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ks
런던 북부의 작은 거리에서 출발해, 영국의 보통 사람들을 가장 다정하고 쓸쓸하게 노래한 밴드.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레이 데이비스
보컬과 리듬 기타를 맡고 거의 모든 곡을 쓴 밴드의 작곡가이자 영국 일상의 관찰자다.
- 멤버데이브 데이비스
레이의 동생이자 리드 기타리스트로, 찢어진 앰프로 「유 리얼리 갓 미」의 굉음을 만들었다.
- 멤버피트 퀘이프
레이의 학교 친구이자 원년 베이시스트로 1969년 밴드를 떠났고 2010년 세상을 떠났다.
- 멤버믹 에이버리
1964년부터 1984년까지 스무 해 동안 드럼을 맡았고 이후 콩크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 프로듀서셸 탤미
미국 출신 프로듀서로 초기 히트곡들을 녹음했으며 같은 시기 더 후의 데뷔도 맡았다.
- 영향피트 타운센드
더 후의 기타리스트로, 「아이 캔트 익스플레인」이 킹크스를 본뜬 곡이라고 스스로 인정했다.
I. 머스웰 힐의 형제들 · 1944–1963
(머스웰힐) 1963년, 영국 런던 북부 머스웰 힐에서 결성됐다. 그 뿌리는 스무 해쯤 앞선다. 레이 데이비스는 1944년 6월, 동생 데이브는 1947년 2월에 이 동네 포티스 그린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프레드와 어머니 애니 사이에는 딸 여섯이 먼저 있었고, 두 형제는 늦게 얻은 아들들이었다. 주말이면 누나들의 남자친구들이 드나들었고, 거실 피아노 둘레에서는 뮤직홀 노래와 재즈, 미국 대중가요가 울렸다. 레이는 훗날 이 시끄럽고 따뜻한 집을 자기 음악의 첫 교실로 회고했다. (르네) 1957년, 레이의 열세 번째 생일 무렵 누나 르네가 스페인식 통기타를 선물했다. 르네는 그날 밤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다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오래 앓던 심장 질환 탓이었다. 레이는 이 일을 여러 인터뷰와 자서전에서 되풀이해 이야기했다. 기타와 상실이 같은 날 찾아온 기억, 그리고 누나들이 사랑한 무도회장의 풍경은 수십 년 뒤 「컴 댄싱」으로 돌아온다. (학교) 레이는 윌리엄 그림쇼 중등학교에서 피트 퀘이프를 만나 함께 연주를 시작했다. 1943년 데번주 태비스톡에서 태어나 머스웰 힐에서 자란 퀘이프는 베이스를 맡았고, 데이브는 십 대 초반부터 형보다 거칠고 큰 소리로 리드 기타를 쳤다. 내성적인 관찰자였던 형과 무대 위에서 폭발하는 동생의 대비는 처음부터 밴드의 성격이 됐다. 레이는 혼지 미술대학에서 미술과 무대를 공부하며 런던의 블루스 클럽을 드나들었다. (이름) 밴드는 레이 데이비스 쿼텟, 레이븐스 같은 이름을 거쳤다. 상류층 출신의 젊은 사업가 로버트 웨이스와 그렌빌 콜린스가 매니저로 붙으면서 1963년 말 프로 활동이 시작됐다. 킹크스라는 이름은 당시 런던 패션의 별난(kinky) 유행에서 따온 것이라고 전해진다.
