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re
어둠과 팝 멜로디를 한 목소리로 노래하며, 스스로 유행을 만들면서도 어떤 유행에도 속하지 않으려 한 밴드였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로버트 스미스
보컬과 기타를 맡은 밴드의 유일한 원년 상수이자 사실상의 리더.
- 멤버마이클 뎀프시
초창기 베이시스트로, 1979년 음악적 견해 차이로 밴드를 떠났다.
- 멤버로렌스 톨허스트
스미스의 가장 오랜 친구이자 원년 드러머로, 1989년 밴드를 떠났다.
- 멤버사이먼 갤럽
1979년 합류한 베이시스트로, 이탈과 복귀를 거쳐 스미스의 핵심 창작 동반자가 됐다.
- 매니저크리스 파시
밴드를 발굴해 픽션 레코즈와 계약시키고 초기 음반을 프로듀싱했다.
- 영향톰 요크
라디오헤드의 보컬로, 《Disintegration》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I. 크롤리의 소년들 · 1959–1976
(출생) 로버트 스미스는 1959년 4월, 잉글랜드 랭커셔주 블랙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알렉스와 어머니 리타 사이의 네 남매 중 셋째로, 위로 형과 누나, 아래로 여동생이 있었다. 가족은 그가 어릴 때 잉글랜드 남부 서식스주 크롤리 인근으로 옮겨 정착했고, 스미스는 그곳에서 성장했다. 여동생 재닛은 훗날 밴드에 합류하는 기타리스트 폴 톰프슨과 결혼해, 음악과 가족이 오래도록 얽히게 된다. (건반) 어머니는 어린 스미스에게 클래식 피아노와 오르간을 배우게 했는데, 그는 이 정규 교습을 답답해했다고 훗날 밝혔다. 대신 형이 사다 준 지미 헨드릭스 음반에 빠져들었고, 기타로 더 자유롭게 소리를 만드는 쪽에 끌렸다. 정규 교육과 즉흥적 열정 사이의 이 긴장은, 훗날 그의 음악에서 세련된 편곡과 날것의 감정이 공존하는 방식으로 되풀이된다. (만남) 크롤리의 노트르담 중학교에서 스미스는 로렌스 톨허스트, 마이클 뎀프시와 만났다. 셋은 같은 동네에서 자라며 오랜 친구가 됐고, 가톨릭계 학교 특유의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음악을 도피처로 삼았다. 톨허스트는 스미스의 가장 오래된 벗으로, 이후 십여 년간 밴드의 중심 축이 된다. (펑크) 1976년 무렵 런던을 휩쓴 펑크의 충격은 크롤리의 십 대들에게도 닿았다. 정교한 연주력보다 태도와 즉흥성을 앞세우는 분위기는, 이제 막 악기를 만지기 시작한 소년들에게 밴드를 결성할 용기를 줬다. 스미스와 톨허스트, 뎀프시는 기타리스트 폴 톰프슨, 마크 체카뇨 등과 함께 여러 이름으로 밴드를 꾸리기 시작했다.
II. 이지 큐어에서 더 큐어로 · 1976–1979
(이름) 밴드는 처음 '몰리스'라는 이름을 거쳐, 톨허스트가 쓴 곡 제목을 따 '이지 큐어'로 불렸다. 초기 편성은 유동적이어서 기타리스트가 여럿 드나들었지만, 스미스와 톨허스트, 뎀프시는 변함없는 중심이었다. 체카뇨와 톰프슨이 차례로 밴드를 떠나면서, 1977년 말 셋은 기타·베이스·드럼의 단출한 삼인조로 정리됐다. (발굴) 1978년, 폴리도르 레이블의 신인 발굴 담당자였던 크리스 파시가 이들의 공연을 보고 관심을 보였다. 파시는 자신의 독립 레이블 픽션 레코즈를 새로 차리면서 이 삼인조와 계약했는데, 밴드 이름은 그해 봄 스미스가 이미 '더 큐어'로 줄여 둔 상태였다. 파시는 이후 밴드의 초기 음반들을 직접 프로듀싱하며 사운드의 방향에도 깊이 관여했다. (데뷔) 1979년 데뷔 앨범 《Three Imaginary Boys》가 나왔다. 펑크의 속도감과 어딘가 서늘하고 기하학적인 편곡이 뒤섞인 음반이었다. 그보다 앞선 1978년 말에는 훗날 논쟁을 부른 데뷔 싱글 「Killing an Arab」이 앨범과 별도로 나와 있었다. 스미스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속 한 장면에서 가사를 끌어왔다고 밝혔지만, 제목만 보고 반아랍 정서로 오해하는 이들이 오래도록 있었다. (교체) 1979년 말, 좀 더 정통적인 록 사운드를 원하던 뎀프시와 더 실험적인 방향을 원하던 스미스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뎀프시는 밴드를 떠났고, 같은 크롤리 출신 밴드 록조에서 활동하던 사이먼 갤럽이 베이스로, 키보디스트 마티외 하틀리가 새로 합류했다. 편성이 바뀌자 사운드도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데뷔 싱글이자 이후 두고두고 논란이 된 곡으로, 카뮈의 소설에서 따온 정서를 담았다.
