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ton John
피너의 수줍은 소년 레지 드와이트는 남이 쓴 가사에 곡을 붙이는 일로, 반세기 넘게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린 피아노 노래들을 만들었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가족실라 페어브러더
어머니로, 엘비스 프레슬리 음반으로 아들을 로큰롤에 이끌었고 2017년 세상을 떠났다.
- 우정버니 토핀
1967년 우편으로 시작된 작사 파트너로, 반세기 넘게 그의 노래 대부분의 가사를 썼다.
- 프로듀서거스 더전
「유어 송」부터 1970년대 전성기 앨범 대부분을 만든 프로듀서로, 2002년 세상을 떠났다.
- 매니저존 리드
1970년부터 약 사반세기 동안 그의 매니저였고, 한때 퀸의 매니저도 겸했다.
- 우정프레디 머큐리
서로 장난스러운 별명으로 부르던 친구로, 그의 죽음은 엘튼이 에이즈 재단을 세우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됐다.
- 가족데이비드 퍼니시
1993년 만나 2014년 결혼한 배우자로, 그의 사업과 재단 일도 함께 이끈다.
I. 피너의 레지 · 1947–1966
(피너) 1947년 3월, 영국 잉글랜드 미들섹스 피너(오늘날 런던 해로 자치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레지널드 케네스 드와이트였다. 아버지 스탠리는 영국 공군 장교이자 트럼펫을 불던 사람이었지만 집을 자주 비웠고, 돌아오면 식사 예절과 옷차림을 엄하게 따졌다. 엘튼은 훗날 자서전에서 아버지 앞에서 늘 주눅 들어 있었다고 썼다. 소년은 주로 어머니 실라와 외할머니 아이비의 손에서 자랐다. (피아노) 세 살 무렵 외할머니의 피아노로 들은 곡을 따라 쳤다고 전해진다. 열한 살에 왕립음악원 주니어 과정 장학생이 되어 약 5년 동안 토요일마다 고전 음악을 배웠다. 들은 것을 곧바로 건반에 옮기는 귀는 뛰어났지만, 악보 공부에는 성실하지 않았다고 그는 스스로 말했다. (로큰롤) 어머니가 사 온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반, 그리고 리틀 리처드와 제리 리 루이스의 거침없는 건반이 그를 고전 음악 밖으로 끌어냈다. 1962년 무렵 부모가 이혼했고, 어머니는 실내 장식공 프레드 페어브러더와 재혼했다. 소년은 새아버지를 더프라 부르며 따랐고, 이 집에서 처음으로 음악을 마음 놓고 할 수 있었다. (펍) 열다섯 살에는 동네 노스우드 힐스 호텔의 펍에서 주말마다 피아노를 쳤다. 손님이 청하는 노래를 장르 가리지 않고 쳐야 했던 이 시간은 그의 손에 잡식성의 버릇을 남겼다. 같은 무렵 밴드 블루솔로지를 꾸려 영국을 찾은 미국 소울 가수들의 반주를 맡았고, 1966년부터는 블루스 가수 롱 존 볼드리의 반주 밴드로 일했다. 학교는 졸업 시험을 앞두고 그만두고 음악 출판사에서 심부름 일을 했다. (이름) 그는 밴드의 색소폰 주자 엘튼 딘과 볼드리의 이름을 한 토막씩 빌려 엘튼 존이라는 예명을 지었고, 1972년에는 이 이름으로 법적 개명까지 했다.
