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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 Drake

니크 드레이크 (1948–1974)

생전에 몇천 장밖에 팔리지 않은 세 장의 앨범이, 그가 떠난 뒤 반세기에 걸쳐 조용히 청중을 찾아갔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얀마 양곤 출생어머니 몰리의 노래말버러의 단거리 선수2. 발견케임브리지 영문학로버트 커비의 편곡조 보이드와 계약3. 첫 두 장파이브 리브스 레프트리버 맨의 5박자브라이터 레이터4. 고립무대 공포존 마틴과의 우정5. 핑크 문이틀 밤의 녹음목소리와 기타뿐1974년 마지막 녹음6. 유산스물여섯의 죽음폭스바겐 광고R.E.M.과 조 보이드드레이크1948–1974세 장의 앨범을 남기고 스물여섯에 떠난, 뒤늦…
무대가 된 도시 🧭🗺️
N영국프랑스엑상프로방스1967케임브리지1967–1969런던1969–1972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가족몰리 드레이크

    어머니로, 집에서 직접 지어 부른 쓸쓸한 노래들이 아들의 음악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 가족가브리엘 드레이크

    누나이자 배우로, 동생의 유산을 맡아 어머니의 녹음과 자료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 우정로버트 커비

    케임브리지에서 만난 친구로, 첫 두 앨범의 현악과 금관 편곡을 맡았다.

  • 프로듀서조 보이드

    그를 발굴해 세 장 가운데 앞의 두 앨범과 마지막 녹음을 제작했다.

  • 프로듀서존 우드

    사운드 테크닉스의 엔지니어로, 「핑크 문」을 단둘이 녹음했다.

  • 우정존 마틴

    가장 가까웠던 동료 음악가로, 「솔리드 에어」를 그를 생각하며 썼다.

YouTube에서 4곡 이어 듣기 ↗

I. 랑군에서 온 소년 · 1948–1966

(출생) 1948년 6월, 버마(오늘날 미얀마) 랑군(오늘날 양곤)에서 태어났다. 버마가 영국에서 독립한 지 다섯 달 뒤였다. 아버지 로드니 드레이크는 목재 회사 봄베이 버마 무역회사의 엔지니어였고, 네 살 위 누나 가브리엘이 있었다. 1950년 가족은 인도 봄베이(오늘날 뭄바이)로 옮겼고, 1951년 영국으로 돌아와 잉글랜드 워릭셔의 작은 마을 탠워스인아든의 집 파 리스(Far Leys)에 자리 잡았다. 이 집은 평생 그가 돌아갈 곳이 됐다. (어머니) 어머니 몰리 드레이크는 집에서 피아노를 치며 직접 노래를 지었다. 로드니가 가정용 테이프 녹음기로 남겨 둔 그 노래들은 쓸쓸한 화성과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특징이었다. 니크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훗날 평론가들과 유족은 아들의 음악에 어머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고 입을 모았다. 누나 가브리엘은 자라서 배우가 됐다. (학교) 버크셔의 기숙 예비학교 이글 하우스를 거쳐 1962년 명문 기숙학교 말버러 칼리지에 들어갔다.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 단거리 육상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럭비도 했다. 피아노와 클라리넷, 색소폰을 배웠고 친구들과 밴드 퍼퓸드 가드너스를 꾸려 재즈와 블루스를 연주했다. 기타를 손에 잡은 것은 열여섯 무렵이었다. 말수가 적고 수줍었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조용히 신뢰받는 편이었다. 교사들은 재능에 비해 공부가 느슨하다고 기록했다.

