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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ing Heads

토킹 헤즈 (1975–1991)

뉴욕의 클럽 무대에서 시작해, 불안과 리듬과 춤을 하나로 엮은 아트 록 밴드였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뉴욕 결성RISD에서 만남베이스 자가 학습2. CBGB라몬스 오프닝사이코 킬러사이어 레코드3. 이노와 확장브라이언 이노아프리카 리듬리메인 인 라이트4. 전성기버닝 다운 더 하우스거대 정장스탑 메이킹 센스5. 균열톰 톰 클럽트루 스토리즈해체 통보6. 유산명예의 전당R.E.M.에 영향2023 재회헤즈1975–1991뉴욕 CBGB에서 태어나 불안과 춤을 하나로 …
무대가 된 도시 🧭🗺️
N미국프로비던스1970–1974뉴욕1975–1991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데이비드 번

    보컬과 기타를 맡고 밴드의 주된 작사·시각 콘셉트를 이끌었다.

  • 멤버크리스 프란츠

    드러머로, 밴드의 리듬을 떠받쳤다.

  • 멤버티나 웨이머스

    베이스를 직접 배워 맡았고 프란츠와 부부가 됐다.

  • 멤버제리 해리슨

    모던 러버스 출신으로 1977년 키보드와 기타를 더했다.

  • 프로듀서브라이언 이노

    세 장의 앨범을 함께 만들며 아프리카 리듬과 오버더빙 기법을 끌어왔다.

  • 영향알이엠(R.E.M.)

    토킹 헤즈의 실험적 사운드는 이후 결성된 미국 대학가 록 밴드들에게 자양분이 됐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로드아일랜드에서 뉴욕까지 · 1950–1975

(결성) 1975년, 미국 뉴욕에서 결성됐다. 그 전신은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의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RISD)에서 만난 학생들이었다. 데이비드 번은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자랐고, 크리스 프란츠는 켄터키의 군인 가정 출신이었다. (베이스) 프란츠의 연인 티나 웨이머스는 해군 장교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프랑스에서 보내 불어가 능숙했다. 크리스 프란츠와 데이비드 번은 1973년 프로비던스에서 밴드 「더 아티스틱스」를 꾸렸다가 이듬해 해체한 뒤 뉴욕으로 옮겼고, 새 밴드에서 베이스 연주자를 구하지 못하자 웨이머스가 직접 베이스를 배워 맡았다. (작명) 밴드 이름 「토킹 헤즈」는 텔레비전에서 머리와 어깨만 비추는 화면을 가리키는 방송 업계 용어에서 따왔다. 평범하면서도 기계적인 이 말이 번의 미감과 맞아떨어졌다. 세 사람은 이 이름으로 뉴욕 로어이스트사이드의 클럽가에 발을 들였다.

II. CBGB의 긴장된 소년들 · 1975–1977

(CBGB) 1975년 6월, 토킹 헤즈는 뉴욕의 클럽 CBGB에서 라몬스의 오프닝으로 첫 무대를 치렀다. 펑크 밴드들의 거친 사운드 사이에서 번의 신경질적인 보컬과 간결하게 끊어지는 연주는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어울렸다. (영입) 1977년, 조너선 리치먼의 밴드 모던 러버스에서 활동하던 제리 해리슨이 키보드와 기타를 더하며 네 번째 멤버로 합류했다. 하버드에서 건축을 공부한 해리슨의 가담으로 밴드의 편곡은 한층 정교해졌다. 레이블 사이어 레코드의 시모어 스타인이 이들을 눈여겨봐 계약을 맺었다. (데뷔) 같은 해 발표한 데뷔 앨범 《토킹 헤즈: 77》(Talking Heads: 77)에는 불안한 인물의 독백을 그린 「사이코 킬러」가 실렸다. 단순한 베이스 라인 위에 번이 더듬듯 내뱉는 보컬은 평단의 주목을 받았고, 밴드는 뉴욕 언더그라운드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사이코 킬러 (Psycho Killer)1977실황 Talking Heads · 2002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

CBGB 시절의 신경질적인 에너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담은 데뷔 앨범의 대표곡이다.

