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hwa
해체도 멤버 교체도 없이, 따로 또 같이라는 말로 완전체를 지켜 온 1세대 아이돌.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프로듀서이수만
H.O.T의 성공 이후 두 번째 보이그룹으로 신화를 기획하고 멤버들을 캐스팅했다.
- 프로듀서유영진
SM 소속 작곡가로 신화 초기 앨범의 여러 곡을 쓰고 프로듀싱했다.
- 멤버앤디
미국에서 자라 가장 먼저 발탁된 막내로, 서브래퍼와 리드댄서를 맡았다.
- 멤버에릭
리더이자 메인래퍼로, 상표권 분쟁을 이끌고 훗날 신화컴퍼니 공동대표를 맡았다.
- 경쟁god
1999년 데뷔해 신화와 같은 시기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자주 비교되던 1세대 아이돌 그룹이다.
- 멤버이민우
메인댄서 겸 리드보컬로 출발해, 훗날 프로듀싱과 신화컴퍼니 공동대표까지 맡았다.
I. 결성과 데뷔 · 1997–1998
(결성) 1997년 11월, 대한민국 서울에서 SM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한 6인조로 결성됐다. 1996년 데뷔한 H.O.T가 큰 성공을 거두자 이수만 프로듀서는 두 번째 남성 그룹을 구상했고, 미국에서 자란 앤디와 에릭을 먼저 발탁한 뒤 신혜성, 이민우, 전진을 차례로 합류시키고 마지막으로 김동완을 영입하며 완전체를 갖췄다. 멤버들은 1979년부터 1981년 사이에 태어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나이로 연습생 생활을 거쳤다. (멤버) 리더이자 메인래퍼는 에릭, 메인댄서를 맡고 훗날 프로듀싱까지 도맡게 되는 이민우, 리드보컬 김동완, 메인보컬 신혜성, 리드래퍼 겸 리드댄서 전진, 리드댄서를 맡은 막내 앤디로 역할이 나뉘었다. 여섯 명 모두 색이 뚜렷해 누구도 무대 뒤로 묻히지 않는 균형이 데뷔 전부터 자리를 잡았다. (데뷔) 1998년 3월 24일 KMTV 《쇼 뮤직탱크》를 통해 1집 《해결사》로 데뷔했다. 같은 해 한국 사회는 외환위기로 큰 충격을 겪던 시기였고, 음반 시장도 위축돼 있었다. 신인 그룹에게 유리한 시기는 아니었지만, 신화는 힘찬 춤과 단체 군무로 무대를 채우며 조금씩 얼굴을 알렸다. (출발) 초기 성과는 화려하지 않았다. 먼저 자리를 잡은 H.O.T와 비교당하는 처지였고, 음반 판매도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기에 결성된 팬클럽 신화창조는 이후 20년 넘게 이어지며 그룹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외환위기 한복판에서 나온 데뷔곡으로, 신인 그룹다운 패기와 희망을 앞세운 춤곡이었다.
- 도입부부터 터지는 금관 악기(브라스) 편곡과 힘찬 구호 같은 추임새가, 당시 댄스 음악의 전형적 화법을 그대로 보여준다.
- 여섯 명이 번갈아 짧게 치고 빠지는 보컬 배분은, 신인 그룹이 가진 패를 한꺼번에 보여 주려는 구성처럼 들린다.
- 후렴의 군무는 방송 카메라가 정면에서 그룹 전체를 한 번에 담기 좋도록 좌우 대칭으로 짜여 있다.
- 제목 '해결사'는 위기의 시기에 어울리는, 다소 거친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힌다.
II. 성장 · 1999–2001
(도약) 1999년 4월 2집 《T.O.P.》를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타이틀곡은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 「백조의 호수」 선율을 표본 추출(샘플링)해 썼다고 알려져 있으며, 클래식과 댄스 비트를 엮은 시도는 당시로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경쟁) 비슷한 시기인 1999년 god가 데뷔하면서, 두 그룹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과 예능에서 자주 비교되는 사이가 됐다. 신화의 화려한 군무와 god의 친근한 캐릭터는 1세대 아이돌 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했고, 그 경쟁은 두 그룹 모두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음반) 2000년 3집 《Only One》, 2001년 4집 《Hey, Come On!》을 연이어 내며 해마다 컴백하는 체력을 보여줬다. 이 시기 가요계는 카세트테이프에서 CD로 음반 매체가 넘어가던 때였고, 케이블 음악 채널과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늘어나며 아이돌 그룹의 무대 노출 기회도 함께 커지고 있었다. (콘서트) 2001년 4월 첫 단독 콘서트 실황 음반 《First Mythology》를 발표했다. 데뷔 3년 만에 단독 공연을 열 수 있을 만큼 팬층이 두터워졌다는 뜻이었고, 이는 신화가 음반 활동 못지않게 공연으로 관계를 다지는 그룹이 되는 출발점이 됐다.
