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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ole King

캐럴 킹 (1942–)

열일곱에 남의 목소리를 위해 노래를 쓰기 시작해, 스물아홉에 자기 목소리로 한 시대의 거실을 채운 피아니스트.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뉴욕 맨해튼 출생어머니의 피아노퀸스 칼리지2. 작곡실제리 고핀과 결혼셔럴스 첫 1위어리사의 내추럴 우먼3. 서부로럴 캐니언 정착밴드 더 시티제임스 테일러4. 정점태피스트리 15주 1위그래미 4개 부문잇츠 투 레이트5. 산아이다호 정착로키산맥 보호 운동셀린 디옹 더 리즌6. 귀환트루바두어 재회거슈윈상 첫 여성뮤지컬 뷰티풀킹1942–브릴 빌딩의 10대 작곡가에서 「태피스트리」의…
무대의 여정 🧭🗺️
N미국뉴욕1942–1960년대웨스트오렌지1960년대로스앤젤레스1968–1970년대 말스탠리 (아이다호)1970년대 말–현재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우정닐 세다카

    브루클린 시절부터 알던 친구로, 1959년 그녀의 이름을 딴 「오! 캐럴」을 히트시켰고 킹은 답가 「오! 닐」로 화답했다.

  • 동료제리 고핀

    첫 남편이자 작사 파트너로, 1960년대 수많은 히트곡을 함께 썼고 1990년 함께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 후원돈 커슈너

    알던 뮤직을 이끌며 10대 부부 작곡팀을 고용하고 그들의 곡을 가수들에게 연결해 준 출판업자였다.

  • 영향어리사 프랭클린

    「어 내추럴 우먼」을 불러 고전으로 만들었고, 그 해석은 킹이 자기 목소리로 곡을 다시 부를 때의 기준점이 됐다.

  • 동료루 애들러

    오드 레코드의 수장으로 더 시티부터 「태피스트리」까지 킹의 앨범을 제작했다.

  • 우정제임스 테일러

    무대 공포에 시달리던 킹을 관객 앞에 세운 친구로, 「유브 갓 어 프렌드」를 함께 나누고 2010년 재회 투어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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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브루클린의 피아노 · 1942–1958

(출생) 1942년 2월, 미국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에서 캐럴 조앤 클라인(Carol Joan Klein)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시드니 클라인은 뉴욕시 소방관이었고, 어머니 유지니아는 교사였다. 유대계 중산층 가정이었고, 가족은 곧 브루클린으로 옮겨 그곳에서 그녀를 키웠다. (어머니) 피아노를 처음 가르친 사람은 어머니였다. 네 살 무렵부터 건반 앞에 앉았고, 음을 듣는 대로 짚어 내는 아이였다고 본인이 회고했다. 학교 진도가 빨라 또래보다 일찍 상급 학년으로 올라갔고, 이 조숙함은 훗날 10대 작곡가로 일하게 되는 배경이 됐다. (로큰롤) 1950년대 중반 라디오에서 쏟아지던 두왑과 로큰롤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제임스 매디슨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코사인스(Co-Sines)라는 보컬 그룹을 만들어 노래했고, 이 무렵부터 캐럴 킹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직접 쓴 곡을 들고 맨해튼의 음반사와 음악 출판사를 찾아다녔고, 1958년 ABC-파라마운트에서 첫 싱글을 냈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대학) 같은 해 열여섯 살에 퀸스 칼리지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훗날 남편이자 작사 파트너가 될 제리 고핀을 만났고, 역시 무명이던 폴 사이먼과 함께 출판사에 낼 견본 녹음을 하며 용돈을 벌기도 했다. 노래를 직접 부르는 사람보다 노래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길이 먼저 그녀 앞에 열리고 있었다.

