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areads.musicK-pop

Kim Jong-seo

김종서 (1992–)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헤비메탈의 고음에서 출발해, 1990년대 록 발라드의 한 시대를 연 목소리.

한눈에 보기 🔭💭

1. 뿌리대한민국 서울 종로 출생태백의 유년파고다 언더그라운드2. 밴드부활 초대 보컬시나위 「Down and U…카리스마3. 인연베이시스트 서태지「Free Style」4. 정점「대답 없는 너」「겨울비」 골든디스크순위 프로 1위 13회5. 록커「플라스틱 신드롬」「절대 사랑」 록상6. 지금성악 발성 공부「In My Life」복면가왕 4연승김종서1992–시나위·부활의 초대 보컬에서 「대답 없는 너」…
무대의 여정 🧭🗺️
N대한민국서울1965태백1965–1976서울1976–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영향신대철

    시나위의 리더로, 김종서를 두 번 밴드에 불러 2집 「Down and Up」과 4집을 함께 만들었다.

  • 우정김태원

    공연장에서 그를 발탁해 부활의 초대 보컬로 세웠고, 그는 훗날에도 부활 공연에 함께 섰다.

  • 후원유현상

    1988년 밴드 카리스마를 기획해 그를 보컬로 기용했다.

  • 우정서태지

    시나위 4집의 베이시스트로 만나 가까워졌고, 「Free Style」을 함께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영향김경호

    김종서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포에버로 활동한 후배 록 보컬리스트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탄광 마을의 소년 · 1965–1984

(출생) 1965년 대한민국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생일은 자료에 따라 2월 23일과 9월 21일로 엇갈린다. 부모의 직업이나 집안 형편에 대해서는 공개된 기록이 거의 없다. (태백)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가족이 강원도 태백으로 옮겼다. 그는 탄광 도시 태백의 황지국민학교에서 5학년 무렵까지 유년을 보냈다. 그 뒤 서울로 돌아와 아현국민학교, 동도중학교, 한성고등학교를 다녔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라 지방과 서울을 오간 이 시기에 대해 그는 많은 말을 남기지 않았다. 다만 훗날 그의 노래에 짙게 깔린 고독과 방황의 정서를 이 시절과 엮어 읽는 사람들도 있다. (파고다) 고등학교를 마칠 즈음 그는 이미 록 보컬리스트가 되려 마음먹고 있었다. 1980년대 초중반 서울 종로 파고다 공원 일대에는 젊은 록 밴드들이 모여 공연하는 언더그라운드 무대가 있었다. 그는 로거스, 검은진주 같은 밴드에서 노래하며 무대를 익혔다고 전해진다. 당시 한국 대중음악의 중심은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타는 가요였고, 헤비메탈은 레코드 가게의 수입 음반과 작은 공연장에서만 숨 쉬는 음악이었다. 그는 바로 그 좁은 문으로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II. 두 밴드의 첫 목소리 · 1984–1988

(오디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신대철이 이끄는 시나위의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러나 첫 공연을 마친 뒤 밴드를 떠나야 했고, 그 뒤 1년 가까이 발성 연습에만 매달렸다고 알려져 있다. 실패를 기술로 메우겠다는 고집은 이후 그의 음악 인생 내내 이어졌다. (부활) 1985년 무렵 기타리스트 김태원이 공연장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새 밴드에 불렀다. 그 밴드가 부활이고, 김종서는 부활의 초대 보컬이었다. 부활은 공연으로 이름을 알렸으나, 그는 음악적 방향이 달라 첫 음반이 나오기 전에 팀을 떠났다. 1986년에 나온 부활 1집은 이승철의 목소리로 녹음되었다. 한 밴드의 출발을 함께하고도 음반에는 이름이 남지 않은 셈이다. (시나위) 1987년 임재범이 떠난 시나위에 신대철의 요청으로 돌아와 2집 「Down and Up」을 녹음했다. 이 음반은 한국 헤비메탈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수록곡 「새가 되어 가리」에서 그의 날카로운 고음이 처음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 음반을 그의 공식 데뷔로 본다. 이듬해에는 신중현의 곡을 다시 부른 2.5집 「두 그림자」에도 참여했다. 1980년대 후반은 LP와 카세트테이프로 록 음반이 팔리고 대학가와 소극장에서 헤비메탈이 유행하던 때였고, 그는 그 흐름의 한가운데 있었다.

