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 Green
목청을 높이는 대신 목소리를 낮춰 사랑을 노래한 남자는, 끝내 같은 목소리로 강단에서 신을 노래했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로버트 그린
아들들과 가스펠을 부르던 집안의 아버지로, 재키 윌슨을 듣던 아들을 형제 사중창단에서 내보냈다.
- 영향재키 윌슨
소년 알 그린이 금지된 줄 알면서도 귀를 기울인 소울 가수로, 그가 세속의 음악으로 들어서는 문이 됐다.
- 동료윌리 미첼
하이 레코드의 프로듀서로 그를 멤피스로 데려와 목소리를 낮추게 했고, 1970년대 전성기와 2000년대 귀환을 함께 만들었다.
- 동료알 잭슨 주니어
부커 T. 앤드 더 MG's 의 드러머로, 「렛츠 스테이 투게더」를 함께 쓰고 느긋한 박으로 그의 소리를 받쳤다.
- 동료티니 호지스
하이 리듬 섹션의 기타리스트로 「러브 앤드 해피니스」와 「테이크 미 투 더 리버」를 함께 썼다.
- 동료퀘스트러브
디안젤로와 작업해 온 드러머이자 프로듀서로, 2008년 「레이 잇 다운」에서 하이 레코드의 소리를 되살렸다.
I. 포레스트시티의 소년 · 1946–1958
(출생) 1946년 4월 13일, 미국 아칸소주 포레스트시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앨버트 리오니스 그린(Albert Leornes Greene)이었다. 아버지 로버트와 어머니 코라 리는 미시시피강 서쪽 델타 지대에서 남의 목화밭을 부치는 소작농이었고, 그는 열 남매 가운데 여섯째였다. 살림은 넉넉지 않았고, 아이들은 일찍부터 집안일과 밭일을 거들었다. (교회) 가족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었다. 아홉 살 무렵 그는 형제들과 함께 '그린 브라더스'라는 가스펠 사중창단을 이뤄 인근 교회와 모임을 돌며 노래했다. 화음을 맞추고, 독창자가 한 줄을 던지면 나머지가 받아 주는 흑인 교회 음악의 문법을 그는 이 시절 몸으로 익혔다. 훗날 그의 사랑 노래에 늘 깔려 있던 설교자의 숨결은 여기서 비롯됐다. (북부) 1950년대 후반 가족은 일자리를 찾아 북쪽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로 옮겨 갔다. 남부의 흑인 가정들이 공장과 도시를 향해 북으로 떠나던 대이동의 끝자락이었다. 형제 사중창단은 새 도시에서도 활동을 이어 갔다. (라디오) 그 무렵 소년의 귀를 붙든 것은 교회 밖의 목소리들이었다. 그는 샘 쿡과 재키 윌슨, 윌슨 피켓, 그리고 가스펠 그룹 스완 실버톤스의 클로드 제터를 들으며 자랐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다. 경건한 집안에서 세속의 노래는 환영받지 못했고, 거룩한 노래와 세속의 노래 사이의 긴장은 이후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된다.
II. 그랜드래피즈의 크리에이션스 · 1959–1968
(추방) 10대 중반, 그는 집에서 재키 윌슨의 음반을 듣다가 아버지에게 들켰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아버지는 이 세속의 음악을 용납하지 않았고, 아들을 형제 사중창단에서 내보냈다. 가족과 함께 노래하던 소년은 그렇게 혼자가 됐다. 그는 이 일을 원망보다는 자기 길이 갈라진 순간으로 이야기해 왔다. (크리에이션스) 고등학교 시절 그는 친구들과 '알 그린 앤드 더 크리에이션스'를 결성해 지역 클럽 무대에 섰다. 멤버였던 파머 제임스와 커티스 로저스는 직접 '핫 라인 뮤직 저널'이라는 작은 레이블을 세웠고, 그룹 이름도 '소울 메이츠'로 바꿨다. 레코드 회사의 문을 두드리는 대신 스스로 음반을 찍어 내는 방식이었다. (히트) 1967년 이 레이블에서 낸 「백 업 트레인(Back Up Train)」이 뜻밖에 미국 R&B 차트 5위까지 올랐다. 떠난 연인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을 기차에 빗댄 이 곡에서 그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높은 음에서 부드럽게 꺾이는 목소리를 들려줬다. (정체) 성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후속곡들은 차트에 오르지 못했고 같은 이름의 앨범도 주목받지 못했다. 작은 독립 레이블에는 음반을 전국으로 밀어 줄 힘이 없었다. 그는 다시 클럽과 순회공연을 떠도는 처지가 됐다. 이 몇 해의 실패는 히트곡 하나로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소리를 함께 빚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에게 가르쳤다.