II. 봉투 속의 가사 · 1967–1970
(광고) 1967년, 리버티 레코드가 음악 주간지에 낸 신인 모집 광고에 응했다. 오디션 결과는 신통치 않았지만, 담당자 레이 윌리엄스는 같은 광고를 보고 가사를 보내온 링컨셔의 열일곱 살 소년 버니 토핀의 원고 봉투를 그에게 건넸다. 두 사람은 한동안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우편으로 곡을 주고받았다. (분업) 이 방식은 평생의 작법이 됐다. 토핀이 가사를 먼저 써서 건네면 엘튼이 피아노 앞에서 곡을 붙였고, 둘이 한 방에서 함께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미국 서부와 옛 이야기에 매혹된 토핀의 문학적 가사가 엘튼의 가스펠·소울 화성과 만나 둘만의 결을 만들었다. (계약) 둘은 비틀스의 곡을 관리한 출판업자 딕 제임스의 회사와 주급을 받는 전속 작곡가 계약을 맺었다. 토핀은 노스우드에 있던 엘튼 어머니의 아파트로 들어와 한 방에서 이층 침대를 나눠 썼다. 1968년 엘튼은 결혼을 앞뒀다가 마음을 돌렸는데, 볼드리가 그를 만류한 그날 밤의 일은 7년 뒤 한 곡의 소재가 됐다. (데뷔) 1969년 첫 앨범 《엠프티 스카이》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 이듬해 프로듀서 거스 더전과 편곡자 폴 버크매스터가 합류한 두 번째 앨범 《엘튼 존》은 피아노 위에 현악 오케스트라를 겹친 정교한 소리로 방향을 틀었다. 더전과 버크매스터는 1969년 데이비드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를 함께 만든 이들이었다. 엘튼의 초기 사운드는 그렇게 같은 시기 런던 스튜디오의 인맥 속에서 태어났다. (트루바두어) 1970년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클럽 트루바두어 공연이 전환점이었다. 닐 다이아몬드가 소개한 무대에서 그는 피아노 의자를 밀어내고 서서 건반을 두드렸고, 객석에는 그가 우상으로 여기던 피아니스트 리언 러셀도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평론가 로버트 힐번이 극찬하는 평을 썼고, 「유어 송」은 그해 말 영미 차트에 올랐다.
어머니 아파트의 피아노 앞에서 토핀의 가사를 받아 곧바로 곡을 붙였다고 엘튼이 회고한 노래다. 무명의 두 청년이 처음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곡이다.
- 도입부는 피아노 혼자다. 오른손이 화음을 한 음씩 풀어 치는 동안(아르페지오) 왼손이 낮은 음을 짚는데, 첫 절 내내 피아노와 목소리만으로 곡이 서는 것을 들어 보자.
- 폴 버크매스터의 현악은 처음부터 나오지 않고 곡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불어난다. 현이 처음 들어오는 지점을 찾아 들으면 거스 더전이 소리를 얼마나 아껴 쌓았는지 보인다.
-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을 고르다 머뭇거리는 수줍은 청년이다. 엘튼은 꾸밈음 없이 담담하게 불러 그 서툰 고백의 어조를 살렸다.
- 1970년 런던에서 녹음됐다. 이후 라이브에서는 대개 현악 없이 피아노 독주로 부르는데, 원곡과 비교하면 편곡이 곡의 인상을 얼마나 바꾸는지 알 수 있다.
