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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ch Boys

비치 보이스 (1961–)

캘리포니아의 햇빛을 노래한 그 화음의 밑바닥에는 늘, 엄한 아버지의 집에서 자란 형제들의 불안이 흐르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캘리포니아주 호손 결성윌슨 3형제와 사촌포 프레시먼 화음2. 서핑「서핀 U.S.A.」캐피톨 계약「아이 겟 어라운드」3. 정점브라이언 투어 은퇴「펫 사운즈」「굿 바이브레이션스」4. 좌절「스마일」 중단저작권 매각칼과 데니스의 성장5. 상실「끝없는 여름」 부활데니스 1983 타계칼 1998 타계6. 유산2004 「스마일」 완성50주년 재결합브라이언 2025 타계보이스1961–서핑 노래로 출발해 「펫 사운즈」에 이른, 윌…
무대가 된 도시 🧭🗺️
N미국호손1942–1964로스앤젤레스1964–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가족머리 윌슨

    세 형제의 아버지이자 초기 매니저로, 아들들을 음악으로 이끌었지만 엄격함과 간섭으로 깊은 상처도 남겼다.

  • 멤버브라이언 윌슨

    맏이로 작곡·편곡·제작을 도맡아 「펫 사운즈」와 「굿 바이브레이션스」를 만든 밴드의 두뇌였다.

  • 멤버마이크 러브

    형제들의 사촌으로 리드 보컬과 가사를 맡았고, 칼이 떠난 뒤 밴드의 무대를 이어 왔다.

  • 멤버칼 윌슨

    막내이자 리드 기타리스트로, 「갓 온리 노즈」를 부르고 형이 물러난 시기 녹음을 이끈 중재자였다.

  • 멤버데니스 윌슨

    밴드에서 유일하게 서핑을 하던 드러머로, 뒤늦게 작곡가로 피어나 「퍼시픽 오션 블루」를 남겼다.

  • 경쟁폴 매카트니

    비틀스와 비치 보이스는 서로의 앨범에 자극받았고, 그는 「펫 사운즈」가 「서전트 페퍼스」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호손의 형제들 · 1942–1961

(호손) 196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호손에서 결성됐다. 로스앤젤레스 남서쪽, 항공기 공장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교외 도시였다. 중심에는 윌슨 집안의 세 형제가 있었다. 1942년생 맏이 브라이언, 1944년생 데니스, 1946년생 칼이었다. 아버지 머리 윌슨은 기계 부품 사업을 하며 틈틈이 노래를 써 출판사에 팔던, 꿈을 이루지 못한 작곡가였다. 어머니 오드리는 피아노를 치며 아이들과 노래하던 다정한 사람이었다. (아버지) 머리는 아들들에게 음악을 가르쳤지만 그 엄격함은 체벌과 모욕으로 번지곤 했다고 형제들은 훗날 증언했다. 브라이언은 오른쪽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았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맞은 탓이라고 본인이 말한 적이 있으나 원인은 확실하지 않다. (화음) 브라이언은 보컬 그룹 포 프레시먼의 레코드를 수없이 돌려 들으며 네 성부의 화음을 귀로 받아 적었고, 거실에서 동생들과 사촌 마이크 러브에게 성부를 나눠 주었다. 1941년생 마이크는 훗날 무대에서 리드 보컬을 맡게 된다. 브라이언의 고교 미식축구부 동료 앨 자딘은 포크 음악을 좋아하는 기타 소년이었다. (서핑) 이들 가운데 실제로 파도를 타던 사람은 데니스뿐이었다. 그가 해변의 유행을 노래로 만들자고 했고, 브라이언과 마이크가 곡을 썼다. 1961년 9월 부모가 멕시코로 여행을 떠난 사이, 소년들은 남겨 둔 생활비로 악기를 빌려 연습했다. 돌아온 머리는 화를 냈지만, 노래를 듣고는 곧 이들의 매니저를 자처했다.

