취지의 말을 자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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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언포게터블 파이어에서 조슈아 트리로 · 1984–1987

(전환) 1984년 밴드는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와 대니얼 라누아를 끌어들여 앨범 《언포게터블 파이어》(The Unforgettable Fire)를 만들었다. 명료한 록 사운드 대신 여백과 질감을 강조하는 분위기 있는 접근을 받아들인 선택이었다. 밴드 내에서는 상업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 실험은 이후 U2 사운드의 근간이 되었다. (추모) 같은 앨범에는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에게 바치는 곡이 실렸다. 보노는 인권 운동의 비폭력 정신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소리와 맞닿는 지점을 발견했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광야) 1987년 발매한 《더 조슈아 트리》(The Joshua Tree)는 밴드의 정점으로 꼽힌다. 미국 서부의 사막과 광야를 상징 삼아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매혹과 환멸을 동시에 그린 이 앨범은 발매 즉시 미국과 영국 양쪽 차트 1위에 올랐다. (표지) 앨범 성공과 함께 밴드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를 장식하며 세계에서 가장 큰 록 밴드로 떠올랐다. 급격한 성공은 곧 새로운 부담을 안겼다 — 이 무렵부터 스스로를 지나치게 진지한 밴드로 느끼기 시작했다고 멤버들은 훗날 회고했다.

♪프라이드 (Pride (In the Name of Love))1984공식 MV — U2

마틴 루터 킹 주니어에게 바친 헌정곡으로, 밴드의 정치적 관심이 인권 운동으로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 도입부 에지의 깨끗한 톤으로 한 음씩 퉁기듯 연주하는 기타(아르페지오)가 곡의 분위기를 연다
  • 후렴의 상승하는 화음 진행이 희망적인 정서를 만든다
  • 드럼과 베이스는 비교적 단순하게 배경을 받쳐 보컬 멜로디를 앞세운다
  • 브라이언 이노의 프로듀싱으로 기타와 보컬에 넓은 울림(잔향)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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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더 조슈아 트리》 (The Joshua Tree)1987실황 U2 · BBC Abbey Road Studios

미국의 광야를 향한 매혹과 환멸을 동시에 그린, 밴드 경력의 정점으로 꼽히는 앨범이다.

  • 앨범 전체에 신시사이저와 기타가 뒤섞여 사막 같은 광활한 공간감을 만든다
  • 대표곡 「With or Without You」에서 에지는 마이클 브룩이 만든 인피니트 기타 시제품으로 음을 길게 끌어 신시사이저 같은 음색을 냈다
  • 애덤 클레이턴의 낮고 단순한 베이스 라인이 곡 전체를 이끄는 축이 된다
  • 보노의 보컬은 낮은 속삭임에서 시작해 곡이 진행될수록 감정을 폭발시키듯 고조된다
  • 다니엘 라누아와 브라이언 이노의 프로듀싱은 악기 사이에 넓은 공간을 두어 광활함을 소리로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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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미국을 찾아 나선 여정 · 1987–1990

(순회) 1987년 북미와 유럽을 오간 《더 조슈아 트리》 투어로 밴드는 미국 곳곳을 돌았다. 스타디움 공연이 이어지며 밴드는 자신들이 동경하던 미국 루츠 음악 — 블루스, 소울, 컨트리 — 의 본고장을 몸으로 마주했다. (협업) 이 여정에서 밴드는 블루스 거장 비비 킹과 함께 무대에 서고 곡을 녹음했다. 아일랜드 젊은이들이 미국 음악의 뿌리를 찾아가는 이 과정은 1988년 다큐멘터리 영화와 동명 앨범 《래틀 앤 험》(Rattle and Hum)으로 남았다. (과잉) 그러나 이 작업은 발매 당시 스스로를 미국 음악사의 계승자로 그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평론가들은 밴드가 자신들의 위치를 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밴드 내부에서도 이 시기의 방향에 회의를 품는 목소리가 있었다. (피로) 1989년 12월 더블린 공연에서 보노는 무대 위에서 이제 손을 씻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몇 년간 이어진 성공과 반복된 스타디움 투어에 대한 피로감, 그리고 사운드를 근본부터 다시 짜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다음 앨범을 향한 출발점이 되었다.

