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areads.musicK-pop

Songgolmae

송골매 (1979–1990)

청바지 차림의 대학생 밴드가 가요 순위 프로그램 정상에 오르면서 한국 록은 캠퍼스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대한민국 서울 결성활주로와 블랙테트라1집 「세상만사」2. 재편암자로 찾아간 리더구창모·김정선 합류황금기 진용3. 정점「어쩌다 마주친 그대」가요톱텐 연속 1위3집 「처음 본 순간」4. 전환구창모 솔로 독립「하늘나라 우리님」신 송골매 진용5. 라디오1990 음악캠프 시작9집 「모여라」1991 활동 중단6. 비행38년 만의 「열망」2026 공로상송골매1979–1990캠퍼스 밴드의 열기를 방송 무대로 옮겨 198…
무대의 여정 🧭🗺️
N대한민국서울1979–1990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멤버배철수

    항공대 밴드 활주로 출신의 리더로, 팀을 결성하고 끝까지 지켰으며 1990년부터 라디오 진행자로 살아왔다.

  • 멤버이응수

    원년 베이시스트로, 팀을 떠난 뒤에도 여러 곡의 노랫말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멤버구창모

    블랙테트라 출신 보컬로,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처음 본 순간」을 써서 송골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 후원김수철

    2집의 후속 히트곡 「모두 다 사랑하리」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동시대 음악인이다.

  • 멤버이태윤

    신 송골매의 베이시스트였고, 2022년 재결합 공연에서는 음악감독을 맡았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두 개의 캠퍼스 밴드 · 1978–1979

(결성) 1979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한국항공대학교 캠퍼스 밴드 활주로 출신 배철수를 중심으로 결성됐다. 팀 이름은 맹금류인 매의 한 갈래를 가리키는 말로, 몽골어에서 왔다고 알려져 있다.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1세대 그룹사운드가 대거 무대에서 밀려났고, 그 빈자리를 1977년 시작된 MBC 대학가요제 같은 무대에서 나온 대학생 밴드들이 채워 가고 있었다. 송골매도 그 흐름에서 태어났다. (해변가요제) 출발점은 1978년 TBC 해변가요제였다. 배철수는 활주로의 일원으로, 구창모는 홍익대학교 밴드 블랙테트라의 보컬로 같은 대회에 나왔다. 배철수는 이 대회에서 구창모의 노래를 듣고 그를 눈여겨봤다고 훗날 회고했다. 활주로는 이미 「처음부터 사랑했네」,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같은 곡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첫 진용) 첫 송골매는 보컬과 드럼의 배철수, 기타 지덕엽, 베이스 이응수, 건반 이봉환으로 꾸려졌다. 같은 해 데뷔 음반 《젊은이의 벗 송골매 신곡모음》을 냈고, 이응수가 노랫말을 쓰고 지덕엽이 곡을 붙인 「세상만사」가 실렸다. 그러나 반응은 미미했다. 나중에 합류한 구창모는 이 시절을 두고 음악은 괜찮았는데 잘 안 됐다고 돌아봤다. (얼굴) 1집에 모자랐던 것은 곡보다 팀의 얼굴이었다. 리더 배철수는 드럼 뒤에 앉아 노래했고, 대중에게 각인될 목소리와 무대는 아직 없었다. 배철수가 한 해 전 가요제 예심장에서 들은 그 목소리를 다시 찾아 나선 것은 이 무렵이었다.

♪세상만사1979실황 송골매 · 2022 KBS 〈40년만의 비행〉

구창모가 합류하기 전 원년 멤버들이 만든 데뷔 음반의 곡이다. 1집은 실패했지만 이 노래는 2집에 다시 실려 살아남았다.