♪새가 되어 가리1987무대 김종서 x 시나위 · 2003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

시나위 2집 「Down and Up」에 실린 곡으로, 김종서가 대중에게 처음 목소리를 알린 녹음이다. 오디션 실패 뒤 1년간 발성을 다진 결과가 이 고음에 담겼다.

  • 신대철의 일렉트릭 기타가 곡의 뼈대를 세운다. 무겁게 일그러진 기타 소리(디스토션)와 빠른 독주(기타 솔로)가 1980년대 헤비메탈의 전형을 보여 준다.
  • 김종서의 목소리는 가늘고 높은 소리를 날카롭게 내지르는 창법(샤우팅)에 가깝다. 당시 국내에서 드물던 높은 음역이 이 곡에서 분명히 들린다.
  • 드럼과 베이스, 기타를 한 공간에서 함께 녹음한 듯한 아날로그 밴드 소리가 담겨 있다. 디지털 편집이 없던 시절 소리의 거친 질감을 느낄 수 있다.
  • 한국 헤비메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음반의 수록곡이다. 후에 솔로 가수가 된 그의 록 발라드 창법이 어디서 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YouTube에서 듣기 ↗

III. 베이시스트 서태지 · 1988–1991

(카리스마) 시나위 3집을 준비하던 중 음악적 의견이 엇갈려 그는 다시 밴드를 떠났다. 1988년에는 유현상이 기획한 밴드 카리스마에 합류해 1집을 냈다. 이름난 연주자들이 모인 팀이었지만 공연할 기회가 많지 않아 오래가지 못했다. 이 무렵 그는 밴드를 옮겨 다니며 무대와 생계를 함께 걱정해야 했다. (서태지) 1990년 그는 시나위 4집에 다시 참여했다. 이때 베이스를 맡은 사람은 고등학생 나이의 서태지였다. 서태지는 원래 김종서의 공연을 거의 매일 보러 오던 팬이었다고 전해진다. 시나위에 들어온 뒤 두 사람은 음악 취향이 비슷해 가까워졌다고 전해진다. 4집 활동 뒤 그는 또 한 번 시나위를 떠났다. 서태지도 곧 다른 길을 찾아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했다. (독립 준비) 이 무렵 그는 밴드 보컬이 아닌 자기 이름으로 서는 길을 준비했다. 시나위 시절부터 써 둔 곡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곡들이 곧 솔로 1집의 바탕이 되었다. 헤비메탈 신에서 실력은 인정받았지만 아직 대중은 그의 이름을 몰랐다. 그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IV. 대답 없는 너 · 1992–1994

(독립) 1992년 그는 솔로 1집을 냈다. 타이틀곡 「대답 없는 너」와 후속곡 「지금은 알 수 없어」가 연달아 크게 히트했다. 헤비메탈 보컬의 고음을 서정적인 발라드 선율에 얹은 이 노래들은 록 발라드가 주류 가요로 들어오는 길을 열었다. 그는 훗날 이 곡 덕분에 이름이 알려졌다며 자신의 인생곡으로 꼽았다. (전성) 1993년 2집의 「겨울비」도 크게 히트해 그해 골든디스크 본상과 서울가요대상 본상을 받았다. 1992년부터 1993년까지 「대답 없는 너」, 「지금은 알 수 없어」, 「겨울비」로 지상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모두 13번 1위를 했다. 같은 시기 서태지와 아이들이 랩과 댄스로 가요계를 뒤흔들었는데, 시나위에서 한 무대에 섰던 두 사람이 한 해에 각자의 이름으로 정상에 오른 것이다. 카세트테이프와 CD가 함께 팔리고 텔레비전 순위 프로그램이 인기를 좌우하던 시대였다. 그는 긴 머리의 록 가수로서 드물게 그 한복판에 섰다. (눈물) 1994년 3집에서는 「세상의 눈물 마를 때까지」와 「악몽」, 「남겨진 독백」을 발표했다. 이별의 정서에 머물던 앞선 음반들과 달리, 3집에는 세상의 아픔을 바라보는 시선이 들어왔다. 언더그라운드 밴드 보컬이 몇 해 만에 정상급 가수가 되었지만, 그는 록 음악가라는 정체성을 놓지 않으려 했다.

