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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edition is on the way — showing the Korean original.

Franz Schubert

프란츠 슈베르트 (1797–1828)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 1824년, 벗 레오폴트 쿠펠비저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눈에 보기 🔭💭

1. 뿌리오스트리아 리히텐탈 출생다섯만 생존교사 집안2. 콘빅트살리에리 사사슈파운과 우정합창단 소년3. 폭발그레첸마왕그로프와 이별4. 벗들슈베르티아데 결성포글의 무대송어 오중주5. 투병매독 발병미완성 교향곡겨울 나그네6. 말년베토벤 장례현악 오중주31세 요절슈베르트1797–1828가곡으로 시대를 새로 쓰고, 병과 가난 속에 서른한 해 만에 스러진 빈의 작곡가
삶의 여정 🧭🗺️
NAustria리히텐탈1797–1808빈(슈타트콘빅트)1808–1813빈(교사 시절)1814–1816빈(벗들의 집)1816–1823바트가슈타인1825빈(말년)1823–1828

곁의 사람들 ⏳🌊

  • 가족
    프란츠 테오도어 슈베르트
    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는 첫 음악 스승이자 엄격한 훈육자였다.
  • 스승
    안토니오 살리에리
    궁정 악장으로서 콘빅트 시절 그의 작곡을 지도했고 오랫동안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 우정
    요제프 폰 슈파운
    가난한 그에게 오선지를 사 주며 평생의 벗이자 후원자가 되었다.
  • 후원
    요한 미하엘 포글
    당대 최고의 바리톤으로, 그의 가곡을 무대에 올려 세상에 알렸다.
  • 영향
    루트비히 판 베토벤
    깊이 존경한 선배 작곡가로, 임종 소식을 듣고 병상을 찾았고 장례 행렬에 참여했다.

I. 리히텐탈의 소년 · 1797–1808 (0–11세)

(출생) 1797년 1월, 오스트리아 빈 교외 리히텐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프란츠 테오도어 슈베르트는 지역 학교 교장이었고, 어머니 엘리자베트 피츠는 결혼 전 요리사로 일했다. 부부는 열네 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유아기를 넘긴 것은 다섯뿐이었다 — 이그나츠, 페르디난트, 카를, 프란츠, 그리고 여동생 테레지아. 잦은 죽음이 드리운 집안 분위기 속에서 막내에 가까운 그는 자랐다. (음악)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을, 열두 살 위의 형 이그나츠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곧 리히텐탈 성당 합창단 지휘자 미하엘 홀처가 재능을 알아보고 오르간과 화성법을 가르쳤는데, 홀처는 훗날 이 아이가 이미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성격은 조용하고 내향적이었으며, 안경을 쓴 작은 체구 탓에 친구들 사이에서 '슈밤멜(작은 버섯)'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콘빅트) 1808년, 맑은 소년 목소리를 인정받아 빈의 황실 신학교 슈타트콘빅트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궁정 예배당 합창단원 자격이었지만, 그는 곧 학생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주자로도 자리를 옮기며 교향곡과 실내악을 폭넓게 접하기 시작했다.

II. 살리에리와 상실 · 1808–1813 (11–16세)

(스승) 궁정 악장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콘빅트에서 그의 작곡을 지도했다. 로시니와 모차르트 이전 세대에 속한 이 노장은 이탈리아식 성악 작법을 가르쳤지만, 소년은 독일 가곡과 교향곡에 더 마음이 끌렸다. 살리에리는 그를 '나의 제자'라 부르며 콘빅트를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벗) 같은 학교의 선배 요제프 폰 슈파운은 가난한 소년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자기 돈으로 오선지를 사 주었다. 여덟 살 나이 차를 넘어선 이 우정은 평생 이어졌으며, 슈파운은 그의 첫 후원자이자 가장 성실한 증인으로 남아 편지와 회고를 통해 오늘날까지 그의 삶을 전해 준다. (변성과 상실) 1812년 변성기가 찾아와 합창단을 떠나야 했다. 같은 해 어머니 엘리자베트가 티푸스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이 상실을 깊이 앓았다. 이듬해 아버지는 안나 클라이엔뵈크와 재혼했고, 그는 콘빅트를 나와 교사 양성 과정에 들어가며 십 대의 보호막을 벗었다.

