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eetwood Mac
다섯 사람이 사랑하고 헤어지는 소리를, 전 세계가 함께 들었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피터 그린
창단 기타리스트로 밴드 초기 블루스 사운드를 설계했다.
- 멤버믹 플리트우드
드러머이자 밴드의 이름 절반을 내준 리더.
- 멤버존 매큐
베이시스트이자 밴드 이름의 나머지 절반.
- 멤버크리스틴 매큐
건반과 노래로 밴드에 부드러운 선율을 더한 작곡가.
- 멤버스티비 닉스
1975년 합류해 밴드를 미국적 사운드로 바꾼 보컬리스트.
- 멤버린지 버킹엄
기타와 프로듀싱을 맡아 밴드의 황금기를 설계한 멤버.
I. 런던의 블루스보이즈 · 1967
(결성) 1967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됐다. 기타리스트 피터 그린이 존 메이올의 블루스브레이커스를 떠나며 자신의 밴드를 꾸릴 때, 드러머 믹 플리트우드와 베이시스트 존 매큐를 끌어들이려 했다. 매큐가 선뜻 응하지 않자 그린은 아예 밴드 이름을 '플리트우드 맥'이라 지어 두 사람의 성을 걸었다 — 이름이 먼저, 사람이 나중에 채워진 셈이었다. (배경) 플리트우드는 1947년 잉글랜드 콘월 레드루스에서 태어나 유랑하듯 자랐고, 매큐는 1945년 런던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재즈와 블루스 베이스에 끌렸다. 둘 다 메이올의 밴드에서 그린과 함께 연주하며 손발을 맞췄다. 여기에 엘모어 제임스의 슬라이드 기타(병이나 금속관을 현 위에 밀어 음을 미끄러지듯 잇는 주법)에 빠진 열아홉 살의 제러미 스펜서가 합류해 네 사람의 틀이 잡혔다. (이름) 매큐는 결국 메이올 밴드의 안정된 수입을 포기하고 새 밴드에 합류했고, 그린이 먼저 내건 이름은 그대로 굳어졌다. 첫 공연은 그해 8월 윈저의 재즈·블루스 페스티벌이었고(베이스는 매큐가 합류하기 전이라 보브 브러닝이 쳤다), 미국 시카고 블루스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지향) 이들은 처음부터 영국 백인 청년들이 미국 흑인 블루스를 베끼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는 선배들의 문법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 했다. 그린은 비비 킹과 로버트 존슨을 숭배했고, 스펜서는 엘모어 제임스 흉내를 거의 전업으로 삼았다. 이 존경과 모방 사이의 긴장이 밴드의 첫 색깔을 만들었다.
II. 앨버트로스와 그린의 몰락 · 1968–1970
(데뷔) 1968년 데뷔 앨범 《플리트우드 맥》이 영국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시작이 순조로웠다. 곧이어 두 번째 기타리스트 대니 커원이 합류해 세 기타 편성이 완성됐고, 그린·스펜서·커원 세 사람의 블루스가 서로 다른 색깔로 겹쳤다. (히트) 그해 말 발표한 인스트루멘털 «앨버트로스»가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가사 없이 느리게 흐르는 기타 멜로디 한 곡이 블루스 밴드를 팝 차트 정상에 세운 사건이었다. 그린은 이 성공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밴드가 상업적으로 변질될까 두려워했다. (크리스틴) 같은 해 세션 보컬리스트 크리스틴 퍼펙트가 매큐와 결혼했다. 그녀는 1970년 정식으로 밴드에 합류해 건반과 노래를 더하며, 거친 블루스에 부드러운 선율을 섞어 넣었다. (붕괴) 그린은 1970년 환각제(LSD)를 쓴 뒤 심한 불안과 망상에 시달리기 시작해 그해 밴드를 떠났다. 그는 돈과 소유에 대한 혐오를 토로하며 재산을 나눠주려 했고, 훗날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그가 쓰던 1959년산 깁슨 레스폴 기타는 '그리니'라는 이름으로 전설이 됐고, 수십 년 뒤 메탈리카의 커크 해밋이 사들여 지금도 무대에서 쓰고 있다.
