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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ones

라몬즈 (1974–1996)

숫자 넷을 외치면 노래가 시작됐고, 2분 뒤면 이미 끝나 있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뉴욕 결성포레스트힐스 소년들가짜 성 라몬2. 사운드2분짜리 노래파워코드 질주CBGB 무대3. 전성기로켓 투 러시아록앤롤 하이스쿨영국 투어 충격4. 균열스펙터 총기 사건조니 조이 불화디디 의존증5. 분투낮은 판매고거듭된 멤버 교체컬트적 추앙6. 유산1996 고별 투어네 멤버 모두 작고명예의 전당라몬즈1974–1996뉴욕 퀸스의 네 아웃사이더가 2분짜리 노래로 …
무대가 된 도시 🧭🗺️
N미국포레스트힐스1948–1974뉴욕 맨해튼1974–1996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조니 라몬

    기타리스트이자 밴드를 하나의 사업체처럼 엄격하게 운영한 실질적 리더였다.

  • 멤버조이 라몬

    큰 키와 수줍은 성격의 보컬로, 밴드의 상징적인 목소리가 됐다.

  • 멤버디디 라몬

    베이시스트이자 핵심 작곡가로, 공연 전 외치는 네 박자 구호를 만들었다.

  • 멤버토미 라몬

    헝가리 출신으로 원래 프로듀서였다가 드러머를 맡은 뒤 다시 프로듀서로 돌아갔다.

  • 프로듀서필 스펙터

    《엔드 오브 더 센추리》를 제작하며 밴드와 악명 높은 충돌을 겪었다.

  • 영향아르투로 베가

    밴드의 상징적인 독수리 로고를 디자인하고 무대 조명을 맡은 절친한 친구였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포레스트힐스의 아이들 · 1948–1974

(결성) 1974년, 미국 뉴욕 퀸스의 포레스트힐스에서 결성됐다. 비슷한 시기 자란 네 명의 아웃사이더가 이 조용한 중산층 동네에서 만나, 이후 록 음악을 짧고 빠르고 단순하게 바꿔놓을 밴드를 만들었다. (조이) 본명 제프리 하이먼은 1951년 5월 퀸스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샬럿은 작은 미술관을 운영했고 부모는 그가 어릴 때 이혼했다. 185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에 마르고 구부정한 몸, 지나치게 수줍은 성격 때문에 또래에게 자주 놀림받았다. 어려서부터 손을 반복해서 씻거나 물건을 정해진 순서로 정돈해야 안심이 되는 버릇에 시달렸다. 밴드 이전에는 스나이퍼라는 그룹에서 '제프 스타십'이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불렀다. 남동생 미키 리는 훗날 음악가가 되어 형에 대한 회고록을 남겼다. (조니) 존 커밍스는 1948년 10월 퀸스에서 태어나 건설 현장과 전기 공사 일을 전전하다 밴드에 합류했다. 규율과 질서를 중시했고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숨기지 않았으며 야구를 광적으로 좋아했다. 훗날 밴드를 사실상 하나의 사업체처럼 운영하며 지각한 멤버의 급여를 깎을 만큼 엄격했다. (디디) 더글러스 콜빈은 1951년 9월 미군 장교의 아들로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나 유년기 상당 부분을 서독(오늘날 독일)의 미군 기지촌에서 보냈다. 술에 취하면 폭력적으로 변하던 아버지와 잦은 이사, 불안정한 가정이 어린 시절을 채웠다.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 누나와 함께 퀸스로 건너와 거리에서 어울려 다니며 자랐다. (토미) 토마스 에르델리는 1949년 1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1956년 소련군이 헝가리 혁명을 진압하자 가족과 함께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고, 퀸스에 정착해 자랐다. 네 사람 중 가장 음악 산업 경험이 많아 녹음 스튜디오 보조로 일한 적이 있었다.

