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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Berry

척 베리 (1926–2017)

'로큰롤에 다른 이름을 붙이려 한다면, 척 베리라고 부르면 될 것이다.' — 존 레넌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세인트루이스 출생더 빌의 중산층 가정소년원 3년2. 도약조니 존슨 트리오머디 워터스의 소개「메이벌린」3. 정점십대의 이야기꾼「조니 B. 구드」덕워크4. 시련감옥에서 쓴 노래5. 계승비틀스·스톤스 커버「마이 딩어링」 1위보이저 황금 레코드6. 황혼명예의 전당 첫 헌액블루베리 힐 공연유작 《척》베리1926–2017기타 한 대와 이야기로 십대의 노래를 만든 로…
무대가 된 도시 🧭🗺️
N미국세인트루이스1926–1960년대제퍼슨시티1944–1947웬츠빌1957–2017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가족테메타 베리

    1948년 결혼해 그의 죽음까지 68년을 함께한 아내로, 유작 《척》이 그에게 헌정됐다.

  • 멤버조니 존슨

    1952년 베리를 자신의 트리오에 들인 피아니스트로, 수십 년간 그의 녹음과 무대를 함께했다.

  • 영향머디 워터스

    베리가 우러러본 시카고 블루스의 거장으로, 그를 체스 레코드에 소개했다.

  • 프로듀서레너드 체스

    체스 레코드의 공동 창업자로 「메이벌린」을 비롯한 전성기 녹음을 만들어 냈다.

  • 영향존 레넌

    베리를 로큰롤의 다른 이름이라 부른 비틀스의 멤버로, 1972년 텔레비전에서 함께 노래했다.

  • 영향키스 리처즈

    베리의 기타를 익히며 자란 롤링 스톤스의 기타리스트로, 1986년 기념 공연의 음악 감독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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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더 빌의 소년 · 1926–1947

(빌) 1926년 10월,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찰스 에드워드 앤더슨 베리, 여섯 남매 가운데 넷째였다. 아버지 헨리는 건축 도급업자이자 침례교회 집사였고, 어머니 마사는 교사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가족이 살던 '더 빌'은 인종 분리가 엄격하던 도시에서 흑인 중산층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베리는 훗날 이 동네에서 백인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자랐다고 회고했다. (교회) 음악은 교회와 집에서 먼저 왔다. 부모는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했고, 집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섬너 고등학교 시절 학예회에서 제이 맥션의 블루스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고, 그 무렵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 들은 루이 조던의 경쾌한 이야기 노래, T-본 워커의 전기 기타, 냇 킹 콜의 또렷한 발음, 그리고 백인의 컨트리 음악이 한데 섞여 그의 귀를 넓혔다. (소년원) 1944년, 학교를 마치기 전 친구들과 캔자스시티로 차를 몰고 가 상점 몇 곳을 털고 차를 훔친 일로 체포됐다. 무장강도 유죄 판결을 받아 제퍼슨시티 인근 알고아의 청소년 교정 시설로 보내졌고, 스물한 번째 생일인 1947년 10월에야 풀려났다. 그 안에서 그는 4인조 보컬 그룹을 꾸려 시설 밖 공연까지 다녔고 권투도 했다. (불신) 이 3년은 그의 삶에 길게 남았다. 법과 권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돈과 계약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으려는 고집은 훗날 동료들이 한결같이 증언한 그의 성격이었다. 전기 작가들은 그 뿌리를 이 시절에서 찾곤 한다.