  • 작사 이응수, 작곡 지덕엽. 송골매가 밴드 안에서 직접 곡을 쓰는 팀으로 출발했음을 보여 준다.
  • 제목 그대로 세상일 전반을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정서의 노래다. 사랑 노래가 대부분이던 당시 가요 사이에서 화법이 다르다.
  • 1979년 데뷔 음반 버전과 1982년 2집에 다시 녹음한 버전을 견줘 들으면, 멤버가 바뀌면서 연주의 무게중심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할 수 있다.
  • 2022년 재결합 무렵 잔나비의 최정훈이 다시 불러 젊은 청자들에게 새로 알려졌다.
YouTube에서 듣기 ↗

II. 암자로 찾아간 리더 · 1979–1981

(암자) 구창모는 해변가요제 뒤 음악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공부하려고 설악산 오색 근처의 암자에 들어가 있었다. 1979년 겨울 배철수가 그를 직접 찾아가 함께 음악을 하자고 청했다. 구창모는 훗날 그때 감동했고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흩어짐) 그사이 원년 멤버들은 하나둘 팀을 떠났다. 1981년 기타의 지덕엽은 군에 입대했고, 베이스의 이응수는 학업 때문에 팀을 떠났다고 알려져 있다. 송골매는 한동안 사실상 멈춰 섰다. 다만 이응수는 그 뒤로도 노랫말로 팀과 이어져, 2집과 3집의 여러 곡에 그의 가사가 실렸다. (재편) 배철수는 블랙테트라의 구창모와 기타리스트 김정선을 불러들였고, 드럼 오승동과 베이스 김상복이 합류하면서 훗날 황금기라 불리는 진용이 갖춰졌다. 구창모가 보컬과 건반을 맡았고, 배철수는 드럼에서 기타와 보컬로 자리를 옮겼다. 항공대와 홍익대, 두 학교의 캠퍼스 밴드가 한 팀으로 합쳐진 셈이었다. (시대) 이 무렵 방송 환경도 바뀌고 있었다. 1980년 12월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됐고, 1980년대 초 KBS 「가요톱텐」이 출범하면서 가요 순위 경쟁이 안방 화면 속으로 들어왔다. 새 송골매는 1981년 녹음실에 들어가 2집을 녹음했다. 음반은 해를 넘겨 나왔다.

III. 어쩌다 마주친 그대 · 1982

(정상) 2집 《송골매》는 1982년에 나왔다. 구창모가 작사·작곡한 타이틀곡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KBS 「가요톱텐」에서 5주 동안 1위를 지켰고, 후속곡 「모두 다 사랑하리」도 4주간 정상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데뷔 음반에서 쓴맛을 본 밴드가 두 번째 음반으로 가요계 한복판에 섰다. (협업) 이 음반에는 멤버 바깥의 손길도 들어갔다. 「모두 다 사랑하리」는 김정선이 노랫말을 쓰고 김수철이 곡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들」은 이종명이 노랫말을, 이정선이 곡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집의 「세상만사」와 「길지 않은 시간이었네」도 다시 녹음해 실었는데, 「길지 않은 시간이었네」를 구창모의 「내 마음의 꽃」과 이어 붙인 트랙은 많은 청취자가 한 곡으로 알았다고 한다. (청바지) 텔레비전에 비친 모습도 새로웠다. 송골매는 청바지와 긴 머리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젊은 관객에게 반항의 느낌을 줬다고 멤버들은 돌아봤다. 정장 차림의 가수가 주류였던 순위 프로그램에 대학생 차림의 밴드가 기타를 메고 나온 장면은 그 자체로 한 세대를 드러내는 표지였다. 다만 아직 컬러TV가 집집마다 보급되기 전이어서, 많은 시청자가 이 무대를 흑백 화면으로 봤다. (평가) 송골매는 1982년부터 몇 해 연속 KBS 가요대상 록그룹상 등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음반은 경향신문이 뽑은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들었다. LP와 카세트테이프가 함께 팔리던 시절, 송골매는 캠퍼스 록이 상업적으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1982실황 송골매 · 2022 KBS 〈40년만의 비행〉

암자에서 데려온 구창모가 직접 작사·작곡한 곡으로, 무명이던 밴드를 하루아침에 가요계 한복판에 세웠다.

