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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 Taiji and Boys

서태지와 아이들 (1992–1996)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주었다」 — 1996년 1월 은퇴 기자회견에서

한눈에 보기 🔭💭

1. 뿌리대한민국 서울 결성시나위 베이시스트박남정과 프렌즈2. 데뷔난 알아요7.8점의 심사한국어 랩3. 실험하여가의 태평소첫 200만 장직접 운영4. 발언발해를 꿈꾸며교실 이데아컴백홈5. 충돌시대유감 연주판사전심의 폐지1996 은퇴 선언6. 유산YG와 양현석방탄소년단 리메이크K팝의 원형아이들1992–1996한국어 랩과 춤, 사회 비판으로 1990년대 …
무대의 여정 🧭🗺️
N대한민국서울1991–1996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영향신대철

    서태지가 베이스 연주자로 몸담았던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의 리더로, 서태지의 록적 뿌리를 만든 무대였다.

  • 영향박남정

    양현석과 이주노가 춤추던 박남정과 프렌즈의 주인공으로, 서태지가 두 댄서를 만난 연결 고리가 되었다.

  • 멤버양현석

    서태지에게 춤을 가르치며 팀을 시작했고, 해체 뒤 YG엔터테인먼트를 세워 빅뱅과 블랙핑크로 이어지는 계보를 만들었다.

  • 멤버이주노

    박남정과 프렌즈 출신 댄서로 그룹의 안무를 맡았고, 해체 뒤 영턱스클럽을 제작했다.

  • 영향방탄소년단

    2017년 「컴백홈」을 리메이크하고 서태지의 25주년 공연에 함께 오르며 세대를 잇는 후배가 되었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시나위의 베이시스트 · 1989–1991

(결성) 1991년 9월, 대한민국 서울에서 서태지·양현석·이주노 세 사람이 3인조를 결성했다. 대형 기획사가 짜 맞춘 팀은 아니었다. 록 밴드 출신의 젊은 음악가가 곡을 쓰고 두 댄서가 무대를 함께 꾸리는 구조였다. 양현석의 회고에 따르면 처음 구상한 이름은 '태지보이스'였으나 매니저의 제안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되었다. (시나위) 서태지의 본명은 정현철이고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이끄는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의 베이스 연주자로 음악을 시작했다. 1991년 시나위가 해체되자 컴퓨터로 악기 소리를 제어하는 미디 장비로 혼자 곡을 만들면서 랩과 댄스 음악에 빠져들었다. (만남) 서태지가 2014년 방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시나위 해체 뒤 밤무대에 서던 시절 그의 다음 순서가 박남정과 프렌즈였다. 그 무리에서 춤추던 양현석에게 반한 그는 먼저 대기실을 찾아가 인사했다. 이후 서태지는 양현석에게 춤을 배웠고, 역시 박남정과 프렌즈 출신인 이주노가 합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할) 역할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서태지가 작사·작곡·편곡·프로듀싱과 랩을 맡았고, 양현석과 이주노는 춤과 코러스를 맡았다. 이주노는 안무를 주도했다. 밴드의 연주자였던 사람이 기계로 혼자 음악을 짓고 춤꾼 둘과 손잡은 이 조합이 이후 4년 동안 한국 가요의 지형을 바꾸게 된다.

II. 7.8점의 데뷔 · 1992

(첫무대) 1992년 3월 14일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첫 무대를 가진 세 사람은 3월 23일 1집 「서태지와 아이들」을 냈다. 4월 11일에는 MBC 「특종 TV연예」에 나가 「난 알아요」를 불렀다. 가수 전영록, 작사가 양인자, 작곡가 하광훈, 연예평론가 이상벽이 심사했다. 리듬을 강조하다 보니 멜로디가 약하다는 취지의 평이 나왔고, 점수는 10점 만점에 7.8점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열풍) 반응은 심사평과 달리 거리에서 먼저 왔다. 「난 알아요」는 한국어 랩과 미국 힙합·뉴잭스윙의 리듬, 격렬한 춤을 한 곡에 묶었고, 가요 순위 프로그램 정상을 오래 지켰다. 1집은 약 170만~180만 장이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 활동한 「환상 속의 그대」도 큰 사랑을 받았고, 그해 서울가요대상 대상이 그룹에게 돌아갔다. (매체) 당시 음반 시장의 중심은 카세트테이프였고, 유행은 컬러TV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정해졌다. 소리만큼 화면이 중요한 시대였다. 경제성장으로 구매력을 갖춘 10대와 20대가 처음으로 자기 세대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찾았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이듬해 데뷔한 듀스와 함께 힙합 댄스는 가요의 큰 흐름이 되었다.

