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lling Stones
시카고 블루스 음반을 품에 안고 다니던 런던의 청년들이, 60년 넘게 같은 이름으로 무대에 서는 록의 가장 오래된 현역이 되었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영향머디 워터스
밴드 이름이 그의 곡에서 왔고, 1964년 시카고에서 처음 만난 뒤 1981년 시카고 클럽 무대에서 함께 연주했다.
- 멤버브라이언 존스
밴드를 처음 모은 리더이자 시타르와 마림바까지 다룬 다재다능한 연주자로, 1969년 스물일곱에 세상을 떠났다.
- 멤버믹 재거
보컬과 하모니카를 맡고 리처즈와 함께 곡 대부분을 쓴 프런트맨이다.
- 멤버키스 리처즈
기타리스트이자 작곡 파트너로, 「새티스팩션」의 리프와 오픈 G 튜닝 사운드의 주인이다.
- 멤버찰리 와츠
재즈를 사랑한 드러머로 1963년부터 202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밴드의 박자를 지켰다.
- 우정존 레논
경쟁 구도로 그려졌지만 「아이 워너 비 유어 맨」을 건넸고 「위 러브 유」 코러스와 《록 앤드 롤 서커스》에 함께했다.
I. 다트퍼드의 두 소년 · 1942–1962
(결성) 1962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됐다. 그러나 이야기는 런던 남동쪽 켄트주의 소도시 다트퍼드에서 먼저 시작된다. 1943년 이곳에서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가 다섯 달 차이로 태어났다. 두 사람은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이사와 진학으로 한동안 서로를 잊고 지냈다. (가정) 재거의 아버지 조 재거는 체육 교사였고, 재거는 성실한 학생으로 자라 런던 정경대(LSE)에 진학했다. 외아들인 리처즈는 어머니 도리스가 사 준 기타로 연주를 시작했다. 재즈 밴드를 이끌었던 외할아버지 거스 듀프리가 그에게 처음 기타를 만져 보게 했다고 리처즈는 회고했다. (재회) 1961년 10월, 두 사람은 다트퍼드 기차역 플랫폼에서 다시 마주쳤다. 재거의 품에는 척 베리와 머디 워터스의 미국 수입 음반이 들려 있었고, 그것이 대화의 시작이 됐다고 둘은 여러 차례 말했다. 영국에서 구하기 힘든 리듬 앤드 블루스(블루스에 강한 박자와 전기 악기를 더한 미국 흑인 음악) 음반은 같은 부류를 알아보는 표식이었다. (브라이언) 비슷한 무렵, 잉글랜드 서부의 온천 도시 첼트넘 출신 브라이언 존스가 런던에 와 있었다. 1942년생인 그는 중산층 가정에서 음악 교육을 받았고, 슬라이드 기타(금속관이나 병 조각으로 줄을 미끄러뜨려 내는 소리)를 영국에서 가장 먼저 익힌 연주자 가운데 하나였다. (클럽) 이들이 모여든 곳은 알렉시스 코너의 블루스 인코퍼레이티드가 연주하던 일링 재즈 클럽이었다. 그 무대에는 훗날의 드러머 찰리 와츠도 있었다. 존스는 재즈 잡지에 멤버 모집 광고를 냈고, 부기우기 피아니스트 이언 스튜어트가 응했다. 첫 공연을 앞두고 밴드 이름을 묻는 전화에, 존스가 바닥에 놓인 머디 워터스 음반의 곡 「롤링 스톤」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II. 런던의 블루스 클럽 · 1962–1964
(마키) 1962년 7월 12일, 이들은 런던 마키 클럽에서 롤린 스톤스라는 이름으로 첫 공연을 했다. 재거가 노래와 하모니카, 리처즈와 존스가 기타, 스튜어트가 피아노를 맡았다. 그해 말 공군 복무를 마친 남런던 출신 빌 와이먼이 베이스로, 1963년 1월 광고 회사 디자이너로 일하던 재즈광 찰리 와츠가 드럼으로 들어오며 진용이 갖춰졌다. (올덤) 1963년 봄, 리치먼드의 크로대디 클럽 공연이 입소문을 탔다. 이를 본 열아홉 살의 홍보 담당자 앤드루 루그 올덤이 매니저가 됐고, 밴드는 데카 레코드와 계약했다. 올덤은 단정한 비틀스와 정반대인 반항적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다듬었다. (스튜) 올덤은 여섯 명은 너무 많고 스튜어트의 외모가 그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며 그를 공식 멤버에서 뺐다. 