II. 서핑의 소리 · 1961–1964

(이름) 그해 말 첫 싱글 「서핀」이 작은 레이블 캔딕스에서 나왔다. 멤버들은 펜들톤스라는 이름을 쓰려 했지만, 음반사 쪽이 서핑 유행에 맞춰 붙인 비치 보이스라는 이름이 찍혀 나왔다. 브라이언은 베이스와 작곡·편곡을, 마이크는 리드 보컬과 가사를, 칼은 리드 기타를, 데니스는 드럼을, 앨은 리듬 기타를 맡았다. 앨은 1962년 초 음악적 견해 차이와 그룹의 성공에 대한 의구심으로 잠시 떠났고, 이웃 소년 데이비드 마크스가 그 자리를 채웠다가 1963년 앨이 돌아왔다. (캐피톨) 1962년 캐피톨 레코드와 계약한 뒤 「서핀 사파리」와 「서핀 U.S.A.」가 잇달아 히트했다. 브라이언은 곧 제작까지 넘겨받았다. 그는 필 스펙터가 여러 악기를 겹겹이 쌓아 만든 두터운 소리에 매료돼, 스튜디오 자체를 악기처럼 다루는 법을 익혀 갔다. 머리는 곡의 출판권을 쥐고 녹음실에서도 사사건건 간섭했다. (침공) 1964년 비틀스가 미국에 상륙하자, 같은 캐피톨 소속이던 영국 밴드에게 관심이 쏠렸다. 브라이언은 경쟁심에 불탔고, 그해 봄 「아이 겟 어라운드」 녹음 도중 아버지를 매니저 자리에서 해고했다. 이 곡은 밴드의 첫 미국 1위가 됐다. 아버지를 밀어낸 자리에서 얻은 첫 정상이었다. (무게) 성공은 스물두 살 브라이언의 어깨에 모든 것을 얹었다. 한 해에 앨범 서너 장, 끝없는 투어, 다음 히트에 대한 압박이 이어졌다. 그해 12월 그는 자신이 제작하던 걸그룹 허니스의 멤버 마릴린 로벨과 결혼했다.

♪서핀 U.S.A. (Surfin' U.S.A.)1963실황 The Beach Boys · 1985 Live Aid

척 베리를 사랑한 소년들이 그의 로큰롤에 서핑의 풍경과 포 프레시먼식 화음을 입힌 곡으로, 밴드를 전국 무대에 올렸다.

  • 도입부의 날카로운 기타는 칼 윌슨이 척 베리를 흉내 내며 익힌 주법이다. 한 줄씩 끊어 치는 그 소리가 곡 전체의 엔진이다.
  • 가락은 척 베리의 「스위트 리틀 식스틴」에서 왔다. 두 곡을 나란히 들으면 같은 뼈대에 무엇을 더했는지, 특히 뒤에 깔린 화음이 얼마나 다른 색을 내는지 드러난다.
  • 마이크 러브의 콧소리 섞인 리드 위로, 후렴마다 브라이언의 높은 가성(팔세토)이 떠오른다. 같은 목소리를 두 번 녹음해 겹친 방식(더블 트래킹)이 소리를 두텁게 한다.
  • 중간의 짧은 오르간 독주와 기타 독주가 차례로 이어지고, 곡은 2분 남짓에 끝난다. 라디오용 싱글의 압축된 형식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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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겟 어라운드 (I Get Around)1964무대 The Beach Boys · 1964 에드 설리번 쇼

브라이언이 아버지를 매니저 자리에서 해고한 바로 그 녹음에서 나온 곡으로, 비틀스의 공세 속에 밴드의 첫 미국 1위가 됐다.

  • 곡은 반주 없이 목소리만으로 몰아치는 화음으로 문을 연다. 첫 몇 초에 다섯 사람의 성부가 어떻게 쌓이는지 귀를 기울여 보라.
  • 절에서는 마이크가 낮고 빠르게 이야기하듯 부르고, 후렴에서는 브라이언의 가성이 위로 치솟는다. 두 목소리가 맡은 역할의 대비가 이 시기 밴드 사운드의 핵심이다.
  • 간주에서는 탁탁 끊어 치는 기타 독주와 손뼉 소리가 들어온다. 서핑 록의 단순한 반주가 브라이언의 손에서 점점 정교해지는 과정이 엿보인다.
  • 절과 후렴의 박자 느낌이 확 바뀌는 순간들이 있다. 2분 남짓한 길이 안에 여러 장면을 이어 붙이는 브라이언의 버릇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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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스튜디오의 브라이언 · 1964–1966

