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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 Zeppelin

레드 제플린 (1968–1980)

'빛과 그림자(light and shade).' 지미 페이지는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설명할 때 이 말을 즐겨 썼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페이지의 세션 경력미들랜즈의 두 청년편곡자 존스2. 결성영국 런던 결성뉴 야드버즈36시간 데뷔작3. 비상《II》 미국 1위그랜트의 90%웨일스 오두막4. 정점천국으로 가는 계단헤들리 그레인지캐시미르5. 상실1977 투어 중단본햄의 죽음1980 해체 성명6. 유산노 쿼터·레이징 샌드2007 O2 공연케네디 센터제플린1968–1980블루스를 거대한 소리로 키워 1970년대 록의…
무대가 된 도시 🧭🗺️
N영국엡섬1952–1960년대시드컵1946레디치1948–1968웨스트브로미치1948런던1968–1980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지미 페이지

    밴드를 만든 기타리스트이자 모든 정규 앨범의 프로듀서로, 빛과 그림자라는 음악적 설계를 쥐고 있었다.

  • 멤버존 폴 존스

    베이스와 건반, 현악 편곡을 맡은 세션 출신 음악가로, 「Kashmir」와 《인 스루 디 아웃 도어》의 소리를 빚었다.

  • 우정제프 벡

    야드버즈에서 함께 기타를 친 동료로, 페이지에게 「Stairway to Heaven」 솔로에 쓰인 텔레캐스터를 건넸다.

  • 멤버로버트 플랜트

    보컬과 대부분의 가사를 맡아 블루스의 외침에 신화와 여행의 언어를 더했다.

  • 멤버존 본햄

    레디치 출신 드러머로, 그의 죽음과 함께 나머지 세 사람은 밴드를 끝내기로 했다.

  • 매니저피터 그랜트

    공연 수입의 90퍼센트를 밴드 몫으로 요구하고 싱글·TV를 거부하는 전략으로 밴드의 자율과 부를 함께 지켰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네 갈래의 뿌리 · 1944–1968

(결성) 1968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됐다. 그러나 네 사람의 길은 그보다 훨씬 전에 런던 교외와 잉글랜드 중부 미들랜즈라는 서로 다른 곳에서 시작됐다. 중심에 선 지미 페이지는 1944년 런던 서쪽 헤스턴에서 태어나 엡섬에서 자랐다. 열두 살 무렵 집에 들어온 통기타를 잡았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녹음에서 스코티 무어의 기타를 들으며 혼자 익혔다. (세션) 십 대 후반의 페이지는 런던에서 가장 바쁜 세션 연주자(밴드에 속하지 않고 남의 녹음에 불려 가 연주하는 직업 음악가) 가운데 하나가 됐다. 젬의 「Here Comes the Night」, 셜리 배시의 「Goldfinger」 같은 녹음에 기타를 보태며 마이크 배치와 녹음실의 울림을 몸으로 배웠다. 1966년 야드버즈에 베이스로 들어갔다가 곧 제프 벡과 나란히 기타를 맡았고, 1968년 여름 밴드가 흩어지자 남은 공연 계약을 쥔 채 혼자 남았다. (편곡자) 존 폴 존스(본명 존 볼드윈)는 1946년 켄트주 시드컵에서 버라이어티 쇼 음악가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열네 살에 교회 오르간을 쳤고, 스무 살 무렵에는 세션 베이스 연주자이자 편곡자로 롤링 스톤스의 「She's a Rainbow」 현악 편곡과 도노반의 녹음을 맡았다. 페이지와는 스튜디오에서 자주 마주친 사이였다. (미들랜즈) 로버트 플랜트는 1948년 웨스트브로미치에서 태어났다. 공인회계사 견습을 2주 만에 그만두고 블루스에 빠져 미들랜즈의 클럽을 돌았고, 밴드 오브 조이에서 레디치 출신 드러머 존 본햄을 만났다. 건축업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본햄은 열여덟 살에 결혼해 아들 제이슨을 얻었고, 너무 세게 친다는 이유로 클럽에서 쫓겨난 일이 잦았다고 전해진다. 같은 무렵 이웃 버밍엄에서는 블랙 사바스가 자라고 있었다.