  • 티나 웨이머스의 반복적인 베이스 리프가 곡 전체를 떠받치며 긴장을 만든다.
  • 번은 단어를 더듬듯 끊어 부르며 불안한 인물의 심리를 드러낸다.
  • 중간에 갑자기 프랑스어로 바뀌는 구간은 불어에 능숙한 웨이머스의 제안에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 화려한 기타 솔로 대신 최소한의 악기만 써서 리듬과 목소리의 긴장에 집중하게 만든다.
  • 《스탑 메이킹 센스》의 라이브 버전에서는 번 혼자 미리 녹음된 리듬 반주에 맞춰 기타를 치며 곡을 시작해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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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브라이언 이노와 아프리카의 리듬 · 1978–1980

(이노) 1978년부터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가 밴드와 손을 잡았다. 앨범 《모어 송스 어바웃 빌딩스 앤드 푸드》(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에서는 앨 그린의 곡을 커버해 새롭게 편곡한 「테이크 미 투 더 리버」가 뜻밖의 히트를 거두며 밴드를 라디오로 이끌었다. (다다) 1979년 《피어 오브 뮤직》(Fear of Music)에서는 다다이즘 시인 후고 발의 의미 없는 소리시에서 따온 「아이 짐브라」로 서아프리카 리듬을 처음 끌어왔다. 전쟁과 불안을 그린 「라이프 듀링 워타임」도 이 앨범에 실렸다. (확장) 1980년 바하마 나소의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리메인 인 라이트》(Remain in Light)는 기타리스트 에이드리언 벨루 등 객원 연주자를 더하고, 이노가 즐겨 쓴 오버더빙 기법과 서아프리카풍 폴리리듬을 적극 활용해 만들어졌다. 버니 워렐 등을 더한 9인조 편성은 이후 투어에서 꾸려졌다. 곡의 저작권 표기를 둘러싸고 멤버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음악적으로는 밴드 최고의 성과로 꼽힌다.

♪라이프 듀링 워타임 (Life During Wartime)1979실황 Talking Heads · 2002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

지하로 숨어드는 인물을 그린 곡으로, 브라이언 이노와의 작업이 리듬 섹션을 한층 또렷하게 다듬었다.

  • 당김음이 강한 리듬 기타와 베이스가 맞물려 춤곡에 가까운 긴장된 그루브를 만든다.
  • 번은 초조하게 쏘아붙이듯 노래하며 숨어 지내야 하는 인물의 긴박함을 그린다.
  • 브라이언 이노의 프로듀싱으로 각 악기의 소리가 또렷하게 분리돼 들린다.
  • 《스탑 메이킹 센스》 라이브에서 번은 무대 위를 제자리 뛰기로 질주해 곡의 긴박함을 몸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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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인 어 라이프타임 (Once in a Lifetime)1980영화 장면 「원스 인 어 라이프타임」 — 《Stop Making Sense》(Talking Heads)

리듬을 먼저 쌓고 그 위에 가사를 얹는 역순 작업 방식이 낳은, 토킹 헤즈 최고의 실험작 가운데 하나다.

  • 반복되는 신시사이저 루프 위에 프란츠와 웨이머스의 리듬 트랙을 먼저 쌓고, 이후 가사와 멜로디를 더하는 역순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 번은 설교자처럼 말하듯 노래하는 구간과 노래하듯 흐르는 구간을 오가며 독특한 화법을 구사한다.
  • 브리지에서 되풀이되는 구절은 거의 선언문처럼 반복되며 곡 전체의 중심축이 된다.
  • 뮤직비디오에서 번이 선보인 끊어지는 듯한 몸짓은 안무가 토니 베이질의 조언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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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리메인 인 라이트》 (Remain in Light)1980실황 Talking Heads · 1980 Capitol Theatre

바하마의 스튜디오 녹음과 이노의 오버더빙 기법이 만들어낸, 밴드 창작력의 정점이다.

  • 바하마 나소의 컴퍼스 포인트 스튜디오에서 녹음돼, 평소보다 느슨하고 뜨거운 분위기가 녹음에 묻어난다.
  • 리듬 섹션을 먼저 겹겹이 쌓은 뒤 그 위에 기타와 목소리를 덧입히는 오버더빙 방식으로 만들어져, 코드 진행보다 리듬의 반복이 곡을 이끈다.
  • 첫 곡 「본 언더 펀치스 (The Heat Goes On)」에서부터 여러 겹의 퍼커션과 기타가 교차하는 폴리리듬을 들을 수 있다.
  • 에이드리언 벨루의 날카로운 기타 톤이 기존 네 명 편성과는 다른 두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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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정장과 무대, 전성기 · 1983–1984

(히트) 1983년 앨범 《스피킹 인 텅스》(Speaking in Tongues)에서 「버닝 다운 더 하우스」가 빌보드 상위권에 오르며 토킹 헤즈는 처음으로 대중적 히트를 얻었다. 조지 클린턴의 펑크 밴드 공연에서 관객이 외치던 구호를 프란츠가 눈여겨본 것이 제목의 씨앗이 됐다. (거대정장) 1984년 조너선 데미가 연출한 콘서트 필름 《스탑 메이킹 센스》(Stop Making Sense)에서 번은 몸집보다 몇 배나 큰 정장을 입고 무대에 섰다. 일본 전통극 노(能)의 과장된 의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번은 밝혔다. (라인업) 이 시기 밴드는 투어마다 퍼커션과 백보컬을 더한 확장 편성으로 무대를 꾸렸다. 영화는 상업적 성공을 넘어 콘서트 필름의 전형으로 남았고, 토킹 헤즈는 음악과 시각 예술을 결합한 밴드로 평가받았다.