♪대답 없는 너1992노래 김종서 · 2026 KBS 더 시즌즈

밴드를 전전하던 보컬이 자기 이름으로 낸 첫 타이틀곡이다. 그는 이 곡 덕분에 이름이 알려졌다며 인생곡으로 꼽았다.

  • 곡은 잔잔하게 시작해 후렴(코러스)에서 터진다. 절(벌스)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가 후렴에서 한꺼번에 고음으로 솟는 대비가 이 곡의 핵심이다.
  • 부르는 사람은 응답하지 않는 상대를 향해 혼잣말하듯 원망과 그리움을 쏟아 낸다. 헤비메탈의 고음이 이별 발라드의 슬픔을 전하는 데 쓰였다.
  • 피아노·현악 느낌의 신시사이저와 일렉트릭 기타가 함께 쓰여, 1990년대 초 록 발라드 편곡의 전형처럼 들린다.
  • 1992~1993년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에 오르며, 긴 머리 록 가수가 텔레비전 가요의 중심에 선 장면을 만들었다. 지금도 그의 공연에서 오프닝을 맡곤 한다.
YouTube에서 듣기 ↗
♪겨울비1993무대 김종서 · 2018 KBS 열린음악회

1집의 성공을 이어 2집에서 다시 크게 히트한 곡으로, 그해 골든디스크 본상을 안겼다. 계절을 제목으로 삼은 이 노래로 그는 연이은 히트를 기록했다.

  • 차가운 비가 내리는 겨울 풍경에 이별 뒤의 쓸쓸함을 겹친 노래다. 부르는 사람이 지난 사랑을 홀로 되새기는 독백조로 전개된다.
  • 도입부와 절에서는 숨을 섞은 부드러운 음색을 쓰다가, 후렴에서 성대를 강하게 울리는 고음으로 바꾼다. 같은 가수 안에서 음색이 바뀌는 순간이 들을 만하다.
  • 후렴 뒤에 이어지는 기타 독주(기타 솔로)는 록 밴드 보컬 출신다운 편곡이다. 발라드 안에 록의 흔적을 남긴 대목으로 들린다.
  • 카세트테이프와 CD가 함께 팔리던 시절의 히트곡으로, 지금도 겨울마다 라디오와 노래방에서 다시 불리는 계절 노래가 되었다.
YouTube에서 듣기 ↗

V. 열섬과 추락천사 · 1995–2001

(열섬) 1995년 4집 「Thermal Island」의 타이틀곡 「플라스틱 신드롬」은 발라드가 아니라 강한 록 넘버였다. 그는 록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회고했다. 이 음반에는 서태지와 함께 만들고 부른 것으로 알려진 「Free Style」이 실렸고, 같은 해 서태지와 아이들 4집에도 같은 제목의 곡이 실렸다. 두 사람의 우정이 두 장의 음반에 함께 새겨진 셈이다. 그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단독 공연을 열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구속) 1996년 5집 「Fallen Angel Forever」에서 「아름다운 구속」이 나왔다. 작사가 한경혜가 노랫말을 쓴 이 곡은 사랑에 매인 마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밝은 고백이다. 결혼식 축가와 노래방 애창곡으로 오래 불리며 그의 가장 대중적인 노래가 되었다. 5집에는 「Free Style」을 다시 해석한 「Free Style 2」도 실렸다. (밴드) 1998년 6집 「SEEDS」는 김종서 밴드라는 이름으로 냈다. 연주곡을 빼고 전곡을 그가 직접 작사·작곡했다. 외환위기로 음반 산업이 움츠러든 때였지만 「에필로그」는 오래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1999년 7집에서는 「실연」을, 2001년 8집 「Odyssey」에서는 「절대 사랑」을 발표했다. 「절대 사랑」으로 그해 서울가요대상과 골든디스크의 록 부문 상을 받으며, 그는 데뷔 15년 차에도 현역 로커임을 보여 주었다.

♪플라스틱 신드롬1995무대 김종서 · 2011 MBC 아름다운 콘서트

4집 「Thermal Island」의 타이틀곡으로, 발라드 대신 강한 록을 앞세운 선택이었다. 그는 록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회고했다.

