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asis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큰 밴드가 될 거다」 — 무명 시절부터 오아시스가 스스로에게 건 다짐이었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노엘 갤러거
리드 기타와 거의 모든 곡을 쓴 밴드의 실질적 지휘자였다.
- 멤버리암 갤러거
특유의 콧소리 창법으로 오아시스의 얼굴이 된 보컬이었다.
- 가족페기 갤러거
형제 모두가 존경을 표한 어머니였다.
- 멤버폴 본헤드 아서스
창단 리듬 기타리스트로, 1999년 지친 끝에 밴드를 떠났다.
- 매니저앨런 맥기
1993년 글래스고 공연을 보고 즉석에서 계약을 제안한 크리에이션 레코드 대표였다.
- 경쟁데이먼 알반
블러의 리더로, 1995년 브릿팝 전쟁을 함께 만든 라이벌이었다.
I. 맨체스터의 형제들 · 1967–1991
1967년 5월, 잉글랜드 맨체스터에서 노엘 갤러거가 태어났다. 다섯 해 뒤인 1972년 9월, 같은 도시에서 동생 리암 갤러거가 태어났다. 두 사람은 형 폴을 포함해 삼 형제로, 맨체스터 남쪽의 가난한 공영주택 단지 번지(Burnage)에서 자랐다. (어머니) 어머니 페기 갤러거는 아일랜드 메이요 출신이었다. 갤러거 형제는 어머니를 가족의 진짜 기둥으로 여겼고, 노엘은 훗날 여러 곡을 어머니에게 바쳤다고 밝혔다. (형제) 노엘과 리암은 다섯 살 터울만큼 자주 부딪쳤다. 둘 다 맨체스터 시티의 열성 팬이었고 축구는 두 사람이 평생 공유한 몇 안 되는 공통점이었다. 반면 성격은 정반대였다 — 노엘은 말수가 적고 계산적이었고, 리암은 충동적이고 거침없었다. 이 기질 차이는 훗날 밴드 안의 역할 분담이자, 끝없는 다툼의 씨앗이 됐다. (기타) 노엘은 십 대에 기타를 독학했고, 스무 살 무렵에는 맨체스터의 인기 밴드 인스파이럴 카펫츠의 로드 매니저 겸 기타 테크니션으로 일하며 유럽 투어를 따라다녔다. 이 시기 그는 남몰래 수십 곡을 써 두었는데, 훗날 오아시스 초기 명곡 상당수가 이미 이때 완성돼 있었다. (더레인) 1991년, 리암은 동네 친구인 기타리스트 폴 본헤드 아서스, 베이시스트 폴 기지 맥기건, 드러머 토니 매카롤과 함께 '더 레인'이라는 밴드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몇 달 뒤 공연을 본 노엘이 합류를 제안했고, 조건은 분명했다 — 자신이 곡을 쓰고 밴드의 방향을 정한다는 것이었다.