II. 엑상프로방스와 케임브리지 · 1966–1968

(유예) 1966년 케임브리지 대학 피츠윌리엄 칼리지의 장학생으로 뽑혔지만 입학을 미루고, 1967년 초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의 대학에서 몇 달을 보냈다. 수업보다 기타 연습에 몰두했고, 친구들과 모로코까지 여행했다. 대마초를 처음 가까이한 것도 이 무렵으로 전해진다. 손가락으로 줄을 하나하나 뜯는 주법과, 줄의 음높이를 바꿔 독특한 울림을 얻는 조율법을 파고든 시기이기도 했다. (케임브리지) 1967년 가을 케임브리지에서 영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윌리엄 블레이크와 프랑스 상징주의 시에 끌렸지만 강의실보다 방에서 기타를 잡는 시간이 길었다. 이곳에서 음악을 공부하던 로버트 커비를 만났다. 커비는 드레이크의 노래에 현악기와 관악기를 입히는 편곡을 맡게 되고, 두 사람의 협업은 첫 두 앨범의 소리를 결정했다. (발견) 1967년 말에서 1968년 초 사이, 런던 라운드하우스의 공연에서 그의 연주를 들은 페어포트 컨벤션의 베이시스트 애슐리 허칭스가 프로듀서 조 보이드에게 그를 소개했다. 미국 출신의 보이드는 제작사 위치시즌을 이끌며 페어포트 컨벤션과 인크레더블 스트링 밴드를 길러 낸 사람이었다. 보이드는 드레이크가 집에서 녹음한 테이프를 듣고 곧바로 계약을 제안했고, 음반은 아일랜드 레코드를 통해 나가기로 했다. 열아홉 살 대학 신입생이 영국 포크의 한복판에 발을 들인 순간이었다.

III. 다섯 장 남은 종이 · 1968–1969

(녹음) 1968년, 학기 중에 런던을 오가며 첼시의 작은 스튜디오 사운드 테크닉스에서 첫 앨범을 녹음했다. 엔지니어 존 우드가 콘솔을 잡았고, 펜탱글의 베이시스트 대니 톰프슨과 페어포트 컨벤션의 기타리스트 리처드 톰프슨이 연주를 보탰다. 드레이크의 기타와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담아, 숨소리까지 들리는 친밀한 소리를 만드는 것이 우드와 보이드의 방침이었다. (편곡) 처음 현악 편곡을 맡은 리처드 휴슨의 결과물은 드레이크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케임브리지 친구 커비를 데려왔고, 커비는 그 노래들이 원하는 절제된 현악을 써 냈다. 다만 가장 야심 찬 곡 「리버 맨」만큼은 커비가 부담을 느껴, 보이드가 노련한 편곡자 해리 로빈슨을 불렀다고 회고했다. 대학생 시인의 노래가 실내악처럼 짜인 사운드로 옷을 입은 데에는 이런 우정과 고집이 함께 있었다. (침묵) 앨범은 1969년 여름 「파이브 리브스 레프트」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담배를 말아 피우는 종이 묶음 끝 무렵에 끼워진, 다섯 장 남았다는 안내문에서 따온 제목이었다. 몇몇 평론은 호의적이었지만 판매는 미미했다. 드레이크는 인터뷰도, 공연도 거의 하지 않았다. 같은 해 그는 졸업을 아홉 달 앞두고 케임브리지를 떠나 런던으로 갔다. 아버지는 편지로 학위만은 마치라고 거듭 권했지만, 그는 학위가 오히려 음악에 전념하지 못하게 하는 안전망이 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앨범 《파이브 리브스 레프트》 (Five Leaves Left)1969

케임브리지의 대학생이 런던을 오가며 만든 첫 앨범으로, 친구 로버트 커비의 현악 편곡과 존 우드의 친밀한 녹음이 그의 소리를 처음 세상에 내놓았다.

  • 대표곡으로 고른 「웨이 투 블루」에는 기타가 없다. 드레이크의 목소리와 커비가 쓴 작은 현악 합주만으로 이루어져, 그의 목소리가 실내악의 한 성부처럼 들린다.
  • 첫 곡 「타임 해즈 톨드 미」에서는 리처드 톰프슨의 전기 기타가 노래 사이사이에 짧은 응답을 끼워 넣는다. 오른쪽에서 들리는 그 가느다란 선율을 따라가 보자.
  • 목소리와 기타를 마이크 가까이에서 녹음해 손가락이 줄 위를 미끄러지는 소리와 숨소리까지 들린다. 헤드폰으로 들으면 노래하는 사람이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듯한 친밀함이 살아난다.
  • 대니 톰프슨의 콘트라베이스는 리듬을 강하게 밀기보다 기타 아래에서 낮게 깔린다. 드럼이 거의 없는 곡에서 박자를 지탱하는 것이 이 베이스라는 점을 귀여겨듣자.
♪리버 맨 (River Man)1969공식 MV — Nick Drake

커비가 부담을 느껴 해리 로빈슨에게 넘어간 바로 그 곡으로, 첫 앨범에서 가장 야심 찬 순간이다.