  • 빠르고 무거운 기타 리프(짧게 반복되는 기타 악절)가 곡 전체를 끌고 간다. 앞선 히트곡들과 달리 처음부터 밴드 소리가 앞에 선다.
  • 제목처럼 겉만 번듯한 세상과 사람을 꼬집는 비판적인 화법이다. 사랑 노래가 아닌 사회를 바라보는 노래가 타이틀이 된 점이 눈에 띈다.
  • 강한 박자(비트)에 맞춰 보컬도 날카롭게 끊어 부르는 대목이 많아, 몸이 박자에 반응하는 록 넘버로 들린다.
  • 1990년대 중반 록 발라드 가수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록 음악가로 돌아가려 한 시도로 자주 언급된다.
YouTube에서 듣기 ↗
♪아름다운 구속1996무대 김종서 밴드 · 2025 KBS 열린음악회

5집 「Fallen Angel Forever」의 곡으로, 작사가 한경혜가 노랫말을 썼다. 결혼식 축가로 오래 불리며 그의 가장 대중적인 노래가 되었다.

  • 그의 다른 히트곡과 달리 밝고 경쾌한 장조(밝은 느낌의 음계)의 곡이다. 사랑에 매인 상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행복한 고백으로 노래한다.
  • 고음을 질러 대는 대신 가볍고 맑게 띄우는 창법이 중심이다. 그의 목소리가 지닌 부드러운 면이 가장 잘 드러난 곡으로 꼽힌다.
  • 기타와 밴드 소리가 가볍게 통통 튀는 리듬을 만들어, 따라 부르기 쉬운 후렴(코러스)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작사가 한경혜는 이 곡이 자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밝혔다. 노래방과 결혼식장에서 세대를 넘어 불리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YouTube에서 듣기 ↗
♪에필로그1998무대 김종서 · 1998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

김종서 밴드라는 이름으로 낸 6집 「SEEDS」의 곡이다. 연주곡을 빼고 전곡을 직접 쓴 음반에서 나와 오래 사랑받았다.

  • 제목처럼 끝맺음과 작별을 다루는 노래로, 지나간 시간을 담담하게 돌아보는 화법이다.
  • 밴드 명의 음반답게 기타·베이스·드럼이 고르게 들리는 밴드 편곡이다. 솔로 가수의 반주라기보다 한 팀의 연주처럼 들린다.
  • 후반부로 갈수록 소리를 겹겹이 쌓아 올려 감정을 키우는 구성이다. 마지막 고음 대목은 라이브에서 원래 키로 부르는지가 늘 관심거리였다.
  • 외환위기로 음반 시장이 위축되던 1998년에 나왔지만, 이후 오래 다시 불리는 곡이 되었다.
YouTube에서 듣기 ↗

VI. 목소리를 다시 짓다 · 2002–2016

(9집) 2005년 9집 「No.9」은 4년 만의 정규 앨범으로 「별」과 「민트」 등이 실렸다. 음반 시장이 MP3와 디지털 음원으로 빠르게 넘어가던 때였고, 정규 앨범을 공들여 만드는 방식은 갈수록 수지를 맞추기 어려워졌다. 9집은 그의 마지막 정규 앨범으로 남았고, 이후 그는 싱글 위주로 곡을 냈다. (예능) 2007년 무렵부터 그는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나왔고, 2008년에는 드라마 「행복합니다」에도 출연했다. 무대 위의 카리스마와 달리 소탈한 모습이 알려지면서, 그의 노래를 모르던 젊은 시청자들도 그를 알게 되었다. 2007년 부산 국제 록페스티벌에서는 한국 록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2010년에는 밴드 레이(REI)를 꾸려 싱글 「High」를 냈다. (발성) 2012년 tvN 「오페라스타」에 출연할 무렵 그는 성악 발성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젊은 시절 오디션에서 떨어진 뒤 1년간 발성을 다시 익혔던 것처럼, 마흔이 넘어 다시 기본기로 돌아간 것이다. 2014년 KBS 「불후의 명곡」에서는 주현미의 「눈물의 부르스」를 록으로 편곡해 불러 442점을 받았다. 원래 키로 고음을 소화하는 라이브는 이 시기 방송 경연 무대를 통해 다시 화제가 되었다.