II. 결성과 오아시스라는 이름 · 1991–1994
(개명) 리암이 '더 레인'에 보컬로 들어가면서 밴드 이름을 오아시스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인스파이럴 카펫츠 투어 포스터에 적혀 있던 잉글랜드 스윈던의 공연장 '오아시스 레저 센터'에서 따온 이름이었고, 노엘은 이미 이름을 바꾼 이 밴드에 몇 달 뒤 합류했다. (통제) 노엘은 합류 조건으로 곡 작업과 밴드 운영의 전권을 요구했다. 리암이 목소리를, 본헤드가 리듬 기타를, 기지가 베이스를, 매카롤이 드럼을 맡았고, 노엘은 리드 기타와 작곡, 사실상의 밴드 대표 역할을 겸했다. 이 구조는 밴드에 방향성을 주었지만 동시에 권력이 한 사람에게 쏠리는 불씨를 심었다. (맥기) 1993년 5월, 오아시스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클럽 킹 투츠 와와 헛에서 다른 밴드 공연에 끼어들듯 무대에 올랐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크리에이션 레코드 대표 앨런 맥기는 이들의 연주를 보고 그 자리에서 계약을 제안했다. (데뷔) 1994년 발매된 데뷔 앨범 《디피니틀리 메이비》는 당시 영국 역사상 가장 빨리 팔린 데뷔작으로 기록됐다. 거칠게 겹쳐 쌓은 기타 소리와 리암의 콧소리 섞인 창법은 가난한 노동자 계급 청년의 야망과 탈출을 향한 갈망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미국) 같은 해 미국 투어에서 갤러거 형제는 로스앤젤레스 공연 뒤 크게 다퉜고, 노엘은 밴드를 떠나겠다며 혼자 짐을 싸 사라졌다가 약 2주 뒤 돌아왔다. 이 초기 균열은 이후 오아시스 역사 내내 반복될 패턴의 첫 사례였다. (희망) 노엘은 그런지 음악에 짙게 깔린 자기혐오와는 다른 노래를 쓰고 싶었다. 그렇게 나온 「라이브 포에버」는 절망 대신 살아남겠다는 다짐을 담은 노래로, 1994년 8월 싱글로 나왔다.
그런지의 자기혐오에 맞서, 절망 대신 살아남겠다는 다짐을 담아 쓴 곡이다.
- 도입부의 기타 리프는 어쿠스틱처럼 맑게 시작해 곧 두꺼운 전기 기타 소리(디스토션)로 번져 나간다.
- 후렴에서 리암 갤러거는 콧소리 섞인 창법으로 밀어붙이듯 부르는데, 이 발성이 이후 오아시스 보컬의 표준이 됐다.
- 노엘은 이 곡에서 드물게 후반부에 직접 기타 솔로를 연주해 곡을 마무리한다.
- 싱글 표지에는 존 레넌이 유년기를 보낸 리버풀의 집 사진이 실렸는데, 희망을 노래한 곡의 취지와 맞닿아 있다.
- 라이브 공연에서는 종종 관객 전체가 후렴을 따라 부르는 구간으로 확장돼, 스튜디오 버전보다 한층 길게 늘어진다.
가난한 노동자 계급 청년의 야망과 탈출을 향한 갈망을 그대로 옮겨 놓은 데뷔작이다.
- 첫 곡 「록앤롤 스타」부터 여러 겹으로 녹음한 기타 소리(오버더빙)가 벽처럼 쌓여 있다.
- 「시가렛츠 앤 알코올」의 리프는 티 렉스의 「겟 잇 온」과 닮아 있는데, 노엘 스스로도 그 영향을 인정했다.
- 본헤드의 리듬 기타는 화려한 기교 대신 굵은 화음(파워 코드)을 단순하게 눌러 곡 전체를 떠받친다.
- 녹음은 의도적으로 거칠게 다듬어져, 스튜디오 앨범임에도 라이브 공연에 가까운 밀도를 낸다.
