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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ors

도어스 (1965–1973)

'나는 반항, 무질서, 혼돈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에든 관심이 있다. 특히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행위에.' — 짐 모리슨, 엘렉트라 레코드 소개 자료에서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로스앤젤레스 결성UCLA 영화과명상 교실2. 데뷔위스키 어 고고라이트 마이 파이어베이스 없는 4인조3. 정점스트레인지 데이스웨이팅 포 더 선 1위이기 팝의 깨달음4. 시련마이애미 공연소프트 퍼레이드모리슨 호텔5. 파리L.A. 우먼스물일곱의 죽음페르 라셰즈6. 유산언 아메리칸 프레이어에디 베더와 헌정만자렉 추모 공연도어스1965–1973로스앤젤레스 바닷가에서 시인 한 명과 세 음악…
무대가 된 도시 🧭🗺️
N미국프랑스시카고1939–1962로스앤젤레스1965–1973파리1971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짐 모리슨

    보컬이자 작사가로, 스스로를 시인으로 여겼고 1971년 파리에서 스물일곱에 세상을 떠났다.

  • 멤버레이 만자렉

    시카고 출신 건반 주자로, 오른손 오르간과 왼손 베이스로 밴드 사운드의 뼈대를 세웠다.

  • 멤버존 덴스모어

    재즈와 라틴 리듬을 록에 들여온 드러머로, 1990년 밴드 시절을 돌아본 회고록을 펴냈다.

  • 멤버로비 크리거

    손가락으로 뜯는 기타와 「라이트 마이 파이어」, 「터치 미」 같은 히트곡의 작곡으로 밴드를 받쳤다.

  • 영향아서 리

    선셋 스트립의 선배 밴드 러브의 리더로, 도어스의 본보기였고 엘렉트라에 그들을 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프로듀서폴 로스차일드

    첫 다섯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제작하며 도어스의 녹음 사운드를 빚었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바닷가로 모인 네 사람 · 1939–1965

(결성) 196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베니스 해변에서 결성됐다. 네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이 바닷가 동네에 닿았다. 짐 모리슨은 1943년 12월 플로리다주 멜버른에서 해군 장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조지 스티븐 모리슨은 훗날 제독에 올랐고, 1964년 통킹만 사건 때 그 해역의 항공모함 전단을 지휘한 인물이었다. (떠돌이) 아버지의 잦은 전근 탓에 모리슨은 플로리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버지니아를 옮겨 다니며 자랐다. 친구를 깊이 사귈 틈이 없던 소년은 책에 파묻혔다. 니체와 랭보, 잭 케루악 같은 비트 세대 작가들을 탐독했고, 교사들이 그가 인용한 책이 실제로 있는지 도서관에 확인하러 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엄격한 군인 집안의 질서와 그것을 벗어나려는 충동이 그의 성격에 함께 자리 잡았다. (영화과) 플로리다 주립대를 거쳐 1964년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UCLA) 영화과에 들어간 그는 그곳에서 레이 만자렉을 만났다. 1939년 시카고의 폴란드계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만자렉은 어려서 클래식 피아노를 배웠고, 남부 시카고의 블루스와 재즈를 들으며 컸다. 대학원생이던 그는 형제들과 서프 밴드 릭 앤 더 레이븐스에서 건반을 쳤다. (명상) 로스앤젤레스 토박이인 존 덴스모어와 로비 크리거는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초월명상 모임과 밴드 활동을 통해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즈 드러머를 꿈꾸던 덴스모어와, 플라멩코 기타와 블루스를 함께 익힌 크리거는 사이키델릭 레인저스라는 밴드를 함께 했다. 같은 명상 교실에 다니던 만자렉이 이들을 모리슨과 이어 줄 고리가 됐다.