  • 한 마디가 다섯 박으로 된 드문 박자(5/4박자)다. 손으로 다섯을 세며 들으면 노래가 왜 늘 조금 덜 끝난 듯 출렁이는지 알 수 있다.
  • 해리 로빈슨의 현악은 드레이크가 스튜디오에서 함께 연주하는 가운데 녹음됐다고 전해진다. 첫 절이 지나며 현악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대목에 귀를 기울여 보자.
  • 로빈슨의 편곡은 영국 작곡가 딜리어스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을 듣는다. 현악이 화음을 길게 끌며 안개처럼 번지는 부분이 그 인상을 준다.
  • 목소리는 끝까지 낮고 차분하다. 강물 곁의 인물에게 말을 걸듯, 높이 치솟지 않고 혼잣말에 가까운 화법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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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런던의 밝은 소리 · 1969–1971

(런던) 런던 북부 햄스테드 근처의 셋방에 살며 레이블이 보내는 얼마 안 되는 정기 지급금으로 지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고, 친구 집에 며칠씩 머물다 말없이 떠나곤 했다는 증언이 여럿 남아 있다. 도시의 소음과 고립감은 두 번째 앨범의 노래들에 스며들었다. (편성) 1970년 녹음된 「브라이터 레이터」는 보이드가 더 많은 청중에게 닿기를 바라며 만든 앨범이었다. 리처드 톰프슨, 데이브 페그, 데이브 매탁스 등 페어포트 컨벤션 멤버들이 리듬을 받쳤고, 벨벳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존 케일이 두 곡에서 건반과 비올라를 맡았다. 커비의 금관 편곡과 여성 코러스, 재즈 색소폰이 더해졌고, 연주곡 세 곡이 앨범을 여닫았다. 1970년 11월로 예정됐던 발매는 1971년 3월로 미뤄졌고, 판매는 또 저조했다. 비슷한 무렵 보이드는 위치시즌을 아일랜드에 넘기고 영화 음악 일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드레이크에게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를 잃은 일이었다. (무대) 공연은 그에게 고역이었다. 곡마다 조율을 바꿔야 해서 노래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고, 그는 청중에게 거의 말을 걸지 않았다. 1970년 서리주 이웰의 공연 도중 연주를 멈추고 무대에서 내려온 뒤로는 사실상 무대에 서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 가장 가까웠던 음악가는 존 마틴이었다. 마틴은 1973년 앨범 표제곡 「솔리드 에어」를 드레이크를 생각하며 썼다고 밝혔다. 1971년 3월 음악지 사운즈와 나눈 인터뷰는 그가 생전에 남긴 유일한 언론 인터뷰로 꼽힌다.

♪노던 스카이 (Northern Sky)1970노래 Nick Drake · 영화 《세렌디피티》 장면

외롭던 런던 시절에 나온, 그의 노래 가운데 가장 행복에 가까운 사랑 노래다. 존 케일이 건반을 맡았다.

  • 존 케일이 피아노와 오르간, 그리고 종소리처럼 맑은 소리를 내는 건반 악기 첼레스타를 모두 연주했다. 노래 뒤에서 반짝이는 첼레스타 소리를 찾아보자.
  • 드럼은 처음부터 나오지 않고 곡 중반부터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그 뒤로 곡 전체가 천천히 밝아지는 흐름을 느껴 보자.
  • 사랑을 처음 깨달은 사람이 조용히 고백하는 어조다. 드레이크의 목소리가 다른 곡보다 한결 따뜻하게 들린다는 평이 많다.
  • 마지막 부분에서 케일의 피아노와 오르간이 겹치며 넓게 퍼진다. 혼자 부르던 노래가 하늘처럼 열리는 듯한 끝맺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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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브라이터 레이터》 (Bryter Layter)1970

보이드가 더 많은 청중을 바라며 페어포트 컨벤션 멤버들과 금관, 재즈 연주자들을 불러 모은 가장 화려한 앨범이다.