♪웬 러브 컴스 투 타운 (When Love Comes to Town)1988무대 U2·비비 킹 · 《Rattle and Hum》

비비 킹과 함께 녹음한 곡으로, 미국 루츠 음악을 찾아 나선 여정이 낳은 세대를 넘은 협업이다.

  • 곡 전반에 비비 킹의 기타가 에지의 기타와 주고받듯 대화하는 방식으로 배치돼 있다
  • 후반부 보노와 비비 킹이 번갈아 부르는 이중창(듀엣) 구간에서 두 세대의 목소리가 맞부딪힌다
  • 리듬 섹션은 블루스 특유의 느긋하게 절뚝이는 리듬(셔플)을 따라간다
  • 라이브 영상에서는 비비 킹이 직접 무대에 올라 즉흥 솔로를 덧붙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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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베를린에서 다시 태어나다 · 1990–1993

(베를린) 1990년, 밴드는 통일 직전의 서독(오늘날 독일) 베를린으로 건너가 여러 유명 음악가가 작업했던 한사 스튜디오에서 새 앨범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장벽이 무너진 직후 도시의 공기 속에서 유럽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려는 선택이었다. (충돌) 초기 녹음은 순탄치 않았다. 네 사람은 곡의 방향을 두고 격렬하게 부딪혔고, 한때 밴드가 이대로 끝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오갈 만큼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하나) 이런 갈등의 한가운데서 에지가 즉흥으로 연주한 곡에 보노가 가사를 붙인 곡이 탄생했다. 화해와 결속을 노래한 이 곡은 밴드가 서로 다른 의견 속에서도 함께 갈 길을 찾아냈다는 상징으로 남았다. (변신) 1991년 발매한 《어청 베이비》(Achtung Baby)는 기존의 진지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아이러니와 전자음, 거칠게 왜곡된 기타 음색을 전면에 내세운 전환이었다. 이어진 조 티브이(Zoo TV) 투어에서 밴드는 거대한 영상 스크린과 여러 무대 자아를 동원해 미디어와 소비주의를 풍자했다. 1993년 앨범 《주로파》(Zooropa)는 이 실험을 한층 더 밀어붙인 결과물이었다.

♪원 (One)1991공식 MV — U2

밴드가 해체 직전까지 갔던 베를린 세션의 격렬한 갈등 한가운데서 탄생한 곡이다.

  • 도입부 에지의 청량하면서도 애잔한 기타 프레이즈가 곡 전체의 정서를 미리 보여준다
  • 후렴의 화음 진행은 단순하지만 점층적으로 감정을 쌓아 올린다
  • 보노의 보컬은 낮게 읊조리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절제된 절규로 바뀐다
  • 자선 공연 등에서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부르는 경우가 많아 다양한 편곡 버전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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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과열과 다시 찾은 기본 · 1993–2001

(과열) 1997년 앨범 《팝》(Pop)과 이어진 팝마트(PopMart) 투어는 댄스 음악과 전자음향 실험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거대한 노란 아치와 마트 콘셉트의 무대는 화제를 모았지만, 앨범은 이전작들에 비해 상업적으로 주춤했다. (반성) 밴드는 이 시기 실험이 지나쳤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했다. 방향을 잃었다는 평가 속에서 멤버들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우정) 이 무렵 밴드는 오랜 친구였던 미국 밴드 알이엠(R.E.M.)과 자주 어울렸다. 두 밴드는 서로의 공연에 게스트로 오르내리며 우정을 쌓았고, 보컬 보노와 마이클 스타이프는 이후로도 여러 자선 무대에 함께 섰다. (귀환) 2000년 앨범 《올 댓 유 캔트 리브 비하인드》(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는 화려한 장치를 걷어내고 멜로디와 기타 사운드 본연으로 돌아간 앨범이었다. 이 앨범으로 U2는 비평과 상업 양면에서 다시 정상급 밴드로 인정받았다.