II. 찢어진 스피커 · 1964–1965
(계약) 1964년 초 밴드는 파이 레코드와 계약했고, 미국 출신 프로듀서 셸 탤미가 녹음을 맡았다. 드럼에는 하트퍼드셔주 칩핑 바넷 태생의 믹 에이버리가 합류했다. 에이버리는 그 전에 결성 초기의 롤링 스톤스 리허설에 몇 차례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틀 리처드의 곡을 다시 부른 첫 싱글과 두 번째 싱글은 모두 차트에 오르지 못했고, 레이블은 세 번째 싱글에 밴드의 운명을 걸었다. (앰프) 데이브는 작은 엘피코 앰프의 스피커 콘을 면도날로 찢고, 그 소리를 복스 AC30 앰프에 연결했다. 갈라지고 웅웅대는 이 음색을 앞세운 「유 리얼리 갓 미」가 1964년 8월 발매돼 9월 영국 1위에 올랐다. 이어 「올 데이 앤드 올 오브 더 나이트」가 2위, 「타이어드 오브 웨이팅 포 유」가 1위를 차지했다. 같은 탤미가 프로듀싱한 더 후의 첫 싱글 「아이 캔트 익스플레인」에 대해 피트 타운센드는 킹크스를 본떴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봄베이) 1965년 초 아시아·오세아니아 투어 중 봄베이(오늘날 인도 뭄바이)에 들른 레이는 새벽에 어부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 기억에서 인도 음악처럼 한 음을 길게 깔아 두는 지속음(드론)을 쓴 「시 마이 프렌즈」가 나왔다. 비틀스가 시타르를 녹음하기 몇 달 앞선 시도였다. (금지) 1965년 여름 미국 투어 뒤 킹크스는 미국 음악가 노조의 허가를 받지 못해 1969년까지 미국 무대에 서지 못했다. 공식 사유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영국 침공의 동료들이 미국 시장을 휩쓰는 동안 킹크스는 섬나라에 묶였고, 평론가들은 이 고립이 레이의 시선을 영국 안쪽으로 돌려놓았다고 본다.
두 번의 실패 뒤 세 번째 싱글로 영국 1위에 오른 곡. 찢어진 앰프 하나가 무명 밴드의 운명을 바꿨다.
- 도입 리프는 두 음만 눌러 굵게 울리는 화음(파워 코드) 두 개를 엇박으로 오간다. 데이브가 면도날로 찢은 엘피코 앰프를 복스 AC30에 연결해 만든, 소리를 일부러 찢어지게 왜곡한 음색(디스토션)을 첫 두 마디에서 집중해 들어 보자.
- 같은 리프가 곡이 진행되며 한 음씩 높은 자리로 옮겨 간다(전조). 첫 절과 후렴 진입부를 비교하면 음높이가 계단처럼 올라가며 긴장이 쌓이는 것이 들린다.
- 중반의 기타 솔로는 정교함보다 충동에 가깝다. 데이브가 직접 연주한 이 짧고 거친 솔로는 훗날 하드록과 펑크 기타의 원형 중 하나로 꼽힌다.
- 싱글의 드럼은 에이버리가 아니라 세션 드러머 바비 그레이엄이 쳤다. 셸 탤미가 프로듀싱한 런던 녹음으로, 전체 길이는 2분 남짓에 불과하다.
III. 영국을 바라보다 · 1966–1968
(풍자) 초기 매니지먼트와 음악 출판사를 둘러싼 소송이 이어지면서 인세가 오랫동안 묶였다. 이 경험은 레이를 돈과 계급, 체면을 냉정하게 관찰하는 작가로 바꿔 놓았다. 「어 웰 리스펙티드 맨」은 중산층의 점잖은 위선을, 「데디케이티드 팔로워 오브 패션」은 카너비 거리의 유행 좇기를 비꼬았다. 1966년 여름 영국 1위에 오른 「서니 애프터눈」은 세금으로 재산을 잃은 부자의 나른한 한탄이었다. 영국 밴드들이 미국 블루스를 따라 하던 시기에 레이는 할머니 세대의 뮤직홀 화법으로 돌아갔다. (형제) 1966년 퀘이프가 교통사고로 다치자 존 돌턴이 잠시 그 자리를 메웠다. 퀘이프는 복귀했지만 형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밴드 안에서 점점 지쳐 갔다. 레이와 데이브의 경쟁과 충돌은 두 사람이 각자의 자서전에서 직접 털어놓은 바 있다. 1967년 데이브는 솔로 싱글 「데스 오브 어 클라운」을 영국 3위에 올리며 자기 목소리를 확인했다. (노을) 1967년 레이는 프로듀서 역할까지 직접 맡아 「워털루 선셋」을 내놓았다. 템스강 위 노을을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외로운 화자의 노래는 영국 2위에 올랐고, 지금까지 런던을 노래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자주 꼽힌다. 같은 해 앨범 《섬싱 엘스》가 나왔다. (보존회) 1968년 11월 《킹크스는 빌리지 그린 보존회》가 나왔다. 사라져 가는 마을 풍경, 증기기관차, 낡은 사진첩을 노래한 이 앨범은 사이키델리아의 한복판에서 철저히 시대를 거슬렀고 영국 차트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쳐 평가가 뒤집혀 오늘날 킹크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소송으로 인세가 묶인 시기, 레이는 돈을 잃은 부자의 한탄을 뮤직홀 화법으로 비틀었다. 1966년 여름 영국 1위.
