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lice
뉴캐슬의 교사와 베이루트에서 자란 드러머, 그리고 가장 노련한 세션 기타리스트가 만나 레게와 펑크와 재즈를 하나의 소리로 엮은 밴드였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스튜어트 코플랜드
드러머로, 중동에서 자란 경험이 복합적인 리듬 감각에 스며들었다.
- 멤버스팅
베이시스트 겸 보컬이자 밴드 대부분 곡을 쓴 주요 작곡가다.
- 멤버앤디 서머스
가장 노련한 세션 경력을 지닌 기타리스트로, 밴드 특유의 화음과 톤을 설계했다.
- 멤버헨리 파도바니
밴드의 첫 기타리스트로, 합류 몇 달 만에 서머스에게 자리를 넘겼다.
- 매니저마일스 코플랜드 3세
스튜어트의 형으로 밴드를 매니지먼트했고, IRS 레코드를 세워 R.E.M.을 발굴했다.
- 프로듀서휴 패덤
《고스트 인 더 머신》과 《싱크로니시티》를 함께 만들며 밴드의 후기 사운드를 다듬었다.
I. 런던에 모인 세 이방인 · 1942–1977
(결성) 1977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됐다. 미국 출신 드러머 스튜어트 코플랜드와 잉글랜드 뉴캐슬 출신 베이시스트 겸 보컬 스팅이 의기투합했고, 초기 기타는 헨리 파도바니가 맡았다가 곧 앤디 서머스로 바뀌었다. 밴드 이름은 코플랜드의 제안으로 알려져 있으며, 권위적이고 도발적인 그 울림이 펑크의 반항적 분위기와 맞아떨어졌다. (코플랜드) 코플랜드는 1952년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정보기관에서 일한 아버지를 따라 카이로와 베이루트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곳에서 접한 아랍 타악기 리듬이 훗날 그의 복합적인 드럼 주법에 짙게 배었다. 런던에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커브드 에어 드러머로 활동하다 새 밴드를 구상했다. (스팅) 본명이 고든 서머인 스팅은 1951년 잉글랜드 뉴캐슬에서 우유 배달부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업이 쇠퇴하던 노동계급 동네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밤에는 재즈 클럽에서 베이스를 연주했고,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 스웨터를 즐겨 입어 벌을 닮았다는 뜻에서 스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머스) 셋 중 가장 연장자인 앤디 서머스는 1942년 잉글랜드 랭커셔주 풀턴르파일드에서 태어났다. 주트 머니 밴드와 소프트 머신 초기 라인업을 거치고 미국에서 에릭 버든 앤드 디 애니멀스에도 몸담은 노련한 세션 기타리스트로, 재즈적 화성과 이펙트 활용 감각을 밴드에 불어넣었다. (펑크) 셋은 1976~77년 런던의 펑크 폭발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재즈와 세션 음악으로 단련돼 또래 펑크 밴드보다 연주력이 뛰어났던 터라 일부 평론가는 가짜 펑크라 의심했지만, 자비로 낸 데뷔 싱글 「폴 아웃」으로 레게와 펑크, 재즈를 뒤섞은 독자적 소리를 만들어갔다. 같은 런던 클럽을 오가던 더 클래시와는 자주 마주친 동시대 밴드였다.
II. 노란 머리와 《아웃랜도스 다무르》 · 1977–1978
(계약) 1978년 A&M 레코드와 계약하고 적은 예산으로 데뷔 앨범 《아웃랜도스 다무르》를 녹음했다. 스튜디오 시간이 부족해 셋이 거의 라이브로 연주하듯 곡을 완성했고, 이 가난한 제작 환경이 오히려 거친 에너지를 살렸다. (록산느) 수록곡 「록산느」는 스팅이 파리의 홍등가 인근에 머물던 경험에서 착안해 쓴 곡으로, 거리의 여성에게 그 일을 그만두라 설득하는 내용 때문에 일부 라디오 방송국이 방영을 꺼렸다. 발매 초기 반응은 미미했지만 꾸준한 플레이와 입소문을 타며 서서히 차트를 역주행했다. (탈색) 세 사람의 상징이 된 탈색 금발 머리는 사실 음악과 무관하게 시작됐다. 급전이 필요해 껌 광고에 출연하면서 머리를 탈색했는데, 그 강렬한 외모가 그대로 밴드의 시각적 정체성으로 굳어졌다. (성공) 「록산느」의 뒤늦은 성공과 끊임없는 클럽·라디오 공연에 힘입어 앨범은 영국과 미국 양쪽에서 입지를 넓혔다. 무명에서 벗어나기까지 셋은 낡은 밴에 장비를 싣고 유럽 곳곳의 작은 공연장을 전전하며 다져온 맷집으로 버텼다.