II. 뉴 야드버즈 · 1968–1969

(추천) 페이지가 처음 원한 가수는 테리 리드였다. 리드는 제안을 거절하는 대신 미들랜즈의 무명 가수를 추천했고, 1968년 여름 페이지는 플랜트의 공연을 보고 마음을 정했다. 플랜트가 옛 동료 본햄을 불렀다. 본햄은 다른 가수의 반주로 안정된 수입이 있어 망설였는데, 그를 설득하려 보낸 전보가 수십 통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존스는 아내의 권유로 먼저 페이지에게 연락했다. (역할) 페이지는 기타와 프로듀싱을, 플랜트는 보컬과 가사를, 존스는 베이스와 건반·편곡을, 본햄은 드럼을 맡았다. 런던 제라드가의 좁은 연습실에서 처음 「Train Kept A-Rollin'」을 함께 쳤을 때 모두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멤버들은 여러 차례 회고했다. 9월 스칸디나비아 공연은 야드버즈의 계약을 소화하는 자리여서 '뉴 야드버즈'라는 이름을 썼다. (이름) 새 이름은 더 후의 키스 문과 존 엔트위슬이 실패할 밴드를 두고 했다는 농담, 납(lead) 풍선처럼 가라앉는다는 말에서 왔다. 매니저 피터 그랜트는 미국인이 '리드'로 잘못 읽지 않도록 a 를 뺐다. (소유) 데뷔 앨범은 1968년 10월 런던 올림픽 스튜디오에서 약 36시간 만에 녹음됐다. 비용 1,782파운드는 페이지와 그랜트가 직접 댔고, 완성된 테이프를 들고 미국 애틀랜틱 레코드와 계약했다. 선급금은 14만 3천 달러로 기록돼 있으며 당시 신인으로는 파격이었다. 음반을 스스로 소유한 덕에 밴드는 이후 레이블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았다. (미국) 12월 말 첫 미국 투어가 시작됐고 1969년 1월 앨범이 나왔다. 평단의 첫 반응은 차가웠지만 공연장마다 소문이 번졌다. 블루스의 형식을 빌리되 굉음과 정적의 대비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방식, 페이지가 말한 빛과 그림자는 이 앨범에서 이미 뼈대를 갖췄다.

♪앨범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1969실황 「How Many More Times」 Led Zeppelin · 1969 덴마크 TV

36시간 만에, 밴드 자신의 돈으로 녹음한 데뷔작이다. 블루스 커버와 자작곡이 섞였지만 소리의 크기와 정적의 대비라는 밴드의 문법이 이미 완성돼 있다.

  • 대표곡으로 고른 첫 곡 「Good Times Bad Times」에서 본햄은 페달 하나로 베이스 드럼을 세 번씩 빠르게 몰아 찬다(셋잇단 연타). 후렴 앞뒤의 쿵쿵거림을 따로 떼어 들으면 당시 드러머들이 왜 놀랐는지 알 수 있다.
  • 같은 곡의 기타 솔로는 페이지가 회전하는 스피커가 달린 오르간용 앰프(레슬리 스피커)에 기타를 연결해 녹음했다고 밝혔다. 소리가 물결치듯 흔들리는 질감에 귀를 기울여 볼 것.
  • 페이지는 이 무렵 제프 벡에게 받은 텔레캐스터 기타를 작은 수프로 앰프에 물려 썼다. 큰 앰프 없이도 찢어지듯 굵은 음색(디스토션)이 나는 것은 작은 앰프를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다.
  • 「Dazed and Confused」 중간부에서는 페이지가 바이올린 활로 기타 줄을 긁어 낸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공연에서는 이 대목이 20분 가까이 늘어나곤 했다.
  • 「Babe I'm Gonna Leave You」는 통기타의 조용한 아르페지오(화음을 한 음씩 풀어 치는 연주)와 전기 기타의 폭발이 번갈아 나온다. 빛과 그림자가 한 곡 안에서 어떻게 교대하는지 보여 주는 견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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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길 위와 오두막 · 1969–1970