III. 《모닝 글로리》와 네브워스 · 1995–1996
(드러머) 1995년 초, 노엘은 창단 멤버인 드러머 토니 매카롤을 해고하고 알란 화이트로 교체했다. (프로듀서) 프로듀서 오언 모리스가 합류해 기타를 겹겹이 쌓아 두껍게 만드는 특유의 소리를 완성했다. 세션은 짧고 격렬했으며, 다툼과 약물이 뒤섞인 긴장 속에서 진행됐다고 훗날 관계자들은 전했다. (모닝글로리) 1995년 10월 나온 두 번째 앨범 《(왓츠 더 스토리) 모닝 글로리?》는 「원더월」 「돈 룩 백 인 앵거」 「샴페인 슈퍼노바」를 담아 밴드를 국민적 현상으로 만들었다. 「샴페인 슈퍼노바」에는 당대 존경받던 폴 웰러가 기타와 코러스로 참여했는데, 이는 갤러거 형제가 오랜 우상으로 여기던 그와의 만남이자 존경의 표시였다. (전쟁) 1995년 8월, 오아시스의 「롤 위드 잇」과 블러의 「컨트리 하우스」가 같은 날 발매되며 벌어진 이른바 '브릿팝 전쟁'은 저녁 뉴스에까지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됐다. 그 주 싱글 차트 1위는 블러가 차지했지만, 앨범 판매와 대중적 지지는 오아시스 쪽으로 기울었다. 노동 계급을 내세운 오아시스와 미술학교 출신 블러의 대립은 곧 계급 정서 싸움으로 번졌고, 리암과 데이먼 알반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서로를 공개적으로 조롱했다. (네브워스) 1996년 8월, 오아시스는 잉글랜드 네브워스에서 이틀에 걸쳐 공연했다. 250만 명 넘게 티켓을 신청해 그중 약 25만 명만 입장할 수 있었는데, 이는 당시 영국 인구의 상당수가 신청서를 낸 셈이어서 브릿팝 시대의 정점으로 기록됐다. (균열) 폭발적인 성공은 그만큼의 압박도 가져왔다. 리암의 음주와 약물 사용은 이 무렵부터 두드러지게 늘었고, 형제 사이의 다툼도 잦아졌다. 겉으로는 최고의 순간이었지만, 안에서는 다음 앨범을 무너뜨릴 균열이 이미 자라고 있었다.
밴드가 국민적 현상이 되던 시기, 가장 널리 사랑받은 조용한 곡이다.
- 카포를 채운 어쿠스틱 기타 코드가 곡 전체를 이끌고, 전자 기타는 뒤에서 색만 얹는다.
- 현악 편곡이 후렴 부분에 은은히 깔려 감정을 부풀린다.
- 제목 '원더월'은 조지 해리슨이 1968년 낸 영화음악 앨범에서 따온 이름으로, 노엘이 비틀즈에 바친 오마주였다.
- 리암의 창법은 이 곡에서 유독 힘을 뺀 채 흘러가듯 부르는데, 이는 담담한 정서와 맞아떨어진다.
브릿팝의 정점에서 나온, 형이 직접 부른 흔치 않은 곡이다.
- 피아노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존 레넌의 「이매진」을 떠올리게 한다고 흔히 이야기된다.
- 이례적으로 리드 보컬을 리암이 아닌 노엘이 직접 불렀다.
- 후렴은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단순하고 넓은 음역으로 짜여 있어, 경기장 합창에 알맞다.
- 2017년 맨체스터 아레나 테러 이후 추모 인파가 거리에서 이 곡을 자발적으로 함께 불러, 곡의 쓰임이 원래 맥락을 넘어서게 됐다.
네브워스 전야, 스톤 로지스의 존 스퀴어가 함께한 확장된 마무리 곡이다.
- 7분에 가까운 길이로, 오아시스 곡 중 가장 길게 늘어지는 축에 속한다.
- 존 스퀴어가 기타로 참여해 후반부 잼 구간에 색을 더한다.
- 곡 후반, 여러 기타 소리가 겹겹이 쌓이며 점점 아득해지는(사이키델릭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 라이브에서는 엔딩 부분이 스튜디오 버전보다 훨씬 길게 늘어나며 잼 형태로 확장되곤 한다.