그랜드래피즈의 친구들이 세운 작은 레이블에서 나온 첫 히트로, 윌리 미첼을 만나기 전의 알 그린을 들을 수 있는 드문 기록이다.
- 코러스가 뒤를 받치는 1960년대 중반 보컬 그룹 편성이다. 훗날 하이 레코드의 촘촘한 리듬 섹션과 견주어 들으면 그가 얼마나 다른 옷을 입게 되는지 드러난다.
- 그의 목소리는 이미 높은 음에서 부드럽게 가성(팔세토)으로 넘어가지만, 후기보다 힘을 더 실어 젊은 가수의 열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 기차를 되돌린다는 비유 하나로 곡 전체를 끌고 가는 단순한 짜임새다. 후렴이 되풀이될수록 간청하는 어조가 짙어진다.
III. 멤피스의 약속 · 1969–1971
(만남) 1969년, 그는 텍사스주 미들랜드의 한 공연에서 멤피스의 트럼펫 연주자이자 하이 레코드의 프로듀서 윌리 미첼과 같은 무대에 섰다. 미첼은 그의 목소리에서 가능성을 보고 멤피스로 오라고 권했다. 스타가 되려면 얼마나 걸리느냐는 그의 물음에 미첼이 1년 반이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멤피스) 그는 멤피스로 거처를 옮기고 성에서 e 하나를 떼어 알 그린(Al Green)이 됐다. 미첼의 작업실은 옛 영화관을 고친 로열 스튜디오였다. 그곳에는 기타의 메이본 '티니' 호지스, 오르간의 찰스 호지스, 베이스의 리로이 호지스 삼형제와 드러머 하워드 그라임스가 있었다. 이들이 하이 리듬 섹션이다. 여기에 스택스 레코드의 부커 T. 앤드 더 MG's 드러머 알 잭슨 주니어가 자주 가세했다. (절제) 미첼은 그에게 목청을 높이지 말라고 했다. 제임스 브라운이나 윌슨 피켓처럼 외치던 그를 붙잡아, 낮게 속삭이다가 가성(팔세토)으로 가볍게 솟는 창법으로 이끌었다. 그는 처음엔 이 방식이 힘없게 들린다며 반발했다고 회고했지만, 이 절제가 곧 그의 서명이 됐다. (첫걸음) 1969년의 「그린 이즈 블루스(Green Is Blues)」를 거쳐, 1971년 「알 그린 겟츠 넥스트 투 유(Al Green Gets Next to You)」에서 그는 템테이션스의 곡을 느리고 끈적한 블루스로 바꿔 불러 이름을 알렸다. 같은 해 직접 쓴 「타이어드 오브 비잉 얼론(Tired of Being Alone)」이 빌보드 싱글 차트 11위에 오르며 첫 골드 레코드를 안겼다. 미첼이 말한 1년 반이 거의 들어맞은 셈이었다.
그가 직접 쓴 곡으로, 미첼과 만나고 약 1년 반 만에 거둔 첫 전국적 히트다. 멤피스에서 다듬어진 새 창법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닿은 순간이다.
- 둘째·넷째 박을 가볍게 치는(백비트) 드럼 위로 리듬 섹션이 소리를 꽉 채우지 않고 여백을 남긴다. 미첼식 편곡의 원형을 들을 수 있다.
- 절에서는 낮게 말하듯 노래하다가 후렴 끝에서 가성으로 솟는다. 이 낙차가 이후 그의 히트곡들의 공식이 됐다.
- 외로움을 호소하는 곡인데도 목소리는 오히려 담담하다. 감정을 눌러 담는 절제가 쓸쓸함을 더 크게 들리게 한다.
