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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vis Presley

엘비스 프레슬리 (1935–1977)

「엘비스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존 레넌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미시시피주 투펠로 출생쌍둥이 형의 사산교회 가스펠2. 선샘 필립스「댓츠 올 라이트」로커빌리 트리오3. 폭발「하트브레이크 호텔」TV 출연 파문그레이스랜드4. 단절입대와 어머니 죽음파커 대령의 영화비틀스의 방문5. 귀환68 컴백 스페셜「서스피셔스 마인즈」라스베이거스6. 종말처방약 의존1977년 8월 16일명상 정원 안장프레슬리1935–1977멤피스의 트럭 운전사에서 로큰롤의 왕으로, 영…
무대가 된 도시 🧭🗺️
N미국독일투펠로1935–1948바트나우하임1958–1960로스앤젤레스1960–1973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가족글래디스 프레슬리

    하나 남은 아들에게 모든 것을 쏟은 어머니로, 1958년 어머니의 죽음은 엘비스에게 평생의 상처가 됐다.

  • 프로듀서샘 필립스

    선 레코드의 주인으로, 휴식 시간의 장난 같은 연주에서 새로운 소리를 알아보고 첫 녹음을 세상에 내보냈다.

  • 매니저톰 파커 대령

    1955년부터 끝까지 경력을 쥐고 영화와 라스베이거스로 이끌었으며, 수입의 큰 몫을 가져간 매니저였다.

  • 영향존 레넌

    엘비스를 듣고 로큰롤을 시작했고, 1965년 비틀스 멤버들과 함께 그의 벨에어 집을 찾아 함께 연주했다.

  • 가족프리실라 프레슬리

    서독 주둔 시절 만나 1967년 결혼했고 1973년 이혼했으며, 사후 그레이스랜드 공개를 이끌었다.

  • 가족리사 마리 프레슬리

    1968년 태어난 외동딸로 훗날 가수가 됐고, 2023년 세상을 떠나 그레이스랜드에 함께 묻혔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투펠로의 소년 · 1935–1948

(출생) 1935년 1월, 미국 미시시피주 이스트투펠로에서 태어났다. 1월 8일 새벽, 아버지 버넌이 손수 지은 방 두 칸짜리 판잣집에서였다. 쌍둥이 형 제시 개런이 먼저 사산된 채 나왔고, 엘비스 에런은 그 뒤에 태어났다. 어머니 글래디스는 하나 남은 아들에게 모든 것을 쏟았고, 엘비스는 평생 형의 부재를 의식하며 살았다고 측근들은 증언했다. (가난) 1938년 아버지가 돼지 값으로 받은 수표의 금액을 고친 혐의로 파치먼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가족은 집을 잃었다. 아홉 달 가까이 아버지 없이 지내는 동안 모자는 더욱 가까워졌다. 버넌은 출소 뒤에도 일정한 직업을 갖지 못했고, 가족은 친척 집과 셋집을 옮겨 다녔다. 가난은 엘비스에게 훗날까지 돈과 안정에 대한 집착으로 남았다. (교회) 소년의 첫 음악은 오순절 계열 하나님의 성회 교회였다. 회중이 몸을 흔들며 부르는 찬송과 열띤 설교가 그의 귀와 몸에 새겨졌다. 1945년 열 살 때 미시시피–앨라배마 박람회의 어린이 노래 대회에 나가 늙은 개를 노래한 발라드 「올드 솁」을 불러 5등을 했다. 이듬해 생일에는 투펠로 하드웨어 가게에서 기타를 받았는데, 본래 소총을 원했으나 어머니가 기타를 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라디오) 그는 흑인 동네 근처에 살며 블루스를 들었고, 지역 방송국 WELO의 컨트리 가수에게서 기타 코드를 배웠다. 교회의 가스펠, 흑인의 블루스, 백인의 컨트리가 한 소년 안에서 아무 구분 없이 섞이고 있었다. 1948년 11월, 일거리를 찾아 가족은 테네시주 멤피스로 떠났다.