스팅이 파리의 홍등가 인근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곡으로, 거리의 여성에게 그만두라고 설득하는 노래다. 느린 리듬 위에 거친 호소를 얹은 창법이 밴드를 처음 세상에 알렸다.
- 도입부의 낮은 피아노 화음과 웃음소리는 스팅이 실수로 피아노 건반에 걸터앉으며 생긴 소리를 그대로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 레게가 아니라 탱고에 가까운 느릿한 리듬 위에서 코플랜드의 하이햇이 절제된 엇박을 새긴다.
- 후렴에서 스팅이 가성으로 길게 뻗는 고음은 녹음 당시 한 번에 담아낸 테이크로 전해진다.
- 서머스의 기타는 코드를 가득 채우기보다 빈틈을 두는 재즈적 화음 배치로 곡 전체에 여백을 만든다.
- 라이브에서는 후반부 즉흥 구간을 길게 늘여 공연마다 다르게 변주하곤 했다.
III. 하얀 레게의 신호 · 1979–1980
(정체성) 1979년 두 번째 앨범 《레가타 드 블랑》의 제목은 스스로 만든 말로 하얀 레게라는 뜻이었다. 자메이카 음악 특유의 뒷박 기타 커팅에 펑크의 속도감과 재즈 화성을 입힌 그들만의 어법이 이 시기에 또렷해졌다. (메시지) 「메시지 인 어 보틀」은 섬에 홀로 고립된 이의 외로움을 그린 곡으로, 서머스가 코러스 이펙트 페달로 빚어낸 영롱한 아르페지오 기타가 곡 전체를 떠받쳤다. 발매 즉시 영국 싱글차트 1위에 오르며 밴드를 단숨에 스타덤에 올렸다. (세계투어) 1980년에는 서구 록밴드가 좀처럼 가지 않던 그리스, 이집트, 인도, 멕시코 등지를 도는 이례적인 월드투어를 감행했다. 낯선 무대와 관객을 찾아다닌 이 여정은 이후 《젠야타 몬다타》에 담길 이국적 리듬과 질감에 흔적을 남겼다. (돈스탠드) 「돈트 스탠드 소 클로스 투 미」는 스팅의 교사 경력에서 길어 올린 소재로, 학생과 교사 사이의 긴장을 그려 또 한 번 영국 차트 1위에 올랐고 1982년 그래미상까지 안겼다. (로열티) 밴드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한 곡들을 거의 스팅 혼자 작곡했지만 로열티는 셋이 나누는 구조였다. 이 불균형은 당장 터지지 않았지만, 훗날 밴드를 흔들 균열의 씨앗이 됐다.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고립감을 그린 노래로, 발매 즉시 영국 싱글차트 1위에 오르며 밴드를 스타덤에 올렸다.
- 도입부 아르페지오 리프는 서머스가 코러스 이펙트로 음을 겹겹이 번지게 만든 소리로, 밴드를 상징하는 기타 톤이 됐다.
- 두 음 이상을 더 얹은 열린 화음(애드나인 코드)으로 쌓은 그 리프는 단순한 세 음 화음보다 한층 영롱한 울림을 낸다.
- 코플랜드의 드럼은 레게의 엇박 커팅과 록의 직선적 비트를 오가며 긴장과 추진력을 동시에 만든다.
- 후반부 합창 구간에서 세 사람의 목소리가 겹겹이 쌓이며 번지듯 울린다.