- 곡 후반 즉흥으로 덧붙이는 소리(애드리브)에서 가스펠 사중창단 출신다운 습관이 드러난다.
IV. 속삭임의 정점 · 1972–1973
(정상) 1971년 말 발표한 「렛츠 스테이 투게더(Let's Stay Together)」는 1972년 2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고, R&B 차트에서는 아홉 주 동안 정상을 지켰다. 그와 미첼, 알 잭슨 주니어가 함께 쓴 이 곡은 연인에게 곁에 남아 달라고 청하는 단순한 노래였지만, 그 단순함을 속삭이듯 부른 목소리가 한 시대의 사랑 노래가 됐다. (속도) 이후 2년 남짓 그는 거의 반년마다 앨범을 냈다. 앨범 「렛츠 스테이 투게더」(1972)에는 비지스가 미국 1위에 올렸던 「하우 캔 유 멘드 어 브로큰 하트」를 느린 소울로 다시 지은 커버가 실렸다. 같은 해 「아임 스틸 인 러브 위드 유(I'm Still in Love with You)」, 이듬해 「콜 미(Call Me)」와 「리빙 포 유(Livin' for You)」가 이어졌다. 「콜 미」는 오늘날 많은 비평가가 그의 최고작이자 1970년대 소울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호흡) 이 시기 녹음은 거의 같은 사람들이 같은 방에서 해냈다. 티니 호지스와 함께 쓴 「러브 앤드 해피니스(Love and Happiness)」처럼, 리듬 섹션이 느슨하게 깔아 둔 그루브 위에서 그는 즉흥으로 덧붙이는 소리(애드리브)를 늘려 가며 곡을 교회의 부흥회처럼 끌어올렸다. 관악기들의 짧은 합주(혼 섹션)가 그 사이를 메웠다. (부름) 정점의 한복판에서 그는 흔들리고 있었다. 1973년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의 호텔 방에서 새벽에 깨어 신을 만났다고, 그는 자서전과 여러 인터뷰에서 거듭 말했다. 무대 위에서는 사랑을 노래하는 스타였지만, 그 무렵부터 그의 마음 한쪽은 이미 교회로 돌아가 있었다.
그의 유일한 빌보드 싱글 1위 곡이자, 미첼과 함께 다듬은 절제의 미학이 가장 완전하게 꽃핀 순간이다.
- 알 잭슨 주니어의 드럼은 서두르지 않고 박을 살짝 뒤로 끌듯 친다. 이 느긋한 그루브가 곡 전체의 온도를 정한다.
- 그는 절을 거의 속삭이듯 부르다가 군데군데 가성으로 짧게 치솟는다. 목소리를 끝까지 터뜨리지 않고 아껴 두는 데서 간절함이 커진다.
- 현악기가 배경을 부드럽게 감싸고 관악기들(혼 섹션)이 짧게 대답한다. 화려하지 않은 편곡이 목소리를 위한 자리를 비워 둔다.
- 1983년 티나 터너의 신시사이저 커버와 나란히 들으면 같은 곡의 두 얼굴이 보인다.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이 아폴로 극장에서 첫 소절을 부른 장면으로도 다시 회자됐다.
비지스가 1971년 미국 1위에 올린 곡을 그는 느리고 긴 소울 발라드로 다시 지었다. 정점의 시기에 남의 노래를 자기 고백으로 바꾸는 솜씨를 보여 준다.
- 원곡보다 훨씬 느린 템포로, 길이도 크게 늘였다. 서두르지 않는 시간이 상실의 무게를 키운다.
- 오르간과 현이 어둡게 깔리고 리듬 섹션은 최소한만 움직인다. 비지스의 화성을 남부 교회의 공기로 옮겨 놓은 듯 들린다.
- 노랫말 사이사이 말하듯 중얼거리고 탄식하며 노래와 고백의 경계를 흐린다.
- 1999년 영화 「노팅 힐」에 이 녹음이 쓰이며 새로운 세대에게도 알려졌다.
티니 호지스와 함께 쓴 곡으로, 하이 리듬 섹션과 그가 한 방에서 숨을 맞추던 시절의 공기가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다.