III. 노란 벽돌 길 · 1970–1975
(밴드) 그는 베이시스트 디 머리, 드러머 나이절 올슨과 3인조로 순회공연을 돌았고, 1972년 스코틀랜드 출신 기타리스트 데이비 존스톤이 합류하며 핵심 밴드가 완성됐다. 세 사람이 겹쳐 부르는 높은 화음은 이 시기 음반의 표지처럼 됐다. 사업은 1970년부터 매니저 존 리드가 맡았는데, 그는 1975년부터 몇 년간 퀸의 매니저도 겸했다. (샤토) 1972년 일행은 파리 근교의 고성 스튜디오 샤토 데루빌에서 《혼키 샤토》를 녹음했다. 아침에 토핀이 가사를 건네면 엘튼이 식당 피아노에서 곡을 붙이고 오후에 밴드가 녹음하는 식이었다고 전해진다. 「로켓 맨」이 이 앨범에서 나왔고, 앨범은 그의 첫 미국 1위 앨범이 됐다. (정점) 1973년 자메이카 녹음 계획이 장비 문제로 무산되자 일행은 다시 샤토로 돌아가 짧은 기간에 두 장짜리 음반(더블 앨범)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를 만들었다. 같은 해 그는 자신의 레이블 로켓 레코드를 세웠다. (의상) 수줍고 외모에 자신이 없던 그는 커다란 안경과 깃털, 높은 굽의 구두로 무대 위의 인물을 따로 지어 냈고, 훗날 그 의상이 숨을 곳이었다고 말했다. 1974년에는 존 레넌의 「와트에버 게츠 유 스루 더 나이트」에 피아노와 화음으로 참여했고, 그해 11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무대로 레넌을 불러냈다. (다저) 1975년 《캡틴 판타스틱 앤드 더 브라운 더트 카우보이》는 빌보드 앨범 차트에 처음부터 1위로 진입한 최초의 앨범이 됐다. 두 사람의 무명 시절을 그린 자전적 앨범이었다. 그해 10월 다저 스타디움 이틀 공연에서 그는 반짝이 야구 유니폼을 입고 십만 명 넘는 관객 앞에 섰다. 그러나 해마다 앨범 두 장과 대형 순회공연을 소화하는 일정은 그를 깊이 지치게 했다.
프랑스 고성 스튜디오에서 새로 짠 밴드와 함께 녹음한 곡으로, 그의 첫 미국 1위 앨범 《혼키 샤토》의 중심이다.
- 토핀은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 「로켓 맨」에서 착상을 얻었다고 밝혔다. 화자는 우주 비행을 출근처럼 하는 남자이고, 엘튼은 영웅담이 아니라 외로운 직장인의 담담한 독백처럼 부른다.
- 곳곳에서 들리는 우주 같은 휙 하는 소리는 데이비드 헨첼이 연주한 신시사이저(전기 회로로 소리를 만드는 건반 악기) 효과음이다.
- 데이비 존스톤은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금속 막대를 줄 위로 미끄러뜨려 음을 잇는 슬라이드 기타를 연주했다. 후렴 사이사이 길게 우는 기타를 따라가 보자.
- 후렴의 높은 화음은 디 머리, 나이절 올슨, 존스톤이 겹쳐 부른 것이다. 곡은 후렴 한 구절을 되풀이하며 소리를 서서히 줄여 끝나는데(페이드아웃), 라이브에서는 이 대목을 피아노 즉흥으로 길게 늘리곤 했다.
자메이카에서 녹음이 무산된 뒤 샤토로 돌아가 만든 두 장짜리 앨범으로, 전성기 4인조 밴드의 기량이 가장 넓게 펼쳐진 작품이다. 영상은 수록곡 「베니 앤드 더 제츠」다.
- 첫 곡 「퓨너럴 포 어 프렌드」는 바람 소리 같은 신시사이저와 오르간으로 시작해 쉬지 않고 「러브 라이스 블리딩」으로 넘어간다. 두 곡이 이어지는 11분가량의 길이 자체가 앨범의 야심을 알린다.
- 「베니 앤드 더 제츠」는 스튜디오 녹음인데 관객 환호와 박수가 들린다. 거스 더전이 다른 공연 녹음의 객석 소리를 덧입힌 것(오버더빙)으로, 박수 사이로 엇박에 끊어 치는 피아노 화음을 들어 보자.
- 같은 곡에서 엘튼은 가늘게 뽑는 높은 소리(가성, 팔세토)로 주인공 이름을 부른다. 이 곡은 미국 흑인 라디오에서 먼저 사랑받아 R&B 차트에도 올랐다.
- 마릴린 먼로를 기리는 「캔들 인 더 윈드」는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중심의 단출한 편성이다. 화려한 곡들 사이에서 이 절제가 오히려 도드라진다.
1968년 결혼을 앞두고 롱 존 볼드리의 만류로 마음을 돌린 밤을 토핀이 노래로 옮겼다. 자전적 앨범 《캡틴 판타스틱》에서 가장 사적인 곡이다.