♪뷰티풀 데이 (Beautiful Day)2000실황 U2 · BBC Abbey Road Studios

화려한 실험을 걷어내고 멜로디 본연으로 돌아온 재도약을 상징하는 곡이다.

  • 도입부 신시사이저 톤이 간결하게 깔리며 화창한 느낌을 먼저 전한다
  • 벌스는 절제된 리듬으로 가다가 후렴에서 에지의 기타가 굵고 명료한 톤으로 터지듯 들어온다
  • 래리 멀렌 주니어의 드럼은 실험적 리듬 대신 단순하고 직선적인 비트로 돌아왔다
  • 브라이언 이노와 다니엘 라누아가 다시 프로듀서로 참여해 1980년대의 사운드 감각을 현대적으로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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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이후와 지금 · 2001–2026

(부고) 2001년 보노의 아버지 밥 휴슨이 세상을 떠났다. 2004년 발매한 앨범 《하우 투 디스맨틀 언 애텀 밤》(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에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직접 다룬 곡이 실렸다. 애증이 섞인 부자 관계가 이 시기 가사에 짙게 배어들었다. (운동) 같은 시기 보노는 아프리카 부채 탕감과 에이즈 퇴치를 위한 국제 캠페인에 앞장섰다. 음악 밖에서의 이런 활동은 밴드의 이름과 함께 널리 알려지며 U2를 단순한 록 밴드 이상의 존재로 만들었다. (공개) 2014년 앨범 《송스 오브 이노센스》(Songs of Innocence)는 아이튠즈를 통해 전 세계 이용자에게 무료로 배포됐다. 원하지 않는 이용자의 기기에도 음원이 자동으로 담기면서 이는 음악 산업에서 디지털 배급 방식을 둘러싼 논쟁적인 사례로 남았다. (현재) 2020년대에도 U2는 신보와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에 지어진 구체형 공연장 스피어에서 연 상주 공연은 최신 기술과 사운드를 결합한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았다. 결성 이래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네 명의 원년 멤버가 대부분의 활동을 함께해 온 것은 록 역사에서도 드문 사례로 꼽힌다.

♪버티고 (Vertigo)2004실황 U2 · 360° 투어

아버지를 잃은 상실 속에서 만든 앨범의 리드곡으로, 스타디움 록 특유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담았다.

  • 도입부 에지의 거칠게 왜곡된 기타 음색(디스토션)으로 낸 굵은 화음(파워 코드) 리프가 곡을 강하게 끌고 간다
  • 스페인어로 숫자를 세는 짧은 구간이 곡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쓰인다
  • 후렴에서 밴드 전체가 한 덩어리로 몰아붙이듯 연주해 스타디움 록 특유의 에너지를 만든다
  • 곡 길이가 3분 남짓으로 짧고 군더더기 없이 편집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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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에지의 형 딕 에번스는 초기 밴드의 정식 멤버였다. 그는 1978년 넷이 유투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기 직전 탈퇴해 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밴드 버진 프루운스를 결성했는데, 이 밴드도 훗날 아일랜드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나름의 자리를 차지했다. 형제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는 사실은 U2의 성공에 가려져 잘 언급되지 않는다. 밴드 이름의 유래를 둘러싸고는 여러 해석이 나왔다. 이름은 디자이너 스티브 에이버릴이 제안한 여러 후보 가운데 하나였다. 냉전 시기 정찰기 록히드 U2의 연상과 'you too'라는 말장난 등 여러 뜻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이 선택의 이유가 되었다. 1981년 앨범 《옥토버》를 준비하던 중, 보노는 미국 투어 도중 가사와 멜로디 아이디어가 적힌 노트가 든 가방을 도난당했다. 그는 남은 시간 동안 스튜디오에서 상당 부분을 즉흥으로 다시 써야 했고, 이 사고는 오히려 앨범 특유의 거칠고 즉흥적인 질감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One」의 탄생 비화는 흔히 화해의 순간으로 회자되지만, 멤버들은 훗날 인터뷰에서 곡을 녹음하던 그 순간에도 밴드의 갈등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고 밝힌 바 있다. 화해의 상징으로 굳어진 이야기와 실제 스튜디오 안의 냉랭한 공기 사이에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셈이다.