♪난 알아요1992무대 서태지와 아이들 · 1992 KBS 토요대행진

7.8점의 혹평을 받고도 거리와 순위 프로그램을 휩쓴 데뷔곡이다. 한국어 랩이 가요의 주류로 들어선 순간으로 꼽힌다.

  • 곡을 끌고 가는 것은 드럼머신(전자 장치로 찍어 낸 드럼 소리)의 통통 튀는 리듬이다. 미국에서 유행하던 뉴잭스윙(힙합 비트에 리듬앤블루스 선율을 섞은 댄스 음악)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 절(벌스)은 랩으로 말하듯 채우고 후렴은 노래로 부른다. 랩과 노래를 번갈아 놓은 이 구조가 당시 가요 팬들에게는 낯설고 새로웠다.
  • 서태지의 랩은 빠르게 몰아붙이기보다 한국어 음절을 박자에 또박또박 얹는 쪽이다. 랩이 익숙하지 않던 청중도 따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 무대에서는 양현석과 이주노의 격렬한 브레이크댄스가 곡의 절반을 차지했다. 심사위원들의 냉담한 평과 달리 대중은 바로 그 무대에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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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속의 그대1992무대 서태지와 아이들 · 1992 KBS 토요대행진

「난 알아요」의 열풍을 이어받아 1집 활동을 이끈 곡이다. 데뷔가 한 번의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었다.

  • 도입부부터 몰아치는 빠른 템포의 신시사이저(전자 건반 악기)와 전자 비트가 1990년대 초 댄스 음악의 소리를 대표한다.
  • 랩 구간이 길고 밀도가 높아 「난 알아요」보다 힙합 쪽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간 곡처럼 들린다.
  • 꿈만 좇지 말고 현실에서 움직이라고 말을 거는 화법이다. 사랑 노래 일색이던 댄스곡과 달리 듣는 이를 다그치는 태도가 이후 사회 비판 곡들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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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국악과 메탈 · 1993

(하여가) 1993년 6월 21일 2집이 나왔다. 타이틀곡 「하여가」는 조선 초 이방원의 시조에서 제목을 빌렸다. 랩과 댄스 리듬 위에 헤비메탈풍 기타 솔로와 태평소 소리를 얹은 곡으로, 서양 장르와 국악을 한 곡 안에서 맞부딪힌 시도가 큰 화제가 되었다. 2집은 약 220만 장이 팔려 한국 음반 역사상 처음으로 200만 장을 넘긴 앨범으로 꼽힌다. 발라드 「너에게」도 사랑받았고, 그룹은 서울가요대상 대상을 2년 연속 받았다. (독립) 2집 무렵부터 세 사람은 기획사를 직접 운영했다. 서태지는 훗날 한 방송에서 수입을 3:3:4로 나눴고, 음반 관여도를 따질 때는 2:2:6으로 나눴다고 밝혔다. 곡 쓰기와 제작을 한 사람이 맡은 구조가 정산에도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가수가 음반 제작과 매니지먼트를 스스로 쥔 것은 당시 가요계에서 드문 일이었다. (차림) 레게머리, 귀고리, 찢어진 청바지는 방송가의 기준과 자주 부딪쳤다. 영어권 자료에 따르면 1993년에는 이런 차림을 문제 삼아 KBS 출연이 막힌 일도 있었다. 그러나 헐렁한 옷과 모자는 곧 10대의 유행이 되었다. 세 사람의 겉모습은 기성 사회가 젊은 세대를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었다.