II. 라몬이라는 이름 · 1974–1975

(이름) 넷 모두 성을 '라몬'으로 바꿔 썼다. 폴 매카트니가 비틀스 초창기 호텔에 체크인할 때 쓰던 가명 '폴 라몬'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한 가족처럼 묶이는 밴드라는 발상이 거기서 시작됐다. (역할) 처음에 조이는 드럼을 쳤지만 목소리가 독특해 보컬로 옮겼고, 디디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으나 음정이 맞지 않아 베이스로 돌아섰다. 조니는 기타를, 그리고 여러 드러머가 들고 나기를 반복하자 매니저 겸 프로듀서 역할을 하던 토미가 결국 드럼 스틱을 잡았다. 매 곡 앞에서 디디가 외치는 네 박자 구호는 그대로 밴드의 상징이 됐다. (외양) 가죽 재킷과 찢어진 청바지, 낡은 운동화, 눈을 덮는 단발머리로 통일된 외양은 멤버들 스스로 갖춘 차림이었다. 네 사람의 친구이자 조명 디자이너였던 아르투로 베가는 맨해튼 자신의 로프트를 밴드의 연습실이자 숙소로 내줬고, 훗날 밴드의 상징이 된 독수리 문양 로고도 직접 그렸다. (CBGB) 1974년 8월 뉴욕 맨해튼의 작은 클럽 CBGB 무대에 처음 섰다. 당시 유행하던 장황한 기타 솔로와 긴 곡 구성을 모두 걷어내고, 2분 안팎의 노래를 쉼 없이 몰아치는 방식을 택했다. 기교 대신 속도와 반복을 선택한 것은 서툴러서라기보다 의도된 선언에 가까웠다.

♪블리츠크리그 밥 (Blitzkrieg Bop)1976공식 MV 「Blitzkrieg Bop」 — Ramones

CBGB 시절 완성된 밴드의 첫 선언과도 같은 노래로, 숫자를 외치는 디디의 구호가 그대로 밴드의 상징이 됐다.

  • 곡 시작부터 디디가 외치는 네 박자 구호(원, 투, 쓰리, 포)는 이후 라몬즈 전 음악 인생을 관통하는 신호탄이 됐다.
  • 두 음만 짚어 굵게 울리는 화음(파워 코드)을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는 기타 연주를 들어보면 복잡한 코드 진행이 전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 전체 길이가 2분을 겨우 넘는데, 이 짧음 자체가 당시 유행하던 긴 곡들에 대한 반박이었다.
  • 조이의 보컬은 멜로디를 또박또박 노래하듯 부르면서도 억양에는 거리의 말투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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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데뷔와 영국 상륙 · 1976

(음반) 1976년, 시이어 레코드와 계약해 단 6400달러의 제작비로 데뷔 앨범 《라몬즈》를 녹음했다. 프로듀서 크레이그 리언과 함께 라디오 시티 뮤직홀 안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작업했고, 열네 곡 전체가 3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선언) 당시 라디오를 지배하던 장황한 프로그레시브 록과 정반대의 음악이었다. 서사도 기교도 없이, 멜로디는 60년대 걸그룹과 버블검 팝에서, 소음은 스투지스와 뉴욕 돌스에서 가져와 짧게 압축했다. (영국) 1976년 7월 런던 라운드하우스 공연은 바다 건너 영국 젊은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이 무대를 지켜본 이들 가운데 섹스 피스톨즈와 더 클래시의 멤버들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두 밴드 모두 라몬즈의 단순함과 속도에서 자신들이 가야 할 방향을 확인했다고 훗날 밝혔다. (현실) 정작 본국에서는 반응이 미지근했다. 앨범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계약금도 소박해 투어를 돌아도 생활은 궁색했다. 평단의 찬사와 지갑 사정 사이의 이 간극은 이후 밴드 활동 내내 되풀이될 패턴이었다.

♪앨범 《라몬즈》 (Ramones)1976실황 「Judy Is A Punk」 Ramones · 1977 Don Kirshner's Rock Concert

단 6400달러로 완성한 열네 곡짜리 데뷔작으로, 밴드가 CBGB에서 벼려온 소리를 처음 레코드에 담았다.

  • 앨범 전체가 30분이 채 되지 않아, 처음 들으면 순식간에 끝나버려 당황스러울 정도다.
  • 수록곡 대부분이 녹음을 거의 한 번에 끝낸 듯 거친 질감을 그대로 남겼다.
  • 베이스는 왼쪽, 기타는 오른쪽으로 또렷이 나뉘어 배치돼, 각 악기의 단순한 연주가 서로 또렷하게 들린다.
  • 전통적인 록 솔로가 거의 없고 절과 후렴만 반복되는 구성이 거의 모든 곡에서 동일하게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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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로켓 투 러시아와 소진 · 1977–1979

