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areads.musicRock

Joy Division

조이 디비전 (1976–1980)

그의 노래는 언제나 어딘가 먼 곳,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영국 맨체스터 성장섹스 피스톨스 공연이언 커티스2. 결성영국 맨체스터 결성워소에서 조이디비전으로팩토리 레코드3. 정점언노운 플레저스마틴 해닛 프로듀싱피터 새빌 커버4. 간질무대 위 발작간질 진단클로저 녹음5. 죽음미국 투어 전야클로저 유작 발매6. 유산뉴 오더로 재편포스트펑크 원형언노운 플레저스 티셔츠디비전1976–1980차가운 소리와 저음으로 포스트펑크를 연 맨체스…
무대가 된 도시 🧭🗺️
N영국올드트래퍼드1956샐퍼드1956–1976매클즈필드1956–1980맨체스터1976–1980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버나드 섬너

    기타와 신시사이저를 맡았고 이언 커티스 사후 뉴 오더를 이끌었다.

  • 멤버피터 훅

    선율을 노래하듯 연주하는 독특한 베이스로 밴드의 소리를 규정했다.

  • 멤버스티븐 모리스

    정교하고 기계적인 드럼 연주로 포스트펑크 리듬의 전형을 세웠다.

  • 가족데버러 커티스

    이언의 아내로, 둘의 결혼 생활은 훗날 그녀가 쓴 회고록으로 널리 알려졌다.

  • 영향토니 윌슨

    지역 방송 진행자로 밴드를 가장 먼저 알아보고 팩토리 레코드로 이끌었다.

  • 프로듀서마틴 해닛

    독특한 레코딩 기법으로 《언노운 플레저스》와 《클로저》의 차갑고 공간감 있는 소리를 만들었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맨체스터 변두리의 소년들 · 1956–1976

(출생) 1956년 7월, 영국 잉글랜드 북서부의 올드트래퍼드에서 이언 커티스가 태어났다. 경찰관이던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여동생과 함께 자랐고, 가족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체셔주의 소도시 매클즈필드로 이사했다. 어린 이언은 조용하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데이비드 보위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반을 즐겨 들었고 도스토옙스키와 니체, J. G. 발라드의 소설을 끼고 다녔다. (기타) 버나드 섬너는 맨체스터 인근 샐퍼드의 노동계급 거리에서 태어나 조부모 손에 자랐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는 그가 성인이 되기 전에 재개발로 완전히 철거됐고, 이 상실감은 훗날 그의 음악에 짙은 그늘로 남았다고 전해진다. (베이스) 피터 훅 역시 샐퍼드 출신으로, 열한 살 무렵 학교에서 섬너를 만나 평생 가는 우정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음악을 나눠 들었고, 훗날 밴드의 핵심이 될 관계를 일찌감치 다졌다. (드럼) 스티븐 모리스는 매클즈필드에서 자라 이언 커티스와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당시에는 서로 깊이 알지 못했다. 말수가 적고 꼼꼼한 성격의 그는 훗날 밴드에서 누구보다 정교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드러머가 된다. (펑크) 1976년 6월 맨체스터의 레서 프리 트레이드 홀에서 열린 섹스 피스톨스의 공연은 섬너와 훅의 삶을 바꿔놓았다. 객석은 겨우 수십 명이었지만 그 자리에는 훗날 더 스미스를 만들 모리세이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 한 번의 공연이 맨체스터 음악 지형 전체를 흔든 순간이었다. 공연을 본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밴드를 결성하기로 결심했다.