II. 낮의 일, 밤의 무대 · 1948–1955

(가정) 출소 이듬해인 1948년 10월 테메타 서그스, 애칭 토디와 결혼했다. 1950년 첫딸이 태어났고, 가장이 된 그는 자동차 공장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미용 학교를 나와 미용사로 일했으며, 아버지를 도와 목수 일도 했다. 사진 촬영으로도 돈을 벌었다. 1950년대 초에는 작은 벽돌집을 장만할 만큼 착실한 생활이었다. (트리오) 음악은 부업으로 시작됐다. 1952년 마지막 날 피아니스트 조니 존슨의 트리오에 기타리스트로 합류해 강 건너 이스트세인트루이스의 코즈모폴리턴 클럽에서 연주했다. 무대 장악력이 뛰어난 베리는 곧 밴드의 얼굴이 되었다. 술을 좋아하고 말수가 적던 존슨은 그 뒤 수십 년 동안 그의 녹음과 무대에서 피아노를 맡았다. (힐빌리) 이 클럽에서 베리는 흑인 청중 앞에서 백인의 컨트리 곡, 당시 말로 힐빌리 음악을 연주했다. 처음엔 웃음이 터졌지만 곧 사람들이 춤을 추었고, 백인 손님도 늘었다. 블루스의 리듬 위에 컨트리의 이야기와 또렷한 발음을 얹는 방식, 훗날 흑인 시장의 음악을 백인 팝 시장으로 건너가게 한(크로스오버) 그의 공식은 여기서 다듬어졌다. (시카고) 1955년 5월, 시카고에 간 베리는 우상이던 머디 워터스의 공연을 찾아가 음반을 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워터스는 체스 레코드의 레너드 체스를 소개했다. 체스는 베리가 가져간 블루스 데모보다 옛 컨트리 곡 「아이다 레드」를 고쳐 부른 노래에 더 귀를 기울였다. 그달 21일 녹음된 이 곡이 「메이벌린」이었다.

♪메이벌린 (Maybellene)1955실황 Chuck Berry · 1958

컨트리 곡 「아이다 레드」를 시카고의 블루스 연주자들과 고쳐 만든 데뷔곡이다. 이스트세인트루이스 클럽에서 실험한 흑백 음악의 결합이 처음 음반에 새겨졌다.

  • 곡은 캐딜락과 포드가 고속도로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극을 숨 가쁘게 중계하는 화법이다. 절마다 빠르게 쏟아지는 말과 되풀이되는 후렴이 번갈아 나오는 구성을 따라가 보라.
  • 윌리 딕슨의 콘트라베이스와 에비 하디의 드럼이 둘째·넷째 박을 세게 치는 리듬(백비트)으로 몰아붙인다. 제롬 그린의 마라카스가 그 위에서 쉴 새 없이 찰랑인다.
  • 가운데의 기타 솔로는 매끈한 재즈 기타와 달리 거칠게 긁히는 소리로 터져 나온다. 녹음은 수십 번의 반복 끝에 완성됐다고 전해진다.
  • 베리의 발음이 놀랄 만큼 또렷하다. 그는 흑인과 백인 청중 모두가 알아듣게 노래하려 했다고 밝혔는데, 이 또렷함이 이후 모든 곡의 서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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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십대의 이야기꾼 · 1955–1959

(메이벌린) 1955년 여름 「메이벌린」은 리듬 앤 블루스 차트 1위, 팝 차트 5위에 올랐다. 그러나 작곡자 명단에는 디제이 앨런 프리드와 러스 프래토의 이름이 함께 실려 있었다. 방송을 대가로 저작권 몫을 나누던 업계 관행이었다. 계약서를 꼼꼼히 읽지 않은 대가를 치른 베리는 이후 출연료를 공연 전에 현금으로 받는 사람으로 유명해졌다. (십대) 이후 4년 동안 「롤 오버 베토벤」 「스쿨 데이스」 「로큰롤 뮤직」 「스위트 리틀 식스틴」 「조니 B. 구드」가 이어졌다. 서른 살이 넘은 흑인 가장이 학교 종소리, 자동차, 주크박스, 데이트 같은 백인 십대의 일상을 생생하게 그려 냈다는 점을 평론가들은 그의 독창성으로 꼽는다. 그는 자기 이야기도 섞었다. 「조니 B. 구드」는 자서전에서 반쯤 자기 이야기라고 밝혔고, 원래 흑인 소년으로 설정한 주인공을 라디오를 의식해 시골 소년으로 바꿨다고 썼다. (투어) 1957년 가을 '빅기스트 쇼 오브 스타스' 순회공연에서 버디 홀리, 에벌리 브러더스 등과 전국을 돌았다. 남부에서는 흑인과 백인 출연자가 같은 무대에 서지 못하는 공연장도 있었다. 홀리는 훗날 베리의 「브라운 아이드 핸섬 맨」을 녹음했다. 무대에서 베리는 한쪽 무릎을 굽힌 채 기타를 치며 미끄러져 나가는 덕워크를 선보였는데, 1956년 뉴욕 공연에서 구김 간 양복을 감추려고 처음 했다고 회고했다. (부) 돈이 모이자 1957년 세인트루이스 서쪽 웬츠빌에 땅을 사 수영장과 무대를 갖춘 위락 시설 '베리 파크'를 지었고, 1958년에는 시내에 흑백 손님을 함께 받는 나이트클럽 '클럽 밴드스탠드'를 열었다. 흑인 사업가가 백인 상권 한복판에 클럽을 연 데 대한 지역의 반감이 컸다고 전해진다.

