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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ic Youth

소닉 유스 (1981–2011)

표준 조율을 벗어난 기타 줄에서, 남들이 지나친 소리를 캐낸 밴드였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뉴욕 결성노 웨이브 씬글렌 브랑카 영향2. 결성무어·고든·라날도이름의 유래드러머 교체3. 정점《데이드림 네이션》변칙 튜닝게펜 계약4. 전성기《굿》 《더티》너바나 우정롤라팔루자5. 가정과 실험짐 오루크 합류노샘프턴 이주머레이 스트리트6. 해체와 유산2011년 활동 중단얼터너티브 록 유산각자의 길유스1981–2011변칙 튜닝과 소음으로 얼터너티브 록의 지형을 …
무대가 된 도시 🧭🗺️
N미국로스앤젤레스1953–1980뉴욕1981–1999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서스턴 무어

    기타와 보컬을 맡은 공동 창립자로, 밴드의 주요 작사가였다.

  • 멤버킴 고든

    베이스와 보컬을 맡았으며, 절제된 창법으로 밴드의 목소리를 규정했다.

  • 멤버리 라날도

    또 다른 기타를 맡아 무어와 대등하게 곡을 써 온 공동 창립자다.

  • 멤버스티브 셸리

    1985년 합류한 드러머로, 이후 리듬 섹션을 가장 오래 지켰다.

  • 영향글렌 브랑카

    대규모 기타 오케스트라를 이끈 작곡가로, 무어와 라날도에게 변칙 튜닝과 소음의 가능성을 알려 주었다.

  • 우정커트 코베인 (너바나)

    밴드가 게펜에 추천해 준 인연으로 가까워졌으며, 소닉 유스를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밴드로 자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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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뉴욕이 되기 전 · 1953–1981

(결성) 1981년, 미국 뉴욕에서 결성됐다. 데뷔 당시 멤버는 서로 다른 곳에서 자란 네 사람이 맨해튼 다운타운의 좁은 클럽과 작업실을 오가며 만나 이룬 팀이었다. (플로리다) 서스턴 무어는 1958년 미국 플로리다주 코럴게이블스에서 태어나 코네티컷주 베델에서 자랐다. 십 대 시절 펑크와 뉴욕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빠져 고등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뉴욕으로 향했다. (로체스터) 킴 고든은 1953년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대부분을 로스앤젤레스에서 보냈다. 아버지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쳤고, 그는 음악보다 먼저 미술을 공부하며 화랑과 잡지에 글을 쓰는 쪽에 가까웠다. (롱아일랜드) 리 라날도는 1956년 뉴욕주 글렌코브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시와 문학을 가까이했고, 기타를 리듬 악기가 아니라 소리의 재료로 다루는 태도를 일찍부터 지녔다. (다운타운) 이들이 모여든 뉴욕 다운타운은 1970년대 말 '노 웨이브'라 불린 씬이 자리잡은 곳이었다. CBGB와 맥스 캔자스 시티 무대에서 리디아 런치, 밴드 DNA 같은 이들이 멜로디와 코드 진행을 일부러 내던지며 소음과 불협화음을 음악으로 삼았다. (브랑카) 작곡가 글렌 브랑카가 이끈 대규모 기타 오케스트라는 무어와 라날도가 함께 연주자로 참여하며 만난 자리였다. 수십 대의 기타를 한꺼번에 변칙적으로 조율해 낸 드론과 배음의 벽은, 기타를 리프 악기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처럼 쓸 수 있다는 생각을 이들에게 심어 주었다.