클래식 선율을 가져와 쓴 샘플링 댄스곡으로, 데뷔 2년 만에 신화를 정상급 그룹으로 올려놓았다.
- 전주에 깔리는 현악 선율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클래식과 가요가 만나는 보기 드문 접점을 만든다.
- 현악 샘플과 전자 드럼 비트가 겹치는 지점에서 곡의 긴장감이 단숨에 올라간다.
- 후렴 직전 짧게 긴장을 끌어올리는 구간(프리코러스)에서 보컬이 한 음씩 밀어 올리며 다음 후렴을 기다리게 만든다.
- 정확히 맞춘 대형 전환과 군무는, 이 시기 신화가 '칼군무'라는 수식어를 얻은 결정적 장면으로 꼽힌다.
III. 전성기와 결별 · 2002–2003
(정점) 2002년 1월 베스트 앨범 《My Choice》에 이어 3월 5집 《Perfect Man》을 발표하며 전성기에 올라섰다. 스탠드마이크를 세워 두고 추는 절도 있는 군무는 이 앨범에서 비롯된 신화의 대표 이미지가 됐고, 지금도 그룹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회자된다. (결혼식) 같은 해 12월 6집 《너의 결혼식》을 내놓았다. 수록곡 「너의 결혼식」은 박자를 잘게 쪼갠 난도 높은 안무로 알려져 있으며, 화려한 군무 시대의 정점이자 마지막 장으로 꼽힌다. (분쟁) 2003년 SM엔터테인먼트와의 전속 계약이 끝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회사가 일부 멤버에게만 재계약을 제안하자, 여섯 명은 흩어지지 않겠다며 단체로 굿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 이후 SM 쪽에서 그룹명 상표권을 등록한 사실이 알려지자 에릭이 앞장서 법적 다툼을 이어갔고, 긴 시간 끝에 결국 상표권을 되찾았다. (의리) 이 사건은 신화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대목이 됐다. 멤버 교체나 일부 탈퇴로 재편되는 일이 흔한 아이돌 산업에서, 신화는 회사를 떠나는 쪽을 택하면서까지 여섯 명을 지켰다. 이때 다져진 신뢰는 훗날 병역을 거쳐 자체 기획사를 세우는 결정으로까지 이어진다.
스탠드마이크 안무로 신화의 상징적 이미지를 만든 전성기 대표곡.
- 멤버들이 스탠드마이크를 세워 두고 추는 안무는, 손에 쥔 마이크 자체를 소품처럼 쓰며 무대 전체의 시선을 붙잡는다.
- 후렴에서 마이크를 기울이고 다시 세우는 동작이 음 하나하나에 정확히 맞물려, 음악과 안무가 분리되지 않는 장면을 만든다.
- 춤만 나오는 구간(댄스 브레이크)에서 대형이 넓게 펼쳐지며 여섯 명 전체의 동선이 한눈에 들어오게 짜여 있다.
- 자신감 있고 당당한 태도를 앞세운 가사는, 전성기에 오른 그룹의 위치를 그대로 담아낸다.
화려한 군무 시대의 정점이자 사실상 마지막 장으로 꼽히는 곡.
- 박자를 초 단위로 쪼갠 안무는 신화의 곡들 가운데서도 난도가 가장 높은 축으로 꼽힌다.
- 경쾌한 비트 위에 얹힌 가사는 동생의 결혼식에서 처음 본 신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를 다루고 있어, 흥겨운 음악과 정서 사이의 간극이 포인트다.
- 후렴에서 보컬과 랩이 짧게 주고받는 구간은 여섯 명의 역할이 한 소절 안에서도 선명히 나뉘어 들린다.
-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군무는, 이후 신화가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콘셉트로 방향을 트는 분기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IV. 독립과 도약 · 2004–2007
(새출발) 굿엔터테인먼트로 옮긴 뒤 2004년 7집 《Brand New》를 내놓았다. 타이틀곡 「Brand New」는 그해 서울가요대상과 SBS 가요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회사를 떠나서도 정상급 그룹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해외) 2006년 8집 《State Of The Art》를 거치며 일본 활동을 본격화했고, 2007년 일본 골든디스크대상에서 베스트 아시아 아티스트상을 받았다. 한류가 일본 시장으로 번지던 시기, 신화는 음반과 공연을 통해 현지 팬층을 꾸준히 쌓아 간 그룹 가운데 하나였다. (성숙) 음악 바깥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에릭은 드라마를 통해 배우로 자리를 잡아 갔고, 다른 멤버들도 각자 연기와 방송으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그룹 활동과 개인 활동을 병행하는 이 방식은 이후 따로 또 같이라는 말로 불리며 신화를 지탱하는 원칙이 된다.