♪롤 오버 베토벤 (Roll Over Beethoven)1956실황 Chuck Berry · 1972 BBC TV 런던

클래식 피아노를 연습하느라 집 피아노를 차지하던 누나 루시에게서 착상했다고 베리는 말했다. 고전 음악의 권위에 맞서 리듬 앤 블루스를 내세우는 선언 같은 곡이다.

  • 곡은 반주 없이 기타 혼자 짧은 솔로로 시작한다. 두 줄을 동시에 눌러 화음처럼 울리는 주법(더블 스톱)이 여기서 이미 쓰이는데, 2년 뒤 「조니 B. 구드」 도입부의 예고편처럼 들린다.
  • 화자는 디제이와 청취자에게 말을 걸듯 들뜬 어조로 새 음악을 틀라고 재촉한다. 베토벤과 차이콥스키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장난스러운 대비에 귀 기울여 보라.
  • 조니 존슨의 피아노가 오른손의 잘게 떨리는 음으로 기타의 빈자리를 메운다. 기타와 피아노가 대화하듯 주고받는 사이가 이 시기 체스 녹음의 특징이다.
  • 비틀스가 1963년 조지 해리슨의 노래로 녹음한 판과 비교해 들으면, 영국 밴드가 베리의 리듬을 얼마나 충실히 익혔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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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B. 구드 (Johnny B. Goode)1958실황 Chuck Berry · Springsteen 협연 · 1995

기타 하나로 출세하는 시골 소년의 이야기는 베리 자신의 꿈을 옮긴 것이었다. 이 곡은 1977년 보이저호에 실려 지구를 떠났다.

  • 첫 몇 초의 기타 도입부는 로큰롤에서 가장 유명한 짧은 악구(리프) 가운데 하나다. 두 줄을 함께 눌러 긁는 더블 스톱 주법으로, 루이 조던 밴드의 기타리스트 칼 호건이 1946년 녹음에서 쓴 악구를 빌려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가사는 3인칭 동화처럼 주인공의 내력을 들려주다가 후렴에서 응원 구호로 바뀐다. 이야기꾼과 응원단 사이를 오가는 화법의 변화를 들어 보라.
  • 세션 기록에는 피아노를 조니 존슨이 아니라 래피엣 리크가 쳤다고 적힌 경우가 많다. 리듬 섹션은 체스의 세션 연주자들이 맡았는데, 피아노가 기타보다 한발 물러서 배경을 채우는 균형에 주목하라.
  • 1986년 공연 영화 「헤일! 헤일! 로큰롤」의 실황과 비교하면 육십 대의 베리가 같은 도입부를 얼마나 거칠고 자유롭게 바꿔 치는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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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피스, 테네시 (Memphis, Tennessee)1959실황 Chuck Berry · John Lennon · Yoko Ono

원래 「백 인 더 USA」의 뒷면으로 나온 곡이다. 질주하는 십대 찬가 사이에서 베리가 보여 준 조용하고 쓸쓸한 이야기 솜씨다.

  • 화자는 장거리 전화 교환원에게 누군가와 연결해 달라고 차분히 부탁한다. 연인을 찾는 노래처럼 흘러가다 마지막 절에서야 그 상대가 이혼으로 헤어진 어린 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반전이 핵심이다.
  • 후렴이 따로 없는 형식이다. 같은 선율의 절이 이어지며 정보가 조금씩 풀리는 구성이라, 처음 들을 때는 결말을 미리 찾아보지 말 것을 권한다.
  • 기타는 줄을 손바닥으로 살짝 눌러 짧고 둔탁하게 끊는 소리로 낮은 선율을 반복하고, 드럼은 아주 가볍게 따라간다. 다른 히트곡의 질주와 정반대로 절제된 편성처럼 들린다.
  • 비틀스가 BBC 라디오에서 연주했고, 1964년 조니 리버스의 판은 미국에서 큰 히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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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감옥과 바다 건너의 메아리 · 1959–1965

