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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hite Stripes

화이트 스트라입스 (1997–2011)

기타와 드럼, 빨강과 하양과 검정만으로 이루어진 두 사람의 밴드였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디트로이트 결성업홀스터리 견습블루스 애정2. 부부1996년 결혼2000년 이혼남매 행세3. 돌파화이트 블러드 셀스레고 뮤직비디오개러지 록 붐4. 정점엘리펀트세븐네이션아미그래미 수상5. 균열멕의 불안서더헤이븐 마지막 공연카렌 엘슨과 결혼6. 이후2011년 해체잭의 솔로 활동서드맨 레코드스트라입스1997–2011디트로이트 출신 두 사람이 개러지 록을 부활시…
무대가 된 도시 🧭🗺️
N미국디트로이트1974–2007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잭 화이트

    기타와 보컬을 맡으며 밴드의 서사와 이미지를 직접 설계한 인물이었다.

  • 멤버멕 화이트

    정식 훈련 없이 단순하고 원초적인 드럼을 쳤고, 대중 앞에서는 거의 말이 없었다.

  • 영향브라이언 멀둔

    잭이 견습생으로 일하던 업홀스터리 공방의 사장이자 그에게 드럼과 밴드 활동을 처음 소개한 사람이었다.

  • 연인러네이 젤위거

    .

  • 연인카렌 엘슨

    2005년 잭과 결혼한 모델로, 두 자녀 스칼렛과 헨리 리를 함께 낳았다.

  • 협업브렌던 벤슨

    화이트 스트라입스가 잠잠하던 시기 잭과 함께 더 레이스니어스를 꾸린 동시대 뮤지션이었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디트로이트의 존과 메건 · 1975–1997

1997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결성됐다. 기타와 보컬을 맡은 잭 화이트와 드럼을 맡은 멕 화이트, 단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밴드였다. (잭) 잭 화이트는 1975년 7월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존 앤서니 길리스로, 열 명의 자녀 중 막내였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고, 10대 시절 가구 덮개를 씌우는 업홀스터리 공방에 견습생으로 들어가 브라이언 멀둔 밑에서 일했다. 멀둔은 그에게 밴드 활동을 하도록 독려해 함께 업홀스터러스라는 밴드를 결성했으며, 잭은 블루스 음악가 손 하우스와 블라인드 윌리 맥텔의 음반을 탐독하며 자신만의 음악어를 만들어갔다. (멕) 멕 화이트는 본명 메건 마사 화이트로 1974년 12월 디트로이트 인근 그로스 포인트 팜스에서 태어났다.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이었고, 음악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었다. 로열 오크의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다 그곳에 손님으로 온 잭을 만났다. (결혼) 둘은 1996년 9월 결혼했다. 잭은 신부의 성인 화이트를 자신의 성으로 삼았다 — 아내의 이름을 남편이 따르는 흔치 않은 선택이었다. 함께 살면서 잭은 아무 경험이 없던 멕에게 드럼을 쥐여줬고, 정식 레슨을 받지 못하게 했다. 기교 없이 두드리는 원초적인 리듬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소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무대) 1997년 7월, 둘은 처음으로 무대에 섰다. 이때부터 세상에는 자신들을 남매라고 소개했다 — 오빠 잭과 누나 멕. 결혼했다가 갈라선 부부라는 사실은 숨긴 채였다. 빨강과 하양과 검정, 세 가지 색으로만 옷을 입고 무대를 채우는 규칙도 이 무렵 정해졌다.