- 티니 호지스의 기타가 홀로 문을 열고, 그 뒤로 발로 박자를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녹음실의 분위기가 그대로 담긴 도입부다.
- 찰스 호지스의 오르간이 길게 깔리며 교회의 공기를 만든다. 사랑 노래인데도 부흥회처럼 들리는 이유다.
- 처음에는 속삭이다가 곡이 진행될수록 외침과 탄성을 늘려 간다. 같은 그루브 위에서 목소리만으로 온도를 끌어올리는 과정이 5분 남짓 펼쳐진다.
- 사랑이 기쁨만이 아니라 사람을 시험하기도 한다는 양면적 주제를 설교하듯 담담하게 풀어 간다.
V. 강물과 강단 · 1974–1979
(상처) 1974년 10월, 그는 멤피스의 집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으로 크게 다쳤다. 훗날 그는 이 일을 삶을 돌아보라는 경고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강) 같은 해 나온 「알 그린 익스플로어스 유어 마인드(Al Green Explores Your Mind)」에는 티니 호지스와 쓴 「테이크 미 투 더 리버(Take Me to the River)」가 실렸다. 세례의 강물과 연인의 품을 한 노래에 겹쳐 놓은 이 곡은 성과 속 사이에 선 그의 처지를 그대로 비춘다. (강단) 1976년 그는 멤피스 남쪽 화이트헤이븐의 교회 건물을 사들여 풀 가스펠 태버내클을 세우고 목사가 됐다. 일요일이면 강단에 서서 설교하고 찬송을 이끌었다. (결별) 1975년 하이 리듬 섹션과 함께 그의 소리를 받치던 알 잭슨 주니어가 자택에서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그 뒤 그는 미첼의 곁을 떠나 직접 스튜디오를 차렸고, 1977년 스스로 프로듀서를 맡아 「더 벨 앨범(The Belle Album)」을 냈다. 혼 섹션 대신 자신이 친 어쿠스틱 기타를 앞세워, 한 여인을 향한 사랑과 신의 부름 사이에서 갈라진 마음을 노래했다. 판매는 예전만 못했지만 비평가들은 그의 가장 개인적인 음반으로 꼽았다. (추락) 1979년 신시내티 공연 도중 그는 무대에서 떨어져 다쳤다. 그는 이를 신의 뜻으로 받아들였고, 이후 세속의 무대를 접고 가스펠에 전념했다.
세례의 강과 연인의 품을 한 노래에 겹친 이 곡은 그가 교회와 무대 사이에서 가장 크게 흔들리던 해에 나왔다.
- 리로이 호지스의 베이스가 낮은 음역에서 반복되며 그루브의 뼈대를 이룬다. 단단하면서도 느긋한 이 베이스 리프가 곡을 끝까지 끌고 간다.
- 세속의 욕망과 세례 의식을 한 노래 안에서 오가며, 장난스러운 듯하면서도 진지한 이중의 어조를 끝까지 유지한다.
- 그는 이 곡을 미국에서 싱글로 내지 않았다. 1975년 실 존슨의 녹음이 R&B 차트에서 먼저 히트했고, 1978년 토킹 헤즈의 커버가 록 청중에게까지 알렸다. 원작자의 녹음과 비교해 들어 볼 만하다.
미첼을 떠나 스스로 프로듀서를 맡은 앨범의 표제곡으로, 여인을 향한 사랑과 신의 부름 사이에서 갈라진 마음을 정직하게 털어놓는다.
- 도입을 이끄는 것은 그가 직접 친 어쿠스틱 기타다. 하이 레코드 시절의 매끈한 리듬 섹션 대신 성기고 내밀한 소리가 펼쳐진다.
-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동시에 신에게 고백하는 화법을 취해, 듣는 이는 그가 누구를 향해 노래하는지 끝내 확정할 수 없다.
- 목소리는 하이 시절보다 덜 다듬어졌고 숨소리도 그대로 남아 있다. 혼자 만든 결과, 일기장 같은 기록처럼 들린다.
- 많은 비평가가 이 곡과 앨범을 1970년대 후반 그의 최고작으로 꼽는다.