(비행기) 1964년 12월, 휴스턴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브라이언은 신경 발작을 일으켰다. 그는 투어에서 물러나 곡 쓰기와 제작에 전념하기로 했다. 무대에서는 세션 기타리스트 글렌 캠벨이 잠시 그를 대신했고, 1965년 브루스 존스턴이 합류해 베이스와 고음 화음을 맡았다. (분업) 멤버들이 투어를 도는 동안 브라이언은 레킹 크루라 불린 로스앤젤레스의 정상급 세션 연주자들, 곧 드러머 할 블레인과 베이시스트 캐럴 케이 같은 이들과 반주를 먼저 녹음했다. 멤버들은 돌아와 그 위에 목소리를 얹었다. 이 무렵 브라이언은 마리화나와 LSD를 접했고, 훗날 회고록에서 그때부터 머릿속 목소리에 시달리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경쟁) 1965년 말 비틀스의 「러버 소울」을 들은 브라이언은 수록곡 전부가 좋은 앨범이라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광고 문안가 토니 애셔와 함께 사랑의 불안, 어른이 되는 두려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외로움을 다룬 곡들을 써서 1966년 5월 「펫 사운즈」를 냈다. 미국에서는 기대만큼 팔리지 않았지만 영국에서는 2위까지 올랐다. 폴 매카트니는 이 앨범이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의 출발점이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교향곡) 같은 해 10월 나온 「굿 바이브레이션스」는 반년 넘게 네 곳의 스튜디오를 오가며 짧은 토막들을 녹음해 이어 붙인 곡이었다. 홍보 담당 데릭 테일러는 이를 주머니 속 교향곡이라 불렀고, 곡은 미국과 영국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브라이언의 창작이 가장 높이 솟은 순간이었다.

♪앨범 《펫 사운즈》 (Pet Sounds)1966실황 「Wouldn't It Be Nice」 The Beach Boys · 1985 Live Aid

투어에서 물러난 브라이언이 「러버 소울」에 자극받아 사랑의 불안과 성장의 두려움을 담은 앨범으로, 비틀스의 「서전트 페퍼스」로 이어진 연쇄의 고리였다.

  • 첫 곡 「우든 잇 비 나이스」의 도입은 하프처럼 맑은 아르페지오(화음을 한 음씩 풀어 연주하는 방식)로 시작해, 할 블레인의 드럼 한 방으로 문이 열린다. 영상 카드에 이 곡을 고른 이유다.
  • 브라이언은 오른쪽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아 이 앨범을 좌우 구분이 없는 한 줄기 소리(모노)로 완성했다. 스테레오판은 1997년에야 만들어졌으니, 가능하면 모노판으로 먼저 들어 보라.
  • 「아이 저스트 워즌트 메이드 포 디즈 타임스」에서 미끄러지듯 높은 음을 내는 전자 악기(일렉트로 테레민)가 들린다. 록 음반에 이 악기를 쓴 초기 사례로 꼽힌다.
  • 아코디언, 하프시코드, 플루트, 자전거 벨처럼 록에서 낯선 소리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마지막 곡 「캐롤라인 노」 끝에는 기차 소리와 브라이언의 개 바나나와 루이의 짖는 소리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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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온리 노즈 (God Only Knows)1966실황 The Beach Boys · 1980 Knebworth

「펫 사운즈」의 한가운데 놓인 사랑 노래로, 폴 매카트니가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여러 번 꼽았다.

  • 도입부는 프렌치 호른과 하프시코드가 연다. 록 밴드의 기타 대신 실내악 같은 악기 편성이 이 곡의 첫인상을 만든다.
  • 리드 보컬은 칼 윌슨이다. 브라이언은 동생의 맑고 꾸밈없는 목소리가 이 곡에 맞는다고 보고 직접 부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 화음이 어느 조에 머무는지 분명히 하지 않고 떠다니는 점이 평론가들이 자주 짚는 대목이다. 절이 끝나도 집에 돌아온 느낌이 들지 않는 그 불안정함이 가사의 아슬아슬한 고백과 맞물린다.
  • 마지막 부분에서 브라이언과 브루스의 목소리가 돌림노래처럼 시차를 두고 겹쳐 들어온다. 이어폰으로 들으면 세 갈래 선율이 엮이는 모습이 더 잘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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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바이브레이션스 (Good Vibrations)1966실황 The Beach Boys · 1985 Live Aid

반년 넘게 여러 스튜디오에서 토막을 녹음해 이어 붙인 곡으로, 브라이언의 창작이 정점에 이르렀다가 「스마일」로 무너지기 직전의 작품이다.