(투어) 1969년 밴드는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쉴 새 없이 공연했다. 두 번째 앨범은 그 틈틈이 런던·뉴욕·로스앤젤레스의 여러 스튜디오에서 조각조각 녹음됐고, 엔지니어 에디 크레이머가 뉴욕에서 믹싱을 마무리했다. 10월에 나온 《레드 제플린 II》는 비틀스의 《애비 로드》를 밀어내고 미국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랜트) 이 성공의 다른 축은 매니저 피터 그랜트였다. 레슬러와 영화 단역 배우를 거친 거구의 그는 공연 수입의 90퍼센트를 밴드 몫으로 요구해 업계 관행을 뒤집었고, 공연장의 불법 녹음 업자를 직접 쫓아냈다. 밴드는 텔레비전 출연을 거의 하지 않고 영국에서는 싱글을 내지 않았다. 앨범 단위로만 들려주겠다는 이 고집을 그랜트와 페이지가 함께 지켰다. (오두막) 끝없는 투어에 지친 1970년 봄, 플랜트와 페이지는 웨일스 산골의 오두막 브론이라우르에 머물렀다. 플랜트가 어린 시절 가족과 휴가를 보낸 곳으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벽난로 옆에서 통기타로 만든 곡들이 《레드 제플린 III》의 후반부를 채웠다. 같은 해 6월 아이슬란드 공연에서 받은 인상은 바이킹의 항해를 그린 첫 곡 「Immigrant Song」이 됐다. (전환) 10월에 나온 세 번째 앨범의 포크적인 얼굴에 평단은 당황했다. 그러나 밴드에게 이 변화는 시끄러운 블루스 밴드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었다. 플랜트의 가사도 이 무렵부터 영국의 신화와 시골 풍경, 톨킨의 세계 쪽으로 넓어졌다.

♪홀 로타 러브 (Whole Lotta Love)1969실황 Led Zeppelin · 1970 로열 앨버트 홀

투어 틈틈이 여러 스튜디오를 옮겨 다니며 완성한 《레드 제플린 II》의 첫 곡이다. 영국에서는 싱글로 내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4위에 오르며 밴드를 대중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 도입의 짧고 끈질긴 기타 리프(곡 내내 되풀이되는 짧은 악구)는 페이지가 1969년 손에 넣은 깁슨 레스폴로 연주했다. 존스의 베이스가 같은 음형을 아래에서 겹쳐 리프가 한층 무겁게 들린다.
  • 곡 중간의 긴 브레이크에서는 손을 대지 않고 안테나 근처의 손짓으로 소리를 내는 전자 악기(테레민)와 본햄의 타악기가 뒤섞인다. 페이지와 엔지니어 에디 크레이머가 믹싱 중 손잡이를 돌려 소리를 좌우로 휘저었으니 헤드폰으로 들으면 좋다.
  • 브레이크가 끝나고 플랜트가 다시 외치기 직전, 그 목소리의 메아리가 본래 소리보다 먼저 들리는 기묘한 효과가 있다. 페이지가 즐겨 쓴 역방향 메아리(백워드 에코) 기법이다.
  • 플랜트의 보컬은 블루스 가수들의 외침과 신음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화법이다. 크레이머는 이전 녹음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들어간 것을 지우지 않고 효과로 살렸다고 회고했는데, 조용한 대목에서 멀리 떠도는 목소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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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레드 제플린 III》 (Led Zeppelin III)1970실황 「Since I've Been Loving You」 Led Zeppelin · 1973 MSG

웨일스 오두막에서 통기타로 쓴 곡들과 아이슬란드의 인상이 함께 담긴 앨범이다. 굉음의 밴드가 조용한 얼굴도 가졌음을 처음 드러냈다.