VII. 백 곡의 끝에서 · 2017–2026

(서른) 2017년 데뷔 30주년을 맞아 그는 서울의 소극장에서 한 달 가까이 공연 「트레이스」를 열었다. 큰 공연장 대신 관객과 가까운 무대를 고른 것은 파고다 공원 언저리의 작은 공연장에서 시작한 그다운 선택이었다. 그는 부활의 공연에도 꾸준히 함께 서며 첫 밴드와의 인연을 이어 갔다. (용기) 2023년 1월, 약 7년 만의 신곡 「In My Life」를 냈다. 작사·작곡·편곡을 모두 직접 했고, 비틀스에서 영감을 받은 1970년대풍 소리를 재현했다. 그는 이 곡을 위해 100곡 가까이 썼으며, 전성기가 지났다는 생각에 패배주의에 빠져 발표를 포기할 뻔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안 되면 조용히 접겠다는 각오로 낸 곡이었다고 했다. 유튜브와 스트리밍이 음악을 듣는 기본 방식이 된 시대에 그는 다시 처음부터 자기 노래를 증명하는 길을 택했다. (가왕) 같은 해 MBC 「복면가왕」에 나와 네 번 연속 가왕에 올랐다. 가면을 쓰고 이름 없이 노래하는 무대에서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통했다. 그는 서울 압구정에서 매일 재즈 밴드가 연주하는 LP 바를 운영하고 있으며, 2020년대에도 공연과 방송을 오가며 무대를 지키고 있다.

♪인 마이 라이프 (In My Life)2023무대 김종서 · 딩고뮤직 [FOCUS]

약 7년 만에 낸 신곡으로, 100곡 가까이 쓰고 포기할 뻔한 끝에 발표했다. 작사·작곡·편곡을 모두 그가 직접 했다.

  • 그는 비틀스에서 영감을 받아 1970년대 레트로(옛 시대풍) 소리를 재현했다고 밝혔다. 고음 록 발라드와는 결이 다른 따뜻한 밴드 소리다.
  • 자기 삶을 돌아보는 회고의 화법으로, 젊은 날의 노래들보다 힘을 뺀 목소리로 부른다.
  • 디지털로 매끈하게 다듬은 요즘 소리 대신 아날로그 악기의 질감을 살린 편곡으로 들린다.
  • 전성기가 지났다는 패배감을 이겨 내고 낸 곡이라고 본인이 말해, 노래의 정서와 그의 실제 삶이 맞물린다.
YouTube에서 듣기 ↗

덜 알려진 이야기

(부활) 김종서는 부활의 초대 보컬이었다. 1985년 무렵 김태원이 그의 노래를 듣고 밴드에 불렀고, 부활은 공연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그가 첫 음반이 나오기 전에 팀을 떠나면서 1986년 부활 1집은 이승철의 목소리로 녹음되었다. 음반 중심으로 쓰인 역사에서는 이 1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팬) 시나위 4집의 베이시스트 서태지는 원래 김종서의 공연을 거의 매일 보러 오던 팬이었다고 김종서가 회고했다. 1992년 두 사람은 각자 정상에 올랐지만, 한 사람은 록 발라드로, 다른 한 사람은 랩과 댄스로 올라서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자주 잊힌다. 1995년 두 사람의 음반에 같은 제목 「Free Style」이 실린 것이 그 인연의 흔적이다. (볼륨업) 그가 서울 압구정에서 운영하는 LP 바는 가수 홍경민이 쓴 뮤지컬 「볼륨 업」의 모티프가 되었다. 어려움을 겪는 음악 클럽 이야기다. 그는 이 사연을 2023년 신곡 발표 무렵의 라디오 출연에서 직접 밝혔다. 이 바에서는 매일 재즈 밴드가 연주한다고 한다. (기본기) 그는 경력의 고비마다 발성의 기본으로 돌아갔다. 스무 살 무렵 시나위 오디션에 합격하고도 첫 무대 뒤 밴드를 떠난 뒤 1년간 발성 연습에 매달렸고, 데뷔 25년이 지난 2012년에는 「오페라스타」 출연을 계기로 성악 발성을 새로 공부했다. 고음 가수로서의 명성 뒤에 이런 반복된 기초 훈련이 있었다는 사실은 대표곡의 화려함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용어 노트 📚🔎