- 도입부 피아노와 함께 한 계단씩 아래로 내려가는 베이스 라인이 곡 전체의 뼈대다. 퀘이프의 베이스를 따라가면 화음이 차례로 가라앉는 느낌이 선명하다.
- 레이의 보컬은 하품하듯 늘어진 1인칭 독백이다. 몰락한 부자의 자기연민을 진지하게도, 우스꽝스럽게도 들리게 하는 이중의 어조가 이 곡의 핵심이다.
- 느릿하게 걷는 박자와 오래된 영국 극장 노래(뮤직홀)의 분위기는, 같은 해 여름의 사이키델릭한 히트곡들과 정반대 방향이었다.
- 후렴에서 겹쳐 들어오는 높은 배경 화음은 나른한 독백 위로 묘하게 밝은 빛을 비춘다.
레이가 처음으로 프로듀서까지 맡은 곡. 창가에서 템스강의 노을과 군중을 내려다보는 고독한 관찰자의 노래다.
- 도입부 기타의 하강 악구에는 메아리처럼 되울리는 효과가 걸려 있다. 이 짧은 소리 하나가 강 위로 번지는 저녁 빛처럼 곡 전체의 분위기를 정한다.
- 베이스는 기타 선율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또 하나의 가락(대선율)을 그린다. 절 부분에서 베이스만 따라 들어 보면 곡이 얼마나 정교하게 짜였는지 알 수 있다.
- 레이는 처음에 리버풀의 노을을 염두에 두었다가 런던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곡 속 연인이 특정 배우 커플이라는 소문은 본인이 부인했다.
- 배경 코러스는 가사를 말하기보다 소리의 결로 감싸는 역할을 한다. 화자의 외로움과 도시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들려주는 장치다.
발매 당시 영국 차트에 오르지 못했지만 지금은 밴드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사라지는 것들을 지키려는 레이의 영국 소묘집이다.
- 2~3분짜리 짧은 곡 열다섯 편이 단편 소설집처럼 이어진다. 한 편의 줄거리 대신 마을 풍경, 옛 친구, 고양이, 증기기관차 같은 장면들이 하나의 정서로 묶이는 형식(콘셉트 앨범)이다.
- 이 카드의 영상 「픽처 북」은 낡은 가족 사진첩을 넘기는 곡이다. 에이버리의 경쾌한 드럼과 밝은 박수 소리 아래로 흐르는 쓸쓸함에 귀 기울여 보자.
- 세션 연주자 니키 홉킨스의 건반과, 녹음테이프로 플루트·현악 소리를 내는 건반 악기(멜로트론)가 곳곳에서 옛날 사진 같은 색을 입힌다.
- 첫 곡인 타이틀곡은 지켜야 할 것들의 목록을 늘어놓는 선언문 같은 화법이다. 진지함과 장난기가 반반 섞인 레이 특유의 어조가 앨범 전체의 열쇠다.