  • 대표곡으로 고른 「Since I've Been Loving You」는 느린 단조 블루스다. 존스가 해먼드 오르간을 치면서 발로 베이스 페달을 밟아 베이스 라인까지 혼자 맡았다.
  • 같은 곡의 조용한 대목에서는 본햄의 베이스 드럼 페달이 삐걱이는 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거의 라이브로 녹음한 흔적으로, 페이지는 훗날 리마스터 작업에서 이 소리를 발견하고 놀랐다고 말했다.
  • 후반의 기타 솔로는 페이지 연주 가운데 가장 감정이 짙은 것으로 자주 꼽힌다. 짧은 음을 끌어 올리고(벤딩) 울게 만드는 방식에 귀를 기울여 볼 것.
  • 레코드 뒷면의 「Gallows Pole」, 「Tangerine」, 「That's the Way」는 통기타·만돌린·밴조가 중심이다. 앞면의 「Immigrant Song」과 이어 들으면 한 장 안의 두 얼굴이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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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이름 없는 앨범 · 1970–1973

(저택) 네 번째 앨범은 1970년 말부터 햄프셔의 낡은 저택 헤들리 그레인지에서 롤링 스톤스의 이동식 녹음 트럭을 빌려 만들었다. 녹음실이 아닌 집이어서 방마다 울림이 달랐다. 본햄의 드럼을 계단 홀에 두고 위층에 매단 마이크로 받은 실험이 「When the Levee Breaks」의 거대한 북소리를 낳았다. (침묵) 세 번째 앨범을 둘러싼 비평에 대한 응답으로 페이지는 표지에 밴드 이름도 제목도 넣지 않았다. 네 멤버가 각자 고른 네 개의 기호만 실렸다. 레이블은 반대했지만 1971년 11월 나온 이 앨범은 밴드의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 됐고, 미국에서만 2천3백만 장 넘게 판매 인증을 받았다. (계단) 그 한가운데 「Stairway to Heaven」이 있었다. 8분이 넘는 곡을 싱글로 내지 않았는데도 미국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신청받는 곡이 됐다. 페이지는 조용히 시작해 점점 쌓아 올리다 폭발하는 구조를 오래 구상해 왔다고 말했고, 이 곡은 빛과 그림자라는 그의 생각을 가장 완전하게 보여 줬다. (정점) 1973년 《하우스 오브 더 홀리》는 레게풍 「D'yer Mak'er」와 존스의 전기 피아노가 이끄는 「No Quarter」로 영역을 더 넓혔다. 그해 5월 플로리다 탬파 공연에 5만 6천여 명이 모여 비틀스의 셰이 스타디움 기록을 넘었고, 7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은 영화로 촬영됐다. 전세기를 타고 다닐 만큼 부유해졌지만, 본햄은 투어 내내 집과 가족을 그리워했다고 동료들은 한결같이 증언했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 (Stairway to Heaven)1971실황 Led Zeppelin · 1975 얼스 코트

이름 없는 네 번째 앨범의 중심곡이다. 싱글로 낸 적이 없는데도 1970년대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신청받은 곡이 됐다.

  • 첫머리는 통기타와 리코더 합주다. 리코더는 존스가 여러 번 겹쳐 녹음했으며, 중세 음악 같은 분위기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 곡은 절마다 악기가 하나씩 더해지며 쌓인다. 전기 12현 기타가 들어오고, 본햄의 드럼은 4분을 훌쩍 넘겨서야 처음 등장한다. 그 순간을 기다리며 들으면 구조가 보인다.
  • 후반의 기타 솔로는 페이지가 제프 벡에게 받은 텔레캐스터로 연주했다고 밝혔다. 솔로가 끝나면 템포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플랜트가 가장 높은 음역으로 올라간다.
  • 폭발 뒤에는 플랜트의 목소리 하나만 남아 곡을 닫는다. 공연에서 페이지는 6현과 12현 목이 둘 달린 깁슨 더블넥 기타로 이 곡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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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가 무너질 때 (When the Levee Breaks)1971실황 Led Zeppelin · Neil Young · 1995 로큰롤 명예의 전당

1929년 멤피스 미니와 캔자스 조 매코이가 녹음한 미시시피 홍수의 블루스를 헤들리 그레인지의 계단 홀에서 다시 만든 곡이다.

