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areads.musicRock

The Smiths

더 스미스 (1982–1987)

네 명의 맨체스터 청년이 평범한 성씨 뒤에 가장 예민한 목소리를 감춘 밴드였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영국 맨체스터 출생노동계급 가정아일랜드계 혈통2. 결성영국 맨체스터 결성마와 모리시의 만남러프 트레이드 계약3. 도약디스 차밍 맨존 필의 지지1집 성공4. 정점미트 이즈 머더더 퀸 이즈 데드채식 선언5. 균열루크 해고로열티 갈등마의 탈퇴6. 유산루크 별세오아시스에 영향스미스1982–19871980년대 맨체스터에서 결성돼 영국 기타 팝…
무대가 된 도시 🧭🗺️
N영국맨체스터1959–1987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모리시

    보컬과 작사를 맡았으며, 내성적인 문학 소년에서 밴드의 상징적인 목소리가 됐다.

  • 멤버조니 마

    기타와 작곡을 맡았으며, 겹겹이 쌓은 기타 리프로 밴드의 사운드를 설계했다.

  • 멤버앤디 루크

    베이스를 맡았으며, 마의 어릴 적 친구로 밴드의 리듬을 지탱했다. 2023년 세상을 떠났다.

  • 멤버마이크 조이스

    드럼을 맡아 밴드의 리듬 섹션을 완성했다.

  • 레이블제프 트래비스

    독립 레이블 러프 트레이드를 이끌며 밴드를 발굴하고 초기 활동을 뒷받침했다.

  • 영향노엘 갤러거

    오아시스의 리더로, 밴드가 막 이름을 알리던 1994년 무렵 조니 마에게서 레스폴 기타를 선물받았다.

YouTube에서 8곡 이어 듣기 ↗

I. 맨체스터의 소년들 · 1959–1982

(스티븐) 1959년 5월, 영국 잉글랜드 맨체스터 근교 데이비흄에서 스티븐 패트릭 모리시가 태어났다. 아일랜드계 노동자 집안의 아들로 누나 재클린과 함께 스트랫퍼드에서 자랐다. 내성적이고 책을 좋아하는 소년이었고,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과 뉴욕 돌스의 무대를 탐닉하며 음악 잡지에 열정적인 독자 투고를 보내는 십 대를 보냈다. 직접 노래하기보다는 글로 음악을 말하는 쪽에 먼저 재능을 보였다. (조니) 1963년 10월, 같은 도시 맨체스터의 아드윅에서 존 마틴 마허, 훗날의 조니 마가 태어났다. 역시 아일랜드계 집안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로리 갤러거와 버트 얀시, 시크의 나일 로저스의 연주를 따라 하며 독학으로 실력을 쌓았고, 십 대 중반에 이미 동네에서 소문난 기타리스트였다. (친구들) 앤디 루크는 1964년 맨체스터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마와 한 동네, 한 학교를 다닌 죽마고우였다. 베이스를 들고 마의 여러 밴드를 함께 옮겨 다녔다. 드러머 마이크 조이스는 1963년생으로 다른 경로로 음악을 시작해 밴드가 결성될 무렵 합류하게 된다. 네 사람 모두 후기 산업도시 맨체스터의 비 오는 거리와 노동계급의 공기 속에서 자랐다.

II. 결성과 첫 걸음 · 1982–1983

(방문) 1982년 5월, 마는 지인 스티븐 폼프릿을 통해 모리시의 주소를 얻어 예고 없이 그의 집을 찾아갔다. 음반을 뒤적이던 두 사람은 몇 시간 만에 함께 곡을 쓰기로 뜻을 모았다. 마가 곡을 만들고 모리시가 가사를 붙이는 역할 분담은 이날 정해진 그대로 밴드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이름) 밴드 이름은 '더 스미스'로 정했다. 화려한 이름이 유행하던 시절, 가장 흔한 영국 성씨를 내세운 것은 평범함을 정면으로 내세우겠다는 태도였다. 루크와 조이스가 리듬 섹션으로 합류하며 넷의 편성이 완성됐다. 마는 기타를, 모리시는 목소리와 가사를, 루크는 베이스를, 조이스는 드럼을 맡았다. (러프 트레이드) 몇 차례 클럽 공연 만에 밴드는 독립 레이블 러프 트레이드와 계약했다. 대형 메이저 레이블 대신 독립 노선을 택한 것은 훗날 창작의 자유를 지켜준 선택이 됐지만, 동시에 여러 해 이어질 로열티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1983년 데뷔 싱글이 세상에 나왔다.