II. 1650 브로드웨이 · 1959–1967

(결혼) 1959년, 열일곱 살에 제리 고핀과 결혼했고 이듬해 첫딸이 태어났다. 두 사람은 낮에는 각자 생계를 위한 일을 하고 밤에는 곡을 썼다. 고핀이 가사를, 킹이 곡을 맡는 분업이었다. 몇 해 뒤 둘째 딸이 태어났다. (커슈너) 이들을 고용한 이는 맨해튼 1650 브로드웨이에 사무실을 둔 알던 뮤직의 돈 커슈너였다. 피아노 한 대가 겨우 들어가는 작은 방에서 작곡가들이 나란히 곡을 썼고, 훗날 이 생태계는 브릴 빌딩 사운드로 불리게 된다. 한 해 전 브루클린 친구 닐 세다카가 그녀의 이름을 딴 「오! 캐럴」을 히트시켰을 때, 고핀과 킹은 답가로 「오! 닐」을 써서 그녀가 직접 불렀다. (첫1위) 1960년 셔럴스에게 준 「윌 유 러브 미 투모로」가 이듬해 1월 빌보드 1위에 올랐다. 킹은 이 곡의 현악 편곡까지 직접 썼다. 이후 드리프터스의 「업 온 더 루프」, 아이 돌보미였던 리틀 에바가 부른 「더 로코모션」, 시폰스의 「원 파인 데이」가 이어졌고, 비틀스는 「체인스」를 녹음했다. 자신이 부른 「잇 마이트 애즈 웰 레인 언틸 셉템버」도 1962년 히트했다. 훗날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윌 유 러브 미 투모로」를 녹음해, 그 녹음은 그녀 사후인 2011년에 공개됐다. (내추럴 우먼) 1967년 애틀랜틱의 제리 웩슬러가 제목을 건네 탄생한 「(유 메이크 미 필 라이크) 어 내추럴 우먼」을 어리사 프랭클린이 불러 정점을 찍었다.

♪잇 마이트 애즈 웰 레인 언틸 셉템버 (It Might as Well Rain Until September)1962노래 Carole King

고핀과 함께 남의 목소리를 위해 쓰던 시절, 킹 자신이 부른 노래가 처음으로 크게 히트한 곡이다. 커슈너가 세운 디멘션 레코드에서 나와 영국에서 특히 사랑받았다.

  • 원래 다른 가수에게 주려고 만든 곡을 킹이 직접 부른 녹음이 그대로 발매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식 가수라기보다 작곡가가 곡의 윤곽을 보여 주는 듯한 소박함이 남아 있다.
  • 스무 살 무렵의 목소리는 가볍고 밝아, 훗날 「태피스트리」의 낮고 차분한 음색과 비교해 들으면 10년 사이의 변화가 뚜렷하다.
  • 여름 내내 떨어져 있는 연인을 그리워하는 10대의 정서를, 경쾌한 리듬 위에 오히려 밝게 실어 보내는 대비가 이 시대 틴 팝의 전형처럼 들린다.
  • 짧은 길이 안에 도입·절·후렴이 군더더기 없이 이어지는 짜임새에서, 라디오용 3분짜리 노래를 공장처럼 다듬던 1650 브로드웨이 작곡실의 솜씨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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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서쪽의 문 · 1968–1970

(이혼) 1968년 고핀과 갈라선 킹은 두 딸을 데리고 로스앤젤레스로 옮겨 로럴 캐니언에 자리 잡았다. 작곡 파트너와 남편을 한꺼번에 잃은 셈이었고, 이제는 가사까지 스스로 쓰거나 새로운 작사가를 찾아야 했다. (더시티) 이곳에서 기타리스트 대니 코치마, 베이시스트 찰스 라키와 함께 밴드 더 시티를 꾸려 1968년 앨범 「나우 댓 에브리싱스 빈 세드」를 냈다. 음반사는 프로듀서 루 애들러의 오드였다. 그러나 킹이 라이브 공연을 꺼려 홍보가 어려웠고, 앨범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남의 노래를 쓰는 데 익숙했던 그녀에게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여전히 낯설었다. (라키) 1970년 찰스 라키와 재혼했다. 같은 해 첫 솔로 앨범 「라이터」를 냈는데, 제목 그대로 자신이 써 온 노래를 직접 부르는 작가로서의 출발 선언에 가까웠다. 판매는 미미했지만 담백한 피아노와 꾸밈없는 목소리라는 이후의 색깔이 이미 드러나 있었다. (테일러) 결정적 계기는 제임스 테일러였다. 그의 녹음에 피아노를 치며 가까워졌고, 테일러는 그녀에게 무대에서 자기 노래를 직접 부르라고 권했다. 1970년 그의 공연에 함께 오르며 킹은 비로소 관객 앞에서 노래하는 법을 익혔다. 로스앤젤레스의 음악가 친구들이 서로의 녹음을 오가던 공동체가 그녀에게 두 번째 출발의 바탕이 됐다.