IV. 아서와 롤라 · 1969–1971
(작별) 1969년 원년 베이시스트 피트 퀘이프가 밴드를 떠났고, 존 돌턴이 정식 멤버가 됐다. 퀘이프는 이후 덴마크와 캐나다에서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삽화가로 살았다. 같은 해 미국 노조의 금지가 풀려 킹크스는 4년 만에 미국 투어를 재개했다. 그러나 그사이 미국 무대의 주인공들은 이미 바뀌어 있었고, 밴드는 작은 공연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아서) 같은 해 앨범 《아서》가 나왔다. 그라나다 텔레비전의 드라마로 기획돼 레이가 작가 줄리언 미첼과 대본을 함께 썼으나 드라마는 끝내 제작되지 않았다. 주인공 아서의 모델은 1964년 레이의 누나 로즈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한 매형 아서 애닝이었다. 제국의 쇠락과 전후 노동계급의 체념을 한 가족의 이야기로 엮은 이 앨범은, 몇 달 앞선 더 후의 《토미》와 함께 한 편의 이야기를 음반 전체로 들려주는 록 오페라의 초기 사례로 거론된다. (롤라) 1970년 키보드 연주자 존 고슬링이 합류했고, 「롤라」가 영국 2위, 미국 9위에 올라 밴드를 다시 세계 무대로 끌어올렸다. 가사에 나오는 콜라 상표가 BBC의 광고 금지 규정에 걸리자 레이는 미국 투어 도중 런던으로 날아가 그 한 단어를 다시 녹음했다. 이 곡이 실린 앨범 《롤라 대 파워맨과 머니고라운드 1부》는 소송과 계약에 시달린 경험을 음반 산업 풍자로 그대로 옮겼다. (힐빌리) 1971년 RCA로 옮긴 밴드는 《머스웰 힐빌리스》를 냈다. 도심 재개발로 교외 공영주택에 밀려난 런던 노동계급 가족의 이야기에 컨트리와 뮤직홀이 섞였다. 판매는 저조했지만 평단은 레이의 가장 사적인 작품 중 하나로 높이 평가했다.
미국 무대 복귀 직후 밴드를 다시 세계 차트에 올린 곡. 콜라 상표 한 단어 때문에 레이는 투어 중 대서양을 건너 재녹음해야 했다.
- 도입부 어쿠스틱 기타의 쇳소리 섞인 밝은 울림은, 금속 공명통이 달린 기타(도브로)와 일반 통기타를 겹쳐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 화자는 런던 클럽에서 만난 사람과의 하룻밤을 놀라움과 따뜻함이 섞인 1인칭으로 털어놓는다. 판단하거나 조롱하지 않는 어조가 1970년의 히트곡으로서는 이례적이었다.
- BBC 방송 규정 때문에 콜라 상표 한 단어를 다른 말로 바꿔 덧녹음(오버더빙)했다. 판본에 따라 그 한 단어가 다르게 들리니 비교해 들어 볼 만하다.
- 느린 도입에서 빠른 후렴으로 넘어가며 템포가 확 바뀌고, 데이브의 일렉트릭 기타가 중간 다리 부분을 받친다.
V. 무대 위의 연극 · 1972–1976
(쇼비즈) 1972년 《에브리바디즈 인 쇼비즈》는 스튜디오 반과 라이브 반으로 이뤄졌다. 끝없는 투어와 호텔 방의 권태, 길 위의 피로가 곡마다 배어 있었고, 마지막 곡은 할리우드의 덧없는 영광을 노래한 「셀룰로이드 히어로즈」였다. 이 무렵 밴드는 브라스 섹션과 코러스를 무대에 세우며 점점 극단에 가까운 모습이 됐다. (콩크) 1973년 밴드는 런던 혼지에 자기 스튜디오 콩크를 마련했다. 레이블과 외부 스튜디오의 시간표에서 벗어나 원하는 만큼 녹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같은 해 데이비드 보위는 1960년대 영국 노래를 다시 부른 앨범 《핀 업스》에 킹크스의 「웨어 해브 올 더 굿 타임스 곤」을 실어 존경을 표했다. (화이트시티) 1973년 7월 런던 화이트 시티 스타디움 공연에서 레이는 무대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선언은 곧 거둬졌고, 레이는 오히려 더 큰 규모의 작업으로 돌아왔다. (오페라) 이후 몇 년은 《프리저베이션》 1막과 2막, 《솝 오페라》, 《스쿨보이즈 인 디스그레이스》 같은 연극형 앨범으로 채워졌다. 마을 공동체를 집어삼키는 개발업자와 혁명가의 대결, 록 스타를 꿈꾸는 평범한 회사원, 학창 시절의 수치 같은 이야기가 무대 의상과 배우들과 함께 펼쳐졌다. 레이에게는 시대 비판과 무대 연출의 실험이었지만 판매는 부진했고, 팬과 평단 일부에서는 초기의 단단한 기타 록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컸다. 1975년 RCA와의 계약이 끝나면서 한 시대가 마무리됐다.