♪핸드 인 글러브 (Hand in Glove)1983실황 The Smiths · 1984 Channel 4 The Tube

데뷔 싱글이자 밴드의 첫 선언이었다. 존 필의 지지로 입소문이 퍼지며 밴드의 이름이 처음 알려졌다.

  • 도입부의 하모니카 소리는 밴드의 이후 이미지와 다르게 소박한 포크 느낌을 낸다.
  • 마의 기타는 코드를 세게 눌러 튕기기보다 얇게 긁어내는 방식으로 쟁쟁한 소리(잉글 기타)를 만든다.
  • 모리시의 목소리는 멜로디를 정확히 따라가기보다 살짝 어긋나게 밀고 당기며 감정을 드러낸다.
  • 후렴에서 반복되는 짧은 구절이 곡 전체를 감싸며 데뷔곡 특유의 절박함을 만든다.
YouTube에서 듣기 ↗

III. 첫 성공 · 1983–1984

(첫 싱글) 「핸드 인 글러브」는 밴드 사진도 없이 흑백 인물 사진을 표지로 내세운 파격적인 데뷔 싱글이었다. BBC 라디오 진행자 존 필이 이 곡을 반복해 틀며 지지를 보냈고, 소수의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디스 차밍 맨) 1983년 말 발표한 「디스 차밍 맨」은 밴드를 단숨에 전국구로 끌어올렸다. 마가 여러 대의 기타를 겹쳐 쌓아 만든 반짝이는 리프는 이후 영국 기타 팝의 표준이 됐고, 모리시는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 「탑 오브 더 팝스」에 글라디올러스 꽃다발을 흔들며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1집) 1984년 초 발표한 데뷔 앨범 《더 스미스》는 영국 앨범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외로움, 학교 폭력, 노동계급의 삶을 정면으로 다룬 가사는 당대 팝 음악의 화려함과 뚜렷이 대비됐다. 밴드는 데뷔와 동시에 시대의 목소리로 불리기 시작했다.

♪디스 차밍 맨 (This Charming Man)1983공식 MV — The Smiths

밴드를 전국구로 끌어올린 곡으로, 마의 겹겹이 쌓은 기타 리프가 영국 기타 팝의 표준이 됐다.

  • 곡을 여는 리프는 마가 여러 개의 기타 트랙을 겹쳐 쌓아(오버더빙) 만든 반짝이는 소리다.
  • 루크의 베이스는 리프 사이를 뛰어다니듯 움직이며 곡에 경쾌한 탄력을 더한다.
  • 조이스의 드럼은 화려한 채우기 없이 단순하고 단단하게 곡을 받쳐 준다.
  • 브리지 부분에서 기타가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밀려드는 순간을 눈여겨들을 만하다.
YouTube에서 듣기 ↗
♪헤븐 노스 아임 미저러블 나우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1984공식 MV — The Smiths

데뷔 앨범 직후 발표한 싱글로, 어두운 제목과 밝은 멜로디의 대비가 밴드의 개성을 뚜렷이 보여줬다.

  • 제목의 우울한 정서와 달리 멜로디 자체는 밝고 경쾌하게 흘러간다.
  • 마의 기타는 여러 줄을 함께 퉁겨 맑게 울리는 소리(잉글 기타)로 곡 전체를 채운다.
  • 모리시의 보컬은 단조로운 어조로 담담하게 말하듯 노래해 가사의 냉소를 강조한다.
  • 후렴으로 넘어가는 구간의 리듬 변화가 곡에 숨통을 틔워 준다.
YouTube에서 듣기 ↗

