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rl Jam
명성보다 진심을 택한 밴드, 시애틀의 비 내리는 무대에서 시작해 삼십 년 넘게 관객과 같은 눈높이에 서려 했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에디 베더
보컬이자 대부분의 가사를 쓴 밴드의 목소리.
- 멤버스톤 고사드
리듬 기타를 맡은 밴드의 공동 창립자.
- 멤버제프 아멘트
베이스를 맡았고, 미술을 전공해 앨범 아트에도 깊이 관여했다.
- 멤버마이크 매크레디
블루스록에 뿌리를 둔 리드 기타를 맡았다.
- 영향앤드류 우드
마더 러브 본의 보컬로, 그의 죽음이 펄 잼 결성의 계기가 됐다.
- 우정크리스 코넬
사운드가든의 보컬로, 템플 오브 더 독에서 베더와 함께 노래했다.
I. 시애틀 이전 · 1984–1990
(결성) 1990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결성되기까지, 훗날 펄 잼이 될 씨앗은 몇 해 앞서 같은 도시의 클럽 무대에서 이미 자라고 있었다. 시애틀은 값싼 임대료와 비 내리는 날씨 속에서, 펑크의 거친 태도와 헤비메탈의 무게를 뒤섞은 소리인 그런지가 태동하던 도시였다. (그린 리버) 기타리스트 스톤 고사드와 베이시스트 제프 아멘트는 밴드 그린 리버에서 함께 연주하다 밴드가 갈라진 뒤, 보컬 앤드류 우드를 중심으로 새 밴드 마더 러브 본을 결성했다. 기타리스트 마이크 매크레디도 이 무렵 같은 시애틀 신에서 인연을 쌓아가고 있었다. (우드) 앤드류 우드는 화려한 무대 매너와 글램 록 취향을 지닌 타고난 쇼맨이었다. 마더 러브 본은 메이저 레이블 폴리도어와 계약하며 시애틀에서 가장 먼저 성공할 밴드로 꼽혔지만, 우드는 오랫동안 헤로인 중독과 싸우고 있었다. (베더)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는 에디 베더라는 청년이 주유소와 호텔에서 일하며 밤에는 커버 밴드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그는 십 대 시절, 자신을 키운 남자가 친아버지가 아니며 친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경험을 훗날 여러 인터뷰에서 직접 밝혔다. (죽음) 1990년 3월, 마더 러브 본의 데뷔 앨범 발매를 며칠 앞두고 앤드류 우드가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사드와 아멘트에게는 밴드의 종말이자,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실이었다.
II. 데모 테이프와 결성 · 1990–1991
(재기) 앤드류 우드를 잃은 뒤에도 고사드와 아멘트는 음악을 그만두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이크 매크레디와 함께 가사도 없는 연주곡 데모를 녹음하며 새로운 보컬을 찾기 시작했다. (연결) 드러머 잭 아이언스는 직접 합류하는 대신, 샌디에이고에 있던 지인 에디 베더에게 그 데모 테이프를 전달했다. 베더는 어느 날 밤 파도타기를 하고 돌아온 뒤, 그 연주 위에 가사와 멜로디를 얹어 카세트에 녹음했다. (모마선) 베더가 하룻밤 사이에 써낸 세 곡은 한 소년의 출생과 상실, 분노를 잇는 이야기로 묶여 있었고, 이는 훗날 「얼라이브」 「원스」 「풋스텝스」가 된 이른바 모마선 3부작이었다. 이 테이프를 들은 고사드와 아멘트는 곧바로 베더를 시애틀로 불렀다. (합류) 베더는 일주일간 함께 연주해본 뒤 밴드에 합류하기로 했다. 드러머 데이브 크루센이 마지막 퍼즐을 채우며 5인조가 완성됐다. 밴드는 처음 농구선수의 이름을 딴 무키 블레이록으로 불리다가 곧 펄 잼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레이블 에픽과 계약했다.
앤드류 우드를 기리는 프로젝트 템플 오브 더 독에서, 아직 신인이던 베더가 크리스 코넬과 처음으로 목소리를 맞췄다.
- 높은 음역의 절은 코넬이, 이를 받아치는 낮은 화답 구절은 베더가 부르며 두 목소리가 번갈아 쌓인다.
- 어쿠스틱 기타와 베이스 위주의 성긴 편성이라 두 보컬의 대비가 또렷하게 들린다.
- 베더의 파트는 원래 초대받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스스로 녹음실에 얹은 것이라 전해지며, 그 우연이 곡의 화답 구조를 만들었다.
- 후반부에서 두 목소리가 함께 하나로 겹치는 대목은 시애틀 신 전체가 상실을 나누는 순간처럼 들린다.