II. 이탈리아 레코드의 두 사람 · 1997–1999

(레이블) 데이브 뷰익이 운영하던 작은 독립 레이블 이탈리아 레코드가 이들의 첫 창구가 됐다. 디트로이트의 클럽 골드 달러를 중심으로 고리스 같은 선배 밴드들이 이끌던 거친 록 씬 안에서, 화이트 스트라입스는 이질적이면서도 소박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싱글) 1998년 첫 싱글 「렛츠 셰이크 핸즈」를 발표했다. 몇 시간 만에 녹음한 거친 블루스 록이었다. (데뷔음반) 1999년 셀프 타이틀 데뷔 음반 《더 화이트 스트라입스》를 내놓았다. 손 하우스에게 헌정한다는 문구를 앨범에 새겼고, 잭이 직접 프로듀싱을 맡았다. 베이스 기타를 아예 쓰지 않는다는 규칙을 스스로 세웠다 — 기타와 드럼만으로 낼 수 있는 소리의 한계를 시험하고 싶었다. (규칙) 무대 의상과 앨범 커버 모두 빨강, 하양, 검정 세 색깔로 통일했다. 사탕 지팡이나 페퍼민트 캔디를 떠올리게 하는 이 배색은 이후 밴드의 시각적 상표가 됐다. 잭은 인터뷰마다 스스로 정한 제약이 창작을 자유롭게 한다고 말했다. (성격) 잭은 인터뷰에서 말이 많고 밴드의 서사를 직접 설계하는 인물이었던 반면, 멕은 거의 입을 열지 않고 잭 뒤에 머물렀다. 이 비대칭은 이후 두 사람에 대한 세간의 오해 — 멕이 그저 장식적인 존재라는 — 를 키우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렛츠 셰이크 핸즈 (Let's Shake Hands)1998공식 MV — The White Stripes

이탈리아 레코드에서 나온 첫 싱글로, 두 사람이 이제 막 세운 밴드의 원초적인 소리를 그대로 담았다.

  • 거의 편집 없이 한 번에 녹음한 듯한 거친 기타 리프에서 초기 블루스 록의 원형을 들을 수 있다.
  • 멕의 드럼은 단순한 킥과 스네어만으로 곡을 지탱하는데, 화려한 기교 대신 힘으로 밀어붙이는 타법이 뚜렷하다.
  • 잭의 보컬은 델타 블루스 가수들의 절규하는 창법을 흉내 내듯 거칠게 내지른다.
  • 베이스 없이 기타와 드럼만으로 채운 낮은 음역대가 이후 밴드 사운드의 원형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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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데 스틸에서 화이트 블러드 셀스로 · 2000–2001

(데스틸) 2000년 두 번째 음반 《데 스틸》을 냈다. 제목은 몬드리안으로 대표되는 네덜란드 미술 운동 데 스틸에서 따왔다. 가구 디자이너 헤릿 릿펠트와 블라인드 윌리 맥텔에게 헌정했다. (이혼) 실은 이 무렵 두 사람은 이미 부부가 아니었다. 2000년 3월 이혼이 확정됐지만, 밴드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갈라선 뒤에도 음악적 동반자 관계는 계속됐고, 이 복잡한 사정은 오랫동안 팬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돌파) 2001년 세 번째 음반 《화이트 블러드 셀스》를 멤피스의 스튜디오에서 잭이 직접 프로듀싱해 단 사흘, 약 5천 달러의 비용으로 완성했다. 베이스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은 여기서도 지켰다. 마침 더 스트록스, 더 하이브스, 더 바인스 같은 밴드들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면서 언론은 이를 개러지 록 부활이라 불렀다. (엠티비) 수록곡 「펠 인 러브 위드 어 걸」의 뮤직비디오를 미셸 공드리가 레고 블록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MTV에서 집중적으로 방영되며 밴드는 단숨에 전국구 인지도를 얻었다. (폭로) 유명세가 커지자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 기자가 법원 혼인 기록을 확인해, 두 사람이 남매가 아니라 한때 부부였다는 사실을 2001년 보도했다. 밴드는 별다른 해명 없이 이를 흘려보냈고, 이후로도 무대 위에서는 계속 서로를 남매처럼 대했다.

♪펠 인 러브 위드 어 걸 (Fell in Love with a Girl)2001무대 The White Stripes · 2002 Top Of The Pops

1분 50초짜리 짧고 급한 곡으로, 미셸 공드리의 레고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와 함께 밴드를 전국구로 올려놓았다.

  • 곡 길이가 2분이 채 안 되는데도 후렴을 반복하지 않고 밀어붙이듯 끝나는 구성이 특이하다.
  • 베이스 없이 기타의 낮은 현만으로 저음을 채운 자리를 확인해 보면 이 밴드의 원칙을 실감할 수 있다.
  • 소리를 일부러 찢어지게 왜곡한 기타 음색(디스토션)이 곡 전체를 팽팽하게 당긴다.
  • 잭의 보컬은 숨 돌릴 틈 없이 빠르게 쏟아지는데, 이 다급함이 곡의 짧은 길이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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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아 고잉 투 비 프렌즈 (We're Going to Be Friends)2001무대 The White Stripes · SNL

같은 음반 안에서 정반대의 얼굴을 보여주는 곡으로, 거친 블루스 록 사이에 놓인 여린 어쿠스틱 발라드다.

