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 Sibelius
“다른 작곡가들이 온갖 빛깔의 칵테일을 만드는 동안, 나는 맑고 찬 물을 내놓는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스승마르틴 베겔리우스
헬싱키 음악원 원장으로, 엄격한 작곡의 기초와 바그너에 대한 열정을 그에게 전했다.
- 우정페루초 부소니
헬싱키 음악원에서 만난 이탈리아 출신 피아니스트로, 평생 친구로 지내며 베를린 무대에 그의 작품을 소개했다.
- 가족아이노 시벨리우스
예르네펠트 장군의 딸로 1892년 결혼해 여섯 딸을 낳았고, 아이놀라의 살림과 남편의 곤궁을 끝까지 함께 견뎠다.
- 우정로베르트 카야누스
지휘자로서 「아이노 교향곡」으로 그를 칼레발라로 이끌었고, 「핀란디아」와 교향곡들을 앞장서 연주했다.
- 후원악셀 카르펠란
돈을 모아 이탈리아 여행을 마련해 준 후원자이자 오랜 조언자로, 1919년 그의 죽음은 시벨리우스에게 큰 상실이었다.
I. 하멘린나의 아이 · 1865–1885 (0–20세)
(출생) 1865년 12월, 러시아 제국의 핀란드 대공국(오늘날 핀란드) 하멘린나에서 태어났다. 세례명은 요한 율리우스 크리스티안 시벨리우스였고, 집에서는 ‘얀네’라고 불렸다. 아버지 크리스티안 구스타프는 이 도시의 의사였고, 어머니는 마리아 샬로타 보리였다. 집안에서는 당시 핀란드 상류층이 대개 그랬듯 스웨덴어를 썼다. (상실) 1868년 7월, 아버지가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다. 시벨리우스는 두 살 반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빚 때문에 살림은 파산 처리되었고, 어머니는 누나 린다와 시벨리우스, 그리고 이듬해 태어난 동생 크리스티안을 데리고 친정어머니의 집으로 옮겼다. 그는 할머니와 어머니 곁에서 자랐고, 여름이면 해안 도시 로비사의 친가에서 지냈다. (핀란드어) 어머니는 아이들을 스웨덴어 학교가 아니라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핀란드어 중등학교에 보냈다. 그는 이곳에서 핀란드어를 익히고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를 읽었다. 훗날 그의 음악을 길러 낸 신화의 세계는 이때 처음 열렸다. (바이올린) 열 살 무렵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품 「물방울」을 썼다고 전한다. 열네 살에 군악대장 구스타프 레반데르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늦은 출발이었지만 그는 독주자가 되기를 꿈꿨다. 피아노를 치는 린다, 첼로를 켜는 크리스티안과 삼중주를 이루어 집에서 자주 연주했고, 그 무렵의 실내악 습작이 여럿 남아 있다. 혼자 숲과 호숫가를 오래 걷는 습관도 이때 생겨 평생 이어졌다. 1885년 졸업 시험을 마치고 헬싱키로 떠났다.
II. 칼레발라를 향하여 · 1885–1892 (20–27세)
(법학) 1885년 가을 헬싱키 대학 법학부에 들어갔지만, 함께 다니기 시작한 헬싱키 음악원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1년 만에 법학을 그만두었다. 원장 마르틴 베겔리우스는 그에게 엄격한 작곡의 기초를 가르쳤고, 바그너에 대한 열정도 함께 전했다. (우정) 1888년 이탈리아 출신 피아니스트 페루초 부소니가 교수로 부임했다. 나이가 한 살 차이인 두 사람은 금세 가까워졌고, 우정은 평생 이어졌다. 친구 아르마스 예르네펠트의 집에서는 장군의 딸 아이노를 만났다. 예르네펠트 집안은 핀란드어 문화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유학) 1889년 베를린으로 건너가 알베르트 베커에게 대위법을 배웠다. 수업은 지루했지만, 이곳에서 로베르트 카야누스가 지휘한 그의 「아이노 교향곡」을 듣고 칼레발라를 음악으로 옮길 수 있다는 자극을 받았다. 1890년 아이노와 약혼한 뒤 빈으로 옮겨 카를 골트마르크와 로베르트 푹스에게 배웠고,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3번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반면 빈 필하모닉 바이올린 단원 오디션에서는 긴장한 끝에 떨어졌다. 독주자의 꿈은 이때 사실상 접혔다. 사교와 씀씀이로 빚도 늘어 갔다. (쿨레르보) 귀국 뒤 1891년 여름, 룬 가수(칼레발라의 옛 노래를 구전으로 부르는 가수) 라리ン 파라스케의 노래를 직접 들었다. 1892년 4월, 칼레발라의 비극적 영웅을 다룬 「쿨레르보」를 직접 지휘해 초연했고, 핀란드어 가사로 된 이 대작은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두 달 뒤 아이노와 결혼해 동쪽 카렐리아 지방으로 떠났고, 그곳에서도 민요를 받아 적었다.