II. 지각의 문 · 1965–1966

(옥상) 1965년 여름, 대학을 마친 모리슨은 베니스의 빈 건물 옥상에서 지내며 공책 가득 시를 썼다. 어느 날 해변에서 만자렉과 마주친 그는 수줍게 자작시 몇 편을 노래로 불러 주었고, 그중 하나가 「문라이트 드라이브」였다. 만자렉은 그 자리에서 밴드를 하자고 했다. 이름은 올더스 헉슬리가 환각 체험을 적은 책 『지각의 문』에서 따왔고, 헉슬리는 다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서 제목을 빌렸다. (구성) 그해 9월 만자렉 형제와 덴스모어가 함께 데모를 녹음했고, 이 테이프로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했지만 한 곡도 녹음하지 못한 채 방출됐다. 그사이 만자렉의 형제들이 떠나고 크리거가 들어오면서 넷이 갖춰졌다. 모리슨은 노래와 가사, 만자렉은 오른손 오르간과 왼손 건반 베이스, 크리거는 피크 없이 손가락으로 뜯는 기타, 덴스모어는 재즈풍 드럼을 맡았다. 베이스 주자가 없다는 결핍이 오히려 이 밴드만의 성긴 소리가 됐다. (위스키) 1966년 그들은 선셋 스트립의 클럽 위스키 어 고고의 전속 밴드가 되어 밴 모리슨이 이끌던 뎀 같은 밴드의 앞 무대를 맡았다. 같은 거리의 스타였던 러브는 그들의 본보기였다. 밴드는 러브만큼 커지기를 꿈꿨다고 전해지며, 러브의 리더 아서 리가 엘렉트라 레코드 사장 잭 홀츠먼에게 도어스를 보라고 권했다. (해고) 8월 홀츠먼과 계약을 맺은 직후, 모리슨은 클럽 무대에서 「디 엔드」의 중간에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를 빌린 대목을 즉흥으로 덧붙여 불렀다. 클럽 주인은 그날 밤 밴드를 해고했다. 무대 위에서 금기를 건드리는 모리슨의 방식은 이때 이미 드러나 있었다.

III. 불을 붙이다 · 1966–1967

(선셋 사운드) 1966년 8월 말, 밴드는 할리우드의 선셋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 폴 로스차일드, 엔지니어 브루스 보트닉과 데뷔 앨범을 녹음했다. 녹음 트랙이 넷뿐인 장비로 대부분을 라이브에 가깝게 담았고, 작업은 몇 주 만에 끝났다. 클럽에서 수백 번 다듬은 곡들이었기 때문이다. 로스차일드는 모리슨의 바리톤과 밴드의 즉흥을 꾸밈없이 붙잡는 데 집중했다. (불) 앨범의 운명을 바꾼 곡은 크리거가 생애 처음 쓴 「라이트 마이 파이어」였다. 모리슨이 보편적인 주제로 곡을 써 보라고 권했고 크리거가 불을 골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67년 1월 앨범이 나왔고, 7분짜리 원곡에서 긴 즉흥 대목을 잘라 낸 싱글이 7월 빌보드 1위에 올라 3주를 지켰다. 이 무렵 밴드는 누가 썼든 모든 곡을 넷의 공동 명의로 올리고 수익을 똑같이 나눴다. (설리번) 9월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했을 때 방송사는 약물을 연상시킨다며 가사의 한 단어를 바꿔 달라고 했다. 모리슨은 생방송에서 원래대로 불렀고, 밴드는 다시는 그 쇼에 초대받지 못했다. 가죽 바지 차림의 스물셋 시인은 순식간에 십대 잡지의 표지 인물이 됐지만, 자신을 시인으로 여기던 모리슨은 섹스 심벌로 소비되는 데 거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연인) 1965년부터 만난 패멜라 커슨은 그 소란의 곁을 지킨 사람이었다. 둘은 결혼하지 않았고 자주 다투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지만, 모리슨은 그녀를 우주적 동반자라 불렀고 유언장에 그녀를 유일한 상속인으로 적었다. 여러 곡에 그녀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는 것이 전기 작가들의 공통된 해석이다.