III. 텐과 그런지의 폭발 · 1991–1992
(텐) 1991년 8월, 데뷔 앨범 《텐》이 나왔다. 같은 해 너바나의 《네버마인드》와 함께 시애틀 사운드가 미국 전역을 휩쓸었고, 처음엔 조용했던 《텐》도 서서히 차트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제레미) 수록곡 「제레미」는 1991년 텍사스에서 실제로 벌어진 한 학생의 교실 총격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져 큰 화제를 모았지만, 훗날 베더는 이 곡이 소비되는 방식에 불편함을 표하게 된다. (성공) 앨범은 결국 수백만 장이 팔리며 밴드를 순식간에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유명세는 처음부터 밴드에게 편한 옷이 아니었다. (우정) 앤드류 우드의 죽음을 애도하며, 사운드가든의 보컬 크리스 코넬은 그를 기리는 곡들을 써서 프로젝트 템플 오브 더 독을 꾸렸다. 아직 신인이던 베더가 초대되어 코넬과 함께 노래를 불렀고, 이는 우드의 죽음과 펄 잼의 탄생을 잇는 다리가 되었다.
베더가 하룻밤 사이 써낸 모마선 3부작의 첫 곡으로, 어두운 가족사를 담았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생존의 함성으로 들렸다.
- 스톤 고사드가 만든 반복적인 도입 리프가 곡 전체의 뼈대를 이룬다.
- 마이크 매크레디의 후반부 기타 솔로는 키스(KISS)의 에이스 프렐리가 「She」에서 들려준 솔로를 본떴다고 그가 직접 밝혔으며, 라이브에서는 몇 분씩 늘어나는 즉흥 연주로 변주된다.
- 베더의 목소리는 절제된 절에서 시작해 후렴에서 목을 활짝 여는 창법으로 올라간다.
- 드러머 데이브 크루센의 소박하지만 단단한 리듬이 밴드 특유의 현장감을 살린다.
실제 학교 총격 사건을 소재로 삼아 침묵과 방관을 묻는 곡으로, 밴드가 뮤직비디오와 거리를 두게 만든 계기 중 하나였다.
- 제프 아멘트의 도입부 베이스 라인이 미끄러지듯 낮게 깔리며 불길한 분위기를 먼저 세운다.
- 조용한 절과 폭발하는 후렴을 오가는 전형적인 그런지식 강약 구조가 뚜렷하다.
- 베더의 목소리는 담담히 서술하다가 곡 막바지에 절규에 가까운 창법으로 바뀐다.
- 화제가 됐던 뮤직비디오의 시각적 충격은 이후 밴드가 영상 매체 자체를 꺼리게 만든 배경이 되었다.
IV. 명성과 코베인의 죽음 · 1993–1994
(거리두기) 두 번째 앨범 《Vs.》 시기부터 밴드는 뮤직비디오 제작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베더는 언론이 자신을 그런지의 얼굴로 소비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고, 무대 뒤로 숨는 쪽을 택했다. (코베인) 1994년 4월,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세상을 떠났다. 언론은 두 밴드를 라이벌 구도로 자주 묶었지만, 베더는 코베인의 죽음에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고 여러 자리에서 밝혔다. (비탈로지) 같은 해 나온 《비탈로지》는 더 어둡고 내밀한 소리로 채워졌다. 수록곡 「베터맨」은 베더가 어린 시절 지켜본 한 가정의 상처에서 비롯된 곡으로, 훨씬 이전에 써두고도 너무 개인적이라 오랫동안 발표하지 못했던 노래였다. (피로) 폭발적인 성공과 죽음, 그리고 자신을 향한 과도한 조명 속에서 밴드 전체가 지쳐가고 있었다. 그 피로감은 《비탈로지》 곳곳의 거칠고 파편적인 구성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베더가 밴드에 합류하기 훨씬 전부터 써두고도 너무 개인적이라 묵혀두었던 곡으로, 훗날 밴드의 뜻과 무관하게 가장 큰 라디오 히트가 됐다.
- 코러스 이펙트를 건 맑은 기타 아르페지오로 시작해, 절이 진행되며 점점 무거워지는 편곡을 들어볼 만하다.
- 베더의 창법은 체념한 듯 낮게 시작해 후렴에서 감정을 터뜨리는 방식으로 대비를 만든다.
- 곡 끝부분은 길게 여운을 끄는 페이드아웃으로 마무리된다.
- 라이브에서는 밴드가 잠시 연주를 멈추고 관객이 마지막 후렴을 무반주로 따라 부르게 하는 순간이 유명하다.