IV. 채식과 로큰롤 · 1984–1985

(채식) 1985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미트 이즈 머더》는 발매 첫 주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표제곡은 공장식 축산을 정면으로 고발하는 노랫말로, 밴드는 이후 공연 투어에서 육류가 없는 케이터링을 요구했다. 록 음악에서 드물었던 채식주의 선언은 당대 젊은 청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운드) 앨범은 데뷔작보다 거칠고 로큰롤에 가까운 편곡을 담았다. 「헤드마스터 리츄얼」은 학교 체벌 제도를 겨냥했고, 마의 기타는 이전보다 두꺼운 톤으로 밴드를 더 단단한 록 사운드로 이끌었다. 조이스의 드럼과 루크의 베이스가 서로 얽히며 만든 그루브는 이 시기 가장 완성도 높은 리듬 섹션으로 꼽힌다. (하우 순) 같은 해 싱글 「하우 순 이즈 나우?」는 마가 같은 트레몰로 기타 연주를 네 번 따로 녹음해 겹쳐 쌓은 독특한 방식으로 완성됐다. 원래는 싱글의 부수적인 곡이었지만 이후 밴드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하우 순 이즈 나우? (How Soon Is Now?)1984공식 MV — The Smiths

원래는 B사이드였지만 독특한 기타 음색 덕에 밴드의 가장 널리 알려진 곡 중 하나가 됐다.

  • 곡 전체를 감싸는 떨리는 기타 음색은 마가 같은 연주를 네 번 따로 녹음해 겹친 트레몰로 효과다.
  • 슬라이드 기타가 그 위에 얹혀 곡에 메마르고 아득한 공기를 더한다.
  • 5분이 넘는 길이와 반복적인 구성은 당시 밴드의 짧은 싱글들과 뚜렷이 대비된다.
  • 곡 후반부로 갈수록 반주가 점점 두꺼워지며 고립감을 증폭시킨다.
YouTube에서 듣기 ↗
♪앨범 《미트 이즈 머더》 (Meat Is Murder)1985실황 「That Joke Isn't Funny Anymore」 The Smiths · 1985 마드리드

채식주의를 정면으로 내세운 두 번째 앨범으로, 발매 첫 주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 표제곡 「미트 이즈 머더」는 도살장을 연상시키는 효과음으로 시작해 듣는 이를 긴장시킨다.
  • 「헤드마스터 리츄얼」에서는 마의 기타가 이전보다 두껍고 거친 톤으로 밴드를 단단한 록 사운드로 이끈다.
  • 대표곡으로 고른 「댓 조크 이즌트 퍼니 애니모어」는 느린 템포 속에서 모리시의 보컬이 유독 여리게 들린다.
  • 앨범 전체에서 조이스의 드럼과 루크의 베이스가 만드는 리듬 섹션이 데뷔작보다 훨씬 단단해졌음을 느낄 수 있다.
YouTube에서 듣기 ↗

V. 여왕과 균열 · 1986

(여왕) 1986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더 퀸 이즈 데드》는 훗날 영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음반이 됐다. 표제곡은 반복적인 질감의 긴 연주부로 시작해 영국 군주제를 향한 풍자로 이어졌고, 「데어 이즈 어 라이트 댓 네버 고즈 아웃」은 현악 편곡이 더해진 서정적인 곡으로 밴드의 가장 사랑받는 노래가 됐다. (균열) 성공의 정점에서 밴드 내부에는 균열이 자라고 있었다. 1986년 루크는 약물 문제로 잠시 밴드에서 해고됐다가 곧 복귀했고,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기타리스트 크레이그 개넌이 합류해 한동안 5인조로 활동했다. 계약과 로열티를 둘러싼 불만도 이 무렵부터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패닉) 싱글 「패닉」은 글램 록 스타일의 쿵쿵대는 리듬과 아이들이 후렴을 따라 외치는 구조로 화제를 모았다. 라디오 방송에 대한 냉소를 담은 이 곡은 밴드가 여전히 대중과 직접 대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곡이었다.

♪앨범 《더 퀸 이즈 데드》 (The Queen Is Dead)1986실황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 Johnny Marr · 2022 6 Music Festival

밴드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세 번째 앨범. 정점의 순간과 그 아래 자라던 균열이 함께 담겨 있다.