II. 결성과 이름 · 1981–1985

(결합) 무어와 고든은 다운타운의 공연장을 드나들며 가까워졌고, 곧 연인이자 음악적 동반자가 되었다. 라날도가 합류하며 세 사람의 기타·베이스 편성이 갖춰졌고, 드러머 자리는 리처드 에드슨과 밥 버트를 거치며 한동안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름) 밴드 이름은 MC5의 기타리스트 프레드 '소닉' 스미스와 자메이카의 음악가 빅 유스에서 한 단어씩 따와 지었다. 미국 기타 록의 거친 에너지와 자메이카 더브 음악에 대한 애정을 한 이름 안에 함께 담으려 한 선택이었다. (역할) 무어와 라날도는 리듬과 리드를 고정하지 않고 서로 넘나들며 기타를 쳤고, 종종 나사와 드라이버 같은 도구로 줄을 긁어 낯선 배음을 끌어냈다. 고든은 베이스를 맡으며 점차 노래도 함께했는데, 감정을 직접 토로하기보다 한 발 물러선 어조로 읊조리는 창법이 이 밴드만의 목소리가 되었다. (결혼) 1984년 무어와 고든은 결혼했다. 부부이자 밴드의 중심축이라는 사실은 이후 이십여 년간 밴드를 지탱하는 힘이자, 훗날 밴드가 멈추게 되는 계기와도 맞닿게 된다. (암울) 1985년 낸 두 번째 앨범 《배드 문 라이징》은 찰스 맨슨 사건 이후 미국 서부에 드리운 불안한 기운을 소재로 삼았다. 노 웨이브 씬의 동료 리디아 런치가 객원으로 참여해, 밴드가 단지 소음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어두운 이면을 이야기로 다룰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죽음의 계곡 '69 (Death Valley '69)1984실황 Sonic Youth · 1985 Mojave Desert

찰스 맨슨 사건 이후 캘리포니아에 드리운 불안을 다룬 곡으로, 리디아 런치가 객원으로 참여해 밴드가 다운타운 노 웨이브 씬과 맺은 인연을 드러낸다.

  • 무어와 라날도의 기타는 표준과 다르게 조율돼(변칙 튜닝) 맑으면서도 어딘가 뒤틀린 화음을 낸다.
  • 무어와 객원 보컬 리디아 런치가 주고받는 듀엣 보컬이 곡의 중심이며, 런치의 찢어질 듯 비명에 가까운 창법이 무어의 담담한 목소리와 대비를 이룬다.
  • 곡은 잔잔한 기타로 시작해 후반부로 갈수록 악기 전체가 무너지듯 소음으로 치닫는 구성을 갖고 있다.
  • 드러머 밥 버트의 단순하고 무거운 비트는 장식 없이 곡 전체를 떠받치는 심장 박동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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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데이드림 네이션 · 1985–1988

(정착) 1985년 미시간 출신 드러머 스티브 셸리가 합류하며 멤버 구성이 비로소 자리를 잡았다. 이후 이십 년 넘게 이어질 이 조합은 잦은 드러머 교체로 흔들리던 리듬 섹션에 마침내 안정을 주었다. (튜닝) 《이볼》(1986)과 《시스터》(1987)를 거치며 밴드는 기타 줄을 표준과 다르게 맞추는 자신들만의 방법을 점점 더 정교하게 다듬었다. 곡마다, 때로는 기타마다 서로 다른 튜닝을 정해 두고 기타 목에 테이프로 표시를 해 두는 방식이었다. (걸작) 1988년 발표한 두 장짜리 앨범 《데이드림 네이션》은 평단의 인정을 받으며 밴드를 언더그라운드 바깥으로 끌어냈다. 도시 풍경과 록의 신화 같은 것들을 소재로 삼은 가사와, 7분이 넘는 곡도 서슴지 않는 구성은 당시 얼터너티브 록에서 흔치 않은 야심이었다. (계약) 이 앨범의 성취를 발판으로 밴드는 1990년 메이저 레이블 게펜(자회사 DGC)과 계약했다. 오랫동안 인디 레이블과 자립적 태도를 지지해 온 이들에게 이는 간단한 결정이 아니었지만, 창작의 자유를 계약에 못박는 쪽을 택했다.

♪앨범 《데이드림 네이션》 (Daydream Nation)1988실황 「Teenage Riot」 Sonic Youth · 2004 Rock en Seine

이십 대의 소음 실험을 대중이 들을 수 있는 형태로 완성시킨 앨범으로, 이 시기 다듬어 온 변칙 튜닝의 성과가 집약돼 있다.

  • 앨범을 여는 「틴에이지 라이엇」은 조용한 기타 잔향으로 시작해 한참 뒤에야 노래가 들어오는 구성으로, 이후 많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가 참고한 도입부다.
  • 두 대의 기타(무어와 라날도)가 각각 다른 튜닝으로 얽히며 만드는 종소리 같은 배음은 헤드폰으로 좌우 채널을 구분해 들으면 더 또렷하다.
  • 여러 곡이 7분을 넘기며 절-후렴 구조 대신 여러 개의 악상이 이어 붙는 형식을 취해, 당시 라디오 히트곡과는 다른 길을 택했음을 보여 준다.
  • 스티브 셸리의 드럼은 기교를 앞세우지 않고 일정한 박자를 지키며, 두 기타가 마음껏 얽힐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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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굿과 더티, 너바나와의 시절 · 1990–1995