(정점) 1977년 발표한 《로켓 투 러시아》는 데뷔작의 공식을 더 다듬어 완성도를 높였다. 수록곡 「록어웨이 비치」는 빌보드 66위로 밴드 역사상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른 싱글이 됐지만, 그래 봐야 40위 안에도 들지 못한 성적이었다. (탈진) 쉼 없는 투어는 토미를 지치게 했다. 체력도 드럼 연주 경험도 많지 않았던 그는 청력 손상과 피로를 호소하며 1978년 드럼에서 물러나 프로듀서 역할에 집중하기로 했다. 빈자리는 보이도이즈 출신의 마크 벨, 이후 마키 라몬으로 불리게 될 드러머가 채웠다. (영화) 1979년 로저 코먼이 제작한 영화 《록앤롤 하이 스쿨》에 밴드가 본인 역으로 출연해 동명 주제곡을 연주했다. 학교 당국에 맞서는 십대들의 이야기는 밴드가 상징하던 반항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며 이후 수십 년간 컬트 영화로 남았다. (변화) 앞서 1978년 나온 《로드 투 루인》에서는 처음으로 기타 솔로를 넣고 곡 길이도 조금 늘렸다. 수록곡 「아이 워너 비 세데이티드」는 끝없는 투어와 숙소와 공항을 오가는 일상의 지루함과 피로에서 나온 노래였다.

♪앨범 《로켓 투 러시아》 (Rocket to Russia)1977공식 MV 「Sheena Is A Punk Rocker」 — Ramones

데뷔작의 공식을 완성도 있게 다듬은 음반이다.

  • 대표곡 「쉬나 이즈 어 펑크 로커」의 후렴은 서핑 음악의 밝은 멜로디와 일부러 거칠게 찢은 기타 음색(디스토션)이 부딪히며 독특한 긴장을 만든다.
  • 드럼의 단순하고 빠른 박자가 곡 전체를 거의 쉬지 않고 밀어붙인다.
  • 이전 음반보다 화음을 넣는 보컬(코러스)이 두텁게 쌓여, 거친 연주 위에 의외로 달콤한 멜로디가 얹혀 있다.
  • 전곡이 여전히 2분 안팎이지만 곡마다 멜로디 색깔이 또렷이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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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워너 비 세데이티드 (I Wanna Be Sedated)1978실황 Ramones · 1978 Winterland

《로드 투 루인》 수록곡으로, 끝없이 이어지던 투어와 공항, 호텔 방을 오가는 지친 일상에서 나온 노래다.

  • 도입부부터 반복되는 짧은 기타 선율 구절(리프)이 곡이 끝날 때까지 거의 그대로 이어진다.
  • 드럼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빠르기를 유지해, 마치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후반부 짧은 기타 솔로는 화려함보다 속도감에 집중해, 곡의 단순한 뼈대를 거의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 라이브 공연에서는 이 곡이 유독 더 빠른 속도로 연주돼 관객을 몰아붙이는 마무리 곡으로 자주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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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앤롤 하이 스쿨 (Rock 'n' Roll High School)1979공식 MV 「Rock N' Roll High School」 — Ramones

로저 코먼 제작 동명 영화의 주제곡으로, 학교 규율에 맞서는 10대들의 이야기와 밴드의 반항적 이미지가 맞아떨어졌다.

  • 제목을 외치듯 부르는 후렴 부분은 함께 따라 부르기 좋게 단순한 멜로디로 설계됐다.
  • 기타와 베이스가 거의 같은 리듬을 연주해 소리가 한 덩어리로 뭉쳐 들린다.
  • 절과 후렴 사이에 분위기를 바꾸는 중간 구간(브리지)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간다.
  • 영화 속 라이브 장면에서는 스튜디오 버전보다 한층 거칠고 빠른 연주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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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스펙터와 균열 · 1980–1983