빈에서 구상하고 룬 가수의 노래를 들은 뒤 완성한, 핀란드어로 노래한 첫 대작이다. 이 곡의 성공으로 스물여섯 살의 그는 단번에 핀란드 음악의 희망이 되었다.
- 3악장 ‘쿨레르보와 누이’에서 남성 합창은 다섯 박을 한 묶음으로 세는 5/4박자로 이야기를 읊는다. 칼레발라를 낭송하던 옛 룬 노래의 리듬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 같은 악장 후반, 소프라노(누이)가 자신을 유혹한 사람이 잃어버린 오빠라는 사실을 알고 절규하는 대목이 곡 전체의 정점이다. 바리톤(쿨레르보)의 독백이 이어 무너지듯 따라온다.
- 5악장 ‘쿨레르보의 죽음’에서는 합창이 영웅의 최후를 담담히 서술하고, 1악장 첫머리의 주제가 돌아와 비극을 닫는다.
- 생전에 작곡가가 악보를 거두어들여 오랫동안 묻혀 있던 곡이라, 1970년 파보 베르글룬드의 첫 전곡 녹음 이후의 연주들을 비교해 들어 볼 만하다.
III. 민족의 목소리 · 1893–1903 (28–38세)
(오페라) 1893년 「카렐리아」 음악으로 인기를 얻은 그는 칼레발라를 소재로 한 오페라 「배 만들기」를 구상했다. 그러나 1894년 바이로이트와 뮌헨에서 바그너의 음악극을 본 뒤 오페라를 접었고, 그 서곡으로 쓰려던 음악은 죽음의 강 위를 떠도는 「투오넬라의 백조」가 되었다. 이 곡이 든 「레민카이넨 모음곡」은 리스트가 개척한 교향시를 핀란드 신화에 맞게 다듬은 결과였다. (술자리) 헬싱키에서는 화가 갈렌칼렐라, 지휘자 카야누스와 밤새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았다. 갈렌칼렐라는 그 장면을 그림 「심포지움」(1894)에 남겼다. 빚은 계속 불었고, 1897년 핀란드 원로원이 10년간 연금을 주기로 하면서 겨우 숨통이 트였다. (딸) 딸 에바와 루트에 이어 1898년 셋째 키르스티가 태어났지만, 1900년 장티푸스로 잃었다. 아버지를 앗아 간 바로 그 병이었다. (핀란디아) 1899년 러시아가 핀란드의 자치권을 제한하자, 그는 언론 자유를 지지하는 행사의 음악을 썼다. 그 마지막 곡을 다듬은 「핀란디아」는 1900년 카야누스의 파리 만국박람회 순회 연주로 해외에 알려졌다. 1899년 초연한 교향곡 1번에는 차이콥스키의 그림자가 짙다는 평이 따랐다. (후원) 넉넉지 않은 귀족 애호가 악셀 카르펠란은 후원자들에게서 돈을 모아 그를 이탈리아로 보냈다. 1901년 라팔로에서 착수한 교향곡 2번은 1902년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카야누스는 이 곡을 민족 해방의 이야기로 풀었지만, 시벨리우스 자신은 그런 표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바그너식 오페라를 포기하면서 남은 서곡이 죽음의 강을 그린 교향시가 되었다. 신화를 오케스트라의 색채로 옮기는 그의 방식이 처음 뚜렷하게 드러난 곡이다.