투어의 피로를 담은 《에브리바디즈 인 쇼비즈》의 마지막 곡. 화려한 스타들도 결국 보도블록 위 이름으로 남는다는 쓸쓸한 성찰이다.
- 6분이 넘는 긴 곡으로, 짧은 싱글 중심이던 초기 킹크스와 확연히 다른 호흡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쌓아 올리는 구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보자.
- 존 고슬링의 피아노가 곡의 중심을 잡는다. 기타는 뒤로 물러나 피아노 주위를 장식하는 역할에 머문다.
- 화자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를 걸으며 바닥에 새겨진 스타들의 이름을 하나씩 떠올린다. 레이의 보컬은 노래라기보다 조용한 낭독에 가까운 어조로 시작해 후반으로 갈수록 감정이 차오른다.
- 후반부로 갈수록 코러스와 악기가 하나씩 더해지며 고조된다. 라이브에서는 관객이 함께 부르는 곡으로 자리 잡았다.
VI. 아레나의 귀환 · 1977–1984
(아리스타) 1976년 아리스타 레코드의 클라이브 데이비스와 계약하면서 밴드는 연극을 내려놓고 단단한 록으로 돌아왔다. 1977년 《슬립워커》가 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멤버도 바뀌었다. 돌턴과 고슬링이 떠나고, 아르젠트 출신 베이시스트 짐 로드퍼드와 키보드 연주자 이언 기번스가 자리를 잡았다. (경기장) 1978년 밴 헤일런이 「유 리얼리 갓 미」를 다시 녹음해 히트시키면서 미국의 젊은 하드록 팬들이 원곡을 찾아 들었다. 같은 해 영국에서는 잼이 「데이비드 와츠」를 다시 불러 펑크 세대의 존경을 보여 주었다. 1979년 《로 버짓》은 미국 앨범 차트 11위로 밴드 최고 기록을 세웠고, 킹크스는 미국 경기장 무대를 채우는 밴드가 됐다. 1980년 라이브 앨범 《원 포 더 로드》가 그 시절의 열기를 기록했다. (무도회장) 1983년 「컴 댄싱」이 미국 6위, 영국 12위에 올랐다. 춤추러 다니던 누나들, 그리고 헐려 주차장이 된 동네 무도회장의 기억이 바탕이었다. 1957년 르네를 잃은 기억이 26년 만에 밴드의 가장 대중적인 노래 중 하나로 돌아온 셈이었다. 줄리언 템플이 연출한 뮤직비디오는 갓 출범한 MTV에서 자주 방송됐다. (에이버리) 1984년 창단 이래 스무 해 동안 드럼을 지킨 믹 에이버리가 밴드를 떠나 콩크 스튜디오 운영을 맡았다. 후임은 로드퍼드와 같은 아르젠트 출신 밥 헨릿이었다. 원년 멤버로는 이제 데이비스 형제만 남았다.
1957년에 잃은 누나 르네와 사라진 동네 무도회장의 기억에서 태어난 곡. 미국 6위로 밴드의 마지막 대형 히트가 됐다.
- 경쾌하게 튀는 브라스와 통통 튀는 리듬이 옛 무도회장의 흥겨움을 되살린다. 1980년대 신시사이저 팝 한가운데서 뮤직홀의 정서를 고집한 사운드다.
- 화자는 어린 시절 무도회장에 가던 누나를 회상하는 동생이다. 밝은 반주 아래 깔린 상실의 정서를 의식하며 들으면 곡이 전혀 다르게 들린다.
- 레이의 보컬은 이야기꾼의 말투에 가깝다. 노래하듯 말하고 말하듯 노래하는 이 화법은 그가 「서니 애프터눈」 시절부터 다듬어 온 것이다.
- 줄리언 템플이 연출한 뮤직비디오는 레이가 직접 무도회장의 남자로 연기하며, MTV를 통해 미국의 새 세대에게 밴드를 다시 알렸다.