- 베이스는 화려한 움직임 대신 멜로디를 받치는 쪽에 머물러 곡 전체의 균형을 잡는다.
이례적인 월드투어 직후 완성한 세 번째 앨범으로, 여기 실린 「돈트 스탠드 소 클로스 투 미」는 1982년 그래미상을 받았다.
- 대표곡 「돈트 스탠드 소 클로스 투 미」는 서늘한 신시사이저음 위에 교사와 학생 사이의 긴장을 그려낸다.
- 앨범 전반에서 세계투어로 다져진 단단한 라이브 합주 호흡이 느껴진다.
- 「드 두 두 두, 드 다 다 다」는 뜻보다 소리의 리듬감 자체를 즐기는 보컬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다.
- 서머스의 기타는 같은 리프를 반복하기보다 곡마다 화음 색채를 바꿔가며 다른 질감을 입힌다.
IV. 유령과 동시성의 정점 · 1981–1983
(사운드변화) 1981년 《고스트 인 더 머신》부터는 색소폰과 신시사이저를 전면에 끌어들였다. 제목은 아서 쾨슬러의 동명 저서에서 따왔고, 기계화된 현대 사회에 대한 불안과 냉전기의 정치적 긴장이 가사 곳곳에 스며들었다. (조세망명) 카리브해의 작은 섬 몬트세랫의 에어 스튜디오에서 앨범을 녹음했다. 런던의 리허설룸 대신 열대 섬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생활은 셋 모두에게 낯설고도 생산적인 경험이었다. (동시성) 1983년 《싱크로니시티》의 제목 역시 쾨슬러를 거쳐 접한 카를 융의 동시성 개념에서 왔다. 앨범 전반에는 내밀한 성찰과 불안이 짙게 깔렸고, 그 정서는 대표곡 「킹 오브 페인」의 음울한 이미지들로 구체화됐다. (쉬어스타디움) 1983년 뉴욕 쉬어 스타디움 공연은 스팅이 무대에서 비틀스에게 경기장을 빌려줘서 고맙다고 인사한 일화로 회자되며 밴드의 상업적 정점을 상징했다. 감시와 집착을 그린 「에브리 브레스 유 테이크」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랑 노래로 오해받으며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 됐다. (긴장) 정점의 순간에도 녹음실 공기는 무거웠다. 《싱크로니시티》 세션 당시 서머스와 코플랜드, 스팅이 서로 다른 부스에서 따로 녹음했다는 사실은 훗날 다큐멘터리 《에브리원 스테어스》에서 세 사람이 직접 밝혔다.
《고스트 인 더 머신》에 실린 곡으로, 짝사랑의 설렘과 망설임을 그린 밴드 치고는 보기 드물게 밝은 노래다.
- 곡을 여는 피아노 선율이 기타 대신 멜로디를 이끄는 드문 구성으로, 신시사이저를 두텁게 쌓아 만든 풍성한 사운드가 특징이다.
- 스팅의 가성 코러스가 여러 겹으로 쌓여 후렴을 포근하게 감싼다.
- 코플랜드의 드럼은 타이트한 디스코풍 비트에 가까워 이전 앨범들의 날카로운 레게 비트와는 결이 다르다.
- 브리지 구간에서 짧게 등장하는 신시사이저 음색 변화는 당시 밴드의 전자악기 실험을 보여준다.
밴드의 상업적 정점을 찍은 마지막 정규 앨범으로, 내밀한 불안과 성찰이 짙게 깔려 있다.
- 대표곡 「킹 오브 페인」은 어둡고 음울한 이미지를 나열하는 화법 위에 신시사이저와 마림바 음색이 서늘하게 깔린다.
- 앨범 전반에서 세 사람이 따로 녹음한 트랙이 많아 레이어가 겹겹이 쌓인 구조가 두드러진다.
- 「신크로니시티 II」는 일상의 권태와 격렬한 분노가 교차하는 구성으로 긴장감을 만든다.
- 타이틀곡 「신크로니시티 I」은 빠른 신시사이저 패턴 위에 코플랜드의 겹친 리듬(폴리리듬) 드러밍이 얹히며 앨범의 문을 연다.