스튜어트는 떠나지 않고 로드 매니저 겸 피아니스트로 남아 평생 밴드 곁을 지켰다. (작곡) 첫 싱글은 척 베리의 「컴 온」이었고, 두 번째 싱글 「아이 워너 비 유어 맨」은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건넨 곡이었다. 두 사람이 눈앞에서 곡을 마무리하는 모습이 자극이 됐다고 재거와 리처즈는 회고했다. 남의 곡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본 올덤이 두 사람을 부엌에 가둬 곡을 쓰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시카고) 1964년 데뷔 앨범이 영국 차트 1위에 올랐고, 그해 6월 첫 미국 투어 중 시카고 체스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우상들의 녹음실에서 만든 「잇츠 올 오버 나우」는 첫 영국 1위 싱글이 됐다. 영국 밴드들이 미국 차트를 휩쓴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침공이라는 뜻)의 한가운데에 그들이 섰다.
아직 남의 곡을 연주하던 시절, 버디 홀리의 곡을 보 디들리의 리듬으로 바꿔 자기 것으로 만든 초기 히트(영국 3위)다. 런던 블루스 클럽의 땀 냄새가 그대로 남아 있다.
- 첫 소절부터 리처즈의 어쿠스틱 기타가 보 디들리 비트(다섯 번 끊어 치는 독특한 리듬 무늬)를 긁어 댄다. 이 리듬 하나가 곡 전체를 끌고 가는 엔진이다.
- 노래 사이사이 거칠게 끼어드는 하모니카는 존스의 연주다. 그가 아직 밴드 소리의 중심에 있던 시절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 드럼은 심벌보다 북을 둥둥 울리는 쪽에 무게가 실려 있고, 마라카스가 함께 흔들리며 원시적인 질감을 만든다.
- 2분이 채 안 되는 길이에 화려한 솔로도 없이 끝까지 몰아친다. 짧고 굵은 클럽 밴드 시절의 형식 그대로다.
III. 만족을 모르는 시대 · 1965–1967
(리프) 1965년 5월 플로리다 클리어워터의 호텔에서, 리처즈는 잠결에 떠오른 리프(곡 전체를 끌고 가는 짧고 반복되는 기타 악절)를 카세트 녹음기에 담았다. 아침에 들어 보니 짧은 리프 뒤로 자신의 코 고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고 그는 자서전 《라이프》에 썼다. 이것이 「(아이 캔트 겟 노) 새티스팩션」이 됐고, 밴드의 첫 미국 1위가 됐다. (자작곡) 1966년 《애프터매스》는 처음으로 전곡을 재거–리처즈의 자작곡으로 채운 앨범이었다. 곡과 크레디트가 두 사람에게 모이면서, 밴드를 처음 모은 존스의 자리는 좁아졌다. (색채) 존스는 대신 소리의 색을 넓혔다. 「페인트 잇 블랙」의 시타르, 「언더 마이 섬」의 마림바, 「레이디 제인」의 덜시머가 그의 손에서 나왔다. 1967년 6월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는 직접 무대에 올라 아직 미국에 낯선 이름이던 지미 헨드릭스를 소개했다. (클라인) 1965년 미국 사업가 앨런 클라인이 데카와의 재협상을 맡아 큰 선급금을 받아 냈다. 그러나 그가 짠 계약 구조 탓에 1971년 이전 녹음과 곡의 권리 상당 부분은 지금도 그의 회사 ABKCO에 남아 있다. (법정) 1967년 2월 리처즈의 서식스 저택 레드랜즈에 경찰이 들이닥쳤고, 6월 재판에서 재거와 리처즈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더 타임스》는 사설로 판결의 과도함을 비판했고, 더 후는 연대의 뜻으로 「더 라스트 타임」과 「언더 마이 섬」을 녹음해 싱글로 냈다. 7월 항소심에서 리처즈의 유죄는 취소됐고 재거는 조건부 방면으로 감형됐다. 같은 해 존스도 마약 사건으로 기소되며 몸과 마음이 무너져 갔다. (방황) 그해 올덤이 떠났고, 밴드가 스스로 제작한 사이키델릭 앨범 《새태닉 머제스티스 리퀘스트》는 엇갈린 평을 받았다. 레논과 매카트니가 코러스로 참여한 싱글 「위 러브 유」가 이 혼란한 해의 기념품처럼 남았다.