♪하여가1993무대 서태지와 아이들 · 1993 KBS 가요톱10

이방원의 시조에서 제목을 빌리고 메탈 기타와 태평소를 한 곡에 담은 2집 타이틀곡이다. 그룹의 실험이 최대 판매로 이어진 순간이었다.

  • 랩과 댄스 비트 위로 일그러진 전기기타가 거칠게 깔린다. 시나위 출신 서태지의 록 감각이 댄스곡 안으로 들어온 소리다.
  • 곡 중간에 태평소(날카롭고 큰 소리를 내는 국악 관악기)가 등장하는 대목이 이 곡의 가장 유명한 순간이다. 국악과 서양 대중음악을 섞는 퓨전이 순위 프로그램 한가운데서 울렸다.
  • 기타 솔로(기타 한 대가 주인공이 되어 즉흥적으로 펼치는 연주)는 헤비메탈 곡에서나 들을 법한 길이와 속도로 짜였다. 댄스 그룹의 곡으로는 파격이었다.
  • 제목이 마음을 떠보는 옛 시조에서 왔듯, 곡도 상대의 마음을 붙잡으려는 젊은 화자의 조급한 정서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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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교실과 통일 · 1994

(전환) 1994년 8월에 나온 3집에서는 댄스의 비중이 줄고 록과 메탈의 색이 짙어졌다. 서태지가 시나위 시절의 뿌리로 돌아간 듯한 변화였고, 가사의 관심도 연애에서 사회로 옮겨 갔다. 판매량은 약 150만~160만 장으로 전작보다 줄었지만, 음악적 야심은 이 앨범에서 가장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발해) 타이틀곡 「발해를 꿈꾸며」는 분단된 나라의 통일을 향한 염원을 담았다. 순위 프로그램 1위를 다투던 그룹이 남북 문제를 정면으로 노래한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었다. 이 곡은 훗날 제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교실) 「교실 이데아」는 입시 중심 교육이 학생을 한 틀에 찍어 낸다고 거칠게 비판한 랩 메탈 곡이었다. 심의는 통과했지만 일부 방송에서 제약을 받았다. 곡을 거꾸로 돌리면 악마를 숭배하는 메시지가 들린다는 소문, 이른바 백마스킹 논란도 퍼졌다. 이 소문은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이 근거 없음을 밝히면서 가라앉았다. (세대) 10대에게 이 노래는 자기들 대신 말해 주는 목소리였고, 기성세대에게는 불편한 질문이었다. 청소년이 부모나 교사와 나누지 못한 말을 스타에게 열광하는 방식으로 풀고 있다는 분석이 당시 신문에 실렸다. 아이돌의 원형으로 불리는 그룹이 동시에 사회 비판의 선두에 섰다는 점이 이 팀을 독특하게 만든다.

♪발해를 꿈꾸며1994노래 서태지와 아이들

댄스 그룹이 통일을 정면으로 노래한 3집 타이틀곡이다. 훗날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 빠른 댄스곡이 아니라 묵직한 록 발라드에 가깝다. 3집에서 록 쪽으로 방향을 튼 변화가 타이틀곡에서부터 드러난다.
  • 서태지는 랩보다 노래로 곡을 이끈다. 힘을 빼고 낮게 시작해 후렴에서 차츰 감정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 분단된 땅의 사람들에게 언젠가 하나가 되자고 말을 거는 화법이다. 정치 구호보다 젊은이의 소망처럼 들리게 만든 점이 많은 세대에게 받아들여진 이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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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이데아1994실황 서태지와 아이들 ·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입시 교육을 거칠게 비판한 랩 메탈 곡으로, 백마스킹 소문까지 낳은 3집의 문제작이다.