용어 노트 📚🔎

딜레이

(말뜻) 딜레이는 영어로 지연이라는 뜻이다. (록에서) 기타나 목소리 같은 소리를 짧은 시간차를 두고 한 번 더 울리게 만드는 효과를 가리킨다. 소리가 메아리치듯 겹쳐 들려 공간이 넓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넓은 방에서 외친 말이 벽에 부딪혀 살짝 늦게 돌아오는 메아리를 떠올리면 된다 — 에지는 이 효과로 한 번의 연주만으로 여러 음이 겹쳐 울리는 듯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비행기나 버스가 늦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도 흔히 쓰인다.

앰비언트

(말뜻) 앰비언트는 영어 형용사 ambient에서 온 말로, 주변을 둘러싼이라는 뜻이다. (록에서) 뚜렷한 멜로디나 리듬보다 소리의 질감과 공간감 자체를 감상하도록 만든 음악 스타일을 가리킨다. 귀 기울이지 않아도 분위기로 스며드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미술 시간에 뚜렷한 형태 없이 색과 질감만으로 분위기를 표현하는 추상화를 떠올리면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사진이나 조명 분야에서는 인공적으로 비추지 않은 자연스러운 주변 빛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파워 코드

(록에서) 두세 개의 음만 눌러 굵고 단순하게 울리는 화음을 가리킨다. 맑고 복잡한 화음 대신 힘 있고 단단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여러 사람이 각자 다른 음을 부르는 합창 대신, 두 사람이 딱 맞는 낮은음과 높은음만 함께 내질러 소리를 두껍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셔플

(말뜻) 셔플은 카드를 섞는다는 뜻의 영어 단어에서 왔다. (록에서) 균등하게 딱딱 끊어 치지 않고 통통 튀듯 강약과 여백을 주는 블루스 특유의 리듬 주법을 가리킨다. 발로 박자를 세면 하나-둘, 하나-둘이 아니라 살짝 절뚝거리듯 느껴진다. (다른 데서는) 카드 게임에서 카드를 섞는 동작을 가리키는 원래 뜻으로 흔히 쓰인다.

아르페지오

(말뜻) 아르페지오는 이탈리아어로 하프를 뜻하는 아르파(arpa)에서 온 말이다. 하프 연주자가 줄을 한 번에 퉁기지 않고 한 음씩 순서대로 퉁기는 모습에서 이름이 붙었다. (록에서) 화음을 이루는 음들을 한꺼번에 치지 않고 하나씩 순서대로 퉁기듯 연주하는 주법을 가리킨다. 여러 명이 손을 잡고 동시에 드는 대신 한 사람씩 순서대로 손을 드는 모습을 떠올리면 비슷한 느낌이다.

잔향

(말뜻) 잔향(殘響)은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남아(殘) 울리는 소리(響)라는 뜻이다. (록에서) 소리가 벽이나 공간에 부딪혀 여러 번 반사되며 은은하게 이어지는 울림을 가리킨다. 녹음할 때 일부러 이 효과를 더해 넓은 공연장이나 성당 안에서 연주하는 것 같은 느낌을 만들 수 있다. 목욕탕이나 체육관에서 소리를 내면 유난히 울리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