성공을 두려워한 그린이 만든 가장 차분한 곡으로, 밴드를 블루스 클럽에서 팝 차트 1위로 데려갔다.
- 도입부의 슬라이드 기타는 마치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느린 글리산도로 곡 전체의 분위기를 깐다.
- 드럼은 박자를 정확히 맞추기보다 파도 소리를 흉내 내듯 철사 솔(브러시)로 문질러 연주됐다고 알려져 있다.
- 가사 없는 3분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같은 멜로디가 조금씩 다른 톤으로 반복되며 긴장이 아니라 이완을 만든다.
- 기타를 두 대 이상 겹쳐 녹음해(오버더빙) 왼쪽과 오른쪽 스피커에서 서로 다른 멜로디가 흘러나오게 배치했다.
그린이 상업적 성공과 신앙 사이에서 흔들리던 시기에 쓴 곡으로, 두 부분으로 나뉜 구성 자체가 그의 혼란을 보여준다.
- 1부는 짧고 거친 리프(짧게 반복되는 기타 멜로디)로 시작해 쉼 없이 몰아치고, 2부는 돌연 조용한 어쿠스틱 기타와 플루트 선율로 바뀐다.
- 보컬은 거의 내뱉듯 짧게 끊어 부르는데, 그린이 자기 가사를 쑥스러워해 일부러 무심하게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후반 2부의 스페인풍 기타 선율은 라이브에서 거의 연주되지 않아, 녹음 버전에서만 들을 수 있는 그린의 또 다른 얼굴이다.
III. 뿔뿔이 흩어진 블루스보이즈 · 1971–1974
(탈퇴) 1971년, 스펜서는 미국 투어 도중 로스앤젤레스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며칠 뒤 그는 '신의 자녀들'이라는 종교 단체에 들어가 있었고, 밴드로 돌아오지 않았다. 멤버들은 급히 피터 그린을 불러 남은 공연 몇 차례를 메우게 했다. (커원) 남은 기타리스트 대니 커원이 밴드를 이끌었지만 술에 의존하는 날이 늘었고, 무대 밖에서의 돌발 행동으로 1972년 해고됐다. 빈 자리는 기타리스트 보브 웨스턴과 보컬 데이브 워커가 채웠다. 그보다 앞서 1971년 스펜서의 후임으로 들어온 미국 출신 기타리스트 보브 웰치의 가세로 밴드는 블루스보다 매끄러운 록 사운드로 조금씩 기울었다. (이주) 1974년 초 매니저 클리퍼드 데이비스가 정식 멤버 없이 '플리트우드 맥'이라는 이름만 빌린 가짜 밴드를 투어에 내보내는 사건이 벌어졌고, 실제 멤버들은 소송을 벌여 이름을 되찾았다. 이 소송을 계기로 밴드는 그해 영국을 떠나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새 근거지로 삼았다. 돈과 이름을 둘러싼 이 소동은 밴드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보브 웰치가 가세하며 밴드가 블루스에서 멜로우한 캘리포니아 록으로 옮겨가던 시기를 보여주는 곡.
- 곡 전체를 떠받치는 재즈풍 기타 코드는 블루스 시절의 날카로움 대신 몽롱하고 느슨한 느낌을 낸다.
- 베이스와 드럼이 거의 변화 없이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몸을 흔들게 되는 리듬(그루브)을 만들어, 곡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 웰치의 보컬은 높이 지르지 않고 낮게 읖조리듯 흘러가 이전 밴드의 거친 블루스 보컬과 선명히 대비된다.