  • 절에서는 칼의 부드러운 리드 아래로 첼로가 세 음씩 빠르게 끊어 긋는 셋잇단 리듬이 깔린다. 록 반주의 자리에 현악기가 들어선 순간이다.
  • 후렴에서 미끄러지듯 오르내리는 높은 소리는 연주자 폴 태너가 다룬 일렉트로 테레민이다. 그 아래 마이크가 낮은 음역으로 박자를 짚으며 받친다.
  • 곡 중간에 갑자기 오르간과 타악기만 남는 고요한 대목이 오고, 이어 반주 없는 화음이 펼쳐진다. 장면이 바뀌듯 분위기가 갈아드는 이 이음새가 토막 편집의 흔적이다.
  • 녹음은 골드 스타, 웨스턴, 선셋 사운드, 컬럼비아 등 네 스튜디오에서 이뤄졌고, 각 방의 울림을 일부러 골라 썼다. 제작비는 당시 싱글로는 이례적인 수만 달러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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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미완의 미소 · 1966–1971

(스마일) 브라이언은 다음 앨범 「스마일」을 「펫 사운즈」를 넘어설 작품으로 구상했다. 작사는 젊은 작곡가 밴 다이크 파크스가 맡아, 미국의 역사와 풍경을 말놀이처럼 엮었다. 그러나 녹음은 끝없이 토막으로 쪼개졌고, 투어에서 돌아온 멤버들은 뜻을 알기 어려운 가사에 의문을 표했다. 캐피톨과의 로열티 분쟁, 약물, 깊어진 불안이 겹치며 브라이언은 1967년 5월 앨범을 거둬들였다. 그달 말 비틀스의 「서전트 페퍼스」가 나왔다. (후퇴) 대신 브라이언의 집에 차린 간이 스튜디오에서 소박하게 다시 녹음한 「스마일리 스마일」이 나왔다. 밴드는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 출연도 취소했고, 히피 시대 앞에서 줄무늬 셔츠의 서핑 밴드라는 이미지는 낡아 보였다. 브라이언이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날이 늘자 칼이 녹음을 이끌었다. 칼은 그해 징집을 거부해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재판을 받았고, 사회봉사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인도) 1968년 마이크는 인도 리시케시에서 비틀스와 함께 초월 명상을 배웠다. 마이크는 매카트니가 그곳에서 「백 인 더 U.S.S.R.」을 들려주었을 때 러시아 여자들 이야기를 브리지에 넣어 보라고 권했다고 회고했다. (맨슨) 같은 해 데니스는 히치하이커들을 집에 들였다가 찰스 맨슨 무리와 엮였다. 밴드는 맨슨의 곡을 고쳐 「네버 런 낫 투 러브」로 냈고, 데니스는 곧 그들과 거리를 뒀다. (저작권) 1969년 머리는 초기 곡의 권리를 가진 출판사 시 오브 튠스를 약 70만 달러에 팔았고, 브라이언은 크게 상심했다. 밴드는 리프라이즈로 옮겨 「선플라워」와 「서프스 업」을 냈다. 판매는 저조했지만 데니스와 칼이 작곡가로 여문 시기였다.

♪서프스 업 (Surf's Up)1971

1966년 「스마일」을 위해 밴 다이크 파크스와 쓴 곡으로, 앨범이 무너진 뒤 5년 만에 칼의 손으로 되살아났다.