II. 바르샤바에서 조이 디비전으로 · 1976–1978

(결성) 1976년 가을, 섬너와 훅은 기타와 베이스를 손에 쥐고 이름 없이 첫 리허설을 시작했다. 드러머는 몇 차례 바뀌었고, 밴드 이름도 곧 데이비드 보위의 곡에서 따와 '워소'로 바뀌었다. (보컬) 보컬을 구하던 두 사람 앞에 나타난 사람은 이언 커티스였다. 그는 이미 섹스 피스톨스 공연장에서 안면을 튼 사이였고, 노래를 불러본 적은 거의 없었지만 낮고 울리는 목소리와 무대를 장악하는 태도로 단숨에 밴드의 중심이 됐다. 1977년 8월, 드러머로 스티븐 모리스가 합류하면서 네 사람의 조합이 완성됐다. (결혼) 이언은 밴드가 자리 잡기 전인 1975년, 열아홉 살에 데버러 우드러프와 결혼했다. 둘 사이에는 1979년 딸이 태어났다. 낮에는 매클즈필드 고용안정소에서 장애인들의 재취업을 돕는 공무원으로 일했는데, 이 업무에서 간질을 앓는 이들을 만난 경험이 훗날 그의 노랫말에 스며들게 된다. (개명) 1978년 초, '워소'라는 이름을 쓰는 다른 밴드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바꿔야 했다. 멤버들은 제2차 세계대전 강제수용소의 여성 수용동을 가리키던 은어에서 따와 '조이 디비전'이라는 이름을 택했다. 음울하고 도발적인 이름과 첫 EP 표지 그림 때문에 파시즘을 연상시킨다는 오해를 샀지만, 멤버들은 정치색을 강하게 부인했다.

♪노 러브 로스트 (No Love Lost)1978실황 Joy Division · 1979 Bowdon Vale Youth Club

밴드가 이름을 바꾸기 직전 녹음한 초기작으로, 아직 거친 펑크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 거친 로파이 녹음 속에서도 훅의 베이스가 멜로디를 이끄는 초기 스타일이 드러난다.
  • 커티스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저음 창법으로, 후반부에 가사를 낭독하듯 읊조리는 구간이 있다.
  • 모리스의 드럼은 거칠고 즉흥적이어서, 이후 해닛의 손을 거친 정교한 소리와 뚜렷이 대비된다.
  • 거칠고 빠른 연주에 초기 펑크의 영향이 가장 직접적으로 남아 있는 녹음이다.
YouTube에서 듣기 ↗

III. 언노운 플레저스와 팩토리 · 1978–1979

(매니저) 1978년, 공연에서 밴드를 눈여겨본 로브 그레튼이 매니저가 됐고, 텔레비전 진행자이자 음악 애호가였던 토니 윌슨은 그해 9월 그라나다 TV 프로그램에서 조이 디비전을 소개했다. 밴드는 이어 윌슨이 세운 독립 레이블 팩토리 레코드와 계약했다. (프로듀서) 음반 제작을 맡은 사람은 괴짜로 소문난 프로듀서 마틴 해닛이었다. 그는 밴드가 라이브에서 들려주던 거칠고 힘센 소리를 걷어내고, 드럼을 한 조각씩 따로 녹음해 차갑고 텅 빈 울림을 입혔다. 멤버들은 처음엔 자신들의 소리가 낯설게 바뀐 것에 불만을 터뜨렸다고 전해지지만, 그 결과물은 당시 어디에도 없던 소리가 됐다. (앨범) 1979년 6월 발매된 《언노운 플레저스》는 평론가들의 즉각적인 찬사를 받았다. 디자이너 피터 새빌이 표지에 쓴 것은 밴드 이름도, 멤버 사진도 아닌 전파 망원경이 포착한 펄서의 신호 파형이었다. 음악만큼이나 익명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는 이후 대중문화 전반에서 가장 많이 복제되는 앨범 표지 중 하나가 된다. (계약) 팩토리 레코드는 멤버들과 공식 계약서 없이 구두 약속과 악수로 일했다. 레이블의 이런 방식은 밴드에 창작의 자유를 줬지만, 동시에 수익 배분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남겼다. 그럼에도 조이 디비전은 당장의 돈보다 음악적 통제권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알려져 있다.

♪그녀가 잃어버린 통제력 (She's Lost Control)1979실황 Joy Division · Bowdon Vale Youth Club

이언이 고용안정소에서 만난 간질 환자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고 알려진 곡으로, 훗날 자신의 진단을 예고하듯 들린다.