(스펙터) 1980년 밴드는 대중적 성공을 노리고 전설적인 프로듀서 필 스펙터를 영입해 《엔드 오브 더 센추리》를 만들었다. 완벽한 한 테이크를 얻기 위해 같은 코드를 몇 시간이고 반복시키는 작업 방식에 멤버들은 질렸고, 디디와 조니는 훗날 각자의 회고록에서 스펙터가 세션 도중 총을 꺼내 들며 멤버들을 스튜디오에 붙잡아 뒀다고 증언했다. 스펙터는 2009년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2021년 옥중에서 사망했다. (불화) 비슷한 시기 조니는 조이와 사귀던 린다 대니얼과 가까워졌고 끝내 결혼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이후 공연과 녹음을 함께 하면서도 사적으로는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평론가들은 1981년 곡 「KKK 테이크 마이 베이비 어웨이」가 이 상처에서 나온 노래라고 흔히 해석해왔다. (중독) 디디의 헤로인 의존은 이 무렵부터 눈에 띄게 심해져 작곡과 공연 모두에 그늘을 드리웠다. 이는 그가 생전에 펴낸 자신의 회고록에서 스스로 상세히 털어놓은 내용이다. (교체) 1983년에는 마키가 음주 문제로 밴드에서 해고됐다(마키 자신이 훗날 낸 자서전에서 직접 밝힌 사실이다). 후임으로 들어온 리치 라몬이 1983년부터 1987년까지 드럼을 맡으며 작곡에도 기여했다.

♪두 유 리멤버 록앤롤 라디오? (Do You Remember Rock 'n' Roll Radio?)1980공식 MV 「Do You Remember Rock and Roll Radio?」 — Ramones

필 스펙터가 프로듀싱한 《엔드 오브 더 센추리》 수록곡으로, 라디오 전성기에 대한 향수를 라몬즈 특유의 거친 사운드에 담았다.

  • 녹음된 연주 위에 다른 연주를 겹겹이 덧입히는 방식(오버더빙)이 이전 음반보다 두드러져, 기타와 코러스가 훨씬 두텁게 들린다.
  • 도입부 피아노 선율은 이전 라몬즈 음반에서는 들을 수 없던 장식적인 요소다.
  • 조이의 보컬이 더 또렷하고 깨끗하게 녹음돼, 거친 밴드 사운드와 대비를 이룬다.
  • 후렴에서 쌓이는 코러스 목소리는 스펙터가 1960년대에 만들던 걸그룹 음반들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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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K 테이크 마이 베이비 어웨이 (The KKK Took My Baby Away)1981실황 Ramones · 1981 스웨덴 Måndagsbörsen

《플레전트 드림스》 수록곡으로, 조니가 조이의 연인을 떠나보낸 사건을 배경에 둔 노래로 평론가들 사이에 해석돼 왔다.

  • 밝고 경쾌한 멜로디와 달리 조이의 창법에는 평소보다 날이 선 긴장감이 묻어난다.
  • 기타 리프는 이전 곡들보다 한 음 한 음을 또렷하게 끊어 치는 느낌을 준다.
  • 후렴이 반복될수록 코러스가 점점 두꺼워지며 감정을 밀어올린다.
  • 라이브에서 조이와 조니가 무대 양 끝에 멀찍이 떨어져 연주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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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컬트와 궁핍 사이 · 1984–1995

(간극) 수많은 후배 밴드들에게 교과서 취급을 받으면서도 정작 라몬즈 자신의 음반 판매는 80년대 내내 신통치 않았다. 명성과 통장 잔고 사이의 이 간극은 밴드 운영을 도맡던 조니에게 특히 큰 불만거리였다. (복귀) 마키는 회복 후 1987년 밴드로 돌아왔다. 디디는 1989년 랩 음악에 도전해 '디디 킹'이라는 이름으로 짧게 활동한 뒤 정식 멤버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이후로도 외부 작곡가로 곡을 계속 제공했다. 베이스와 보컬 자리는 시제이 라몬이 새로 맡았다. (루틴) 조이와 조니는 사적으로 거의 대화하지 않으면서도 무대 위에서는 수십 년째 흐트러짐 없는 합을 보여줬다. 조니는 지각이나 실수에 급여를 깎는 방식으로 밴드를 하나의 작은 공장처럼 돌렸고, 조이는 그 긴장을 말없이 견디며 무대에 섰다.

VII. 고별과 네 번의 이별 · 1996–2014

(고별) 1996년 8월 6일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의 팰리스 극장 공연을 마지막으로 22년의 활동을 접었다. 함께 무대에 선 사람은 조이, 조니, 마키, 시제이였다. (조이) 조이는 림프종 투병 끝에 2001년 4월 15일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마흔아홉이었다. (타계) 디디는 이듬해인 2002년 6월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숨졌고, 조니는 2004년 9월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토미) 원년 멤버 가운데 마지막까지 살아 있던 토미는 2014년 7월 담관암으로 눈을 감았다. 네 창단 멤버 모두 13년 사이에 세상을 떠난 것은 록 역사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유산) 2002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상업적 성공은 끝내 크지 않았지만 2분 남짓한 노래와 단순한 화음만으로도 하나의 장르를 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밴드로 남았다.