  • 곡을 끌고 가는 짧게 반복되는 기타·베이스 악절(리프)이 핵심이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손꼽히는 리프로 회자된다.
  • 줄을 엄지로 때리고 튕겨 소리를 내는 베이스 주법(슬랩)의 펑키한 울림이 인상적이어서, 베이스 입문자들이 즐겨 연습하는 곡으로 알려져 있다.
  • 배철수가 가요제 예심에서 반했다는 구창모의 맑은 고음이 곡 전체를 밝게 끌어올린다. 노래방에서 원래 키로 부르기 어려운 곡으로도 꼽힌다.
  • 3분 남짓한 짧은 곡에 전주, 절, 후렴이 군더더기 없이 이어져 라디오와 TV 순위 프로그램에 잘 맞는 형식이다.
  • 「가요톱텐」 5주 1위를 기록했고, 훗날 여러 가수가 다시 불렀다.
YouTube에서 듣기 ↗
♪모두 다 사랑하리1982실황 송골매 · 2022 KBS 〈40년만의 비행〉

2집의 후속곡으로, 기타리스트 김정선이 노랫말을 쓰고 김수철이 곡을 줬다. 연속 1위로 송골매가 한 곡만 뜬 팀이 아님을 보여 줬다.

  • 작곡가 김수철의 손길이 닿은 선율이다. 같은 시대 록 음악인끼리 곡을 주고받던 풍경을 보여 준다.
  • 제목처럼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사랑을 넓혀 가는 너그럽고 밝은 태도의 노래다.
  •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기 좋은 후렴 구조라서, 2022년 재결합 공연에서는 앙코르 곡으로 객석과 함께 불렸다.
  • 엑소의 수호가 리메이크해 아이돌 세대에게도 전해졌다.
YouTube에서 듣기 ↗

IV. 가장 바빴던 날들 · 1983–1984

(연속 히트) 1983년 3집 《처음 본 순간》이 나왔다. 구창모가 쓴 「처음 본 순간」은 펑크(funk)풍 리듬과 금관 편곡으로 주목받았고, 이응수가 작사하고 배철수가 작곡한 「빗물」은 송골매를 대표하는 발라드로 남았다. 배철수가 작곡한 「한줄기 빛」도 타이틀곡으로 함께 내세워졌다. 2집에 이은 연속 히트였고, 연주와 사운드가 한층 단단해졌다는 평이 많다. (두 작곡가) 3집은 배철수와 구창모라는 두 작곡가가 한 음반 안에 나란히 선 음반이었다. 구창모가 곡을 쓴 「아가에게」는 배우 임예진이 노랫말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정) 인기는 곧 숨 가쁜 일정으로 이어졌다. 방송과 공연을 오가는 숨 가쁜 일정이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같은 해 「젊음의 행진」 생방송 중 배철수가 비뚤게 놓인 마이크를 바로잡다 감전되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는 훗날 무대와 방송에서 이 일을 직접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갈림길) 1984년 4집 《난 정말 모르겠네》가 나왔다. 이 음반이 나온 직후 구창모는 솔로의 길을 택해 팀을 떠났다. 훗날 두 사람은 이때 일을 농담을 섞어 회고했다. 구창모는 1985년 「희나리」로 솔로 가수로서 큰 성공을 거뒀다.

♪처음 본 순간1983실황 송골매 · 2022 KBS 〈40년만의 비행〉

가장 바빴던 해에 나온 3집의 타이틀곡으로, 구창모가 썼다. 연속 히트로 송골매의 전성기를 굳혔다.

  • 16분음표로 잘게 쪼갠 리듬이 몸을 들썩이게 하는 펑크(funk)풍 그루브가 바탕에 깔려 있다. 2집보다 리듬이 한결 촘촘해졌다는 평을 받는다.
  • 트럼펫·색소폰 같은 금관 악기 편곡(브라스 섹션)이 곡에 화려함을 더해 이 음반의 특징으로 꼽힌다.
  • 첫눈에 반한 순간의 설렘을 경쾌하게 털어놓는 화법이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이어지는 구창모식 청춘 연가로 들린다.
  • 아날로그 밴드 녹음에 금관을 얹은 사운드는 록 밴드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주류로 들어간 1980년대 초의 소리를 보여 준다.
YouTube에서 듣기 ↗
♪빗물1983실황 배철수 · 2022 KBS 〈40년만의 비행〉

이응수가 작사하고 배철수가 작곡한 발라드로, 송골매가 신나는 록만 하는 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줬다.