  • 일렉트릭 기타 대신 손가락으로 튕기는 어쿠스틱 기타(핑거피킹)가 곡 전체를 이끈다.
  • 잭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낮고 부드럽게, 거의 속삭이듯 노래한다.
  • 드럼이 거의 등장하지 않아 두 사람의 목소리와 기타만 남는 순간의 여백을 느껴 볼 만하다.
  • 앞뒤에 놓인 곡들의 소음과 대비해 들으면 이 곡의 고요함이 더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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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엘리펀트와 명성의 무게 · 2002–2003

(엘리펀트) 2003년 음반 《엘리펀트》를 런던의 토 래그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프로듀서 리엄 왓슨과 함께 아날로그 장비로 녹음했지만, 흔히 알려진 1963년 이전 장비만 썼다는 이야기는 왓슨 스스로 훗날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아날로그 8트랙 테이프로 녹음한 거칠고 따뜻한 질감이 음반 전체를 감쌌다. (세븐네이션아미) 수록곡 「세븐 네이션 아미」의 리프는 기타에 옥타브 페달을 연결해 베이스처럼 낮은 음을 낸 것이었다. 이 단순한 리프는 이후 세계 곳곳의 축구장에서 관중이 따라 부르는 응원가가 됐다 — 밴드가 의도하지 않은 방식의 성공이었다. (그래미) 2004년 이 음반으로 그래미 최우수 얼터너티브 음반상을 받았다. 몇 해 전까지 작은 클럽을 전전하던 듀오가 이제는 잡지 표지와 시상식 무대에 오르내렸다. (사생활) 같은 해에는 디트로이트의 한 클럽에서 동료 밴드 본 본디스의 보컬 제이슨 스톨스타이머와 다퉈 폭행 혐의로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을 내고 분노조절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개러지 록 씬 내부의 경쟁과 긴장이 겉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세븐 네이션 아미 (Seven Nation Army)2003실황 The White Stripes · 2003 Conan O'Brien

옥타브 페달로 기타를 베이스처럼 들리게 만든 리프 하나가 이후 전 세계 축구장의 응원가가 됐다.

  • 도입부의 리프는 기타에 디지테크 위미 같은 옥타브 페달을 연결해 한 옥타브 낮춰 베이스처럼 들리게 만든 것이다.
  • 멕의 드럼은 톰드럼 위주로 쿵쿵 울리는 단순한 박자를 반복하는데, 이 단순함 덕분에 관중이 쉽게 따라 칠 수 있었다.
  • 절제된 보컬이 후렴으로 갈수록 조금씩 위협적으로 고조되는 흐름을 따라가 보면 좋다.
  • 곡 끝부분에서 리프가 악기 연주로만 반복되는 대목이 라이브에서 관객 합창 구간으로 확장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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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앤드 비스킷 (Ball and Biscuit)2003실황 The White Stripes · 2003 시부야-AX

7분에 가까운 블루스 즉흥 연주곡으로, 런던의 빈티지 장비로 완성한 앨범의 아날로그 질감을 가장 잘 보여준다.

  • 토 래그 스튜디오의 낡은 진공관 앰프에서 나온 따뜻하고 거친 기타 톤을 곡 전체에서 느낄 수 있다.
  • 곡 중반 길게 이어지는 기타 솔로 구간은 스튜디오 라이브 연주처럼 즉흥적으로 뻗어 나간다.
  • 조용하다가 갑자기 커지는 다이내믹스가 반복되는데, 이 낙차가 곡의 긴장감을 만든다.
  • 허세 섞인 블루스맨 화법으로 노래하는 잭의 보컬 톤 변화를 따라가 보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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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겟 비하인드 미 사탄에서 이키 떰까지 · 2004–2007