(데뷔) 1990년 메이저 레이블 데뷔작 《굿》이 나왔다. 수록곡 「쿨 씽」에는 랩 그룹 퍼블릭 에너미의 처크 디가 객원으로 참여해, 고든이 한 유명 래퍼와 나눈 실망스러운 인터뷰 경험을 노랫말의 실마리로 삼았다. (더티) 1992년 앨범 《더티》는 너바나의 《네버마인드》를 다듬은 프로듀서 버치 빅이 맡아, 이전보다 정돈되고 단단한 소리를 냈다. 수록곡 「100%」는 밴드의 지인이자 헨리 롤린스의 동료였던 조 콜이 강도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뒤 쓴 곡으로, 슬픔과 분노를 단순하고 무거운 리프에 실었다. (너바나) 밴드는 무명이던 너바나를 눈여겨보고 게펜 산하 레이블 담당자에게 추천해, 너바나가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하는 데 다리를 놓았다. 1991년에는 두 밴드가 함께 유럽 투어에 나섰고, 이 여정은 데이브 마키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1991: 더 이어 펑크 브로크》에 담겼다. 커트 코베인은 종종 소닉 유스를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밴드로 꼽았다. (롤라팔루자) 1995년에는 롤라팔루자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나서며 얼터너티브 록이 주류 무대에 오른 시대의 한복판에 섰다. 그러나 밴드는 이 흐름에 완전히 올라타기보다, 실험적인 곡을 계속 병행하며 거리를 두는 태도를 지켰다.

♪쿨 씽 (Kool Thing)1990공식 MV — Sonic Youth

메이저 레이블 데뷔작 《굿》의 대표곡으로, 고든이 한 유명 래퍼와 나눈 실망스러운 인터뷰 경험에서 노랫말의 실마리를 얻었다.

  • 고든의 목소리는 노래하기보다 절반쯤 읊조리듯 말하는 창법으로,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냉소를 담아낸다.
  • 퍼블릭 에너미의 처크 디가 후반부에 짧게 참여해 던지는 대사는, 고든의 목소리와 주고받는 형태로 배치돼 있다.
  • 기타는 굵게 일그러진 음색(디스토션)으로 단순한 리프를 반복하다가, 후렴에서 변칙 튜닝의 맑은 배음이 살짝 얼굴을 내민다.
  • 곡 전체를 감싸는 왜곡된 베이스 음색은 이 앨범부터 한층 또렷해진, 메이저 레이블 스튜디오의 힘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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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992공식 MV — Sonic Youth

밴드의 지인이었던 조 콜이 강도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뒤 쓴 곡으로, 슬픔과 분노가 단순하고 무거운 리프에 실렸다.

  • 곡을 여는 굵은 두 음 화음(파워 코드) 리프는 꾸밈없이 반복되며 곡 전체의 분노를 떠받든다.
  • 프로듀서 버치 빅의 손을 거치며 이전 앨범들보다 드럼과 기타 소리가 한결 또렷하고 단단하게 다듬어졌다.
  • 무어의 보컬은 절제된 톤으로 시작해 후렴으로 갈수록 조금씩 격앙되며 감정의 결을 드러낸다.
  • 곡 중반 짧게 끼어드는 소음 섞인 기타 브레이크는, 정돈된 록 곡 안에 남아 있는 밴드 특유의 거친 기질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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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가정, 실험, 짐 오루크 · 1994–2005

(이주) 1999년 무어와 고든은 뉴욕을 떠나 매사추세츠주 노샘프턴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오랜 세월 다운타운의 소음 속에서 살아온 부부에게 이 이주는 가정을 안정적으로 꾸리려는 선택이었다. (레이블) 무어는 자신의 인디 레이블 엑스터틱 피스를 운영하며 젊은 실험 음악가들의 음반을 냈고, 밴드 자체도 《SYR》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상업성을 따지지 않는 즉흥·소음 연주를 담은 음반을 꾸준히 자체 발표했다. (오루크) 1999년 실험음악가 짐 오루크가 정식 멤버로 합류해 2005년까지 함께했다. 그의 가세로 밴드의 소리는 한층 넓은 화성적 공간과 절제된 편곡을 얻었고, 이는 앨범 《머레이 스트리트》(2002)와 《소닉 너스》(2004)에 짙게 배어들었다. (9·11) 《머레이 스트리트》를 녹음한 스튜디오는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자리에서 멀지 않았다. 2001년의 사건 이후 도시에 감돌던 침울한 공기는 이 앨범의 길게 늘어지는 연주와 사색적인 분위기에 스며들었다.