끝없는 투어와 광고로 가득한 소비 사회에 대한 짜증을 재거가 냉소적인 화법으로 내뱉은 곡이다. 리처즈의 잠결 리프가 밴드를 세계 정상으로 올려놓았다.
- 리프의 지글거리는 소리는 깁슨의 퍼즈 페달(기타 소리를 일부러 찌그러뜨리는 장치) 마에스트로 퍼즈톤에서 나왔다. 리처즈는 원래 관악기가 연주할 선율을 임시로 표시해 둔 것이라 여겨 그대로 발매되는 데 반대했다고 회고했다.
- 와츠의 드럼은 네 박을 고집스럽게 고르게 두드리고 탬버린이 그 위를 덮는다. 이 우직한 박자가 리프의 긴장을 끝까지 붙들어 둔다.
- 재거는 절에서 중얼거리듯 낮게 깔리다 후렴 직전에 목소리를 끌어올린다. 절과 후렴 사이의 온도 차를 따라 들어 보라.
- 녹음은 할리우드의 RCA 스튜디오에서 했다. 며칠 앞서 시카고 체스 스튜디오에서 하모니카를 넣은 느린 버전을 먼저 시도했다가 버렸다.
상실 뒤 세상 모든 것을 검게 칠하고 싶은 절망을 노래한 곡으로, 존스가 밴드의 소리를 넓히던 시기의 정점이다.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1위에 올랐다.
- 도입부의 휘감기는 선율은 존스가 연주한 시타르(인도의 현악기)다. 같은 무렵 다른 영국 밴드들도 시타르를 썼지만, 이 곡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곡을 이끄는 경우는 드물었다.
- 와츠는 작은 북들(탐탐)을 굴리듯 몰아쳐 행진처럼 밀려오는 리듬을 만든다. 시타르 아래에서 북소리만 따라가 보면 곡의 박동이 또렷해진다.
- 와이먼은 오르간의 발 건반(베이스 페달)을 주먹으로 눌러 낮은 울림을 더했다고 회고했다. 저음부에 깔린 묵직한 웅웅거림을 찾아 들어 보라.
- 후반부에서 재거는 가사 대신 허밍으로 선율을 이어 가고, 악기들이 점점 몰아치며 곡이 끝을 향한다.