  • 대표곡으로 고른 「헤이지 제인 II」는 리처드 톰프슨의 경쾌한 전기 기타로 문을 연다. 곧이어 커비가 편곡한 금관이 밝게 터져 나온다.
  • 데이브 페그의 베이스와 데이브 매탁스의 드럼이 페어포트 컨벤션 특유의 탄탄한 리듬을 깐다. 첫 앨범과 달리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그루브가 있다.
  • 「인트로덕션」, 「브라이터 레이터」, 「선데이」 세 연주곡이 앨범의 처음과 중간, 끝을 잇는다. 노래 없이 현악과 플루트, 기타만으로 장면을 바꾸는 장치다.
  • 화려한 편성 속에서도 드레이크의 목소리는 앞으로 나서지 않고 악기들 뒤에 살짝 물러나 있다. 밝은 소리와 쓸쓸한 목소리 사이의 거리가 이 앨범의 정서다.

V. 분홍빛 달 · 1971–1972

(우울) 1971년 무렵 드레이크는 깊은 우울에 잠겼다. 사람을 피하고 말을 잃었으며, 런던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그는 약을 먹는 사실을 부끄러워했고, 약이 자신의 창작을 무디게 할까 두려워했다고 친구들은 회고했다. 아일랜드 레코드의 설립자 크리스 블랙웰이 스페인의 거처를 빌려주어 그곳에서 얼마간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녹음) 1971년 10월, 그는 존 우드에게 연락해 다시 녹음하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은 사운드 테크닉스에서 이틀 밤 동안 단둘이 작업했다. 편곡자도 세션 연주자도 없이 목소리와 기타만 녹음했고, 표제곡에 그가 직접 친 피아노 한 줄을 덧입힌 것이 유일한 추가 녹음이었다. 열한 곡, 모두 합쳐 30분이 채 안 되는 앨범이었다. 앞선 두 앨범의 풍성한 편곡을 걷어 낸 이 앙상한 소리는, 그 무렵 그의 삶에서 남은 것이 얼마나 적었는지를 그대로 비추는 듯했다. (발매) 「핑크 문」은 1972년 2월에 나왔다. 그가 테이프를 아일랜드 사무실 접수대에 말없이 두고 갔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지만, 관계자들은 직접 건넸다고 증언한다. 레이블은 음악지에 광고를 실었지만 판매는 이번에도 미미했다. 드레이크는 주변에 더 이상 음반을 만들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다고 전해진다.

♪앨범 《핑크 문》 (Pink Moon)1972

우울의 한가운데에서 존 우드와 단둘이 이틀 밤 만에 녹음한 앨범으로, 앞선 두 장의 편곡을 모두 걷어 냈다.

  • 대표곡으로 고른 「플레이스 투 비」는 목소리와 기타뿐이다. 젊음이 지나가 버린 것을 돌아보는 사람의 담담한 고백처럼 들린다.
  • 열한 곡을 모두 합쳐도 30분이 채 되지 않는다. 짧은 곡들이 쉼 없이 이어져,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것이 가장 좋다.
  • 기타는 손가락으로 줄을 하나씩 뜯는 주법(핑거피킹)으로 연주했고, 줄의 음높이를 바꾼 조율(오픈 튜닝)로 개방현이 길게 울린다. 화음 사이로 울리는 낮은 현의 여운을 들어 보자.
  • 「혼」은 1분 남짓한 기타 연주곡이다. 음 사이의 침묵이 연주만큼 크게 들리는, 이 앨범의 정서를 압축한 순간이다.