II. 멤피스의 수줍은 소년 · 1948–1954

(공공주택) 멤피스에서 가족은 하숙방을 전전하다 1949년 공공주택 단지 로더데일 코츠에 들어갔다. 휴스 고등학교의 엘비스는 수줍고 외톨이 같은 학생이었지만, 머리에 기름을 발라 길게 넘기고 빌 스트리트의 랜스키 브라더스 가게에서 흑인 연주자들이 입던 화려한 옷을 사 입어 눈에 띄었다. 1953년 졸업 뒤에는 크라운 일렉트릭 회사에서 트럭을 몰았다. (흡수) 이 시기 그의 귀에는 경계가 없었다. 흑인 방송국 WDIA의 리듬 앤드 블루스, 그랜드 올 오프리의 컨트리, 엘리스 오디토리엄의 밤샘 가스펠 공연, 딘 마틴의 부드러운 발라드까지 모두 받아들였다. 그가 가장 동경한 것은 블랙우드 브라더스 같은 가스펠 사중창단이었다. (녹음) 1953년 여름, 그는 샘 필립스가 운영하던 멤피스 레코딩 서비스에 4달러를 내고 두 곡을 녹음했다. 어머니에게 줄 선물이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해지지만 시기가 생일과 맞지 않아 확실치 않다. 사무실의 매리언 키스커가 그의 이름을 적어 두었고, 이듬해 여름 필립스는 그를 기타리스트 스코티 무어, 베이시스트 빌 블랙과 엮어 주었다. (우연) 1954년 7월 5일 밤, 발라드 녹음이 풀리지 않던 휴식 시간에 엘비스가 아서 크루덥의 블루스 「댓츠 올 라이트」를 장난스럽게 빠르게 부르기 시작했고, 두 사람이 따라붙었다. 필립스는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며칠 뒤 디제이 듀이 필립스가 WHBQ에서 이 곡을 연달아 틀자 전화가 빗발쳤다. 그는 엘비스를 방송국으로 불러 다니는 고등학교 이름을 말하게 했는데, 흑인 가수로 여긴 청취자들에게 그가 백인임을 알리려는 의도였다고 전해진다.

♪댓츠 올 라이트 (That's All Right)1954실황 Elvis Presley · 1972 Madison Square Garden

녹음이 막힌 휴식 시간의 장난이 첫 싱글이 됐다. 아서 크루덥의 블루스를 가볍고 들뜬 컨트리 박자로 바꾼, 선 레코드 시대의 출발점이다.

  • 스코티 무어는 깁슨 ES-295 기타로 엄지는 저음 줄을, 나머지 손가락은 화음을 동시에 뜯는 주법(트래비스 피킹)을 썼다. 한 대의 기타가 리듬과 장식을 함께 해내는 소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보라.
  • 드럼이 없다. 빌 블랙이 콘트라베이스 줄을 잡아당겨 지판에 부딪히게 하는 주법(슬랩 베이스)으로 저음과 함께 딸깍 하는 타악기 소리를 냈다. 저음 뒤에 붙는 그 마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이 곡의 박자가 어디서 나오는지 들린다.
  • 목소리 바로 뒤에 따라붙는 짧은 되울림(슬랩백 에코)은 샘 필립스가 테이프 녹음기의 녹음과 재생 사이 시간차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선 레코드 소리의 표지가 됐다.
  • 후반부에서 엘비스가 뜻 없는 음절로 높게 흥얼거리는 대목은 원곡 블루스의 무거움 대신 스무 살 청년의 장난기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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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선 레코드와 대령 · 1954–1955