집착과 감시를 그린 노래지만 널리 사랑 노래로 오해받으며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 됐다.
- 곡을 여는 기타 리프는 서머스가 열린 화음(애드나인 코드)을 단 한 번의 테이크로 쳐낸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수많은 곡에 인용되는 상징적 리프가 됐다.
- 코플랜드의 드럼은 화려한 채움 대신 절제된 패턴을 고수해 긴장감을 쌓아 올린다.
- 현악 편곡이 후반부에 조용히 더해지며 곡의 서늘한 정서를 한층 짙게 만든다.
- 스팅의 보컬은 절제된 저음으로 집착에 가까운 어조를 담담하게 읊조리듯 들려준다.
- 1997년 퍼프 대디가 이 리프를 샘플링해 전혀 다른 애도의 노래로 되살리기도 했다.
V. 침묵으로 끝난 밴드 · 1984–1986
(해체수순) 1983~84년 월드투어를 마친 뒤 셋은 각자의 작업으로 흩어졌다. 1986년 새 앨범을 위해 다시 모였지만 방향에 대한 이견이 컸고, 같은 해 코플랜드가 승마 사고로 쇄골이 부러지면서 녹음은 거듭 지연됐다. (마지막무대) 1986년 국제앰네스티의 인권 콘서트 투어 '희망의 음모'에 참여해 공연한 것이 완전체로서는 사실상 마지막 무대가 됐다. 같은 해 「돈트 스탠드 소 클로스 투 미 '86」 등 재녹음을 시도했으나 새 앨범 발매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각자의길) 이후 스팅은 재즈와 월드뮤직 연주자들을 끌어들인 솔로 활동으로 독자적 입지를 넓혔고, 코플랜드는 영화와 드라마 음악 작곡으로, 서머스는 솔로 기타 앨범과 사진 작업으로 각자의 길을 걸었다. (유산) 밴드의 해체는 소리 소문 없이 이뤄졌지만 남긴 유산은 뚜렷했다. 코플랜드의 형 마일스 코플랜드 3세가 매니저로서 운영한 IRS 레코드는 훗날 R.E.M.을 비롯한 미국 얼터너티브 밴드들을 발굴하며 두 세대의 음악을 잇는 다리가 됐다.
VI. 재결합의 짧은 여름 · 2007–2026
(재결합) 2007년 그래미 시상식 오프닝에서 「록산느」를 함께 연주하며 재결합을 알렸고, 곧이어 결성 30주년 기념 재결합 월드투어가 발표됐다. (투어) 2007~2008년 재결합 투어는 그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투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다. 옛 히트곡들을 한층 재즈적으로 재해석한 무대는 전성기를 모르는 젊은 세대 관객까지 불러들였다. (이후) 투어가 끝난 2008년 이후 새 앨범 작업으로는 이어지지 않았고, 셋은 다시 각자의 활동으로 돌아갔다. (영향) 1997년 퍼프 대디가 「에브리 브레스 유 테이크」를 샘플링해 만든 「아윌 비 미싱 유」가 빌보드 1위에 오르며 원곡에 막대한 저작권료를 안긴 일화는 이 곡이 세대를 넘어 되살아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레게와 펑크, 재즈를 가로지른 밴드의 어법은 이후 등장한 수많은 뉴웨이브·얼터너티브 밴드에 교과서처럼 참조됐다.
덜 알려진 이야기
스튜어트 코플랜드는 폴리스가 떠오르던 1978~79년, '클라크 켄트'라는 가면을 쓴 가상의 인물로 솔로 싱글과 EP를 발표했다. 초록색 작업복과 마스크 차림으로 방송에 출연하면서도 자신이 폴리스의 드러머라는 사실을 한동안 밝히지 않았는데, 이 이중생활은 훗날 평전들을 통해서야 자세히 알려졌다. 지금은 셋이 결성 초기부터 트리오였던 것으로 흔히 그려지지만, 헨리 파도바니가 완전히 떠나기 전 짧은 기간 동안 서머스가 합류해 두 기타리스트 체제로 공연한 때가 있었다. 단순화된 밴드 서사에서는 자주 생략되는 대목이다. 세 번째 앨범 제목 《젠야타 몬다타》는 어떤 언어로도 실제 뜻이 없는 말이다. 멤버들은 인터뷰에서 그저 소리의 느낌이 마음에 들어 지어낸 말이라고 밝혔는데, 듣는 이들은 종종 숨은 번역을 찾으려다 허탕을 친다.