(변화) 2005년 음반 《겟 비하인드 미 사탄》을 발표했다. 기타 중심의 블루스에서 벗어나 피아노와 마림바를 전면에 내세운 음반이었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잭의 고딕풍 저택에서 녹음했고, 한 인터뷰에서 잭은 기타를 손에서 놓아야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정) 같은 해 6월 잭은 영국 출신 모델 카렌 엘슨과 브라질 아마존 강 위 카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듬해 딸 스칼렛 테레사, 그 다음해 아들 헨리 리가 태어났다. 오랜 세월 밴드의 가짜 남매 서사 뒤에 숨겨왔던 사생활이, 처음으로 안정된 가정의 모습으로 공개된 시기였다. (이키떰) 2007년 음반 《이키 떰》은 다시 무겁고 거친 기타 사운드로 돌아왔다. 잭은 자신의 스코틀랜드계 혈통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백파이프를 연상시키는 기타 솔로와 켈트풍 선율을 곳곳에 넣었다. (불안) 7월 16일 캐나다 뉴펀들랜드 세인트존스의 조지 스트리트에서는 단 한 음만 치고 무대를 내려오는 공연을 벌여 화제가 됐고, 7월 31일 미국 미시시피주 서더헤이븐 공연이 — 당시엔 아무도 몰랐지만 —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마지막 정규 공연이 됐다.

♪블루 오키드 (Blue Orchid)2005공식 MV — The White Stripes

기타 중심 블루스에서 벗어나겠다던 이 시기의 방향 전환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곡이다.

  • 도입부 리프는 기타 신호를 강하게 압축하고 일그러뜨려 예전과 다른 금속적이고 기계적인 음색을 낸다.
  • 멕의 드럼 비트가 이전보다 훨씬 딱딱하고 반복적으로 몰아붙이는 느낌을 준다.
  • 잭의 보컬이 평소보다 높은 음역, 가성에 가까운 톤으로 처리된 구간을 유심히 들어볼 만하다.
  • 이 무렵 새로 들여온 피아노와 신시사이저가 배경에 섞여 들리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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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키 떰 (Icky Thump)2007무대 The White Stripes · Under Great White Northern Lights

블루스 록으로 되돌아오면서도 신시사이저 베이스와 백파이프풍 기타를 더해, 두 사람이 스스로 정한 규칙을 살짝 깬 곡이다.

  • 제목곡의 리프는 두꺼운 왜곡(퍼즈) 기타에 건반으로 연주한 신시사이저 베이스 음을 겹쳐 낸 것으로, 베이스 기타를 쓰지 않는다던 오랜 원칙에서 벗어난 예외다.
  • 곡 중반 백파이프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기타 솔로에서 잭의 스코틀랜드계 혈통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 잭의 보컬이 절마다 점점 더 거칠고 공격적으로 내지르는 흐름을 따라가 보면 좋다.
  • 곡 후반 길게 늘어지는 기타 잡음과 스퀄이 곡을 소란스럽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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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침묵과 해체 · 2007–2011

(침묵) 2007년 서더헤이븐 이후 정규 공연은 없었다. 2009년 2월 「레이트 나이트 위드 코난 오브라이언」 마지막 방송에 나와 「위 아 고잉 투 비 프렌즈」를 연주한 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공개 연주였다. (다른밴드) 침묵기 동안 잭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브렌던 벤슨과 함께 더 레이스니어스를 결성해 2006년 데뷔 음반을 냈고, 2009년에는 앨리슨 모스하트와 더 데드 웨더를 결성했다. 화이트 스트라입스가 멈춰 있는 동안에도 그의 창작욕은 다른 곳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해체) 2011년 2월 2일, 두 사람은 공식 성명으로 해체를 알렸다. 건강 문제 때문이 아니라 이 밴드가 지닌 아름답고 특별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14년간 이어진 파트너십은 큰 잡음 없이, 조용히 막을 내렸다. (이후) 잭 화이트는 2012년 첫 솔로 음반 《블런더버스》를 내며 활발한 커리어를 이어갔고, 2001년 세운 레이블 서드 맨 레코드를 2009년 내슈빌로 옮겨 음반 제작과 발매의 중심지로 키웠다. 반면 멕 화이트는 음악계에서 거의 완전히 물러나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만든 소리는 2000년대 개러지 록 부활의 상징으로 남았다.