(선) 선 레코드에서 엘비스는 1년 반 동안 싱글 다섯 장을 냈다. 대개 한 면은 흑인 블루스나 리듬 앤드 블루스, 다른 면은 백인 컨트리 곡이었다. 첫 싱글 뒷면은 빌 먼로의 느린 블루그래스 왈츠 「블루 문 오브 켄터키」를 들썩이는 박자로 바꾼 것이었다. 남부의 두 전통을 한 장에 묶은 이 음반들은 어느 한쪽으로 분류할 수 없는 소리, 훗날 로커빌리라 불릴 소리를 만들었다. (무대) 1954년 10월 그랜드 올 오프리 무대에 한 번 섰지만 반응은 미지근했고, 관계자가 트럭 운전으로 돌아가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반면 루이지애나 헤이라이드에는 정규 출연자로 자리 잡았고, 다리를 떨며 노래하는 그의 몸짓에 젊은 관객이 비명을 질렀다. 1955년 텍사스주 러벅 공연에서는 고등학생 버디 홀리가 그의 오프닝 무대에 섰고, 이 무렵 그를 보며 컨트리에서 로큰롤로 방향을 틀었다. 드러머 D. J. 폰태나가 합류해 트리오는 사중주가 됐다. (대령) 그해 컨트리 가수 행크 스노를 관리하던 톰 파커가 다가왔다. 대령은 루이지애나 주지사가 준 명예 칭호였다. 파커는 아들이 혹사당할까 걱정하던 글래디스를 설득했고, 11월 RCA 빅터가 선 레코드에 3만 5천 달러, 밀린 로열티까지 합쳐 약 4만 달러를 주고 엘비스의 계약을 사들였다. 당시 신인 한 명의 값으로는 파격이었다. 필립스는 그 돈으로 회사를 살리고 칼 퍼킨스와 조니 캐시에게 힘을 쏟았다. 엘비스는 이 거래로 남부의 스타에서 전국의 상품이 될 길에 들어섰다.

♪미스터리 트레인 (Mystery Train)1955실황 Elvis Presley · 1970 《That's the Way It Is》

선 레코드에서 낸 마지막 싱글의 곡으로, 주니어 파커의 어두운 블루스를 질주하는 기차 노래로 바꿔 놓았다. RCA로 떠나기 직전 트리오가 다다른 정점이다.

  • 도입부의 반복되는 기타 음형은 필립스의 제안으로 주니어 파커의 다른 곡에서 빌려 온 것이다. 스코티 무어의 저음 줄 리프가 기차 바퀴처럼 굴러가는 것을 들어 보라.
  • 드럼 없이 빌 블랙의 베이스와 엘비스의 통기타 스트로크가 증기 기관차의 칙칙 소리 같은 리듬을 만든다. 두 악기가 맞물리는 박자감이 곡 전체의 엔진이다.
  • 기차가 연인을 데려가 버리는 이야기를, 엘비스는 원곡보다 빠르고 밝게 부르면서도 끝음을 길게 끌어 쓸쓸함을 남긴다.
  • 곡이 끝나는 순간 엘비스의 짧은 함성이 녹음에 그대로 남아 있다. 녹음실의 들뜬 공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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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1956년의 폭발 · 1956–1958

(폭발) 1956년 1월 내슈빌 RCA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하트브레이크 호텔」이 석 달 남짓 만에 빌보드 1위에 올랐다. 같은 달부터 도시 형제의 「스테이지 쇼」, 밀턴 벌, 스티브 앨런, 에드 설리번의 텔레비전 쇼에 차례로 나왔다. 6월 밀턴 벌 쇼에서 「하운드 독」의 끝을 반으로 늦추며 엉덩이를 흔든 장면이 거센 비난을 불렀고, 스티브 앨런은 그에게 연미복을 입혀 바셋하운드에게 노래하게 했다. 1957년 1월 설리번 쇼 세 번째 출연에서 카메라는 허리 위만 비췄다. (항변) 신문과 성직자들은 그를 청소년 비행의 상징으로 몰았다. 엘비스는 자신의 몸짓은 음악을 따라 저절로 나오는 것이며 저속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교회 가스펠 가수들의 무대에서 배웠다고 설명했다. 1956년 12월 4일 그는 선 스튜디오에 들러 칼 퍼킨스, 제리 리 루이스와 가스펠과 컨트리를 즉석으로 불렀고 조니 캐시도 잠시 함께했다. 훗날 「밀리언 달러 쿼텟」으로 알려진 이 녹음에서 그는 가장 편안해 보인다. (성공) 첫 영화 「러브 미 텐더」에 이어 「제일하우스 록」을 찍었고, 제리 리버와 마이크 스톨러가 쓴 곡들이 그의 화법을 날카롭게 다듬었다. 1957년 그는 멤피스 남쪽의 저택 그레이스랜드를 10만 2,500달러에 사서 부모를 들였다. (상실) 1958년 3월 그는 육군에 징집됐다. 파커는 연예병 특혜 대신 일반 사병 복무를 권했다. 8월 14일, 기초 훈련 중이던 그에게 어머니가 간염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왔다. 장례식에서 그는 관 곁을 떠나지 못하고 울었다고 함께 있던 이들이 증언했다.