IV. 블루스로 돌아가다 · 1968–1972
(밀러) 1968년 미국인 프로듀서 지미 밀러가 오면서 밴드는 뿌리로 돌아갔다. 드러머 출신인 밀러는 그루브(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리듬의 흐름)를 무엇보다 중시했다. 「점핑 잭 플래시」와 《베거스 뱅킷》은 어쿠스틱 기타, 블루스, 컨트리를 중심에 놓았고, 리처즈는 이 무렵 오픈 튜닝(줄을 누르지 않고 쳐도 화음이 울리게 조율을 바꾼 방식)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서커스) 그해 12월 밴드는 텔레비전 특집 《록 앤드 롤 서커스》를 찍었다. 더 후, 존 레논, 에릭 클랩턴, 헨드릭스의 드러머 미치 미첼이 함께했지만, 영상은 공개되지 않고 묻혀 있다가 1996년에야 나왔다. 이것이 존스의 마지막 공식 무대가 됐다. (상실) 존스는 연주를 이어 가기 힘든 상태였고, 유죄 판결 기록 때문에 미국 비자를 받기도 어려웠다. 1969년 6월 그는 밴드를 떠났고, 7월 3일 서식스 자택 수영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검시 결론은 사고사였다. 스물일곱이었다. 이틀 뒤 런던 하이드 파크 무료 공연에서 재거는 셸리의 시를 낭독했고, 존 메이올의 블루스브레이커스 출신 스무 살 믹 테일러가 새 기타리스트로 첫선을 보였다. (앨터몬트) 같은 해 12월, 미국 투어 끝에 캘리포니아 앨터몬트에서 연 무료 공연에서 경비를 맡은 오토바이 클럽 헬스 에인절스와 관객이 충돌해 18세 관객 메러디스 헌터가 숨졌다. 흉기를 쓴 남성은 정당방위가 인정돼 무죄 평결을 받았다. 이 장면은 다큐멘터리 《김미 셸터》에 남아 1960년대 반문화의 끝을 상징하게 됐다. (망명) 1970년 클라인과 결별한 밴드는 자체 레이블을 세우고, 혀와 입술 로고를 처음 단 《스티키 핑거스》(1971)를 냈다. 곧이어 막대한 세금 문제로 프랑스로 건너갔고, 남프랑스 넬코트 저택의 지하에서 이중 앨범 《엑자일 온 메인 스트리트》(1972)를 녹음했다.
베트남 전쟁과 폭력이 번지던 1969년의 불안을, 폭풍을 피할 곳을 찾는 사람의 목소리로 담았다. 같은 해 앨터몬트의 비극과 같은 이름의 다큐멘터리로 묶여 기억된다.
- 도입부에서 리처즈의 기타가 떨리는 효과(트레몰로)를 머금고 멀리서 다가오듯 울리고, 그 아래로 니키 홉킨스의 피아노와 긁어서 소리 내는 라틴 타악기 귀로가 깔린다. 귀로는 프로듀서 지미 밀러가 연주했다.
- 가스펠 가수 메리 클레이턴의 목소리는 이미 녹음된 곡 위에 덧입힌 것(오버더빙)이다. 후반부 그녀 혼자 고음으로 치고 올라가는 대목에서 목소리가 갈라지고, 그 직후 뒤쪽에서 재거가 감탄하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 곡 중반에는 재거의 하모니카 솔로와 리처즈의 날카로운 기타 솔로가 이어진다. 두 악기가 바통을 넘기는 순간에 귀를 기울여 보라.
- 리처즈는 마지막 테이크를 마치자 쓰던 기타의 목이 부러져 떨어졌다고 회고했다. 곡 전체가 무너지기 직전의 긴장으로 팽팽한 것도 그래서인지 모른다.
세금 망명 중 남프랑스 저택 지하에서 녹음한 18곡짜리 이중 앨범이다. 발매 당시엔 평이 엇갈렸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들의 최고작이라는 평론의 합의가 굳었다.
- 영상 카드의 곡은 대표곡 「텀블링 다이스」다. 리처즈의 오픈 G 튜닝 기타가 느슨하게 흔들리고, 이 곡의 베이스는 와이먼이 아니라 믹 테일러가 쳤다.
- 「텀블링 다이스」 끝의 긴 반복 구간(코다)에서 드럼을 친 사람은 와츠가 아니라 프로듀서 지미 밀러였다는 것이 여러 기록에 남아 있다.
- 넬코트 지하의 습하고 울리는 공간 탓에 보컬이 악기 속에 반쯤 묻혀 있다. 가사를 알아듣기보다 소리 전체가 한 덩어리로 출렁이는 느낌을 들어 보라.