♪앨범 《도어스》 (The Doors)1967실황 「Break On Through」 The Doors · 1970 와이트섬

클럽에서 수백 번 다듬은 곡들을 몇 주 만에 거의 그대로 담은 데뷔작이다. 성긴 4인조의 소리와 모리슨의 바리톤이 처음 세상에 나온 순간이다.

  • 영상으로 고른 첫 곡 「브레이크 온 스루」에서 덴스모어는 브라질 음악 보사노바의 잘게 쪼갠 리듬을 록 드럼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도입부의 심벌(하이햇)과 드럼 테두리를 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 베이스 기타 대신 만자렉의 왼손 건반이 낮은 음을 깔고, 오른손은 날카로운 복스 오르간 선율을 친다. 한 사람이 두 줄을 동시에 끌고 가는 모습을 떠올리며 들으면 밴드의 구조가 보인다.
  • 녹음 트랙이 넷뿐이라 악기 수가 적고 덧칠이 거의 없다. 그래서 무대에서 듣는 듯한 공간감이 있고, 각 악기 사이의 빈자리가 긴장을 만든다.
  • 크리거는 피크 없이 손가락으로 줄을 뜯는다. 플라멩코에서 익힌 이 주법 덕에 기타 소리가 둥글고 부드러우며, 오르간과 부딪치지 않고 옆으로 비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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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마이 파이어 (Light My Fire)1967실황 The Doors · 1968 유럽 공연

크리거가 처음 쓴 곡이 밴드를 하룻밤에 전국의 스타로 만들었다. 에드 설리번 쇼의 소동도 바로 이 곡에서 비롯됐다.

  • 도입부의 오르간 선율은 만자렉이 바흐풍 바로크 음악을 떠올리며 지었다고 밝혔다. 곡 맨 끝에 이 선율이 다시 돌아오며 처음과 끝을 묶는다.
  • 7분짜리 앨범판의 한가운데에는 두 화음만 오가는 단순한 반주 위에서 오르간과 기타가 차례로 긴 즉흥연주를 펼친다. 멤버들은 재즈 색소포니스트 존 콜트레인의 연주에서 이 방식을 빌려 왔다고 말했다.
  • 라디오용 싱글은 이 즉흥 대목을 잘라 3분 가까이로 줄였다. 두 판본을 이어 들으면 같은 곡이 얼마나 다른 경험이 되는지 알 수 있다.
  • 절에서는 덴스모어의 드럼이 라틴 음악처럼 출렁이다가 후렴에서 곧은 록 박자로 바뀌는 것처럼 들린다. 그 전환이 곡에 들뜬 추진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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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엔드 (The End)1967실황 The Doors · 1970 와이트섬

위스키 어 고고에서 밴드를 해고당하게 만든 곡이자, 훗날 「지옥의 묵시록」으로 새 세대를 만난 곡이다. 이별의 노래로 시작해 금기의 연극으로 번져 간다.

  • 크리거의 기타는 인도 고전음악(라가)의 영향을 받아, 낮은 한 음을 계속 울려 놓고 그 위에서 구불구불한 선율을 그린다. 처음 1분 동안 기타만 따라가 보면 동양적인 색채가 뚜렷하다.
  • 11분이 넘는 길이에 절과 후렴의 틀이 거의 없다. 노래라기보다 시 낭송과 즉흥연주가 이어지는 한 편의 연극처럼 짜여 있다.
  • 중반부에서 모리슨이 오이디푸스 대목으로 들어가면 덴스모어의 드럼이 점점 거칠어지며 밴드 전체가 폭발한다. 이 부분은 이틀째 녹음한 두 번의 연주를 이어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모리슨의 목소리는 노래와 말 사이를 오간다. 듣는 이에게 낮게 속삭이듯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갑자기 외치는 화법이 곡의 공포감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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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낯선 날들 · 1967–1968