♪하트브레이크 호텔 (Heartbreak Hotel)1956무대 Elvis Presley · 1968 Comeback Special

RCA에서의 첫 녹음이자 첫 전국 1위 곡이다. 선 레코드의 밝은 소리와 달리, 외로운 사람들이 모이는 가상의 호텔을 그린 어둡고 깊은 울림으로 1956년의 폭발을 열었다.

  • 넓고 어두운 잔향은 녹음실 복도에 스피커와 마이크를 두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선 레코드의 짧은 메아리와 비교해 들으면 RCA로 옮기며 달라진 소리가 분명히 들린다.
  • 절마다 반주가 한 번 치고 멈추는 기법(스톱 타임)이 쓰였다. 기타와 베이스가 끊긴 빈자리에 엘비스의 목소리만 남는 순간이 이 곡의 긴장이다.
  • 곡은 여덟 마디 블루스 틀로 짜였다. 간주에서 스코티 무어의 거친 기타와 플로이드 크레이머의 술집풍 피아노가 차례로 나오는 대목을 놓치지 말 것.
  • 엘비스는 낮게 웅얼거리다 끝음을 떨며 흐느끼듯 늘인다. 버림받은 사람의 독백 같은 화법이 당시 십대들에게 충격적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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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드 독 (Hound Dog)1956무대 Elvis Presley · 1956 The Ed Sullivan Show

밀턴 벌 쇼의 파문을 부른 곡이다. 비난이 쏟아진 직후 녹음해 「돈 비 크루얼」과 앞뒷면으로 낸 이 싱글은 1956년 여름 내내 차트 꼭대기를 지켰다.

  • D. J. 폰태나의 드럼이 절 끝마다 기관총처럼 쏟아붓는 스네어 연타(필인)를 들어 보라. 그는 스트립쇼 무대 반주에서 이런 강조법을 익혔다고 회고했다.
  • 스코티 무어의 두 차례 기타 솔로는 날카롭고 거칠어, 정돈된 연주보다 터져 나오는 소리에 가깝다.
  • 엘비스가 만족할 때까지 서른 번 넘게 반복 녹음했다고 기록돼 있다. 뒤쪽에서 조던에어스의 손뼉과 코러스가 박자를 밀어붙인다.
  • 1952년 빅 마마 손튼의 원곡은 느리고 끈적한 블루스였다. 엘비스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본 프레디 벨 앤드 벨보이스의 장난스러운 판을 바탕으로 빠르고 공격적인 곡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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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서독과 할리우드 · 1958–1967