- 처음부터 끝까지 백조의 노래를 맡는 것은 오보에보다 낮고 어두운 목관악기 잉글리시 호른 하나다. 길게 숨을 이어 가는 이 독주는 관현악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고난도 독주다.
- 현악기들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아주 낮고 여리게 깔아 주는 화음이 검고 고요한 강물처럼 들린다.
- 중간에 첼로 독주가 잉글리시 호른과 짧게 대화하듯 주고받는 대목에 귀를 기울여 보자.
- 끝부분에서 현악기들이 활의 나무 부분으로 줄을 두드리는 주법(콜 레뇨)이 나와, 메마른 소리로 저승의 정적을 더한다.
- 시벨리우스가 네 곡의 순서를 바꾸었기 때문에, 음반에 따라 이 곡이 모음곡의 두 번째 또는 세 번째에 놓인다.
러시아의 압박에 맞선 언론 행사 음악의 마지막 곡을 다듬은 작품이다. 파리 만국박람회 순회로 그의 이름이 처음 세계에 알려졌다.
- 도입에서 금관악기들이 무겁고 어두운 화음을 짓누르듯 울린다. 억압받는 시대의 분위기로 흔히 듣는다.
- 빠른 부분에서 팀파니와 금관이 몰아치는 리듬이 투쟁의 장면처럼 들린다.
- 중간에 목관악기가 조용히 부르는 찬가 선율은 훗날 가사가 붙어 ‘핀란디아 찬가’로 불리게 되었다. 시벨리우스는 이 선율이 민요를 빌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 끝부분에서 그 찬가 선율이 금관으로 크게 돌아오는 순간을 놓치지 말자.
카르펠란이 모은 돈으로 떠난 이탈리아에서 착수한 곡이다. 청중은 민족의 희망을 들었지만, 작곡가는 표제 없이 음악 그 자체로 듣기를 바랐다.
- 1악장 첫머리에서 현악기가 낮은 음에서 계단처럼 오르는(상행) 세 음의 짧은 동기를 반복한다. 이 작은 씨앗이 곡 전체에서 모양을 바꿔 가며 자란다.
- 2악장은 콘트라베이스와 첼로가 손가락으로 줄을 뜯는(피치카토) 걸음 위로 바순 두 대가 어두운 선율을 부르며 시작한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쓴 스케치에 돈 후안과 죽음의 장면을 적어 두었다.
- 3악장의 빠른 부분과 오보에의 느린 목가가 번갈아 나오다가, 끊김 없이 그대로 피날레로 넘어가는 이음매가 이 곡의 백미다.
- 피날레 끝부분에서 낮은 현악기가 같은 음형을 끈질기게 되풀이하는(오스티나토) 위로 금관이 솟아오른다. 카야누스는 이 대목을 해방의 승리로 풀이했다.