(체포) 1959년 12월, 그는 미성년자를 부도덕한 목적으로 주 경계를 넘어 데려왔다는 혐의, 이른바 맨 법 위반으로 체포됐다. 남서부 순회 중 만난 14세 소녀를 세인트루이스로 데려와 클럽에서 일하게 했다가 해고했는데, 소녀가 다른 일로 체포되면서 사건이 드러났다. 1960년 첫 재판은 판사의 인종차별적 언행 때문에 상급 법원에서 뒤집혔지만, 1961년 재심에서 다시 유죄가 선고됐다. 베리는 1962년 2월부터 1963년 10월까지 연방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감방) 갇혀 있는 동안에도 그는 펜을 놓지 않았다. 「내딘」 「노 파티큘러 플레이스 투 고」 「유 네버 캔 텔」 「약속의 땅」이 이 무렵 쓰였다. 미국 남부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그린 「약속의 땅」의 지명을 정확히 쓰려고 교도소 도서관에 지도책을 청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몸이 묶인 사람이 쓴 노래들이 모두 자동차와 길과 탈출을 노래한다는 점을 많은 평론가가 짚었다. (침공) 그가 갇혀 있는 사이 대서양 건너에서 그의 노래는 새 세대의 교과서가 되어 있었다. 롤링 스톤스는 1963년 첫 싱글로 그의 「컴 온」을 냈고, 비틀스는 「롤 오버 베토벤」과 「로큰롤 뮤직」을 녹음했다. 미국에서는 비치 보이스의 「서핑 USA」가 「스위트 리틀 식스틴」의 선율을 그대로 가져다 썼고, 결국 베리가 작곡자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영국) 출소한 베리는 이 열풍을 타고 1964년 다시 차트에 올랐고, 그해 5월 칼 퍼킨스와 함께 첫 영국 순회공연을 했다. 청중은 열광했지만 무대 뒤의 그는 냉담하고 철저히 사업적이었다고 동료들은 기억한다. 출소 뒤 그가 사람을 더욱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여러 전기 작가의 공통된 관찰이다.

♪유 네버 캔 텔 (You Never Can Tell)1964영화 장면 — 펄프 픽션

감옥에서 쓴 노래 가운데 하나로, 출소 뒤 발표됐다. 몸이 묶인 시간에 그는 오히려 갓 결혼한 젊은 부부의 소박한 행복을 그렸다.

  • 기타 대신 피아노와 색소폰이 곡을 이끈다. 피아노가 뉴올리언스풍으로 통통 튀는 반주를 깔고, 색소폰이 절 사이마다 짧게 대답한다.
  • 화자는 이웃의 결혼을 지켜보는 관찰자다. 노인들이 고개를 저으며 하는 옛말을 후렴에 되풀이하는데, 그 담담하고 흐뭇한 어조가 곡 전체의 정서다.
  • 베리의 기타 솔로가 거의 없다는 점이 오히려 특이하다. 그는 기타리스트이기 전에 이야기꾼이었음을 보여 주는 곡으로 자주 꼽힌다.
  • 1994년 영화 「펄프 픽션」의 트위스트 춤 장면에 쓰이면서 새 세대에게 다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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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 (Promised Land)1964무대 Chuck Berry · 1975 미국 TV 《Sammy and Company》

교도소 도서관의 지도책을 펴 놓고 쓴 노래다. 갇힌 사람이 버지니아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미국을 가로지르는 여정을 상상했다.

  • 선율은 옛 컨트리 곡 「워배시 캐넌볼」에서 빌려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차 노래의 선율 위에 버스, 기차, 비행기로 갈아타는 여행기를 얹었다.
  • 절마다 실제 지명이 줄지어 나온다. 화자가 남부 도시들을 지나는 경로가 당시 민권 운동가들의 '프리덤 라이드' 행로와 겹친다고 평론가들은 짚어 왔다.
  • 조니 존슨의 피아노가 왼손으로 낮은 음을 굴리는 반주(부기우기)로 쉴 새 없이 전진하는 엔진 노릇을 한다.
  • 엘비스 프레슬리가 1974년 녹음한 판은 훨씬 빠르고 화려하다. 원곡의 담담한 여행기와 비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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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기타 하나 든 떠돌이 · 1966–1985