VI. 복음의 시간 · 1980–1994
(복음) 1980년 그는 가스펠 레이블 미르(Myrrh)에서 「더 로드 윌 메이크 어 웨이(The Lord Will Make a Way)」를 냈다. 이 앨범으로 그래미 가스펠 부문 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80년대 내내 가스펠 음반을 내며 같은 부문에서 여러 차례 그래미를 받았다. 사랑 노래를 부르던 가성은 그대로였고, 노래를 바치는 대상만 바뀌었다. (무대) 1982년에는 브로드웨이의 가스펠 뮤지컬 「유어 암스 투 쇼트 투 박스 위드 갓」에 패티 라벨과 함께 출연했다. 교회 밖의 무대에 다시 선 것이었지만, 부르는 노래는 여전히 찬송이었다. (메아리) 그가 떠난 자리에서 그의 노래들은 다른 목소리로 살아났다. 1983년 티나 터너는 「렛츠 스테이 투게더」를 신시사이저 중심의 편곡으로 커버해 재기의 발판으로 삼았다. 멤피스의 느린 소울이 영국 신스팝의 옷을 입고 다시 차트에 오른 것이다. (재회) 1985년 「히 이즈 더 라이트(He Is the Light)」에서 그는 다시 윌리 미첼과 손잡았다. 가스펠 음반이었지만 로열 스튜디오 특유의 따뜻한 소리가 돌아왔다. (화해) 1988년 그는 애니 레녹스와 함께 영화 「스크루지드」에 실린 「풋 어 리틀 러브 인 유어 하트」를 불러 미국 싱글 차트 10위 안에 올랐다. 사랑을 노래하는 일이 신앙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하게 된 그는 옛 히트곡을 다시 공연에서 부르기 시작했고, 1993년 소울 앨범 「돈트 룩 백(Don't Look Back)」으로 세속 음악계에 돌아왔다. 이듬해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펄프 픽션」에 「렛츠 스테이 투게더」가 쓰이며 그의 목소리는 새 세대에게도 닿았다.
VII. 다시 로열 스튜디오로 · 1995–2026
(헌액) 1995년 그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2000년에는 작가 데이빈 시와 함께 쓴 자서전 「테이크 미 투 더 리버」를 펴내 소작농의 아들이 강단에 서기까지의 길을 스스로 정리했고, 2002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귀향) 2003년 블루노트에서 낸 「아이 캔트 스톱(I Can't Stop)」으로 그는 윌리 미첼, 로열 스튜디오, 하이 리듬 섹션의 옛 동료들과 다시 모였다. 30여 년 전의 방식 그대로 녹음한 이 음반은 그가 돌아왔음을 알렸다. (계승) 2008년의 「레이 잇 다운(Lay It Down)」은 디안젤로의 「부두(Voodoo)」를 함께 만든 드러머 퀘스트러브가 건반 연주자 제임스 포이저와 함께 프로듀싱했다. 하이 레코드의 소리를 듣고 자란 세대가 그 소리의 주인을 모신 셈이었다. 존 레전드, 앤서니 해밀턴이 참여한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10위 안에 들었고, 이듬해 그래미 두 개를 안겼다. (작별) 2010년 1월 윌리 미첼이 세상을 떠났다. 로열 스튜디오는 그의 아들 부 미첼이 이어받았고, 훗날 마크 론슨과 브루노 마스가 「업타운 펑크」의 일부를 이곳에서 녹음했다. (노래)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할렘의 아폴로 극장 행사에서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렛츠 스테이 투게더」의 첫 소절을 불러 화제가 됐다. 2014년 그는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받았고, 2023년에는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를 커버해 여든을 앞둔 목소리를 들려줬다. (근황) 지금도 멤피스에 살며 풀 가스펠 태버내클의 강단에 선다.
퀘스트러브가 프로듀싱한 동명 앨범의 표제곡으로 앤서니 해밀턴이 함께 불렀다. 하이 레코드를 사랑한 후배들이 그의 목소리를 다시 그 시절의 소리 안에 앉혔다.
- 퀘스트러브의 드럼은 알 잭슨 주니어와 하워드 그라임스의 느긋한 박을 의식적으로 따른다. 2000년대 녹음인데도 1970년대 멤피스의 질감이 난다.