- 바비 키스의 색소폰과 짐 프라이스의 트럼펫, 가스펠풍 여성 코러스, 「스위트 버지니아」 같은 컨트리풍 곡까지 이어지며 미국 남부 음악의 지도를 펼쳐 놓은 듯하다.
V. 바뀐 얼굴, 이어진 길 · 1973–1988
(교체) 1973년 발라드 「앤지」가 미국 1위에 올랐지만, 1974년 말 믹 테일러가 탈퇴했다. 이듬해 페이시스의 기타리스트 로니 우드가 투어에 합류해 곧 정식 멤버가 됐다. 리처즈와 우드는 리드와 리듬의 구분 없이 두 기타가 서로를 넘나드는 연주를 즐겼고, 리처즈는 이를 엮어 짜기라고 불렀다. (토론토) 1977년 2월 리처즈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됐다. 이듬해 유죄를 인정한 그에게 법원은 집행유예와 함께 시각장애인 단체를 위한 자선 공연을 명령했고, 그는 1979년 그 공연을 했다. (응답) 펑크가 런던을 휩쓸던 1978년, 밴드는 파리에서 녹음한 《섬 걸스》로 응답했다. 펑크의 속도와 뉴욕 디스코 클럽의 리듬을 함께 받아들인 이 앨범은 「미스 유」를 미국 1위에 올렸고, 미국에서 그들의 가장 많이 팔린 스튜디오 앨범이 됐다. 1981년에는 「스타트 미 업」과 함께 그해 최대 흥행의 미국 투어를 돌았다. (갈림길) 1980년대 중반 재거는 솔로 앨범 《쉬즈 더 보스》(1985)로 밴드 밖의 길을 찾았고, 같은 해 데이비드 보위와 라이브 에이드 자선 싱글 「댄싱 인 더 스트리트」를 불렀다. 밴드를 앞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 리처즈와의 거리는 벌어졌다. 1986년 《더티 워크》를 내고도 투어는 없었고, 리처즈는 1988년 첫 솔로 앨범 《토크 이즈 칩》을 냈다. (스튜) 그 사이 1985년 12월, 이언 스튜어트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레드 제플린의 「록 앤드 롤」에서도 피아노를 쳤던 그는 공식 멤버가 아니었지만, 멤버들은 그를 처음부터 밴드를 붙들어 준 사람으로 기억했다. 이듬해 그들은 런던의 작은 클럽에서 그를 위한 추모 공연을 열었다.
펑크와 디스코가 공존하던 1978년, 디스코 리듬을 받아들여 미국 1위에 오른 곡이다. 늦은 밤 도시를 헤매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의 쓸쓸한 독백처럼 흘러간다.
- 와이먼의 베이스는 한 음을 낮은 음과 높은 음(옥타브)으로 번갈아 튕기는 디스코식 라인으로 곡을 끌고 간다. 이 베이스만 따라가도 곡의 몸놀림이 보인다.
- 와츠는 매 박마다 큰북(베이스 드럼)을 밟는 디스코 비트를 쳤다. 블루스 드러머가 춤곡의 박자를 받아들인 순간이다.
- 울부짖는 하모니카는 파리에서 활동하던 미국인 연주자 슈거 블루의 것이다. 재거의 하모니카와 다른, 더 날카롭고 유려한 소리다.
- 재거는 후렴에서 가성(팔세토)으로 높은 허밍을 하고, 중반에는 노래 대신 말하듯 읊조린다. 같은 사람의 목소리가 얼마나 다른 질감으로 바뀌는지 들어 보라.
- 중반의 색소폰 솔로는 멜 콜린스가 불었다. 클럽용으로 늘인 12인치 판은 8분이 넘는다.