♪버닝 다운 더 하우스 (Burning Down the House)1983실황 Talking Heads · 2002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

조지 클린턴의 펑크 공연에서 얻은 구호를 제목으로 삼아, 밴드에게 첫 대중적 히트를 안긴 곡이다.

  • 신시사이저와 베이스가 만드는 묵직한 리듬 위에 합창처럼 반복되는 제목 구호가 곡의 중심을 이룬다.
  • 조지 클린턴의 밴드 공연에서 관객이 외치던 구호를 프란츠가 가져온 것이 제목의 출발점이 됐다고 알려져 있다.
  • 후렴마다 리듬 패턴이 조금씩 바뀌며 단조로움을 피한다.
  • 라이브에서는 확장된 백보컬과 퍼커션이 더해져 스튜디오 버전보다 한층 두꺼운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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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머스트 비 더 플레이스 (내이브 멜로디) (This Must Be the Place (Naive Melody))1983공식 MV — Talking Heads

멤버들이 서로 악기를 바꿔 연주하며 만든, 밴드의 가장 따뜻하고 소박한 사랑 노래다.

  • 녹음 당시 멤버들이 평소 쓰지 않던 악기를 서로 맞바꿔 연주해, 투박하고 순진한 느낌을 의도적으로 살렸다.
  • 곡 전체가 사실상 한 가지 화음 진행 위에서 흘러가, 긴장보다 편안한 반복감을 준다.
  • 번의 목소리는 이전 곡들의 신경질적인 톤과 달리 부드럽고 다정하게 흐른다.
  • 제리 해리슨은 신시사이저로 베이스 라인을 맡았고, 번은 기타와 신시사이저를 오가며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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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균열과 해체 · 1985–1991

(미국) 1985년 《리틀 크리처스》(Little Creatures)에서는 아프리카 리듬 대신 미국 남부의 가스펠과 어코디언 선율을 끌어왔다. 「로드 투 노웨어」는 무반주 합창으로 문을 열어 이전과 다른 질감을 보여줬다. (각자의 길) 프란츠와 웨이머스는 부부로서 별도의 그룹 톰 톰 클럽을 꾸려 활동했고, 번은 1986년 영화 《트루 스토리즈》(True Stories)를 직접 감독했다. 각자의 작업이 늘며 밴드로 모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해체) 1988년 마지막 앨범 《네이키드》(Naked)를 낸 뒤 밴드는 사실상 활동을 멈췄다. 1991년 번은 언론 인터뷰에서 밴드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다른 멤버들은 이를 나중에 알게 됐다고 전해진다. 토킹 헤즈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로드 투 노웨어 (Road to Nowhere)1985공식 MV — Talking Heads

아프리카 리듬에서 미국 남부의 가스펠과 브라스 밴드 사운드로 옮겨간 후기 토킹 헤즈를 보여준다.

  • 무반주 합창으로 시작해 이전 앨범들의 긴장된 분위기와 다른 복음성가풍의 따뜻함을 들려준다.
  • 중반부에 등장하는 금관 악기 편성은 미국 남부 브라스 밴드의 느낌을 가져온다.
  • 아코디언 음색이 곡 전체에 민속적인 질감을 더한다.
  • 후반부로 갈수록 합창과 금관이 겹겹이 쌓이며 행진곡처럼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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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재회와 유산 · 1991–2023

(명예의 전당) 2002년, 네 사람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식에서 다시 한 무대에 올라 「사이코 킬러」, 「버닝 다운 더 하우스」 등을 연주했다. 해체 이후 처음이자 오랫동안 마지막이었던 재결합 무대였다. (영향) 토킹 헤즈의 신경질적이면서도 춤을 부르는 사운드는 이후 결성된 알이엠(R.E.M.) 등 1980년대 미국 대학가 록 밴드들에게 자양분이 됐다. 번은 솔로 활동과 무대극 《아메리칸 유토피아》(American Utopia)에서도 옛 곡들을 꾸준히 불렀다. (재회) 2023년, 《스탑 메이킹 센스》 개봉 40주년을 맞아 영화가 재상영되며 네 멤버가 함께 무대에 올라 관객의 질문에 답했다. 수십 년의 거리를 두고도 네 사람은 한 시절을 함께 증언했다.