♪레인 온 틴 (Rain on Tin)2002실황 Sonic Youth · 2002 Hultsfred

짐 오루크가 함께한 시기를 대표하는 긴 연주곡으로, 9·11 이후 뉴욕의 침울한 공기가 스며든 앨범 《머레이 스트리트》에 실렸다.

  • 8분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뚜렷한 절과 후렴 없이 기타 선율이 천천히 쌓이고 풀리는 구성을 따른다.
  • 초반의 맑은 톤으로 뜯는 기타 아르페지오(화음을 한 음씩 풀어 치는 주법)는, 왜곡된 소음으로 곧장 가지 않고 천천히 고조된다.
  • 셸리의 드럼은 정박을 두드리기보다 심벌과 여백으로 공간을 채우는 쪽에 가까워, 이전 앨범들보다 한결 정적인 인상을 준다.
  • 곡 후반 여러 기타가 서로 다른 리듬으로 얽히는 대목은, 오루크가 가세한 뒤 밴드가 넓어진 화성적 공간을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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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균열과 정지 · 2006–2011

(귀환) 2006년 앨범 《래더 리프트》와 함께 밴드는 다시 비교적 짧고 선명한 곡 형식으로 돌아왔다. 2006년 베이시스트 마크 아이볼드가 합류해 고든이 기타를 더 자주 잡을 수 있게 됐고, 메이저 레이블 시대가 저물며 2008년에는 인디 레이블 매터도어와 손잡았다. (영원) 2009년 앨범 《디 이터널》은 매터도어에서 낸 첫 작품으로, 원기 왕성한 리프와 오랜 팬들이 반가워할 만한 거친 질감을 되살렸다는 평을 받았다. (끝) 2011년 무어와 고든의 결혼 생활이 끝났다. 두 사람이 밴드의 시작부터 부부이자 음악적 축이었던 만큼, 이 변화는 곧 밴드 활동의 중단으로 이어졌다. 공식 해체 선언은 없었지만, 이후 새 음반이나 투어는 나오지 않았다.

♪새크리드 트릭스터 (Sacred Trickster)2009실황 Sonic Youth · 2009 Letterman 쇼

인디 레이블 매터도어에서 낸 첫 앨범 《디 이터널》의 문을 여는 곡으로, 다시 짧고 선명한 곡으로 돌아온 밴드의 태도를 보여 준다.

  • 짧고 거친 리프로 곡을 여는 도입부는, 2000년대의 긴 연주곡들과 달리 2분대의 간결한 구성으로 돌아왔다.
  • 고든의 목소리는 여유 있게 흘러가듯 노래하다가도, 후렴에서 살짝 날을 세우는 어조로 바뀐다.
  • 베이시스트 마크 아이볼드가 가세하며 고든이 기타를 함께 잡은 구간에서는 기타 세 대가 겹치는 두꺼운 음향을 들을 수 있다.
  • 곡 끝부분 짧게 흐트러지는 기타 소음은, 정돈된 인디 록 곡 안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밴드 초기의 거친 기운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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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이후 · 2011

(각자) 밴드는 이후 특별히 재결합하지 않았다. 멤버들은 각자 다른 프로젝트와 활동을 이어 갔고, 오랜 세월 쌓아 온 미공개 녹음과 라이브 음원을 아카이브 형태로 정리해 세상에 내놓는 작업도 이어졌다. (현재) 무어는 런던을 오가며 새 밴드와 솔로 활동을 이어 갔고, 고든은 화가로서 개인전을 열고 회고록을 펴내는 등 음악 밖의 활동도 넓혀 갔다. 라날도와 셸리 역시 각자의 이름으로 음반을 내며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유산) 소닉 유스는 상업적 성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자리를 얼터너티브 록 역사에 남겼다. 변칙 튜닝과 소음을 다루는 방식은 이후 수많은 인디 록·노이즈 록 밴드에 직접적인 참고점이 되었고, 메이저 레이블 안에서도 인디의 태도를 지킬 수 있다는 본보기로 종종 거론된다. (기록) 서로 다른 소리를 내던 네 사람이 삼십 년 가까이 하나의 이름 아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도 이 밴드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점 중 하나다.