SM과 결별한 뒤 새 소속사에서 내놓은 곡으로, 그해 가요대상을 휩쓸며 건재함을 증명했다.
- 제목 그대로 새로움을 강조하듯, 전주부터 전자음(신스)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워 이전 앨범들과 다른 질감을 들려준다.
- 후렴의 짧고 반복적인 훅은, 라디오와 음악 방송 모두에서 기억되기 쉬운 구조를 택했다.
- 랩과 보컬이 번갈아 나오는 절(벌스) 구성은, 독립 후 처음 내놓는 곡답게 역할 배분에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 이 곡으로 받은 서울가요대상·SBS 가요대전 대상은, 회사를 떠나서도 정상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순간으로 남아 있다.
V. 병역과 공백 · 2008–2011
(입대) 2008년부터 멤버들이 차례로 입대하면서 공백기가 시작됐다. 여섯 명이 한 그룹으로 묶여 있는 특성상 입대와 전역 시기가 엇갈렸고, 전체가 다시 모이기까지는 약 4년이 걸렸다. 다인원 그룹이 집단으로 겪은 병역 공백으로는 이례적으로 긴 시간이었다. (개인) 복무 중에도 멤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을 이어 갔다. 에릭은 배우로서 작품을 이어 갔고, 이민우는 솔로 음반과 작곡·프로듀싱으로 영역을 넓혔으며, 김동완은 뮤지컬 무대에, 신혜성은 발라드 가수로서 단독 공연을, 전진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얼굴을 알렸다. (기다림) 긴 공백에도 팬클럽 신화창조는 흩어지지 않았다. 멤버들이 돌아가며 전역하는 동안에도 팬들은 자리를 지켰고, 이는 이후 한국 아이돌 팬덤 문화에서 오래 기다리는 팬덤의 대표 사례로 종종 거론된다.
VI. 자체 기획사와 부활 · 2011–2015
(창업) 2011년, 전역을 마친 멤버들이 뜻을 모아 신화컴퍼니를 세웠다. 여섯 명 모두가 주주로 참여하고 에릭과 이민우가 공동대표를 맡은 이 회사는, 아이돌 그룹이 소속사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활동을 기획한 사례로 꼽힌다. (복귀) 2012년 10집으로 완전체 활동을 재개했고, 2013년 11집 《The Classic》을 내놓았다. 2014년에는 상표권을 둘러싼 다툼으로 회사 이름을 신컴엔터테인먼트로 잠시 바꾸기도 했지만, 2015년 5월 법원 조정을 거쳐 신화라는 이름의 상표권을 정식으로 확보하고 그해 6월 신화컴퍼니로 사명을 되돌렸다. (WE) 2015년 12집 《WE》를 발표했다. 데뷔 17년 차에 접어든 그룹이 스타일리시하고 성숙한 콘셉트로 신곡을 내놓은 것으로, 신화가 세대교체가 빠른 아이돌 시장에서도 현역으로 경쟁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앨범이었다.
2012년 완전체 복귀 이듬해에 내놓은 11집 《The Classic》의 타이틀곡.
- 잔잔하게 시작해 점차 비트가 쌓이는 전개는, 감정이 서서히 고조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 후렴에서 폭발하듯 터지는 떼창 포인트는, 팬들과 함께 부르기 좋은 구간으로 꼽힌다.
- 변치 않는 마음을 다루는 가사는, 실제로 긴 시간을 돌아 다시 모인 여섯 명의 상황과 자연스럽게 겹쳐 들린다.
- 안무는 화려한 기교보다 여섯 명이 나란히 서는 대형을 강조해, 그룹이 여전히 완전체라는 사실 자체를 보여 주는 데 집중한다.
데뷔 17년 차에 내놓은 성숙하고 스타일리시한 콘셉트의 곡.
- 낮게 깔리는 베이스와 절제된 전자음(신스) 사운드는, 화려한 댄스곡 일변도였던 과거와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 후렴보다 절(벌스)의 리듬감을 살린 전개는, 오랜 경력의 그룹이 유행을 뒤쫓기보다 자기 스타일을 고르는 쪽을 택했다는 인상을 준다.
- 절제된 손동작 위주의 안무는 큰 동작보다 표정과 분위기로 제목 '표적'이 주는 날카로운 이미지를 전달한다.
- 데뷔 시절의 군무와 비교해 들으면, 신화가 세월이 흐른 자리에서 안무를 다시 정의해 가는 과정을 가늠할 수 있다.