VII. 마지막 무대 · 1985–1996
(MCA) 1986년 MCA로 옮긴 밴드는 《싱크 비주얼》과 《UK 자이브》를 냈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1990년 레이, 데이브, 퀘이프, 에이버리 네 원년 멤버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시상식에는 오랜만에 퀘이프도 함께 섰다. (브릿팝) 1990년대 중반 블러와 오아시스 같은 젊은 영국 밴드들이 킹크스의 영국적 관찰과 선율을 자신들의 계보로 내세우며 재평가가 일었다.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레이 데이비스를 존경하는 작곡가로 여러 차례 꼽았다. 미국 대신 영국의 골목과 펍, 공영주택을 노래한 킹크스의 선택이 30년 만에 한 세대의 표준이 된 셈이었다. (회고) 1993년 컬럼비아에서 《포비아》를 냈고, 1994년에는 어쿠스틱 편곡을 중심으로 옛 곡을 다시 부른 라이브 앨범 《투 더 본》이 나왔다. 같은 해 레이는 자서전적 소설 《X-레이》를 펴냈고, 이후 낭독과 노래를 엮은 혼자만의 공연을 따로 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에는 데이브도 자서전 《킹크》를 냈다. 형제는 같은 시절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기록했다. (멈춤) 1996년 공연을 끝으로 밴드는 공식 해체 발표 없이 활동을 멈췄다. 이후 형제는 각자 솔로로 걸었다. 퀘이프는 2010년 오랜 신장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고, 로드퍼드는 2018년, 기번스는 2019년 세상을 떠났다. 재결합 이야기는 여러 차례 나왔지만 새 앨범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33년 동안 그들은 찢어진 스피커의 굉음에서 출발해, 영국 보통 사람들의 다정한 기록자로 남았다.
덜 알려진 이야기
1960년대 중반 런던에서는 프로듀서가 녹음 시간과 안정성을 이유로 세션 연주자를 쓰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당시 세션 기타리스트였던 지미 페이지가 「유 리얼리 갓 미」의 솔로를 연주했다는 이야기가 오래 떠돌았다. 데이브 데이비스와 셸 탤미, 그리고 페이지 본인까지 솔로는 데이브의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싱글의 드럼은 실제로 에이버리가 아니라 세션 드러머 바비 그레이엄이 쳤다. 신화가 엉뚱한 악기에 붙어 버린 셈이다. 《빌리지 그린 보존회》에는 영국판보다 먼저 나온 판본이 있다. 1968년 가을 일부 유럽 시장에 12곡짜리 판이 먼저 풀렸는데, 레이가 곡을 더하고 바꾸기로 하면서 15곡판이 정식 판본이 됐다. 먼저 나간 판은 일부 유럽 시장에서만 발매돼 수집가들의 희귀 음반이 됐고, 훗날 재발매반에서야 두 판본을 나란히 들을 수 있게 됐다. 앨범이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기획된 것이 아니라 막바지까지 다듬어졌다는 증거다. 미국 음악가 노조의 공연 금지는 1960년대 영국 밴드 역사에서 유례가 드문 사건이었지만, 노조는 끝내 공식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레이는 자서전 《X-레이》에서 1965년 미국 방송 녹화 현장에서 노조 관계자를 자처한 인물과 언쟁을 벌인 일을 원인으로 짐작했다. 기록이 남지 않았기에 이 금지는 흔히 한 줄로 지나가지만, 평론가들은 바로 이 4년의 고립이 「워털루 선셋」과 《빌리지 그린 보존회》 같은 철저히 영국적인 작품을 낳았다고 본다.
용어 노트 📚🔎
파워 코드
(말뜻) 영어 power chord는 힘(power) 있는 화음(chord)이라는 뜻이다. 음을 적게 쓰는데도 소리가 굵고 힘차게 들려서 붙은 이름이다. (록에서) 기타로 화음을 칠 때 보통은 서너 음을 함께 누르지만, 파워 코드는 바탕음과 그 위 다섯 번째 음, 단 두 음만 누른다. 손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줄 위를 미끄러지듯 옮기면 되기 때문에 빠르고 단순하며, 왜곡된 기타 소리와 만나면 특히 묵직하게 울린다. 리코더에서 손가락 모양 하나만 익혀 두면 위아래로 옮겨 가며 여러 곡을 불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유 리얼리 갓 미」의 리프가 대표적인 예다.