덜 알려진 이야기

이름의 유래를 두고는 오래도록 이야기가 따라다녔지만, 정작 출처는 비교적 단순하다. '소닉'은 MC5의 기타리스트 프레드 '소닉' 스미스에게서, '유스'는 자메이카의 디제이 빅 유스에게서 한 단어씩 가져온 것으로, 미국 기타 록과 자메이카 더브 음악에 대한 애정을 나란히 이름에 담으려 한 선택이었다. 밴드가 너바나를 게펜 산하 레이블에 소개한 일화는 지금은 잘 알려져 있지만, 처음 그 만남을 주선한 것은 화려한 자리가 아니라, 밴드가 지인을 통해 너바나를 담당자에게 소개하는 정도의 소박한 과정이었다고 전해진다. 당시만 해도 이는 그저 마음에 드는 밴드를 알리는 개인적인 호의에 가까웠다. 밴드는 곡마다, 심지어 기타마다 서로 다른 변칙 튜닝을 정해 두었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지자 아예 특정 곡 전용으로 지정된 기타를 따로 챙겨 투어를 다녔다. 공연 사이사이 기타를 다시 조율할 시간을 아끼기 위한 실용적인 이유에서였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밴드가 악기를 얼마나 곡 하나하나에 맞춰 다루었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으로 남아 있다. 드러머 스티브 셸리는 밴드 활동과 별개로 절판된 옛 포크·록 음반을 다시 세상에 내놓는 재발매 레이블을 오래 운영해 왔다. 화려한 무대 뒤편에서 잊힌 음악을 복원하는 이 작업은, 밴드의 명성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용어 노트 📚🔎

노 웨이브

노 웨이브라는 이름은 당시 유행하던 '뉴 웨이브'라는 장르 이름을 거부하며 반대로 붙인 것이다. (록에서) 1970년대 말 뉴욕 다운타운에서 나타난 흐름으로, 멜로디나 정해진 코드 진행 같은 록의 기본 약속을 일부러 버리고 소음과 불협화음 자체를 음악으로 삼았다. 체육 시간에 정해진 피구 규칙을 다 무시하고 완전히 새로운 규칙으로 노는 것과 비슷하다.

변칙 튜닝

(록에서) 기타 여섯 줄을 흔히 쓰는 표준 음높이 대신 다르게 맞추는 것을 말한다. 같은 손 모양으로 눌러도 전혀 다른 화음이 나며, 같은 자물쇠에 다른 열쇠를 꽂아 전혀 다른 문이 열리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튜닝'이라는 말은 자동차 튜닝처럼 성능이나 설정을 손보는 일에도 쓰인다.

피드백

영어 'feed back', 곧 소리를 앰프에 다시 먹여 되돌린다는 뜻이다. (록에서) 기타 픽업이 앰프에서 나온 소리를 다시 잡아 증폭기로 되돌리면서 생기는 높은 울림 소리를 말한다. 마이크를 스피커에 너무 가까이 대면 나는 '삐-' 소리와 같은 원리인데, 소닉 유스는 이 잡음을 사고가 아니라 악기처럼 다루었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피드백'은 선생님이 학생에게 주는 반응이나 조언을 뜻하기도 한다.

파워 코드

'파워'는 힘, '코드'는 화음이라는 뜻으로, 이름 자체가 이 화음의 강력한 소리를 가리킨다. (록에서) 세 음으로 이루어진 화음에서 장조인지 단조인지를 정하는 가운데 음을 빼고 두 음만 눌러 굵게 울리게 만든 화음이다. 감정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아주 크고 힘차게 소리치는 것과 비슷해, 펑크와 하드 록 리프의 기본 재료가 되었다.

노이즈 록

(록에서) 절과 후렴 같은 일반적인 노래 구조는 지키면서도, 기타와 목소리를 일부러 거칠고 불협화음이 나게 다루는 장르를 말한다. 멜로디는 알아볼 수 있지만 구겨진 종이를 통해 듣는 것처럼 표면이 거친 노래라고 생각하면 된다.

메이저 레이블

(록에서) 큰 자본과 넓은 유통망을 가진 대형 음반사를 가리키며, 소규모로 운영되는 '인디 레이블'과 대비된다.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작은 동네 빵집과, 재료와 매대는 넉넉히 대 주지만 정해진 레시피를 원하는 큰 프랜차이즈 중 하나를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메이저'라는 말은 야구에서 메이저리그처럼 '가장 높은 단계'라는 뜻으로도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