IV. 태피스트리 · 1971–1972

(녹음) 1971년 1월, 루 애들러의 프로듀싱으로 할리우드의 A&M 스튜디오에서 「태피스트리」를 녹음했다. 대니 코치마, 남편 찰스 라키, 제임스 테일러, 조니 미첼 등 가까운 동료들이 함께했다. 화려한 편곡 대신 피아노와 목소리를 한가운데 두는 방식이었다. (재해석) 앨범에는 새 노래와 함께 1960년대에 남에게 주었던 곡들이 실렸다. 「윌 유 러브 미 투모로」는 느린 고백으로, 「어 내추럴 우먼」은 어리사 프랭클린의 웅장한 해석과 달리 낮고 조용한 독백으로 다시 태어났다. 남의 목소리를 빌렸던 노래를 서른을 앞둔 자신의 목소리로 되찾는 과정이었다. 이혼 뒤 새로 시작하는 한 여성의 독립과 회복이 앨범 전체에 흐른다는 것이 비평의 대체적인 합의다. (정점) 2월에 나온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15주 머물렀고, 차트에는 6년 가까이 남았다. 작사가 토니 스턴과 쓴 「잇츠 투 레이트」는 5주 연속 싱글 1위였다. 1972년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올해의 레코드·올해의 노래·여성 팝 보컬 등 네 부문을 받았다. 이에 앞서 1971년 6월 18일에는 카네기 홀에서 첫 헤드라인 공연을 열었다. (성공) 같은 해 말 낸 「뮤직」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명성을 즐기기보다 가정과 일상을 지키려 했다. 라키와 사이에서 두 아이를 두었고, 작곡가 시절부터 이어 온 조용한 생활 방식을 쉽게 바꾸지 않았다.

♪아이 필 디 어스 무브 (I Feel the Earth Move)1971실황 Carole King · 1971 BBC In Concert

「태피스트리」의 첫 곡이자 「잇츠 투 레이트」와 한 장의 싱글로 묶인 곡이다. 조용한 작곡가라는 인상을 첫 소절부터 깨뜨린다.

  • 피아노가 같은 음형을 힘 있게 두드리며 시작해, 건반 하나가 리듬 악기 노릇까지 해낸다. 킹의 피아노가 곧 이 앨범의 엔진이라는 사실을 첫 곡에서 바로 알린다.
  • 보컬은 다른 수록곡보다 훨씬 거칠고 힘차다. 사랑에 빠진 몸의 떨림을 땅이 흔들리는 감각에 빗댄 노래답게, 목소리도 숨이 찬 듯 앞으로 밀고 나간다.
  • 베이스(찰스 라키)와 드럼이 피아노와 같은 박을 단단히 맞물려, 소박한 편성인데도 묵직한 추진력이 생긴다.
  • 대니 코치마의 일렉트릭 기타가 짧게 끼어들어 곡에 록의 질감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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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츠 투 레이트 (It's Too Late)1971실황 Carole King · Danny Kootch (기타) · 1971 BBC

작사가 토니 스턴과 쓴 이 곡은 5주 동안 싱글 1위를 지켰고, 이듬해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를 받았다. 이혼 뒤 다시 출발하던 킹의 시기와 겹쳐 들리는 이별 노래다.