  • 첫 소절부터 들리는 본햄의 드럼은 저택 계단 홀에 드럼을 놓고 위층에 매단 마이크 두 개로 받은 소리다. 엔지니어 앤디 존스의 이 녹음은 훗날 힙합 음악가들이 가장 많이 따다 쓴 드럼 소리 가운데 하나가 됐다.
  • 플랜트의 하모니카에는 메아리가 본래 소리보다 먼저 울리는 효과(백워드 에코)가 걸려 있다. 소리가 늪처럼 끈적하게 번지는 느낌이 여기서 나온다.
  • 페이지는 일부 녹음의 테이프 속도를 조절해 소리를 무겁게 끌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곡 전체가 원래 빠르기보다 느리고 둔중하게 들린다.
  • 7분이 넘는 곡의 마지막에서는 여러 소리가 좌우로 소용돌이치며 흐려진다. 헤드폰으로 들으면 믹싱이 얼마나 공간적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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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백조의 노래 · 1974–1976

(레이블) 1974년 밴드는 자기 레이블 스완 송을 세웠다. 배드 컴퍼니 같은 다른 아티스트도 거느렸고, 1975년 2월 첫 자체 발매작인 두 장짜리 《피지컬 그래피티》를 냈다. 새로 녹음한 곡과 이전 작업에서 남은 곡을 묶은 이 앨범에는 블루스, 펑크(funk)의 끈적한 리듬, 중동풍 선율까지 밴드의 모든 얼굴이 담겼다. (사막) 그 중심의 「Kashmir」는 1973년 플랜트가 모로코 남부의 사막 길을 차로 달리며 떠올린 가사에서 출발했다. 페이지의 반복 악구에 존스가 편곡한 현악과 관악이 겹치며, 밴드가 블루스 바깥으로 가장 멀리 나간 곡이 됐다. 멤버들은 훗날 이 곡을 밴드의 가장 뛰어난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망명) 1975년 5월 런던 얼스 코트 다섯 차례 공연을 끝으로, 밴드는 당시 최고 90퍼센트를 넘던 영국 소득세를 피해 한동안 해외에 머물렀다. 그해 8월 플랜트는 그리스 로도스섬에서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고, 예정된 투어는 모두 취소됐다. (뮌헨) 무대에 설 수 없게 된 밴드는 11월 독일 뮌헨의 뮤직랜드 스튜디오에서 18일 만에 《프레즌스》를 만들었다. 건반을 거의 걷어 낸 거친 기타 중심의 앨범으로, 페이지는 녹음 막바지의 긴 작업 한 번으로 기타를 수없이 겹쳐 녹음했다. 불확실한 시기의 긴장이 그대로 소리에 배었고, 1976년 가을에는 공연 영화 《더 송 리메인즈 더 세임》이 개봉했다.