  • 1966년 말 브라이언이 홀로 피아노를 치며 이 곡을 부르는 장면이 촬영돼, 레너드 번스타인이 진행한 미국 방송 프로그램에 나갔다. 1971년판과 나란히 보면 곡이 얼마나 일찍 완성돼 있었는지 알 수 있다.
  • 1971년판의 첫 부분은 칼이 부르고, 중반은 브라이언의 1966년 피아노 녹음을 그대로 이어 붙였다. 목소리와 녹음 질감이 바뀌는 지점을 찾아 들어 보라.
  • 가사는 쇠락하는 화려한 문명과 아이의 순수함을 겹쳐 놓은 은유로, 직설적인 사랑 노래와 거리가 멀다. 낮게 깔린 금관 악기가 그 쓸쓸한 분위기를 받친다.
  • 마지막 부분에서는 여러 목소리가 겹쳐 쌓이며 끝없이 이어질 듯한 합창이 된다. 「스마일」이 꿈꾸던 소리가 가장 가까이 들리는 대목이다.
♪포에버 (Forever)1970실황 The Beach Boys · 1971 센트럴파크

밴드의 드러머이자 형의 그늘에 있던 데니스가 작곡가로 피어난 「선플라워」의 곡으로, 브라이언이 크게 아꼈다고 전해진다.

  • 리드는 데니스 자신이 부른다. 형들보다 거칠고 낮은 목소리가 오히려 곡에 따뜻한 무게를 준다.
  •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 위로 형제들의 배경 화음이 천천히 차오른다. 화음이 데니스의 목소리를 감싸는 방식에서 이 밴드가 가족이었다는 사실이 들린다.
  • 곡은 2분 반 남짓으로 짧다. 군더더기 없이 고백 하나를 끝까지 밀고 가는 형식으로, 상대에게 직접 말을 거는 다정한 어조다.
  • 끝부분에서 목소리들이 여러 겹으로 포개지며 사라진다. 헤드폰으로 들으면 각 성부가 따로 움직이는 결이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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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끝없는 여름 · 1972–1983

(네덜란드) 1972년 밴드는 남아프리카 출신 블론디 채플린과 리키 파타르를 맞아들이고, 녹음 장비를 통째로 배에 실어 네덜란드 시골 마을에서 「홀랜드」를 만들었다. 낯선 곳에서 캘리포니아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앨범 곳곳에 배었다. 이듬해 머리가 세상을 떠났다. 브라이언은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향수) 1974년 캐피톨이 초기 히트곡을 모은 「끝없는 여름」을 내자 앨범은 1위에 올랐다.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에 지친 미국은 1960년대 초의 햇살을 그리워했고, 밴드는 순식간에 경기장을 채우는 향수의 상징이 됐다. 대신 새 음악보다 옛 노래를 원하는 무대가 굳어졌다. (랜디) 1975년 심리치료사 유진 랜디가 브라이언을 맡아 그를 다시 스튜디오로 이끌었다. 1976년 「15 빅 원스」는 브라이언이 돌아왔다는 홍보와 함께 나왔지만, 치료비 문제로 랜디는 곧 해고됐다. (데니스) 형의 그늘에 있던 데니스는 1977년 솔로 앨범 「퍼시픽 오션 블루」를 냈다. 거칠어진 목소리로 바다와 상실을 노래한 이 앨범은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술에 깊이 빠져 있었다. 1983년 12월 28일, 마리나 델 레이 정박지에서 술에 취한 채 물에 뛰어들었다가 익사했다. 서른아홉 살이었다. 그는 정부의 특별 허가를 얻어 태평양에 묻혔다. (워싱턴) 같은 해 내무장관 제임스 와트가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록 밴드를 배제하겠다며 그동안 무대에 서 온 비치 보이스를 빼자, 낸시 레이건이 공개적으로 이들을 옹호했다. 밴드는 이듬해 다시 워싱턴의 독립기념일 무대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VI. 남은 목소리들 · 1984–2026