(실험) 1967년 10월, 두 번째 앨범 《스트레인지 데이스》가 나왔다. 스튜디오에 새로 들어온 8트랙 녹음기 덕에 소리를 겹겹이 덧입히는 녹음(오버더빙)이 가능해졌고, 연주자 폴 비버의 무그 신시사이저로 모리슨의 목소리를 낯설게 변조하기도 했다. 「피플 아 스트레인지」는 우울에 빠진 모리슨이 크리거와 함께 로렐 캐니언 언덕에 올라 해 지는 풍경을 본 뒤 만든 곡으로 전해진다. 판매는 데뷔작에 못 미쳤지만 멤버들은 이 앨범을 더 아꼈다. (뉴헤이븐) 무대 위의 모리슨은 갈수록 예측할 수 없게 됐다. 1967년 12월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공연 직전, 대기실에서 경찰에게 최루액을 맞은 그는 무대에서 그 일을 관객에게 이야기하다가 연행됐다. 흔히 공연 도중 무대에서 체포된 첫 록 가수로 일컬어진다. 같은 해 10월 미시간 대학 공연에서 관객을 도발하던 그를 본 청년 이기 팝은 가수가 관객과 맞서도 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스투지스의 무대는 그 깨달음에서 출발했다. (정상) 1968년 7월 세 번째 앨범 《웨이팅 포 더 선》은 밴드의 첫 1위 앨범이 됐고, 초기 습작에서 꺼낸 「헬로, 아이 러브 유」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곡의 밑천은 바닥나고 있었다. 모리슨이 구상한 장편 시곡 「셀러브레이션 오브 더 리자드」는 끝내 완성되지 못해 일부만 실렸고, 그가 스스로를 도마뱀 왕이라 부른 것도 이 시곡에서였다. (술) 술은 점점 늘었다. 그해 가을 유럽 투어 중 암스테르담에서 모리슨이 무대에 서지 못하자 만자렉이 대신 노래를 불렀다. 같은 무렵 자동차 회사 뷰익이 「라이트 마이 파이어」를 광고에 쓰려 하자 모리슨은 격렬히 반대해 계획을 무산시켰다. 그에게 노래는 상품이 아니었다.

♪피플 아 스트레인지 (People Are Strange)1967공식 MV — The Doors · 1967

우울에 빠진 모리슨이 언덕 위의 노을을 보고 돌아와 크리거와 만든 곡으로 전해진다. 갑작스러운 명성 속에서 느낀 소외가 2분 남짓에 담겼다.

  • 만자렉의 피아노가 오래된 술집 피아노(홍키통크)처럼 통통 튀며, 1920년대 독일 카바레 노래 같은 분위기를 낸다.
  • 모리슨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겉도는 자신을 1인칭으로 고백한다. 쓸쓸하면서도 살짝 비꼬는 듯한 어조에 주목해 들어 보자.
  • 2분이 조금 넘는 짧은 곡인데, 중간에 크리거의 짧은 기타 솔로가 휘청이듯 들어갔다 빠진다. 곡 전체가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처럼 흔들린다.
  • 이 앨범부터 녹음 트랙이 여덟으로 늘어, 베이스(세션 연주자 더그 루반)와 피아노, 오르간이 겹쳐 데뷔작보다 소리가 두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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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마이애미 · 1969–1970