♪캐시미르 (Kashmir)1975실황 Led Zeppelin · 2007 런던 O2 아레나

모로코 사막 길에서 얻은 플랜트의 가사와 페이지의 변칙 조율이 만나 《피지컬 그래피티》의 정점이 됐다. 2007년 O2 공연에서도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 페이지는 기타 줄을 낮은 쪽부터 레·라·레·솔·라·레로 바꿔 맞추는 변칙 조율(DADGAD)을 썼다. 줄을 누르지 않은 채 울리는 음이 계속 바닥에 깔려 몽롱한 울림이 생긴다.
  • 기타 리프는 세 박 단위로 돌아가는데 본햄의 드럼은 네 박으로 꾸준히 걷는다. 두 주기가 엇갈렸다 맞물리며 앞으로 계속 밀려가는 듯한 긴장이 생긴다.
  • 후렴 대목의 현악과 관악은 존스가 편곡해 세션 연주자들과 녹음했다. 기타 리프를 따라 오르내리는 현악선을 따로 들어 볼 것.
  • 본햄의 드럼에는 소리를 살짝 비틀어 출렁이게 하는 효과(페이저)가 걸린 것처럼 들린다. 8분 반 동안 템포가 거의 변하지 않는데도 지루하지 않은 이유가 이런 질감의 변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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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스 라스트 스탠드 (Achilles Last Stand)1976실황 Led Zeppelin · 1977 로스앤젤레스

투어가 막히고 앞날이 불확실하던 1975년 말, 뮌헨에서 18일 만에 만든 《프레즌스》의 첫 곡이다. 페이지는 이 곡을 자신의 가장 자랑스러운 작업 가운데 하나로 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페이지는 녹음 막바지의 긴 작업 한 번으로 기타를 여러 겹 덧입혀 녹음(오버더빙)했다. 그는 이를 기타로 짠 오케스트라라고 불렀다. 좌우 채널에서 서로 다른 기타 선율이 겹치는 대목을 찾아 들어 볼 것.
  • 본햄은 말이 질주하듯 같은 리듬을 10분 넘게 몰아친다. 쉬지 않는 탐과 심벌이 곡 전체의 추진력이다.
  • 존스는 줄이 여덟 개 달린 8현 베이스를 써서 베이스 소리에 금속성 겹울림을 더했다. 저음 아래 반짝이는 윗음에 귀를 기울이면 들린다.
  • 건반이 거의 빠진 기타·베이스·드럼·목소리만의 편성이다. 같은 앨범의 다른 곡들과 함께 들으면 밴드가 가장 날것에 가까웠던 시기의 소리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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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무너지는 것들 · 1977–1980

(기록) 1977년 미국 투어는 4월 미시간주 폰티액 실버돔에서 7만 6천여 명을 모으며 단일 공연 관객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투어는 길고 무거웠다. 7월 오클랜드 공연 뒤 본햄과 그랜트, 투어 매니저 리처드 콜, 경호원 존 빈던이 기획자 빌 그레이엄의 직원을 폭행한 혐의로 체포됐고, 이들은 혐의를 다투지 않는 답변 끝에 집행유예와 벌금을 받았다. (중단) 며칠 뒤 플랜트의 어린 아들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왔고, 남은 공연은 모두 취소됐다. 밴드는 1년 넘게 멈춰 섰다. (스톡홀름) 1978년 말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아바의 폴라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인 스루 디 아웃 도어》(1979)는 존스의 신시사이저가 전면에 나선 앨범이었다. 존스는 자신과 플랜트가 먼저 스튜디오에 나와 곡의 틀을 잡는 날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앨범은 미국 1위에 올랐고, 8월 영국 넵워스의 두 차례 대형 공연으로 밴드는 귀환을 알렸다. (본햄) 1980년 9월 24일, 북미 투어 리허설을 앞두고 본햄은 낮부터 보드카를 많이 마셨고, 다음 날 오후 윈저 근교의 페이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검시 결과는 사고사였다. 서른두 살이었다. (성명) 12월 4일 남은 세 사람은 소중한 친구를 잃은 지금 이전처럼 계속할 수 없다는 짧은 성명을 냈다. 대체 드러머는 고려되지 않았다. 레드 제플린은 그렇게 끝났다.