- 짧고 반복적인 두 코드 리프 위에 얹힌 단순한 진행이 펑크 특유의 조급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 톨허스트의 드럼은 군더더기 없이 단조로운 비트를 유지하며 곡 전체의 긴장을 떠받친다.
- 저예산으로 급히 녹음된 티가 나는 얇고 날카로운 기타 톤은, 이후 밴드의 두꺼운 사운드와 대비된다.
- 2005년 무렵부터는 오해를 피하려 라이브에서 제목과 가사 일부를 바꿔 부르기도 했다.
III. 어둠의 삼부작 · 1980–1982
(전환) 1980년 앨범 《Seventeen Seconds》는 이전과 전혀 다른 밴드처럼 들렸다. 리듬은 느려지고 여백이 늘었으며, 스미스는 카뮈와 카프카를 탐독하며 얻은 고립감과 불안을 가사에 옮겼다. 투어의 우울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하틀리는 활동을 마친 뒤 밴드를 떠났다. (신앙) 1981년 《Faith》는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스미스는 이 시기 조부모를 여읜 경험이 음반의 정서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평론가들은 이 시기를 톨허스트, 갤럽과 함께 완성한 어둠의 삼부작의 두 번째 장으로 꼽는다. (포르노그래피) 1982년 《Pornography》는 삼부작의 정점이었다. 프로듀서 필 손낼리와 함께 만든 음반은 벽처럼 쌓아 올린 기타와 드럼 잔향으로 가득했다. 스미스는 이 시기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훗날 밝혔다. (붕괴) 1982년 투어는 파국으로 끝났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갈등 끝에 갤럽이 밴드를 떠났고, 이후 한동안 스미스와 소원해졌다. 밴드는 사실상 해체 직전까지 갔고, 스미스는 한동안 밴드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했다.
《Seventeen Seconds》를 대표하는 곡으로, 밴드가 어둠의 삼부작으로 들어서는 문턱에 놓인다.
- 갤럽의 베이스라인이 곡 전체를 이끄는 중심 멜로디를 맡고, 기타는 그 위에 색을 입히는 역할에 머문다.
- 기타에 걸린 코러스 이펙트(음을 살짝 어긋나게 겹쳐 들리게 하는 효과)가 차갑고 일렁이는 질감을 만든다.
- 보컬이 등장하기까지 긴 연주 도입부를 두어, 후렴보다 분위기를 앞세우는 밴드의 태도를 보여준다.
- 라이브에서는 종종 원곡보다 훨씬 길게 늘어나며 즉흥적인 연주로 확장된다.
어둠의 삼부작 중 가장 격렬한 음반으로, 밴드가 해체 직전까지 몰렸던 시기의 산물이다.
- 첫 곡 「One Hundred Years」부터 드럼에 짙은 잔향(리버브)을 입혀, 방 전체가 울리는 듯한 압도적인 개막을 만든다.
- 기타는 여러 겹으로 녹음돼 하나의 두꺼운 벽처럼 쌓이고, 그 안에서 개별 연주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
- 스미스의 보컬은 또렷한 가창보다 절규에 가까운 톤으로 처리돼, 가사보다 감정의 밀도를 먼저 전달한다.
- 음반 전체가 한 덩어리처럼 이어지는 구성이라, 곡 사이의 경계보다 40여 분 전체의 흐름으로 들을 때 인상이 더 분명하다.