VI. 파 리스의 마지막 날들 · 1972–1974

(귀향) 1972년 그는 탠워스인아든의 부모 집으로 돌아왔다. 그해 몇 주간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로드니와 몰리는 말없이 방에 머무는 아들을 곁에서 지켜보았고, 아버지가 아들의 상태를 꼼꼼히 적어 둔 기록은 훗날 전기 작가들의 중요한 자료가 됐다. 그는 어머니의 차를 몰고 정처 없이 나갔다가 기름이 떨어져 부모에게 데리러 와 달라고 전화하곤 했다. (좌절) 그는 자신의 음악이 알려지지 않은 데 깊은 좌절을 느꼈다. 조 보이드는 1974년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드레이크가 왜 성공하지 못했느냐며 분노를 드러냈다고 회고했다.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본 적 없는 사람이 품은 그 분노는 그만큼 오래 쌓인 것이었다. (재기) 1974년, 보이드와 함께 사운드 테크닉스에서 네 곡을 녹음했다. 「블랙 아이드 도그」를 비롯한 이 노래들은 「핑크 문」보다 더 앙상하고 위태로웠다. 그해 여름에는 파리에 머물며 센강의 배 위에서 지냈고, 친구들은 그가 한결 밝아졌다고 기억했다. 프랑스 가수 프랑수아즈 아르디 쪽과 곡 작업을 논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죽음) 1974년 11월 25일 아침, 파 리스의 자기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항우울제 아미트립틸린 과다 복용이었다. 검시 법정은 자살로 판정했지만, 유족과 친구 가운데에는 잠을 이루려다 일어난 사고였을 가능성을 믿는 이들도 있었다. 스물여섯 살이었다. 그는 마을의 성 메리 막달레나 교회 묘지에 묻혔다.

♪블랙 아이드 도그 (Black Eyed Dog)1974년 녹음 (1979 발표)노래 Nick Drake · Heath Ledger 영상

1974년 마지막 녹음 가운데 하나로, 「핑크 문」보다 더 앙상하고 위태로운 소리가 그 무렵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다.

  • 검은 개는 영국에서 오래전부터 우울을 빗대는 말로 쓰였다. 노래는 무언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의 불안한 독백처럼 들린다.
  • 기타는 같은 짧은 음형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화음이 거의 변하지 않아 출구 없이 맴도는 듯한 느낌을 준다.
  • 목소리는 높고 가늘며 떨리듯 갈라진다. 이전 앨범들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견주어 들으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게 된다.
  • 1979년 상자 세트 「프루트 트리」에 처음 실렸다. 3분 남짓한 짧은 곡이 아무런 장식 없이 갑자기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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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늦게 도착한 청중 · 1974–2023

(재발견) 죽음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1979년 아일랜드는 세 장의 앨범에 1974년의 마지막 녹음을 더한 상자 세트 「프루트 트리」를 냈고, 이를 계기로 음악가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이 조용히 오가기 시작했다. 1985년 R.E.M.은 세 번째 앨범 「페이블스 오브 더 리컨스트럭션」을 조 보이드의 제작으로 런던에서 녹음했다. 밴드가 보이드를 고른 데에는 그가 드레이크와 페어포트 컨벤션의 음반을 만든 사람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전해진다. (광고) 전환점은 1999년 미국 폭스바겐의 텔레비전 광고였다. 달빛 아래 드라이브하는 젊은이들의 장면에 「핑크 문」이 흐르자, 미국에서 그의 앨범 판매가 급증했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에 그의 노래가 잇따라 쓰였고, 생전에 몇천 장에 그친 앨범들은 꾸준히 팔리는 고전이 됐다. (유산) 아버지 로드니는 1988년, 어머니 몰리는 1993년 세상을 떠났다. 누나 가브리엘이 동생의 유산을 맡아, 2013년 어머니의 가정 녹음을 음반으로 내고 2014년 자료집 「리멤버드 포 어 와일」을 엮었다. 2023년 리처드 모턴 잭이 유족의 협조를 얻어 쓴 공인 전기가 나오면서, 우울한 천재라는 단순한 신화 대신 유머와 우정과 야심을 지닌 한 젊은이의 모습이 더 또렷해졌다.