(군대) 1958년 10월 그는 서독(오늘날 독일) 프리트베르크의 제3기갑사단에 배치됐고, 영외 거주 허가를 받아 근처 바트나우하임에 아버지와 할머니, 친구들과 집을 얻었다. 전기 작가들은 이 무렵 그가 기동 훈련 중 한 부사관에게서 각성제를 처음 받았다고 적는다. 공군 장교의 의붓딸 프리실라 볼리외를 만난 것도 이곳에서였다. (복귀) 1960년 3월 제대한 그는 곧장 내슈빌에서 「엘비스 이즈 백!」을 녹음했다. 목소리는 굵어졌고 블루스와 발라드를 오가는 폭이 넓어졌다. 이탈리아 가곡풍 「잇츠 나우 오어 네버」와 「아 유 론섬 투나이트」가 1위를 했고, 한때 로큰롤을 깎아내렸던 프랭크 시내트라의 텔레비전 특집에 나와 노래를 주고받았다. (영화) 이후 파커는 그를 영화에 묶었다. 1961년 「블루 하와이」의 큰 성공 뒤 해마다 두세 편씩, 이국적 배경에 노래 열 곡 남짓을 끼운 비슷한 영화가 이어졌다. 사운드트랙은 서둘러 녹음됐고, 진지한 배역을 원했던 엘비스는 점점 무기력해졌다. 파커는 수입의 25퍼센트를 가져갔고 부수 계약에서는 절반까지 챙겼다. (만남) 1965년 8월 비틀스가 로스앤젤레스 벨에어의 그의 집을 찾아와 함께 기타와 베이스를 쳤지만 녹음은 남지 않았다. 1966년에는 밥 딜런의 「투모로 이즈 어 롱 타임」을 녹음했는데, 딜런은 훗날 자기 곡의 커버 가운데 가장 아끼는 녹음이라고 말했다. 1967년 가스펠 앨범 「하우 그레이트 다우 아트」로 첫 그래미를 받았고, 그해 5월 1일 라스베이거스에서 프리실라와 결혼했다.

♪앨범 《엘비스 이즈 백!》 (Elvis Is Back!)1960

제대 직후 내슈빌에서 녹음한 복귀작으로, 많은 평론가가 그의 최고 스튜디오 앨범으로 꼽는다. 영화 공식에 묶이기 전, 성숙해진 목소리가 블루스와 발라드를 마음껏 오갔다.

  • 이 카드의 영상 곡 「리컨시더 베이비」는 로웰 펄슨의 블루스로, 부츠 랜돌프의 테너 색소폰 솔로가 길게 이어진다. 엘비스가 블루스 가수로서 얼마나 깊어졌는지 들을 수 있는 곡이다.
  • 그의 첫 스테레오 앨범이어서 악기가 좌우로 나뉘어 들린다. 헤드폰으로 들으면 기타와 피아노, 코러스의 자리가 또렷하다.
  • 「피버」는 밥 무어의 베이스와 손가락 튕기는 소리, 타악기만으로 반주를 비워 두었다. 그 빈자리 위로 엘비스의 낮은 목소리가 속삭이듯 흐른다.
  • 군 복무 전보다 낮고 두꺼워진 목소리(바리톤)를 이전 녹음과 비교해 들어 보라. 십대의 들뜸 대신 어른의 무게가 실렸다.

VI. 컴백 · 1968–1973

(딸) 1968년 2월 1일 외동딸 리사 마리가 태어났다. 같은 해 4월 마틴 루서 킹, 6월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됐다. 영화 공식에 갇혀 7년 가까이 관객 앞에 서지 않은 서른세 살의 가수에게, 개인의 삶과 나라의 비극이 한꺼번에 밀려온 해였다. (스페셜) NBC 특집을 맡은 연출가 스티브 바인더는 파커가 원한 크리스마스 캐럴 방송 대신 엘비스의 뿌리를 보여 주자고 했다. 엘비스는 검은 가죽옷을 입고 스코티 무어, D. J. 폰태나와 작은 무대에 둘러앉아 즉흥 연주를 했다. 마지막 곡 「이프 아이 캔 드림」은 암살 사건에 흔들린 그를 위해 작곡가 얼 브라운이 하룻밤 새 쓴 곡이었고, 그는 흰 정장 차림으로 온몸을 던져 불렀다. 12월 3일 방송은 그 주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멤피스) 1969년 1월 그는 14년 만에 멤피스에서 녹음했다. 칩스 모먼의 아메리칸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만든 「인 더 게토」는 가난과 폭력의 굴레를 다룬 곡으로, 사회적 발언을 꺼린 측근들의 만류에도 그가 고집해 냈다. 「서스피셔스 마인즈」는 생전 마지막 미국 1위 곡이 됐다. (라스베이거스) 7월 라스베이거스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8년 만의 정규 공연을 시작했다. 기타리스트 제임스 버턴이 이끄는 밴드, 가스펠 코러스, 오케스트라가 뒤를 받쳤다. 1970년 12월에는 백악관을 찾아 닉슨 대통령에게 마약 단속 요원 배지를 청했다. 1973년 1월 위성 생중계 「알로하 프롬 하와이」가 여러 나라에 방송됐고, 같은 해 10월 프리실라와 이혼했다.