  • 누구의 잘못도 아닌 채 식어 버린 관계를 담담히 인정하는 화법이 특징이다. 울부짖는 대신 체념에 가까운 차분함으로 이별을 말해, 당시 팝의 이별 노래와 결이 달랐다.
  • 도미솔에 한 음을 더 얹은 부드럽고 아련한 화음(세븐스 코드)이 많이 쓰여, 재즈처럼 은은한 색채가 곡 전체를 감싼다.
  • 간주에서 대니 코치마의 기타 솔로에 이어 커티스 에이미의 소프라노 색소폰 솔로가 나온다. 이 두 솔로가 노래를 잠시 연주곡처럼 열어 두어 곡에 여유를 준다.
  • 드럼은 세게 몰아치지 않고 느슨하게 흔들리는 박을 유지해, 서두르지 않는 정서와 꼭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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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내추럴 우먼 (A Natural Woman)1971실황 Carole King · 1972 오클랜드

1967년 어리사 프랭클린에게 준 곡을 4년 뒤 「태피스트리」에서 직접 불렀다. 같은 노래가 부르는 사람에 따라 얼마나 다른 고백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 어리사 프랭클린의 원곡이 가스펠식으로 끝까지 치솟는 반면, 킹은 낮은 음역에서 거의 말하듯 노래해 사적인 독백처럼 들린다.
  • 피아노 반주가 곡의 중심을 지키며, 화려한 편곡 없이 화음의 흐름만으로 감정을 쌓아 올린다.
  • 후렴에서도 목소리를 크게 터뜨리지 않고 한 단계만 힘을 더하는 절제가, 작곡가가 자기 노래를 대하는 조심스러움처럼 느껴진다.
  • 2015년 케네디 센터 공로상 무대에서 어리사 프랭클린이 이 곡을 부를 때 객석의 킹이 일어나 환호하던 장면은 두 해석이 한자리에서 만난 순간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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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정점 이후 · 1973–1980

(공원) 1973년 5월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무료 공연을 열어 10만 명 안팎의 관객을 모았다. 무대 공포로 순회공연을 거부하던 몇 해 전과는 딴사람이었다. 같은 해 낸 「판타지」는 빈곤과 도시의 삶을 다룬 연작 형식의 앨범으로, 개인적 고백을 넘어 사회를 바라보려는 시도였다. (재즈맨) 1974년 「랩 어라운드 조이」의 「재즈맨」이 싱글 2위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동화 작가 모리스 센닥과 손잡고 애니메이션 「리얼리 로지」의 음악을 만들어 아이들을 위한 노래에도 손을 댔다. 1976년 「서러브레드」를 끝으로 오드와의 관계를 마무리했다. (상실) 1976년 라키와 갈라섰고, 이듬해 릭 에버스와 결혼해 캐피톨에서 「심플 싱스」를 냈다. 에버스는 1978년 약물 과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시기 앨범들은 「태피스트리」 시절만큼 팔리지 않았고, 그녀는 도시와 업계의 소란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아이다호) 1970년대 말 아이다호의 산악 지대로 거처를 옮겼다. 전기도 충분치 않은 외딴 땅에서 살며 자연과 가까운 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에는 고핀과 함께 쓴 옛 노래들을 직접 부른 「펄스」를 냈고, 그중 「원 파인 데이」가 다시 싱글 차트에 올랐다. 떠나온 시절을 원망 대신 노래로 다시 품은 앨범이었다.

♪재즈맨 (Jazzman)1974실황 Carole King · 1981 《One to One》 공연

「태피스트리」 이후의 앨범들이 차트에서 내려앉던 시기에 싱글 2위까지 오른 곡이다. 작사는 데이비드 파머가 맡았다.