♪핑크 문 (Pink Moon)1972공식 MV — Nick Drake

1999년 폭스바겐 광고에 쓰이며 그의 음악을 세상에 다시 알린 곡이다.

  • 앨범 전체에서 유일한 추가 녹음이 이 곡의 피아노다. 기타와 목소리 위로 드레이크가 직접 친 짧은 피아노 선율이 들어오는 순간을 찾아보자.
  • 2분을 조금 넘는 짧은 곡이다. 다가오는 운명을 예고하듯, 그러나 담담하게 말하는 어조가 짧은 길이 안에 응축돼 있다.
  • 기타는 강하게 긁는 리듬과 손가락으로 뜯는 음이 섞여 있다. 혼자 연주하는데도 리듬과 선율이 동시에 들리는 것이 드레이크 기타의 특징이다.
  • 광고에서는 달빛 아래 드라이브 장면에 쓰여 몽환적인 노래로 받아들여졌다. 앨범의 흐름 속에서 다시 들으면 훨씬 어둡고 단단한 노래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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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몰리 드레이크의 노래들은 오랫동안 가족의 테이프 상자 속에만 있었다. 1950년대에 로드니가 집에서 녹음한 이 노래들은 2013년에야 음반으로 나왔다. 들어 본 평론가들은 화성의 쓸쓸한 흐름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아들의 노래와 놀랄 만큼 닮았다고 평했다. 드레이크의 음악이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가, 그가 죽은 지 거의 40년 만에 공개된 셈이다. 「핑크 문」의 테이프를 아일랜드 사무실 접수대에 말없이 놓고 갔다는 이야기는 그의 고독을 상징하는 일화로 널리 퍼졌다. 그러나 존 우드와 레이블 관계자들의 증언, 그리고 후대 전기들은 그가 테이프를 직접 건넸다고 기록한다. 이 일화는 사후에 그를 수줍은 유령 같은 존재로 그리려는 신화화 과정에서 부풀려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조율법을 어디에도 적어 두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곡을 연주하려는 기타리스트들은 녹음을 수없이 반복해 들으며 줄마다 음높이를 거꾸로 짐작해 내야 했다. 오늘날 통용되는 그의 조율표 상당수는 이렇게 팬과 연주자들이 재구성한 것이다. 1974년 마지막 녹음 가운데 한 곡인 「토우 더 라인」은 30년 동안 잊혀 있다가 2004년 아일랜드의 보관 테이프 속에서 발견돼 처음 세상에 나왔다. 그가 남긴 마지막 노래가 그토록 늦게 알려진 것은, 생전의 그에게 관심을 두는 이가 얼마나 적었는지를 거꾸로 보여 준다. 말버러 시절의 그는 우울한 시인보다는 운동선수에 가까웠다. 단거리 달리기에서 학교 안에서 손꼽히는 기록을 냈다고 전해지며, 동급생들은 그를 운동 잘하는 조용한 친구로 기억했다. 우울한 천재라는 사후의 이미지 뒤에는 이런 평범하고 건강한 소년 시절이 있었다.

용어 노트 📚🔎

오픈 튜닝

(말뜻) 영어 open은 열려 있다는 뜻이다. 왼손으로 아무 줄도 누르지 않고 열어 둔 채 쳐도 화음이 울리게 조율한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록에서) 기타 여섯 줄의 음높이를 보통과 다르게 맞추는 방법이다. 줄을 누르지 않고 그냥 긁어도 아름다운 화음이 나고, 누르지 않은 줄이 길게 울려 독특한 여운이 생긴다. 드레이크는 곡마다 다른 조율을 써서, 공연 중 곡 사이마다 줄을 다시 맞추느라 긴 침묵이 흘렀다. 리코더 구멍을 테이프로 몇 개 막아 두면 같은 손가락으로도 전혀 다른 음이 나는 것처럼, 같은 손 모양으로 다른 소리를 얻는 방법이다.