  • 기계적으로 똑딱이는 타악기음이 곡 전체를 지배하며, 발작을 연상시키는 반복적 리듬을 만든다.
  • 훅의 베이스는 멜로디를 노래하듯 높은 음역에서 움직이며, 기타보다 더 선율적인 역할을 한다.
  • 커티스의 목소리는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낮고 단조로운 어조로, 노래 속 인물의 고통을 관찰자처럼 전한다.
  • 곡 후반, 신시사이저에 가까운 처리된 기타음이 배경에 스며들며 서늘한 공간감을 더한다.
YouTube에서 듣기 ↗
♪앨범 《언노운 플레저스》 (Unknown Pleasures)1979공식 MV 「Disorder」 — Joy Division

마틴 해닛의 차가운 프로듀싱과 피터 새빌의 펄서 표지가 밴드의 정체성을 단번에 완성시킨 데뷔작이다.

  • 첫 곡 「디스오더」부터 해닛 특유의 공간감 있는 드럼 소리가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규정한다.
  • 보컬은 종종 다른 악기보다 작게 섞여, 가사보다 목소리의 질감과 공간 자체를 듣게 만든다.
  • 곡 사이사이 긴 침묵과 여백이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 들을 때 하나의 흐름으로 다가온다.
  • 표지의 펄서 그래프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설명 없이 던져진 이미지지만, 들을수록 더 어울리게 느껴진다는 평이 많다.
YouTube에서 듣기 ↗

IV. 발작과 클로저 · 1979–1980

(간질) 1978년 12월 말 이언은 처음으로 큰 발작을 일으켰고, 이듬해 1월 간질 진단을 받았다. 무대 위에서 조명과 음악, 스트로보 효과에 반응해 갑작스러운 발작을 일으키는 일이 잦아졌고, 그의 격렬하고 경직된 춤은 실제 발작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닮아갔다. 약물 치료는 발작을 완전히 막지 못했고 심한 피로와 감정 기복을 불러왔다. (투어) 밴드는 영국과 유럽 곳곳을 쉼 없이 돌았다. 잦은 공연과 이동은 이언의 건강을 더 갉아먹었지만, 동시에 밴드의 명성은 빠르게 커졌다. 벨기에 저널리스트 아니크 오노레와 가까워지면서 그의 결혼 생활은 점점 흔들렸고, 이 시기의 갈등은 훗날 데버러 커티스가 쓴 회고록 『터칭 프롬 어 디스턴스』로 알려지게 된다. (싱글) 1979년 말 녹음한 「사랑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신시사이저를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소리였다. 가정과 결혼을 둘러싼 무거운 마음이 가사에 짙게 배어 있었고, 이언은 녹음 당시 이 노래를 두고 괴로워했다고 전해진다. (클로저) 1980년 3월, 밴드는 런던의 한 스튜디오에서 두 번째 정규 앨범 《클로저》를 녹음했다. 전작보다 한층 차분하고 신시사이저가 두드러진 소리였고, 가사는 죽음과 소멸, 탈진을 거듭 맴돌았다. 멤버들은 녹음 당시 이것이 이별이나 상실에 관한 노래라고만 여겼을 뿐, 뒤에 올 일을 짐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랑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Love Will Tear Us Apart)1980공식 MV — Joy Division

흔들리던 결혼 생활의 무게가 짙게 밴 곡으로, 밴드의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가 됐다.

  • 기타 리프로 문을 연 뒤 이어지는 신시사이저 선율이 곡 전체를 이끄는 중심 멜로디가 된다.
  • 훅의 베이스는 후렴에서 높은 음으로 올라가며 거의 노래하듯 움직여, 보컬과 대화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 커티스의 목소리는 체념한 듯 담담하지만, 후렴을 반복할수록 미세하게 떨리는 느낌을 준다.
  • 3분 남짓한 짧은 길이 안에 절제된 구성을 담아, 이후 수많은 밴드가 따라 부르는 대표곡이 됐다.
YouTube에서 듣기 ↗
♪이졸레이션 (Isolation)1980애니메이션 영상 — Joy Division

《클로저》 수록곡으로, 기타보다 신시사이저가 전면에 나서며 밴드의 마지막 변화를 보여준다.