VII. 지금 · 2015–2026
(13집) 2017년 정규 13집 《13TH UNCHANGING - TOUCH》를 발표했다. 데뷔 19주년을 맞아 변하지 않음을 제목에 내건 이 앨범은, 해체도 멤버 교체도 없이 완전체를 지켜 온 그룹 스스로의 역사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콘서트) 2019년에는 데뷔 21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이후로는 여섯 명이 모두 모이는 대규모 활동은 뜸해졌고, 각자 연기·솔로·방송 등 개별 영역에서의 활동 비중이 커졌다. (현재) 2024년 신화컴퍼니는 영업을 종료했다. 그러나 이것이 그룹의 해체를 뜻하지는 않았으며, 신화는 여전히 멤버 교체나 공식 해체 선언 없이 데뷔 때의 여섯 명을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장수 아이돌 그룹으로 남아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을 이어 가는 지금도, 따로 또 같이라는 원칙은 유효하다.
덜 알려진 이야기
신화의 여섯 멤버 가운데 에릭과 앤디는 미국에서 자라 캐스팅됐고, 신혜성은 유학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이민우는 전주 지역에서 춤으로 이름을 알리던 거리 댄서 출신, 전진은 서울 송파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댄서 출신으로 모집된 것으로 전해진다. 해외파와 국내파가 뒤섞인 구성은 이후 신화의 무대에서 서로 다른 색깔의 춤과 보컬이 공존하는 바탕이 됐다. 2003년의 결별은 떠들썩했지만, 2015년 상표권을 완전히 정리한 방식은 비교적 조용했다. 신화 측은 법정 다툼을 끝까지 끌고 가는 대신 법원 조정을 통해 합의에 이르렀고, 그 직후 회사 이름을 원래의 신화컴퍼니로 되돌렸다. 10여 년 전 멤버들이 직접 법적 다툼의 전면에 나섰던 것과 달리, 이 시기에는 회사 대 회사의 절차로 비교적 차분하게 마무리됐다는 점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2011년 신화컴퍼니 설립은 당시만 해도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소속사 없이 멤버들이 직접 주주와 경영자가 되어 그룹을 운영하는 방식은 이전까지 한국 아이돌 산업에서 보기 드문 모델이었고, 이후 데뷔 연차가 오래된 다른 그룹들이 독립이나 자체 레이블을 검토할 때 종종 참고 사례로 언급되는 선례가 됐다.
용어 노트 📚🔎
1세대 아이돌
(한국 대중음악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데뷔한 아이돌 그룹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H.O.T, 신화, god, 핑클처럼 기획사의 체계적인 연습생 시스템을 거쳐 데뷔한 첫 세대 그룹들이 여기 속한다. 반에서 처음 유행을 만든 선배 격 그룹들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다른 데서는) 다른 분야에서도 '1세대'는 특정 기술이나 유행을 처음 이끈 초기 집단을 가리킬 때 비슷하게 쓰인다.
칼군무
(말뜻) 칼처럼 각이 서 있다는 뜻의 '칼'과 여러 사람이 함께 추는 춤을 뜻하는 '군무'를 합친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여러 멤버가 동작 하나하나를 정확히 맞춰 추는 춤을 가리킨다. 한 사람이라도 박자가 어긋나면 금방 티가 나기 때문에 오랜 연습이 필요하다. 체육 시간 단체 줄넘기에서 모두가 같은 박자로 뛰어야 줄에 걸리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군백기
(말뜻) 군대에 가 있는 '공백기'를 줄인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그룹 멤버들이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동안 그룹 활동이 멈추는 기간을 가리킨다. 신화처럼 멤버가 여러 명인 그룹은 입대와 전역 시기가 서로 달라, 전체가 다시 모이기까지 공백이 길어지기도 한다.
상표권
(말뜻) 어떤 이름이나 표시를 특정한 사람이나 회사만 쓸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는 권리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그룹 이름이나 로고를 둘러싼 소유권 다툼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다. 소속사를 옮기거나 계약이 끝났을 때, 원래 회사가 그룹 이름을 먼저 등록해 버리면 멤버들이 자기 팀 이름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다른 데서는) 기업 브랜드나 상품명을 둘러싼 다툼에서도 똑같은 말이 쓰인다.
팬덤
(말뜻) 팬(fan)과 영토를 뜻하는 접미사 '덤(-dom)'을 합친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한 가수나 그룹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임과 문화 전체를 가리킨다. 신화의 공식 팬클럽 이름인 신화창조처럼, 그룹마다 고유한 이름과 색깔, 응원법을 갖는 경우가 많다. 같은 반 친구들끼리 응원하는 축구팀의 응원가와 손동작을 맞추는 것과 비슷한 결속이 생긴다.
음악 순위 프로그램
(한국 대중음악에서) 방송사가 매주 신곡의 판매량·방송 횟수·시청자 투표 등을 합산해 1위 곡을 가리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1990~2000년대에는 이 1위 자리가 그룹 인기를 보여 주는 가장 직접적인 지표였고, 신화 역시 이런 무대를 통해 얼굴을 알렸다. 반 대표를 뽑는 투표에서 득표수를 매주 집계해 발표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