용어 노트 📚🔎
레게
(록에서) 자메이카에서 태어난 음악 장르로, 박자의 뒷부분을 기타나 건반으로 끊어 치는 특유의 리듬이 특징이다. 다 같이 치는 박수를 한 박 어긋나게 쳐보면 그 들썩이는 흥이 레게 리듬의 정서에 가깝다. 폴리스는 이 뒷박 기타 커팅에 펑크와 재즈를 섞어 자신들만의 하얀 레게를 만들었다.
뉴웨이브
(말뜻) 영어로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이다. (록에서) 1970년대 말 펑크의 반항적 에너지에 신시사이저와 팝적인 멜로디 감각을 더해 등장한 흐름을 가리킨다. 체육시간에 전통적인 규칙에 새 규칙 하나를 얹어 변형 게임을 만드는 것처럼, 뉴웨이브는 펑크라는 틀에 전자음향과 세련된 편곡이라는 새 규칙을 더한 음악이었다. 폴리스는 레게까지 더해 그중에서도 독자적인 소리를 냈다.
코러스 이펙트
(말뜻) 코러스는 합창을, 이펙트는 효과를 뜻하는 영어 단어다. (록에서) 기타 소리를 아주 살짝 어긋난 시간차로 복제해 겹쳐 들려주는 음향 장치로, 한 사람이 치는 기타가 마치 여러 명이 살짝 다른 타이밍으로 합창하듯 들리게 만든다. 여러 친구가 똑같은 노래를 아주 살짝 다른 박자로 따라 부를 때 소리가 풍성하게 번지는 것과 비슷하다. 앤디 서머스는 이 장치를 적극 활용해 폴리스 특유의 영롱한 기타 음색을 만들었다.
폴리리듬
(말뜻) 그리스어로 여럿을 뜻하는 '폴리'와 리듬이 합쳐진 말로, 여러 개의 리듬이라는 뜻이다. (록에서) 서로 다른 박자 단위의 리듬을 동시에 겹쳐 연주하는 기법이다. 한 손으로는 3박자를, 다른 손으로는 4박자를 동시에 두드리는 놀이를 떠올리면 된다 — 어긋나는 듯하면서도 일정한 간격으로 다시 맞아떨어지는 긴장감이 매력이다. 중동에서 자란 코플랜드의 드럼 연주에는 이런 겹쳐진 리듬 감각이 짙게 배어 있었다.
당김음
(말뜻) 뒤에 오는 음을 앞으로 당겨 친다는 뜻에서 붙은 말이다. 영어 싱커페이션은 그리스어로 잘라낸다는 뜻의 말에서 왔다. (록에서) 원래 강하게 떨어져야 할 박자 대신 그 사이 약한 박이나 엇박에 음을 두어 리듬에 들썩임을 주는 기법이다. 줄넘기를 할 때 박자에 딱 맞춰 뛰지 않고 한 박 먼저 살짝 뛰어올라 타이밍을 비트는 것과 비슷하다. 레게와 펑크 모두 이를 즐겨 쓰며, 폴리스 음악의 들썩이는 느낌도 여기서 나온다.
애드나인 코드
(말뜻) 기본 화음에 아홉 번째 음을 하나 더했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록에서) 세 음으로 쌓는 기본 화음에 한 음을 더 얹어 더 영롱하고 열려 있는 느낌을 내는 화음이다. 기본 레시피에 향신료 하나를 더 넣어 풍미를 깊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서머스는 이 화음을 즐겨 써서 「메시지 인 어 보틀」이나 「에브리 브레스 유 테이크」 특유의 반짝이는 기타 사운드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