  • 신시사이저와 드럼머신에 가까운 비트가 전면에 나서며, 기존의 기타 중심 사운드에서 크게 벗어난다.
  • 커티스의 목소리는 유독 가까이 녹음돼, 마치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한 거리감을 만든다.
  • 후렴 뒤 짧게 반복되는 신스 리프가 곡의 제목처럼 고립된 느낌을 강조한다.
YouTube에서 듣기 ↗
♪앨범 《클로저》 (Closer)1980

이언의 죽음 두 달 뒤 발매된 유작으로, 묘지 사진 표지가 그의 죽음과 겹쳐 더 비통하게 읽혔다.

  • 첫 곡 「애트로시티 익시비션」은 부족 음악을 연상시키는 타악기 연주로 시작해 긴장감을 미리 깔아놓는다.
  • 전작보다 신시사이저 비중이 커졌고, 해닛은 더 넓고 차가운 잔향을 입혀 공간을 한층 넓게 들리게 했다.
  • 표지 사진 속 조각상의 적막한 이미지처럼, 음악 전체가 느리고 무거운 템포로 흐른다.
  • 마지막 곡 「디케이드」로 넘어가기까지, 앨범은 하나의 장송곡처럼 설계돼 있다는 평을 받는다.

V. 1980년 5월 · 1980

(투어) 5월 중순, 밴드는 첫 미국 투어를 앞두고 있었다. 이언과 데버러의 결혼 생활은 이미 무너진 상태였고, 그는 건강과 결혼, 밴드 사이에서 극심한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마지막 밤) 5월 18일 새벽, 매클즈필드의 집에 홀로 있던 이언은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의 영화 「슈트로첵」을 보고 이기 팝의 음반 《디 이디엇》을 들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스물세 살이었다. (충격) 남은 세 멤버는 깊은 충격 속에서 장례를 치렀다. 《클로저》는 그의 죽음 이후인 7월에 발매됐는데, 표지에 쓰인 이탈리아 어느 가족 묘지의 사진은 마치 그의 죽음을 예견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며 더 짙은 비통함을 남겼다. (결정) 세 멤버는 이언 없이 조이 디비전이라는 이름을 계속 쓰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의 목소리와 존재가 밴드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는 판단이었다.

♪디케이드 (Decades)1980실황 Peter Hook & The Light · 2013 예카테린부르크

《클로저》의 마지막 곡으로, 이언의 죽음 이후에는 의도치 않은 작별 인사처럼 들리게 됐다.

  • 느린 신시사이저 화음으로 시작해, 앨범의 다른 어떤 곡보다 장송곡에 가까운 분위기를 낸다.
  • 모리스의 드럼은 거의 행진곡처럼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며 무겁게 걸어간다.
  • 커티스의 목소리는 체념한 듯 낮게 가라앉아, 이 노래가 《클로저》의 마지막 곡이라는 사실과 겹쳐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YouTube에서 듣기 ↗

VI. 뉴 오더, 그리고 남은 울림 · 1980–2026

(재편) 섬너, 훅, 모리스는 슬픔을 추스른 뒤 새 밴드 뉴 오더를 결성했다. 모리스의 연인이던 질리언 길버트가 키보드로 합류하며 네 명 체제가 다시 갖춰졌고, 밴드는 신시사이저와 댄스 리듬을 받아들이며 전혀 다른 소리로 나아갔다. (영향) 조이 디비전이 남긴 어둡고 절제된 소리는 이후 포스트펑크라 불리는 흐름의 원형이 됐다. 더 큐어를 비롯해 수많은 밴드가 이들의 공백감 있는 편곡과 저음 보컬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유산) 《언노운 플레저스》 표지의 펄서 이미지는 음악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알려진 상징이 됐고, 티셔츠와 포스터로 끝없이 복제됐다. 네 사람이 1970년대 말 맨체스터에서 만든 음악은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세대의 밴드들에게 참조점으로 남아 있다.