♪서스피셔스 마인즈 (Suspicious Minds)1969실황 Elvis Presley · 1973 Aloha From Hawaii

14년 만의 멤피스 녹음에서 나온 곡으로, 생전 마지막 미국 1위 곡이 됐다.

  • 곡 중반, 박자가 갑자기 느려지며 셋씩 흔들리는 박자(6/8박자)로 넘어가는 다리 부분(브리지)이 있다. 긴장이 잠시 풀렸다가 다시 원래 박자로 치고 올라오는 흐름을 따라가 보라.
  • 끝부분에서 소리가 줄어들다가 다시 커지는 가짜 마무리(페이드아웃)는 프로듀서 펠턴 자비스가 나중에 덧붙인 것이다. 녹음을 맡은 칩스 모먼은 이를 못마땅해했다고 전해진다.
  • 멤피스 연주자들의 단단한 리듬 위에 금관, 현악, 여성 코러스를 나중에 덧입혔다(오버더빙). 후렴으로 갈수록 소리가 겹겹이 두꺼워지는 과정을 들어 보라.
  • 라스베이거스 무대에서는 이 곡을 여러 분 동안 늘이며 무릎을 꿇고 무대를 휘저었다. 1970년 공연 영상과 스튜디오 판을 비교해 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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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그레이스랜드의 밤 · 1973–1977

(돈) 1973년 파커는 RCA와 계약을 맺어 엘비스가 그때까지 녹음한 곡들의 장래 로열티 권리를 일시불 540만 달러에 넘겼다. 파커가 그 가운데 큰 몫을 가져갔고, 엘비스는 이후 그 녹음들에서 나올 수입을 잃었다. 사후 유산 소송에서 법원이 지정한 변호사는 이 거래가 엘비스에게 크게 불리했다고 보고했다. (건강) 그는 녹내장, 고혈압, 장 질환, 체중 증가에 시달렸고 여러 의사에게서 처방받은 진정제, 진통제, 각성제에 기대어 살았다. 공연 중 가사를 놓치거나 말이 길어지는 날이 늘었다. 1976년 해고된 경호원 레드 웨스트와 소니 웨스트는 이듬해 그의 약물 사용을 다룬 책을 냈고, 엘비스는 출간 전부터 몹시 괴로워했다고 전해진다. (후배) 그를 우상으로 여긴 후배들이 찾아왔다. 1974년 레드 제플린 멤버들이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를 만났다. 1976년 엘튼 존은 공연장에서 만난 엘비스가 몹시 쇠약해 보여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같은 해 4월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멤피스 공연 뒤 그레이스랜드 담을 넘었다가 경비원에게 붙잡혀 돌아갔다. (마지막) 1977년 6월 26일 인디애나폴리스 마켓 스퀘어 아레나가 마지막 공연이었다. 그달 CBS 특집 녹화에서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언체인드 멜로디」를 불렀다. 8월 16일 오후 그레이스랜드 욕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고, 멤피스 침례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마흔두 살이었다. 공식 사인은 심장 부정맥이었으나 다량의 처방약이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는 지금도 논쟁이다. 그는 어머니 곁, 그레이스랜드 명상 정원에 묻혔고, 2023년 세상을 떠난 리사 마리도 같은 정원에 안장됐다.