  • 곡은 낮게 긁는 목소리와 무겁게 일그러진 기타로 문을 연다. 랩 메탈(랩과 헤비메탈 기타를 합친 장르)이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로 들어온 첫 장면으로 꼽힌다.
  • 랩은 앞선 곡들보다 훨씬 공격적이다. 박자를 짧게 끊어 내뱉으며 분노를 그대로 싣는다.
  • 학생을 줄 세우는 교실과 그 틀을 만든 어른들에게 따지듯 묻는 화법이다. 10대의 대변자라는 그룹의 이미지가 이 곡으로 굳어졌다.
  • 도입부를 거꾸로 돌리면 이상한 메시지가 들린다는 소문(백마스킹 논란)이 퍼졌지만,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이 근거 없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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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시대유감, 그리고 은퇴 · 1995–1996

(갱스터) 1995년 10월 5일에 나온 4집은 미국 서부 힙합의 갱스터 랩 스타일로 문을 열었다. 「컴백홈」은 집을 떠난 청소년에게 돌아오라고 말을 거는 곡이다. 이 노래를 듣고 집으로 돌아간 가출 청소년의 사연이 당시 신문에 실렸다고 전해지지만, 그 규모를 보여 주는 통계는 없다. 앨범은 200만 장 넘게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의) 같은 앨범의 「시대유감」은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에서 정부와 사회를 비판한 가사가 문제가 되었다. 서태지는 가사를 고치는 대신 노래를 빼고 연주만 실었다. 팬들의 항의는 사전심의 폐지 여론에 힘을 보탰다. 1996년 6월 음반 사전심의가 폐지되었고, 7월에는 원래 가사를 살린 싱글이 나왔다. 노래 한 곡이 제도를 바꾸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가 여기서 나온다. (퇴장) 1996년 1월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무대를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춘 세 사람은 1월 31일 서울 성균관대학교 유림회관에서 은퇴를 발표했다.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 주었다는 것이 발표의 요지였다. 정상에서 물러난 이 결정은 10대 팬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해 「굿바이 베스트 앨범」이 나왔고, 팬들은 기념사업회를 꾸렸다. 9월 SM엔터테인먼트의 H.O.T.가 데뷔해 그 빈자리를 채우면서 기획사가 주도하는 아이돌 시대가 열렸다는 해석이 많다.

♪컴백홈 (Come Back Home)1995무대 서태지와 아이들 · 1995 KBS 가요톱10

갱스터 랩으로 문을 연 4집의 타이틀곡이다. 집을 떠난 청소년에게 말을 건 이 노래는 2017년 방탄소년단의 리메이크로 다시 불렸다.

  • 템포를 늦추고 굵고 낮은 베이스와 묵직한 드럼을 앞세웠다. 1990년대 중반 미국 서부 힙합의 갱스터 랩 사운드를 직접 옮겨 온 듯한 소리다.
  • 랩은 느긋하고 무겁게 박자 뒤쪽에 걸쳐 흐른다. 1집의 또박또박한 랩과 비교하면 4년 사이에 달라진 플로우(박자에 말을 태우는 방식)가 분명히 들린다.
  • 어둡고 거친 사운드와 달리 메시지는 따뜻하다. 방황하는 또래에게 돌아오라고 다독이는 화법이다.
  • 무대 의상인 헐렁한 힙합 차림과 털모자는 곡과 함께 거리의 유행이 되었다. 춤도 앞선 앨범보다 그루브(몸이 저절로 흔들리는 리듬감) 중심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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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유감1995노래 서태지와 아이들 · 2024 리마스터

사전심의에 걸려 4집에는 연주만 실렸다가, 심의 폐지 뒤인 1996년 7월 원래 가사로 다시 나온 곡이다.