(행진) 1969년 7월 《더 소프트 퍼레이드》는 금관과 현악을 대거 끌어들인 야심작이었다. 녹음에 아홉 달 가까이 걸렸고 당시 록 앨범으로는 이례적으로 큰돈이 들었다. 로스차일드는 완벽을 고집해 같은 대목을 수십 번 다시 연주하게 했다. 크리거가 쓴 「터치 미」가 3위에 올랐지만, 평단은 밴드가 길을 잃었다고 평했다. 이 앨범부터 곡마다 작곡자 이름이 따로 표기됐다. (마이애미) 앨범이 나오기 전인 3월 1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디너 키 오디토리엄 공연에서 술에 취한 모리슨이 관객을 선동하고 외설적인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 영장이 발부됐다. 그가 무대에서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는 지금도 증언이 엇갈린다. 전국에서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고 밴드는 몇 달 동안 무대를 잃었다. 1970년 가을 재판에서 그는 공연음란과 욕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고, 항소한 채 세상을 떠났다. (뿌리) 궁지에 몰린 밴드는 블루스로 돌아갔다. 1970년 2월의 《모리슨 호텔》은 군더더기 없는 술집 밴드 사운드로 평단의 신뢰를 되찾았다. 「로드하우스 블루스」에는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니 맥이 베이스를, 러빈 스푼풀의 존 서배스천이 가명으로 하모니카를 보탰다. 오케스트라를 걷어 내자 넷의 연주가 다시 맨살을 드러냈다. (시인) 수염을 기르고 몸이 불은 모리슨은 록 스타의 외양을 스스로 벗어던졌다. 그는 시집 『군주들』과 『새로운 피조물들』을 자비로 찍어 냈다가 정식 출판했고, 재판정과 녹음실을 오가는 와중에도 스스로를 무엇보다 시인으로 여기려 했다. 노래 가사도 점점 짧고 직설적인 블루스의 화법으로 바뀌었다.

♪터치 미 (Touch Me)1969무대 The Doors · 1968 Smothers Brothers 쇼

《더 소프트 퍼레이드》의 화려한 편곡을 대표하는 곡으로, 크리거의 작곡 실력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밴드가 록에서 멀어진다는 비판도 이 곡에서 시작됐다.

  • 금관과 현악이 처음부터 곡을 감싼다. 네 사람의 연주가 오케스트라 뒤에 숨는 듯 들리는데, 이것이 당시 팬과 평단이 낯설어한 대목이다.
  • 곡 끝부분에 재즈 색소포니스트 커티스 에이미의 색소폰 솔로가 등장한다. 록 밴드의 곡에서 재즈 솔로가 마무리를 맡는 드문 장면이다.
  • 모리슨은 연인에게 매달리듯 직설적으로 노래한다. 마지막에는 당시 세제 광고 문구를 비튼 한 마디로 끝내는데, 진지한 고백을 스스로 비웃는 듯한 마무리다.
  • 덴스모어의 드럼은 오케스트라에 맞춰 단정하게 절제되어 있다. 초기 곡들의 출렁이는 연주와 비교해 들으면 밴드의 변화가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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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하우스 블루스 (Roadhouse Blues)1970공식 MV — The Doors

마이애미 사건으로 무대를 잃은 밴드가 블루스로 돌아가 다시 일어선 곡이다. 이후 공연의 단골 마지막 곡이 됐고, 1993년 에디 베더와도 이 곡을 불렀다.

  • 베이스는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니 맥이 쳤다. 묵직하게 통통 튀는 리듬(셔플)이 곡 전체를 앞으로 굴려 간다.
  • 존 서배스천의 하모니카가 기타와 번갈아 울부짖으며 미국 남부 술집 밴드의 분위기를 만든다. 그는 계약 문제로 가명으로 크레딧에 올랐다.
  • 만자렉은 이 곡에서 오르간 대신 피아노를 두드리듯 쳐서 낡은 술집 피아노(배럴하우스) 소리를 낸다.
  • 모리슨의 목소리는 초기의 매끈한 바리톤에서 거칠고 탁한 블루스 가수의 목소리로 바뀌어 있다. 술과 피로가 그대로 소리에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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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L.A. 우먼과 파리 · 1970–1971