♪언체인드 멜로디 (Unchained Melody)1977실황 Elvis Presley · 미시간 앤아버 공연

죽기 두 달 전 CBS 특집 녹화에서 그가 피아노를 치며 부른 곡이다. 몸은 무너져 있었지만 목소리만은 마지막까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증언처럼 남았다.

  • 반주의 중심은 엘비스 자신이 치는 피아노다. 화려하지 않고 다소 투박한 화음을 짚으며 노래에 맞춰 박자를 끌고 간다.
  • 영상에서는 오랜 친구 찰리 호지가 피아노 옆에 서서 마이크를 들어 준다. 그 모습 자체가 말년의 그가 얼마나 의지할 곳이 필요했는지를 보여 준다.
  • 숨이 가빠 보이는 몸 상태에도 마지막 고음을 길고 힘 있게 밀어붙인다. 곡의 끝부분, 목소리가 가장 높이 올라가는 순간을 들어 보라.
  • 사후 앨범 「무디 블루」에 실린 판은 같은 해 4월 미시간주 앤아버 공연 녹음에 반주를 덧입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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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오디션) 1954년 무렵 엘비스는 블랙우드 브라더스가 키우던 젊은 가스펠 사중창단 송펠로스의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졌다. 전기 작가들은 그가 오랫동안 가스펠 사중창단의 일원이 되기를 꿈꿨다고 전한다. 로큰롤의 상징이 되기 직전 그가 정말 원한 자리는 교회 무대였지만, 이 일은 곧 이어진 폭발적인 성공에 가려졌다. 그가 받은 그래미 세 개가 모두 가스펠 음반이었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제트) 1957년 엘비스가 흑인을 모욕하는 말을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흑인 잡지 「제트」는 기자 루이 로빈슨을 영화 촬영장에 보내 직접 확인했고, 그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소문 속 장소에 간 적도 없다고 보도했다. 엘비스는 그 인터뷰에서 흑인 음악가들에게서 배웠다고 말했다. 소문은 이후에도 떠돌았지만 기사는 오래 잊혔다가 전기 작가들에 의해 다시 조명됐다. (국경) 엘비스가 미국 밖에서 공연한 것은 1957년 캐나다 토론토, 오타와, 밴쿠버가 거의 전부였다. 파커 대령의 본명은 안드레아스 코르넬리스 판퀴크로, 네덜란드 브레다 출신의 불법 이민자여서 미국 여권이 없었다. 이 사실은 1980년대 초 유산 소송에서 파커 스스로 미국 시민이 아니라고 내세우면서 공식화됐고, 전기 작가들은 그가 해외 투어 제안을 번번이 거절한 이유로 이를 꼽는다. (쌍둥이) 쌍둥이 형 제시 개런은 투펠로의 표지 없는 무덤에 묻혔다. 엘비스는 평생 형을 자주 이야기했고, 훗날 그레이스랜드 명상 정원에는 가족 곁에 형을 기리는 기념판이 놓였다.

용어 노트 📚🔎

로커빌리

(말뜻) 록(rock)과 힐빌리(hillbilly)를 합친 말이다. 힐빌리는 미국 남부 산골 사람을 낮잡아 부르던 말로, 한때 그들이 즐기던 컨트리 음악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했다. (록에서) 1950년대 중반 미국 남부의 백인 젊은이들이 컨트리 음악에 흑인 리듬 앤드 블루스의 들썩이는 박자를 섞어 만든 초기 로큰롤이다. 전기 기타, 손으로 줄을 때리는 콘트라베이스, 짧은 메아리를 입힌 목소리가 특징이다. 떡볶이와 크림 파스타를 섞어 로제 떡볶이라는 새 맛이 나온 것처럼, 서로 다른 동네의 두 음악이 섞여 전혀 새로운 소리가 됐다.