(이적) 1966년 그는 큰 선급금을 받고 머큐리 레코드로 옮겼으나 옛 히트곡을 다시 녹음하는 데 그쳤다. 1970년 체스로 돌아왔을 때 레너드 체스는 이미 1969년 세상을 떠난 뒤였다. 새 곡보다 공연이 그의 생계가 되었다. (방식) 이 시기 그는 독특한 순회 방식을 굳혔다. 밴드 없이 기타 하나만 들고 비행기를 타고, 공연지의 현지 밴드를 고용해 리허설 없이 무대에 섰다. 출연료는 공연 전에 현금으로 받았다. 1973년 메릴랜드에서 그의 반주를 맡은 무명 밴드에는 젊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있었다. 스프링스틴은 베리가 공연 직전에 도착해 곡목도 알려 주지 않았고, 그저 척 베리 노래를 하면 된다고만 했다고 회고했다. (역주행) 1972년 영국 코번트리 공연 실황 「마이 딩어링」이 뜻밖에 그의 유일한 빌보드 1위가 됐다. 같은 해 그는 텔레비전 「마이크 더글러스 쇼」에서 존 레넌과 함께 노래했다. 비틀스의 「컴 투게더」가 베리의 「유 캔트 캐치 미」를 닮았다는 출판사의 소송은 레넌의 1975년 커버 앨범 《로큰롤》로 이어졌고, 엘비스 프레슬리는 1974년 「약속의 땅」을 녹음했다. 1977년 우주로 떠난 보이저호의 황금 레코드에는 「조니 B. 구드」가 실렸다. (세금) 1979년 6월 그는 지미 카터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연주했다. 그러나 한 달 뒤 소득세 탈루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해 캘리포니아 롬폭의 교도소에서 넉 달을 복역하고, 자선 공연을 포함한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평생 현금만 고집하던 습관이 결국 그를 세 번째로 갇히게 한 셈이었다.

♪마이 딩어링 (My Ding-a-Ling)1972실황 Chuck Berry · 1972

1972년 2월 영국 코번트리 공연에서 녹음한 실황으로, 그의 유일한 빌보드 1위 곡이다. 데이브 바살러뮤가 1952년 발표한 짓궂은 노래를 고쳐 불렀다.

  • 곡은 아이가 받은 장난감 이야기를 하는 척하면서 이중의 뜻을 숨긴 농담 노래다. 영국에서는 방송 금지를 요구하는 시민 단체의 운동까지 벌어졌다.
  • 들을 곳은 노래보다 관객이다. 베리가 객석을 둘로 나눠 후렴을 시키고 받아 넘기는 주고받기(콜 앤드 리스폰스)가 녹음의 절반을 차지한다.
  • 베리의 말투에 귀 기울여 보라. 리허설 없이 현지 밴드와 무대에 서던 시절, 그는 기타보다 입담으로 객석을 다루는 데 능숙했다.
  • 평론가들은 대개 그의 대표작과 거리가 먼 곡으로 보지만, 서른 살 넘게 어린 청중을 손바닥 위에 놓던 공연가의 기술은 여기서 가장 잘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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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고향의 저녁 · 1986–2017

(헌액) 1986년 1월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 첫 헌액자를 발표할 때, 엘비스 프레슬리, 리틀 리처드, 버디 홀리와 함께 그의 이름이 맨 앞에 있었다. 소개를 맡은 사람은 키스 리처즈였다. 리처즈는 1981년 뉴욕의 무대 뒤에서 베리에게 주먹을 맞은 일을 웃으며 털어놓곤 했다. (다큐) 그해 10월 60세 생일을 맞아 세인트루이스 폭스 극장에서 열린 기념 공연을 테일러 해크퍼드 감독이 촬영해 1987년 「헤일! 헤일! 로큰롤」로 내놓았다. 음악 감독 리처즈와 베리가 「캐럴」의 기타 도입부를 두고 리허설 중 팽팽하게 맞서는 장면은 이 영화의 유명한 대목이다. 같은 해 그는 대필 작가 없이 직접 쓴 자서전을 펴냈다. (굴곡) 말년도 평탄하지 않았다. 1990년 웬츠빌 자택 수색에서 마리화나가 나와 경범죄 유죄를 인정하고 집행유예를 받았다. 같은 무렵 그가 운영하던 식당 여자 화장실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했다는 민사 소송이 잇따랐고, 사건은 합의로 끝났다. 2000년에는 조니 존슨이 여러 곡의 공동 작곡자 지위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으나,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블루베리) 1996년부터 2014년까지 그는 거의 매달 세인트루이스 델마 거리의 식당 블루베리 힐 지하 공연장에서 연주했다. 2011년 그 거리에 그의 동상이 섰다. (마지막) 2016년 90세 생일에 그는 68년을 함께한 아내 토디에게 바치는 새 앨범을 예고했고, 2017년 3월 18일 웬츠빌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앨범 《척》은 그해 6월 나왔다. 아들 찰스 베리 주니어와 딸 잉그리드는 그의 말년 무대에서 기타와 하모니카를 맡았고, 이 마지막 앨범에도 참여했다.