VII. 세 사람의 길 · 1981–2012

(코다) 1982년 미발표 녹음을 모은 《코다》가 나왔다. 세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걸었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 필라델피아 무대에는 필 콜린스와 토니 톰슨을 드러머로 세워 잠시 함께 섰지만, 준비가 부족했다며 멤버들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다. 1988년 애틀랜틱 레코드 40주년 공연에서는 본햄의 아들 제이슨이 드럼을 맡았다. (재해석) 1994년 페이지와 플랜트는 MTV 공연 《노 쿼터》에서 이집트·모로코 연주자들과 옛 곡을 새로 짰다. 1998년 두 사람의 앨범 《워킹 인투 클락스데일》은 픽시스와 너바나의 녹음으로 알려진 스티브 앨비니가 녹음했다. (협업) 존스는 R.E.M.의 《Automatic for the People》(1992) 현악 편곡을 맡았고, 2009년 너바나 출신 데이브 그롤, 조시 홈과 뎀 크루키드 벌처스를 결성했다. 플랜트는 블루그래스 가수 앨리슨 크라우스와 낸 《레이징 샌드》로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페이지는 다큐멘터리 《잇 마이트 겟 라우드》(2008)에서 U2의 디 엣지,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잭 화이트와 기타를 두고 대화했다. (O2) 2007년 12월 10일 런던 O2 아레나에서 애틀랜틱 창립자 아흐메트 에르테군 추모 공연이 열렸고, 세 사람과 제이슨 본햄이 두 시간 넘게 연주했다. 표 신청이 약 2천만 건 몰렸다고 전해진다. 이 공연은 2012년 영화 《셀러브레이션 데이》로 나왔고, 같은 해 세 사람은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받았다. 이후 정식 재결합은 없었다.

덜 알려진 이야기

1970년 2월 덴마크 코펜하겐 공연을 앞두고, 비행선 발명가 페르디난트 폰 체펠린의 후손 에바 폰 체펠린 백작 부인이 가문의 이름을 허락 없이 쓴다며 법적 조치를 경고했다. 데뷔 앨범 표지가 체펠린 비행선 힌덴부르크호의 폭발 사진이었던 것도 그를 자극했다고 전해진다. 밴드는 그날 밤 '더 놉스(The Nobs)'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섰다.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났기에 연대기에는 각주처럼만 남았다. 「Whole Lotta Love」는 1969년 영국 애틀랜틱이 싱글 발매를 준비했다가 그랜트의 반대로 거둬들였다. 레드 제플린의 곡이 영국에서 정식 싱글로 나온 것은 밴드가 끝나고 한참 뒤인 1997년, 바로 이 곡의 CD 싱글이 처음이었다. 앨범만 내는 밴드라는 신화가 워낙 굳어 이 늦은 예외는 잘 언급되지 않는다. 1973년 말 존스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탈퇴를 고민했고, 윈체스터 대성당 성가대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농담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랜트의 만류로 남은 그는 이듬해 《피지컬 그래피티》에서 「Trampled Under Foot」의 건반과 「Kashmir」의 편곡으로 존재감을 키웠다. 조용한 멤버의 위기였기에 당시 바깥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Stairway to Heaven」 솔로에 쓰인 텔레캐스터는 페이지가 직접 몸체에 용 그림을 그려 넣은 기타였다. 페이지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투어로 집을 비운 사이 친구가 선물로 칠을 새로 했는데 그 과정에서 배선이 망가져 그 소리를 다시 낼 수 없게 됐다. 2019년 무렵 페이지가 이 기타를 복각한 펜더 모델을 내놓으며 이 사연이 다시 알려졌다.

용어 노트 📚🔎

리프

(록에서) 곡 내내 되풀이되며 곡의 얼굴 노릇을 하는 짧은 악구다. 몇 음만 들어도 무슨 곡인지 알아챌 수 있다면 그것이 리프의 힘이다. 「Whole Lotta Love」나 「Kashmir」는 리프 하나가 곡 전체를 끌고 간다. 운동회에서 반마다 정해 둔 짧은 응원 박수를 계속 되풀이하면 멀리서 그 소리만 들어도 어느 반인지 아는 것과 같다.