덜 알려진 이야기

널리 퍼진 이야기는 '퀸스의 네 양아치가 우연히 펑크를 발명했다'는 식이지만, 실제로 네 사람 가운데 음악 산업 경험이 가장 많았던 사람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1956년 혁명 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토미였다. 그는 원래 드러머가 아니라 녹음 스튜디오 보조이자 밴드의 사실상 매니저 겸 프로듀서로 합류했고, 여러 드러머가 그만두자 어쩔 수 없이 스틱을 잡은 것뿐이었다. 이후 그는 드럼을 내려놓고도 프로듀서로 계속 밴드 음반에 관여했는데, 이런 이력은 '네 명의 거리 출신 펑크'라는 단순한 신화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다. 라몬즈 하면 떠오르는 독수리 로고는 멤버가 아니라 친구인 아르투로 베가의 작품이었다. 그는 맨해튼의 자기 로프트를 밴드의 연습실이자 숙소로 내줬고 조이와 수년간 한 집에 살기도 했다. 로고와 티셔츠, 무대 조명까지 밴드의 시각 작업을 도맡은 인물이지만 정식 멤버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대중적 서사에서는 이름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음악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밴드 가운데 하나로 꼽히면서도, 라몬즈가 활동 기간 내내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40위 안에 단 한 번도 들지 못했다는 사실은 뜻밖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대표곡으로 꼽히는 「쉬나 이즈 어 펑크 로커」조차 80위권에 그쳤다. 영향력과 판매량 사이의 이 간극은 '전설'이라는 평가 뒤에 가려 좀처럼 언급되지 않는다. 디디가 쓴 「53번가와 3번가」는 그가 10대 시절 뉴욕 맨해튼 거리에서 생계를 위해 겪었던 어두운 경험을 자전적으로 담은 곡이다. 그는 생전에 펴낸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 시기를 직접 언급했지만, 밴드의 쾌활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곡의 배경은 대중적으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용어 노트 📚🔎

파워 코드

(록에서) 기타에서 세 음도 아닌 단 두 음만 짚어 굵고 거친 화음을 내는 주법이다. 라몬즈는 거의 모든 노래를 이 단순한 화음만으로 채워 복잡한 코드 진행 없이도 힘 있는 소리를 냈다. 체육 시간에 복잡한 동작 대신 딱 두 가지 동작만 반복해도 충분히 힘차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디스토션

(록에서) 기타나 앰프를 일부러 과부하시켜 소리를 찢어지듯 거칠게 만드는 효과다. 라몬즈의 기타리스트 조니는 이 효과를 강하게 걸어 혼자서도 여러 대의 기타가 동시에 연주하는 듯한 두꺼운 소리를 냈다. 마이크에 대고 일부러 소리를 지르면 목소리가 갈라지며 거칠어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리프

(록에서) 노래 전체를 떠받치는, 짧고 기억하기 쉬운 기타 선율의 반복 구간이다. 라몬즈의 노래들은 복잡한 전개 없이 이 리프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돌림노래에서 같은 가락을 계속 반복해서 부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오버더빙

(록에서) 이미 녹음된 연주 위에 다른 연주나 목소리를 덧입혀 녹음하는 방식이다. 필 스펙터는 《엔드 오브 더 센추리》에서 이 작업을 지나치게 여러 겹으로 쌓아 라몬즈 특유의 거친 소리를 너무 매끈하게 다듬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림을 그릴 때 밑그림 위에 색을 몇 번이고 덧칠하는 것과 비슷하다.

브리지

(록에서) 절과 후렴을 오가던 노래 중간에 분위기를 한 번 바꿔주는 부분이다. 라몬즈는 노래 길이를 2분 안팎으로 극도로 줄이면서 이 브리지 구간조차 과감히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야기 중간에 곁가지 설명 없이 바로 결론으로 넘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펑크 록

(록에서) 복잡한 기교와 화려한 무대 장치를 거부하고, 짧고 거칠고 즉흥적인 에너지를 앞세운 록 음악의 한 갈래다. 라몬즈는 1970년대 중반 이 흐름을 가장 먼저 구체적인 음악으로 완성한 밴드로 꼽힌다. (다른 데서는) 음악 밖에서는 '불량하다' '어설프다' 같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