  • 1995년 앨범판에는 목소리가 전혀 없다. 노래를 통째로 지운 빈자리 자체가 검열에 대한 항의로 읽혔다.
  • 기타가 주도하는 록 편곡으로, 리듬 기타의 반복 리프(짧게 되풀이되는 기타 악절)가 곡 전체를 밀고 간다.
  • 1996년 무삭제 싱글에서는 기성 권력과 위선적인 어른들을 냉소적으로 꼬집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두 판을 나란히 들어 보면 그 사이에 바뀐 제도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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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흩어진 셋, 남은 원형 · 1996–2017

(각자) 은퇴 뒤 서태지는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98년 솔로 5집으로 돌아왔고, 이후 록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의 회사가 운영한 레이블에서 넬이 앨범을 냈고, 2014년 9집의 「소격동」은 아이유가 먼저 자신의 목소리로 발표했다. 양현석은 음반 기획자가 되어 YG엔터테인먼트를 세웠고, 지누션과 원타임에서 빅뱅·지드래곤·2NE1·블랙핑크로 이어지는 계보를 만들었다. 이주노는 영턱스클럽을 제작했다. (재회) 2014년 서태지는 멤버들과 재결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뷔 25주년인 2017년에는 리메이크 프로젝트 「타임: 트래블러」가 시작되었고, 그 첫 곡이 방탄소년단의 「컴백홈」이었다. 9월 2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공연에는 방탄소년단이 특별 게스트로 올라 서태지와 함께 대표곡들을 불렀다. 주최 측은 관객을 3만 5천여 명으로 추산했다. 서태지는 방탄소년단과 함께한 무대에 대해 농담 섞인 소감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형) 1997년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서 이 그룹은 가장 중요한 한국 문화상품으로 꼽혔다. 한국어 랩의 대중화, 춤 중심의 무대, 가수가 제작을 쥔 구조, 앨범마다 장르를 바꾸는 태도는 오늘날 K팝의 원형으로 거론된다. 2017년 공연 이후 서태지의 새 음악 활동은 알려진 것이 없다. 4년 남짓 활동한 그룹이 30년 넘게 기준점으로 남아 있다.

덜 알려진 이야기

데뷔 무대의 7.8점은 전설처럼 회자되지만 당사자들의 기억은 조금씩 다르다. 심사위원이던 이상벽은 이들을 오디오형 가수에서 비디오형 가수로 넘어가는 실마리로 보았다고 회고했다. 그날이 프로그램의 첫 회여서 비교할 앞선 출연자도 없었다는 증언도 있다. 훗날의 성공이 이 점수를 극적인 오판의 상징으로 다듬은 측면이 있다. 그룹 이름도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 않았다. 양현석의 회상에 따르면 원래 이름은 '태지보이스'였고, 지금의 이름은 매니저가 바꿨다. 이 대목은 멤버의 방송 회고로만 남아 있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세 사람의 정산 방식은 오랫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서태지는 2014년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 수입을 3:3:4(자신이 4)로, 음반 수익은 2:2:6으로 나눴다고 밝혔다. 곡 쓰기와 제작을 서태지가, 무대를 셋이 함께 맡은 구조가 숫자로 드러난 드문 기록이다. 「하여가」의 국악 사운드 뒤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다. 사물놀이의 김덕수는 2020년 인터뷰에서 「하여가」 때 돈 한 푼 받지 않고 재능을 기부했다고 회고했다. 어떤 악기로 참여했는지는 그 발언에서 밝혀지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국악계 원로의 회고로 전해진다.

용어 노트 📚🔎

랩

(한국 대중음악에서) 선율을 크게 붙이지 않고 박자에 맞춰 말하듯 가사를 쏟아 내는 창법이다. 1992년 「난 알아요」 이전에도 시도는 있었지만, 한국어 랩이 순위 프로그램 정상에 오르며 대중화된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 때부터로 본다. 줄넘기 줄이 돌아가는 박자에 맞춰 구호를 외치며 뛰어 본 적이 있다면 그게 랩의 원리와 비슷하다. 박자가 먼저 있고, 그 위에 말을 정확히 올려놓는 것이다. (다른 데서는) 영어 rap 에는 툭 치다, 비난하다라는 뜻도 있고, 식품 포장용 랩(wrap)과는 철자부터 다른 말이다.