세션 뮤지션

(말뜻) 세션(session)은 라틴어 sessio, 즉 앉아 있음에서 왔다. 정해진 시간 동안 모여 앉아 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록에서) 특정 밴드에 속하지 않고 녹음실에 불려 가 남의 녹음에 연주해 주는 직업 음악가다. 처음 보는 악보를 바로 읽고, 처음 듣는 곡도 몇 번 만에 녹음해 내야 한다. 페이지와 존스는 레드 제플린 이전에 런던에서 손꼽히는 세션 뮤지션이었다. 피아노를 잘 쳐서 합창 대회 때마다 여러 반에 반주자로 불려 다니는 친구를 떠올리면 된다. (다른 데서는) 세션은 회의나 강좌의 한 차례를 뜻하기도 하고, 컴퓨터에서는 접속해 있는 동안을 가리킨다.

오버더빙

(말뜻) over(위에)와 dub(소리를 입히다)를 합친 말이다. (록에서) 이미 녹음한 소리 위에 새 소리를 덧입혀 녹음하는 방법이다. 기타 하나를 녹음한 뒤 그것을 들으며 두 번째, 세 번째 기타를 얹으면 한 사람이 여러 명처럼 연주할 수 있다. 페이지는 「Achilles Last Stand」에서 기타를 여러 겹 쌓아 오케스트라처럼 만들었다. 미술 시간에 투명 셀로판지에 그림을 한 장씩 그려 겹치면 하나의 큰 그림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더빙은 영화나 만화에서 외국어 대사를 우리말 목소리로 바꿔 입히는 일을 가리킨다.

변칙 조율

(말뜻) 변칙(變則)은 바뀐(變) 규칙(則)이라는 뜻이다. (록에서) 기타 여섯 줄의 표준 음높이(낮은 쪽부터 미·라·레·솔·시·미)를 다르게 바꿔 맞추는 것이다. 같은 손가락 모양으로 전혀 다른 화음이 나고, 누르지 않은 줄이 울리며 독특한 울림이 생긴다. 「Kashmir」의 레·라·레·솔·라·레 조율(DADGAD)이 대표적이다. 게임에서 조작 키 배치를 바꾸면 익숙한 손놀림이 전혀 다른 기술로 나오는 것과 같다.

테레민

(말뜻) 1920년 무렵 이 악기를 만든 러시아 발명가 레프 테르멘의 서양식 이름 레온 테레민에서 따왔다. (록에서) 몸에 손을 대지 않고 두 개의 안테나 근처에서 손을 움직여 음높이와 크기를 바꾸는 전자 악기다. 귀신 소리처럼 미끄러지는 음을 낼 수 있어서 페이지는 「Whole Lotta Love」 중간부와 공연에서 이 악기를 썼다. 손을 가까이 대기만 해도 켜지는 수도꼭지나 자동문처럼, 손과 기계 사이의 거리만으로 소리가 바뀐다.

마스터 테이프

(록에서) 녹음과 믹싱을 모두 끝낸 최종 원본 녹음이다. 음반은 이 원본을 바탕으로 찍어 내므로, 마스터를 가진 쪽이 언제 어떻게 음반을 낼지 결정할 힘을 쥔다. 레드 제플린은 데뷔 앨범을 자기 돈으로 녹음해 마스터를 쥔 채 레이블과 계약했다. 반 문집의 원고 파일을 가진 사람이 몇 부를 인쇄할지, 표지를 어떻게 할지 정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마스터는 어떤 기술을 완전히 익힌 사람을 뜻하기도 하고, 대학원에서는 석사 학위를 가리킨다.

선급금

(말뜻) 선급금(先給金)은 먼저(先) 주는(給) 돈(金)이라는 뜻이다. (록에서) 음반사가 계약할 때 음악가에게 미리 건네는 돈이다. 공짜가 아니라 나중에 음반이 팔려 생기는 몫(로열티)에서 조금씩 깎아 나간다. 그래서 선급금이 크다는 것은 음반사가 그만큼 많이 팔릴 거라 믿는다는 뜻이다. 다음 달 용돈을 미리 당겨 받으면 다음 달에는 그만큼 덜 받는 것과 같은 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