IV. 아이놀라 · 1904–1913 (39–48세)
(이주) 1904년 가을,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야르벤페의 투술라 호숫가로 이사했다. 건축가 라르스 손크가 설계한 집에는 아내의 이름을 따 ‘아이놀라’라는 이름이 붙었다. 도시의 술자리에서 벗어나려는 결심이기도 했다. 이웃에는 처남인 화가 에로 예르네펠트, 화가 페카 할로넨, 작가 유하니 아호가 살았다. 1903년 태어난 카타리나에 이어 이 집에서 마르가레타(1908)와 하이디(1911)가 태어났다. (협주곡) 1904년 2월 초연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혹평을 받았다. 그는 곡을 줄이고 고쳐, 1905년 10월 베를린에서 카를 할리르의 독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휘로 다시 선보였다. 접어 둔 독주자의 꿈을 작곡으로 갚은 그의 유일한 협주곡이었다. 같은 무렵 쓴 「슬픈 왈츠」는 판권을 헐값에 넘긴 탓에, 세계적으로 사랑받았어도 그에게 돌아온 돈은 적었다. (말러) 1907년 교향곡 3번을 발표한 해 11월, 헬싱키를 찾은 구스타프 말러와 대화를 나누었다. 시벨리우스가 교향곡의 매력은 양식의 엄격함과 동기들을 잇는 깊은 논리에 있다고 하자, 말러는 “아니오, 교향곡은 세계와 같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품어야 합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길은 이 대화처럼 갈렸다. (종양) 1908년 목에 종양이 생겨 베를린에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다. 양성이었지만 재발의 두려움 속에서 그는 술과 시가를 몇 년간 끊었다. 죽음을 가까이 느낀 이 시기에 현악사중주 「친밀한 목소리」(1909)와 교향곡 4번(1911)이 나왔다. 4번은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어둡고 간결했고, 초연의 청중은 당혹했다.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그가 쓴 단 하나의 협주곡이다. 초연 실패 뒤 고쳐 쓴 개정판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휘로 베를린에서 빛을 보았다.
- 시작부에서 약음기를 끼운 바이올린들이 아주 여리게 일렁이고, 그 위로 독주 바이올린이 떠오르듯 들어온다. 북쪽의 차가운 공기 같다는 감상이 많다.
- 1악장에서는 주제를 발전시키는 중간 부분 자리에 독주자 혼자 연주하는 대목(카덴차)이 놓여 곡의 기둥 노릇을 한다. 협주곡으로는 드문 구조다.
- 3악장은 팀파니와 낮은 현악이 끈질긴 춤 리듬을 이끈다. 영국 음악학자 도널드 토비는 이를 ‘북극곰을 위한 폴로네즈’라고 불렀다.
- 두 줄을 동시에 긋는 겹음과 빠른 도약이 이어져 악명 높은 난곡이다. 1935년 야샤 하이페츠와 비첨의 녹음은 오랫동안 이 곡의 기준처럼 여겨졌다.
V. 열여섯 마리의 백조 · 1914–1919 (49–54세)
(미국) 1914년 여름, 미국 코네티컷주 노퍽 음악제의 초청으로 대서양을 건넜다. 후원자 칼 슈테켈을 위해 쓴 「대양의 여신들」을 지휘했고 예일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생애 단 한 번의 미국 방문이었다. 귀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궁핍) 전쟁으로 독일 출판사 브라이트코프와의 길이 끊기자 인세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빚을 갚으려 피아노 소품과 가곡을 잇달아 써서 국내 출판사에 넘겼고, 일기에는 이런 생계용 작업에 대한 자괴감이 남아 있다. (백조) 1915년 4월 21일 일기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오늘 11시 10분 전, 백조 열여섯 마리를 보았다. 내 생애 가장 큰 체험 가운데 하나. 주여, 그 아름다움이란!” 이 광경은 교향곡 5번 피날레의 주제와 이어진다. 곡은 그해 12월 8일, 쉰 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국가적 축하 속에 초연되었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못해 1916년과 1919년 두 차례 크게 고쳤다. (내전) 1918년 핀란드 내전 중 적위대가 아이놀라를 수색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헬싱키로 피신해, 동생 크리스티안이 원장으로 있던 라피안라흐티 정신병원에 머물렀다. 식량이 모자라 몸무게가 크게 줄었다. 이듬해 3월에는 오랜 후원자이자 상담자였던 카르펠란이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11월, 교향곡 5번의 최종판이 초연되었다.
전쟁 중의 궁핍과 쉰 살의 축하, 그리고 백조 열여섯 마리의 체험이 겹쳐진 곡이다. 그는 4년에 걸쳐 고쳐 쓴 끝에 지금의 모습을 얻었다.
- 1악장은 호른의 부드러운 부름으로 시작한다. 중반부터 빠르기가 점점 올라가며 빠른 춤곡(스케르초)으로 녹아드는데, 개정 과정에서 원래 따로였던 두 악장을 하나로 합친 결과다.