핑거피킹

(말뜻) 영어 finger는 손가락, picking은 뜯는다는 뜻이다. 손가락으로 줄을 뜯어 친다는 말이다. (록에서) 피크(작은 플라스틱 조각)로 줄을 한꺼번에 긁는 대신, 오른손 손가락들로 줄을 하나씩 따로 뜯는 기타 주법이다. 엄지가 낮은 줄로 박자를 짚는 동안 나머지 손가락이 높은 줄에서 선율을 연주할 수 있어, 혼자서도 반주와 멜로디를 동시에 들려줄 수 있다. 피아노를 칠 때 왼손은 반주를, 오른손은 멜로디를 맡는 것과 비슷하다.

편곡

(말뜻) 편곡(編曲)은 곡(曲)을 엮는다(編)는 뜻이다. 이미 있는 노래를 어떤 악기로 어떻게 연주할지 새로 짜는 일이다. (록에서) 작곡가가 만든 멜로디와 화음에, 어떤 악기가 언제 들어오고 어떤 소리를 낼지 정해 주는 작업이다. 같은 노래도 기타 한 대로 부르면 소박하고, 현악기 여럿을 더하면 웅장해진다. 드레이크의 첫 두 앨범에서는 친구 로버트 커비가 현악과 금관 편곡을 맡았다. 같은 재료로 김밥을 말아도 어떤 재료를 어디에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오버더빙

(말뜻) 영어 over는 위에, dub는 소리를 입힌다는 뜻이다. 이미 녹음된 소리 위에 새 소리를 덧입힌다는 말이다. (록에서) 먼저 녹음한 연주를 틀어 놓고 그것을 들으며 다른 악기나 목소리를 따로 녹음해 겹치는 방법이다. 혼자서도 여러 악기를 연주한 것처럼 만들 수 있다. 「핑크 문」에서는 표제곡의 피아노 한 줄만 이렇게 덧입혔고, 나머지는 모두 목소리와 기타를 그대로 녹음했다. 그림을 그린 뒤 마른 위에 다른 색을 한 겹 더 칠하는 것과 비슷하다.

박자

(말뜻) 박자(拍子)의 박(拍)은 손뼉을 친다는 뜻이다. 손뼉을 치듯 규칙적으로 돌아오는 셈의 단위를 말한다. (록에서) 음악이 몇 박마다 한 묶음으로 돌아오는지를 정한 틀이다. 대부분의 록과 팝은 넷을 한 묶음으로 세는 4박자다. 드레이크의 「리버 맨」은 다섯을 한 묶음으로 세는 드문 5박자여서, 노래가 늘 조금씩 어긋나며 출렁이는 느낌을 준다. 줄넘기를 할 때 하나둘셋넷으로 뛰다가 하나둘셋넷다섯으로 바꾸면 리듬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일이나 말이 서로 잘 맞아떨어지는 것을 두고 박자가 맞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엔지니어

(말뜻) 영어 engineer는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라는 뜻으로, 녹음실에서는 녹음 장비를 다루는 기술자를 가리킨다. (록에서) 마이크를 어디에 놓을지, 소리를 얼마나 크게 담을지, 악기들의 소리를 어떻게 섞을지 정하는 녹음 기술자다. 프로듀서가 앨범 전체의 방향을 정한다면, 엔지니어는 그 방향을 실제 소리로 만든다. 존 우드는 드레이크의 목소리와 기타를 마이크 가까이에서 담아 숨소리까지 들리는 소리를 만들었다. 학교 방송반에서 마이크와 음량을 조절하는 친구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일반적으로는 다리나 기계, 컴퓨터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만드는 기술자를 뜻한다.

세션 연주자

(말뜻) 영어 session은 정해진 시간 동안 모이는 자리라는 뜻이다. 녹음 시간에 불려 와 연주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록에서) 밴드의 정식 멤버가 아니면서, 앨범을 녹음할 때 필요한 악기를 연주하러 오는 음악가다. 드레이크는 밴드가 없는 혼자 활동하는 가수였기 때문에, 리처드 톰프슨이나 존 케일 같은 음악가들이 녹음 때마다 연주를 보탰다. 학교 연극에 다른 반 친구가 잠깐 와서 피아노 반주를 해 주는 것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