VI. 거대한 순회 · 1989–2020
(재결집) 1989년 재거와 리처즈는 카리브해 바베이도스에서 함께 곡을 쓰며 다시 손을 잡았다. 그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이언 스튜어트의 이름도 함께 새겨졌다. 앨범 《스틸 휠스》와 대규모 스타디움 투어가 이어졌고,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서는 건스 앤 로지스가 오프닝 무대를 맡았다. (와이먼) 1993년 초 와이먼은 30년 만에 밴드를 떠났다. 인생의 절반을 밴드에서 보냈으니 이제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가 밝힌 이유였다. 빈자리는 마일스 데이비스와 스팅의 밴드를 거친 베이시스트 대릴 존스가 객원으로 채웠고, 그는 정식 멤버가 아닌 채로 30년 넘게 무대를 함께하고 있다. (투어) 1990년대 이후 밴드는 앨범보다 투어로 존재했다. 돈 워스가 제작한 《부두 라운지》(1994)가 그래미 최우수 록 앨범상을 받았고, 《어 비거 뱅》(2005)에 이은 투어는 당시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2006년 리우데자네이루 코파카바나 해변 무료 공연에는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다고 보도됐다. 2012년 결성 50주년 공연에는 와이먼과 테일러가 손님으로 올랐다. (뿌리) 그러면서도 출발점을 놓지 않았다. 1981년 시카고의 작은 클럽에서 머디 워터스와 한 무대에 섰던 그들은, 2015년 12월 런던 스튜디오에서 사흘 만에 녹음한 블루스 커버 앨범 《블루 앤드 론섬》을 2016년에 냈다. 에릭 클랩턴이 두 곡에 참여한 이 앨범은 그래미 전통 블루스 앨범상을 받았다. 같은 해 3월에는 쿠바 아바나에서 대규모 무료 공연을 열었다. (기록) 마틴 스코세이지는 2006년 뉴욕 공연을 다큐멘터리 《샤인 어 라이트》(2008)로 남겼다. 반세기 가까이 무대 위의 그들을 지켜본 카메라는 노년의 록 밴드가 무엇일 수 있는지를 새삼 보여 주었다.
VII. 찰리 이후 · 2021–2026
(와츠) 2021년 8월 24일, 찰리 와츠가 런던에서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미국 투어 직전 치료를 이유로 물러나며, 리처즈의 솔로 밴드에서 함께했던 드러머 스티브 조던을 대신 추천했다. 1963년부터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자리였다. 와츠는 록 스타의 생활과 거리를 두고 평생 재즈를 사랑했으며, 1964년 결혼한 아내 셜리와 끝까지 함께했다. (계속) 남은 멤버들은 그가 없는 밴드를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투어를 멈추지 않았다. 조던의 드럼은 와츠의 느긋하게 뒤로 걸리는 박자를 존중하면서 조금 더 단단했다. 2022년에는 결성 60주년 유럽 투어가 이어졌다. (해크니) 2023년 10월, 밴드는 18년 만의 자작곡 앨범 《해크니 다이아몬즈》를 냈다. 30대 초반의 프로듀서 앤드루 와트가 짧은 기간에 작업을 이끌었다. 와츠가 생전에 녹음한 두 곡이 실렸고, 그중 하나에서는 와이먼이 30여 년 만에 베이스로 돌아왔다. 폴 매카트니, 엘턴 존, 레이디 가가, 스티비 원더도 함께했다. 이 앨범은 2025년 그래미 최우수 록 앨범상을 받았다. (원점) 앨범의 마지막 곡은 머디 워터스의 「롤링 스톤 블루스」였다. 재거와 리처즈 단둘이 녹음한 이 곡은, 60여 년 전 밴드가 이름을 빌려 온 바로 그 노래였다. 다트퍼드 기차역에서 블루스 음반으로 말문을 텄던 두 사람이 같은 음악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현재) 2024년 밴드는 북미 스타디움 투어를 돌았다. 2026년 현재 그들은 해체를 선언한 적 없이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와츠를 잃은 뒤 18년 만에 낸 자작곡 앨범이다. 떠난 동료의 마지막 녹음과 옛 동료의 귀환, 여러 세대 음악가들의 참여가 한데 모였다.