♪앨범 《척》 (Chuck)2017공식 MV 「Big Boys」 — Chuck Berry

38년 만의 새 스튜디오 앨범이자 유작이다. 아내 토디에게 헌정됐고, 아들과 딸, 오랜 반주자들이 함께했다.

  • 영상으로 고른 곡은 「빅 보이스」다. 어른들 틈에 끼고 싶어 안달하는 소년의 이야기로, 1950년대 십대 노래의 화법을 아흔 가까운 나이에 그대로 되살렸다.
  • 「빅 보이스」에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톰 모렐로가 기타로, 너새니얼 레이트리프가 보컬로 참여했다. 중간 솔로에서 모렐로 특유의 날카로운 소리가 베리의 고전적 리듬 위로 겹쳐지는 순간을 들어 보라.
  • 기타 톤은 1950년대보다 굵고 둥글게 들린다. 그러나 두 줄을 함께 긁는 더블 스톱과 짧게 끊어 치는 리듬은 변하지 않았다.
  • 앨범의 다른 곡 「레이디 B. 구드」는 「조니 B. 구드」의 짝을 이루는 노래다. 60년 전 자신에게 답장을 보내는 듯한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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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조니 B. 구드」의 철자에는 주소가 숨어 있다. 베리가 태어난 집은 세인트루이스의 구드 애비뉴에 있었고, 그는 흔한 철자 Good 대신 이 거리 이름을 썼다. 피아니스트 조니 존슨의 이름에 대한 경의도 담겼다고 전해지지만, 베리 자신은 이 노래를 주로 자기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기타 소년의 성공담이라는 신화에 가려, 곡 제목이 출생지의 번지수에서 왔다는 대목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로큰롤 반항아의 이미지와 달리, 그는 한때 공인 미용사였다. 그가 다닌 미용 학교는 흑인 여성 사업가 애니 멀론이 세운 포로 칼리지 계열로, 당시 세인트루이스 흑인 중산층의 자부심 같은 기관이었다. 전기에서는 공장 청소부와 미용사, 목수 일을 함께 했던 1950년대 초의 평범한 가장으로서의 삶이 꼼꼼히 기록돼 있지만, 대중적인 이야기에서는 대개 한 줄로 지나간다. 「조니 B. 구드」가 보이저호의 황금 레코드에 실리기까지 반대도 있었다. 선곡에 자문한 민속학자 앨런 로맥스는 로큰롤이 유치하다며 반대했고, 칼 세이건은 지구에 청소년이 아주 많다고 응수했다고 세이건 팀의 기록 『지구의 속삭임』에 남아 있다. 1978년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는 외계인의 첫 답신이 척 베리를 더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는 촌극으로 이 일을 패러디했다. 「메이벌린」의 작곡자 명단에 실렸던 앨런 프리드와 러스 프래토의 이름은 그 뒤로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베리는 저작권 갱신 시점인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이 곡의 단독 작곡자 지위를 되찾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뷔곡의 수익 일부를 30년 가까이 남과 나눠야 했던 셈이다.

용어 노트 📚🔎

리프

(록에서) 곡 안에서 여러 번 되풀이되는 짧고 귀에 박히는 악구를 말한다. 노래의 선율과 별개로, 주로 기타나 피아노가 곡의 얼굴처럼 반복해 연주한다. 「조니 B. 구드」의 첫 몇 초가 대표적이다. 체육대회에서 반마다 짧은 응원 구호를 정해 계속 외치면, 구호만 들어도 어느 반인지 알게 되는 것과 같다.