미디(MIDI)

(말뜻) 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 의 머리글자로, 악기를 디지털로 연결하는 규격이라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컴퓨터와 신시사이저·드럼머신을 연결해 여러 악기 소리를 한 사람이 프로그래밍해 연주하게 하는 방식이다. 시나위 해체 뒤 서태지는 미디 장비로 혼자 곡을 만들었고, 밴드 없이도 완성된 편곡을 짤 수 있게 되었다. 게임에서 캐릭터 여러 명을 한 사람이 동시에 조종하는 것처럼, 미디를 쓰면 혼자서 드럼·베이스·건반을 모두 움직일 수 있다.

사전심의

(말뜻) 사전(事前)은 일이 일어나기 전, 심의(審議)는 살펴 따진다는 뜻이다. 곧 발표하기 전에 미리 검사한다는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1996년까지 음반은 공연윤리위원회 같은 기관의 심사를 통과해야 낼 수 있었다. 가사가 문제가 되면 고치거나 빼야 했다. 「시대유감」은 이 심의에 걸려 노래 없이 연주만 실렸고, 팬들의 항의가 제도 폐지 여론에 힘을 보탰다. 학급 신문을 내기 전에 선생님이 미리 읽고 이 문장은 빼라고 지시하는 상황을 떠올리면 된다. 사전심의는 그 일을 국가 기관이 모든 음반에 대해 한 것이다.

백마스킹

(말뜻) 영어 backmasking 은 거꾸로(back) 덮어 숨긴다(mask)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녹음을 거꾸로 재생하면 숨은 메시지가 들리도록 일부러 넣는 기법, 또는 그런 메시지가 있다는 주장을 말한다. 1994년 「교실 이데아」를 두고 거꾸로 들으면 악마를 숭배하는 말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이 근거 없음을 확인했다. 구름을 오래 보면 동물 모양이 보이듯, 사람의 귀도 의미 없는 소리에서 단어를 찾아내곤 한다. 이런 소문의 상당수가 그렇게 생긴다.

랩 메탈

(한국 대중음악에서) 묵직하게 일그러진 헤비메탈 기타와 드럼 위에 노래 대신 랩을 얹는 장르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퍼졌고, 한국에서는 「교실 이데아」가 대중적으로 가장 먼저 크게 알려진 예로 꼽힌다. 체육 시간의 시끄러운 북소리에 맞춰 반 전체가 구호를 외치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소리는 거칠어도 말은 또렷이 들려야 하는 음악이다.

갱스터 랩

(한국 대중음악에서) 1990년대 미국 서부에서 유행한 힙합의 한 갈래로, 느리고 묵직한 비트와 굵은 베이스, 거리의 거친 삶을 다루는 태도가 특징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과 「컴백홈」이 이 스타일을 한국 순위 프로그램에 들여왔다. 다만 「컴백홈」은 거친 소리에 가출한 또래를 다독이는 따뜻한 메시지를 실었다. 겉모습은 무서워 보이는데 막상 말을 걸어 보면 다정한 친구 같은 노래다. (다른 데서는) 갱스터(gangster)는 원래 범죄 조직원을 가리키는 영어 낱말이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

(한국 대중음악에서) 음반 판매·방송 횟수·시청자 투표 등을 합쳐 매주 노래의 순위를 매기고 1위 곡을 발표하는 TV 프로그램이다. 1990년대에는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같은 프로그램이 유행을 정했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마지막 무대도 여기였다. 반에서 매주 가장 인기 있는 급식 메뉴를 투표로 뽑아 게시판에 붙인다고 생각해 보면, 그 게시판을 전국 텔레비전으로 옮긴 것과 비슷하다.

더블 밀리언셀러

(말뜻) 영어 double(두 배)과 million(백만), seller(팔리는 것)를 붙인 말로, 200만 장 넘게 팔린 음반을 뜻한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 2집이 약 220만 장으로 한국에서 처음 이 기록을 세운 앨범으로 꼽힌다. 당시에는 카세트테이프와 CD를 사서 들었기 때문에, 한 장이 팔렸다는 것은 실제로 누군가 가게에 가서 돈을 냈다는 뜻이었다. 전교생이 1천 명인 학교 2천 곳의 학생이 모두 한 장씩 산 것과 맞먹는 숫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