· 1975–1977
(합류) 1975년, 캘리포니아 출신 연인 린지 버킹엄과 스티비 닉스가 듀오 앨범 한 장을 내고 해체한 뒤 밴드에 합류했다. 버킹엄은 기타와 프로듀싱을, 닉스는 신비로운 목소리와 작사를 더했고, 두 사람의 가세로 밴드는 영국 블루스 밴드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록 밴드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전환점) 같은 해 발표한 셀프 타이틀 앨범 《플리트우드 맥》이 미국 차트 1위에 올랐다. «리아논», «오버 마이 헤드» 같은 곡들이 라디오를 채웠고, 밴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영국보다 더 큰 성공을 거뒀다. (균열) 그러나 성공과 동시에 다섯 사람의 사생활이 무너졌다. 매큐 부부는 이혼 절차를 밟았고, 버킹엄과 닉스도 연인 관계를 끝냈다고 두 사람 모두 훗날 공식 인터뷰에서 밝혔다. 밴드는 이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스튜디오로 가져갔다. (루머스) 1977년 앨범 《루머스》는 그 파열음을 그대로 녹음한 결과물이었다. 버킹엄이 닉스에게, 크리스틴이 매큐에게 쓴 노래들이 한 앨범에 나란히 실렸고, 전 세계에서 4천만 장 넘게 팔리며 이듬해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다섯 명 모두의 이름으로 작곡 크레딧이 오른 유일한 곡 «더 체인»은, 조각난 여러 세션 테이프를 이어 붙여 만든 곡으로 밴드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줬다.
닉스가 밴드에 가져온 신비로운 캐릭터 송으로, 새 라인업의 첫 상징적인 곡이 됐다.
- 닉스의 보컬은 절마다 조금씩 더 격렬해지며, 라이브에서는 곡 후반 거의 절규에 가깝게 치닫는 변주로 유명하다.
- 크리스틴 매큐의 건반이 곡 바닥에 깔려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버킹엄의 기타는 화려한 솔로 대신 짧게 끼어드는 장식음으로 긴장을 더한다.
- 브리지(곡 중간 전환부)에서 갑자기 코러스 보컬이 겹겹이 쌓이며 마치 여러 목소리가 한 사람을 둘러싸는 듯한 효과를 낸다.
닉스가 버킹엄과의 이별을 겪으며 쓴 곡으로, 《루머스》에서 가장 차분한 자리를 차지한다.
- 단 두 개의 코드만으로 곡 전체를 끌고 가, 멜로디와 보컬의 미묘한 떨림에 모든 관심이 쏠리게 만든다.
- 닉스의 목소리는 크게 내지르는 대신 낮게 가라앉아, 분노의 노래가 아니라 받아들임의 노래처럼 들린다.
- 후렴 뒤에 깔리는 탬버린과 가벼운 퍼커션이 곡을 과하게 무겁게 만들지 않고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유지한다.
다섯 사람의 이별과 감정을 녹음실로 가져온 결과물로, «더 체인»은 유일하게 다섯 멤버 모두의 이름이 작곡자로 오른 곡이다.
- «더 체인»은 서로 다른 세션에서 녹음된 조각들을 이어 붙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들으면, 중반부 갑작스러운 베이스 진입이 왜 그렇게 도드라지는지 이해하게 된다.
- 매큐의 베이스 리프가 후반부에서 혼자 걸어 나오듯 솔로처럼 연주되는 대목은 라이브에서도 늘 가장 큰 환호를 받는 순간이다.
- 앨범 전체에 걸쳐 보컬 하모니가 버킹엄, 닉스, 크리스틴 세 사람의 목소리로 겹겹이 쌓여, 갈등 속에서도 소리는 놀랍도록 조화롭다.