더블 스톱

(말뜻) 현악기에서 스톱(stop)은 손가락으로 줄을 눌러 막는 것을 말한다. 더블 스톱은 두(double) 줄을 한꺼번에 누른다는 뜻이다. (록에서) 기타의 두 줄을 동시에 눌러 두 음을 함께 긁는 주법이다. 한 음만 칠 때보다 소리가 두툼하고 거칠게 울려서, 척 베리 기타 소리의 상징이 됐다. 친구 둘이 같은 구호를 서로 다른 높이로 동시에 외치면 한 사람이 외칠 때보다 소리가 꽉 차게 들리는 것과 비슷하다.

백비트

(말뜻) 영어로 뒤쪽(back)의 박(beat)이라는 뜻이다. 한 마디 네 박 가운데 앞쪽이 아니라 뒤따라오는 박을 가리킨다. (록에서) 네 박 가운데 둘째와 넷째 박을 드럼으로 세게 쳐서 강조하는 리듬이다. 로큰롤이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가장 큰 비밀이 여기에 있다.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칠 때 하나-둘-셋-넷 중 둘과 넷에서만 짝 치면 갑자기 신나게 들리는데, 바로 그 짝이 백비트다.

부기우기

(록에서) 피아노의 왼손이 낮은 음을 일정한 무늬로 쉬지 않고 굴리며 반주하는 연주 방식이다. 1920~40년대 미국 흑인 피아니스트들에게서 시작돼 로큰롤 피아노의 바탕이 됐다. 기차가 레일 이음새를 지날 때 덜컹덜컹 같은 소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왼손은 같은 박자로 계속 달리고 오른손이 그 위에서 자유롭게 논다.

리듬 앤 블루스

(말뜻) 리듬(rhythm)과 블루스(blues)를 합친 말이다. 1949년 미국 음악 잡지 빌보드가 흑인 음악 차트를 부르던 낡고 차별적인 이름 대신 이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록에서) 1940~50년대 미국 흑인 음악가들이 블루스에 강한 박자와 관악기, 전기 기타를 더해 만든 춤추기 좋은 음악이다. 로큰롤은 여기서 갈라져 나왔다. 학교 축제에서 조용한 합창곡을 밴드가 신나는 박자로 바꿔 연주하면 분위기가 확 바뀌는데, 블루스가 리듬 앤 블루스로 바뀐 것도 그런 변화였다.

크로스오버

(말뜻) 영어로 건너간다(cross over)는 뜻이다. (록에서) 한 시장이나 청중층을 위해 만든 음악이 다른 쪽에서도 인기를 얻는 것을 말한다. 1950년대에는 흑인 청중을 위한 리듬 앤 블루스 곡이 백인 팝 차트에 오르는 일을 가리켰고, 척 베리가 그 길을 크게 넓혔다. 우리 반에서만 유행하던 놀이가 옆 반, 다른 학년까지 퍼져 학교 전체의 유행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자동차에서는 승용차와 SUV의 특징을 섞은 차를, 농구에서는 공을 좌우로 바꿔 튀기며 수비를 따돌리는 드리블을 크로스오버라고 부른다.

콜 앤드 리스폰스

(말뜻) 부르고(call) 대답한다(response)는 뜻이다. (록에서) 한 사람이 한 구절을 부르면 다른 사람이나 청중이 받아 부르는 방식이다. 아프리카 음악과 미국 흑인 교회 음악에서 이어져 블루스와 로큰롤에 자리 잡았다. 수련회에서 선생님이 구호를 외치면 모두가 정해진 대답을 크게 외치는 것과 꼭 같은 구조다.

덕워크

(말뜻) 영어로 오리(duck)처럼 걷기(walk)라는 뜻이다. (록에서) 척 베리가 유명하게 만든 무대 동작이다. 한쪽 무릎을 깊이 굽히고 다른 다리를 앞으로 뻗은 채 기타를 치며 무대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뒤의 기타리스트들, 특히 AC/DC의 앵거스 영 같은 이들이 자기 식으로 이어받았다. 체육 시간의 오리걸음을 떠올리면 되는데, 기타를 치면서 그 자세로 무대를 가로지른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힘든 동작인지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