- 영상 카드의 곡은 첫 곡이자 대표곡 「앵그리」다. 리처즈의 리프와 스티브 조던의 드럼이 단단하게 맞물리고, 앤드루 와트의 녹음은 1970년대 그들보다 훨씬 선명하고 크게 들린다.
- 「바이트 마이 헤드 오프」에서는 폴 매카트니가 퍼즈를 걸어 거칠게 일그러진 베이스를 쳤다. 펑크처럼 빠른 곡에서 베이스가 앞으로 튀어나오는 대목을 들어 보라.
- 「리브 바이 더 소드」는 와츠의 드럼, 와이먼의 베이스, 엘턴 존의 피아노가 함께한 곡이다. 원년 리듬 섹션이 마지막으로 한 녹음에 모인 순간이다.
- 「스위트 사운즈 오브 헤븐」은 레이디 가가와 스티비 원더가 참여해 가스펠처럼 길게 고조되는 후반부가 백미다.
- 마지막 곡 「롤링 스톤 블루스」는 재거의 노래와 하모니카, 리처즈의 어쿠스틱 기타 단둘의 녹음이다. 밴드 이름의 출처로 돌아가는 맺음말이다.
덜 알려진 이야기
1986년 앨범 《더티 워크》의 마지막 곡이 끝나면, 곡 목록에 없는 30초 남짓의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온다. 몇 달 전 세상을 떠난 이언 스튜어트가 블루스 「키 투 더 하이웨이」를 치는 녹음이다. 공식 멤버에서 빠진 채 20여 년을 곁에 있었던 사람에게 밴드가 보낸 조용한 인사였지만, 크레디트에 없어서 지금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 브라이언 존스는 1968년 모로코의 산골 마을 조우카를 찾아가 그곳 악사들의 연주를 녹음했다. 이 녹음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인 1971년 밴드의 레이블에서 앨범으로 나왔고, 서구 록 음악가가 비서구 전통 음악을 직접 기록해 소개한 초기 사례로 꼽힌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에 가려 음악가로서의 이 호기심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다. 밴드가 1960년대 말 만든 이동식 녹음 트럭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레드 제플린은 이 트럭을 빌려 시골 저택 헤들리 그레인지에서 네 번째 앨범을 녹음했고, 딥 퍼플과 밥 말리의 녹음에도 쓰였다. 이 트럭은 현재 캐나다 캘거리의 국립 음악 센터에 보존돼 있다. 찰리 와츠는 투어 중 묵은 호텔 방을 하나하나 그림으로 남겼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젊은 시절에는 찰리 파커에게 바치는 그림책을 직접 쓰고 그려 1964년에 출간하기도 했다. 무대 밖에서 말수가 적었던 그의 이런 면모는 그가 떠난 뒤에야 널리 알려졌다.
용어 노트 📚🔎
리프
(록에서)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짧은 기타나 베이스 악절이다. 노래보다 먼저 귀에 박혀 곡의 얼굴 노릇을 하기 때문에, 「새티스팩션」은 첫 몇 음만 들어도 무슨 곡인지 알 수 있다. 응원석에서 박수 박자 몇 번만 쳐도 모두가 어떤 응원인지 알아듣고 따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짧고, 반복되고, 금방 따라 할 수 있다는 점이 리프의 힘이다.
리듬 앤드 블루스
(말뜻) 영어 rhythm and blues를 그대로 옮긴 말로, 리듬이 강한 블루스라는 뜻이다. 1949년 미국 음악 잡지 《빌보드》가 흑인 음악 차트에 붙어 있던 인종 음반이라는 차별적인 이름을 대신해 쓰기 시작했다. (록에서) 1940~50년대 미국 흑인 음악가들이 블루스에 강한 박자와 전기 악기를 더해 만든, 춤추기 좋은 음악이다. 척 베리와 보 디들리가 대표적이고, 롤링 스톤스는 처음에 스스로를 이런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로 소개했다. 할머니가 끓이던 담백한 찌개(블루스)에 매운 양념과 센 불(강한 박자)을 더해 젊은 사람 입맛에 맞춘 것에 빗댈 수 있다. 오늘날 R&B라고 하면 1990년대 이후의 매끄러운 팝 음악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아, 이름은 같아도 소리는 꽤 다르다.