(마지막 무대) 1970년 12월 12일 뉴올리언스 공연에서 모리슨은 노래 도중 힘을 잃고 마이크 스탠드로 무대 바닥을 내리쳤다. 만자렉은 그날 그의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회고했다. 세 사람은 그와 함께하는 공연을 접기로 했고, 이것이 넷의 마지막 무대가 됐다. (작업실) 녹음도 위기였다. 그해 10월 재니스 조플린의 《펄》을 만들던 중 조플린을 잃은 로스차일드는 새 곡들을 듣고 칵테일 음악 같다며 제작에서 물러났다. 밴드는 엔지니어 보트닉과 공동 제작을 맡아 산타모니카 대로에 있던 자신들의 연습실에 녹음 장비를 들였다. 모리슨은 화장실을 노래 부스로 삼았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베이시스트였던 제리 셰프와 기타리스트 마크 베노가 합류해 오랜만에 한 방에서 함께 연주했다. 1971년 4월 나온 《L.A. 우먼》은 블루스로 돌아간 밴드의 귀환으로 받아들여졌다. (파리) 녹음을 마친 모리슨은 3월, 먼저 가 있던 패멜라 커슨을 따라 파리로 건너가 마레 지구의 아파트에 머물렀다. 수염을 깎고 산책하며 시를 쓰는 날들이었다고 전한다. 7월 3일 아침 그는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스물일곱 살이었다. 공식 사인은 심부전이었으나 부검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전날 밤 나이트클럽에서 헤로인을 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묘지) 그는 페르 라셰즈 묘지에 묻혔고, 그 무덤은 오늘날까지 순례지가 됐다. 커슨은 3년 뒤인 1974년 약물 과다로 세상을 떠났다. 한 시대를 함께 연 넷 가운데 하나가 사라지자, 남은 세 사람은 그가 없는 도어스가 무엇일 수 있는지라는 물음 앞에 섰다.

♪앨범 《L.A. 우먼》 (L.A. Woman)1971

프로듀서가 떠난 뒤 밴드가 연습실에서 스스로 만든 마지막 앨범이다. 모리슨은 녹음을 마치고 파리로 떠나 돌아오지 못했다.

  • 타이틀곡 「L.A. 우먼」은 7분이 넘는다. 중반에 템포를 늦췄다가 다시 점점 빨라지며 질주하는데,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가 속도를 줄였다 밟는 듯한 구성이다.
  • 엘비스 프레슬리의 베이시스트였던 제리 셰프가 쉬지 않고 달리는 베이스를 친다. 처음으로 정식 리듬 섹션을 갖춘 밴드처럼 들린다.
  • 모리슨은 연습실 화장실을 노래 부스로 썼다. 타일 벽에 소리가 울려 목소리에 자연스러운 메아리가 붙는다.
  • 모리슨이 자기 이름의 철자를 뒤섞어 만든 별명을 되풀이하며 고조되는 후반부가 곡의 절정이다. 로스앤젤레스라는 도시에 바치는 애증의 노래로 읽힌다.
♪라이더스 온 더 스톰 (Riders on the Storm)1971공식 MV — The Doors

모리슨이 도어스와 마지막으로 녹음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 라디오에서 흐르던 곡이었다.

  • 빗소리와 천둥 효과음이 곡을 열고 닫는다. 엔지니어 보트닉이 녹음된 음향을 덧붙인 것이다.
  • 만자렉의 펜더 로즈 전기 피아노가 물방울 떨어지듯 맑은 음으로 비 오는 밤의 분위기를 그린다. 그의 솔로는 재즈에 가까운 차분한 선율이다.
  • 모리슨은 리드 노래 위에 속삭이는 목소리를 한 번 더 겹쳐 녹음(오버더빙)했다. 헤드폰으로 들으면 노래 뒤에서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속삭임이 들린다.
  • 셰프의 베이스와 덴스모어의 부드러운 드럼이 느린 그루브(몸이 저절로 흔들리는 리듬감)를 7분 동안 흔들림 없이 유지한다. 멤버들은 서부 민요 「고스트 라이더스 인 더 스카이」를 장난스레 연주하다 이 곡이 나왔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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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남은 세 사람 · 1971–2016