IV. 팝으로의 선회 · 1982–1985
(전환점) 붕괴 직후 스미스는 톨허스트와 단둘이 남은 밴드를 이어갔다. 그는 어둠을 잠시 내려놓고 「Let's Go to Bed」, 「The Walk」, 「The Lovecats」 같은 경쾌하고 장난스러운 싱글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이는 상업적 계산이자, 스스로도 벗어나고 싶었던 무거움에서 거리를 두려는 시도였다. (재회) 1984년 앨범 《The Top》을 거치며 스미스는 예전 동료 폴 톰프슨을 기타리스트로 다시 불러들였다. 이듬해에는 스트라스부르 사건 이후 등을 돌렸던 갤럽과도 화해했고, 갤럽은 베이스로 복귀했다. 오랜 균열을 메운 이 재결합은 밴드에 새로운 안정감을 가져다줬다. (도약) 1985년 《The Head on the Door》는 미국 대학가 라디오와 MTV를 통해 밴드를 국제적 스타로 만들었다. 「In Between Days」와 「Close to Me」의 뮤직비디오는 스미스의 헝클어진 머리와 번진 립스틱을 밴드의 상징적 이미지로 굳혔는데, 이는 무대 준비 중 우연히 생긴 모습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확장) 드러머로서 톨허스트의 역할이 줄어들며 그는 건반으로 자리를 옮겼고, 보리스 윌리엄스가 새 드러머로 합류하며 밴드는 더 두꺼운 편성을 갖추게 됐다. 오래 함께한 친구를 곁에 두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자리를 마련해 준 이 조정은, 스미스가 우정과 밴드의 필요 사이에서 찾은 절충이었다.
V. 키스 미, 디스인티그레이션 · 1987–1989
(확장반) 1987년 이중 앨범 《Kiss Me Kiss Me Kiss Me》는 팝, 사이키델리아, 초기의 어둠을 한 판에 담았다. 그중 「Just Like Heaven」은 밴드의 미국 첫 주요 히트곡이 되며, 크롤리의 지역 밴드를 세계적인 이름으로 끌어올렸다. (결혼) 1988년 스미스는 십 대 시절부터 사귀어 온 메리 풀과 결혼했다. 그는 결혼을 앞두고 쓴 곡 「Lovesong」을 그녀에게 선물처럼 건넸다고 밝혔으며, 이 곡은 이듬해 앨범에 실려 밴드 최대의 히트곡 중 하나가 된다. (정점) 1989년 《Disintegration》은 스미스가 서른이 되는 것에 대한 불안과, 다시 젊은 시절의 강렬함을 되찾고 싶다는 열망에서 출발했다. 건반 주자 로저 오도넬의 두툼한 신시사이저와 스미스의 다중 녹음된 기타가 겹겹이 쌓이며 웅장하고 침잠하는 사운드를 완성했다.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도 이 음반에 대한 애정을 밝힌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탈) 그러나 완성까지 밴드 내부는 순탄치 않았다. 톨허스트는 훗날 자신의 회고록 『Cured』에서 이 무렵 술과 씨름하고 있었다고 직접 밝혔다. 1989년 앨범 발매를 앞두고, 그는 자신이 공동 창립한 밴드에서 결국 나오게 됐고, 이로써 원년 멤버는 스미스만 남았다.
결혼을 앞두고 아내 메리 풀에게 건넨 곡으로, 밴드의 곡 치고는 이례적으로 짧고 담백하다.
- 따뜻한 코러스 이펙트가 걸린 기타가 도입부부터 곡 전체를 감싸며, 앨범의 다른 곡들보다 온기 있는 색을 낸다.
- 절-후렴 구조가 군더더기 없이 반복돼, 밴드의 다른 대표곡들에 비해 형식이 단순하다.
- 갤럽의 베이스가 멜로디의 상당 부분을 이끌며, 기타보다 오히려 곡의 뼈대 역할을 한다.
- 스미스의 창법은 평소의 극적인 발성 대신 담담하고 직접적인 어조를 택했다.
서른 살을 앞둔 불안과 다시 강렬해지고 싶은 열망에서 출발한 음반으로, 밴드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 대표곡 「Fascination Street」는 갤럽의 굵은 베이스 리프로 문을 열고, 보컬이 들어오기까지 1분 가까이 연주만으로 분위기를 쌓는다.
- 로저 오도넬의 신시사이저가 여러 겹으로 깔려, 기타·베이스와 뒤섞이며 넓고 아득한 공간감을 만든다.
- 「Pictures of You」에서는 잔향 짙은 기타 아르페지오(음을 하나씩 풀어 연주하는 주법)가 7분 넘게 이어지며 상실감을 천천히 풀어낸다.