(후견) 1982년 말 다시 불려 온 랜디는 브라이언의 일상 전체를 관리했다. 건강은 나아졌지만 랜디는 작곡 크레디트와 수익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1989년 그는 캘리포니아 심리학 면허를 반납했고, 1992년 법원 명령으로 브라이언과의 접촉이 금지됐다. 브라이언은 1995년 멜린다 레드베터와 재혼해 안정을 찾았다. (코코모) 밴드는 198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같은 해 「코코모」로 22년 만에 미국 1위를 차지했다. 1994년에는 마이크가 머리 시절 빠졌던 공동 작곡 크레디트를 되찾는 소송에서 이겨 「캘리포니아 걸스」를 비롯한 35곡에 이름을 올렸다. (상실) 1996년 어머니 오드리가, 1998년 2월 칼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칼은 형과 사촌 사이를 잇던 온화한 중재자였다. 이후 밴드 이름의 사용 허가는 마이크에게 넘어갔고, 그는 브루스와 함께 투어를 이어 갔다. (완성) 브라이언은 2004년 밴 다이크 파크스, 자신의 투어 밴드와 함께 「스마일」을 37년 만에 완성해 런던에서 초연했다. 2011년에는 1960년대 원래 녹음을 모은 「스마일 세션스」가 나왔고, 이 음반은 2013년 그래미 최우수 역사적 앨범상을 받았다. 2012년 창단 50주년에는 브라이언, 마이크, 앨, 브루스, 데이비드가 다시 모여 새 앨범을 내고 세계를 돌았다. (현재) 브라이언은 말년에 치매로 법원이 지정한 후견인의 보호를 받다가 2025년 6월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세 형제는 모두 떠났지만, 마이크는 지금도 비치 보이스의 이름으로 무대에 오르고, 2026년 3월 투어 라인업에서 물러난 브루스는 특별 공연에만 함께하기로 했다.

덜 알려진 이야기

「서핀 U.S.A.」는 처음 발매될 때 브라이언 윌슨 단독 작곡으로 표기됐다. 가락이 척 베리의 「스위트 리틀 식스틴」과 같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머리 윌슨은 소송까지 가기 전에 곡의 권리를 베리 측 출판사에 넘겼다. 그래서 이후 판에는 베리의 이름이 올라 있다. 서핑 록의 대표곡이 법적으로는 척 베리의 노래라는 사실은 히트의 기억에 가려 잘 언급되지 않는다. 아들들에게 매니저 자리에서 밀려난 머리는 작곡가의 꿈을 접지 않았다. 1967년 그는 캐피톨에서 자신의 곡을 연주한 경음악 앨범 「더 매니 무즈 오브 머리 윌슨」을 냈다. 판매는 미미했지만, 아들들을 몰아세우던 아버지 역시 인정받고 싶었던 음악가였음을 보여 주는 기록으로 전기 작가들이 짚는 대목이다. 「펫 사운즈」는 1966년 발매 이후 30년 넘게 모노로만 존재했다. 브라이언이 한쪽 귀로만 들었기 때문이다. 정식 스테레오판은 1997년 박스 세트 「펫 사운즈 세션스」로 처음 나왔다. 오늘날 흔히 듣는 스테레오 음원이 브라이언의 원래 의도와 다르다는 점은 열성 팬들 사이에서나 오간다. 1965년 합류한 브루스 존스턴은 밴드 밖에서도 작곡가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가 쓴 「아이 라이트 더 송스」는 배리 매닐로가 불러 1976년 미국 1위에 올랐고 그래미 올해의 노래상을 받았다. 비치 보이스의 이름에 가려 그가 이 곡의 작곡자라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데니스의 「퍼시픽 오션 블루」는 그의 사후 오랫동안 절판돼 구하기 어려운 앨범이었다. 2008년 재발매된 뒤에야 비평가들 사이에서 1970년대의 숨은 걸작으로 다시 평가받기 시작했다.

용어 노트 📚🔎

팔세토

(말뜻) 이탈리아어 falso(거짓)에서 온 말로, 우리말로는 가성(假聲), 곧 거짓(假) 목소리(聲)라고 한다. 평소 목소리가 아닌, 따로 만들어 낸 높은 목소리라는 뜻이다. (록에서) 남자 가수가 평소 음역보다 훨씬 높은 음을 가볍고 맑게 내는 창법이다. 비치 보이스에서는 브라이언 윌슨의 팔세토가 화음의 맨 위를 맡아 밴드 특유의 반짝이는 소리를 만들었다. 노래방에서 너무 높은 노래를 부를 때 목을 쥐어짜는 대신 힘을 빼고 머리 위로 띄우듯 소리를 내 본 적이 있다면, 그게 팔세토다.