디스토션
(말뜻) 영어 distortion은 비틀다라는 뜻의 라틴어 distorquere에서 왔다. 원래 모양을 비틀어 일그러뜨린다는 뜻이다. (록에서) 기타 소리를 일부러 찢어지고 지글거리게 왜곡한 음색을 말한다. 앰프의 출력을 한계 이상으로 밀어붙이거나 전용 장치를 써서 만든다. 학교 방송실 마이크에 입을 너무 바짝 대고 소리치면 스피커에서 갈라진 소리가 나는 것과 원리가 비슷하다. 데이브 데이비스는 이런 장치가 흔해지기 전에 스피커를 면도날로 찢어 직접 그 소리를 만들었다. (다른 데서는) 사진이나 지도, 통계에서는 실제 모습이 왜곡되어 보이는 현상을 가리킨다.
드론
(말뜻) 영어 drone은 원래 수벌을 뜻하고, 수벌이 내는 낮고 끊이지 않는 붕붕 소리에서 길게 이어지는 지속음이라는 뜻이 나왔다. (록에서) 곡 아래에 한 음이나 한 화음을 바꾸지 않고 길게 깔아 두는 소리를 말한다. 인도 음악의 탐부라나 스코틀랜드 백파이프가 대표적이다. 돌림노래를 부를 때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음으로 응 하고 소리를 내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노래가 그 위에서 떠다니는 것처럼 들린다. 그것이 드론의 효과다. 킹크스의 「시 마이 프렌즈」가 이 소리를 영국 팝에 일찍 들여왔다. (다른 데서는) 오늘날에는 원격으로 조종하는 무인 비행기를 가리키는 말로 더 흔히 쓰인다.
콘셉트 앨범
(말뜻) 콘셉트(concept)는 생각의 큰 틀, 즉 주제나 기획 의도를 뜻한다. (록에서) 따로 만든 곡들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나 이야기, 정서를 중심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짜인 앨범을 말한다. 학급 문집을 만들 때 각자 아무 글이나 내는 대신 우리 동네라는 주제를 정해 모두 그 주제로 글을 쓰면 문집 전체가 하나의 그림이 되는 것과 같다. 킹크스의 《빌리지 그린 보존회》는 사라져 가는 영국의 풍경이라는 한 주제로 묶인 콘셉트 앨범이다.
록 오페라
(말뜻) 오페라(opera)는 라틴어로 작품, 일이라는 뜻의 opus에서 왔다. 음악과 연극이 결합한 큰 작품을 가리키게 됐다. (록에서) 등장인물과 줄거리가 있는 한 편의 이야기를 록 음악으로 들려주는 형식이다. 곡 하나하나가 연극의 장면처럼 이어지고, 앨범 전체를 들어야 이야기가 완성된다. 학예회 연극에서 대사 대신 노래로 장면을 이어 가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1969년 더 후의 《토미》와 킹크스의 《아서》가 초기의 대표 사례이며, 킹크스는 1970년대 중반 《프리저베이션》 연작으로 이 형식을 무대 공연까지 넓혔다.
뮤직홀
(록에서)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 서민들이 즐겨 찾던 대중 극장과 그곳에서 불린 노래를 말한다. 코믹한 이야기 노래, 관객과 주고받는 후렴, 피아노와 작은 악단의 통통 튀는 반주가 특징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즐겨 부르시던 옛 가요를 손주가 자기 방식으로 다시 부르는 것과 비슷하게, 레이 데이비스는 부모 세대의 뮤직홀 화법을 록에 들여왔다. 「서니 애프터눈」과 「컴 댄싱」에서 그 흔적을 뚜렷하게 들을 수 있다.
오버더빙
(말뜻) 영어 overdub는 위에(over) 소리를 입힌다(dub)는 뜻이다. (록에서) 이미 녹음된 소리 위에 새 소리를 덧입혀 녹음하는 방법이다. 기타 반주를 먼저 녹음하고 그 위에 노래를, 다시 그 위에 화음을 쌓아 가는 식이다. 노래방에서 녹음한 내 노래를 틀어 놓고 그 위에 화음 파트를 한 번 더 불러 겹치는 것과 같다. 킹크스는 「롤라」에서 방송 규정에 걸린 한 단어를 고치려고 이 방법으로 그 부분만 다시 녹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