V. 터스크에서 탱고까지 · 1979–1987
(반발) 1979년 버킹엄은 상업적 성공에 대한 반발심으로 더블 앨범(한 번에 두 장 분량을 담아 내는 앨범) 《터스크》를 밀어붙였다. 당시 즐겨 듣던 펑크와 뉴웨이브 — 더 클래시, 토킹 헤즈 같은 밴드들 — 의 거칠고 간소한 질감을 자신의 방식으로 끌어왔고, 레이블의 기대보다 훨씬 적게 팔렸다. (수습) 1982년 《미라지》로 다시 대중적인 노선으로 돌아왔고, 1987년 《탱고 인 더 나이트》에서는 버킹엄이 집에 차린 스튜디오에서 신시사이저(전자 회로로 소리를 합성해 내는 건반 악기)를 적극적으로 끌어다 썼다. «에브리웨어», «리틀 라이즈» 같은 곡들이 다시 밴드를 정상급 차트에 올려놓았다. (탈퇴) 그러나 투어를 앞두고 버킹엄과 나머지 멤버들의 갈등이 커졌고, 그는 투어 계획에 대한 이견을 이유로 밴드를 떠났다. 빌리 버넷과 릭 비토가 투어 기타리스트로 그 자리를 메웠다.
버킹엄이 상업적 성공에 맞서 밀어붙인 실험곡으로, 더블 앨범의 제목곡이다.
- 서던 캘리포니아대 마칭 밴드를 통째로 빈 다저 스타디움에 불러 현장에서 녹음한 금관과 타악기 소리가 곡 전체를 행진곡처럼 만든다.
- 보컬은 정돈된 멜로디 대신 거의 외치듯 반복되는 짧은 구절로만 이루어져, 이전 밴드의 매끄러운 팝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둔다.
- 드럼 소리를 일부러 거칠게 녹음해, 당시 밴드가 듣던 펑크·뉴웨이브의 거친 질감을 흉내 냈다.
버킹엄이 집 스튜디오에서 공들여 쌓은 사운드로, 밴드의 마지막 전성기를 상징하는 곡이다.
- 도입부부터 신시사이저로 쌓은 반짝이는 음색이 전면에 깔려, 1970년대 기타 중심 사운드와는 전혀 다른 질감을 들려준다.
- 크리스틴 매큐의 보컬은 높은 음에서도 힘을 빼고 가볍게 띄우듯 불러, 곡 전체에 들뜬 느낌을 만든다.
- 후렴 보컬 하모니는 여러 트랙을 겹쳐 쌓아(오버더빙) 한 사람이 아니라 합창처럼 들리도록 공들여 배치됐다.
VI. 흩어짐과 1997년의 재회 · 1987–1997
(공백) 버킹엄이 떠난 뒤 1990년 앨범 《비하인드 더 매스크》가 나왔지만 이전만한 반향을 얻지 못했다. 닉스는 솔로 활동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고, 밴드는 느슨하게 유지됐다. (클린턴) 1993년 빌 클린턴이 자신의 대통령 선거운동 주제가로 크리스틴 매큐가 쓴 «돈 스톱»을 쓰면서, 거의 해체 상태였던 다섯 원년 멤버가 그의 취임 축하 공연을 위해 잠시 다시 모였다. 재결합은 하루짜리였지만 가능성을 보여줬다. (재결합) 1997년, 플리트우드, 두 매큐, 닉스, 버킹엄이 완전히 다시 모여 투어를 돌았고 실황 앨범 《더 댄스》를 냈다. 20년 전 루머스를 만들며 서로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같은 무대에 다시 섰다는 사실 자체가 화제였다.
VII. 돌아온 사람들, 떠난 사람들 · 1998–2022
(공백기) 크리스틴 매큐는 1998년 투어 생활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남은 네 사람은 2003년 그녀 없이 앨범 《세이 유 윌》을 냈다. (복귀) 크리스틴은 2014년 투어를 위해 돌아왔고, 2017년에는 버킹엄과 듀오 앨범을 내며 오랜 동료로서의 관계를 이어갔다. (해고) 2018년 밴드는 투어 계획을 둘러싼 이견을 이유로 버킹엄을 내보냈고, 톰 페티의 기타리스트였던 마이크 캠벨과 크라우디드 하우스의 닐 피넌이 그 자리를 메워 투어를 이어갔다. (상실) 2022년 11월, 크리스틴 매큐가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밴드는 이후 공식적인 해체를 선언하지 않았지만 어떤 활동도 재개하지 않았고, 남은 멤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음악을 이어가고 있다.