- 음반 전체가 느린 템포와 긴 곡 길이를 고수해, 당대 팝 시장의 흐름과 정반대 방향으로 갔다.
· 1990–2000
(정상) 1992년 《Wish》는 영국 앨범 차트 1위, 미국에서도 최고 성적을 거두며 밴드의 상업적 정점을 찍었다. 「Friday I'm in Love」는 스미스 특유의 우울함과는 거리가 먼, 명랑한 팝송으로 밴드의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됐다. (소송) 1994년 톨허스트는 밴드 이름의 권리와 밀린 로열티를 두고 스미스와 픽션 레코즈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법원은 스미스의 손을 들어줬고, 톨허스트는 큰 소송 비용을 떠안은 채 음악계를 떠났다가 훗날 다시 돌아온다. (변모) 이후 몇 년간 기타리스트 페리 바몬테와 여러 세션 연주자들이 드나들며 편성이 계속 바뀌었다. 1996년 《Wild Mood Swings》는 기대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했고, 밴드의 상업적 동력은 눈에 띄게 줄었다. (마무리) 2000년 《Bloodflowers》로 스미스는 《Pornography》에서 시작된 어둠의 삼부작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완성된 이 결말은, 젊은 날의 절망을 중년의 시선으로 되짚어 보려는 시도였다.
밴드의 가장 밝고 대중적인 히트곡으로, 어둠의 삼부작을 쓴 밴드라는 이미지와 정반대에 있다.
- 장조로 쓰인 밝은 코드 진행과 단순한 4박자 리듬은, 밴드의 이전 곡들과 뚜렷이 다른 팝적 접근을 보여준다.
- 쨍하게 울리는 기타 톤이 곡 전체를 가볍고 경쾌하게 이끈다.
- 후렴이 반복될 때마다 코러스(합창처럼 겹쳐 부르는 보컬)가 두꺼워지며 라디오 히트곡다운 상승감을 만든다.
밴드 커리어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음반으로, 여러 겹의 기타가 만드는 두꺼운 소리가 특징이다.
- 대표곡 「High」는 여러 대의 기타가 서로 다른 리듬으로 겹쳐 쌓이며, 밴드 특유의 두꺼운 기타 벽을 이룬다.
- 좌우 채널에 기타를 넓게 배치한 믹싱은 헤드폰으로 들었을 때 공간감이 더 뚜렷이 드러난다.
- 「Friday I'm in Love」의 경쾌함과 「Fascination Street」류의 무게감이 한 음반 안에 공존하며, 밴드의 두 얼굴을 동시에 보여준다.
VII. 오래 지속되는 밴드 · 2001–
(변신) 2004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앨범 《The Cure》에서 밴드는 프로듀서 로스 로빈슨과 함께 더 거칠고 강한 사운드를 시도했다. 얼터너티브 록의 다음 세대에게 영향을 준 밴드가, 거꾸로 그 세대의 질감을 흡수하는 흥미로운 순환이었다. (안정) 2010년대 들어 밴드는 스미스와 갤럽, 드러머 제이슨 쿠퍼를 중심으로 안정을 찾았다. 2012년에는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작업한 경력이 있는 기타리스트 리브스 개블스가 합류해, 영국 록의 또 다른 계보를 밴드 안으로 끌어들였다. (인정) 밴드는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을 여러 차례 헤드라이너로 장식했고, 201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고딕 록과 슈게이징을 비롯한 여러 후대 사조가 이들을 원류로 꼽으며, 스미스가 만든 우울과 팝의 결합은 오랜 세월 다시 쓰였다. (귀환) 2024년, 16년 만의 새 앨범 《Songs of a Lost World》가 나왔다. 그 사이 세상을 떠난 부모와 형에 대한 상실감이 음반 전체에 짙게 배어 있었고, 평단은 이를 《Disintegration》에 견줄 만한 원숙한 걸작으로 평가했다. 2026년 현재도 스미스는 밴드를 이끌며 무대에 서고 있다.
16년 만의 신보 《Songs of a Lost World》의 첫 곡으로, 오랜 상실을 되짚는 밴드의 현재를 보여준다.
- 보컬이 등장하기까지 3분 넘게 이어지는 연주 도입부는 《Disintegration》 시절의 문법을 떠올리게 한다.
- 갤럽의 저음 베이스와 개블스의 기타가 서서히 쌓이며, 젊은 날의 격렬함 대신 원숙한 무게감을 만든다.