(트리오) 남은 세 사람은 만자렉과 크리거가 노래를 나눠 맡아 《아더 보이시스》(1971)와 《풀 서클》(1972)을 냈다. 새 가수를 찾으려 영국으로 건너가 오디션도 열었고, 이기 팝이 후보로 거론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모리슨의 빈자리는 메워지지 않았고, 밴드는 1973년 해체했다. (부활) 1978년 셋은 다시 모여 모리슨이 1970년 생일에 녹음해 둔 시 낭송에 음악을 입혀 《언 아메리칸 프레이어》를 냈다. 1979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 첫 장면에 「디 엔드」가 흐르고, 1980년에 나온 모리슨 전기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도어스는 새 세대의 밴드가 됐다. 1991년에는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영화 「도어스」가 개봉했다. (헌정) 1993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를 때 세 사람은 펄 잼의 에디 베더를 가수로 세워 함께 무대에 섰다. 모리슨의 노래를 들으며 자란 다음 세대의 목소리였다. 2002년 만자렉과 크리거가 새 가수와 투어를 시작하자 덴스모어는 밴드 이름 사용에 반대해 소송을 냈고,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 주었다. (작별) 만자렉은 2013년 5월 독일 로젠하임에서 담관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일흔넷이었다. 2016년 2월 크리거와 덴스모어는 그를 기리는 암 연구 자선 공연에서 오랜만에 한 무대에 섰다. 바닷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렇게 두 사람의 연주로 마무리됐다.

덜 알려진 이야기

도어스가 엘렉트라와 계약하기 전에 이미 메이저 레이블과 한 차례 계약했다는 사실은 잘 거론되지 않는다. 1965년 가을 데모 테이프를 들은 컬럼비아 레코드는 그들과 계약했지만 반년 가까이 프로듀서조차 붙여 주지 않았고, 결국 방출 명단에 올렸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계약이라 연대기에서는 한 줄로 지나가기 일쑤다. 초기 세 앨범의 모든 곡은 누가 썼든 도어스 공동 명의였고 수익도 넷이 똑같이 나눴다. 「라이트 마이 파이어」의 막대한 수익도 그렇게 나뉘었다. 이 원칙은 《더 소프트 퍼레이드》에서 깨졌는데, 크리거가 쓴 「텔 올 더 피플」에 무기를 들라는 듯한 구절이 있어 모리슨이 자신이 쓴 것으로 오해받기 싫다며 곡마다 작곡자를 따로 적자고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멤버들이 회고했다. 도어스는 베이스 없는 밴드로 기억되지만 스튜디오에서는 거의 매번 베이스 주자가 있었다. 래리 넥텔, 더그 루반, 하비 브룩스, 레이 네폴리탄, 로니 맥, 제리 셰프가 그들이다. 초기 음반에는 이들의 이름이 실리지 않은 경우가 많아 후대의 재발매와 연구로 뒤늦게 정리됐다. 무대에서 만자렉의 왼손이 친 것은 펜더 로즈 피아노 베이스라는 작은 건반 악기였다. 마이애미 재판의 유죄 판결은 모리슨이 항소 중 숨지면서 40년 가까이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2010년 12월 플로리다주 사면위원회는 당시 주지사 찰리 크리스트의 주도로 그에게 사후 사면을 의결했다. 그날 공연을 찍은 수많은 사진 어디에도 공소장에 적힌 장면이 담기지 않았다는 점이 재검토의 근거 가운데 하나로 거론됐다.

용어 노트 📚🔎

사이키델릭

(말뜻) 그리스어 psyche(마음, 영혼)와 delos(드러나다)를 합쳐 1950년대에 만든 말로, 마음속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록에서) 1960년대 중반, 꿈이나 환각 속 같은 느낌을 소리로 옮기려 한 록을 가리킨다. 긴 즉흥연주, 낯선 악기와 음향 효과, 몽롱한 가사가 특징이다. 잠들기 직전 반쯤 꿈꾸는 상태에서 교실 소리가 멀리서 웅웅 울리던 경험을 떠올리면, 사이키델릭 음악이 노린 느낌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패션과 디자인에서는 형광빛 색깔과 소용돌이 무늬를 쓴 화려한 스타일을 가리킨다.