덜 알려진 이야기

'조이 디비전'이라는 이름은 사실 널리 알려진 것보다 훨씬 어두운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카롤 체틴스키의 소설 『인형의 집』에서 나치 강제수용소 안에 있던 여성 강제 매춘 수용동을 가리키던 용어였다. 많은 사람이 이 이름을 그저 도발적인 조어로만 기억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구체적인 역사적 참조였다. 《언노운 플레저스》 표지에 쓰인 그 유명한 펄서 신호 그래프는 『케임브리지 천문학 백과사전』에서 가져온 이미지였다. 드러머 스티븐 모리스가 고른 이 도판을 디자이너 피터 새빌이 흑백을 뒤집어 표지에 썼다는 사실은 훗날 천문학자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나 회자되는 트리비아로 남았다 — 음악 팬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마틴 해닛은 《언노운 플레저스》를 녹음할 때 스티븐 모리스의 드럼 세트를 한 조각씩 따로 분리해 녹음했다고 전해진다. 심벌과 스네어, 탐을 각기 다른 시점에 따로 연주하게 한 뒤 이를 조합하는 방식이었는데, 멤버들은 이 과정이 지나치게 기계적이어서 처음엔 자신들의 라이브 사운드와 동떨어졌다고 느꼈다고 회고했다. 이언 커티스는 록스타가 되기 전, 매클즈필드 고용안정소에서 장애인들의 취업을 돕는 공무원으로 일했다. 특히 간질을 앓는 이들의 재취업을 상담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이는 그가 스스로 간질 진단을 받기 전의 일이었다. 요절한 보컬이라는 신화에 가려 잘 조명되지 않지만, 전기 작가들은 이 시기의 경험이 그의 노랫말에 깊이 스며들었다고 본다.

용어 노트 📚🔎

포스트펑크

(록에서) 1970년대 말, 펑크가 보여준 거친 에너지는 이어받되 더 실험적이고 어두운 분위기, 신시사이저와 비정형적인 리듬을 받아들인 음악 흐름을 가리킨다. 학교 밴드부에서 처음엔 단순한 가락만 연주하다가, 점점 낯선 화음과 이상한 박자를 실험해보는 것과 비슷하다.

게이트 리버브

(말뜻) 게이트(gate)는 문이라는 뜻으로, 소리가 일정 크기 아래로 작아지면 문을 닫듯 뚝 끊어버리는 장치를 가리킨다. 리버브(reverb)는 소리가 공간에 부딪혀 울리는 잔향을 뜻한다. (록에서) 드럼 소리에 풍부한 울림을 더한 뒤, 그 울림이 자연스럽게 잦아들기 전에 뚝 끊어버려서 독특하게 '쿵'하고 끊기는 소리를 만드는 녹음 기법이다. 체육관에서 손뼉을 쳤을 때 울리는 소리를 녹음해두고, 그 소리를 중간에 갑자기 잘라버린다고 상상하면 비슷하다.

베이스라인

(록에서) 베이스 기타가 연주하는 멜로디 선을 가리킨다. 보통은 리듬을 받쳐주는 역할에 머물지만, 조이 디비전의 피터 훅처럼 베이스가 노래하듯 선율을 이끄는 경우도 있다. 합창에서 보통 저음 파트가 화음만 받쳐주지만, 가끔 저음 파트가 멜로디를 직접 부르는 순간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신시사이저

(말뜻) '합성하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synthesize에서 왔다. 전자회로로 여러 소리를 합성해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록에서) 건반을 눌러 전자적으로 다양한 음색을 만들어내는 악기로, 기타나 드럼으로는 낼 수 없는 차갑고 인공적인 소리를 낸다. 조이 디비전은 후기로 갈수록 이 악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레이블

(말뜻) 영어 label은 원래 '상표, 꼬리표'라는 뜻이다. 음반에 제작사 이름이 꼬리표처럼 붙어 있어 이렇게 부른다. (록에서) 음악가의 음반을 제작하고 배급하는 회사를 가리킨다. 조이 디비전이 속했던 팩토리 레코드처럼, 큰 자본 없이 소규모로 운영되는 레이블을 흔히 '인디 레이블'이라 부른다. (다른 데서는) 레이블은 옷이나 상품에 붙는 상표를 가리키는 말로도 흔히 쓰인다.

B면

(록에서) 과거 LP나 싱글 음반은 양면으로 돼 있어, 앞면(A면)에는 주력으로 미는 곡을, 뒷면(B면)에는 덜 알려진 곡을 담았다. 오늘날 스트리밍 시대에는 사라진 구분이지만, 당시엔 B면에 숨은 명곡이 실리는 경우도 많았다. 책의 앞표지와 뒤표지처럼, 겉으로 내세우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나뉘어 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