  • 같은 음반의 펑키한 타이틀곡과 대비되는 느린 템포의 발라드다. 송골매를 대표하는 서정곡으로 꼽힌다.
  • 팀을 떠난 원년 멤버 이응수가 노랫말로 계속 참여했다는 점에서, 1기와 2기 송골매를 잇는 곡이기도 하다.
  • 비 오는 날의 쓸쓸함과 그리움을 조용히 혼잣말하듯 풀어놓는 정서다.
  • 리더 배철수의 작곡가로서의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곡이다. 구창모의 곡과 나란히 놓고 들으면 두 사람의 결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YouTube에서 듣기 ↗

V. 배철수의 송골매 · 1985–1990

(재출발) 구창모가 떠난 뒤 배철수는 기타와 리드 보컬을 함께 맡았다. 1985년 나온 5집 《하늘나라 우리님》은 앞선 음반들의 경쾌함 대신 서정적이고 진지한 분위기가 짙었다. 이 곡은 「가요톱텐」 1위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흔히 송골매의 마지막 전성기로 꼽힌다. (변화) 1986년 6집 《오해》에서는 이렇다 할 히트곡이 나오지 않았다. 헤비메탈 밴드가 쏟아져 나오고 발라드가 차트를 채우던 때였다. 이 무렵 김상복과 오승동이 팀을 떠났고, 건반 이종욱, 베이스 이태윤, 드럼 이건태가 들어와 신 송골매로 불리는 진용이 꾸려졌다. (신 송골매) 1987년 7집 《인생이란 이름의 열차》에서는 「새가 되어 날으리」가 사랑받았고, 1988년 8집 《어이하나 그대여》가 뒤를 이었다. 1989년부터 이듬해까지는 KBS 「자니윤 쇼」의 하우스 밴드를 맡아 텔레비전에 꾸준히 모습을 보였다. (라디오) 1990년 3월 19일 배철수는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 진행을 시작했다. 같은 해 나온 9집 《그대 떠난 이른 아침》에서 「모여라」가 히트했지만, 이 음반은 원조 송골매의 마지막 정규 음반이 됐다. 배철수가 라디오에 전념하면서 밴드는 1991년 무렵 사실상 활동을 멈췄다. 노래하던 리더가 이제 남의 음악을 소개하는 자리로 옮겨 간 것이다.

♪하늘나라 우리님1985실황 송골매 · 2022 KBS 〈40년만의 비행〉

구창모가 떠난 뒤 배철수가 리드 보컬을 맡아 낸 첫 히트곡으로, 흔히 송골매의 마지막 전성기로 꼽힌다.

  • 배철수 특유의 거칠고 허스키한 음색이 앞에 서면서, 구창모의 맑은 고음이 이끌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송골매의 얼굴이 드러난다.
  • 타이틀곡이 편곡과 감정선을 달리한 두 가지 버전으로 음반에 실렸다. 둘을 차례로 들으며 비교해 볼 만하다.
  • 떠나간 이를 하늘 저편에 두고 그리워하는 진지하고 서정적인 정서가 이전 음반들의 경쾌함과 대비된다.
  • 2022년 재결합 공연에서도 연주됐다. 팀이 갈라진 뒤에 나온 노래를 두 사람이 함께 부른 장면이었다.
YouTube에서 듣기 ↗
♪모여라1990실황 송골매 · 2022 KBS 〈40년만의 비행〉

원조 송골매의 마지막 정규 음반인 9집의 히트곡이다. 배철수가 라디오로 자리를 옮기기 직전 마지막으로 크게 사랑받은 노래가 됐다.