- 2악장은 현악기의 피치카토(손가락으로 줄을 뜯는 소리)가 바탕을 이루고, 소박한 선율이 조금씩 모양을 바꾸는 변주로 흘러간다.
- 피날레에서 호른이 종처럼 크게 흔들리며 부르는 주제가 일기에 적힌 백조의 비행과 이어진다. 토비는 이를 망치를 휘두르는 토르에 빗대었다.
- 곡을 맺는 여섯 개의 화음 사이에는 긴 침묵이 끼어 있다. 쉼의 길이가 지휘자마다 달라 명연주를 비교하는 대목이며, 성급한 박수가 터지는 일로도 유명하다.
VI. 맑고 찬 물 · 1920–1926 (55–61세)
(작별) 1922년, 정신의학자로 존경받던 동생 크리스티안이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그는 프리메이슨에 가입했다. 쉰을 넘기며 가까운 이들을 잇달아 잃자, 일기에는 고독과 늙음에 대한 두려움이 자주 나타났다. (물) 1923년 초연한 교향곡 6번은 옛 교회 선법(장조·단조 이전의 오래된 음계)의 빛깔과 투명한 현악이 두드러진다. 그는 이 시기를 두고 “다른 작곡가들이 온갖 빛깔의 칵테일을 만드는 동안 나는 맑고 찬 물을 내놓는다”고 말했다. 화려한 관현악과 새로운 실험이 넘치던 1920년대에 그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압축) 1924년 3월 스톡홀름에서 교향곡 7번을 ‘교향적 환상곡’이라는 이름으로 초연했다. 네 악장의 성격을 20여 분의 한 악장 안에 녹여 넣은 곡으로, 평생 추구해 온 압축과 유기적 연결의 끝이었다. 이 무렵 금주는 이미 무너져, 지휘를 앞둔 긴장을 술로 달래는 일이 잦았고, 아이노는 이 문제로 깊이 괴로워했다. (타피올라) 1926년 뉴욕의 지휘자 월터 담로시의 위촉으로 교향시 「타피올라」를 썼다. 칼레발라에 나오는 숲의 신 타피오의 영역을 그린 곡으로, 하나의 짧은 동기에서 곡 전체를 길러 냈다. 같은 시기 코펜하겐 왕립극장을 위한 「템페스트」 음악도 완성했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대규모 작품은 여기까지였다.
뉴욕의 위촉으로 쓴 그의 마지막 대규모 관현악곡이다. 어린 시절부터 걸어온 숲이 하나의 동기에서 자라난 거대한 소리로 남았다.
- 첫머리에서 현악기가 제시하는 짧은 동기를 기억해 두자. 20분 가까운 곡 전체가 거의 이 하나에서 자라난다.
- 악보 첫머리에는 그가 붙인 네 줄의 시가 있다. 북쪽 땅의 어두운 숲이 넓게 서서 오래된 꿈을 꾸고, 그 안에 숲의 신이 산다는 내용이다.
- 후반부에서 현악기가 한 음을 아주 빠르게 되풀이해 떨게 하는 소리(트레몰로)와 반음씩 미끄러지는 음형이 몰아쳐, 숲을 휩쓰는 폭풍처럼 들린다.
- 폭풍이 지나간 뒤 현악기가 길게 늘이는 마지막 나장조 화음이 고요하게 곡을 닫는다.