덜 알려진 이야기
그린의 본래 성은 그린바움이었다. 런던 이스트엔드의 유대인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났고, 음악계에 퍼져 있던 반유대주의적 분위기 때문에 일찍부터 성을 줄여 썼다고 전해진다. 밴드 이름 '플리트우드 맥'은 밴드가 생기기 전에 이미 존재했다. 1967년, 그린은 존 메이올이 준 녹음 시간을 이용해 플리트우드와 매큐와 함께 인스트루멘털을 녹음했는데, 그 곡의 제목이 그대로 «플리트우드 맥»이었다. 몇 달 뒤 진짜 밴드가 결성됐을 때 이름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앨버트로스»의 영향은 뜻밖의 곳에서도 발견된다.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은 «애비 로드»에 실린 «선 킹»의 기타 선율이 «앨버트로스»에서 왔다고 스스로 인정한 적이 있다. 영국 블루스 밴드 하나가 당대 최고의 밴드에게 거꾸로 영향을 준 드문 사례다. 크리스틴 매큐는 플리트우드 맥에 합류하기 전부터 이미 스타였다. 그녀는 블루스 밴드 치킨 섁의 보컬이자 건반주자로 활동하며 영국 음악 잡지 «멜로디 메이커» 독자 투표에서 몇 년 연속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로 뽑혔다. 그래서 그녀는 '나중에 합류한 멤버'로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이미 인정받은 음악가였다.
용어 노트 📚🔎
리프
(록에서) 짧게 반복되는 멜로디나 코드 진행으로, 노래의 뼈대를 이루는 부분이다. 체육 시간에 다 같이 반복하는 구호나 박수 패턴처럼, 리프는 곡이 흐르는 동안 계속 돌아와 노래를 하나로 묶어준다. (다른 데서는) 리프라는 말은 일상에서 누군가의 말을 받아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펼친다는 뜻으로도 쓴다.
슬라이드 기타
(록에서) 손가락 대신 병이나 금속 관(슬라이드)을 기타 줄 위에 대고 밀어 움직이며 연주하는 기법이다. 음과 음 사이를 끊지 않고 미끄러지듯 이어 주어, 마치 목소리로 우는 듯한 소리를 낸다. 건반에서는 두 음 사이의 틈을 채울 수 없지만, 슬라이드 기타는 그 틈을 매끄럽게 메운다.
오버더빙
(말뜻) '겹쳐 입히다'라는 뜻의 영어에서 왔다. (록에서) 이미 녹음한 음악 위에 새로운 연주나 노래를 겹쳐 녹음하는 방법이다. 학교 합창 연습에서 미리 녹음한 반주 위에 나중에 자기 목소리를 덧입혀 녹음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영화에서 더빙은 원래 배우의 목소리를 다른 언어로 다시 녹음하는 것을 가리킨다.
더블 앨범
(록에서) 한 번에 두 장의 LP판(또는 그만큼 분량)에 곡을 담아 발매하는 앨범이다. 보통 앨범 한 장보다 곡이 두 배 많아, 밴드가 하고 싶은 모든 실험을 담아내는 수단이 된다. 체육대회를 하루가 아니라 이틀로 늘려 더 많은 종목을 넣는 것과 비슷하다.
신시사이저
(말뜻) 영어 '합성하다(synthesize)'에서 왔다. 그래서 신시사이저는 '소리를 합성하는 기계'라는 뜻이다. (록에서) 전자회로로 다양한 악기 소리나 전혀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건반 악기다. 그림판 프로그램에서 색을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드는 것처럼, 신시사이저는 소리의 재료를 섞어 새로운 음색을 만든다.
그루브
(록에서) 베이스와 드럼이 서로 맞물려 만들어내는 반복적이고 몸이 움직이게 되는 리듬의 느낌이다. 줄넘기할 때 박자가 딱 맞아떨어지면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느낌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