  • 톰 스콧의 색소폰이 곡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처럼 나선다. 노래 제목 그대로, 연주자를 찬미하는 노래를 실제 연주가 증명하는 구조다.
  • 킹의 보컬은 「태피스트리」 때보다 밝고 경쾌해, 무대 공포를 벗어나 대형 공연을 치르던 무렵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듯하다.
  • 리듬 섹션은 1970년대 중반 로스앤젤레스 세션 연주자들 특유의 매끈한 그루브를 들려준다.
  • 음악이 사람을 위로하고 들뜨게 하는 힘에 대한 노래라는 점에서, 작곡가로 살아온 그녀 자신의 고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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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산과 무대 사이 · 1981–2009

(환경) 아이다호에 정착한 뒤 킹은 북부 로키산맥의 숲과 야생 지대를 지키는 운동에 오랫동안 매달렸다. 광범위한 원시림을 보호구역으로 묶는 법안(북부 로키 생태계 보호법)을 지지하며 의회 청문회에 나가 증언하기도 했다. 민주당 후보들의 선거 운동에도 공개적으로 나섰다. 1982년 재혼했으나 1989년 갈라섰다. (재기) 1989년 앨범 「시티 스트리츠」에는 에릭 클랩턴이 기타로 참여했다. 1990년에는 제리 고핀과 함께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작곡가로 헌액됐다. 1992년 영화 「그들만의 리그」에 「나우 앤드 포에버」를 실었고, 1994년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에 배우로 섰다. (셀린) 1997년 셀린 디옹의 「렛츠 토크 어바웃 러브」에 실린 「더 리즌」을 공동 작곡하고 녹음에도 목소리를 보탰다. 이듬해 VH1 「디바스 라이브」 무대에서 셀린 디옹, 머라이어 캐리, 어리사 프랭클린 등과 함께 서며 그녀의 노래가 다음 세대 디바들에게 어떤 고전이 됐는지를 보여 주었다. (독립) 2000년 드라마 「길모어 걸스」의 주제가로 쓰인 「웨어 유 리드」를 딸과 함께 다시 녹음했다. 2001년에는 자신의 레이블 로킹게일에서 「러브 메이크스 더 월드」를 냈다. 2000년대 중반에는 거실처럼 꾸민 무대에서 피아노 한 대로 노래와 이야기를 엮는 리빙 룸 투어를 돌았다. 대형 음반사 없이도 자기 방식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자리를 스스로 만든 셈이었다.

VII. 다시, 친구 · 2010–2026

(재회) 2010년 제임스 테일러와 트루바두어 재회 투어를 돌았다. 투어에 앞서 2007년 트루바두어 50주년 공연을 담은 실황 앨범 「라이브 앳 더 트루바두어」가 2010년 나와 빌보드 앨범 차트 4위로 데뷔했다. 무대 공포를 이기게 해 준 친구와 같은 노래를 다시 부르는 자리였다. (회고) 2012년 자서전 『어 내추럴 우먼』을 펴내 브루클린의 유년부터 작곡실과 로럴 캐니언, 아이다호의 삶까지를 스스로 정리했다. 이듬해 미국 의회도서관이 주는 거슈윈 대중음악상을 여성으로서는 처음 받았다. 2014년 6월 첫 남편이자 평생의 작곡 파트너 제리 고핀이 세상을 떠났다. (뮤지컬) 같은 해 그녀의 젊은 시절을 그린 뮤지컬 「뷰티풀」이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려 오랫동안 공연됐다. 2015년 케네디 센터 공로상 시상식에서는 어리사 프랭클린이 「어 내추럴 우먼」을 불렀고, 객석의 킹이 벌떡 일어나 환호하던 모습이 널리 회자됐다. 2016년에는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태피스트리」 전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했다. (헌액) 202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번에는 연주자로 다시 이름을 올렸다. 소개를 맡은 테일러 스위프트는 자신에게 킹이 어떤 본보기였는지를 이야기하고 「윌 유 러브 미 투모로」를 불렀다. 남의 노래를 쓰는 사람으로 시작해 싱어송라이터라는 길을 연 그녀는 오랫동안 아이다호를 근거지로 자연 보호를 위한 목소리를 내 왔다.

♪유브 갓 어 프렌드 (You've Got a Friend)1971실황 Carole King · 1973 몽트뢰

제임스 테일러의 노래에서 외로울 때 친구를 찾지 못했다는 대목을 듣고 응답하듯 썼다고 킹이 밝힌 곡이다. 40년 뒤 두 사람이 트루바두어 재회 투어에서 함께 부르며 우정의 노래로 완성됐다.