  • 표제곡은 반복되는 리듬 위에 긴 연주부를 얹은 구성으로, 독일 실험 록(크라우트록)의 영향을 짐작하게 한다.
  • 대표곡으로 고른 「데어 이즈 어 라이트 댓 네버 고즈 아웃」은 현악 편곡이 더해져 밴드의 곡 중 가장 서정적인 순간을 만든다.
  • 「씨메트리 게이츠」에서는 모리시가 문학적 인용을 재치 있게 뒤섞는 화법을 보여준다.
  • 앨범 전반의 프로듀싱은 이전보다 여러 악기를 세밀하게 배치해 소리에 입체감을 더했다.
YouTube에서 듣기 ↗
♪패닉 (Panic)1986공식 MV — The Smiths

글램 록의 쿵쿵대는 리듬을 빌린 싱글로, 밴드가 여전히 대중과 직접 대화하려던 순간이었다.

  • 글램 록 특유의 쿵쿵대는 리듬(스톰프 비트)과 마의 단순하고 강한 리프가 곡을 이끈다.
  • 후렴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함께 외치듯 부르는 부분은 라이브에서 관객 합창으로 자주 이어졌다.
  • 곡 길이가 짧고 구조가 단순해, 이전 곡들보다 훨씬 직설적으로 다가온다.
YouTube에서 듣기 ↗

VI. 해체 · 1987

(마지막) 1987년 발표한 마지막 정규 앨범 《스트레인지웨이스, 히어 위 컴》은 이전보다 다듬어진 프로듀싱과 건반, 오케스트라 편곡을 더한 음반이었다. 「걸프렌드 인 어 코마」의 짧고 담백한 구성과 「라스트 나이트 아이 드림트 댓 섬바디 러브드 미」의 웅장한 마무리는 밴드가 사운드를 계속 넓혀가고 있었음을 보여줬다. (탈퇴) 그러나 앨범이 발매되기도 전, 마는 밴드를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여러 해 이어진 강행군 투어와 녹음, 계약을 둘러싼 갈등에 지친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고 훗날 밝혔다. 모리시는 새 기타리스트를 찾아 밴드를 이어가려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1987년 여름 더 스미스는 공식적으로 해체를 발표했다. (정산) 해체 후 네 사람의 재산은 극히 불균등하게 나뉘어 있었다. 저작권 수익의 대부분은 곡을 쓴 마와 모리시에게 돌아갔고, 루크와 조이스는 계약에 따라 훨씬 적은 몫만 받았다. 이 불균형은 몇 년 뒤 법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앨범 《스트레인지웨이스, 히어 위 컴》 (Strangeways, Here We Come)1987공식 MV 「Girlfriend in a Coma」 — The Smiths

밴드의 마지막 정규 앨범. 발매도 되기 전 마의 탈퇴가 발표되며 앨범은 해체의 그림자 속에서 나왔다.

  • 대표곡으로 고른 「걸프렌드 인 어 코마」는 2분 남짓의 짧은 길이 안에 피아노 반주를 얹어 담백하게 마무리된다.
  • 「라스트 나이트 아이 드림트 댓 섬바디 러브드 미」는 현악과 건반을 더해 이전 앨범들보다 웅장한 마무리를 들려준다.
  • 전체적으로 기타보다 건반과 오케스트라 편곡이 두드러져, 밴드가 사운드를 넓히려 했음을 느낄 수 있다.
  • 「페인트 어 벌거 픽처」에서는 모리시가 음악 산업을 향한 냉소를 가사에 담아낸다.
YouTube에서 듣기 ↗

VII. 각자의 길과 유산 · 1987–2026

(소송) 조이스는 밴드 수익 배분이 불공정했다며 마와 모리시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1996년 법원은 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조이스에게 과거와 미래 로열티의 4분의 1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루크는 소송 전 합의로 적은 액수를 받고 물러난 상태였다. 이 판결은 밴드 수익 배분의 공정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종종 언급된다. (각자의 길) 마는 이후 더 더스, 모디스트 마우스, 더 크릭스 등 여러 밴드를 거치며 세션과 협업 기타리스트로 폭넓게 활동했다. 모리시는 솔로 가수로 독자적인 경력을 쌓아 지금까지도 음반을 내고 있다. 두 사람은 해체 이후 다시 함께 무대에 서지 않았고, 재결합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루크의 죽음) 앤디 루크는 2023년 5월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멜로디컬한 베이스 연주는 밴드 사운드의 숨은 뼈대로 오래도록 평가받아 왔으며, 부고 이후 마와 모리시를 포함한 많은 음악가들이 그를 추모했다. (영향) 더 스미스의 기타 사운드는 이후 세대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밴드가 막 이름을 알리던 1994년 무렵 마에게서 레스폴 기타를 선물받았으며, 라디오헤드를 비롯한 여러 영국 밴드들도 더 스미스를 영국 기타 팝의 원점으로 꼽아 왔다.