- 앤서니 해밀턴의 거칠고 낮은 목소리와 그의 매끄러운 가성이 번갈아 나오며 대비를 이룬다.
- 환갑을 넘긴 목소리는 고음이 조금 얇아졌지만, 속삭이다 치솟는 특유의 화법은 그대로다.
- 혼과 오르간이 과하지 않게 깔려 곡 전체를 낮은 불꽃처럼 유지한다.
덜 알려진 이야기
그의 회심은 흔히 1974년의 화상 사건 뒤에 일어난 것으로 이야기되지만, 본인의 기록은 다르다. 그는 자서전에서 1973년 애너하임의 호텔 방에서 이미 신앙의 전환을 겪었다고 썼다. 극적인 사건 하나가 삶을 바꿨다는 줄거리가 언론에 더 잘 맞았기 때문에, 순서가 뒤바뀐 채 굳어진 경우가 많다. 「테이크 미 투 더 리버」는 그를 대표하는 곡처럼 여겨지지만 정작 그는 이 곡을 미국에서 싱글로 내지 않았다. 1975년 같은 하이 레코드의 실 존슨이 녹음해 R&B 차트에서 먼저 히트시켰고, 1978년 토킹 헤즈의 커버가 록 팬들에게 이 곡을 알렸다. 1990년대 말에는 벽에 거는 노래하는 물고기 장난감이 이 곡을 부르며 원곡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퍼졌다. 가장 널리 불린 곡에서 원작자의 녹음이 오히려 가장 덜 알려진 셈이다. 로열 스튜디오는 옛 영화관 건물을 고친 곳이라 지금도 바닥이 기울어 있다. 미첼 가족은 하이 레코드 시절의 장비와 배치를 되도록 그대로 지켜 왔다고 말해 왔고, 그래서 그의 소리는 녹음실 자체가 하나의 악기였다는 평을 듣는다. 가수와 프로듀서의 이야기에 가려 덜 언급되지만, 2003년 그가 옛 동료들과 다시 모인 곳도, 훗날 젊은 음악가들이 그 소리를 찾아온 곳도 바로 이 방이었다.
용어 노트 📚🔎
가스펠
(말뜻) 가스펠(gospel)은 옛 영어 godspel 에서 왔는데, 좋은(god) 소식(spel)이라는 뜻이다. 한자어 복음(福音)도 복된(福) 소리(音), 곧 기쁜 소식이라는 같은 뜻을 담고 있다. (팝에서) 미국 흑인 교회에서 자라난 찬양 음악을 말한다. 독창자가 한 줄을 부르면 합창단이 받아 부르며 감정을 점점 끌어올리는 것이 특징이고, 소울·R&B 가수 상당수가 여기서 노래를 배웠다. 응원전에서 응원단장이 한 줄 외치면 다 같이 받아 외치며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알 그린도 어린 시절 형제들과 가스펠 사중창단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다른 데서는) 일상 영어에서는 의심할 여지 없는 진리라는 뜻으로도 써서, 누군가의 말을 가스펠처럼 믿는다고 말한다.
소울
(말뜻) 소울(soul)은 영혼이라는 뜻이다. 교회에서 영혼을 울리던 가스펠의 창법을 사랑과 일상의 노래로 옮겨 왔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팝에서) 195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 흑인 음악가들이 가스펠과 리듬 앤드 블루스를 섞어 만든 음악이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쏟아 내는 것이 핵심인데, 알 그린처럼 오히려 감정을 눌러 담아 더 진하게 들리게 하는 가수도 있다. 친구에게 서운할 때 소리 지르는 것보다 조용히 한마디 하는 쪽이 더 무겁게 들릴 때가 있는 것과 같다. 남부의 멤피스와 북부의 디트로이트가 대표적인 중심지였다. (다른 데서는) 음식에서 소울 푸드는 미국 남부 흑인 가정의 전통 요리를 가리킨다.