  • 제목 그대로 사람들을 한자리로 불러 모으는 외침 같은 노래다. 공연장에서 함께 부르기 좋은 구호 같은 성격이 있다.
  • 이종욱·이태윤·이건태가 합류한 신 송골매의 연주로, 1980년대 초 진용과는 다른 리듬 파트의 질감을 들을 수 있다.
  • 1990년 무렵의 녹음답게 건반 소리가 앞으로 나서는 것처럼 들린다. 밴드 사운드와 신시사이저 시대 사이에 걸친 소리다.
  • 후기 송골매를 대표하는 곡으로 꼽혀, 재결합 이후 공연에서도 다시 연주됐다.
YouTube에서 듣기 ↗

VI. 다시 날아오른 매 · 1991–2026

(각자의 길) 활동을 멈춘 뒤 배철수는 라디오 진행자로 자리를 굳혔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2026년 3월 방송 36주년을 맞았다. 구창모는 「방황」,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등으로 솔로 활동을 이어 가다가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고, 20년 넘게 해외에서 지냈다고 밝혔다. (2010) 2010년에는 원년 멤버 이봉환과 김정선을 중심으로 한 송골매가 10집 《2010》을 냈다. 그러나 배철수와 구창모가 빠진 음반에 대중의 관심은 크지 않았다. (재회) 두 사람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일본 음악 축제 서머소닉을 함께 보러 가기도 했다. 재결합 이야기는 오랫동안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열망) 2022년 9월 11~12일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콘서트 「열망」이 열렸다. 두 사람이 송골매라는 이름으로 함께 무대에 선 것은 38년 만이었다. 이태윤이 음악감독을 맡아 원곡 편곡을 살렸고, 이틀 동안 2만여 명이 모였다. 배철수는 이 무대에서 감전 사고를 농담처럼 떠올렸고, 이 투어를 끝으로 음악 활동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설에는 KBS 2TV에서 「송골매 콘서트 40년만의 비행」이 방송됐다. (공로) 2026년 2월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은 송골매에게 공로상을 줬다. 같은 해 7월 구창모는 36년 만의 새 음반 《Memory & Future》를 내며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후속 격인 「또다시 마주친 그대」를 실었다. 잔나비 최정훈이 「세상만사」를, 엑소 수호가 「모두 다 사랑하리」를 다시 부르는 등 다음 세대의 리메이크도 이어졌다.

덜 알려진 이야기

원년 베이시스트 이응수는 1981년 팀을 떠났지만, 2집과 3집의 많은 곡에 노랫말을 썼다. 「세상만사」, 「빗물」 등이 그의 가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후 지구레코드에서 녹음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로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이 기억하는 황금기 송골매의 정서 상당 부분은 무대에 서지 않은 이 사람의 손에서 나왔다. 배철수가 부른 「사랑하는 이여 내 죽으면」은 19세기 영국 시인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시 'When I am dead, my dearest'와 제목이 겹친다. 록 밴드 리더라는 이미지 뒤에 있던 문학 독자로서의 면모다. 후기 송골매는 1989년부터 「자니윤 쇼」의 하우스 밴드를 맡았는데, KBS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1번지」 후기 오프닝 음악도 송골매가 작곡하고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히트곡이 줄어든 시기에도 밴드는 방송 음악의 현장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다.

용어 노트 📚🔎

그룹사운드

(말뜻) 영어 group과 sound를 붙여 만든 일본식 조어다. 영어권에서는 거의 쓰지 않고 한국과 일본에서 통했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1960~70년대에 전기기타·베이스·드럼으로 연주하며 노래하던 밴드를 부르던 말이다. 신중현 등 1세대 그룹사운드는 미8군 무대와 음악 감상실에서 자랐고, 송골매 세대가 그 뒤를 이었다. 반 친구 네다섯이 각자 악기를 하나씩 맡아 학예회 무대에 함께 서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노래하는 사람 하나만 주인공이 아니라 팀 전체가 하나의 소리를 낸다는 점이 핵심이다.