  • 「태피스트리」 녹음에서는 제임스 테일러가 어쿠스틱 기타와 화음을 보탰다. 같은 해 테일러가 부른 버전은 싱글 1위에 올라, 한 곡이 두 친구의 대표곡이 됐다.
  • 피아노가 넓은 간격으로 화음을 풀어 놓으며 시작해, 곡 전체가 안아 주듯 느긋한 속도로 흐른다.
  • 언제든 부르면 달려가겠다는 약속을 담은 노래답게, 킹의 목소리는 힘을 주기보다 곁에서 말을 건네는 높이에 머문다.
  • 2010년 트루바두어 재회 공연 실황에서는 두 사람이 한 소절씩 주고받으며 노래해, 원래 대화처럼 쓰인 곡의 성격이 더욱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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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브루클린 친구 닐 세다카가 1959년 「오! 캐럴」로 히트를 기록하자, 고핀과 킹은 곧바로 답가 「오! 닐」을 써서 킹이 직접 불렀다. 유행하던 이름 노래에 응답하는 일종의 재치였지만 싱글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훗날의 명성 때문에 묻혔을 뿐, 그녀가 가수로서 먼저 실패를 겪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기록이다. 퀸스 칼리지 시절 그녀는 아직 무명이던 폴 사이먼과 함께 출판사에 낼 견본 녹음을 하며 돈을 벌었다. 두 사람 모두 훗날 이 일을 회고했는데, 1960년대 미국 대중음악을 대표하게 될 두 작곡가가 같은 출발선에서 남의 곡을 연주하던 장면이다. 「태피스트리」 표지 사진 속 창가의 고양이는 킹이 기르던 텔레마커스다. 사진은 짐 매크레리가 로럴 캐니언의 그녀 집에서 찍었다. 수천만 장이 팔린 앨범의 이미지가 스튜디오가 아니라 평범한 거실 창가에서 나왔다는 점은, 이 앨범이 내건 소박한 일상의 정서와 정확히 맞물린다. 1975년 킹은 동화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작가 모리스 센닥과 애니메이션 「리얼리 로지」의 음악을 만들었다. 센닥이 가사를, 킹이 곡과 노래를 맡은 이 작업은 이후 무대 작품으로도 이어졌다. 성인 팝 스타의 경력에서 어린이 작품은 흔히 각주로 밀려나지만, 그녀가 가장 바쁘던 시기에 택한 협업이었다.

용어 노트 📚🔎

데모 (demo)

(말뜻) 영어 demonstration(보여 주기, 시연)의 줄임말이다. 곡이 어떤 모습인지 남에게 보여 주려고 만든 녹음이라는 뜻이 그대로 담겨 있다. (팝에서) 작곡가가 가수나 음반사에 곡을 소개하려고 간단하게 녹음한 견본 녹음이다. 화려한 편곡 없이 피아노나 기타 하나와 목소리만으로 곡의 가락과 분위기를 전하는 경우가 많다. 요리 대회 본선에 앞서 심사위원에게 작은 접시로 맛보기를 내놓는 것과 비슷하다. 때로는 이 맛보기가 너무 좋아서 본 요리 대신 그대로 손님상에 오르기도 하는데, 캐럴 킹의 초기 녹음이나 리틀 에바의 「더 로코모션」이 그런 예로 이야기된다. (다른 데서는) 한국어에서 데모는 흔히 거리에서 벌이는 시위를 뜻한다. 어원은 같지만 가리키는 것이 전혀 다르다.

브릴 빌딩 사운드

(말뜻) 브릴 빌딩은 1층에 있던 의류 상점 주인 브릴 형제의 이름에서 따온 맨해튼의 건물 이름이다. (팝에서)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의 브릴 빌딩과 근처 1650 브로드웨이 건물에 모여 있던 음악 출판사와 작곡가들이 만든 팝 음악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작곡가들은 피아노가 놓인 작은 방에서 하루 종일 곡을 쓰고, 출판사는 그 곡을 여러 가수에게 연결했다. 학교 축제를 앞두고 반마다 작은 교실에서 동시에 공연을 준비하면서, 옆 반 노랫소리에 자극받아 더 좋은 곡을 만들려 애쓰는 모습과 닮았다. 캐럴 킹과 제리 고핀이 일한 알던 뮤직은 엄밀히는 1650 브로드웨이에 있었지만 보통 이 흐름에 함께 묶인다.