화음(하모니)

(말뜻) 화음(和音)은 어울리는(和) 소리(音)라는 뜻이다. 영어 하모니는 그리스어 harmonia에서 왔는데, 원래 조각을 맞춰 잇는다는 뜻이었다. (록에서)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높이의 음을 동시에 불러 하나의 풍성한 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비치 보이스는 다섯 사람이 성부를 나눠 맡아, 마치 한 사람이 여러 목소리로 노래하는 듯한 촘촘한 화음으로 유명했다. 합창 대회에서 소프라노와 알토가 다른 음을 부르는데도 합쳐지면 더 아름답게 들리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하모니는 사람이나 사물이 서로 잘 어울리는 상태, 곧 조화를 뜻하기도 한다.

오버더빙

(말뜻) 영어 over(위에)와 dub(녹음을 덧입히다)가 합쳐진 말로, 이미 녹음된 소리 위에 새 소리를 덧입힌다는 뜻이다. (록에서) 반주를 먼저 녹음해 두고, 그것을 들으며 노래나 다른 악기를 따로 녹음해 겹치는 방법이다. 브라이언 윌슨은 세션 연주자들과 반주를 먼저 만든 뒤, 투어에서 돌아온 멤버들의 목소리를 여러 겹 오버더빙했다. 그림을 그릴 때 밑그림을 먼저 그리고 마른 뒤에 색을 한 겹씩 덧칠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영화에서 더빙은 외국어 대사를 우리말 목소리로 바꿔 입히는 일을 가리킨다.

세션 연주자

(록에서) 특정 밴드의 멤버가 아니면서 녹음이 있을 때마다 불려 가 연주하는 전문 연주자다. 1960년대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레킹 크루라 불린 세션 연주자들이 수많은 히트곡의 반주를 맡았고, 「펫 사운즈」의 반주도 대부분 그들의 손에서 나왔다. 학교 연극에서 배우는 우리 반 친구들이지만, 무대 뒤 음향과 조명은 다른 반의 실력자들을 불러 맡기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세션은 회의나 학회에서 주제별로 나뉜 한 시간대를 가리키기도 하고, 컴퓨터에서는 접속해 있는 한 번의 이용 기간을 뜻한다.

모노와 스테레오

(말뜻) 모노는 그리스어 monos(하나)에서, 스테레오는 stereos(단단한, 입체적인)에서 왔다. 소리가 한 줄기인지, 입체로 퍼지는지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록에서) 모노는 모든 소리를 하나의 통로로 담아 왼쪽과 오른쪽 스피커에서 똑같이 나오게 하는 방식이고, 스테레오는 소리를 좌우로 나눠 배치해 공간감을 만드는 방식이다. 한쪽 귀가 거의 들리지 않던 브라이언 윌슨은 모노를 고집했다. 친구와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고 들었을 때 어떤 악기가 한쪽에서만 들려 놀란 적이 있다면, 그 곡은 스테레오로 녹음된 것이다.

일렉트로 테레민

(말뜻) 테레민은 이 계열 악기를 처음 만든 러시아 발명가 레프 테르멘(영어식 이름 레온 테레민)의 이름에서 왔다. (록에서) 원래 테레민은 손을 공중에서 움직여 연주하는 전자 악기인데, 트롬본 연주자 폴 태너가 이를 다루기 쉽게 고친 것이 일렉트로 테레민이다. 음과 음 사이를 끊김 없이 미끄러지듯 이어 가며 으스스하면서도 꿈결 같은 소리를 낸다. 「굿 바이브레이션스」 후렴의 높은 울림이 이 악기다. 리코더는 구멍을 막아 음이 하나씩 뚝뚝 바뀌지만, 사이렌은 음높이가 매끄럽게 오르내리는데, 일렉트로 테레민은 사이렌 쪽에 가깝다.

아르페지오

(말뜻) 이탈리아어 arpa(하프)에서 온 말로, 하프를 뜯듯이 연주한다는 뜻이다. (록에서) 화음을 이루는 여러 음을 한꺼번에 치지 않고 한 음씩 차례로 풀어 연주하는 방법이다. 「우든 잇 비 나이스」의 도입부처럼 맑고 반짝이는 느낌을 낼 때 자주 쓴다. 피아노 학원에서 도·미·솔을 동시에 누르면 화음이고, 도, 미, 솔을 하나씩 굴리듯 치면 아르페지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