V. 티켓마스터와의 싸움 · 1994–1996
(저항) 1994년, 펄 잼은 대형 공연 예매사 티켓마스터의 수수료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밴드는 미국 법무부에 진정을 넣고 의회 청문회에 직접 출석해 독점적 관행을 증언했다. (투어) 이후 티켓마스터를 거치지 않는 공연장만으로 투어를 짜려 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혔다. 결국 완전한 승리로 끝나지는 못했지만, 이 싸움은 밴드가 산업의 논리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남았다. (내향) 수록곡 「낫 포 유」는 자신들을 상품으로 소비하려는 산업 전체를 향한 곡이었다. 이어진 《노 코드》(1996)와 《일드》(1998)는 대중적 성공보다 밴드 내부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인, 한층 실험적이고 내향적인 음반들이었다.
산업 전체를 겨눈 곡으로, 같은 해 벌어진 티켓마스터와의 싸움과 나란히 놓고 들으면 그 분노의 맥락이 선명해진다.
- 반복되는 왜곡된 기타 리프가 곡 전체에 걸쳐 둔중하게 울린다.
- 베더의 절은 거의 읊조리듯 평평하게 가다가 후렴에서 목청을 높이는 창법으로 바뀐다.
- 통상적인 싱글 형식과 달리 중반부에 긴 연주 구간을 두어 곡을 늘어뜨린 구성이 이례적이다.
- 가사보다 태도로 저항을 표현한 곡이라, 당시 밴드의 반산업적 행보와 함께 들으면 더 잘 읽힌다.
VI. 드러머들과 로스킬레 · 1994–2000
(교체) 《텐》 녹음 직후 드러머 데이브 크루센이 밴드를 떠났고, 뒤이어 합류한 데이브 애브루제시도 1994년 밴드를 떠났다. 1998년에는 잭 아이언스가 밴드를 떠났고, 마침 사운드가든을 그만둔 매트 캐머런이 그 자리를 이어받아 2025년 밴드를 떠날 때까지 27년간 자리를 지켰다. (로스킬레) 2000년 6월, 덴마크 로스킬레 페스티벌에서 펄 잼의 공연 도중 관객이 한꺼번에 몰리며 아홉 명의 팬이 목숨을 잃었다. 밴드는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활동을 접는 것까지 고민했고,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 애도를 표했다. (애도) 이 사건은 이후 음악에도 짙은 그림자를 남겼다. 2002년 《라이엇 액트》 수록곡 「러브 보트 캡틴」은 로스킬레의 상실과 코베인의 죽음이 남긴 슬픔을 함께 끌어안은, 한결 차분하고 성찰적인 곡이었다.
로스킬레 참사와 오랜 벗들의 죽음이 남긴 슬픔을 함께 끌어안은, 애도의 곡.
- 객원 건반 주자 붐 개스파의 해먼드 오르간이 도입부에 성가곡 같은 온기를 준다.
- 절에서는 절제된 창법으로 시작해 브리지에서 한층 탁 트인 목소리로 감정을 쏟아낸다.
- 직접적인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곡의 정서는 로스킬레의 상실과 앞선 죽음들을 함께 향한다.
- 곡 후반의 집단 코러스는 라이브에서 관객 전체가 함께 부르는 치유의 순간으로 자주 확장된다.
VII. 지속되는 밴드 · 2001–2026
(지속) 1998년 이후 핵심 편성이 거의 바뀌지 않은 채, 밴드는 2000년대와 2010년대 내내 꾸준히 앨범을 내며 활동을 이어갔다. 기타리스트 매크레디는 이후 인터뷰에서 자신이 겪은 약물 문제와 회복 과정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오며,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냈다. (기록) 밴드는 2000년부터 공연마다 정식 실황 음반을 발매하는 이른바 부틀렉 시리즈를 시작했다. 이는 암표와 불법 복제로부터 팬들의 기록을 지키려는, 티켓마스터 싸움의 연장선에 있는 실천이었다. (명예) 2017년 밴드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같은 해 오랜 벗 크리스 코넬이 세상을 떠나면서, 밴드에게는 또 한 번 시애틀 세대의 상실이 찾아왔다. (현재) 2024년 앨범 《다크 매터》는 젊은 프로듀서 앤드류 왓과 함께 작업하며, 나이 든 몸으로 다시 초기의 즉흥적인 에너지를 되찾으려 한 작업이었다. 2026년 현재도 펄 잼은 그런지 세대 밴드 가운데 원년 멤버 대부분을 지킨 채 여전히 무대에 서고 있는 몇 안 되는 밴드다.
나이 든 밴드가 다시 초기의 즉흥적인 에너지를 되찾으려 한 앨범으로, 죽음과 세월을 마주하는 곡들이 담겼다.
- 타이틀곡은 프로듀서 앤드류 왓과 함께 밴드 전체가 한 방에서 동시에 연주해 잡아낸 것으로 알려진, 빠르고 거친 질감을 지녔다.
- 2000년대 앨범들의 밀도 있는 사운드보다 훨씬 직선적이고 밝은 기타 톤이 두드러진다.