싱어송라이터

(말뜻) 영어 singer(노래하는 사람)와 songwriter(노래를 쓰는 사람)를 합친 말이다. (팝에서) 자기가 쓴 노래를 직접 부르는 음악가를 가리키며, 특히 1970년대 초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담담하게 털어놓는 곡을 직접 부르던 흐름을 말할 때 많이 쓴다. 그전까지 팝에서는 작곡가와 가수가 따로인 경우가 흔했다. 학급 문집에 남이 써 준 글 대신 자기 일기를 직접 골라 싣고 낭독까지 하는 것에 빗댈 수 있다. 캐럴 킹의 「태피스트리」는 이 흐름을 대표하는 앨범으로 꼽힌다.

음악 출판 (퍼블리싱)

(팝에서) 노래의 저작권을 관리하면서 곡을 가수와 음반사에 소개하고, 곡이 음반·방송·영화 등에 쓰일 때 나오는 돈을 거두어 작곡가와 나누는 사업이다. 책이 아니라 곡 자체를 다룬다는 점이 핵심이다. 반에서 친구들이 쓴 시를 모아 다른 반과 학교 신문에 실어 주고, 실릴 때마다 원작자에게 사탕을 나눠 주는 담당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 돈 커슈너의 알던 뮤직이 바로 이런 회사였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출판은 책이나 잡지를 인쇄해 펴내는 일을 뜻한다.

로열티

(말뜻) 영어 royalty는 원래 왕(royal)의 권리를 뜻했고, 왕의 땅에서 광물을 캐는 사람이 왕에게 바치던 사용료에서 오늘날의 뜻이 나왔다. (팝에서) 노래나 녹음이 팔리거나 쓰일 때마다 작곡가·가수·제작자가 받는 사용료다. 한 번에 받고 끝나는 돈이 아니라, 곡이 쓰이는 만큼 계속 들어온다는 점이 특징이다. 내가 만든 보드게임 규칙을 다른 반이 빌려 쓸 때마다 한 판에 지우개 하나씩 받기로 약속했다면, 그 지우개가 로열티다. 「태피스트리」처럼 수십 년 동안 팔리는 앨범은 작곡가에게 오랫동안 로열티를 안겨 준다. (다른 데서는) 영어에서 royalty는 왕족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세븐스 코드

(팝에서) 도·미·솔처럼 세 음으로 된 기본 화음 위에 한 음을 더 쌓아 네 음으로 만든 화음이다. 더한 음이 기본 화음에 살짝 긴장과 색을 입혀, 부드럽고 아련하거나 재즈처럼 세련된 느낌을 준다. 하얀 우유에 시럽을 한 방울 떨어뜨리면 여전히 우유지만 맛이 한층 깊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잇츠 투 레이트」가 쓸쓸하면서도 은은하게 들리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화음을 많이 쓴 데 있다.

세션 연주자

(말뜻) session은 정해진 한 차례의 모임이나 시간을 뜻한다. 녹음실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함께 연주하는 자리를 세션이라 부르는 데서 나온 말이다. (팝에서) 특정 밴드의 정식 멤버가 아니면서, 여러 가수의 녹음에 불려 가 연주하는 전문 연주자다. 악보를 빨리 읽고 곡의 분위기를 바로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학교 연극에서 여러 반의 공연에 돌아가며 피아노 반주를 맡아 주는 친구를 떠올리면 된다. 「태피스트리」와 「재즈맨」에도 로스앤젤레스의 뛰어난 세션 연주자들이 함께했다. (다른 데서는) 컴퓨터에서 세션은 접속해 있는 한 번의 사용 시간을, 의회에서는 회기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