IV. 《비 히어 나우》와 과잉 · 1997–1999
(결혼) 1997년, 리암은 배우 팻시 켄싯과 결혼했다. 같은 해 노엘도 오랜 연인 메그 매튜스와 식을 올렸다. 두 결혼 모두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고, 갤러거 형제의 사생활은 이제 음악만큼이나 대중의 관심사가 됐다. (다우닝가) 같은 해 7월, 노엘은 새로 취임한 총리 토니 블레어가 런던 다우닝가 관저에서 연 축하 리셉션에 초대받았다. 이는 오아시스로 대표되는 '멋진 영국(쿨 브리타니아)' 이미지가 정치권에까지 흡수됐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과잉) 1997년 세 번째 앨범 《비 히어 나우》는 코카인에 취한 채 진행된 세션에서 태어났다. 기타를 스무 겹 가까이 겹쳐 쌓은 두꺼운 소리, 헬리콥터 소음으로 시작하는 첫 곡, 지나치게 길어진 곡 길이는 모두 절제를 잃은 시기의 산물이었다. 발매 당시에는 극찬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평단은 이를 성공에 취한 밴드의 과잉을 그대로 녹음해 버린 앨범으로 다시 평가했다. (탈퇴) 창단 멤버 중 갤러거 형제만 남은 셈이었고, 빈자리는 기타리스트 젬 아처와 베이시스트 앤디 벨이 채웠다. (자녀) 1999년 리암과 팻시 사이에서 아들 레넌이 태어났다. 존 레넌에게서 따온 이름이었다.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서, 갤러거 형제는 각자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조금씩 다른 삶의 궤도로 접어들고 있었다.
성공과 코카인에 취한 채 만들어진, 절제를 잃은 시기의 기록이다.
- 첫 곡 「디유노왓아이민?」은 헬리콥터 소음으로 시작해 좀처럼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 기타를 스무 겹 가까이 겹쳐 녹음해(오버더빙), 이전 두 앨범보다 훨씬 두껍고 과포화된 소리를 낸다.
- 곡 길이가 대부분 6분을 넘나들어, 팝송보다는 장황한 독백에 가까운 구조를 취한다.
- 프로듀서 오언 모리스는 훗날 이 앨범을 스튜디오에 갇힌 채 절제를 잃어 간 시기의 기록이라 돌아봤다.
V. 새로운 멤버들과 후반기 · 2000–2008
(재정비) 2000년대 들어 오아시스는 젬 아처와 앤디 벨을 정식 멤버로 맞아 안정을 찾아 갔다. 노엘은 이 무렵 자신의 코카인 의존을 돌아보며 활동을 줄였고, 네 번째 앨범 《스탠딩 온 더 숄더 오브 자이언츠》에는 그런 자기 성찰이 스며들었다. (잭스타키) 2004년에는 알란 화이트 대신 잭 스타키가 드러머로 합류했다. 더 후의 드러머 케니 존스에게 드럼을 배웠고, 비틀즈 링고 스타의 아들이자 키스 문의 대자이기도 한 그는 영국 록의 계보를 오아시스 무대 위로 끌어들인 존재였다. (비교) 2000년대 음악 언론은 종종 오아시스를 전통적인 기타 록의 수호자로, 라디오헤드를 실험적인 응답으로, 화이트 스트라입스를 미니멀한 개러지 부활로 나란히 놓고 비교했다. 톰 요크가 인터뷰에서 브릿팝식 록을 냉소적으로 평했다고 전해지는 반면, 노엘은 라디오헤드의 음악적 성취를 존중한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 겉으로는 진영이 갈렸지만 속내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민주화) 2002년 《헤이든 케미스트리(Heathen Chemistry)》와 2005년 《돈 빌리브 더 트루스》에서는 리암에 이어 젬 아처와 앤디 벨까지, 노엘 외의 여러 멤버가 곡을 써서 앨범에 실었다. 창작이 한 사람에게 쏠려 있던 초기 구조에 작은 변화가 생긴 셈이었고, 평단은 이 시기를 오아시스의 조용하지만 견실한 재도약으로 평가했다. (추모) 2002년 《헤이든 케미스트리》에서 싱글로 나온 「스탑 크라잉 유어 하트 아웃」은 노엘이 쓴 발라드였다. 초창기의 거친 기세 대신 피아노와 합창이 어우러진 차분한 위로의 노래였고, 이는 밴드가 젊은 객기에서 벗어나 어른의 화법을 배워 가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 2008년 《딕 아웃 유어 솔》을 끝으로, 오아시스는 스튜디오 앨범을 더 내지 않았다. 사이키델릭한 색을 더한 이 앨범은 돌아보면 밴드가 마지막 힘을 다해 남긴 정리에 가까웠다.