III. 교단과 폭발 · 1814–1816 (17–19세)

(교단) 1814년부터 아버지 학교에서 가장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보조교사로 일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노동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벗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 일을 저주받은 굴레라 표현했고, 수업이 끝나면 곧장 작곡에 몰두하며 낮과 밤을 뒤바꿔 살았다. (폭발) 이 무렵 그는 상상하기 힘든 속도로 곡을 쏟아냈다. 1814년,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가져온 '실 잣는 그레첸'을 하루 만에 완성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독일 가곡이라는 장르가 사실상 새로 태어난 순간으로 꼽힌다. 이듬해에는 '마왕'을 비롯해 무려 백사십여 곡을 써냈다 — 열여덟 살 청년의 한 해 생산량으로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로프)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소프라노 테레제 그로프를 사랑했다. 1816년 청혼을 마음먹었지만, 당시 오스트리아 법은 안정된 수입을 증명해야만 결혼을 허락했다. 무명 교사에 불과했던 그는 그 요건을 채울 수 없었고, 그로프는 훗날 제빵사와 결혼했다. 이 실연의 그림자는 이후 그가 쓴 수많은 가곡 속 짝사랑과 이별의 정서에 오래도록 겹쳐 나타난다.

가곡 '실 잣는 그레첸' D.1181814 (17세)

교사 생활의 고역 속에서 하루 만에 써냈다는 곡으로, 독일 가곡이라는 장르가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평가된다.

  • 피아노 반주가 처음부터 끝까지 물레바퀴가 도는 모습을 그대로 그린다(끊임없이 도는 16분음표 반주) — 그레첸의 불안한 마음을 소리로 옮긴 것이다.
  • '그의 입맞춤!' 대목에서 반주가 순간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는 지점은 억눌린 감정이 몸으로 터져 나오는 순간으로 꼽힌다.
  • 성악가는 소녀의 순진함과 관능 사이를 오가는 음색 조절이 관건이며, 해석에 따라 감정의 폭이 크게 갈린다.
  • 곡 전체가 하나의 반주 형태로 지속되는 구조는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 반주 자체가 곧 인물의 심리라는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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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마왕' D.3281815 (18세)

열여덟 살에 쓴 이 곡은 백사십여 곡을 쏟아낸 1815년의 폭발적 생산력을 상징한다.

  • 피아노 오른손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음을 빠르게 반복하는(옥타브 트레몰로) 대목은 말이 질주하는 소리이자 아이의 공포를 나타낸다.
  • 한 명의 성악가가 화자, 아버지, 아들, 마왕 네 인물을 음역과 음색만으로 구분해 불러야 하는 대목은 성악가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난이도로 꼽힌다.
  • 마왕의 유혹하는 노래는 밝은 장조로, 아이의 비명은 반음씩 점점 높아지는 선율로 그려져 공포가 고조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 마지막 '아이는 죽어 있었다'는 대사에서 반주가 갑자기 멈추는 순간은 극적 침묵의 대표적 예로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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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자유음악가와 벗들 · 1816–1820 (19–23세)

(독립) 1816년 무렵 교직을 그만두고 벗 프란츠 폰 쇼버의 집에 얹혀살기 시작했다. 정규직도 고정 수입도 없이, 그는 오로지 벗들의 호의와 이따금의 악보 판매로 생계를 이었다. 평생 자신의 집을 가져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의 경제 사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임) 쇼버, 시인 요한 마이어호퍼, 화가 레오폴트 쿠펠비저 등이 모인 친교의 저녁은 훗날 '슈베르티아데'라 불리게 된다. 당대 최고의 바리톤 요한 미하엘 포글은 이 모임에서 그의 가곡을 직접 불러 세상에 알렸다. 무명이던 그에게 청중을 만들어 준 결정적 인물이었다. (송어) 1817년에 쓴 가곡 '송어'는 이 시절의 소박한 즐거움을 담았다. 2년 뒤 후원자 질베스터 파움가르트너의 의뢰로 같은 선율을 변주 악장에 담은 피아노 오중주 '송어'를 완성했다. (감시) 1820년, 벗 요한 젠이 정치적 발언으로 체포되는 사건에 휘말려 그도 경찰 조사를 받았다. 메테르니히 체제 아래 빈은 사적인 모임조차 의심받는 도시였고, 이 경험은 그를 더욱 좁고 사적인 벗들의 원 안으로 움츠러들게 했다.

피아노 오중주 '송어' D.6671819 (22세)

슈베르티아데의 활력이 정점에 달했던 시절, 후원자 파움가르트너의 청으로 자신의 밝은 가곡을 변주곡으로 다시 빚었다.