덜 알려진 이야기

(만남의 신화) 마와 모리시의 첫 만남에는 폼프릿이라는 공통의 지인이 다리를 놓았다고 알려져 있다. (작사 방식) 마와 모리시는 주로 마가 만든 데모를 모리시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곡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마가 만든 데모 테이프를 전달하면 모리시가 혼자 방에 틀어박혀 가사를 붙이는 방식이었고, 이 때문에 두 사람이 실제로 함께 작업한 시간은 널리 알려진 것보다 훨씬 짧았다고 전기 작가들은 기록한다. (밴드 이름) '더 스미스'라는 평범한 이름은 당대 화려한 밴드명 유행에 대한 반발이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혀졌지만, 정작 이 평범함이 오히려 강한 정체성으로 굳어졌다는 점은 아이러니로 종종 언급된다.

용어 노트 📚🔎

잉글 기타 (Jangle)

jangle은 영어로 짤랑거리는 소리를 뜻하는 의성어다. 록에서: 여러 줄을 한꺼번에 튕겨 맑고 쨍하게 울리는 기타 소리를 가리키며, 주로 12현 기타나 코러스 이펙트로 만든다. 교실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트라이앵글을 흔들 때처럼, 여러 줄이 겹쳐 울리며 맑게 퍼지는 소리다.

오버더빙 (Overdubbing)

록에서: 이미 녹음된 트랙 위에 새로운 연주를 겹쳐 쌓는 녹음 기법으로, 한 사람이 여러 악기를 겹겹이 쌓아 두꺼운 소리를 만들 수 있다. 미술 시간에 밑그림 위에 색을 겹쳐 칠해 그림을 더 두껍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트레몰로 (Tremolo)

이탈리아어로 떨림을 뜻하는 tremolare에서 왔다. 록에서: 소리의 크기를 빠르게 떨듯이 반복해서 울리게 만드는 효과로, 기타 앰프나 페달로 낸다. 손전등을 빠르게 껐다 켰다 하면 빛이 깜빡이듯 떨리는 것처럼, 소리의 세기가 빠르게 오르내리며 떨리는 느낌을 준다. 다른 데서는: 클래식 음악에서는 현을 빠르게 반복해서 긋는 주법을 가리키기도 한다.

크라우트록 (Krautrock)

Kraut는 독일 양배추 요리에서 나온, 독일인을 가리키는 영어 속어이며 여기에 rock이 붙어 1970년대 독일 실험적 록 음악을 가리키는 이름이 됐다. 록에서: 반복적인 리듬과 최면적인 질감을 강조한 1970년대 독일 록의 흐름을 가리킨다. 같은 박자를 계속 반복하며 걷는 행진처럼, 짧은 리듬 패턴을 반복해 점점 몰입하게 만드는 음악이다.

로열티 (Royalty)

원래 왕실을 뜻하는 단어에서, 왕이 광산이나 토지 사용에 대해 받던 사용료로 뜻이 넓어졌다. 록에서: 음반이 팔리거나 곡이 방송될 때마다 작곡자와 연주자에게 계약에 따라 지급되는 수익 배분금이다. 친구들과 만든 조별 과제가 상을 받았을 때, 누가 아이디어를 냈고 누가 발표를 맡았는지에 따라 공로를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여전히 왕족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B사이드 (B-side)

과거 레코드판(바이닐)은 앞면(A면)과 뒷면(B면)이 있어 A면에 주력 곡을, B면에 부수적인 곡을 실었던 데서 이름이 왔다. 록에서: 싱글 음반의 뒷면에 실린, 타이틀곡이 아닌 곡을 가리킨다. 도시락에서 메인 반찬과 함께 딸려오는 작은 곁들이 반찬처럼, B사이드는 주인공 곡의 곁에 놓인 곡이지만 종종 그 자체로 사랑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