초창기의 거친 기세 대신, 밴드가 어른의 화법을 배워 가던 시기의 발라드다.
- 피아노 위주의 편곡과 오케스트라 현악이 초기작의 거친 기타 사운드와 뚜렷이 대비된다.
- 후반부에는 합창단이 더해져 위로하듯 곡을 감싸 안는다.
- 리암의 창법은 특유의 공격성을 누르고 한결 절제된 톤으로 노래를 이끈다.
- 가운데 브리지 구간에서 잠시 멎었다가 다시 차오르는 구성이 위로하는 정서를 강조한다.
VI. 파리의 밤과 해체 · 2009
(파리) 2009년 8월 28일, 프랑스 파리 인근 록 앙 센 페스티벌 무대 뒤에서 리암과 노엘이 몸싸움을 벌였다. 그날 밤 두 사람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있었고, 공연은 취소됐다. (해산) 그날 밤 노엘은 밴드 홈페이지에 성명을 올려 더는 리암과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취지로 탈퇴를 알렸다. 18년을 이어 온 오아시스는 그렇게 사실상 즉시 해체됐다. (누적) 표면적인 계기는 파리에서의 몸싸움이었지만, 그 밑에는 오랜 세월 쌓인 것들이 있었다. 곡 저작권과 그에 따른 돈이 노엘에게 집중된 구조, 형제의 타고난 기질 차이, 반복된 약물과 음주, 그리고 18년째 서로를 견뎌 온 피로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었다. (각자) 리암은 곧 젬 아처, 앤디 벨과 함께 새 밴드 비디 아이를 결성했다. 노엘은 '노엘 갤러거스 하이 플라잉 버즈'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몇 년간 두 사람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서로를 공격하며 화해 가능성을 스스로 지워 나갔다.
VII. 재결합 · 2024–2025
(발표) 2024년 8월, 오아시스는 15년 만의 재결합을 발표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짧은 공지문은 담담하게 재결합 사실만을 알렸고, 곧이어 대규모 투어 계획이 공개됐다. (티켓) 재결합 투어 티켓 판매는 곧바로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좌석 가격이 예고보다 크게 뛰면서 다이내믹 프라이싱이라는 비판이 일었고, 영국 정치권과 소비자 단체까지 나서 티켓 판매 방식을 문제 삼았다. (투어) 2025년 7월, 웨일스 카디프를 시작으로 '오아시스 라이브 25' 투어가 열렸다. 잉글랜드 웸블리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매진 행렬이 이어졌고, 관객 상당수는 1990년대를 함께 겪지 않은 세대였다 — 서른 해 가까이 지난 노래들이 다시 한 세대 전체의 노래가 되는 순간이었다. (형제) 무대 위에서 갤러거 형제는 오랜 반목을 뒤로 하고 나란히 섰다. 완전한 화해라 부르기는 이르다는 평도 많았지만, 적어도 음악 앞에서는 다시 형제로 돌아온 듯 보였다.
덜 알려진 이야기
첫 밴드 이름은 오아시스가 아니라 '더 레인'이었다. 본헤드, 기지, 매카롤이 함께하던 이 무명 밴드에 리암이 보컬로 들어가며 이름을 오아시스로 바꾸자고 했고, 노엘은 이름이 바뀐 뒤 몇 달 지나서야 합류했다. 노엘은 오아시스에 정식으로 합류하기 몇 해 전부터 이미 수십 곡을 써 둔 상태였다. 인스파이럴 카펫츠의 로드 매니저로 유럽을 떠돌던 시절, 그는 호텔 방과 이동하는 차 안에서 홀로 곡을 만들었다고 훗날 밝혔다. 밴드가 갑자기 재능을 터뜨린 것처럼 보였던 초기 성공의 상당 부분은 사실 이 조용한 준비 기간에 이미 쌓여 있던 것이었다. 곡을 쓰지 않은 멤버에게 로열티가 거의 돌아가지 않는 구조는 오아시스뿐 아니라 밴드 음악 산업 전반의 불균형을 드러낸 사례로 종종 인용된다. 「시가렛츠 앤 알코올」의 리프가 티 렉스의 「겟 잇 온」과 닮았다는 지적은 발매 직후부터 있었다. 표절 논란으로 번질 수도 있었지만 노엘은 이를 굳이 숨기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자란 시절 사랑한 음악에 대한 오마주라고 인정했는데, 이런 솔직함이 오히려 논란을 잦아들게 했다.