VII. 야르벤페의 침묵 · 1927–1957 (62–92세)
(기다림) 세계의 지휘자들이 교향곡 8번을 기다렸다. 보스턴의 세르게이 쿠세비츠키는 초연을 약속받았다고 믿었다. 1933년 필사가에게 정서 비용을 치른 기록이 남아 있어 상당 부분이 쓰였음을 알 수 있지만, 그는 해마다 발표를 미뤘다. (명성) 193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그의 인기는 절정에 올랐다. 지휘자 토머스 비첨과 쿠세비츠키가 그의 교향곡을 자주 연주했고, 음반도 잇달아 나왔다. 반면 테오도어 아도르노 같은 비평가는 그의 음악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 공격했다. 국가 연금과 인세 덕분에 노년의 살림은 마침내 안정되었다. (소각) 1940년대 중반, 그는 원고 뭉치를 아이놀라 식당의 난로에 태웠다. 아이노는 그 뒤 남편이 한결 평온해졌다고 회고했다. 8번도 이때 사라진 것으로 여겨진다. (일상) 노년의 그는 아침 산책을 하고, 시가를 피우고, 라디오로 세계 각지의 연주를 들으며 지냈다. 방문객과 편지가 끊이지 않았고, 1955년 아흔 번째 생일에는 세계 곳곳에서 축하 연주가 열렸다. (학) 1957년 9월, 산책길에 남쪽으로 날아가는 학 떼를 보고 “저기 내 젊은 날의 새들이 온다”고 말했다고 가족은 전한다. 며칠 뒤인 9월 20일 저녁, 뇌출혈로 아이놀라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흔한 살이었다. 그날 저녁 헬싱키에서는 맬컴 사전트의 지휘로 그의 교향곡 5번이 연주되고 있었다고 한다. 국장을 치른 뒤 아이놀라 정원에 묻혔고, 1969년 세상을 떠난 아이노가 그 곁에 묻혔다.
덜 알려진 이야기
‘장(Jean)’은 그의 세례명이 아니다. 선장이었던 삼촌 요한 시벨리우스는 프랑스식으로 ‘Jean Sibelius’라고 새긴 명함을 썼는데, 삼촌이 1864년 쿠바 아바나에서 세상을 떠난 뒤 남은 명함을 대학 시절의 조카가 물려받아 그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가족과 옛 친구들은 끝까지 그를 ‘얀네’라고 불렀다. 「쿨레르보」는 오늘날 그의 초기 대표작이지만 생전에는 사실상 잊힌 곡이었다. 1893년 몇 차례 연주한 뒤 그는 악보를 거두어들였고, 이따금 일부 악장만 연주되었다. 전곡이 다시 무대에 오른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58년, 사위인 지휘자 유시 얄라스의 손에서였다. 첫 전곡 녹음은 1970년 파보 베르글룬드가 남겼다. 교향곡 8번은 ‘불타 없어진 곡’으로만 알려져 왔지만 흔적은 남아 있었다. 1933년 필사가 파울 포크트가 보낸 청구서는 스물세 쪽의 정서를 마쳤음을 보여 준다. 1982년 유족이 헬싱키 대학 도서관(오늘날 핀란드 국립도서관)에 기증한 스케치를 음악학자 티모 비르타넨이 검토해 8번과 이어질 만한 몇몇 대목을 찾아냈고, 2011년 헬싱키 필하모닉이 존 스토르고르즈의 지휘로 이 단편들을 연주했다. 모두 합쳐도 3분이 채 되지 않으며, 실제로 8번의 일부인지는 지금도 조심스럽게 말해진다. 그는 1922년 핀란드 프리메이슨 지부에 가입했고, 1927년 의식용 음악(작품 113)을 썼다. 의식을 공개하지 않는 원칙 때문에 이 곡은 오랫동안 일반 연주회에서 거의 들을 수 없었고, 작품 목록에서도 각주처럼 다뤄졌다.
용어 노트 📚🔎
교향곡
(말뜻) 교향곡(交響曲)은 여러 소리가 서로(交) 어울려 울리는(響)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심포니도 그리스어로 ‘함께 울림’을 뜻하는 말에서 왔다. (음악에서) 오케스트라 전체를 위해 쓴 긴 곡으로, 보통 서너 개의 큰 부분(악장)으로 이루어진다. 악장마다 빠르기와 성격이 다르지만 하나의 큰 이야기처럼 이어진다. 급식에서 밥·국·반찬·후식이 저마다 다르면서도 한 끼 식사를 이루는 것과 비슷하다. 시벨리우스는 일곱 곡을 썼는데, 마지막 7번에서는 여러 악장을 아예 하나로 합쳐 버렸다.