퍼즈
(말뜻) 영어 fuzz는 보풀이나 솜털을 뜻한다. 깨끗한 기타 소리에 보풀이 일어난 것처럼 까슬까슬해진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록에서) 기타의 전기 신호를 일부러 찌그러뜨려 굵고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는 장치(퍼즈 페달), 또는 그 소리를 말한다. 1965년 「새티스팩션」이 크게 히트한 뒤 이 장치를 찾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평소 목소리로 말하다가 손바닥으로 입을 반쯤 막고 소리를 내면 뭉개지고 거칠어지는데, 기타 소리를 그렇게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픈 튜닝
(말뜻) open은 열린이라는 뜻이다. 왼손으로 아무 줄도 누르지 않은, 줄이 열려 있는 상태에서 모든 줄을 쳐도 이미 화음이 울린다는 데서 왔다. (록에서) 기타 여섯 줄을 보통과 다른 음높이로 맞춰 두는 방법이다. 리처즈는 오픈 G 튜닝에서 가장 낮은 줄을 아예 빼고 다섯 줄로 연주했고, 「브라운 슈거」와 「스타트 미 업」의 리프가 여기서 나왔다. 손가락 하나로 줄 전체를 눌러도 화음이 되기 때문에 간단한 동작으로 꽉 찬 소리가 난다. 노래방에서 반주의 키를 내 목소리에 맞게 미리 바꿔 두듯, 연주 전에 악기를 곡에 맞게 조율해 두는 셈이다.
브리티시 인베이전
(말뜻) British Invasion, 곧 영국의 침공이라는 뜻이다. 1964년 비틀스가 미국에 상륙해 열풍을 일으키자 미국 언론이 쓴 표현이 그대로 이름이 됐다. (록에서) 1964년부터 몇 년 동안 비틀스, 롤링 스톤스, 더 후 같은 영국 밴드들이 미국 차트를 휩쓴 현상이다. 재미있게도 이 밴드들이 연주한 음악의 뿌리는 미국 흑인 음악이었으니, 미국 음악이 바다를 건너갔다가 새 옷을 입고 돌아온 셈이다. 우리 반에서 만든 놀이가 옆 반에 퍼졌다가, 옆 반 아이들이 규칙을 바꿔 더 재미있게 만든 뒤 우리 반에 다시 유행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오버더빙
(말뜻) over(위에)와 dub(소리를 입히다)가 합쳐진 말이다. 이미 녹음된 소리 위에 소리를 한 겹 더 입힌다는 뜻이다. (록에서) 밴드가 먼저 기본 연주를 녹음한 뒤, 그 녹음을 들으면서 다른 악기나 목소리를 따로 덧녹음하는 일이다. 「김미 셸터」의 메리 클레이턴 보컬도 이미 녹음된 곡 위에 나중에 덧입힌 것이다. 미술 시간에 밑그림과 첫 색칠을 끝내고, 물감이 마르면 그 위에 색을 한 겹씩 더 칠해 그림을 완성하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우리말에서 더빙은 흔히 외국 영화나 만화의 대사를 우리말 목소리로 바꿔 입히는 일을 가리킨다.
가성(팔세토)
(말뜻) 팔세토(falsetto)는 이탈리아어 falso(거짓)에서 왔고, 한자어 가성(假聲)도 거짓(假) 소리(聲)라는 뜻이다. 평소의 진짜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라는 말이다. (록에서) 남성 가수가 성대를 가볍게 떨게 해서 평소 음역보다 훨씬 높은 음을 가늘고 부드럽게 내는 발성이다. 「미스 유」에서 재거가 후렴에 낸 높은 허밍이 그 예다. 친구 앞에서 아기 목소리나 만화 캐릭터 목소리를 흉내 낼 때, 목에 힘을 빼고 높게 내는 소리를 떠올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