  • 4악장 변주곡의 주제는 가곡 '송어'의 선율을 그대로 가져왔다 — 원곡을 먼저 들어두면 각 변주에서 선율이 어떻게 옷을 바꿔 입는지 선명히 들린다.
  • 피아노가 낮은 음역까지 내려가 첼로 대신 저음을 받치는 구성은 이 곡 특유의 편성(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에서 나온 효과다.
  • 4악장 마지막 변주에서 첼로가 물살을 가르듯 빠르게 오르내리는 대목은 실제 송어가 튀어 오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평이 많다.
  • 전체적으로 밝고 목가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라, 병 없이 건강했던 청년기의 활력을 보여주는 곡으로 자주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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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병과 걸작 · 1822–1824 (25–27세)

(발병) 1822년 말 매독에 감염되었다. 이듬해 병원에 입원했고, 머리카락이 빠져 가발을 써야 했다. 벗 레오폴트 쿠펠비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가련한 사람이라 표현하며, 밤마다 다시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잠든다고 썼다. (미완성) 발병 직전이던 1822년, 교향곡 8번을 쓰다가 두 악장만 남긴 채 붓을 놓았다. 왜 멈췄는지는 지금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후 이 곡은 '미완성 교향곡'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방앗간) 투병 중이던 1823년,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썼다. 방앗간 청년의 짝사랑과 절망, 결국 시냇물에 몸을 던지는 결말은 병상에서 느낀 절망과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죽음과 소녀) 1824년에는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를 완성했다. 자신이 예전에 쓴 가곡의 선율을 2악장 변주의 주제로 삼아, 죽음을 부드럽게 부르는 목소리로 그렸다.

교향곡 8번 '미완성' D.7591822 (25세)

매독 발병 직전, 두 악장만 남긴 채 붓을 놓은 곡으로, 그 이유는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 1악장은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낮고 어두운 선율로 조용히 시작한다 — 이 도입 주제가 곡 전체의 불안한 정서를 예고한다.
  •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함께 연주하는 서정적인 제2주제는 갑작스러운 강한 화음(포르티시모)에 여러 차례 끊기며, 평온과 불안이 교차한다.
  • 왜 2악장에서 멈췄는지는 지금도 논쟁거리다 — 미완성 자체가 감상의 일부가 된 드문 사례로 꼽힌다.
  • 2악장 끝, 조용히 잦아드는 종결부는 이야기를 다 끝맺지 못한 채 침묵 속으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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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D.7951823 (26세)

병원 입원과 겹친 시기에 쓴 곡으로, 방앗간 청년의 절망은 병상의 그 자신과 멀지 않았다.

  • 첫 곡 '방랑'에서 피아노가 시냇물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반주를 들려주는데, 이 냇물의 노래는 연가곡 전체를 관통하는 인물로 기능한다.
  • 청년의 희망은 초반 곡들에서 장조의 밝은 선율로, 절망은 후반부로 갈수록 단조와 느린 템포로 옮겨가니 이 흐름을 따라가며 들으면 이야기의 굴곡이 선명해진다.
  • 마지막 곡 '시냇물의 자장가'에서 반주가 마치 흔들리는 요람처럼 잔잔해지는 대목은 죽음을 위로하듯 부드럽게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 성악가와 피아니스트의 호흡이 극도로 긴밀해야 하는 곡으로, 두 사람의 대화처럼 들리는 순간들이 이 작품의 핵심 매력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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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사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D.8101824 (27세)

투병의 그림자가 짙던 해, 자신의 옛 가곡 선율을 다시 불러와 죽음을 마주하는 곡을 썼다.

  • 2악장은 자신이 예전에 쓴 가곡 '죽음과 소녀'의 선율을 주제로 다섯 개의 변주로 펼친다 — 죽음이 소녀를 달래는 원곡의 정서가 변주마다 다른 표정으로 되풀이된다.
  • 1악장 도입의 강한 화음은 마치 문을 두드리듯 단호하게 울리며, 곡 전체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예고한다.
  • 4악장은 빠른 춤곡(타란텔라) 리듬으로 몰아치는데, 이 격렬함을 죽음으로부터의 도피로 읽는 해석과 죽음 자체의 무자비한 질주로 읽는 해석이 갈린다.
  • 네 악기가 팽팽하게 맞서는 긴장감 때문에 실내악 가운데서도 앙상블의 균형과 호흡이 특히 까다로운 곡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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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베토벤의 그림자 · 1825–1827 (28–30세)