리듬 앤드 블루스

(말뜻) 리듬(rhythm, 박자)과 블루스(blues, 우울한 노래)를 합친 말이다. 1949년 음악 잡지 빌보드가 흑인 음악 차트의 이름을 인종 음반이라는 뜻의 레이스 레코드에서 이 말로 바꾸면서 널리 쓰이게 됐다. (록에서) 1940~50년대 미국 흑인 음악가들이 블루스에 강한 박자와 색소폰, 피아노를 더해 춤추기 좋게 만든 음악이다. 엘비스가 처음 부른 곡 상당수가 이 음악이었다.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줄넘기 박자처럼 몸이 먼저 움직이게 만드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른 데서는) 오늘날 알앤비(R&B)라고 하면 대개 1990년대 이후의 매끄러운 팝 음악을 가리켜, 엘비스 시대의 소리와는 꽤 다르다.

슬랩백 에코

(말뜻) 슬랩백(slapback)은 찰싹 부딪히고 되돌아온다는 뜻이고, 에코(echo)는 메아리다. (록에서) 원래 소리 뒤에 아주 짧은 간격으로 한 번 따라붙는 메아리다. 선 레코드의 샘 필립스는 테이프 녹음기가 녹음한 소리를 아주 조금 늦게 다시 재생하는 원리로 이 효과를 만들었고, 초기 엘비스 녹음의 상징이 됐다. 체육관 벽에 공을 세게 던지면 거의 곧바로 탁 하고 되돌아오는 소리처럼, 그 짧은 되울림이 목소리를 더 크고 들뜨게 들리게 한다.

슬랩 베이스

(말뜻) 슬랩(slap)은 찰싹 때린다는 뜻이다. (록에서) 사람 키만 한 콘트라베이스의 줄을 세게 잡아당겼다 놓아, 줄이 나무 지판에 부딪혀 딸깍 소리가 나게 하는 연주법이다. 저음과 타악기 소리가 함께 나기 때문에, 드럼이 없던 초기 엘비스 트리오에서는 빌 블랙의 베이스가 드럼 몫까지 했다. 고무줄을 당겼다 놓으면 붕 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에 탁 부딪히는 소리가 같이 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1970년대 이후 전기 베이스에서는 엄지로 줄을 때리는 다른 주법을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스톱 타임

(말뜻) 멈춘(stop) 박자(time)라는 뜻이다. (록에서) 반주가 박자의 첫머리만 짧게 치고 멈추기를 되풀이하고, 그 빈자리를 노래나 독주가 채우는 기법이다. 「하트브레이크 호텔」에서 반주가 끊긴 사이 목소리만 허공에 남는 순간이 그렇다. 얼음땡 놀이에서 술래가 얼음을 외치면 모두 멈추고 한 사람만 움직이는 것처럼, 다른 소리가 멈추기 때문에 남은 소리가 훨씬 크게 들린다.

페이드아웃

(말뜻) 페이드(fade)는 빛깔이나 소리가 희미해진다는 뜻이다. (록에서) 곡을 딱 끝내지 않고 소리를 서서히 줄여 사라지게 하는 마무리 방식이다. 「서스피셔스 마인즈」는 소리가 줄어들다가 다시 커지는 가짜 페이드아웃으로 유명하다. 운동장에서 멀어지는 친구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다가, 친구가 다시 뛰어오면 커지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영화나 영상에서는 화면이 서서히 어두워지며 장면이 끝나는 것을 가리킨다.

가스펠

(말뜻) 고대 영어 godspel, 곧 좋은 소식이라는 말에서 왔다. 한자어 복음(福音)도 복된 소리라는 뜻이어서 두 말의 뜻이 같다. (록에서) 미국 교회에서 신앙을 찬양하며 부르는 노래, 특히 흑인과 백인 교회의 열정적인 합창과 사중창을 말한다. 엘비스는 평생 이 음악을 가장 사랑했고, 그가 받은 그래미 세 개는 모두 가스펠 음반이었다. 운동회 날 반 전체가 한목소리로 응원가를 부르며 몸을 흔들 때의 뜨거움이 이 음악의 분위기와 닮았다. (다른 데서는) 영어에서 가스펠 트루스(gospel truth)라고 하면 의심할 여지 없는 진실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