덜 알려진 이야기

화이트 스트라입스는 데뷔 초부터 스스로를 오빠와 여동생이라 소개했지만, 실제로는 1996년에 결혼했다가 2000년에 이혼한 부부였다. 이 사실은 2001년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 기자가 법원 기록을 뒤져 확인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이 오해를 굳이 바로잡지 않았는데, 밴드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지키려는 의도였다는 해석이 많다. 잭 화이트가 결혼 후 아내의 성인 화이트를 자신의 성으로 삼은 것도 흔치 않은 선택이었다.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르는 경우는 드물었고, 이는 훗날 이혼 후에도 무대 이름으로 굳어져 본명 존 길리스보다 훨씬 유명해졌다. 멕의 드럼 연주는 활동 내내 논쟁거리였다. 2003년 잭이 디트로이트의 한 술집에서 동료 밴드 본 본디스의 보컬과 몸싸움을 벌여 폭행 혐의로 유죄를 인정한 사건은 법원 기록에 남아 있지만, 밴드의 대중적 이미지에는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온화한 미니멀리스트라는 이미지에 가려 잘 언급되지 않는 대목이다. 2007년 7월 31일 미국 미시시피주 서더헤이븐 공연이 밴드의 마지막 정규 공연이 되리라는 것은 그날 아무도 몰랐다. 보름 전 세인트존스에서 단 한 음만 치고 내려온 공연이 훨씬 유명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은 아니었다. 마지막이라는 사실은 2009년 다큐멘터리 영화가 공개되고 2011년 해체 발표가 이어지면서 뒤늦게, 회고적으로만 확인됐다.

용어 노트 📚🔎

개러지 록

(말뜻) 개러지(garage)는 차고를 뜻하는 영어 단어다. 이름 그대로 정식 스튜디오 대신 집 차고에서 연습하고 녹음하던 아마추어 밴드들의 거친 소리에서 이름이 나왔다. (록에서) 정교한 편곡보다 단순하고 즉흥적인 연주, 다듬어지지 않은 질감을 앞세우는 록의 한 갈래를 가리킨다. 학교 밴드부가 정식 녹음실 없이 교실이나 창고에서 연습하며 내는, 서툴지만 힘 있는 소리를 떠올리면 비슷하다.

로파이

(말뜻) 로파이(lo-fi)는 낮다는 뜻의 로우(low)와 충실도를 뜻하는 파이델리티(fidelity)를 줄인 말이다. (록에서) 잡음이나 거친 질감을 굳이 없애지 않고 그대로 살려 녹음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스마트폰으로 대충 찍은 영상이 오히려 더 친근하게 느껴지듯, 로파이 록은 매끈함 대신 현장의 거친 느낌을 택한다. (다른 데서는) 최근에는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배경음악 장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도 널리 쓰인다(이른바 로파이 힙합).

옥타브 페달

(록에서) 기타 신호의 음높이를 한 옥타브 낮추거나 높여 마치 다른 악기가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게 하는 이펙트 장치다. 노래방에서 음을 한 옥타브 낮춰 부르면 목소리가 훨씬 굵게 들리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기타 소리를 낮춰 베이스처럼 들리게 만들 수 있다.

파즈

(말뜻) 파즈(fuzz)는 원래 솜털이나 보풀처럼 부드럽고 거친 것을 뜻하는 영어 단어다. (록에서) 기타 신호를 일부러 뭉개고 찢어 두껍고 거친 소리를 만드는 왜곡 이펙트를 가리킨다. 선명한 연필선 대신 크레파스를 뭉개 칠한 듯한 질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미니멀리즘

(말뜻) 미니멀(minimal)은 최소한이라는 뜻으로, 미니멀리즘은 필요 없는 것을 덜어내고 최소한만 남기는 태도를 말한다. (록에서) 악기 수나 편곡, 색깔 같은 표현 요소를 극단적으로 줄여 단순함 자체를 개성으로 삼는 접근이다. 시험 답안을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짧게 쓰는 것처럼, 화이트 스트라입스는 기타와 드럼 두 악기, 빨강·하양·검정 세 색깔만으로 밴드를 표현했다. (다른 데서는) 건축이나 인테리어에서 장식을 없애고 여백을 살리는 양식을 가리키는 말로도 흔히 쓰인다.

그래미상

(말뜻) 트로피가 옛 축음기(그라모폰) 모양을 하고 있어 그래미라는 이름이 붙었다. (록에서) 미국 레코딩 예술과학 아카데미가 매년 그 해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한 음반과 곡에 주는 상이다. 학교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주는 우등상처럼, 음악 업계 안에서 한 해의 성취를 인정받는 자리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