덜 알려진 이야기

티나 웨이머스는 프란츠가 가져온 수지 콰트로의 음반을 따라 치며 베이스를 손에 익혔는데, 정작 그 꾸밈없는 단순함이 훗날 토킹 헤즈 사운드의 뼈대가 됐다. 「아이 짐브라」의 가사는 1916년 스위스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에서 다다이즘 시인 후고 발이 낭송한 의미 없는 소리시 「가지 베리 빔바」에서 그대로 따왔다. 발은 종이 원통 의상을 입고 이 시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60여 년 뒤 번과 이노가 이 전위예술의 파편을 춤곡의 뼈대로 되살렸다는 사실은 음악평론보다는 미술사 쪽에서 더 자주 언급된다. 「사이코 킬러」는 처음에는 지금과 전혀 다른 느린 발라드로 구상됐다. 번은 당시 앨리스 쿠퍼식의 공포 쇼를 패러디해 보려는 생각으로 피아노 발라드 초안을 썼다고 훗날 밝혔다. 밴드가 이를 빠르고 신경질적인 곡으로 바꾸면서 지금의 형태가 됐다.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의 그 거대한 정장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다. 의상 제작자 게일 블래커는 여러 심지와 두꺼운 원단을 시험한 끝에 자수용 캔버스를 안감으로 대어 지금 알려진 뻣뻣하고 과장된 형태를 세웠다.

용어 노트 📚🔎

폴리리듬

(말뜻) 폴리(poly)는 여럿을, 리듬(rhythm)은 박자를 뜻해 여러 개의 박자가 겹친다는 말이다. (록에서) 한 곡 안에서 서로 다른 박자 단위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드럼은 4박자로 치는데 퍼커션은 3박자로 치면서 서로 교차하는 식이다. 체육 시간에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박수 리듬을 동시에 치면서도 결국 같은 지점에서 다시 맞아떨어지는 놀이를 떠올리면 비슷하다. 토킹 헤즈는 《리메인 인 라이트》에서 서아프리카 음악의 이런 리듬 겹침을 가져와 춤곡에 가까운 긴장을 만들었다.

커버

(록에서) 다른 가수나 밴드가 이미 낸 곡을 자신만의 편곡으로 다시 녹음하는 것을 말한다. 학교 합창 대회에서 다른 반이 부른 곡을 우리 반이 다른 편곡으로 다시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토킹 헤즈가 앨 그린의 「테이크 미 투 더 리버」를 자신들의 신경질적인 편곡으로 다시 불러 라디오 히트를 만든 것이 좋은 예다. (다른 데서는) 사업에서는 커버가 손실을 메운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오버더빙

(말뜻) 오버(over)는 위에, 더빙(dubbing)은 녹음을 더한다는 뜻으로, 이미 녹음된 소리 위에 새 소리를 덧입히는 것을 말한다. (록에서) 한 번에 모든 악기를 같이 연주해 녹음하는 대신, 리듬을 먼저 녹음한 뒤 그 위에 기타나 보컬을 따로 겹쳐 녹음하는 방식이다. 그림을 그릴 때 밑그림을 먼저 그리고 그 위에 색을 덧칠하는 것과 비슷하다.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는 《리메인 인 라이트》를 만들 때 리듬만 먼저 반복해 녹음한 뒤 멤버들에게 그 위에 자유롭게 연주를 덧입히게 했다.

펑크(funk)와 펑크(punk)

(말뜻) 두 말은 한국어로 똑같이 펑크라고 적지만 전혀 다른 영어 단어다. (록에서) 펑크(funk)는 리듬 악기들이 짧고 당김음 강한 리듬을 반복해 몸을 움직이게 하는 음악 스타일이고, 펑크(punk)는 1970년대에 짧고 거칠게 연주하던 록 음악을 가리킨다. 체육관에서 리듬에 맞춰 춤추게 되는 음악이 펑크(funk)에 가깝고, 짧고 공격적으로 소리치듯 연주하는 쪽이 펑크(punk)다. 토킹 헤즈는 뉴욕의 펑크(punk) 클럽 CBGB에서 출발했지만, 점점 펑크(funk) 리듬에 가까운 사운드로 옮겨갔다.

콘서트 필름

(록에서) 밴드의 실제 공연을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는 영화로 찍어 만든 것을 말한다. 학교 공연을 그냥 동영상으로 찍는 것을 넘어, 전문 감독이 카메라 각도와 편집까지 신경 써서 영화관에서 볼 만한 작품으로 만드는 것에 가깝다. 조너선 데미가 연출한 《스탑 메이킹 센스》는 이 장르에서 가장 자주 꼽히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록에서)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있는 기관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록 음악가들을 해마다 뽑아 이름을 올리는 곳이다. 학교에서 졸업생 명단을 적어 두는 명예의 벽과 비슷하지만, 전 세계 록 음악가들을 대상으로 한다. 토킹 헤즈는 2002년 이곳에 이름을 올리며 잠시 재결합 무대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