- 곡 길이는 약 6분 45초로 당시 싱글로는 이례적이었지만 미국 4위까지 올랐다. 서두르지 않는 느린 템포가 끝까지 유지된다.
- 화자는 자신을 구해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그때의 자신을 쓴웃음으로 돌아본다. 엘튼은 감사와 자조가 섞인 어조로 부른다.
- 곡 후반으로 갈수록 밴드의 합창이 겹겹이 쌓이고, 절정에서 엘튼의 목소리가 가성으로 치솟는다. 그 상승 곡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들어 보자.
- 미국 콜로라도의 카리부 랜치 스튜디오에서 1974년 녹음됐다. 피아노와 존스톤의 기타, 레이 쿠퍼의 타악기가 촘촘히 엮인다.
IV. 멈춤과 재회 · 1976–1985
(고백) 1976년 롤링 스톤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양성애자라고 밝혔고, 1992년 같은 잡지 인터뷰에서는 동성애자라고 밝혔다. 그해 키키 디와 부른 「돈 고 브레이킹 마이 하트」가 그의 첫 영국 1위 싱글이 됐지만, 같은 해의 《블루 무브스》는 어둡고 느린 곡이 많은 앨범이었다. 1977년 런던 웸블리 공연에서 그는 무대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고, 토핀과도 한동안 따로 일했다. (축구) 어린 시절부터 응원하던 왓퍼드 축구 클럽의 구단주가 된 것도 1976년이었다. 그가 데려온 감독 그레이엄 테일러 아래에서 4부 리그 팀은 1982년 1부 리그에 올랐고 1984년 FA컵 결승 무대까지 밟았다. 그는 축구장이 음악 산업의 소란에서 벗어나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소련) 1979년 그는 타악기 주자 레이 쿠퍼와 단둘이 소련(오늘날 러시아)의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에서 공연했다. 서방의 록 스타가 소련을 순회한 드문 사례였다. (재회) 1983년 《투 로 포 제로》에서 토핀이 다시 전곡의 가사를 맡았고, 머리와 올슨, 존스톤도 돌아왔다. 「아임 스틸 스탠딩」은 그 귀환의 선언처럼 들렸다. 그는 1984년 독일 출신 녹음 엔지니어 레나테 블라우엘과 결혼했다가 1988년 이혼했다. (로열티) 1985년 그와 토핀은 초기 곡의 권리와 로열티를 두고 딕 제임스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곡의 저작권은 돌려받지 못했다. 같은 해 7월 웸블리의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섰는데, 그날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것은 친구 프레디 머큐리가 이끈 퀸의 공연이었다.
토핀과 원년 밴드가 다시 모인 《투 로 포 제로》의 대표곡으로, 1970년대 말의 공백을 지나 돌아온 귀환의 노래다.
- 피아노가 빠른 8분음표로 쉬지 않고 밀어붙이고, 디 머리의 베이스가 같은 박을 단단히 받친다. 처음 몇 마디의 피아노만 따라 들어도 곡의 추진력이 느껴진다.
- 화자는 자신을 깎아내렸던 상대에게 아직 건재하다고 선언한다. 엘튼의 보컬은 원망보다 통쾌함 쪽에 서 있다.
- 카리브해 몬트세랫섬의 AIR 스튜디오에서 크리스 토머스의 제작으로 녹음됐다. 존스톤의 기타와 올슨의 드럼이 돌아오면서 1970년대 전성기 밴드의 호흡이 되살아났다.
- 프랑스 칸 해변에서 찍은 뮤직비디오는 MTV 시대의 그를 젊은 세대에게 다시 알렸다. 영상과 함께 보면 곡의 들뜬 기운이 더 분명해진다.