- 스미스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낮게 가라앉아, 세월이 흐른 뒤의 애도를 담담히 전달한다.
덜 알려진 이야기
밴드의 첫 이름 '이지 큐어'는 톨허스트가 쓴 동명의 곡에서 따온 것이다. 초기 기타리스트였던 마크 체카뇨는 밴드가 이 이름을 쓰기도 전에 탈퇴했고, 이후 공식적인 밴드 역사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 인물이 됐다. 성공한 뒤의 서사가 스미스·톨허스트·뎀프시 세 사람의 이야기로 정리되면서, 초기의 유동적인 편성은 자연히 뒷전으로 밀려났다. 「Killing an Arab」이라는 제목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속 한 장면—해변에서 벌어지는 우발적 살인—을 옮긴 것이었지만, 제목만 보고 반아랍 정서로 오인하는 이들이 오래도록 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레이블은 음반에 소설을 인용했다는 설명을 덧붙였고, 걸프전 무렵 다시 논란이 일었고, 2005년 무렵부터는 라이브에서 제목을 바꿔 부르기도 했다. 이 사연은 「Just Like Heaven」이나 「Friday I'm in Love」 같은 히트곡들의 그늘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밴드를 발굴한 크리스 파시는 더 큐어 이전에 이미 폴리도르에서 더 잼과 수지 앤드 밴시스를 발굴한 경력이 있었다. 세 밴드 모두 1970년대 말 영국 음악계의 큰 흐름을 만들었지만, 파시의 이름은 밴드 서사의 중심에 서는 법이 거의 없다. 성공의 신화가 보통 연주자에게 집중되면서, 그를 무대 뒤로 이끈 안목은 잘 조명되지 않았다.
용어 노트 📚🔎
포스트펑크
(말뜻) '포스트'는 영어로 '~이후'라는 뜻이다. 즉 포스트펑크는 글자 그대로 '펑크 이후'라는 의미다. (록에서) 1970년대 말 펑크의 반항적 에너지는 이어받았지만, 단순한 3화음 대신 더 실험적인 리듬과 분위기를 추구한 음악을 가리킨다. 더 큐어를 비롯해 조이 디비전, 수지 앤드 밴시스 같은 밴드가 대표적이다. 학급에서 유행하던 놀이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거기서 규칙만 빌려와 전혀 다른 놀이를 만든 것과 비슷하다.
고딕 록
(말뜻) '고딕'은 원래 중세 유럽의 뾰족한 첨탑과 어두운 분위기를 지닌 건축 양식을 가리키던 말이다. (록에서)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 반향이 짙은 기타와 낮은 보컬을 특징으로 하는 록의 하위 장르를 가리킨다. 더 큐어는 이 장르의 대표주자로 자주 꼽히지만, 스미스 스스로는 이 이름표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공포영화의 배경음악처럼 서늘한 분위기를 음악으로 옮겼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코러스 이펙트
(말뜻) 영어 코러스(chorus)는 합창을 뜻하는데, 한 사람의 소리를 여러 명이 부르는 것처럼 들리게 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록에서) 기타나 다른 악기의 소리를 아주 살짝 시간차를 두고 겹쳐, 여러 대가 동시에 연주하는 것처럼 두껍고 일렁이는 소리를 만드는 음향 장치(이펙트 페달)를 가리킨다. 친구와 똑같은 노래를 아주 살짝 다른 박자로 부르면 소리가 통통 울리듯 겹쳐 들리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리버브
(말뜻) 영어 reverberation을 줄인 말로, 소리가 벽에 부딪혀 여러 번 되울리는 반향을 뜻한다. (록에서) 녹음된 소리에 인위적으로 울림을 더해, 좁은 스튜디오에서도 마치 넓은 성당이나 동굴에서 연주하는 듯한 공간감을 만드는 기술이다. 목욕탕에서 노래를 부르면 소리가 유난히 크고 울리게 들리는 것과 같은 원리를 스튜디오 장비로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베이스라인
(록에서) 베이스 기타가 연주하는 멜로디 선을 가리키는 말로, 보통 드럼과 함께 곡의 리듬과 저음을 책임진다. 합창에서 낮은 음역을 맡은 사람들이 화음의 뿌리를 받쳐 주는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파워팝
(록에서) 강한 기타 사운드와 단순하고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결합한 팝 지향 록 음악을 가리킨다. 「Friday I'm in Love」처럼 어둡던 밴드가 갑자기 경쾌한 곡을 낼 때 자주 이 표현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