헤비메탈

(말뜻) 영어 heavy metal은 무거운 금속이라는 뜻이다. 쇠를 두드리듯 무겁고 강한 소리라는 느낌이 이름에 담겨 있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일그러뜨린 일렉트릭 기타, 빠르고 강한 드럼, 높이 내지르는 보컬이 특징인 록 음악의 한 갈래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중후반 시나위·부활 같은 밴드가 이끌었다. 운동회 줄다리기 때 북을 크게 쾅쾅 치며 응원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그 힘찬 박자와 큰 소리가 헤비메탈의 느낌과 닮았다. (다른 데서는) 화학이나 환경 분야에서 헤비메탈은 납·수은 같은 중금속을 가리킨다.

록 발라드

(한국 대중음악에서) 느리고 서정적인 발라드 선율에 록 밴드의 악기와 강한 고음 보컬을 얹은 노래다. 1990년대 초 김종서의 「대답 없는 너」 같은 곡이 이 장르를 대중가요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조용한 이야기로 시작해 마지막에 큰 소리로 마음을 털어놓는 편지처럼, 절에서는 차분하다가 후렴에서 감정이 폭발하는 구성이 많다.

언더그라운드

(말뜻) 영어 underground는 땅 밑, 지하라는 뜻이다. 방송이나 큰 회사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활동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텔레비전이나 대형 기획사가 아니라 작은 공연장, 클럽, 거리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음악과 음악가를 가리킨다. 1980년대 파고다 공원 일대의 록 밴드들이 대표적이다. 학교 대표팀은 아니지만 방과 후 동네 운동장에서 실력을 갈고닦는 축구 모임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지하철을 뜻하기도 하고, 정치에서는 비밀 조직이나 지하 운동을 가리키기도 한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

(한국 대중음악에서) 음반 판매, 방송 횟수, 시청자 투표 등을 합쳐 매주 1위 곡을 정하는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이다. 1990년대에는 여기서 1위를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인기의 증거였다. 김종서는 1992~1993년 이런 프로그램에서 13번 1위를 했다. 반에서 매주 칭찬 스티커를 세어 이번 주 1등을 정하는 것과 비슷한데, 그 결과를 전국이 함께 지켜본다는 점이 다르다.

정규 앨범

(말뜻) 정규(正規)는 바른(正) 규칙(規), 곧 정식이라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가수가 여러 곡(대개 10곡 안팎)을 한 번에 모아 정식으로 내는 음반이다. 1집, 2집처럼 번호를 붙이며, 곡 한두 개만 내는 싱글이나 몇 곡만 담은 미니 앨범과 구분된다. 김종서는 1992년부터 2005년까지 정규 앨범 9장을 냈다. 학기마다 따로 내는 숙제가 싱글이라면, 한 해 동안 모은 작품을 묶어 만든 문집이 정규 앨범에 가깝다.

원키

(한국 대중음악에서) 노래를 처음 녹음했을 때의 음 높이(키)를 그대로 지켜 부르는 것을 말한다. 나이가 들면 목소리가 낮아져 키를 내려 부르는 가수가 많기 때문에, 오래된 고음 곡을 원키로 부르는 것은 실력의 증거로 여겨진다. 리코더로 연주하던 곡을 반 음 낮춰 불면 편하지만 원래 악보대로 연주하면 높은 음이 어렵듯이, 원키는 원래 악보 그대로의 도전이다. (다른 데서는) 같은 표현이 게임이나 컴퓨터에서는 키 하나로 실행하는 단축키, 곧 원 키(one key) 조작을 뜻하기도 한다.

리메이크

(말뜻) 영어 remake는 다시(re) 만든다(make)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이미 발표된 노래를 새로 편곡하고 녹음해 다시 내는 것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부르기도 하고, 자기 옛 노래를 다시 부르는 셀프 리메이크도 있다. 시나위 2.5집은 신중현의 곡을 다시 불렀고, 김종서는 「불후의 명곡」에서 주현미의 「눈물의 부르스」를 록으로 바꿔 불렀다. 친구가 만든 요리법에 내 방식대로 재료를 바꿔 새 맛을 내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영화나 게임에서도 예전 작품을 새로 만드는 것을 리메이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