V. 회복과 추모 · 1986–1997
(목소리) 1986년 말 그는 멜버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오스트레일리아 순회공연을 했고, 이듬해 초 목 수술을 받은 뒤 목소리는 한층 낮고 굵어졌다. 고음을 쉽게 질러 올리던 젊은 날 대신, 이후의 노래는 중저음의 무게로 버티는 쪽으로 바뀌었다. (라이언)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돼 학교에서 쫓겨났던 미국 소년 라이언 화이트와 그는 가족처럼 지냈고, 1990년 4월 소년의 임종을 지켰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삶을 바꾸기로 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는 자서전과 인터뷰에서 1970년대부터 이어진 술과 코카인 의존을 스스로 밝혔고, 1990년 치료를 받은 뒤 지금까지 끊고 지낸다. (재단) 같은 해 「새크리파이스」가 그의 첫 영국 1위 솔로 싱글이 됐고, 그는 영국 싱글 수익을 에이즈 관련 자선단체에 내놓았다. 1992년에는 엘튼 존 에이즈 재단을 세웠다. (프레디) 1991년 11월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4월 웸블리 추모 공연에서 그는 남은 퀸 멤버들과 「더 쇼 머스트 고 온」을 불렀고, 건즈 앤 로지스의 액슬 로즈와 「보헤미안 랩소디」를 나눠 불렀다. 같은 해 9월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는 액슬과 「노벰버 레인」을 함께 연주했다. (다이애나) 1994년 팀 라이스와 만든 《라이온 킹》의 「캔 유 필 더 러브 투나잇」으로 이듬해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1997년 9월 친구였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장례식에서 그는 토핀이 새로 가사를 쓴 「캔들 인 더 윈드 1997」을 불렀고, 조지 마틴이 제작한 이 싱글은 영국 차트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 됐다. 그는 이 곡을 다시 공개 무대에서 부르지 않겠다고 했다.
목 수술 뒤 낮아진 목소리로 부른 발라드로, 1990년 그의 첫 영국 1위 솔로 싱글이 됐고 수익은 에이즈 자선단체에 쓰였다.
- 1960~70년대 R&B와 소울에서 영감을 받은 앨범 《슬리핑 위드 더 패스트》에 실렸고, 덴마크의 스튜디오에서 크리스 토머스의 제작으로 녹음됐다.
- 첫 절의 낮은 음역을 들어 보자. 1970년대의 높고 밝은 목소리와 달리 굵고 어두운 질감이 곡의 성숙한 정서를 받친다.
- 화자는 오래된 관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담담히 돌아보는 어른이다. 토핀의 가사는 극적인 이별보다 서서히 식어 가는 결혼 생활을 그린다.
- 부드럽게 깔리는 신시사이저 화음과 느린 드럼이 공간을 넓게 채운다. 피아노가 앞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 그의 다른 대표곡들과 다르다.
VI. 긴 작별 · 1998–2026
(무대) 1998년 기사 작위를 받은 그는 무대의 범위를 넓혔다. 뮤지컬 《아이다》로 토니상 음악상을 받았고 《빌리 엘리어트》의 음악을 썼다. 2004년부터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공연장에서 몇 년씩 정기 공연을 이어 가는 방식(레지던시)으로 《레드 피아노》와 《밀리언 달러 피아노》를 올렸다. (가족) 그는 1993년 만난 캐나다 출신 영화 제작자 데이비드 퍼니시와 2005년 시민 동반자 관계를 맺고 2014년 결혼했으며, 두 아들을 두었다. 어머니 실라는 2017년 세상을 떠났다. (유니언) 2010년 그는 리언 러셀과 앨범 《더 유니언》을 냈다. 잊혀 가던 우상을 다시 무대 위로 불러낸 작업이었고, 이듬해 그는 러셀의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소개를 맡았다. 2019년에는 자서전 《미》와 전기 영화 《로켓맨》이 나왔고, 토핀과 쓴 영화 주제가로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협업) 2021년 앨범 《더 록다운 세션스》에서 그는 젊은 가수들과 손잡았다. 옛 곡 조각을 다시 섞은 「콜드 하트」는 영국 1위에 올랐고, 같은 해 메탈리카 헌정 앨범에서 마일리 사이러스, 요요마 등과 「낫싱 엘스 매터스」를 녹음했다. (작별) 2018년 시작한 작별 투어 《페어웰 옐로 브릭 로드》는 팬데믹으로 멈췄다 이어지며 300회를 넘겼고, 2023년 글래스턴베리 헤드라이너 무대를 거쳐 그해 7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끝났다. 다저 스타디움 작별 공연 중계로 2024년 에미상을 받아 에미·그래미·오스카·토니를 모두 받은 드문 예술가가 됐다. 2025년에는 브랜디 칼라일과 함께 앨범 《후 빌리브스 인 에인절스?》를 냈다. 순회공연은 끝났지만 토핀과의 작업은 반세기를 넘겨 이어지고 있다.