(대교향곡) 1825년부터 이듬해까지, 훗날 '그레이트'라 불리는 교향곡 9번(다장조)을 썼다. 건강이 다소 회복된 시기였고, 성악가 포글과 오버외스터라이히 지방을 여행하며 얻은 활기가 곡 곳곳에 스몄다. (존경) 그는 베토벤을 깊이 존경했지만 살아서는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다. 1827년 3월 베토벤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상을 찾았다는 증언이 전하며, 장례식에서는 서른여섯 명의 관을 든 이들 가운데 횃불을 든 한 사람으로 참석했다. 이 죽음은 그에게 깊은 충격을 남겼다. (겨울나그네) 같은 해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를 완성했다. 사랑을 잃고 눈 덮인 벌판을 떠도는 나그네의 노래는, 병과 가난과 고립 속에 살아온 자신의 내면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벗들은 이 곡의 어두움에 놀랐지만, 그는 이것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들이라 답했다.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 D.9111827 (30세)

베토벤의 죽음을 목격한 해, 사랑과 건강과 안정을 모두 잃은 자신의 내면에 가장 가까이 닿은 곡을 완성했다.

  • 첫 곡 '안녕히'부터 발걸음을 연상시키는 일정한 리듬의 피아노 반주가 이어지며, 이는 연가곡 전편에 걸쳐 눈길을 터벅터벅 걷는 나그네의 걸음을 그린다.
  • '보리수' 대목의 다정한 선율은 지나간 행복의 기억을, 뒤이은 곡들의 삭막한 화성은 그 기억이 깨진 현실을 대비시킨다.
  • 마지막 곡 '라이어 켜는 노인'에서 피아노가 흉내 내는 삐걱거리는 손풍금 소리는 황량함의 극한을 나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 스물네 곡 전체를 한 자리에서 완주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성악가들 사이에서는 체력과 해석력을 동시에 시험하는 곡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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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마지막 만개 · 1828 (31세)

(연주회) 1828년 3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작품만으로 이루어진 공개 연주회를 열었다. 그럭저럭 성공을 거두어 얼마간의 수입을 얻었지만, 같은 시기 빈을 찾은 파가니니의 공연이 화제를 독차지하며 그의 무대는 곧 잊혔다. (만개) 죽음을 앞둔 몇 달 사이 그는 현악오중주 다장조, 마지막 세 편의 피아노 소나타, 그리고 사후에 '백조의 노래'로 묶인 가곡들을 한꺼번에 써냈다. 병약한 몸과 달리 필력은 그 어느 때보다 왕성했다. (죽음) 그해 가을 오염된 물을 마신 것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장티푸스에 걸렸다. 11월 19일, 서른한 살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베토벤 가까이 묻히고 싶다던 생전의 바람대로 그의 무덤 곁에 안장되었고, 두 사람의 유해는 1888년 빈 중앙묘지로 함께 옮겨졌다.

현악오중주 다장조 D.9561828 (31세)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에 완성한 마지막 실내악으로, 짧은 생의 마지막 인사처럼 들린다.

  • 첼로 두 대를 쓰는 드문 편성 덕분에 저음이 유난히 두텁고 따뜻하게 울리며, 1악장 도입의 화음이 이 곡 특유의 깊은 울림을 예고한다.
  • 2악장은 느리고 정적인 선율 위로 중간부에서 갑자기 격렬한 폭풍이 몰아치듯 어두워지는데, 이 극적인 대비는 실내악에서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 3악장 스케르초의 힘찬 리듬과 느려지는 중간부(트리오)의 갑작스러운 애수 어린 전환은 생의 마지막 몇 달 사이 요동친 그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이 있다.
  • 완성 두 달 뒤 세상을 떠났기에, 이 곡은 마치 삶에 대한 마지막 인사처럼 들린다는 감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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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노트 📚🔎

가곡

시에 곡을 붙인 독창곡. 슈베르트는 이 장르를 예술적으로 완성한 인물로 꼽힌다.

연가곡

여러 개의 가곡을 하나의 이야기나 정서로 묶어 순서대로 부르는 모음곡이다.

슈베르티아데

슈베르트와 벗들이 모여 음악을 나누던 사적인 저녁 모임. 그의 이름을 따 붙여졌다.

콘빅트

빈에 있던 황실 신학교로, 재능 있는 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음악과 학문을 가르쳤다.

현악사중주

바이올린 두 대, 비올라, 첼로 각 한 대로 이루어진 실내악 편성과 그 곡을 가리킨다.

스케르초

빠르고 익살스러운 성격의 악장으로, 교향곡이나 사중주의 세 번째 악장 자리에 흔히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