용어 노트 📚🔎
브릿팝
(말뜻) 영국(브리튼)과 대중음악(팝)을 합친 말로, 1990년대 중반 영국에서 일어난 기타 록의 흐름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록에서) 미국에서 건너온 어둡고 무거운 얼터너티브 록(그런지)에 맞서, 영국 특유의 밝고 선명한 멜로디와 자국 대중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담은 음악을 가리킨다. 오아시스와 블러가 이 흐름의 양대 산맥으로 꼽혔다. 학교 대항 체육대회에서 응원가를 부르듯, 나라 전체가 함성처럼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지향했다고 보면 된다.
디스토션
(록에서) 기타 소리를 일부러 찢어지듯 거칠게 왜곡시키는 이펙트(효과)다. 증폭기(앰프)나 별도의 페달을 세게 걸어 신호를 넘치게 만들면 원래는 둥근 파형이 뭉개지면서 거칠고 두꺼운 소리가 난다. 마이크에 대고 일부러 목소리를 긁어 내는 것과 비슷하게, 매끈한 소리 대신 거친 질감을 얻는 방법이다. (다른 데서는) 사진이나 방송에서는 화면이나 신호가 지글거리며 깨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오버더빙
(말뜻) 위에(over) 덧입힌다(dub)는 뜻 그대로, 이미 녹음된 소리 위에 새 소리를 겹쳐 쌓는 녹음 기법이다. (록에서) 기타 한 대로 연주해도, 스튜디오에서 같은 부분을 여러 번 다시 연주해 겹쳐 녹음하면 마치 기타 여러 대가 한꺼번에 울리는 것처럼 두껍고 풍성한 소리가 난다. 그림을 그릴 때 같은 자리에 물감을 여러 겹 덧칠해 색을 진하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앤섬
(말뜻) 원래는 교회에서 다 함께 부르는 찬송을 가리키던 말이다. (록에서) 콘서트장이나 경기장에서 수만 명이 한목소리로 따라 부를 만큼 후렴이 크고 단순하며 힘찬 노래를 뜻한다. 학교 축제에서 전교생이 다 아는 후렴구를 목청껏 따라 부르는 순간을 떠올리면 된다.
로열티
(말뜻) 원래 왕실이나 왕족을 뜻하던 말인데, 왕에게 바치던 사용료에서 뜻이 옮겨 왔다. (록에서) 음반이 팔리거나 곡이 방송·공연에 쓰일 때마다 작곡가와 저작권자에게 돌아가는 돈을 말한다. 오아시스에서는 노엘이 거의 모든 곡을 썼기 때문에 이 돈의 대부분이 그에게 돌아갔고, 이는 훗날 멤버 사이 갈등의 한 이유가 되었다. 학급 문집을 팔아 생긴 돈을 글을 쓴 사람에게 나눠 주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다른 데서는) 왕실 가족을 가리키는 원래 뜻으로도 여전히 쓰인다.
세션 뮤지션
(록에서) 특정 밴드의 정식 멤버는 아니지만, 녹음이나 공연에 초대되어 연주를 돕는 연주자를 말한다. 학교 발표 때 우리 반이 아닌 다른 반 친구를 필요한 악기 파트에 특별히 초청해 함께 연주하는 것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