팔세토(가성)
(말뜻) 이탈리아어 falso(가짜)에서 나온 말로, 직역하면 작은 가짜 목소리라는 뜻이다. 우리말 가성(假聲)도 거짓(假) 소리(聲)라는 뜻이다. (팝에서) 남자 가수가 평소 목소리로는 닿지 않는 높은 음을, 성대를 얇게 써서 가볍고 맑게 내는 소리다. 평소 목소리(진성)보다 힘은 약하지만 부드럽고 애틋하게 들린다. 장난으로 아주 높은 목소리를 흉내 낼 때 목소리가 뒤집히는 느낌이 드는데, 그 뒤집힌 소리를 다듬어 음악으로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알 그린은 한 소절 안에서도 진성과 가성을 자유롭게 오갔다.
리듬 섹션
(팝에서) 밴드에서 박자와 화음의 바닥을 깔아 주는 악기 묶음으로, 보통 드럼·베이스·기타·건반이 들어간다. 가수와 관악기·현악기가 집이라면 리듬 섹션은 그 집을 받치는 기초 공사다. 축구로 치면 눈에 덜 띄지만 경기의 흐름을 만드는 수비수와 미드필더 같은 역할이다. 알 그린의 하이 레코드 시절 음반은 호지스 삼형제와 드러머들이 이룬 하이 리듬 섹션 덕에 어느 곡을 틀어도 한 집안의 소리처럼 들린다. (다른 데서는) 섹션은 신문의 스포츠 섹션처럼 큰 묶음 안의 한 구역을 뜻하기도 한다.
혼 섹션
(말뜻) 혼(horn)은 원래 짐승의 뿔이라는 뜻이다. 옛사람들이 소나 양의 뿔을 불어 소리를 내던 것이 금관악기의 먼 조상이어서, 지금도 트럼펫 같은 관악기를 혼이라 부른다. (팝에서) 밴드 안에서 트럼펫·트롬본·색소폰 등 관악기 몇 대가 한 팀으로 움직이는 묶음이다. 짧고 날카롭게 끼어들어 곡에 힘을 주기도 하고, 길게 깔려 분위기를 감싸기도 한다. 체육대회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울리는 응원단의 나팔 소리를 떠올리면 된다. 알 그린의 음반에서는 하이 레코드의 관악기 연주자들이 노래 사이사이에 짧게 대답하는 역할을 맡았다. (다른 데서는) 자동차의 경적도 영어로 혼이라고 한다.
커버
(팝에서) 다른 가수가 먼저 발표한 노래를 새로 녹음해 부르는 것이다. 똑같이 따라 하기보다 템포·편곡·창법을 바꿔 자기 노래처럼 다시 태어나게 할 때 높이 평가받는다. 친구가 쓴 이야기를 내가 다시 쓰면서 말투와 분위기를 바꿔 보는 것과 비슷하다. 알 그린은 비지스의 곡을 느린 소울로 바꿔 불렀고, 반대로 티나 터너와 토킹 헤즈는 그의 곡을 커버해 히트시켰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책의 표지나 덮개를 뜻하고, 운동 경기에서는 동료의 빈자리를 대신 막아 주는 것을 커버한다고 한다.
애드리브
(말뜻) 라틴어 ad libitum 을 줄인 말로, 마음 내키는 대로라는 뜻이다. (팝에서) 악보나 미리 정한 가사에 없는 소리·말·가락을 노래하는 순간 즉흥으로 덧붙이는 것이다. 짧은 탄성, 숨소리, 한 단어를 굴려 되풀이하는 것 모두 애드리브가 된다. 발표 시간에 준비한 원고를 읽다가 친구들의 반응을 보고 즉석에서 한마디 덧붙이는 것과 같다. 알 그린은 곡 끝으로 갈수록 애드리브를 늘려 녹음실을 교회처럼 만들곤 했다. (다른 데서는) 연극이나 방송에서는 대본에 없는 즉흥 대사를 가리킨다.
프로듀서
(팝에서) 음반을 만드는 전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어떤 곡을 녹음할지, 어떤 연주자를 부를지, 가수가 어떤 식으로 노래할지를 정하고, 녹음된 소리를 다듬어 최종 결과를 결정한다. 학교 연극에서 대본을 고르고 배역을 정하고 연습을 이끄는 연출 선생님과 비슷하다. 윌리 미첼이 알 그린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한 것은 프로듀서의 손길이 가수의 소리를 바꾼 대표적인 예다. (다른 데서는) 경제 용어로 producer 는 물건을 만드는 생산자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