칠순이 넘은 그가 옛 곡 조각과 젊은 가수의 목소리로 다시 영국 1위에 오른 곡으로, 작별을 준비하던 시기에 새 세대와 만난 기록이다.
- 오스트레일리아 듀오 핀나우가 그의 옛 곡 「로켓 맨」, 「새크리파이스」, 「키스 더 브라이드」, 「웨어스 더 슈라」의 조각들을 다시 섞어 새 곡으로 만들었다(리믹스). 원곡들을 먼저 듣고 어느 대목이 어디에 쓰였는지 찾아보면 재미있다.
- 두아 리파의 목소리와 1972년 「로켓 맨」의 선율을 부르는 엘튼의 목소리가 번갈아 나온다. 반세기 차이의 두 목소리가 한 곡 안에서 이어지는 순간을 들어 보자.
- 네 박마다 쿵 하고 울리는 디스코·하우스풍의 드럼이 곡 전체를 끌고 간다. 피아노 발라드였던 원곡이 춤곡으로 바뀐 셈이다.
덜 알려진 이야기
(무명) 이름을 알리기 전인 1969~70년 무렵, 그는 생계를 위해 다른 가수들의 히트곡을 비슷하게 흉내 내 부른 염가판 모음 음반에 이름 없이 노래했다. 같은 시기 홀리스의 「히 에인트 헤비, 히즈 마이 브라더」 녹음에 피아노를 친 세션 연주자이기도 했다. 크레디트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이 녹음들은 1990년대에 모음집으로 다시 묶여 나오고서야 널리 알려졌다. (소울 트레인) 「베니 앤드 더 제츠」는 처음에 싱글로 낼 계획이 없었지만, 미국 디트로이트의 흑인 라디오에서 먼저 반응이 오면서 싱글로 발매돼 R&B 차트에도 올랐다. 1975년 그는 흑인 음악 텔레비전 프로그램 소울 트레인에 출연했는데, 당시 이 무대에 선 백인 음악가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화려한 의상의 팝 스타라는 이미지에 가려, 그의 음악이 소울과 가스펠에 뿌리를 두었다는 이 대목은 자주 잊힌다. (내기) 1974년 존 레넌의 「와트에버 게츠 유 스루 더 나이트」 녹음 때, 엘튼은 이 곡이 미국 1위에 오르면 자기 공연에 함께 서 달라고 내기를 걸었다. 레넌은 1위는 어렵다고 여겼지만 곡은 정말 1위에 올랐고, 그해 11월 매디슨 스퀘어 가든 무대에서 세 곡을 함께 불렀다. 이것이 레넌이 관객 앞에 선 마지막 대형 콘서트로 기록됐고, 엘튼은 이듬해 태어난 레넌의 아들 숀의 대부가 됐다.
용어 노트 📚🔎
편곡
(말뜻) 편곡(編曲)은 곡을 엮는다(編)는 뜻이다. 이미 있는 멜로디에 옷을 입혀 엮어 낸다는 의미가 이름에 담겨 있다. (록에서) 멜로디와 화음은 그대로 두고, 어떤 악기가 언제 무엇을 연주할지 짜는 일이다. 「유어 송」에서 폴 버크매스터가 피아노 위에 현악을 어떻게 얹을지 정한 것이 편곡이다. 학예회 합창에서 같은 노래를 누구는 높은 소리로, 누구는 낮은 소리로, 어느 대목은 독창으로 부르게 나누어 정하는 일과 비슷하다.