- 고사드와 매크레디의 기타 솔로가 주고받듯 교차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 베더의 목소리는 세월만큼 거칠어졌지만, 1990년대의 높은 절창과는 다른 무게감으로 곡을 끌고 간다.
- 매트 캐머런의 드럼이 곡 전체를 쉼 없이 밀어붙이는 추진력을 만든다.
덜 알려진 이야기
밴드 이름을 베더의 증조할머니 펄이 만들었다는 페요테 잼에서 따왔다는 이야기가 초기 언론에 널리 퍼졌지만, 정작 멤버들은 2006년 한 인터뷰에서 이 일화가 지어낸 이야기였다고 밝혔다. 실제로는 좀 더 평범한 사연에서 시작된 이름이었다. 밴드가 처음 자칭했던 이름 무키 블레이록은 실존하는 미국프로농구 선수의 이름을 그대로 딴 것이었다. 상표권 문제로 데뷔 앨범 발매 전 이름을 바꿔야 했지만, 그 선수의 등번호 10번은 그대로 남아 데뷔 앨범 제목 《텐》이 되었다. 제프 아멘트는 정식으로 그래픽 디자인과 미술을 공부한 이력이 있으며, 밴드의 상징인 막대 인간(스틱맨) 로고를 비롯해 여러 앨범 커버를 직접 그렸다. 음악가이기 이전에 시각 예술가였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2000년부터 시작한 공식 실황 음반 시리즈는 한 투어에서 나온 공연 실황을 거의 전부 정식으로 발매하는, 록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의 기록이었다. 이는 단순한 팬서비스가 아니라, 암표상과 불법 복제로부터 자신들의 공연을 지키겠다는 실용적인 결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용어 노트 📚🔎
그런지 (Grunge)
(말뜻) 그런지는 지저분하다는 뜻의 영어 속어 그런지(grungy)에서 나온 말이다. (록에서) 1980년대 후반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퍼진 음악으로, 펑크의 거친 태도와 헤비메탈의 무거운 소리를 뒤섞고, 화려함 대신 남루한 옷차림과 답답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비가 잦고 흐린 날씨를 그대로 음악으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라 상상하면 쉽다. (다른 데서는) 패션에서도 그런지 룩이라는 말을 쓰는데, 체크무늬 남방과 낡은 청바지를 즐겨 입던 당시 시애틀 청년들의 옷차림에서 나온 표현이다.
파워 코드 (Power Chord)
(록에서) 기타에서 세 개 이상의 음을 짚는 보통 화음과 달리, 두 음만 짚어 굵고 단순하게 울리는 화음이다. 손가락 모양이 간단해서 빠르게 코드를 바꿔가며 연주하기 좋고, 소리를 일부러 거칠게 만드는 이펙트(디스토션)를 걸어도 지저분하게 뭉개지지 않는다. 두 가지 재료만으로 강한 맛을 내는 요리에 비유할 수 있다.
디스토션 (Distortion)
(록에서) 기타나 앰프에서 소리를 일부러 찢어지듯 거칠게 왜곡시키는 음색을 가리킨다. 원래는 소리가 너무 커서 장비가 감당하지 못해 생기던 잡음이었는데, 록 음악가들이 이를 오히려 매력적인 소리로 받아들여 의도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다른 데서는) 디스토션은 사진이나 영상에서 상이 일그러지는 현상을 가리킬 때도 쓰인다.
리프 (Riff)
(록에서) 곡 전체를 이끄는, 기타나 베이스로 반복해서 연주하는 짧은 멜로디 구절을 가리킨다. 노래의 제목보다 먼저 떠오르는 경우가 많을 만큼 곡의 얼굴 역할을 한다. 체육 시간에 반복해서 외치는 구호처럼, 한 번 들으면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짧은 구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부틀렉 (Bootleg)
(말뜻) 미국 금주법 시대에 밀주를 장화(boot) 속에 숨겨 팔던 데서 나온 말이다. (록에서) 원래는 공식 허가 없이 몰래 녹음하거나 유통되는 음반을 뜻했다. 펄 잼은 이 말을 거꾸로 가져와, 자신들의 공연 실황을 스스로 정식으로 녹음해 파는 부틀렉 시리즈를 만들었다. (다른 데서는) 짝퉁 운동화나 불법 복제 영상처럼, 음악이 아닌 물건에도 부틀렉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브리지 (Bridge)
(록에서) 절과 후렴을 오가던 노래에 잠깐 다른 분위기를 끼워 넣는 구간을 가리킨다. 멜로디나 화음을 바꿔 곡에 변화를 주고, 다시 후렴으로 돌아갈 때 더 극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다른 데서는) 강을 건너는 다리도, 카드놀이의 한 종류도 영어로는 똑같이 브리지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