교향시
(말뜻) 시(詩)처럼 이야기나 장면을 담은 교향악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신화·소설·그림·자연처럼 음악 바깥의 내용을 오케스트라로 그려 내는 곡으로, 대개 한 악장으로 되어 있다. 프란츠 리스트가 이 이름을 처음 붙였다. 글자 없는 그림책을 소리로 읽어 주는 것과 비슷해서, 제목과 줄거리를 알고 들으면 장면이 눈앞에 떠오른다. 「투오넬라의 백조」와 「타피올라」가 시벨리우스의 대표적인 교향시다.
잉글리시 호른
(음악에서) 오보에보다 조금 크고 낮은 소리를 내는 목관악기다. 이름과 달리 영국에서 생긴 악기도 아니고 금관악기인 호른과도 관계가 없는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악기 끝이 둥근 공 모양으로 부풀어 있어 소리가 어둡고 구슬프다. 같은 노래라도 낮은 목소리로 부르면 더 쓸쓸하게 들리듯, 오보에보다 한층 그늘진 소리를 낸다. 「투오넬라의 백조」에서 백조의 노래를 맡는 악기가 바로 이것이다.
카덴차
(말뜻) 이탈리아어 카덴차(cadenza)는 ‘떨어지다’라는 라틴어 cadere 에서 왔다. 원래는 음악이 마침으로 떨어져 내려앉기 직전의 자리를 가리키던 말이다. (음악에서)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가 멈추고 독주자 혼자 기교와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는 대목이다. 처음에는 연주자가 즉흥으로 채웠지만, 나중에는 작곡가가 직접 써 넣는 일이 많아졌다. 학예회에서 반 전체가 합창하다가 한 명이 앞으로 나와 혼자 솜씨를 보여 주는 순간과 비슷하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카덴차가 1악장 한가운데에 놓여 곡의 기둥 노릇을 한다. (다른 데서는) 같은 뿌리의 영어 케이던스(cadence)는 자전거에서 1분 동안 페달을 돌리는 횟수를 가리키기도 한다.
오스티나토
(말뜻) 이탈리아어로 ‘고집스러운’이라는 뜻이다. 영어 obstinate(완고한)와 뿌리가 같다. (음악에서) 짧은 가락이나 리듬을 같은 모양으로 끈질기게 되풀이하는 것을 말한다. 그 위에서 다른 선율이 변하고 자라는 동안 바닥을 단단히 받쳐 준다. 긴 줄넘기에서 두 사람이 같은 박자로 줄을 계속 돌려 주면 안에서 뛰는 사람이 마음껏 동작을 바꿀 수 있는 것과 같다. 교향곡 2번 피날레 끝부분에서 낮은 현악기가 되풀이하는 음형이 좋은 예다.
피치카토
(말뜻) 이탈리아어 pizzicare(꼬집다, 집어 뜯다)에서 왔다. (음악에서) 바이올린·첼로 같은 현악기를 활로 긋지 않고 손가락으로 줄을 뜯어 소리 내는 연주법이다. 소리가 짧고 톡톡 튀며 금세 사라진다. 고무줄을 손가락으로 튕길 때 나는 ‘퉁’ 소리를 떠올리면 된다. 교향곡 2번의 2악장 첫머리와 교향곡 5번의 2악장에서 이 소리가 곡의 바탕이 된다.
트레몰로
(말뜻) 이탈리아어로 ‘떨리는’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한 음이나 두 음을 아주 빠르게 되풀이해 소리가 떨리듯 이어지게 하는 연주법이다. 현악기는 활을 짧고 빠르게 오르내려 이 소리를 낸다. 긴장감이나 바람, 물결 같은 분위기를 만들 때 자주 쓴다. 추운 날 이가 저절로 딱딱 부딪히며 떨리는 것처럼, 소리가 잘게 쪼개져 흔들린다. 「타피올라」의 폭풍 장면에서는 현악기의 트레몰로가 숲을 휩쓰는 바람처럼 들린다. (다른 데서는) 전기 기타의 ‘트레몰로’ 효과는 같은 음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 크기를 주기적으로 키웠다 줄였다 하는 장치를 가리킨다.