더블 앨범
(록에서) LP 레코드 두 장으로 이루어진 앨범이다. LP 한 장에는 보통 40~50분 정도만 담을 수 있어서, 곡이 많거나 긴 곡이 들어가면 두 장으로 냈다.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가 그렇다. 한 권으로 끝낼 이야기를 상·하 두 권으로 낸 책을 떠올리면 된다. 그만큼 만드는 사람의 야심이 크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가성(팔세토)
(말뜻) 가성(假聲)은 거짓(假) 소리(聲), 곧 평소 목소리가 아닌 빌려 온 소리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팔세토도 이탈리아어 falso(거짓의)에서 왔다. (록에서) 성대를 얇게 써서 평소보다 훨씬 높고 가는 소리를 내는 창법이다. 「베니 앤드 더 제츠」의 후렴이 대표적이다. 친구 목소리를 흉내 내려고 목소리를 가늘게 높여 본 적이 있다면, 그때 낸 소리가 가성에 가깝다.
오버더빙
(말뜻) 영어 over(위에)와 dub(소리를 입히다)를 합친 말로, 이미 있는 소리 위에 소리를 덧입힌다는 뜻이다. (록에서) 먼저 녹음한 연주 위에 다른 악기나 목소리, 효과음을 나중에 따로 녹음해 겹치는 방법이다. 「베니 앤드 더 제츠」의 관객 환호는 스튜디오 녹음 위에 덧입힌 것이다. 그림 위에 투명 필름을 겹쳐 놓고 그 위에 새로 그려 넣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영화나 만화에서는 더빙이 외국어 대사를 우리말 목소리로 바꿔 입히는 일을 가리킨다.
페이드아웃
(말뜻) 영어 fade(희미해지다)와 out(밖으로)을 합친 말로, 서서히 희미해지며 사라진다는 뜻이다. (록에서) 곡을 딱 끊어 끝내지 않고, 음악이 계속되는 동안 소리 크기를 조금씩 줄여 사라지게 하는 마무리 방식이다. 「로켓 맨」이 후렴을 되풀이하며 이렇게 끝난다. 운동장 저편으로 멀어지는 친구의 노랫소리가 점점 작아지다 들리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영화에서는 화면이 서서히 어두워지며 장면이 바뀌는 연출을 말한다.
레지던시
(말뜻) 영어 resident(머물러 사는)에서 온 말로, 한곳에 머문다는 뜻이다. (록에서) 여러 도시를 도는 순회공연 대신, 한 공연장에서 몇 달이나 몇 년에 걸쳐 정기적으로 공연하는 방식이다. 엘튼 존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레드 피아노》와 《밀리언 달러 피아노》를 이렇게 올렸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푸드트럭과, 한자리에 가게를 내고 손님을 기다리는 식당의 차이와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미술에서는 예술가가 일정 기간 한 장소에 머물며 작업하는 프로그램을 아티스트 레지던시라고 부른다.
리믹스
(말뜻) 영어 re(다시)와 mix(섞다)를 합친 말로, 다시 섞는다는 뜻이다. (록에서) 녹음할 때 보컬, 드럼, 피아노 같은 소리는 따로따로 담기는데, 이것들을 섞어 하나의 곡으로 완성하는 일을 믹스라고 한다. 리믹스는 이미 나온 곡의 소리 조각들을 다시 섞거나 새 소리를 더해 다른 버전을 만드는 것이다. 「콜드 하트」는 엘튼의 옛 곡 여러 개를 다시 섞어 만든 곡이다. 게임의 맵 편집기로 기존 맵의 조각들을 다시 배치해 새 맵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