건반 베이스

(록에서) 베이스 기타 대신 건반 악기로 낮은 음을 치는 것이다. 도어스의 만자렉은 왼손으로 펜더 로즈 피아노 베이스라는 작은 건반을 눌러 베이스를 맡고, 오른손으로 오르간 선율을 쳤다. 한 사람이 두 사람 몫을 한 셈이다. 피아노를 배울 때 왼손이 낮은 음으로 박자를 받쳐 주고 오른손이 노래 가락을 치던 것을 떠올리면 된다 — 만자렉은 그 왼손을 아예 다른 악기에 맡긴 것이다.

라가

(말뜻) 산스크리트어 라가는 물들이다, 색을 입히다라는 뜻이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특정한 정서로 물들이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이름에 담겨 있다. (록에서) 인도 고전음악에서 쓰는 음의 틀과 선율 규칙을 가리킨다. 1960년대 록 음악가들은 그 영향을 받아 한 음을 길게 울려 놓고 그 위에서 구불구불한 가락을 펼치는 연주를 했다. 크리거의 「디 엔드」 기타가 대표적이다. 교실 냉방기가 웅 하고 한 음으로 계속 울리는 동안 그 위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장면과 닮았다 — 바닥에 깔린 한 음 위에서 선율이 자유롭게 움직인다.

즉흥연주

(말뜻) 즉흥(卽興)은 그 자리에서(卽) 일어나는 흥(興)이라는 뜻이다. (록에서) 악보나 미리 정한 틀 없이 그 순간 떠오르는 대로 연주하는 것이다. 록에서는 곡 중간의 솔로 대목을 길게 늘여 연주자끼리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라이트 마이 파이어」의 앨범판 가운데 몇 분이 그렇다. 친구들과 끝말잇기를 할 때 다음 말을 미리 정해 두지 않고 앞사람 말을 듣자마자 받아치는 것처럼, 앞 연주자의 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서 이어 간다. (다른 데서는) 연극에서는 대본 없이 배우들이 즉석에서 장면을 만드는 즉흥극을 뜻한다.

신시사이저

(말뜻) 영어 synthesize 는 여러 요소를 합쳐 하나를 만든다, 곧 합성한다는 뜻이다. 전기 신호를 합성해 소리를 만들어 내는 기계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록에서) 전기 회로로 소리의 모양을 만들고 걸러 내며 세상에 없던 음색을 만드는 전자 악기다. 1960년대 후반의 무그 신시사이저는 방 한쪽을 채울 만큼 컸고, 《스트레인지 데이스》 녹음 때는 연주자 폴 비버가 이 기계로 모리슨의 목소리를 낯설게 바꾸었다. 물감 세 가지를 섞어 수많은 색을 만들어 내듯, 몇 가지 기본 소리를 섞고 깎아 새 소리를 만든다. (다른 데서는) 화학에서 합성은 여러 물질을 반응시켜 새 물질을 만드는 일을 가리킨다.

오버더빙

(록에서) 먼저 녹음해 둔 소리 위에 다른 소리를 덧입혀 녹음하는 방법이다. 녹음 트랙이 많아질수록 한 사람이 여러 번 노래를 겹치거나 악기를 계속 보탤 수 있다. 도어스는 8트랙 녹음기를 쓰기 시작한 《스트레인지 데이스》부터 이 방법을 본격적으로 썼고, 「라이더스 온 더 스톰」에서 모리슨은 자기 노래 위에 속삭이는 목소리를 한 번 더 녹음해 겹쳤다. 밑그림 위에 투명 필름을 한 장씩 덮고 그 위에 색을 더 칠해 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세션 연주자

(말뜻) 세션(session)은 앉아 있음을 뜻하는 라틴어 sessio 에서 온 말로, 사람들이 모여 앉아 함께 일하는 한 차례의 시간을 가리키게 됐다. (록에서) 밴드의 정식 멤버가 아니면서 녹음이나 공연에 불려 와 연주하는 전문 연주자다. 도어스는 베이스 주자가 없어서 스튜디오에서는 거의 매번 세션 연주자에게 베이스를 맡겼다. 학교 연극에 피아노 반주가 필요할 때 다른 반의 피아노 잘 치는 친구를 그날만 모셔 오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회의나 국회에서는 한 차례의 모임이나 회기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