캠퍼스 밴드

(한국 대중음악에서) 대학교 동아리로 활동하던 밴드를 말한다. 1970년대 후반 대학가요제와 해변가요제가 이 밴드들을 대중 앞에 세웠다. 송골매도 항공대의 활주로와 홍익대의 블랙테트라라는 두 캠퍼스 밴드가 합쳐져 전성기를 맞았다. 학교 방송반이나 축제 밴드가 실력을 인정받아 진짜 가수가 되는 일과 같다. (다른 데서는) 캠퍼스는 원래 대학 교정을 뜻하고, 기업에서는 큰 회사 건물 단지를 가리키는 말로도 쓴다.

가요제

(말뜻) 가요(歌謠)는 노래, 제(祭)는 잔치·축제라는 뜻이다. 노래로 여는 잔치라는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방송사가 아마추어나 신인에게 곡을 받아 경연을 벌이는 대회다. 1977년 MBC 대학가요제, 1978년 TBC 해변가요제 같은 대회가 대학생 밴드들의 데뷔 통로였다. 배철수와 구창모도 해변가요제 예심장에서 처음 서로를 알아봤다. 학교 장기자랑에서 눈에 띈 친구가 나중에 동아리 선배의 연락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가요톱텐

(한국 대중음악에서) KBS가 1980년대 초부터 방송한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다. 매주 인기곡 순위를 매겨 1위를 발표했고, 몇 주 연속 1위를 했는지가 그 시절 인기의 척도였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5주 연속 1위를 했다고 전해진다. 게임 랭킹 1위를 몇 주째 지키고 있는지 반 친구들이 매주 확인하는 장면과 비슷하다. 그 순위가 온 국민이 보는 텔레비전에서 발표된 것이다.

리프

(말뜻) 영어 riff에서 왔다. 짧은 악절을 되풀이하는 것을 가리키는 재즈·록 용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기타나 베이스가 되풀이하는 짧은 가락으로, 노래 전체를 끌고 가는 뼈대 구실을 한다. 듣는 사람은 가사보다 이 소리로 곡을 먼저 알아보기도 한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한국 대중음악의 대표적인 리프 명곡으로 꼽힌다. 운동장에서 줄넘기할 때 반복되는 박자처럼, 계속 되풀이되면서 곡에 몸을 싣게 해 준다.

슬랩

(말뜻) 영어 slap은 손바닥으로 철썩 때린다는 뜻이다. 주법의 이름이 연주하는 동작을 그대로 말해 준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베이스 줄을 엄지로 때리고 다른 손가락으로 걸어 튕겨서, 탁탁 튀는 타악기 같은 소리를 내는 연주법이다. 흑인 음악인 펑크(funk)에서 발달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베이스가 이 느낌으로 유명하다. 책상을 손바닥으로 탁 치고 손가락으로 튕겨 리듬을 만드는 장난을 떠올리면 된다. 그걸 악기 줄 위에서 하는 셈이다. (다른 데서는) 일상 영어에서는 뺨을 때린다는 뜻으로 쓴다.

하우스 밴드

(말뜻) house는 집, 여기서는 그 무대나 방송국을 뜻한다. 그 집에 소속된 밴드라는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방송 프로그램이나 공연장에 고정으로 소속되어 오프닝 음악과 반주를 맡는 밴드다. 송골매는 1989년부터 이듬해까지 KBS 「자니윤 쇼」의 하우스 밴드였다. 학교 행사마다 애국가와 교가 반주를 맡는 학교 관악부를 떠올리면 된다. 행사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받쳐 준다.

리메이크

(말뜻) 영어 remake는 다시(re) 만든다(make)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예전 곡을 다른 가수가 새 편곡으로 다시 녹음해 발표하는 것이다. 원곡의 작곡가와 작사가는 그대로 두고 소리와 해석을 새로 입힌다. 「모두 다 사랑하리」는 엑소 수호가, 「세상만사」는 잔나비 최정훈이 다시 불렀다. 엄마가 어릴 적 즐겨 먹던 요리를 내가 새 재료로 다시 만들어 보는 것과 같다. 맛의 뼈대는 같아도 시대에 맞게 달라진다. (다른 데서는) 영화와 게임에서도 옛 작품을 새로 만드는 일을 리메이크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